최진철로 인해 태회장이 사망하고, 우경이 최진철의 손에 넘어가고, 동주의 귀가 들리지 않게 된 상황은 준하와 동주, 그리고 태현숙을 가족으로 뭉치게 했습니다. 보통 가정에서의 남자형제들보다 더 끈끈한 형제애가 형성된 것은, 동주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특수한 상황때문이었습니다. 동주의 귀는 준하에게는 태현숙과 동주와의 결속이 깨지지 않을 이유가 되었지요. 복수에 전면으로 나설 수 없었던 태현숙이었기에, 동주를 도와 우경을 되찾는 수호천사가 필요했고, 준하는 적어도 태현숙에게 버림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는 죄가 아니지만, 알고 지은 죄는 용서할 수 없죠"
최진철이 손을 써서 구치소에서 풀려난 준하, 방파제에서 아버지 최진철을 만나 태현숙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지요. 제 생각으로는 최진철에게 믿음을 심어주려는 생각반, 태현숙에 대한 증오반이 섞여있는 듯보이더군요. 스스럼없이 아버지라 부르며 도와달라고 했지만, 최진철의 뒤에서 조소하듯 쏘아보는 장준하의 눈빛은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최진철 아들이 억울하게 살아온 30년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겠다는 말에, 준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달라고 하지요. 최진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우경이라는 돈이었습니다. 준하가 그토록 바랐던 화목한 가정도 아니었고, 자신의 생물학적인 어머니 김신애도 아니었지요.
"더럽고 천박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 이해시키는 것보다, 그 손가락 부러뜨리는 게 빠를 것 같다"며 태현숙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준하, 자식이 태어난 것을 몰랐다는 최진철의 말을 잇는 준하의 대답은 너무나 섬뜩해서, 예전의 장준하, 봉마루로 돌아올 수 있을까 심히 걱정스럽기까지 합니다. 최진철과 태현숙, 김신애의 파멸이 아닌, 준하 자신까지 포함해서 공멸하는 길을 택한 것 같아서, 드라마에 비극이라는 먹구름을 드리웁니다. "모르고 지은 죄는 죄가 아니죠. 실수지... 하지만 알고 지은 죄는 용서할 수가 없죠. 절대로"
아무도 마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머니 태현숙도 아버지 최진철도 김신애도 봉우리도 차동주도... 14년전 가족을 버렸던 그날의 봉마루 자신의 모습과 마주합니다. 새어머니를 죽게했다는 죄책감, 가족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힘없는 소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가족을 가진 불우한 환경의 소년, 마루는 14년전 혼자 힘들게 마주했던 상황과 다시 맞닥뜨립니다. 이번에는 태현숙이 내미는 손을 거절했습니다. 아버지 최진철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손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흔들 차례입니다.
저는 마루가 변화하는 것을 보며, 보여주는 것이 다는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루에게는 태현숙과 최진철, 김신애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심보다는 동주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평생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감옥보다 답답한 지옥에 갇혀사는 동주의 귀는 마루에게는 아킬레스건입니다. 태현숙이 세상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른 이유가 마루에게는 있습니다. 동주의 귀는 태현숙에게는 최진철에 대한 복수의 가장 큰 이유였지만, 마루에게는 측은지심이었습니다. 말문을 닫아버리고 혼자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뒀던 동주는 마루가 던져 준 캐치볼 하나로 세상을 향해 걸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입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한 번 더, 한 번 더".
마루가 무섭게 변해가는 본심 끝에는 동주의 수호천사라는 이유가 자리한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최진철이나 태현숙, 김신애에 대한 분노가 복수가 되었든 증오심이 되었든 마루의 진심이지만, 한편에는 강한 동주를 만들기 위한 마루의 심리전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거든요.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때문에 동주는 보호만 받아 왔었지요. 태현숙과 자신으로부터 말이지요. 그래서 스스로 강해지라고 일부러 벼랑으로 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자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일부러 벼랑에서 떨어뜨리듯이 말이지요.
마루의 분노가 이해되기가 가장 불쌍한 인물이지만, 태현숙이라는 인물은 정말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그 천박한 복수심때문에 감싸주기는 힘들더군요. 최진철, 김신애와 더불어 가장 나쁜 사람입니다. 동주에 대한 모정 역시도, 그 이기적인 모습때문에 다 이해를 해 주기는 힘듭니다. 자식이 평생 들리지 않는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할 수만 있다면 대신 귀를 잃고 싶을 겁니다. 그것이 세상 어머니들의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태현숙은 자기자식 소중한 것만 아는 이기적인 엄마입니다. 낮은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천박한 귀족의식은 최진철이 그녀를 떠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황금띠를 두른 사람들처럼, 태회장과 태현숙은 자기 핏줄에 대한 집착이 컸지요. 남자로서 피붙이 하나를 가지고 싶은 바람마저도 혼전각서로 막아버렸던 태회장이었습니다. 자식까지 갖지 못하게 하는 대단한 우경을 먹어버리겠다는 최진철의 야욕은, 어쩌면 당연한 반발심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동주에게 아버지로서 대했던 마음은 최진철의 진심이었습니다. 태현숙과 태회장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보다 앞섰던 부성애였습니다. 동주가 그날 일을 보지 않았더라면, 동주를 무서워하지 않고 끝까지 자식으로 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은 죄를 봐버린 동주에게 최진철은 기억을 하든 못하든 움츠러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불안감이 동주를 그날 이후 내칠 수 밖에 없게 합니다. 그리고 친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최진철에게는 우경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할 목표가 되기도 했지요.
어머니와 동주는 마루가 가족을 버렸다는 죄책감을 잊게 해주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세상에 유일한 단 한 사람, 마루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태현숙이 16년간 가면을 썼다는 사실에, 마루의 16년간의 행복도 산산히 부서져 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을 봅니다.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태현숙의 아들도, 동주의 형도, 뒷바라지 해주고 싶은 똑똑한 아이도, 세상에서 처음으로 본 가장 불쌍한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생부 최진철을 무너뜨리기 위한 탄알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지만 비밀장부로 마루를 친부의 손으로 검찰에 넘기게 하고, 동주가 평생 들리지 않는 감옥에서 사는데, 너는 그깟 몇년쯤을 못견디느냐고 으름장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마루가 한 일도 아닌데, 부모가 지은 죄를 자식이니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현숙의 사고방식은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최진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준하때문에, 태현숙은 꼭지가 돌아버리는 것 같더군요.
마루가 그런 태현숙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곁에 머물렀던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태현숙은 그런 가난한 어린 소년이 눈물로 애원했던 동아줄마저 위선으로 내려줬습니다. 아무한테나 들러붙는 버러지 최진철과 김신애, 너의 친부모와 그 피가 얼마나 다른 지 볼까? 라는 심산으로 말이지요. 마루가 스스럼없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거봐, 똑같이 더럽고 천박한 피야"라고, 16년동안 보여주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아무런 감정없이 버리지요. 하루를 품어도 애틋한 정이 생기는 것이거늘, 하물며 16년간을 키운 자식을 한순간에 원수의 아들로 대해 버리는 태현숙, 너무나 무섭고 독해서 그런 어머니를 가진 차동주마저도 불쌍합니다. 준하로도 모자라, 동주까지 마음에 증오심만 키우게 할까봐서 말이지요. 마루 앞에 나타난 태현숙이 동주의 바람대로 빌었다면, 아마 마루의 증오도 멈췄을지도 모릅니다. 마루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우경의 돈이나 회장자리가 아니라, 어머니와 동주였으니까요. 버림받는 것이 가장 무서웠던 마루는 또다시 버려지고 만 것이지요.
*정신없이 쓰다보니 글이 엄청 길어졌네요. 여기까지 참고 읽고 내려오신 독자님들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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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이맨 2011.06.16 15:22
아마 나중에는 마지막 수호천사로 될거같애요..그런데 진짜 22화에서 봉우리 너무하더군요. 좀 이해가 안되는게 16년간 그토록 '마루오빠,마루오빠'만 찾던 애가 차동주만 바라본다는게 설득력이 떨어지더라구요..감옥에 들어간게 최진철때문이라면,설사 싫어도 저같으면 빨리 빼내오려고 최진철과 김신애고모에게 봉마루가 장준하다라고 밝힐것같거든요.
그 반대라면모를까...내마들러브라인은 그래서 긴장감이나 공감이 안갑니다. 일단,공감이 가야 거부감이 안생기는데 애초부터 갑자기 봉우리가 차동주만 좋아하는것도 중간과정이나 이유가없고..이게 대본의문제인지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둘다인듯..ㅠㅜ
장준하와 차동주의 형제애와 핏줄과 핏줄안섞인 가족간의 복잡한 관계는 흥미롭기도하고 몰입을 이끌어내는데도말이죠...
장준하-봉마루가 나중에 파멸에 이르지는 말았으면좋겠어요...그리고,최소한 차동주를 응원하는 봉우리처럼 마루에게도 1명쯤은 위안이 되는 여자캐릭이 있었으면좋겠네요...3각관계는 이미 끝나버린거같고요. 더해봤자 집착인데 그럼 마루캐릭터가 끝장이 난달까?그동안 공들인 봉마루가 설 곳이 없어져버리는거니까요../좋은글잘보고갑니다. -
꾸이맨 2011.06.16 15:28
근데, '임실장'이란 스파이겸 지원군을 가지고 있는 태현숙이 지금은 한발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있는것같은데요...주가조작거래장부를 건넨게 임실장이라는걸 안다면 마루가 눈치채는것도 시간문제인거같은데 언제쯤 밝혀질까요?
드라마 결말이 '태현숙,최진철'이 모두 파멸하고 마루와 동주는 화해하고...아마 제일 해피엔딩하게 끝낸다면, 마루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게 될거같은데...앞이 안 보이는군요...
22화대본을 봤는데, 태현숙이 마루면회갔을때, '수감복입은 마루를 본순간 갑자기 울컥'하고, 마루가 '어머니'라고 불렀을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지만 얼른 닦는다'....
->이런 설명이 있더라고요. 자기아들동주생각할땐 다시 증오를 떠올리지만,
소유욕이 대단한 여잔데 아무리 연기라고해도 16년간 아들처럼 키워왔는데 정작 관계가 벌어지면 괴로운사람은 태현숙이 제일이지않을까싶기도합니다.
소중한건 품에 있을땐 못 깨닫고,잃고나서야 깨닫는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