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의 연기력이야 중언부언할 필요없고, 그의 곁을 묵직하게 지켜주는 무휼 조진웅은 호위무사를 넘어, 가장 믿음직한 친구같은 모습까지 극의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백정으로, 밤에는 밀본의 3대 본원으로 모습을 감추고 살아왔던 정기준 역의 윤제문은, 백정으로서도 정기준으로서도 미친연기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현전 학사의 의문사를 통해 그 종착점이 한글임을 밝혀갈 겸사복 강채윤이라는 인물을, 출중한 액션신과 능청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수사관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보이고 있는 장혁의 연기 또한, 큰 흠을 잡을 수 없이 좋습니다.
강채윤이 추노의 대길이를 뛰어넘었느냐 아니냐는, 장혁의 연기가 진화와 성숙을 했느냐의 질문과 동일하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 추노는 거의 장혁이 원톱이었던 드라마였습니다. 원톱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미친연기와 대길에 대한 시청자들의 연민과 사랑이 절대적이었죠. 여기에 마초적인 야성미를 드러내고, 절권도를 비롯, 화려한 액션신은 추노의 꽃이었지요.
그럼에도 강채윤이라는 인물에 장혁의 캐스팅은 완벽합니다. 장혁의 감정선 주무기인 이글거리는 눈빛연기, 그리고 무술과 운동으로 단련된 몸놀림은, 장혁 외에 다른 배우를 생각하기 어렵게 할 정도지요. 권상우 정도가 이런 무술신을 연기와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떠오르기는 하지만, 장혁의 발음도 문제로 지적되는 마당에, 권상우의 발음은 정확한 발음을 요하는 사극에는 무리일 듯하고요.
그런데 장혁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뭔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뻥 하고 터지지 못하는 듯한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아니 너무 터뜨리려고 힘을 주다 보니, 기승전결의 감정선이 물흐르듯 흘려야 하는데, 중간과정이 생략된 듯한, 혹은 힘을 과도하게 넣은 모습이 가끔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때문일까 생각해 보니, 아역 똘복이에 대한 잔상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는 다분히 의도된 장면이기는 했었지요.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무휼이 지난 날 어린 똘복이가 강채윤임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죠. 팔뚝에 남겨진 자신의 도흔을 보고 의문을 품었던 무휼은, 소이를 붙들고 소리를 지르는 강채윤을 보고, 그가 똘복임을 알았지요.
"나 한짓골 똘복이야. 누구야, 어떤 개새끼야. 죽여버리겠어. 우리 아버지 죽인 원수 죽여 버리겠어"라며, 울부짖던 어린 똘복이를 기억해 내게 한 장면이죠. 반촌의 도담댁에게 똘복이를 맡긴 것도 무휼이었죠. 이 대목은 여전히 제가 물음표로 남겨두고 있는 부분입니다. 무휼이 왜 하필 밀본의 핵심인물인 도담댁에게 똘복이를 맡겼을까, 이런 궁금증?
이방원의 공포정치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마방진으로 숨었던 유약한 임금에서, 우리 글자라는 경천동지할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이도. 한 장의 글귀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24년을 가장 천한 백정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웅크리고 있었던 정기준. 감히 임금의 목을 따겠다고 칼을 숨기고 궁으로 들어온 강채윤이라는 인물들은, 신분고하를 떠나 입체적이고, 드라마적인 캐릭터들이죠.
세월과 함께 그들은 모습도 변했고, 생각도 변했고, 성격도 달라졌습니다. 아역에서 성인배우로의 변화처럼 말이지요. 송중기의 세종과 한석규의 세종은 180도 달랐고, 어린 정기준과 백정 가리온은 경악스러운 탈바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캐릭터의 싱크로율을 따질 필요를 느끼게 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청자들이(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처음에는 아린 똘복이의 연기가 좋았는데, 회가 거듭되니 눈을 희번덕거리며, 빽빽 소리만 지르는 모습에 짜증난다는 원성이 늘어갔다는 것을 제작진이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역배우중 어린 똘복이가 그나마 연기는 가장 나았지만 말입니다.
장혁에게서 똘복이의 모습을 반복시키는 것이 지금 장혁의 연기에서 가장 문제점이라고 보여집니다. 윤평과 출상술을 겨뤘던 장면이 있었지요. 강채윤 역시 이방지의 출상술을 쓴다는 것에 놀란 윤평이 "너 누구냐!"고 묻자, 그동안 무게잡고 진지하게 합을 겨루던 강채윤이, "이제 좀 관심이 생기냐, 이 개자식아!!!!"라며, 똘복이 모드로 돌아가 급발진 고성을 질러 놀라게 해버렸지요. 이런 장혁의 급발진 고성이 가끔씩 나오고 있는데, 장혁의 감정선을 오히려 붕뜨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장면은 9회, 10회 밀본 하수인이라는 누명을 쓴 가리온의 무죄를 입증해 살리려는 강채윤으로 연결되는 복선이기도 했습니다. 의금부의 추포에 반항하고 도망친 가리온이 강채윤에게, "목숨이라고 다같은 목숨입니까? 제가 양반입니까, 사대부입니까, 양인도 못되고 버러지 팔자입니다. 백정이 금부에 끌려가면 그냥 죽는 겁니다. 소인의 목숨은 파리새끼 천한 목숨입니다" 라며, 강채윤을 자극했으니 말이지요. 제작진은 이렇게 치밀하고, 촘촘하게 대사 하나도 연결을 해 두었더군요.
장혁이 연기하는 강채윤이라는 인물은 감정이 의뭉스럽지 못하고, 직설적이기는 합니다. 전장에서 생사를 오가며 잠 대신 이도를 향한 복수의 칼을 갈았던 집요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또한 능청스럽게 연기도 잘하는 처세술의 달인이기도 하고, 용의주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소리지르고 반항만 하던 어린 똘복이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죠.
그런데 눈동자를 뒤집으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만은 똘복이와 달라지지 않았지요. 이 모습을 똘복이를 기억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장혁의 연기를 과소평가하게 하는 역작용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담댁의 하수인 끝수가 어린 똘복이의 살기를 떠올리고 강채윤을 알아보기도 한다니, 장혁이 어린 돌복이와 싱크로율을 맞추기 위해 오버하는 연기가 계속 필요한 모양입니다. 어린 똘복이의 이미지를 요구하는 것이니, 장혁이 이를 의식해서 오버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장혁은 감정폭발의 기승전결을 잘 연결하는 배우입니다. 똘복이를 연상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억지스럽게 어린 똘복이와의 싱크로율을 맞추려는 것이 장혁의 표정연기에서는 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똘복이의 어린 시절 강한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장혁의 좋은 감정선을 더 자연스럽게 보여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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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마마 2011.11.05 09:04
저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구요~
물론 똘복을 연상시키려해서임은 알겠지만
똘복은 똘복일뿐~ ^^;;;
울 누리님~
기분 좋~은 주말 되셔요~ ^^ -
수라의도 2011.11.05 09:43
저도 버럭할때마다 정말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너무 오버한다고 할까.
포화지방산이 아닌 불포화 지방산을 제귀가 흡수하는 기분이었다 랄가요.
근데 추노에서도 가끔 오버해서 버럭할때마다 장혁이 싫어지기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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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2011.11.05 12:42
이건 확실히 장혁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이나 시나리오의 문제이지요
어린 시절 똘복이 솔직히 비호감캐릭터였고..
장혁도 위에 지적하신 부분에서 똑같은 느낌을 주는것은
연출이나 시나리오에서 원하는 성격이라는거겠죠.
하지만 지적하신대로 저도 참 그런 장면들이 뜬금없고 맘에 안든다는것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