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드라마/선덕여왕'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09.07.22 선덕여왕: 그들만의 정치 이야기, 고현정 죽이기 우려된다 (4)
  2. 2009.07.16 선덕여왕: 웃기는 과학이야기로 본 미실의 두려움 (2)
  3. 2009.07.09 선덕여왕: 불편한 억지설정, 시청자들 우롱하지마라 (4)
  4. 2009.06.30 선덕여왕: 감잡은 이요원, 흔들리지 마라
  5. 2009.06.27 선덕여왕: 너무 커버린 김유신과 전혀 크지 않은 덕만, 문제있다 (4)
2009. 7. 22. 11:03





지리한 장마같았던 선덕여왕이 덕만의 출생에 대한 비밀의 열쇠가 풀리면서 일단 비는 멈춘 것 같아보인다. 
덕만은 어머니 소화가 남긴 소엽도를 통해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한걸음 다가섰다. 17,18회의 내용은 소엽도를 중심으로 덕만의 출생의 비밀 밝히기였다. 소엽도가 진흥대제가 남긴 유품임을 알게 된 덕만은 자신이 황실의 물건을 가지고 있게 된 연유를 풀고자 모험을 시도한다. 소엽도를 가지고 있다며 자신의 소엽도를 그려 왕과 만나고자 한다는 상소를 죽방과 고도를 시켜 왕이 읽는 장계 속에 몰래 넣었던 것이다. 덕만이 몰래 올린 상소는 을제(신구)대등의 손에 들어가면서 덕만은 위험에 처하고 다행히 알천랑의 도움으로 덕만은 현장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덕만이 미실의 그림에서 소엽도를 보았다며 진흥대제의 소엽도에 대해 묻자, 천명은 소엽도에 대한 행방을 추적하다가 아버지 진평왕과 어머니로부터 다른 대답을 듣고 의문을 가진다. 소엽도, 소화, 문노, 칠숙이 사라진 날이 자신이 태어난 그날에 벌어진 일들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날의 사료를 뒤지다가 천명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에 대한 계시록을 찾게 된다.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쌍둥이였음을 알게 되었으나 나머지 쌍둥이가 여자아이였다는 말에 덕만이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버린다. 그러나 유신랑이 덕만이 여인이었음을 밝히면서 모든 의문을 풀고 덕만이 나머지 쌍둥이임을 알게된다(유신랑은 지난 전투에서 쓰러진 덕만을 보살피던 중에 덕만이 여자였음을 알게 되지 않았나 추축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18회분량의 선덕여왕을 시청해 오면서 몇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여전히 극의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하고 있음이 보였다. 선덕여왕은 그 시대적 인물들의 설정 오류로 이미 정통역사극은 될 수 없고, 그렇다고 황당무계한 퓨전사극이라 하기에는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들이 실제로 등장하고 있기 대문에 퓨전사극에도 분류되기는 힘들다. 사실과는 너무 먼 극의 스토리로 우리 역사상 첫 여왕이라는 선덕여왕을 재조명한다는 역사적 시각도 설득력을 잃어버렸다. 
선덕여왕은 미실과 선덕여왕의 두 축을 중심으로 한 권력쟁취를 위한 역사를 참조한 허구적인 정치사극이다. 그러나 이 두축의 균형은 드라마 초반부터 갖추지 못했다. 드라마의 흐름이 미실, 즉 고현정을 중심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극의 전개가 한사람에게 지나치게 편중되다 보니 억지가 많아지고 부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은 당연하게 되었다. 고현정은 혼자서 선덕여왕을 끌고 가려니 힘이 부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몇십년이 흘러도 같은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현정을 앞세운 드라마가 고현정 죽이기로 흘러갈 우려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덕만, 천명, 유신이 미실에 맞설 적수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혼자 공놀이 하고 있는 고현정에게는 라이벌이 필요한데 그 라이벌이 될 인물들에게 무게를 실어주지 않다보니 고현정의 카리스마 만들기가 오히려 고현정 죽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덕만은 천명과 유신랑과 짜고 첩자로 미실에게 접근하여 소싯적 자신이 읽었던 책을 읽어주러 소위 밤마실을 다녔다. 그때마다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미실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미실은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 이번회에서 그 그림이 밝혀졌다. 바로 소엽도로 호랑이를 죽인 진흥대제의 무용담을 담은 정밀화였다. 
그런데 그림을 본 덕만은 또다시 어색하기 그지없는 멍때린 장면으로 그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덩달아 나도 그림을 보니 소엽도, 덕만이 사막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기적의 소엽도가 호리호리한 풍운아의 목에 걸려 날리고 있지 않는가?
미실이 왜 진흥대제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그 깊은(?) 뜻이 천명에게 진흥대제의 '사람을 얻는 자가 시대의 주인이 된다' 말을 일깨워 주면서 천명의 사람을 치려한다고 위협하기 위함이었다지만, 덕만의 소엽도에 대한 비밀의 열쇠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터였다.

왜 미실인가? 덕만의 출생에 대한 비밀의 열쇠를 왜 미실을 통해 전해야만 했는지 생각해보니 제작진이 지나치게 고현정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의 중심에 미실을 두고 있다보니 소엽도의 열쇠마저 미실에게서 흘리는 것을 보며 미실, 즉 고현정을 지나치게 많이 부각시키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보이는 것이다.

MBC는 대하사극 드라마의 자존심을 고현정이라는 배우에 걸었다. 선덕여왕은 고현정을 내세운 사극이다. 첫회부터 고현정을 아역배우를 쓰지 않고 진흥대제(이순재)의 곁을 지키는 소녀(?)로 분장시켜 내보낸 이유도 첫방부터 고현정을 통해 시청자를 확보하려는 수였다. 그런데 그게 무리수였기 때문에 미실의 드라마상 나이와 전혀 맞지않는 고현정의 외모가 여전히 시비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미실의 나이를 계산하느라 골머리를 쓰다가 지금은 포기해 버렸지만..
이제는 고현정의 외모가 아니라 드라마에서의 무게에 대해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모든 걸 다 꿰뜷고 있는 천년묵은 여우같은 미실을 애송이 삼총사가 대적하기에는 확실히 무리다. 그들 삼총사는 도원결의를 흉내낸 우중결의를 했다. 삼총사 손 하나씩 포개면서 천명이 맹세의 서약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아자아자 화이팅!'하고 외쳐버려 쫓겨가는 가야인의 서러움을 목도하는 삼총사의 굳은 결의 분위기가 깨져버렸지만..
그런데 미실에게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바닥이 나버렸다. "두려우냐?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두가지다, 도망가거나 분노하는 것" 이 대사 벌써 몇번째로 보내주고 있는지 제작진을 알기나 할까? 미실 입으로도 또 숱하게 천명이나 덕만이 회상하면서. 그러다보니 억지로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세뇌시키고 있다는 느낌까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 삼총사에게는 두려운 미실이지만 시청자는 여전히 두렵지 않은 미실이다. 그녀의 카리스마도 바닥을 보이고 새로운 대사공략의 묘수도 못 찾아서 그런 모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육참골단으로 3회분을 했고, 사다함의 매화는 4회분량을 차지했다. 사람을 얻는자가 시대의 주인이 된다는 드라마 타이틀에 걸린 말도 수없이 반복되었고 여기에 인력구(人力口) 같은 양념까지 첨가하며 2회분을 더했다.

현재 미실에게는 강렬한 정치적 대사나 카리스마 혹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균형이다. 미실에게 독점되어 있는 힘을 덕만, 천명, 유신의 삼총사에게 나눠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번회의 우중결의가 '애송이 삼총사'를 '울트라 파워 삼총사'로 만들어 갈지 아니면 다시 미실에게 휘둘리는 모습으로 몇회를 또다시 질질 끌어갈지 모르겠지만 현시점에서는 삼총사의 변화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런 이유로 덕만의 출생에 대한 비밀은 빨리 풀려야 한다. 출생의 비밀을 더 연장하다가는 미실과 대적하는 선덕여왕이 아니라 신라의 소공녀 이야기가 되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비밀이라는 것은 매력적인 드라마의 장치이다. 그러나 비밀도 지나치게 끌다보면 답답해진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방향의 급속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덕만의 신분을 하루 빨리 회복시켜 진정 미실을 압박하는 스토리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실도 변화하고 더 강한 모습으로 이들 삼총사와 대결하는 모습으로 미실을 더욱 미실답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두려움, 그게 미실이다'는 고현정의 카리스마에 더 이상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청자는 미실이 두렵지 않다. 미실을 두려워 하는 이들은 멍때리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이들 삼총사 뿐이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두려움을 세뇌시키고 있을 뿐이다. 미실의 두려움을 세뇌시키는 보조적인 장치로 썼던 사다함의 매화 약발은 이제 끝나버렸다.

그러면 무엇으로 미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이들 삼총사를 강한 인물로 만들어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하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드라마가 간과하고 있는 백성, 즉 민중들의 등장이다.
나는 덕만이 미실에게 밤마실 다니면서 나눈 정치에 관한 선문답 같은 대화를 통해 백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혹자는 덕만은 백성에게서, 미실은 권력을 통해서 정치를 펴는 상반적인 인물이라고 분석을 했지만 드라마가 보여 준 덕만의 정치의식 성장은 부분은 미흡하다. 미실이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두려움이라는 부분 역시 너무 미흡하다.
이는 드라마가 그 백성, 즉 민초들을 간과해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번 가야인들의 강제 이주를 통해 보여줄 것을 기대했던 나는 또다시 실망만 하게 되었다. 단지 우중맹세 따위의 도원결의 흉내에 웃음만 나왔을 뿐이다. 

김유신은 가야 출신의 화랑이고 아버지 김서현의 가야인들의 정치 지도자이다. 그런데 집안의 이를 위해 가야인들의 이주에 이렇게 소극적인 분노만을 보여주었다. 김서현의 정치적인 입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유신이 이끄는 낭도들은 어떠한가? 화랑의 낭도들은 부족연합국인 신라에서는 그 지방 양민들의 자제들로 구성되었다. 김유신의 낭도들은 이들 가야국 출신들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덕만과 죽방, 고도를 제외하고.
그런데 이들 낭도들은 아무런 분노도 없었고, 울고 불고 할만한 사연도, 사람도 없었다. 이들 낭도 중에 한명도 가족들이 이주하지 않았단 말인가? 가야인들이 강제로 이주당하던 날 이들 낭도들은 유신이 안됐다는 말만 할 뿐 히히덕 거리며 닭싸움을 하고 있었다. 군대 내무반 같은 분위기를 일삼는 이들 낭도들은 코믹을 위한 엑스트라 역할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낭도들은 오늘날 군대처럼 격리된 집단생활을 하고 있지만 화랑은 격리집단이 아니었다. 일정기간 필요에 의해 수련을 하며 생업도 하던 조직이었다.

덕만이 낭도로 들어갔을 때 기대했던 것은 군대 내무반의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이들의 삶을 통해 민초들의 삶과 밀접하게 엮이면서 덕만의 정치의식, 혹은 미실의 절대권력에 대한 반정치의식의 성장을 기대했었다. 덕만이 경험했다는 어린 시절은 여곽에서 심부름하면서 틈틈이 문물에 대해 정보를 얻고 공부하는 정도였다. 소화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도망쳐야 했고. 이역만리 외국생활에서도 민초들의 삶이 덕만과 밀접하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계림으로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김유신의 용화낭도라는 현실과 격리된 일종의 군대 내무반으로 편입돼 버렸다.
신라는 앞으로 덕만이 다스려야 할 나라이다. 그런데 덕만은 이들 민초들과 아무런 교류가 없다. 하다못해 저잣거리의 백성이나 낭도들의 실제 가정 모습도 없다.

드라마가 놓친 것은 바로 죽방과 고도라는 인물의 역할이다. 이들을 낭도에 편입시키면서 덕만이 백성들의 삶을 엿보면서 미실의 정치에 공포정치에 반발하고, 정치의식을 배울 수 있었던 통로를 간과해 버린 것이다. 죽방과 고도를 백성들의 실제 삶 속에 던져놓았다면 이문식이라는 걸쭉한 배우를 통해 덕만이 간접, 혹은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민중들의 생각을 보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민중들과의 소통통로가 될 수 있었을 이들을 기회주의적인 도둑놈들로 그리면서 덕만의 백성들과의 소통 창구의 길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화를 이역만리 타클라마칸이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 숨어살면서 민초들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주었다면 죽방과 고도의 역할에 대한 미련도 작겠지만 그렇지 못했으니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따라서 선덕여왕은 애초에 미실의 절대권력에 반하여 등극하는 여왕이 아니라 혈족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되는 반쪽짜리 여왕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민중들과 위정자의 소통은 중요한 덕목이다. 미실이 백성을 힘으로 누르려 한 그 두려움의 실체도 이 드라마에서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단지 미실이 소문냈다는 '미실은 어린아이도 잡아먹는다'는 입소문 뿐이었다. 눈으로 확인하는 백성들의 분노, 미실의 공포정치가 어떤 식으로 행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단지 소문으로만 보여줄 뿐이다. 드라마에 나와야 할 제3의 주인공인 백성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극들에서 왜 저잣거리나 양민들의 고달픈 현실을 주인공과 결부시켜 보여줬는가? 그 이유는 주인공의 이유있는 분노와 성장을 그리기 위해서이다.
미실을 통해 드라마는 끊임없이 두려움을 이기려면 도망가거나 분노하라고 한다. 삼총사의 분노를 끌어내기 위함이지만 그들이 분노해야 하는 상대는 미실이 아니다. 미실에 의해 자행되는 백성들의 핍박받는 현실에 분노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극히 개인적으로 분노한다. 천명, 유신, 덕만 모두 미실 개인에 분노하고 있다. 백성들이 배제되고 있는 그들의 분노는 결국 그들만의 정치싸움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선덕여왕은 그들만의 정치이야기만이 될 뿐이며 덕만이 여왕으로 등극해야 할 당위성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미실과 덕만의 구체적인 정치차별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민초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배제된 채 선문답 같은 정치논쟁만으로 정치차별화를 보여준다면 정치사극으로서의 선덕여왕은 실패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

알천랑이 들어오면 사총사, 다시 김춘추가 합세해서 지구방위수호대 독수리 5형제를 결성시키는 따위의 눈요기로 승부하지 말고 이제는 주인공들을 미실에 버금가도록 성장시켜야 한다. 머뭇거리다가는 고현정이라는 좋은 배우 죽이기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고현정은 이들 적수가 강해져야 더 강한 모습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고현정 주위의 인물들을 하나같이 허수아비처럼 모셔두고 있는 것이 고현정에게는 오히려 실이다. 고현정을 중심으로 한 안방정치에 국한되고 있는 무대를 백성 속으로 확대해야 하고, 병풍처럼 모셔져 있는 세종이나 설원공의 역할도 무게를 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현정의 맞수로 성장해 갈 삼총사의 극중 무게를 실어줘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지금 필요한 것은 고현정의 단독 카리스마가 아니다. 두 중심축들의 팽팽한 힘의 균형인 것이다. 더불어 정치의 근본이 되는 민초들의 모습 또한 현실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덕여왕은 고현정을 내세운 그들만의 정치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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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웅전쟁 2009.07.22 13: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잉 오늘은 왤케 조용하지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초록누리 2009.07.22 14:31 신고 address edit & del

      ㅎㅎ하루종일 김치 담고, 시래기 삶아 널어 놓고, 감자탕 끓이고 저녁 준비하다보니 포스팅도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영웅전쟁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 빛무리~ 2009.07.22 18: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오랜만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2009. 7. 16. 01:27





덕만의 신분이 이제 곧 드러나게 될 암시와 함께 미실과 덕만이 정치와 백성에 대해 주고 받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면서 선덕여왕의 인기도 상승하고 있는데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방법으로 시청자들의 허를 찌르는 설정에 재미를 붙였나 봅니다. 덕만이 천명의 첩자로 미실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반전의 미학에 감탄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미실이 덕만이 천명의 첩자로 접근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으로 또 다시 시청자들을 보기좋게 한방 먹였네요. 미실이 이렇게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임을 재삼 강조해가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지난회 미실이 위천제를 지낸후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며 우물에서 계시를 공개하는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미실의 동생 미생은 이번에는 과학적 실험을 접목한 깜짝쇼를 준비합니다. 계시가 조각된 불상 부양쇼였습니다. 물론 미생이 시도한 것은 과학적인 실험정신이 뛰어난 발상이기는 합니다. 우물에 콩을 채워두고 물을 흘리면 콩의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에 높아진 수위로 그 위에 올려놓은 물체가 위로 올라오게 된다는 추론은 분명 설득력이 있지요.
미생이 과학에 조예가 깊다는 대목도 수긍이 갔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물 위로 떠오른 것은 크기가 꽤 커보이는 불상이었습니다. 작은 불상이나 석판 조각이었다면 오호 하고 탄성이 나올뻔 했는데 부양되는 불상을 보고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신라는 불교국가입니다. 신라시대의 불상들은 지금도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많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불상이 흔했습니다. 우물에서 불상이 떠올랐다는 설정은 불교가 중흥한 신라에서는 있을법한 하늘의 계시라고 받아들여 질 수 있지요. 민심도 동요가 컸을 것이구요. 문제는 불상이 떠올랐다는 것이 아니라 불상의 크기와 재질입니다. 당시 제작된 불상들은 대개가 무거운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자연석을 깎아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큰 불상이었다면 그 무게가 꽤 나갔을텐데 조그만 우물에서 불려진 콩의 팽창으로 그 큰 불상이 들어올려졌을까요? 실험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불상의 무게에 콩이 짓이겨져서 오히려 원래 있던 수위보다도 더 깊숙이 가라앉지 않았을까요? 과학적인 드라마라는 세인의 평가가 저에게는 무색하게 여겨졌습니다. 차라리 조그만 불상이나 돌판을 들어올렸다면 모양새가 그럴듯 했을텐데 말입니다. 신라시대에 플라스틱처럼 가벼운 재질의 인공돌이 개발되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소품으로 등장해 주신 불상은 그냥 보기에도 흔들거릴만큼 가벼워서 작은 아이라도 충분히 들어올릴 수 있어보이더군요. 뭐 드라마가 의도하는 것은 전달되었으니 이 쯤에서 넘어가기로 하죠. 너무 따지고 들면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은 민심을 이용한 협박 수단이 비슷해 보입니다. 바로 사실을 조작한다는 것이지요. 위정자들의 조작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얼마나 사실적이고 아귀가 맞는지 여부에 달려있지만 일단 한번 보여주기만 해도 민심을 휘어잡는데는 성공이 쉽습니다. 미실이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까지 믿을 정도의 두려움, 그것이 바로 미실의 힘입니다.
사다함이 전해 준 책력으로 미실은 극심한 가뭄으로 도탄에 빠진 신라에 비를 내리게 합니다. 비는 자연현상이었지만 미실은 그 정확한 때를 예견했던 것이고 비는 결국 미실이 내린 기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 미실은 천녀로서의 예우까지 받으며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미실은 하늘의 뜻, 즉 천관을 읽었고 백성에게는 하늘과 통하는 사람으로 각인된 것이지요.

'하늘의 뜻'
이처럼 권위와 무게감,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말이 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말입니다. 하늘의 뜻을 읽는 미실이 예지만 해주는 신녀였다면 백성들에게 당연히 떠받들여지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지만 미실은 권력을 함께 취했습니다. 떠받들여지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하늘의 뜻을 이용한 미실은 백성들과 관료들에게는 대적하기 힘든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도 미실은 안심하지 못합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미실은 평생을 옥죄어 온 미실만의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북두의 별이 일곱에서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대적할 이가 오리라는 하늘의 예지, 그것입니다. 미실이 이 하늘의 뜻을 무시해버렸다면 미실은 지금처럼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겟지요. 미실은 북두의 별에 대한 계시와 싸우기 위해 사람을 모으고 권력을 강화시키면서 강해졌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실은 자신을 두려워하도록 하늘의 뜻을 이용합니다. 미실의 두려움이기도 한 그 하늘의 뜻을 말입니다. 여기에는 사다함의 매화, 즉 책력의 공헌이 컸지만 미실에 대한 두려움 조작, 그 힘의 원천은 미실이 두려워하는 그 하늘의 뜻이었지요. 미실의 두려움의 실체는 북두의 별에 담긴 하늘의 뜻이었고 미실도 그 두려움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천하의 미실도 하늘 아래 인간인 것입니다. 

미실의 두려운 존재에 정면대적을 하고 나온 이들이 천명, 김유신, 덕만입니다. 미실은 이들 세사람의 기운을 읽습니다. 미실은 이들과의 싸움을 즐기면서도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어겨버린 순리, 즉 하늘의 뜻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덕만에게 하늘의 뜻이라는 것은 없다고 자위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늘의 뜻이 미실의 뜻이라며 두려워 하는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지요.
하늘의 뜻이라는 진실은 미실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실에 의해 철저히 만들어 졌고 미실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합니다. 미실 역시 하늘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뜻을 이용해서 백성들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두려움으로 장악한 미실은 철저하게 정치인이었던 겁니다. 훌륭한 정치인은 아니지만 뛰어난 정치인이지요. 그런데도 미실은 천명과 김유신, 그리고 덕만을 경계하며 쳐내려고 합니다. 미실이 부정하고 싶은 하늘의 기운,  미실이 지금까지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두려움의 기운, 하늘의 뜻이 이들에게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힘을 이용해서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에 대한 두려움도 조장해 온 미실이지만 정작 미실의 두려움에 대한 아킬레스건은 미실의 오늘을 있게 한 하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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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빛무리~ 2009.07.16 10: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제 블로그에 와주시고 글에 추천도 해주셨더군요.
    감사합니다. 저도 자주 올게요^^

2009. 7. 9. 13:35





이번주 선덕여왕은 사다함의 매화에 대한 설왕설래로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사다함의 매화는 많은 이들의 추측대로 책력으로 밝혀졌는데 사다함의 매화라는 시적표현으로 일단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시청률 상승효과라는 하나의 목적은 달성한 듯 보인다. 그럼에도 사다함의 매화라는 표현에서 풍기는 신비감이 너무 일찍 공개되어 버려 맥이 빠져버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는 시청자들의 맥빠진 것에 보상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인기몰이에 쐐기를 박자는 것인지 또하나의 미스테리를 내놓으며 시청자들을 관심을 끌어들이고 있다.
바로 칠숙과 소화의 재등장이다. 드라마 초반부터 이들의 생존이 암암리에 흘러나왔던지라 언젠가는 두사람이 덕만의 신분을 밝힐 증인으로 극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등장한데 대해서 왠지 우롱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칠숙이 누구이던가? 뼈속까지 미실의 사람으로 덕만을 죽이라는 미실의 명령을 받아 타클라마칸까지 덕만과 소화의 흔적을 쫓아갔던 사람이다. 덕만과 소화의 정체를 알고 죽이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천우신조로 덕만이 칠숙의 손에서 살아남아 계림까지 왔지만 덕만이 계림으로 오게된 이유를 제공한 이가 바로 칠숙이다. 자신과 소화를 죽이려는 칠숙을 피해 도망하면서 덕만은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풀고자 문노를 찾아 신라까지 오게되었다.

사막에서 소화와 함께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던 칠숙이 사신단을 따라 다시 계림까지 오게 된 사연은 뭐 어찌어찌 그리해서 되었다 치더라도 소화와 함께 등장한 것은 왠지 불편하다. 칠숙이 신라의 역사에 등장하는 칠숙의 난의 주인공이 아닌 다른 칠숙이라면  또 그러려니 넘길 수도 있는데 문제는 바로 그가 칠숙의 난에서 칠숙이라는 점이다.
칠숙은 결과적으로 진평왕때 덕만공주를 왕위에 옹립하는 것에 반대해서 난을 일으킨 인물이다. 덕만을 죽이려고 십수년간 그들의 행방을 쫓던 그는 미실이 보낸 킬러이다. 그런 킬러가 이번 사신단과 함께 오면서 킬러의 살기를 버리고 갑자기 훤칠남으로 변해버린 것은 나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 게다가 이번 14화에서 소화에게 대하는 태도로 보아 소화에게 연정까지 품은 훈남으로 변신할 것 냄새를 풍기는 것은 나만 감지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소화는 그런 칠숙의 마음을 외면하며 오로지 덕만의 생사에 가는 명줄을 의지하고 살아왔을 것이고. 

사막에서 어린 덕만과 모닥불을 쬐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중 칠숙은 덕만에게 자신이 어떤 명령으로 두사람을 죽이고자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몇년이라는 세월을 흘러보낸 자신이 지금은 누구를 쫓고 있는지 왜 쫓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도 덕만의 정체를 알자 킬러의 본능을 되살려 덕만과 소화를 죽이려고 했지만 칠숙이 모닥불에서 덕만과 나눈 장면은 훗날 칠숙의 감정변화를 위한 하나의 복선일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소화와 등장을 한 것에 대해서는 왠지 불편하다.

칠숙은 미실에게 소화와 덕만을 제거했다는 서찰과 함께 증거물로 소화와 덕만의 물건들을 남기고 멀리 떠나겠다는 말을 전한다. 미실은 칠숙의 행방을 찾으라고 보종에게 명령을 내렸으니 칠숙이 소화와 은둔해서 조용히 살고자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니 칠숙이 어떤 식으로든지 미실과 덕만앞에 나타나게 될 일은 자명하다. 게다가 덕만은 칠숙을 알아보았고 그가 남긴 자신의 물건과 어머니 소황의 명패까지 훔쳐보았다.
칠숙의 소화에 대한 마음, 그것이 사랑인지 연민인지 아직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지 소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불편한 것임은 사실이다. 물론 냉혹한 킬러 칠숙과 소화의 사랑은 그럴싸하게 시청자들의 동정을 받으며 김유신과 덕만, 천명의 엉터리 삼각애정관계보다는 설득력을 얻을 수는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소재도 진부하거니와 억지스러운 설정이라 영 마음이 개운치않다.
아무리 드라마가 각색된 허구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칠숙의 난 성격까지 왜곡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편을 담아냄으로써 드라마에 대한 극적 흡입력은 높아지겠지만 억지설정으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수단으로 쓰여져서는 안될 말이라는 얘기다. 아직 두사람의 사연이 뭔지 전개되지는 않아서 어설프게 혼자만의 추측으로 걱정하는 것일 뿐이지만 혹이나 시청률에 급급한 억지설정이라면 배가 산은 커녕 뒤집혀서 좌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막에서 살아남은 것 또한 몇만분의 일 확률이었음에도 멀쩡하게 살려내는 것이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칠숙이 소화의 물건까지도 모래 속에서 다 건져내 온 초능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아마 덕만이 가져 온 물건도 어느날 깜짝 등장할 것으로까지 보여진다. 덕만이 계림으로 오면서 바랑에 넣고 다녔던 단도와, 천문책, 돋보기 등등..사막의 모래에 휩쓸려 들어갔어야 했을 단도와 함께 물에 빠져도 젖지도 않은 방수책으로 말이다. 이런 것들마저도 덕만의 생명만큼 천우신조라고 우기기에는 억지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덕만의 신분을 알 수 있는 단서는 덕만 자신에게 오히려 많다. 한가지 어처구니 없는 의문점은 천명이 생명의 위험에서 살아나왔던 만노성에서의 이야기와 문노를 찾으러 갔다가 봉변을 당하고 유신에게 붙잡혔다 아버지 진평왕을 만난 상황에서 덕만의 이야기가 배제되 버린 점이다.
천명공주가 생명의 위험을 겪었던 그때마다 함께 있었던 이가 동무 덕만이었는데 진평왕이나 천명의 어머니 마야는 만나서 치하하기는 커녕 이름자 하나 물어보지 않는다. 왕이라면 아니 부모라면 하나밖에 없는 황실의 공주를 살린 동무 덕만을 불러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한번은 대면을 했어야 했고, 그것도 아니라면 천명에게라도 그아이의 이름자 정도는 물어보는게 부모일진대 그냥 그아이 혹은 그 낭도로 넘어가 버린다. 덕만이 김서현 장군을 시해하려 했다는 누명을 받고 국문을 받던 현장에서 잠깐의 조우로 끝나버린 부녀상봉은 여승으로 낭도를 만나고 다닌 천명공주가 연루된 사건이었음에도 덕만의 신분을 감추려는 제작진의 어설픈 의도만 보였다는 생각이다. 설사 천명의 그 동무가 덕만이라는 이름을 가졌다해도 진평왕은 이름이 같은 것에 한번 놀라기만 했으면 된다. 시청자들은 소화 품에 살려보낸 어린공주 덕만이 남자로 변했을리라는 추측마저 하라고 진평왕에게 원하지는 않는다.

덕만은 칠숙이나 소화라는 증인 외에도 덕만 자체에서 신분을 입증할 만한 단서를 많이 가지고 있다. 덕만이 천명을 만났던 상황, 진평왕과 천명 그리고 덕만 세사람이 특이하게도 같은 자리에 가지고 있는 점, 그리고 덕만의 어머니가 소화라는 점, 칠숙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과 덕만이 계림으로 오게 된 배경, 문노라는 이름 등을 통해서도 덕만이 공주였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물론 이런 것들을 죄다 밝혀버리면 드라마가 김빠진 콜라가 되버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드라마 초기에는 덕만의 신분을 입증할 사실들을 숨기는 이유를 덕만이라는 인물이 여왕으로 성장해 갈 수 있는 자질을 보여주고자 해서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덕만을 우스꽝스럽게도 남장여자로 화랑에 편입시켜 미실을 대적할 별자리의 운명을 지닌 자질을 검증받게 하려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단 한번의 전쟁을 통해서 보여주기에는 미흡했고, 이번에는 사신단이 가져온 사다함의 매화의 비밀을 풀어가는 것으로 뭔가를 기대하게 했는데 칠숙의 등장으로 덕만의 신분에 초점이 맞춰져 버렸다. 
자칫하다가는 덕만이 미실을 대적할 별자리의 주인으로 성장해 가는 선덕여왕이 인물보다는 출생신분, 유신랑과의 애틋한 연모의 정, 천명과의 우정, 칠숙-소화의 사랑 등의 이야기에 배가 산은 커녕 뒤집힐 수도 있겠다는 우려로 걱정이 크다. 미실의 정치 역시 수신제가에 골머리를 쓰고 있는 형국이니 큰틀에서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전의 역동적인 신라의 역사를 드라마를 통해서 보고자함은 지나친 욕심일까? 우리 역사의 최초 여왕이라는 선덕여왕의 위엄에 걸맞게 배의 균형을 잡길 바란다. 또한 산으로 가는 배가 아닌 드넓은 바다로 가는 배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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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통사극팬이었는데 2009.07.10 09:36 address edit & del reply

    제발 사극은 원래 예정했던 분량의 절반 이상씩 줄여서 방영했으면 좋겠네요. 50편 100편 질질 끄니 배가 산으로 가는 건 예사요, 일주일에 두편 분량 맞추려고 생방송 촬영을 하다보니 질은 떨어지고. 심지어 불멸의 이순신 같이 회상으로 시작되었던 작품은 동일한 시간대인 1~4화와 100~104의 설정과 주요배역, 캐릭터의 성격까지 완전히 다른 코미디가 일어나고 말았죠. 어느 정도의 픽션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사극들은 역사적 사실에 픽션의 살을 붙이는 게 아니라 픽션을 위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네요.

    • 초록누리 2009.07.12 04:45 신고 address edit & del

      이순신..네 기억납니다. 첫부분과 마지막 부분 완전 공감입니다. 첫회가 워낙 강렬해서 100회를 넘어가면서도 잊을 수가 없었거든요. 정확하신 지적입니다. 픽션을 위해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한다는 말씀..
      좋은 하루 되세요.

  2. gd 2009.07.10 15:15 address edit & del reply

    재미있고, 약간은 억지스런 설정도 봐 줄수 있는데
    덕만이가 여자인줄 모르는 그것만은 절대 이해가,,.

    • 초록누리 2009.07.12 04:48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러게요. 이제 곧 여자임이 밝혀지겠지요. 너무 오래동안 남장여자를 하고 있으니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할때가 있답니다. 다큰 성인이 남장한다고 남자처럼 보이지는 않지요. 아무리 헐렁한 옷에 무도복으로 가린다고 해도 수염도 나지 않는 저 이쁜 얼굴은 뭘까요?ㅎㅎ

2009. 6. 30. 12:09




지난주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답답한 덕만이 드디어 제모습을 찾은 듯하다.
덕만의 첫 성인신고식을 치룬 이요원은 지난주 어색한 남장연기에 말투까지 억지스럽다보니 그 캐릭터가 어정쩡하게 되버려서 솔직히 미실(고현정)의 맞수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웠다. 후일 선덕여왕으로 등극할 인물이라는 설정에서 보여준 어린 덕만의 지략과 대범함을 살려내지 못하는 이요원의 모습에 회의적이었다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회(11회) 이요원은 그런 우려를 말끔이 씻어내고 덕만으로 제자리를 찾은 듯 하다. 첫등장에서 보여준  무늬만 덕만인 실망스러운 모습을 과감히 버린 이요원의 변화에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아막성에서 퇴각하는 김서현장군(김유신의 아버지) 부대의 퇴로를 열기 위한 유인책으로 비천,용화화랑은 백제군을 유인하는 임무를 맡는다. 살아서 신라로 돌아갈 확률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사지에 남겨졌다.
전투가 불가능한 동료를 베라는 알천랑, 그러면서 알천랑은 부상당한 자신을 휘하 낭도에게 베라는 명령을 한다. 그에 맞서 덕만은 김서현장군의 퇴로를 알리는 서신을 삼켜버린다. 이 장면은 과거 금지한 차교역을 한 명목으로 잡혀가서 생사(生死)패를 선택하라는 제후앞에서 패를 삼켜버리던 어린 덕만의 기지를 떠오르게 한 장면이었다. 덕만은 어려서도 죽음이라는 극한적인 위기상황에서도 용기있고 대범하게 기지를 발휘하는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빗줄기 쏟아지는 전장에서 겁에 질린 동료에게 죽지않으려면 싸우라며 독려하는 장면에서 혼신을 다하는 이요원의 모습은 지난회에서 보여준 나약하고 모자란 듯한 답답함을 씻어주었다. 또한 죽어가는 동료의 죽음을 보며 절규하는 모습에서 이요원은 덕만이 의도적으로 감추지 말아야 할 부분, 즉 여성이라는 감성부분도 제대로 살려냈다. 만일 이요원이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동료의 죽음앞에 비장한 남성미를 보여주었다면 이요원의 여장남자 연기는 실패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죽음이라는 상황 앞에 본질적으로 다르게 반응한다. 절친한 동료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덕만은 여성의 감성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반면 김유신이나 다른 동료는 남자들의 감성을 보여주었다. 죽음앞에 절규하는 본능적인 반응은 남자와 여자는 분명 다르다. 이런 절규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덕만이 여성으로 밝혀지게 될 상황을 매끄럽게 연결시킬 수 있는 연출의도로 보여진다.

이제 이요원에게는 천천히 내면적으로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요원에게 있어 카리스마는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지금은 선덕여왕이 될 덕만의 자질을 키우면서 내면으로 성숙해 가는 모습에 더 몰두해야 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보고, 죽지않기 위해 적을 죽여야 하고 살기 위해 칼에 피를 묻혔다. 그렇게 살아돌아 온 덕만은 더 강해지면서 내면적으로도 많이 성장해야 한다. 카리스마는 그 후에 취해야 한다. 자칫 극 초반부터 카리스마 잡기에 진을 쏟아버리면 힘만 들어간 덕만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장군의 갑옷을 졸병에게 입혀놓은 우스운 꼴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요원은 성숙과 카리스마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성숙한 덕만의 깊이있는 무게감을 보여주지 못하면 카리스마는 물건너 가버리게 될 것이다. 애초에 강한 카리스마로 드라마의 중심축을 이뤄버린 미실은 오히려 그 카리스마 연기에 억눌려 세심함에는 소홀해져 버렸다.
이요원은 고현정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요원이 무게감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땅을 디디고 서있는 두발의 무게를 잘 조절해야 한다. 이제 감을 잡았으니 제자리를 잡고 균형의 무게를 키울 때다. 
선덕여왕이 될 북두의 별, 드러나지 않았다고 가리려 하지말라.
별은 스스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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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27. 03:47





지난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화려한 꽃남들이 물러 간 자리에 덕만, 천명, 유신, 보종, 알천 등을 연기할 성인연기자들의 신고식이 치뤄졌다. 대개 연기력이 돋보인 아역배우들의 인기가 높을수록 성인  연기자들은 호된 신고식을 치룬다. 선덕여왕 역시 시청자들의 날카로운 예봉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주부터 훗날 선덕여왕으로 등극할 덕만(이요원)과 천명공주(박예진), 김춘추와 함께 삼국통일을 이룩할 명장 김유신(엄태웅), 그리고 당대의 보종,알천 등 꽃남화랑들을 연기할 성인 연기자들이 출연해서 기대하고 봤는데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역연기자들의 연기력이 워낙 뛰어나서 적잖이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왠지 이건 아니다 싶은 몇가지 문제점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우선 전혀 성장하지 않은 덕만과 너무 커버린 김유신이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덕만이 누구인가. 미실을 대적할 북두칠성의 별이 여덟이 되는 신라의 하늘이 내린 인물이 아니던가. 어린 시절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궁녀 소화의 손에 사막의 선인장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굳세게 커 온 덕만이 우역곡절 끝에 용화화랑에 입문해서 김유신 휘하에서 수련을 연마한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여전히 덕만이 여자임을 밝혀지지 않았는데 단체생활을 했던 화랑에서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문이지만 스토리전개상 불가피했다고 본다. 문제는 중성적인 모습을 연기하는 이요원은 신윤복으로 분했던 문근영이나 커피프린세스에서의 윤은혜와 비슷하게 퉁명스런 말투인데 이게 자칫하면 연기력 논란이 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말투는 퉁명하게 행동은 최대한 거칠어 보이기'가 여성이 남자연기하기 기본같아 보이는데 이게 자연스럽지 못하면 남자 흉내내기에 그치면서 감정연기마저 망칠 수도 있다.

신라 화랑도는 호국을 목적으로 세우진 문무교육 단체였다. 화랑입단은 용모단정한 진골귀족 가운데서 낭도의 추대를 받아 뽑았다고 전해지는데 최하계급인 천민을 제외하고는 귀족과 평민 자제가 가입할 수 있었던 청소년 수련단체이다. 낭도들은 일정기간 단체생활을 하며 명승지를 찾아 수련을 하고 풍류도 즐기면서 화랑도라는 자부심과 기풍을 연마했다.
진평왕때 원광법사에 의해 제정된 화랑의 세속오계(世俗五戒), 즉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은 화랑도의 기본 덕목으로 특히 충(忠),신(信)의 덕목을 중요하게 여겼고 전시에는 부대에 편성되어 전투에 나갔다.
유명한 김유신, 사다함, 죽지, 관창, 반굴, 원술(김유신의 아들)등 용맹한 화랑을 배출한 신라의 삼국통일에 크게 기여한 충(忠),신(信)의 집단이었다

그런데 김유신이 이끄는 용화화랑에서 몇년씩이나 이러한 신라시대 지,덕,체,기의 결집체인 화랑에서 충실히 수련해 온 덕만이 이요원으로 분한 성인이 되어서도 그다지 성장해 있지 않다면 문제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김유신의 용화화랑은 반쪽으로 짤린 용화화랑기와 그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투지로 똘똘 뭉쳐진 낭도들이 아니었던가?
여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있어 체력에서 밀리니 훈련에서 늘 꼴찌를 한다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덜렁대기는 했지만 강하고 영민했던 어린 덕만의 모습은 어디가고 툴툴거리는 천덕꾸러기가 되어있었다. 얼굴만 성인이지 더 퇴화한 느낌이다.
물론 어린 덕만에서 성인으로 성장한 모습이 지나치게 달라져서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고자 아역 덕만의 모습을 많이 재현하고자 했음도 잘 알겠지만 성인으로 훌쩍 커버린 이요원의 어린 덕만이 표정과 말투 흉내내기에다 여전히 수련도 제대로 못된 꼴찌 덕만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심성수련과 무술연마, 거기에 춤과 예술까지 교육했던던 화랑에 입단해 낭도로서 훈련을 받아 온 덕만을 수련기간이 몇년이 흘렀는데도 어린 시절의 연장선상에서만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임금은 하늘이 내린다고 한다. 덕만은 하늘이 정한 신라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어린 덕만이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는 것도 덕만이 쥐고 태어난 천운이며, 자라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대범한 기상과 기지, 그리고 군주가 취해야 할 자질이 넘쳤던 어린 덕만을 큰 인물은 하늘이 정한다는 신화적 요소들에 근거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천운을 가지고 살아남은 덕만이 지녔던 넘쳤던 담대함과 재기와 영민함은 성인이 된 덕만에게 더 커졌어야 하는데 이요원은 어린 덕만의 해맑고 덜렁대는 이미지 연결에만 집중한 나머지 덕만이 현재의 나이가 되었을 때 성장했을 모습은 간과해 버렸다.
물론 생사를 넘나든 최초의 전투를 치르고 사람도 죽인 덕만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짠하고 새롭게 변신해 가는 모습에 비중을 두고 있겠지만 덕만의 현재 성장한 모습 역시 감출수 없는 늠름함과 포스가 배어있어야 했다.

반면 그런 덕만에 비해 김유신은 몇년후 너무 커버렸다. 덕만보다 한두살 어린 나이(아마 20대초반으로 보여지는데)인데도 외모에서나 한 문도를 거느린 화랑으로서의 자질에서나 너무 성숙해 버린 느낌이다. 노련한 백전노장까지는 아니어도 명장의 느낌이 나버린다.
앞으로 드라마의 전개가 김유신은 뛰어난 명장으로 덕만은 여왕으로서 자질을 갖춰가야 하는데 김유신만 보조를 맞추지 않고 앞서 가버린 느낌이다. 미실의 카리스마에 맞설 김유신의 강한 포스를 보여주고자 했을 터인데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힘을 줘버렸다. 물론 힘을 빼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서서히 변해 가라는 말이다.

또한 낭도들 가운데 꼴찌 덕만이 갑자기 타고난 운명의 기운이 넘쳐서 여왕의 자질을 한꺼번에 보여줄까봐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번 백제와의 전투에서 유신랑의 훈련과정을 기억해 적에게 포위를 당했을 때 원진을 짜라며 지휘하는 리더쉽을 보여주기는 했는데 이 장면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으로 치루는 전투에서 당황하여 훈련받은 병법이 기억이 안났다고 해도 이건 무슨 장님 문고리 잡듯하니 그동안 아역에서 보여준 덕만의 기지와 담대함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덕만은 좀 더 키우고 김유신은 명장이 되기까지 조금만 연륜과 힘빼주시고 기다리는게 어떠하오리까?
드라마 속의 나이에서 제발 멀리 가지 말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큰 인물들이었으니 그 나이또래보다는 훨씬, 아니 월등하게 사고가 깊고 현명하고 용기있었으리라 상상되는 딱 그정도까지만. 덕만은 좀더 성장하고 김유신은 조금만 어린나이로..

하긴 성장이 멈춘 인물도 있으니 그에 비하면 덕만과 김유신은 덜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진평왕이 황위에 올랐을 때 미실과 15년이 차이가 난나고 했는데 그때 어림잡아 계산했던 미실의 나이가 35세, 몇년후 천명과 덕만 공주가 태어났고, 문노를 찾아 계림으로 온 덕만과 천명이 만났을 때가 15살쯤이니까 미실의 나이는 쉰 몇살이어야 하고, 그로부터 다시 또 몇년이 흘러 지금의 성인이 되었으니  현재 미실의 나이는 60살 전후라는 계산이 나온다. 강보에 싸인 천명을 보았던 미실이 여전히 그 나이에 머물고 있음을 보면서 중간중간 나이를 계산하느라 드라마 초기 내용을 더듬어 기억해 내느라 애먹었는데 정녕 미실은 불로(不老)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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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개 2009.06.29 20:55 address edit & del reply

    ^^ 잘 설명해주셨네요. 안그래도 내심 갑갑한 느낌이 들었었는데...억지로 인물을 삽입한 기분?^^ 애써 무시하면서 봅니다^^ 그냥 재미다~~하구요^^

    • 초록누리 2009.06.30 03:12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저도 무시하면서 보기는 하지만 조금 무리한 설정이다 싶어요. 그래도 열심히 챙겨보고 있습니다~^^

  2. 오시운 2009.08.08 00:05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런거 일일이따지면..뭐 한도 끝도 없죠..
    사극은 대부분 픽션에 의존할수 밖에..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하나하나 따지면..답안나오죠..
    그래도 재미있던데... 재미있으면 돼죠뭐.ㅋㅋ 연기도 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