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디 멜로물이 아닌 정통멜로드라마를 만들겠다는 김수현 작가의 말도 있었지만, 특유의 톡톡 쏘는 향신료가 부족한 듯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슬픔보다는 답답함이 먼저 전해지더군요. 그럼에도 지독한 순애보를 그려가는 노작가의 감성은 어느 작품보다 진한 멜로물로 무게를 더할 듯합니다.
관록파 배우 김해숙, 이미숙, 오미연, 박영규 등의 중견배우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향신료 역할을 톡톡히 할 것같아 적잖이 안심되는 부분입니다. 첫회부터 미이라처럼 붕대를 칭칭 감고 등장한 이미숙은 평범한 캐릭터는 아닐 듯해서 주인공들보다 기대가 더 크네요. 팔색조같은 배우 이미숙의 연기변신은 어느 작품에서나 매력적이지요. 박지형(김래원)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김해숙 역시 어떤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줄 지도 기대되고 말이지요.
드라마 시작 2분도 안되어 나온 격정적인 배드신은 눈을 잠깐 의심하게 할 정도로 빠른 진행이었습니다. 배드신의 수위나 노출의 강도가 파격적이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두 사람의 감정을 잡아내지도 못했는데 허걱, 뭐가 저리 빨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이후에 연거푸 보여진 배드신 퍼레이드는 수애와 김래원이 리얼(?)하게 장면 자체는 전달했지만, 감정몰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배드신은 화제용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더군요. 배드신 연기자체는 잘하더군요.ㅎ
김수현 극본의 특징인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아야 하는 긴대사를 단숨에 무호흡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감정을 눌러버린 탓인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수애의 분위기있는 비주얼은 대사나 목소리보다는 표정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단아하고 차분해 보이는 분위기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애절한 표정이 장점이지요. 그런데 보이스는 워낙 저음이다 보니, 많은 양의 대사는 자칫 국어책 읽기가 돼버릴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기도 합니다.
수애의 목소리는 매력적인 색깔을 가졌지요. 특히 대사톤이 빠른 것보다는 느림 속에 그 감정이 배가 되어 전달된다는 것이 장점인데, 호흡조절을 좀 했으면 싶기도 했어요. 아직은 수애가 서연이라는 인물에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은 것 같지만, 수애가 잠재력도 크고 연기력이 있는 배우라 크게 걱정되지는 않습니다.
화장실에서의 오열신은 지형과 뜬구름잡기같은 말싸움을 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도 남았습니다. 이별을 통보받은 순간부터 서연은 이미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요. 강한 척, 쿨한 척, 자존심을 세웠지만 서연은 죽도록 아픕니다. 붙잡을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비참하고 불쌍합니다. 마음으로는 수백번 수천번 붙잡지만 곁에 둘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아는 서연입니다.
언제나 마지막인 만남, 서연은 지형을 만나러 올 때마다 오늘이 그날이 아니기를 바랬습니다. 그날이 올것을 알면서도, 오늘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안한 사랑을 이어왔지요. 결혼할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하루만 훔치자는 심정으로 말이지요. 늘 그날이 마지막이 될 수있었기에, 그와의 사랑도 마지막 불꽃처럼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격정적이고 불꽃같은 배드신이 필요했던 듯 싶습니다.
시작전부터 잡음이 일어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으로서는 큰 감점을 받은 김래원이지만, 워낙 연기의 기초가 탄탄하고 캐릭터 소화를 잘하는 배우라 첫회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아직은 박지형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다 나오기 전이라, 결혼할 여자를 두고 딴짓하는 나쁜놈(?)이지만,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애보를 보여준다고 하니, 김래원이 여심을 꽤나 흔들 것도 같습니다.
서연이 잃어가는 것들, 서연이 잊어가는 것들은 가스불을 안잠그고, 휴대폰을 두고 나가고, 약속을 잊어버리는 것들만이 아니지요.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이 기억을 잃어가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서연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동생을 몰라보고, 사랑하는 지형도 잊어버리고, 그래서 그를 그리워할 수조차 없는 것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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