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홀릭/신의'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12.11.23 '신의 8회(재)' 저를 가지십시오, 싸움은 제가 하겠습니다 (150)
  2. 2012.11.22 '신의 7회(재)' 마마, 이제 제가 아프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152)
  3. 2012.11.20 '신의 6회(재)' 왜 하필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181)
  4. 2012.11.18 '신의 5회(재)' 제 뒤에 계신 분, 제가 연모하는 분입니다 (120)
  5. 2012.11.18 '신의 4회(재)' 그 아이,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121)
2012.11.23 16:55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인생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아닐까. 경창군 마마의 죽음은 나의 긴 화두였던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

죽음과도 같은 삶,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누구를 위해 달려가야 하는지, 갈 길을 잃었던 나는 긴 시간 잠을 자고 있었다. 살기가 싫었고, 사는 것이 귀찮았고, 무엇보다 나를 살게 할 그 무엇을, 누구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내가 만든 얼음호수, 쇠사슬에 그렇게 나를 꽁꽁 묶어두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옥사에 갇혀 알았다. 얼음호수 그곳은 내가 나를 가둬둔 감옥이었음을... 그리고 나는 그 감옥을 나왔다. 내 스스로 옭아매었던 사슬을 끊고... 

 

비껴간 시선, 그래도 나는 임자를 봅니다 언제나... 

 

그 분은 내 시선을 그렇게 피했다. "당신이 죽였어? 저리가, 그 더러운 손 치워", 어린 경창군 마마의 가슴에 칼을 꽂은 나를 그 분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의원이기에 더더욱이나... 그 텅빈 눈을 보고 그래서 나는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분이 기철을 따라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싸웠을 것이다. 목숨을 내놓고서라도...설사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 분을 지키기 위해, 칼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했다. 그 분이... 무사로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칼을 던졌고,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것만이 그 분을 살릴 수 있었기에...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질투를 알았고, 가슴이 텅 비어버리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았고, 그리고 그 분을 연모하는 내 마음을 알았다. 목숨으로 지켜주고 싶은 분, 멀어져가는 그 분의 눈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을까?

그것으로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겐 가장 고통이었다. 역모죄로 끌려가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 분의 얼굴을 잊지않기 위해 내 가슴에 그렇게 새기고 있었다. 오래오래... 그리고 그 분과 나의 시선이 엇갈렸음을 그때 나는 알지못했다. 그 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얼음호수, 사슬을 끊어내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 잠에서...

 

어리신 선왕마마를 그렇게 보내드리고, 마음놓고 울지도 못했다. 뜨거운 피가 흘러내린다. "영아, 그자가 가르쳐줬어, 어찌하면 널 살릴 수 있을지, 너무 아프다 영아".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나를 살리겠다고 스스로 독을 드신 선왕마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눈물밖에 없다는 것이 미치게 한다.

힘들다. 살기 싫다. 자고 싶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그 분의 어깨에 기대 또다시 잠을 잘 수만 있다면, 미칠 것같은 내 마음을 잠재울 수 있을까? 그분의 약병, 조심히 꺼내본다. 노란 소국 한송이, 시들어가는 꽃이 그 분인양 나는 그렇게 그 분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든다. 편하게, 아주 편하게...  

꿈을 꾸었다. 처음으로 죽는다는 것이 두려웠다. 녹아내린 얼음호수에서 나는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죽고 싶었던 내가 살고자 발버둥을 친다. 살고 싶어졌다. 아니 죽자고 살아야 겠다.

 

주상전하의 또 다른 하명이 내려졌다. "어떻게 싸우는지 가르쳐줘요".내 팔을 가만히 잡고 말씀하시는 주상전하는 진심을 보여주었다. 의선이라는 말에 고개가 자동으로 들려진다. 내 온 몸의 신경은 온통 그 분의 안전만이 궁금했으니까...

"의선을 부원군에게 보낸 건 그것만이 의선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랬어요. 내곁에 있으면 그 분이 더 위험해지니까. 나는 힘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튀어나간다. "그 분 그 집에서 안전하십니까?". 그 분의 안전을 주상도 알지 못한다.(***여기서 공민왕과 최영의 의선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알 수 있죠. 최영은 곁에 딱 붙어있으라고, 그래야 지켜줄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좀 다르죠? 은수는 최영이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니까***) 

***이어지는 장면은 은수의 뒤를 쫓는 이민호 최영의 그윽한 눈빛에 홀라당 빠져드는 아련아련 장면이 이어졌지요. 전 이 장면을 엄청 좋아한답니다. 기철과 은수가 숲나들이를 갔을때 은수를 지켜보는 최영의 모습, 미치게 설레게 하고, 은수가 비틀거릴때 안아 올려주는 장면은 심장 벌렁벌렁이랍니다*** 

'임자, 언제나 임자가 먼저였습니다'. 그 분에게 나는 사내이고 싶었다

 

고백하건데 언제나 그 분이 먼저였다. 주상전하가 누구와 왜 싸워야 하는지 답을 알고 있다고 했을 때도,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을 때도, 나는 그 분이 먼저였다. 그 분이 안전한지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감옥을 탈출해 그 분께 먼저 달려갔던 마음, 나는 그것을 감히 그 분에 대한 연모라 말한다. 분명 연모였다. 하늘말로 사랑이라는 것, 나는 미치도록 그 분이 보고 싶은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 분께 달려간다. 오늘도 내일도... 

기철과 웃고 있는 그 분, 술에 취한 듯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고 걸음걸이도 비틀거린다. 기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이어지는 듯한 대화, 기철이 뭐가 좋은지 웃고 있다. 화가 치민다, 그것이 질투임을 나는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 분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내 가슴은 벅차게 뛰고 있었을 뿐.

그 분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노란 꽃, 그분이 내게 줬던 그 꽃이다. 내 발밑에도 그 분의 꽃은 그렇게 지천으로 피어 그 분 앞에 나서지 못하는 내 마음을 아프게 흔든다, 진한 꽃향기와 함께... 나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분도... '임자, 그 때 얼마나 임자 앞에 나타나고 싶었는지, 임자는 모를 겁니다. 얼마나 임자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는지 모를 겁니다. 나 여기 있다고, 내가 지켜주겠다고'. 

자운대감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살금살금 도망치는 그 분, 비틀거리는 모습이 넘어질 것만 같다. 기철의 눈을 피해 달아나느라 발을 헛디디고야 마는 덜렁이, 그 분을 가만히 안아본다. 버둥대는 그 분을 더 꼭 안아본다.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나 해 본 거예요. 나리, 미안해요", 버둥거리는 그 분을 안고 있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안고 싶었다. 미치게 보고 싶었다. '임자 몰래 그렇게 임자를 처음으로 안았습니다. 임자, 그 때 내 가슴은, 내 손은 임자를 연모하는 사내의 마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분을 받쳐주었던 사람이 기철이 아니었음에 두리번 거린다. '혹시 저를 찾고 계십니까?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그 분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말을 타고 기철과 함께 돌아가는 그 분을 오래 지켜만 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이 그 분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저를 가지십시오, 싸움은 제가 하습니다

 

주상은 말했다. 왜 싸우려고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왕이 되고 싶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이런 왕이라면 내 목숨 기꺼이 내놓고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목숨의 가치라는 것, 그것을 뼈저리게 배웠으니까. 경창군 마마의 목숨값으로 살리신 내 목숨값, 그것은 삶의 가치였다.

"저보고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답을 올리겠습니다. 왕은 싸우는 분이 아닙니다. 가지시는 분입니다. 우선 저를 가지십시오, 그러면 싸움은 제가 하겠습니다".  

이 싸움은 주상의 싸움만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이 싸움은 내 싸움이기도 하다. 그 분을 지키는 것, 지켜주겠다는 무사의 언약, 나는 그 분을 위해 싸우려 한다는 것을...

 

주상은 원의 호복과 변발을 벗어던지고 황룡포와 익선관을 썼고, 나는 무사 최영의 검을 들었다. 나를 가둔 감옥, 얼음호수의 쇠사슬이 녹았음을 본다. 나를 가두고 있던 알을 나는 온몸으로 깨고 나왔다. 나 최영은 그렇게 고려를, 그리고 그 분을 온 몸으로 안고 있었다, 내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내 심장이 다하는 그날까지...

 

***최영의 각성과 데미안을 비교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댓글로 의견교환 해보세요^^).

***숲에서 은수를 받쳐주었을 때 저는 최영이 왠지 은수를 사심으로 안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임자팬들의 의견은 어떤지요?

***오늘 신의병동 임자팬들을 위한 대장의 서비스는 수레창살 사이로 은수를 보는 쓸쓸함이 묻어있는 눈빛,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은수를 보며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 지킴의 눈빛되겠습니다. 은수에게만 고정된 눈빛, 그 때의 최영 마음이 어떠했는지 눈빛으로도 읽혀지죠. 한 여인만을 지켜보는 한남자의 마음의 깊이와 무게, 우리가 최영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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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2 10:06




'마마, 영입니다. 마마, 소인이 들려드린 하늘나라 그곳에 지금, 계십니까?'.

사람이 살다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7년전의 그 날처럼... 강화에서의 그 날은 송두리째 지우고 싶은 날이다. 아직도 눈에 생생한 경창군 마마, 그리고 마마의 마지막 말씀이 가슴을 저민다.

 "영아, 덕성부원군이 가르쳐줬어, 어찌하면 널 살릴 수 있는지... 나도 갈 수 있을까? 거기 하늘나라... 아프다 영아, 너무 아파..."

난 그렇게 경창군 마마를 보내드렸다. 더이상 아프시지 않게, 내손으로... 그것이 경창군 마마의 우달치에게 내렸던 마지막 명이자, 경창군 마마의 우달치로서의 내 마지막 임무였다. "이젠 제가 아프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줘. 너무 아퍼". 

 

 

역모의 함정에 빠졌다. 그리고...그 분을 내 심장에 함께 품었다

 

싸늘이 식어있는 화로, 언제 먹었는지 알 수 없는 빈그릇들, 구석구석 덮개처럼 쳐진 거미줄, 그런 곳에서 가여운 경창군마마는 병과 힘들게 싸우고 계셨다. 가슴이 미어진다. 이런 곳에 그 어린 선왕마마는 홀로 내던져졌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계셨을까...

'마마, 송구합니다, 참으로 송구합니다'.

의선은 종양이라는 알아들을 수없는 병명을 내렸다. 와야 할 대만이가 감감무소식이다. 마음이 급하다. 전의시로 의선의 도구를 가지러 마마의 거처를 나섰다. 손을 흔드는 그 분과 마마의 모습이 좋았다. 언제나 나를 웃게 하는 분, 이대로 마마와 의선을 모시고 아무도 모르는 어촌에서 낚시나 하고 살면... 안될까... 허황된 꿈인줄을 알면서도 그들의 환한 미소에는 아픔이 없었다. 마마도 그 분도, 그리고 나도...  

집을 에워싼 자객들, 의선과 경창군 마마가 위험하다, 한시바삐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위리안치중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경창군 마마의 목숨이 걸렸지 아니한가?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이쪽도 저쪽도 우리편이라기에는 애매하다는 말에 처음으로 마음에 쏙 드는 답을 하신다. "그럼 그냥 우리 내빼요".

 

***자객들을 처치하는 최영 이민호의 액션씬은 돈주고도 보고 싶은 장면이었습니다. 날렵하고 민첩한 몸놀림, 손가락 사이로 검잡이를 돌리는 모습은 진기에 가까웠죠. 잘때도 검을 잡고 잤다는 이민호, 검이 손에서 춤을 추었죠*** 

 

뒤따라 오는 자객들을 처치하기 위해 경창군 마마와 그 분을 먼저 보내야 했다. 그 분이시니까 마마를 잘 보살피실 것이다. 마마를 애처롭게 내려다 보던 그 분의 따스한 표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마를 지킬 것이라고 믿게 했으니까...

역시나 또 질문이 이어진다. "우리만 가라는 거예요? 왜요?", "한 번만이라도 '왜요?" 하지 말고 내가 하란대로 해봐요", 고삐를 의선의 손에 쥐어주고 뒤를 향해 달렸다. 검에 베어나가는 자객들, 튀기는 피, 나무 사이로 그 분의 시선이 느껴진다. 걱정스런 모습으로, 겁에 질린 모습으로 말을 돌려 가는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사람을 베는 모습을 그분에게 보여주는 것이 싫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시는 분... 

 

그 분의 어깨, 처음으로 나는 편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숲속의 폐가, 익숙한 내 말 냄새, 의선이 숨어있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인기척에 겁없이 단도를 들고 달려온다. 에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는지 고려에 있는 동안은 검술도 가르쳐야 할 것 같다. "누군지 묻지도 않고 찌릅니까? 제대로 찌를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찌르는게 아닙니다. 칼은 주인과 적을 가리지 못하니까요!".

마마가 힘겨운 듯 신음을 내며 끙끙앓고 계신다. 가슴이 아프다. 저 어린 몸이 얼마나 힘드신 건지... 그 분의 표정에서 나는 읽었다, 마마의 병이 심각하다는 것을... 오래 버티지 못하시리라는 것 또한.

 

번개빛에 내 얼굴에 묻은 피가 보였나 보다. 수건을 던져주며 시선을 외면하는 의선, 경창군 마마 곁에 앉으려는 나를 차갑게 밀어낸다. "저리가요, 애 깨우지 말고...". 애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벌컥 화를 냈지만, 힘들었을 마마를 자게 하려는 그 분의 마음이 읽혀져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마마를 내려다 보는 그 분의 표정이 어둡다. 마음이 무겁다. 밀려오는 불길한 예감, 의선의 표정이 마마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가여운 분,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의선, 꼭 좀 살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온 몸이 물 먹은 솜덩이같이 무겁게 쳐져간다. 난 그렇게 지쳐가고 있었다. 마마를 돌보다 잠든 의선이 잠이 깼나 보다. "이봐요. 어젯밤에 나 잔 뒤로 좀 잤어요?", 곁에 앉는 그 분을 피해 자리를 옮기니 또 따라와 앉는다. 어쩌라고!

"여기 기대고 자요, 이제부터는 내가 지켜줄테니까 여기 기대고 눈 좀 붙이라고", 사내더러 여인의 어깨에 기대고 자라니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인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고 말았다. 꿈결인듯 그분의 중얼중얼 소리가 자장가처럼 귓가를 맴돌고,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졸린 눈커풀을 나는 끝내 이기지 못하고 말았다. 잠결에 들리는 그 분의 목소리, "피냄새". 내게 배여있는 피냄새, 그 분의 말이 마음 한 구석을 쓰라리게 쓸고 지나감에도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쉬고 싶었다. 잠시라도, 아니 그 분의 어깨가 너무 편했다.  

 

지켜준다는 그 분의 말, 너무 익숙하다. 늘 내가 했던 말,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태어났다고도 생각했던 나는 누군가의 지킴을 받고, 그 분의 어깨에 기대 곯아 떨어지고 말았다. 맥을 짚어보고 열을 재는 그 분의 손길을 느끼면서...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던 것이... 그 분이어서였을까?

10년이고 평생이고 날이 밝기를 바라지 않았던 내 바람을 뒤로 하고, 어김없이 야속하게도 날이 밝았고, 잊고 싶은,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그 날은 시작되었다. 나와 그 분의 운명을 바꿔놓았던 그날이... 

 

 

거기서는 당신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돼,

같이 가면 안돼요? 같이 가요, 하늘세상으로... 나하고 같이

 

경창군 마마의 웃는 모습,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꿈에도 모른채 우리는 잠시 아픔을 잊고 웃을 수도 있었다. "너 이름이 모니? 니가 뭔데 날 아프게 하니?" 하늘나라의 주문, 그 짧은 시간이 마마에게 긴 행복으로 기억되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궁으로 돌아오라는 주석의 말, 따를 수 없었다. 상황은 급박했고 무엇보다 병 중인 경창군 마마를 두고 갈 수는 없는 일. 역모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주상께서는 내 진심을 알아주시리라. 그것이 전하를 감히 시험했던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전하가 내리신 임무를 소인 아직 마치지 못했습니다", 말뜻을 알아주실까?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영민하신 분이시니 말뜻을 알아채시리라. 그럼에도 아직 나는 주상전하의 대답을 알지 못한다. 왜 싸우려고 하시는지... 함께 할 수 있을 분인지 나역시 전하를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 분이라면 함께 대답을 찾을 수도 있으리라,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내나라 고려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주석과 함께 온 사냥꾼 놈이 강화현령에게 우리를 이끌었다. 나는 지금도 그 일을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 참담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내 손으로 경창군 마마를 그리 보내드리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 후로도 오래동안 경창군 마마와 그 분의 눈은 나를 미치게 슬프게 만들었다.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 가슴이 으깨지는 고통이 눈물이 되어 흘렀지만, 감히 경창군 마마의 고통에 비할 수 있을까? 나를 살리고자 한 마마의 마음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강화현령이 마련한 처소에 경창군 마마를 모시고도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뒤를 보고 또 돌아본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 그 때 마마의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켜드릴 수 있었을까?

마당에 심어져 있는 약초들, 그리고 그 분의 꽃, 나는 그 때까지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꽃이 누군가의 향기가 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노란 소국이 그 분에 대한 미치도록 깊은 그리움이 될 것임 또한, 알지 못했다. 꽃향기를 맡는 그 분의 모습, 오래도록 훔쳐보고 싶었지만, 마마가 걱정되어 그 분께 더 시간을 내어드릴 수 없었다. 

꽃 한송이를 내미는 그 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한 그 분은 그렇게 늘 해맑았다. 금새 잊어버리고, 금방 화내고, 뻑하면 울고, 그러나 더 쉽게 웃는 분.

"내 선물이에요. 꽃향기가 당신 피냄새를 좀 가려줄 것 같아서요". 꺄르르 웃으며 돌아서는 그 분, 미치게 한다. 임자 그거 모르지요, 임자의 향기는 세상 어느 꽃향기보다 향기롭다는 것을. 바닥에 떨어진 노란 꽃 한 송이, 그 분인양 품었다. 그 분이 준 약통 속에 고이고이, 내 심장에 그렇게 고이고이... 

***이민호와 김희선의 아름다운 비주얼은 축복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대장모습에 드라마 내용은 아파도 눈은 호사스러웠답니다***

 

마마가 계신 곳을 지키고 있는 사병들, 불안하다. 그런데도 난 조반을 먹는다고 좋아하는 그 분을 따라가고야 말았다. 불안한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도 마마를 살피러 들어가지 못했다. 그 시각 마마를 뵈러 들어갔다면, 마마가 독을 드신 일은 없었을까? 그렇게 끔찍한 고통속에 돌아가시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 마마의 심장에 칼을 꽂지않아도 되었을까? 평생 이 괴로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하늘세상으로 같이 가자는 그 분의 말을 선택했을까? 혼란스런 생각이 어지러이 일렁인다. 

 

역모였다, 모든 것이 나를 역모로 엮으려는 기철의 수작, 그것을 알면서도 난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주석이가 전하의 답을 가져오리라는...

역모라는 말에 그 분의 표정이 굳어진다. 마마를 데리고 하늘문으로 가겠다고, 가서 마마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보내달라는 의선,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하늘문이 열려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관군의 검문을 피해 그곳까지 무사히 가리라는 보장도 없고, 일일이 대꾸해줘야 아니 정말 미치고 환장이다.  

"같이 가면 안돼요? 당신 거기선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돼, 같이 가요 하늘세상으로... 나하고 같이",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전하와 약속한 무사 최영의 언약, 그 일을 마치면...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삼켜버린 내 대답을 그 분은 알았을까...(*은수가 함께 가자고 했을때 얼음처럼 굳어있던 최영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부분은 임자팬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하늘나라에 가면 환한 불빛이 길을 잃지 않게 마마를 지켜줄 겁니다.

거기서는 왕도 되시지 마시고 아픔같은 것 없기를...

 

보초를 서던 사병들이 보이지 않는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에 퍼져온다. 마마가 무사하신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좀 주무셨습니까?", 마마의 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또 아프셨습니까?".

마마의 몸이 이상하다. 피부가 뭉개지고 있는 발진, 독이다. 온몸의 장기들을 서서히 태워 고통스럽게 죽이는 화고독. 의선을 불렀지만 방법이 없다고 한다. 치밀어 오는 화를 참을 수가 없다. 의원이라매, 근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니, 알면서도 난 그렇게 화를 참지 못하고 답답함을 내지르고 말았다. 마마의 고통을 두 눈 뜨고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것에 미칠 것만 같아서. 

"영아, 그 자가 가르쳐줬어. 어떻게 하면 널 살릴 수 있는지" 나를 살리겠다고 그 어린 마마가 독을 스스로 드셨단다. 그 어리시고 가여운 분이, 나같은 놈을 살리겠다고...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가슴이 찢어진다. 고통스러워 하는 마마를 난 그렇게 보내드렸다. 내 손으로...

"마마, 하늘나라에는 말도 없는 마차들이 저혼자 달립니다. 아주 넓은 길이 그런 마차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이 빛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가시게 되면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길을 잃지 않으실 겁니다"...'마마 그곳에서는 부디 아프지 마시기를... 임금으로 태어나지도 말고, 의선님같은 엄마 아들로 태어나시기를...'. 

소나기처럼 뜨거운 눈물이 흘러 얼음장보다 차가운 슬픔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가슴에는 수만개의 송곳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 손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임자팬 눈에는 눈물이 줄줄, 가슴이 꽉 매여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창군을 안고 눈을 질끈 감아 진한 고통을 표현하는 장면은, 오열보다 더한 슬픔을 전합니다. 남자가 그렇게 무겁게 슬픔을 찍어내리는 것, 고통의 무게를 여백으로 남겨둘 줄 아는 이민호의 연기는 진짜 갑!*** 

 

'임자, 그날 임자의 차가운 말은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했습니다. "당신이 죽였어? 손대지마, 그 더러운 손 치워", 그리고 임자가 나를 보는 그 서늘한 눈... 설명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더 큰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으니까요'. "내가 하란대로 하라고! 내 옆에 있으라고!! 그래야 지켜줄 수 있다고 대체 몇번을 말해야 기억하겠습니까!!!" 

뒷걸음치며 달려가는 그분을 쫓았지만, 한 발 늦었다. 떨어지는 그 분을 받아드는 기철, 마마에게 독을 준 그 자 기철, 정녕 죽여야 할 놈이다. 내가 싸워야 하는 적, 전하가 왜 싸워야 하는지 나 역시 답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 놈 품에서 내리려고 바둥거리다 곁에 멍하니 서있는 의선, 내 눈은 그 분의 눈에 고정되고 있었다. 해야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이, 울컥울컥 솟구쳤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 분이 내 눈을 피한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내 가슴처럼 텅빈 하늘만 올려봐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그 분이 울고 있다는 것을... 나때문에 울고 있었음을 그 때 난 알지 못했다. 허허로운 바람만이 쏴아 하고 밀려들고 있었을 뿐.   

 

***개인적으로 7, 8회는 좋아하는 회차입니다. 요때부터 최영 이민호의 마력에 완전 홀딱 빠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은수의 김희선도 감정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하기도 했고요. 최영의 각성과 최영에 대한 은수의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고요.

화보처럼 아름다웠던 은수와의 노란 소국 에피소드, 부드러운 아빠미소, 두 눈을 질끈감으며 눈물 한 줄기를 흘리고는 경창군을 끌어안으며, 감정절제로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던 씬, 본방때도 그랬지만 다시봐도 눈이 퉁퉁 불어터지게 줄줄 눈물이 나서 한동안 감정 추스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더 진하게 아파오는 이유는 뭘까요?*** 

***가끔은 아픔을 더 절절하게 느끼고 싶을 때가 있지요. 경창군 마마를 보내는 영, 기철 앞에 무릎꿇고 은수에게 시선을 고정하다 은수가 고개를 돌리자 허허로운 웃음을 짓는 영, 방문 앞에서 은수의 그림자를 만져보고 긴 한 숨을 짓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회 은수를 기다리는 천혈 근처 나무아래에서의 영을 보며 저 혼자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故김현식님의 '내사랑 내곁에' 라는 노래에요.

숙제 내드립니다. 노래를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노래 꼭 찾아 들어보시고, 가삿말과 멜로디를 음미하시면서 영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가는데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줄 모르고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그리도 낯설고 멀기만한 지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곁에 있어줘
이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곁에 있어줘 

이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숙제는 댓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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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0 12:30




행복과 비극은 같이 붙어다니는 실과 바늘인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는 처음 행복이라는 것을 느껴 보았고, 동시에 평생 지울 수 없는 비극과 마주해야 했다. 내 손으로 어리신 경창군 마마를 보내드려야 했다. 그 분 눈 앞에서... 그리고 비극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분이 떠난 그 날까지... 처음으로 품어본 욕심, 심장이 터질 듯한 행복과 함께...

 

"제가 개인적으로... 저 뒤에 계신 분을 연모하기 때문에 왔다는 말입니다", 덕성부원군 기철은 뭐가 그렇게도 우스운지 숨이 꼴깍 넘어가게 웃어보였다. 만만치 않은 상대다. 쉽게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호기를 부려봤다. 죽기로 작정하고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내공도 제대로 모을 수 없고, 기철에게서 나오는 음산한 냉기는 내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하늘의원을 끌고 온 연유, 덕성부원군 드디어 속내를 밝힌다. 강화에 유배되어 있는 선왕마마의 병을 치료하라는 요구를 내건다. 하늘의원과 나, 그리고 전하까지 엮으려 함을 모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기철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그 분을 그곳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선왕마마를 보고 싶은 마음 또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폐위되고, 나를 유독 따르던 분, 가여운 선왕마마를 난 지켜드리지 못했다. 나의 의지와 선택과는 무관한 일이 고려왕이라는 자리였기에...

힘없는 나라, 욕지거리가 나는 그런 세상이었다. 

따라주는 술을 아무 의심없이 마시려는 분, 정말 대책없는 분이시다. 다행히 독은 없는 듯했다. 그 분은 그런 나를 힐책했지만, 의선이 고쳐줄 것이라는 말로 기철에게 그 분이 의선임을 강조했다.

성질 사나운 분, 기원의 욕지거리에 "지랄들을 하셔요" 거침없는 대꾸로 맞받아친다. 피식,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아무튼 못말리는 분이다. 그리고 무지 쎄다. 독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도 끄떡없는 그 분, 뒤에 알았지만 그 분은 술을 좋아했다. 그 분도 잊고 싶은 것이 많은 걸까? 내가 잠에 취해 살았듯, 그 분은 술에 취해 힘든 것을 잊고 싶었을까?  

 

왜 하필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강화로 가는 길, 그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 건 내 욕심이겠지. 그냥 넘기는 법이 없는 분, 혹이나 마음에 짐이 될까 덕성부원군 집에서 연모한다고 했던 말은 사정이 있어서 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역시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못들은 걸로 해주겠다면서도, 이미 들었다고 가슴팍을 한 대 치고는 저만치 달려가 버린다. 장난을 좋아하는 분, 그 순간 난 세상이 정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가슴만 쿵쾅쿵쾅, 내 심장에서 내는 천둥소리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세상은 정지되고 내 가슴은 쿵쾅거리는데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정말 미치겠다.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몰라 애궂은 대만이를 잡는다.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하늘의원 중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어쩌다가, 왜!!!".

대만이가 알 턱이 있나, 순진한 대만이 녀석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모른단다. '니가 알리가 있겠느냐...'. 길게 나오는 한숨, '임자, 왜 하필 임자였습니까?'.

(*이때 최영의 말을 유심히 들어야 할게 여인이라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그 분, 하늘의원, 의선이라는 말이 아닌 여인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은 것은, 최영이 은수를 여인으로 마음에 품었다는 것을 말하겠죠?). 

그리고 이 장면 전에 은수가 얼결에 최영의 팔을 잡았을  때, 반사적으로 은수의 팔을 꺾어 "검을 가진 자의 뒤에 다가서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장면은 심장은 벌렁거리더이다ㅎ. 뭘해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최영의 눈빛, 표정, 숨소리, 침 삼키는 모습까지, 하나도 놓치지 못하게 하는 이민호는 마성의 남자(내남자하자고 하면 임자팬들 거품물겠죠;;)

 

대만이를 그 분의 수술도구를 가져오라고 보내고, 우린 강화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만두로 요기를 시키고(그 분은 밥을 굶기면 잔소리가 심해지는 분이다), 나는 따라붙는 그림자가 있는지 살펴야 했다. 역시나 그냥 '네' 하는 법이 없다. 왜? 어딜? 꼬치꼬치 말끝마다 질문이다. 허겁지겁 만두를 싸서 나와 혼자 하늘문으로 가겠다고 길을 알려달라고 한다. 겁이 났으리라. 선왕마마를 고치지 못하면 삼문에 목을 댕강 잘라 걸겠다고 했으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나 연모한대매", 가슴이 서늘하게 아파온다. 연모하는 이를 어느 사내가 쉽게 보낼 수 있었을까? 다시는 만나지 못할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 같은 하늘,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살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쉽게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보고 싶으면 혼자라도 볼 수 있을테니...  

처음 말을 타보는 그 분은 겁이 나 한참을 말앞에서 심호흡만 내쉬었다. 성질이 뻗쳐온다. 강화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말에 앉혀주니 의외로 말타기를 쉽게 배운다. "말을 믿고 고삐를 말에게 맡겨봐요". 뭐든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 묻는게 많고, 금방 배우고, 금방 잊어버리고, 울다가도 금방 웃어버리고, 알 수 없는 분...

함께 말을 타고 가는 그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 끝까지 가고 싶었다. 그 분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가 이내 내 마음에 가득 들어찬다. 어린아이와 같은 웃음소리, 처음이다. 그 분을 모셔온 후 그토록 환하고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웃게 하고 싶다. 돌아가는 날까지 좋은 기억만 채워주고 싶다. 그리고 난 싸우고 있었다. 그대로 그 분과 세상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욕심과... 

***이장면에서 은수가 말타기를 무서워하자 최영이 그러지요. 나를 믿으라고, 떨어지면 받아주겠다고... 이때 은수가 말에서 미끈해서 이민호가 멋지게 한 손으로 은수를 척 낚아채서 자기 말에 태우는 모습을, 혼자서만 상상하며 흐뭇해 했답니다. 근데 이런 장면없이 가서 쪼매 야박한 제작진이었습니다.

 

"내 이름은 은수에요, 유은수"

***담요를 던져주고는 검집으로 최영 근처 한 장소를 콕 집어 잠자리를 정해주는 최영, 야밤에 단둘이 남사시럽게 딱붙어서 자라는 거냐는 말에, 시크하게 "멀리있으면 지키기가 힘이 듭니다", 은수가 고분고분 최영이 지정해 준 곳에 담요를 깔고 눕지요.

그런데 최영의 아픈 곳을 쿡쿡 찌르는 은수, "지키는 거 좋아해요? 직업병인가? 임금님도 지켜야 되고, 약속도 지켜야 되고, 나도 지켜야 하고...", 최영은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픈데, 그래서 은수의 말에 착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 최영이었지요*** 

"내 이름 알아요? 은수에요, 유은수", 그러고 보니 난 그 분의 이름도 알고 있지 못했다. 유. 은. 수... 그 분의 이름을 나직히 불러본다. 가슴에 새기듯 한 자 한 자, 유. 은. 수...

"결혼은 했어요?", 이어지는 그 분의 말이 가슴을 쿡쿡 찔러온다. "사람이나 베는 살인마를 누가 좋아하겠어", 그 분께 사람베는 모습만 보였구나(*개인적으로 이때 살인마라는 단어는 무지무지 싫었습니다, 살... 하다가 아차하는 모습으로 삼켜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했더랍니다*). 

"나도 혼인 안했어요. 화려한 싱글로 서울에서 살다가 그쪽에게 납치돼 왔어요.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장하시고, 지금쯤 외동딸래미 없어졌다고 우리엄마 앓아 누우셨겠다". 그 분에게도 소중한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 때야 생각했다.

그 분이 더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근처에 박쥐(화수인)가 있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하다. 그 분에 대한 말들이 부원군 기철에게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 입좀 다물고 자요". 

 

그 날 밤, 별 하나가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이 약속도 지켜줘요. 먼저 임금님 치료끝나고 하늘문에 나 데려다 줘요". 굿나잇! 잘자라는 하늘말 인사를 하며 돌아눕더니 이내 잠이 든다. 피곤한 하루, 그 분이 마음 편히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난 그 밤이 행복했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이 도려내지는 듯 찌릿찌릿 아파왔다. '돌려보내줘요, 데려다줘요' 그 분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메아리가 되어 가슴 한 복판을 쓸고 있었다.  

아무말도 못했다. 돌려 보내주겠다는 말, 내 마음은 돌아눕는 그분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안가면 안됩니까? 여기, 내 곁에 남으면 안됩니까?',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을 나는 그렇게 몇번이고 되뇌이고 있었다. 그 분이 준 아스피린을 씹으며...

*** 본방에서는 놓쳤는데 다시 보니 은수가 하늘문으로 데려다 달라는 약속 지켜달라는 말에 이민호의 표정에 슬픔 비슷한 침묵이 있더군요. 화수인이 은수의 곁으로 다가가자 나뭇가지를 던져 접근금지시키는 모습, 동작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리도 폼이 나는지 하악하악*** 

'그 날밤, 나는 감히 행복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귀찮은 박쥐(화수인)를 돌려보내고, 그 여자의 말을 곱씹어보면서... 그대는 정인이라 부르는데 저 여인은 그대를 살인자라 부르네, 그런데 저렇게 마음 편히 딱붙어 자는 건 뭐지?...

그 분, 나를 믿고 있는 것일까... 돌려 보내주겠다는 말, 지켜주겠다는 말, 아니 나를 믿고 있음일까...

곤히 잠든 그 분을 깨우고 싶었습니다. 더 말해달라고, 임자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임자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밤새 이야기해 달라고 깨우고 싶었습니다. 임자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버리는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유.은.수, 유.은.수...나는 그 밤 내내 임자의 이름만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 하나가 내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왜 하필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돌려 보내달라는 그 분의 말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소리에 실려온다. 삼켜버린 내 마음, 내 욕심을 쫓아내기 위해, 나는 그 날 밤 모닥불만 하염없이 휘젓고 있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고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 밤 알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새롭게 발견한 최영의 감정선이었습니다. 자는 은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은수를 돌려보내기 싫은 마음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고요해서 더 깊이가 느껴지는 이민호의 표정연기, 그러니 더더욱 빠져나오기가 힘드네요ㅠㅠ 대장은 알랑가? 우리 임자들 마음을***

 

***글 찾기 힘들다는 분들이 많아 발행글로 올리니 추천은 신경쓰시지 마시고, 마음 내키는대로 사뿐이 즈려밟고 가세요.

***경창군과의 해후, 그리고 벌어지는 사건은 다음회와 연결되는 내용이라 7회 리뷰에서 함께 정리할게요.

***신의 병동에서 알립니다. 마음 헛헛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멈칫하는 증세를 겪는 분들, 영스피린 두 알을 오독오독 씹어드시기 바랍니다. 꼭 소리가 나게 오독오독 씹어드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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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8 14:27




결국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안간힘을 다해 버티려고 했지만, 시야가 흐려지고 온몸에서 진액이 다 빠져나가 버린 마른짚단처럼... 

죽음의 문턱, 나는 온몸으로 그곳을 향해 질주했다. 그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내나라 고려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달라는 새 왕의 간청도, 왕비마마의 살라는 명도, 눈물이 그렁해서 죽지말라던 그 분도, 돌려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지켜주겠다는 언약도, 이대로 눈 감으면 모든 것이 끝, 나는 그렇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싸우고 있었다. 

꽁꽁 얼어 죽어버린 심장이 소리를 낸다. 희미하게 그 분의 소리가 얼어 버린 내 심장을 깨운다. "나 지켜준대매". 멈춰있던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살아났고, 내 심장과 함께 겨울 속에 살고 있던 내 마음도 그렇게 살아나고 있었다. 얼어버린 봄이 녹고, 나는 그렇게 봄을 맞았다. 내 심장이 돼버린 그분과 함께... 

 

"지금 쓰러져 버리면 내 마지막 기회가 날아가 버린다구!"

 

시야가 흐려지고 기운이 빠져나가는 일이 하루에도 몇번씩,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 분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지기도 하고, 기둥에 몸을 기대 우달치 애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잠시 혼절을 했다가 깨나기도 했다.

의식을 놓을 때마다 아버지는 얼음호수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돌려보내기 위함이었음을, 한참 후에야 나는 알았다.

아버지는 물으신다. "찾았느냐?", 아직 찾지 못하였다는 나를 아버지는 그렇게 돌려 보낸다. 가서 더 찾아보라고... 찾을 때까지 오지 말라고... 그래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곳에 있다가 온다. 그렇게 나는 산다는 것이 싫고 귀찮고,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음호수 낚시터는 최영의 내재적인 의식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고자 하는 마음, 세상을 향한 미련을 버리고 마음의 빗장을 걸어버린 최영의 의식*** 

기철 그 자는 강했다. 그 자를 본 순간 직감했다. '힘들겠다'. 그러나 쓰러질 수 없었다. 아니 쓰러져서는 안됐다. 기철 그 자를 막지 못하면, 내 마지막 기회가 날아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최영의 마지막 기회는 처음에는 살아야 하는 이유, 명분을 찾았느냐는 아버지의 질문과 연관지어 생각했었는데, 은수를 지켜준다는 약속, 돌려보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나 재해석이 되더라고요. 임자팬의 의견은 어떠한지요? 매희를 지키지 못했던 최영이 은수를 지난 번에 돌려보낼 기회를 놓친 것을 자책하는 중의적인 의미가 아니었나 싶어서 말이죠)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하늘의원에 대한 소문이 궁내는 물론 저자에 쫙 퍼졌다. 입단속 제대로 하지 못한 주석이를 늘씬하게 패줬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한시가 급하다. 그 분을 하늘문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욱씬욱씬 복부의 통증이 느껴지지만, 이를 악물고 전의시를 항했다.

애들 몇을 붙여줄테니 먼저 떠나라고 짐을 꾸리라하니, 그럼그렇지 한 번에 '네'하는 법이 없는 분이다. 조잘조잘 정말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시끄러운 분, 임금님 빽이 있다고 도자기를 자랑하는 철딱서니 없는 분, 마음은 급해 미치겠는데 천하태평이다. '임자, 임자가 지금 위험하다고!!'.  

의선이라는 직함으로 전의시의 보호를 받게 하라는 어명이 떨어졌다는 말에 온몸에 힘이 빠진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그 분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보이고 싶지않았는데... 아니 이렇게 쓰러져서는 안되는데, 쓰러져도 그 분을 보내드린 후의 일이어야 했는데, 그러나 내 몸은 내 마음을 읽지 못하였다.

 

장어의에게 물으니 일각을 혼절했다고 한다.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겼다는데, 누워있을 시간이 내겐 없었다. 그 분이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놈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화공을 쓰는 여인이 전의시까지 침입했다.

전의시에 침입자가 있었다는 소리에 의선의 안위가 걱정된 임금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밀지의 함정을 전하께 보고하니 고민이 짙어지는 모양이다. 기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힘없는 왕의 심중이 읽혀져 마음이 무거워 온다. 알아서 판단하시라 최대한 시큰둥하게 대답을 마쳤다. '나 좀 놓아달라고요!'.  

임금은 내 시큰둥한 기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의선을 붙잡으라 명한 것이 전하였으니까... 그런 내게 임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온다. 궁을 나가려는 이유에 대해...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했고 그 한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는 말이 고맙지가 않다.

그게 그 분에 대한 마음의 시작이었음을, 언제나 전하보다 그 분이 먼저였던 마음때문이었음을 한참후에야 알았지만, 그 때는 고려무사의 언약의 값, 내 목숨값의 자존심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적월대 스승님의 죽음, 성왕의 패악에 대해 남 이야기 하듯 그렇게 담담하게 들려드렸다. 전하의 민망하고 미안해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여리신 분, 염치가 있는 분, 그간 봐 온 임금들 중에는 가장 영민한 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내린 명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분이었다. '왜 싸워야 하는지...' 그 답을 가져오란다. 떠나기 힘들겠다.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분께 빚이 있습니다

 

임무를 마치면 미련없이 궁을 나서겠다고, 천혈이 다시 열리기 까지 낚시나 하며 지내겠노라는 대답을 하며, 흥분하고 있는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언제 열릴지 모를 천혈, 그 분을 그 때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때문이었을까? 마음으로만 품어본 내 욕심이 그 분을 위험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 빚은 그렇게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 분을 품은 마음과 함께.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했다. 그 분에게 진 빚은 목숨으로 갚을 수 없었다.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 빚이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평생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다. 왕이 가고 난 후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 몸은 죽음을 향해 미친듯 달려가고 있었다. 꿈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매희, 그 아이가 보였다. 너로구나, 정말 너로구나... 겨우 갓 스물이 넘은 나이, 우리는 행복했다. 매 순간 죽음과 마주해야 했던 밤의 부대, 우리의 밤은 피로 칼을 물들였지만, 너와 나의 낮은 그리도 밝고 행복했다. 함께 있음에 든든했고, 두렵지 않았고, 사는 이유였던 너. 

'함께 있자', 그러나 그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사라져 간다. 흔적도 없이, 행복한 미소만 남긴채... 그 아이를 따라가려는 나를 붙드는 소리, 나를 깨우는 목소리, 그분의 울먹이는 소리가 아득하게 먼곳에서 들려왔다. 점점 커진다. "나 지켜준대매, 옆에 딱 붙어있으라매...".

그 아이가 나를 놓았다는 것을, 그 아이를 이제서야 놓아주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긴 겨울이 끝났음 또한...  

 

"제가 연모하는 분입니다"

 

왕의 의중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이다. 검을 들고 적월대가 되고, 우달치가 되어서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던 어명을 거역하고, 그분을 향해 달려갔다. 나를 살게 한 사람, 내가 지켜줘야 하는 그 분을 향해...

 

"최씨집안의 영이 덕성부원군을 뵈러왔다", 우달치 대장, 귀찮기만 했던 족쇄를 던져버렸다. 내 눈은 그 분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기철 일당과 싸우는 이민호의 액션은 오매 멋져부러 자체였습니다. 우월한 기럭지, 민첩한 몸놀림, 고요하지만 매와 같은 눈빛, 이민호의 액션연기는 두말하면 입아프게 멋집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대만이 신호를 보내왔다, 찾았다는 신호다. 문 앞, 왜 그랬을까? 처음으로 내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여주기 싫었다. 그 분이 걱정하는 것이 싫다. (천음자의 음공에 입과 귀에서 피가 난 최영, 입술의 피를 쓰윽 닦는 이민호의 모습은, 좀 거시기한 말로 진짜 섹시터져~였답니다. 피를 닦는 모습도 화보라고나 할까...에고고 부끄부끄ㅎ)  

임자다. 재빠르게 그 분의 모습을 살폈다. 아무일 없는 듯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임자, 임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이 얼마나 길었는지 아십니까? 내 평생 이렇게 긴 시간은 없었을 겁니다'.

순간 멈칫했다. 그 분을 보고 하마터면 와락 안을 뻔했다. 날 보자 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열이 내렸다고... '임자, 그거 아십니까? 그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뜨겁게 뛰고 있었는지'.  

덕성부원군 기철, 막아서는 그자에게 난, 난, 내 마음을 말해버렸다. "개인적이라는 말뜻 모르십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제 뒤에 계신 분을 연모하기 때문에 왔단 말입니다. 연모하는 여인이 한밤중에 끌려가 낯선 곳에 갇혀있다 하는데 그 어떤 사내가 손놓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달려왔습니다".  

'임자, 그것 아십니까? 연모한다는 그 말, 내 진심이었다는 것... 임자를 감히 마음에 품습니다. 홀로... 그래서 힘이 듭니다'.

그분을 보내주겠다는 약속, 지켜주겠다는 언약과 그 분을 품은 내 마음과의 힘든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건만, 내 심장은 태양보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은 4회, 5회 두 편 올렸습니다. 4회는 이전글로 이동해서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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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8 14:25




처음이다. 스승님과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이... 누구에게도 밀하고 싶지 않았던 그 어느 봄 그 날, 지금도 눈을 뜨면 너무 생생해서 보낼 수가 없는 그들...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를...

나는 그로부터 쭉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야 살아졌다. 잠을 자는 동안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가끔 꿈속에서 그들을 만나 함께 있으면 안되느냐고 간청을 해보지만, 스승님과 그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만 지을 뿐이다. 이젠 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스승님과 그 아이, 그 이유를 나는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다. 스승님과 그 아이는 오래전에 나를 놓아주었다는 것을...  

그러나 여전히 나는 그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 함께 했던 시간들, 내나라 고려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도 좋았던,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던 뜨거움을 어디서 무엇으로 다시 채울 수 있을까? 내 얼어붙은 심장은 그렇게 오랜시간 꽁꽁 얼고 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그렇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은 왕,

죽을 때까지 입밖으로 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으시면 납득하시겠습니까?

그 분께 빚이 있습니다.

 

왕비마마의 부르심을 받고 왕비마마 처소로 간 나는 뜻밖의 말에 멍해 있었다. 똑같은 말, 그 분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죽지마라, 그대 왕비의 명이다", 그분도 같은 말을 했다. "죽지마요".

 

***본방에서 놓쳤던 최영의 감정선이 다시 보니 달리 해석이 되더군요. 노국공주가 최영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열을 재자 얼음땡되어서 긴장하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노국공주와 최영, 공민왕을 삼각관계로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었거든요. 그런데 노국공주의 말에 멍해했던 것은 은수의 '죽지마요"라는 말이 오버랩되어서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볼수록 이민호의 연기는 깊이와 캐릭터 해석에 혼신을 다했다는 생각에 감탄 또 감탄하게 되네요. 4회 5회에 걸쳐서 나오는 매희와의 회상씬(최영의 꿈속)을 보면서는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정말 중증입니다. 미쳤나 봅니다ㅠㅠ)  

선혜정 독살 현장에서 나온 밀지, 기철의 함정임이 분명하다.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지만, 기철이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미이다. 새 왕에게 반역을 기도하는 자들을 처리했다는 명분을 얻고 새 왕을 좌지우지하려는 속셈이다. 판단은 왕의 몫. 기철에게 무릎을 꿇든지 싸우든지 둘 중 하나. 나에게 물어보면 내 대답은 당연히 싸움이다. 허나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궁을 떠나기 위해서는 관여해서는 안된다.

밀지의 비밀, 기철의 함정이다. 선혜정의 중신들을 독살하고 생색을 내 새왕을 수중에 넣으려 함이리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새왕이 알아서 할 일이고... 밀지의 비밀을 밝혔으니 임무는 끝이라고 궁을 나가도 좋다는 윤허를 기다리는 나에게, 새 왕은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고 허락하지 않는다.  

영민한 왕이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는 알려줬지만,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않았음에 대한 지적이리라. 전하는 나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전하와 내가 같은 답을 구할 수 있을까... 같은 길을 갈 수 있을까... 조금씩 조금씩 전하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궁을 나가려는 이유를 임금은 벗으로 청한다고 했다. 왜였을까? 그냥 왕을 설득시키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었지만, 내가 떠난 후 남을 내 형제와도 같은 우달치 아이들을 부탁하고 싶었다. 그 날 매희를 지키고 가버린 내 스승님처럼 그렇게 나는 우달치 애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을 성왕처럼 대하지 말아달라는, 왕을 지키는 우달치들을 전하도 지켜달라는,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간청이었다. 

 

"신은 적월대 대원이었습니다. 내나라 고려를 지키겠다는 뜻 하나로 모인 부대, 아비를 잃은 후 떠돌던 나를 받아준 대장은 내 두 번째 아비였고, 대원들은 내 형제, 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아이, 차마 이름을 부르기도 힘이 드는 매희, 그 아이는 나의 동지였고, 나의 나의 첫 연정이었습니다. 지켜줘야 하는 사람, 꼭 지켜줘야 했던 그 아이를 나는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는데도, 나는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충혜왕의 패악에 목숨으로 적월대를 지킨 스승님, 나는 검을 들지 못했다. 수백번도 더 생각한다. 매희를 농락하는 왕을 향해 검을 빼지 않을 것이 잘한 것이었을까? 그날 매희를 지켰어야 했던 것일까? 그랬더라면 나는 이렇게 죽은 듯이 살아가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기다리고 있는 적월대 대원들을 생각하라는 스승님의 유언에, 어렸던 나는 사람같지도 않은 왕이라는 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내 목숨 하나 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았으나,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적월대 내 형제 누이들을 개죽음으로 몰 수는 없었다. 내 눈에서는 분노가 흘렀고, 분노는 차디찬 피가 되어 무릎에 고이고 있었다. 왕에게 충성은 언약하며 무릎을 꿇은 그 자리에서 나는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것만이 대원들을 지킬 수 있었기에... 그리고 그날 나는 그들과 함께 죽었다.

 

그 아이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매희가 떠났다. "뒤는 걱정마, 언제나 니 뒤엔 내가 있으니까", 그 아이는 내 뒤에 항상 있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절대로 내 눈밖에 벗어나지 마라, 그래야 내가 널 지켜주지", 그 아이와의 약속을 나도... 지키지 못했다.  

내게는 봄이 없다. 그날 성상께서 부르신 그 어느 봄날과 함께 내게 봄도 함께 가버렸다. 스승님과 매희 그아이와 함께 내 봄도... 그래서 나는 늘 겨울 속에 산다. 매서운 바람이 잦아들고 봄이 오면 온몸에 한기를 느낀다. 잔인한 봄이 오고, 가고, 또 오고, 또 가지만, 나는 봄을 거부한다. 그렇게 내 삶에서 나는 봄을 버렸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겨울 꽁꽁 언 호수에서 산다. 봄이 두렵다. 그로부터 7년 나는 겨울보다 추운 봄의 계절에 살고 있었다. 매희야, 나 너무 춥다...  

들꽃이 만발한 봄 어느 날 너의 채찍이 나를 향해 날아오던 그 들판, 나는 언제나 그곳에서 너를 만난다. 잡으려고 하면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너를 붙잡기 위해, 나는 그 들판 언저리를 매일 서성인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네가 서있을 것만 같아서... 봄바람처럼 따뜻한 너의 숨결, 꽃처럼 아름다운 너의 미소가 멀어져 간다. 어제는 그제보다 더 멀리, 오늘은 어제보다 더 멀리 그렇게 멀어져만 가는 너...

검에 매달아놓은 너의 두건, 너를 만지고 느끼고 함께 숨쉬고, 그래서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언제나 네가 내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너를 보내지 못하는 것이 혹이나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혼자있을때 가만히 너의 두건을 만져본다. 대답없는 너, 매희야 듣고 있지? ... 보고 있지?  

그리고... 매희야, 알고 있지? 그 분을 쫓고 있는 내 모습을... 그 분을 향해 달려가는 있는 내 마음을... 

 

나 그분에게 빚을 졌다. 그 분 돌려보내야 겠다. 그래서 살아야 겠다. 그 분 지켜주기로 한 내 언약, 매희 너는 지키지 못했지만, 그분은 꼭 지켜줘야겠다. 매희 너라도 그렇게 했으리라는 것, 그렇게 하라는 너의 미소가 허락임을, 나 믿어도 되지?

너무 오랫동안 너를 붙잡고 놓아주질 못했다. 그것이 나를 위함이라는 것, 내 미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와 스승님을 편히 보내지 못했다. 이젠 너를 놓아주려 한다. 나 그래도 될까?

 

*** 최영의 과거를 하나로 묶어 정리하다보니 4회 5회 내용이 섞여있습니다. 4회와 5회 리뷰를 함께 올께 올리니 어느 것을 먼저 읽으셔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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