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쪼가리 윤평의 죽음도 그리 아름답지 않았으나 평생 모시는 주군을 지키기 위해 죽었으니, 아무도 원망마라 네 팔자다 싶고...도담댁은 반촌의 행수로 왜 정기준과 밀본에 충성하는지, 대의보다는 정도광 어른에 대한 노예의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대를 이어 충성한 뼈대있는(?) 천민의 죽음 정도되겠습니다.
정기준은, 음 마지막까지 쥐새끼같은 행동을 하더군요. 청계천 비밀통로를 따라 경성전에 잠입해서 감히 용상에 앉아 죽었으니, 마지막 길이 호사스럽기는 했으나 끝까지 발칙한 놈이었습니다. 제작진이 정기준의 마지막을 용상에 앉혀 죽이는 것에 당혹스럽고 화까지 나더군요. 용상에서 피까지 꿀럭꿀럭 흘리는 것을 보고는 더럽혀진 용상을 어이할꼬 걱정스럽기 까지 했네요. 풍자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 청계천을 복구한 인물이 옛말로 치면 지금 용상에 앉아 죽을 쑤고 있다죠.
동이 터오자 의식을 회복한 소이는 독이 퍼져감을 알고 동굴에 몸을 숨겨 제자해를 적어가기 시작합니다. 속치마를 찢어 해례본을 작성한 소이, 소이의 마지막을 보는 시청자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지요. 소이를 찾은 채윤에게 제자해를 반포식에 맞춰 가져가라 이르고는,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게 한 소이였지요. 오라버니 만나서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꿀맛같은 잠을 잘 수 있었노라, 그래서 행복했노라 고백하는 소이, "우리 글자자가 성공적으로 반포되는 모습, 백성들이 그 글자를 읽는 모습, 오라버니 눈을 통해서 꼭 볼거야. 오라버니가 반드시 봐야 돼. 가서 내게 보여줘".
"백성은 고통으로 책임지고 있다고 오라버니가 그랬잖아. 무서워 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어. 우리 아버지 석삼이 아재 다 그렇게 죽었잖아", 윗것들 싸움에 머리통 깨지고 밥그릇 빼앗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아랫것들의 삶인지, 고통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절실하게 와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이의 제자해를 들고 광화문을 향해 뛰어가는 강채윤의 동공은 풀어졌고, 그의 허망한 눈빛을 통해 삶과 죽음이 부질없음이 느껴졌습니다.
고통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 원망도 없었고, 희망의 씨앗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여주고 마지막 임무를 다했다는 듯, 편하고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백성은 고통으로 책임져 왔다는 똘복이의 말처럼, 이런 고통이라면 행복하였노라고 고백하는 장면처럼도 보였고 말입니다. 죽음도 아깝지 않게 지킬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우리의 글자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무휼과의 일전에서 이미 중상을 입은 개파이였지만, 대적불가 개파이는 채윤에게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베고 베이고 피가 튀는 현장, 끝내 개파이는 채윤의 일격을 받고 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지요. 잘가라 퉷! 정말 이놈은 왜 조선에 왔는지 모르겠네요. 견적희마저 짐보따리 싸서 도망쳤다고 하니, 명나라 왈짜패들을 고향으로 퇴출시켜줬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무휼, 채윤을 죽인 너에겐 심히 유감이 많다!
소이의 죽음을 예상하는 세종, 왈칵 쏟아지려고 하는 눈물, 그러나 왕은 울 수가 없습니다. 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는 자리가 왕의 자리였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을 주위를 돌아보며 삼키는 세종이었지요. 한석규의 섬세한 감정선에 감탄사 연발하며 울었네요.
풀어진 눈으로 하늘을 향해 담이에게 웃음짓던 채윤의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가 않네요. 담이에게 그렇게 지켜보았노라고, 너의 눈으로, 또한 나의 눈으로 너의 글자가, 우리의 글자가 반포되는 것을 보았노라고, 그리고 너의 곁으로 가겠노라고 미소짓는 채윤이 모습이 말입니다. 여기서 분위기 확깨는 쓸데없는 말 덧붙이면 혼날텐데, 암튼 요런 것 쓰면 안되는데, 분위기 침울해서 웃음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세종의 품에 안겨 죽은 채윤, 이상한 포즈로 안기다보니 단발머리가 되었더라는;;
무휼과 채윤, 소이의 죽음은 세종을 서있을 힘도 없게 합니다. 그런데 뜨헉, 이게 뉘신가? 정기준이 비밀통로를 통해 쥐새끼처럼 경성전 용상에 떡 하니 앉아있습니다. 피를 질질 흘리면서 말입니다. "니 꼬라지가 이게 뭐냐? 정기준!". 욕도 안나오고 화도 나지 않은 세종, 그만큼 허탈하고 슬펐고, 그만큼 그의 사람을 잃은 허망함이 커서였을 겁니다.
"당신의 글자는 위정자와 지배층에 그렇게 이용될지도 모른다", 정기준이 세종과의 토론을 이었지요. 아주 오래전 성균관의 사당에서 정도전의 치국사상을 놓고 벌였던 논쟁의 일부였지요. 조선경국전 정보위의 내용입니다. "무릇 백성은 어리석어 보이나 지혜로써 속일 수 없다 했다. 허나 그 말은 어쩌면 어리석기 때문에 속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혜가 없는 산이나 바위를 속일 수 없는 것처럼... 헌데 너의 글자로 지혜를 갖게 된 백성은 속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속게 되고 이용당하게 될 것이야.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개새끼처럼".
정기준은 말귀를 알아듣는 백성이기에 위정자들이 더 속이려 들을 지 모른다는 경고를 하지요. 말귀 못알아듣는 개나 산, 바위는 그냥 무시를 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알아듣기에 더 교묘한 수로 속이려 들것이라는 것입니다. 정기준의 말은 여전히 칼처럼 예리합니다. 언론을 통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을 세뇌시키고 있으며, 간교하기 그지없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은 정교하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죽은 정기준을 향해 세종이 울부짖지요.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헌데 이제는 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야. 여기가 이렇게 아픈데,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가 있겠느냐. 고맙구나 정기준". 세종은 오랜 시간 스스로 고민하고 절망하고 고뇌하며 얻고자 했던 답을 찾았습니다. 백성이 그에게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이었지요. 사랑이라고...
희미하게 웃는 정기준은 처음으로 세종을 인정하더군요. 주상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이제 주상의 말이 맞기를 바라는 수밖에...". 백성의 힘을 믿어보고 싶다는 정기준의 항복과도 같은 인정이었고, 또한 바람이었습니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은 세종의 주위에는 스산한 바람만이 불고 있었지요. 너무나 고독했고, 너무나 쓸쓸해 보였고, 임금의 길을 두고 오랜 시간 고뇌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길을 가기 위해 밤잠을 포기한 수십년의 시간, 글자를 백성들에게 주고, 세종은 더 고독하고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를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던 열정이 사라진 듯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일이 없을 때는 향원정에서 그 꽃을 본다는 마지막 대사는 희망을 보고 있다는 말과도 같았습니다. 수십년동안 피고 지고 반복했을 이름모를 들꽃, 백성은 그렇게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눈길과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보기에는 약하고 여리지만, 추위를 뚫고 나온 인동초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말입니다. 세종이 보고 있던 들꽃은 똘복이와 담이였습니다. 글자가 뿌린 씨앗은 또다른 똘복이와 담이, 또 그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는 그들의 역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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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줌마 2011.12.23 20:52
다들 죽는다니 마지막편은 보고 싶지 않아요ㅜㅜ
주말마다 참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였습니다.
한글의 훌륭함과 위대함을 다시 한번 새겼던 계기였고요~
일상 용어에 영어 좀 없앨수 없을까 싶습니다.~ -
ㅇㄹㅇㄹㄴ 2011.12.23 20:53
글 잘 읽었습니다. 어제 보았던 영상들이 눈에 아른거려요 ㅠㅠ
무휼이 개파이와 싸우다 죽었을땐 참으로 속상했습니다. 피디,작가분이 조금 야속하네요ㅎㅎ
그리고 님 글 중에 일제시대라는 말보다는 일제강점기로 바꾸어 쓰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
apple 2011.12.23 21:36
노란 들꽃을 두고 많은 분들이 노무현을 상징하는 것이라 말할 때
개인적으로는
언제있었는지도 모르게 이어져 와 굳센 생명력을 보여주는 노란 들꽃이라는 장치가
밀본의 천대 전략에도 불구하고 수백년의 세월을 거쳐 살아남아 끝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한글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뿌나 마지막회가 진짜로 가리키고 있는 반전미래는 세조 한명회의 시대가 아니라 채윤 소이 무휼 세종이 꿈꾸던 대로 한글이 보편화된 오늘날인 것 같다고도요. 그래서 진정한 해피엔딩이라고요.
블로거가 아니라서 이런 얘기를 직접 쓰고 싶어도 재주가 없어서..
뿌나 블로거들 중 누군가가 나와같은 생각을 해줬으면 했는데
역시 초록누리님 블로그는 언제나 대공감과 만족을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뿌나와 초록누리님 포스팅과 함께 한 시간들 참 즐거웠습니다^^
참 개인적으로 정기준이 처음으로 세종을 '이도'가 아니라'주상'으로 부르는 장면도
인상깊었어요. ㅎㅎ -
시엘 2011.12.23 22:24
한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는 한글을 쓰면서도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죠. 너무 익숙해져서.
또 요즘 영어 중심, 외국어 열풍으로 한글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구요.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따랐는지 기억해야 할 텐데요.
전 무휼이 죽은 것 때문에 머릿 속이 하얘져서 그 뒤론 뭔 일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세종 대왕은 또 외롭게 되셨네요.
무휼, 소이, 채윤... 적이었지만, 떼어버리기 힘든 상처였던 정기준까지 죽었으니까요.
그래서 미소 짓는 모습이 더 좋아보였습니다.
최측근은 잃었지만,
그래도 아직 사람들과 백성들이 있고, 원하던 한글을 반포하셨으니,
이젠 너무 괴로워하지 않고, 편히 주무실까 싶어서... -
김미정 2011.12.23 22:39
지금까지 초록누리님 글 잘보고있었지만 이번 포스팅은 동조하기 어렵네요.
억지스런 결말과 동굴에서의 지나치게 길고도 길면서..연기도 제대로 안되는 소이의 헐떡거림은
몰입이 전혀안되서 안타깝지도 않더군요. 이렇게 죽기로 했으면 빨리 죽어라싶을만큼.
연기도 연출도 막판에와서 형편없었어요.
쭉...잘보다가 막판에 작가가 바뀌었나싶을만큼 형편없었기에..동조하기 어렵네요. -
색연필 2011.12.23 22:50
각자 결말에 대한 생각이 참 다르더군요. 저는 먹먹하면서도 감동받았습니다. 정말 죽어 마땅한 죽음이 있었고 너무나 슬픈 죽음이 공존 했었지요. 아마 결말에서 이리 많은 인물들이 죽은 것은 없지 않았나 싶어요. 세종 품에 안겨 숨을 거둔 채윤의 모습은 아버지 품에 안긴 아들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저렸고 마지막까지 주군의 변함없는 모습을 보고싶어 했던 무휼의 죽음 또한...무휼의 죽음을 감지하고 화내는 세종의 모습에서도 참 많이 슬펐어요. 마지막에 홀로 남은 세종의 모습이 허전하긴 했지만 편해보이기도 했어요. 정말 많은 것에 감동 받고 많은 생각을 해 준 드라마인 것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한석규의 연기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까지입니다. 많은 명대사가 있지만 윗것들 싸움에 백성은 고통으로 감수한다는 대사는 너무나도 와 닿았지요. 한글의 소중함까지 다시 느낀 드라마였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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