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이 소이와 나인들이 충청감영에 가지 않았음을 보고해, 정기준이 세종의 연극을 눈치채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지요. 아무래도 소이와 강채윤에게 위험이 닥칠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표정이 초지일관 가면같은 반쪼가리 윤평이 소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 쬐끔 귀엽기도 하더군요ㅎ.
세종과 정기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는데요, 밀본에서 움직임이 없어서 오히려 폭풍전야같이 느껴집니다. 정기준이 "글자를 막기 위해 벌어지는 모든 살인마저 용인한다"고 했던 말이 섬찟해서 말입니다.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이신적과 심종수가 배신을 때릴 것같은 생각이 들어 정기준의 신변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세종은 그날 채윤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지요. "넌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지금처럼 똘복이어야 한다. 윗것들 싸움보다는 그냥 백성으로, 한 사람의 백성이 윗것들 싸움을 어찌 보고 판단하는지, 그것을 알아야 겠다"라고 말이지요. 채윤은 그날 세종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윗분들의 일이 우리를 죽이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그랬습니다. 세종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맞서면서 까지 천민 똘복이를 구했고, 말문까지 닫아버렸던 소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줬습니다.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아도 될 천한 똘복이와 담이를 구하고 거둔 것은, 그들도 사람이었고,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한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없었다면, 글자를 만들 생각도 애시당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들게 된 이유를 돼새겨 준 채윤이었지요.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똘복이가 세종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백성의 책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뭉클했지요.
"백성은 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루 왠종일 뼈빠지게 일해서 자기들 먹을 것 못먹어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책임지지 않았을 때도 우린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책임 좀 떠안고 하고 싶은 것 좀 갖겠다는데, 우리도 욕망하는 것 좀 갖겠다는데, 그게 그리 지옥이십니까? 전하는 위선자십니다. 전하는 아주 소심한 겁쟁이십니다". 윗것들 싸움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했던 똘복이 강채윤은, 그렇게 세종의 흐트러진 심기를 세워줬던 것이지요.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광평대군이 궁을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만감이 교차했을 듯한 강채윤이었습니다. 상처를 입고도 아프다는 말한마디 하지않고, 고통을 이겨내던 광평대군를 업고 도망쳤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허망하게 가버린 광평대군을 생각하니 채윤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작가에게 놀라웠던 점은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자의 이름을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백성(民)을 쓰게 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제목 뿌리깊은 나무의 '백성'을 의미하는 뿌리이기도 한 백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으로, 세종의 혼란이 정리되었음도 암시했던 장면이었지요.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글자를 더 사랑했는지 모르겠다는 세종의 고뇌와 혼란을 소리(音), 글자가 아닌, 백성을 먼저 쓰는 모습으로 정리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장면도 세종의 심경정리까지 연결해서 세밀하게 연출하는 작가들과 감독입니다.
기습공격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했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지요. 문제는 해례를 알고 있는 훈민정음 프로젝트팀원들이 궁밖에 나가서 광평대군이 하던 일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밀본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었지요. 궁궐 담장까지 밀본이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니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글자반포를 반대하는 집현전 학사들을 싸그리 잡아 옥에 하옥시키고, 광평대군의 죽음에 실마리를 제공한 나인들은 궁밖으로 내쳐버리면서, 궁의 분위기는 살벌함이 감돌고, 마치 이방원의 공포정치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의정 이신적이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보니, 혹시 바지에 실례를 하지 않았나 궁금해지기 까지 하더랍니다.
사실 세종, 무휼, 채윤, 정인지, 성삼문과 박팽년, 그리고 소이 모두가 배우가 되어 세종의 시나리오에 맞춰 연극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요. 세종이 소이와 채윤을 그리 내칠 것이라고 믿은 시청자는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훤히 드려다 보이는 싱거운 연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종의 시나리오를 명작으로 빛내 준 배우가 바로 마지막 반전의 주인공 조말생이었습니다.
조말생이 황희대감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조말생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어느 쪽에 서야하는지 고민했던 장면입니다. "상왕께서 돌아가시며, 전하(세종)께서 하시는 일은 반대치 말라 하셨다. 오로지 밀본만 막아내라 하셨다"며 고민중이라고 했었지요.
밀본의 발본색원은 조말생의 과업이며, 그에게 있어 대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밀본수사를 강채윤에게 빼앗기고 강채윤에 대해 앙금도 클 수밖에 없었고요. 밀본수사를 맡겨달라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궁에서 내쫒기고 파면을 당해도, 사재를 털어서라도 반드시 밀본을 잡겠다는 조말생이었기에, 소이와 나인들을 고신하고 채윤을 옥에 하옥시켜 버린 것도, 밀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생각하게 했고, 글자와는 관계없이 단지 밀본을 색출하겠다는 집념으로 보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요.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채윤을 집으로 불러 이방지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게도 했던 조말생이었지요. 이방지 역시 정도전의 사람으로 대역죄인인데도 그를 치료하고 숨겨주었다는 사실에, 조말생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었지요. 여자를 이용해 이방지의 발을 묶었던 비겁한 무사라며, 이방지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남았던 조말생은 그렇게 조선제일검 이방지의 마지막을 명예롭게 보내 주었습니다.
세종이 만든 잘 짜여진 연극 한판으로 한글은 역병처럼 조선팔도 골목골목에서 번지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를 만들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소이, 거지들의 각설이타령까지 지금 조선은 글자역병의 씨앗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훗날 역사에, 백성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워주는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세종의 말이 송곳처럼 찌릅니다. "어차피 그것은 그들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지 않느냐, 지금은 그냥 내 백성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한번도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며, 채윤이 양손을 모아 처음으로 예를 취하더군요. "그렇게 결정내려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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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마마 2011.12.09 09:04
최고의 배우가 누구다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한분한분 다 연기도 잘하시고
이 드라마 끝날까 불안하기까지 하다니까요~ ^^;;;
울 누리님~
행복한 하루 보내셔요~ ^^ -
존재와시간 2011.12.09 12:38
저는 이전부터 조말생에게 은근 호감 갖고 있었는데, 어제 방송 보고 완전 호감 갖게 되었답니다. ^^
분명히 조말생은 이 드라마 초기에는 태종 이방원의 사람으로서, 세종 이도와 다른 길을 가는 악당(?)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악당 역으로 나올 때조차, 그저 사리사욕에 미쳐서 마구잡이로 반대파를 숙청하는 인물로는 안 보였답니다.
악당은 악당이되, 나름 철학이 있고 지켜야 할 선은 지키는 사람으로 보였지요.
태종이 세종에게 빈 찬합 보낼 때도, 분명히 세종과 다른 생각 갖고 있는 조말생이 기겁하면서 '전하는 안 됩니다' 하고 세종을 해치지 말라고 태종에게 말했었구요.
어제 방송분 보니까, 역시나 심지가 굳은 인물이고 인간적인 면도 보이더군요. ^^ -
김미정 2011.12.09 13:08
매주 드라마도 블로그후기도 잘보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호흡이 워낙 빠르다보니 어느새 종영이 다가오는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벌써 얼마남지않았다니..그저 아쉬울뿐입니다.
조그만 바람이 있다면...무휼과 채윤, 그리고 소이와 나인들..누구도 죽지않고
마쳤으면 합니다. 채윤과 소이의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 쓰는 아름다운 광경으로 끝나길 바랍니다. -
해피미르 2011.12.09 13:17
채윤의 눈물이 가슴아파 같이 울었었는데 다시한번 광평대군의 죽음이 너무 안타깝네요..
훈민정음.. 4글자 중에 民자를 가장 먼저 썼다는게 새삼 놀랍구요..
집현전 학사들이 무색한 4명 궁녀들의 소명의식도 참 좋았습니다.
어제는 특히 조말생 대감의 충정이 가슴깊이 와닿아서 좋은 한 회였단 생각이네요.
관련 기사 베플에 진정한 보수파라는 얘기가 잘 어울리는 충신이었습니다.
정치는 책임이라는 정기준의 얘기 또한 곱씹게되네요..
포스팅을 보니 어제의 감동이 다시 와서 너무 좋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시골아낙네 2011.12.09 15:32
요즘 저 드라마 보는재미로 살고있는 아낙입니당..ㅎ
드라마 잘 안보는 남편도 재방송까지 보고 또 보는 유일한 드라마~^^
오늘은 날이 정말 춥네요~~~
감기 조심하시구요~행복한 주말 보내셔유~초록누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