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1 08:45




김병욱 감독이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세경과 지훈의 죽음을 암시했던 마지막 결말을 다시 등장시켰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요" 세경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흑백정지장면으로 시청자들에게는 황당결말, 충격결말을 넘어 패닉에 빠지게 했고, 하이킥 종영이후에도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되었던 장면이었죠. 신세경의 귀신설까지 등장하기도 했던, 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그 파장의 여파가 대한민국을 뒤덮으리 만큼 컸었죠. 대중문화 평론가들까지도 이 결론을 두고 갑론을박 토론까지 벌였으니 말이지요.
하이킥 3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방송국 알바생 백진희가 결말에 대한 아이디어를 줬고, 감독은 "무슨 시트콤에서 주인공이 죽냐, 그런 오지랖은 딴데가서 떨라"며, 백진희의 의견을 묵살해 버렸지만, 방송국 알바에서 짤린 백진희는 TV를 보다 그 마지막 장면이 자신의 아이디어대로 갔다는 것을 보고 경악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단순히 전작의 패러디를 웃자고, 혹은 미련이 남아 세경과 지훈의 마지막 장면을 등장시킨 것 같지는 않아 보이더군요. 김병욱 감독의 의도가 궁금한 대목이라 잠시 머리를 비우고 생각정리를 했답니다.
그런데 머리를 비우려고 했던 것이 더 머리만 아픈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았네요. 사실 12화를 보는 중에, 김지원의 2G구형 휴대폰 폐지를 두고 철회서명운동을 벌이는 광경을 목도한 윤계상이 함께 동참했던 장면을 보며, 적잖이 충격에 빠졌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커피를 사러간 사이 기면증이 있는 김지원이 잠들어 버리자, 윤계상은 자켓을 벗어 김지원에게 덮어주고는 조용히 책을 펼치고, 가을햇살 속에 그림처럼 앉아서 책을 읽는 장면이 나왔죠.
김병욱 감독 작품에는 유독 소품 하나에도 신경을 써도 결말을 암시하거나, 스토리의 중요한 복선장치를  숨겨둡니다. 전작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지훈이 세경에게 준 돈봉투를 헤세의 '데미안'에 넣어두는 장면에서도 그 비극적 결말에 '각성'을 의미하는 중요한 소품이 되기도 했지요(관련글: 지훈-세경을 죽인 이유, 감독의 지독한 짝사랑?).
12화에서도 눈길을 끄는 소품이 등장했는데, 설마설마 긴가민가 눈을 의심케하는 책이 들어오더군요. '버지니아 울프'였거든요. 버지니아 울프...여성을 단순히 여성이라는 '성'에 국한 시키지 않고, 억압받는 계급으로 대치시키며, 사회모순과 계급사회에 대한 고발을 했던 작가, 끝내는 정신질환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여류작가입니다. 곳곳에 깔린 사회의 모순, 혹은 개인의 자아를 그녀는 피지배 계급, 억압받는 계급에 여성으로 대치해 풀어가며,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화두를 던졌지요. 그녀의 작품들 특히 자기만의 방, 3기니등은 패미니즘적인 시각에서, 특히 여성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필독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자아'에 대한 계급적 문제의식입니다. 그녀가 왜 이렇게 계급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그것을 자아로 풀어가려고 했을까? 그녀를 죽음으로 까지 끌고 간 정신질환(우울증)을 들어 짙은 허무적 냉소주의, 내지는 패미니즘으로 축소시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시대를, 사회를 냉철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던 사람중의 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시트콤이라는 형식 속에 날카롭게 사회를 비판하고, 통렬한 일침을 날리기도 하는 김병욱 감독도 그런 분이죠.
1차대전이 끝나고 바다 건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유행처럼 불어닥친 파시즘에 당시 영국사회는 무관심했지만, 그녀에게 파시즘은 새로운 것이 아닌 오래된 지배자의 속성이었고, 이런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은 성적차별을 넘어 기득권 유지를 위한 지배수단이었음을 주장합니다. 나아가 여성해방이라는 패니미즘이 아니라, 진정한 목적은 인간의 해방이라는 점을 역설했지요. 그녀의 소설 '세월'로 기억하는데, 대학시절 인간해방을 여성으로 대치시켜 보고 고발했던 그녀의 작품에 매료되어, '자기만의 방', '3기니' 등을 논문분석하듯 읽어가며, 한동안 저만의 지적유희를 울프와 함께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품속 인물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벅찬 난해함때문에, 골머리를 써가며 인물을 분석하고 이해해 보려고도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고 하니, 김병욱 감독의 작품속 세경과 지훈이라는 인물 역시 울프의 소설속 등장인물들처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작품속에 등장인물들은 감정기복도 심하고, 한마디로 말하기 복잡한 인물들이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하이킥 2의 결말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엄밀히 말자면 김병욱 감독의 세경과 지훈을 보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것을 지훈의 자각라고 해석하는 감독의 시선을 지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김병욱 감독의 작품에는 롤모델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등장인물들을 통해 옳고 그르다, 선하다 악하다, 좋다 나쁘다로 양분법적인 구조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훈남임에도 한대 쥐어박고 싶은 괴팍함과 못된 성격이 있고, 빈대처럼 빌붙어 사는 찌질이에게도 바른 말을 하고 인정이 넘치는 모습이 있죠. 단정하고 착한 성품의 여주인공을 맹한 바보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윤계상의 손에 들린 버지니아 울프 책을 보고, 또 순간 멍한 충격을 받은 것도 하이킥3에서도 범상치 않은 결말과 맞딱뜨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의 특징은 의식의 흐름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인물들을 통해 산발적으로, 혹은 감정 내키는 대로 한 공간에 등장시킨다는 것이죠. 마치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자아'에 눈 떠가는 과정을 계급적 억압구조에서 찾아갑니다. 그 과정은 계급이라는 것이 깔려있기에 상당히 비극적일 수밖에 없죠. 세경과 지훈의 상황을 계급적 구조에 대치를 하고 보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정형화되지 않은 인물들의 성격,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사회의 최소 축소판인 '나'이고, 삶이라고 말하는 이 정리되지 않는 시트콤처럼, 김병욱 감독은 모든 문제를 보는 답도 지극히 다양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하이킥 2의 결말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나와 다른 생각이 있음을, 그것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에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처음 백진희가 주인공이 죽는 것으로 암시하는 장면으로 가자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 방송국 감독은 버럭 화를 내지요. "시트콤에서 주인공을 죽이는 게 말이 돼?"라면서 말이죠. 많은 시청자들이 세경과 지훈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펄쩍 뛰었죠. 그런데 결말은 백진희의 의견대로 죽는 것으로 맺어버렸지요.

김병욱 감독이 시청자의 기대를 외면하고 그같은 장면으로 끝을 맺었는지, 직접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김병욱 감독은 신세경이 죽는 것을 제안한 것도 수많은 결론(자각) 중의 하나이고, 다수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고, 또한 틀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듯싶더군요. 다만 다른 생각도 있다는 것에 필이 꽂힌 듯하고요. 그렇게 갑작스러운 죽음 역시 삶의, 혹은 사회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는 듯이 말이지요.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작가나 감독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결말을 어떻게 내느냐 일겁니다. 특히 죽이냐 살리냐는 시청자의 가장 큰 관심사죠. 복수극도 아니고, 슬픈 멜로도 아닌 시트콤에서 주인공의 죽음이라,,, 상당히 색다르고 충격적인 결론이죠. 시트콤 주인공은 죽지않는다, 혹은 희극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틀에 박힌 선입견을 깨는 결과이기도 했고요. 비극이든 희극이든 인간에게 정해진 삶의 형태란 없다라는 것을 말하듯이 말입니다. 죽음마저도 말이지요. 세경에게는 행복이었겠지만(감독이 생각하는), 남은 사람들에게는 지독한 슬픔과 배신감마저 들게 한 세경의 죽음도 새드엔딩인지, 해피엔딩인지 결론 내리지 못했듯이 말입니다. 
김병욱 감독은 이번 세경과 지훈의 죽음 장면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남과 다르다고 하여 바꿀 생각도 없으며, 앞으로도(하이킥3)에서도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준 듯 합니다. 좋게 말해 뚝심있는 의지이며, 나쁘게 말해 고집일 수도 있겠지요. 김감독의 뚝심이 이번에는 시청자와의 시선에서 크게 멀지를 않기를 바라게 되네요. 

***쓰다보니 김병욱 감독의 작품세계까지 오지랖 넓게 고민한 것 같습니다. 가벼운 시트콤 하나보고 쓴 글 주제가 무거운 듯해서 발행을 할까말까 망설였지만, 작고 사소한 설정 하나도 작가와 감독의 고심과 고민(?)이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특별히 전작의 결말을 재등장시킨 것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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