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취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4.08 '신데렐라 언니' 서우의 반격 '거지 꺼져', 갈등 시작되다 (14)
  2. 2010.04.03 '신데렐라 언니' 서우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 (20)
  3. 2010.04.01 '신데렐라 언니' 늙은 여우 이미숙, 새끼 악녀 문근영 (31)
2010.04.08 08:26




착한 효선이의 입에서 독설이 터졌습니다. 은조를 향해 경멸하는 시선으로 "거지, 꺼져"라고 내뱉은 장면은, '효선이는 착하다' 라는 강박관념에 억눌려 있었던 감정이 터져나왔던 순간이었고, 은조와 효선의 갈등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지요. 효선이 은조를 향해 또박또박 "거지 꺼져"라고 했을 때, 저는 서우가 당시의 감정을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사 자체가 아니라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에서 극중 효선이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꺼번에 뱉을 수 있는 대사임에도 호흡을 끊은 것은, 마치 처음 욕을 하는 아이에게서 보여지는 낯선 단어에 대한 어색함과 화나는 감정을 감추고 싶지 않다는 자기강요 같은 것이 엿보였어요. 
"거 봐, 너도 별다를 것 없어" 라는 듯 되받아치는 문근영의 시니컬한 표정은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감정을 보여 주었고요.
신데렐라 언니의 스토리 전개는 마치 잘 그려진 한폭의 그림처럼 정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자칫 드라마가 지루할 수 도 있을 법한데, 이 위험요소를  감정의 변화라는 터치로 잘 조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신데렐라 언니 3회를 보면서 문근영, 서우, 천정명의 연기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 가면서, 섬세하게 각 캐릭터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이번회 은조와 효선의 감정변화는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구도였어요. 은조에게는 사랑이 시작되고, 효선에게는 미움이 시작되는 대비적인 감정을 보여주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 시작이 같은 감정에서 파생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빼앗김이라는 거예요.
은조가 귀찮게 구는 효선이에게 "내가 네것을 빼앗아도 착한 척 할 수 있나 두고보자"의 심정으로 동수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은조가 경계하고 있는 것은 효선이가 유일하게 가지지 않은 엄마를 빼앗길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이 되어버린 은조의 장난, 왜?
은조에게 엄마는 벗어나고 싶은 족쇄이면서, 세상을 혐오스럽게 생각하게 한 장본인이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구질구질한 엄마의 인생에 덤처럼 얹혀 살아왔다는 자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거예요. 찾아 온 털보아저씨가 엄마를 만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엄마를 위해서였어요. 그토록 벗어나고 싶고 혐오하는 엄마지만 지켜주고 싶은 본능같은 것이었어요.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진 가족이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었던 것이에요.
그러면서도 은조는 자신을 혐오합니다. 엄마가 마련해 준 대성도가라는 풍족함에 어느새 오래도록 안주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늘 짐을 꾸려 떠나고 싶은 은조가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아무도 자신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나 어디로 떠날거야 라고 했을 때, 정작 속에서는 가지말라고 누군가가 자기를 붙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은조는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붙들어 줄 것 같은 사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로 인해 상처받은 자리에 기훈이라는 남자가 들어오게 된거죠. 은조가 계속 마음으로 되뇌이던 "은조야... 하고 불렀다"는 말은 늘 떠나고 싶은 은조를 붙잡아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흥분과 설레임의 시작이에요. 세상을 향해 닫아걸었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지요. 
은조가 반항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이유는 엄마의 너저분한 인생때문에 받은 상처이기도 했지만, 엄마 송강숙으로부터 은조가 바라는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지금까지 엄마 송강숙과 살림을 차렸던 남자들은 송강숙의 삶의 방편일 뿐이었어요. 매맞고 등치고 도망다니고, 그런 속에서 강숙은 은조에게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어요. 걸핏하면 손이 올라오고 욕을 해대는 엄마는 은조가 바라는 엄마가 아니었어요. 은조가 그리는 엄마상은, 따뜻한 봄볕아래 귀지도 파주고, 발톱도 깎아주고, 힘들면 무릎에 누워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들으며 스르르 잠도 자고 싶었던 그런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모든 아이들에게 있는 그런 엄마의 모습은 송강숙의 팔자가 더러워서인지 허락되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한 엄마라는 모습마저도 환타지가 돼버렸던 것이에요.
그런데 은조는 엄마에게서 자신이 갈구하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대성도가라는 사람냄새 나는 곳에 귀엽게 재잘거리는 딸, 우아하고 고상한 말씨에 단정한 옷차림, 온화한 미소를 짓는 엄마, 엄마와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넉넉한 웃음. 이런 완벽한 가족 그림이 은조 눈앞에 펼쳐진 것이에요. 그런데 그 그림 속에 자신의 자리가 없는 것을 알게 되지요. 어리광부리고 사랑받아야 할 자리에 은조가 아닌 효선이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무릎팍이 깨져 병원에서 꿰매고 절뚝거리고 다녀도 엄마는 애교부리며 착하고 곰살맞게 안기는 효선이 차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토록 싫어하는 엄마지만 효선이가 엄마의 무릎에 누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은조는 찢어진 무릎의 상처보다 마음이 더 아파오는 것을 느끼지요. 두 사람을 보고 말없이 방문을 닫는 은조의 마음이 "엄마를 뺐겼다. 버리고 싶은 엄마지만, 엄마마저 너에게는 주기 싫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은조의 눈에 비친 효선은 모든 것을 가진 아이였으니까요. 
유일하게 효선이가 가지지 못한 것이 엄마인데, 그것마저 은조에게서 빼앗아 가려는, 모든 것을 가진 효선에게 은조는 묘한 질투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늘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은조에요. 은조가 '왜 그랬는지도 모를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동수를 가지고 효선에게 장난을 친 것은, 엄마를 빼앗긴 듯한 불안감과 엄마를 차지한 효선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반면 효선은 누군가에게 자기 것을 빼앗겨 본 적이 없는 아이에요.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었고, 항상 효선이 가진 요술방망이는 효선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다 들어 주었어요. 가진 것이 차고 넘친 아이였기에 은조가 원하는 것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달이라도 따줄 수 있을 정도로 무엇이든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은조가 사람을 달라고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동수...은조가 효선에게 고의로 상처를 주고자 했던 일이 아니었는데도, 은조도 왜 그랬는지 몰랐던 이 장난은 효선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켜 버리는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효선은 받기만 했고, 주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였어요. 빼앗겨 본 일이 없었던 아이였죠. 그런데 동수를 빼앗겠다고 말하는 은조에게서 효선은 처음으로 빼앗긴다는 그 불쾌감을 느낍니다. 한번도 빼앗긴 적이 없었던 효선은 이 낯선 불쾌감에 반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효선이는 처음으로 상처를 입은 것이에요. 효선이는 은조의 말처럼 싫은데 좋아하는 척 할 수가 없었던 거에요.
머리핀도 옷도 새 가방도 효선은 다 줄 수 있는 것들이에요. 다시 채울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은조는 효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싶다고 합니다. 은조가 바라는 것이 효선이 상처받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라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동수가 사귀자고 했다며 줄 수 있느냐고 묻는 은조를 보며 효선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은조가 자신을 정말로 싫어한다는 것을요. 효선은 처음으로 상처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릴 때 엄마를 잃은 상처와는 다른 것이에요. 엄마를 잃은 것은 슬픈 일이었는데, 은조언니가 동수를 뺐겠다고 하는 말은 슬프지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자기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불쾌하고 미울 뿐이에요. 
은조와 효선이의 갈등은 이제부터가 시작이겠지요. 효선이는 더 상처를 받을 것이고, 은조는 상처를 입혀가며,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게 하는 묘한 구조의 이 드라마는 상처투성이 은조가 대성도가 사람들과 기훈으로부터 상처가 아물어가고, 효선이의 상처가 시작되는 선상에서 동화의 비틀기는 시작됩니다. 효선이 가진 것들을 하나씩 가져오면서 상처투성이 은조가 치유되고, 자기가 가진 것을 하나씩 빼앗기면서 효선의 상처가 더 커져가는, 이런 양면적인 시각에서의 동화는 서로의 상처를 보게 되는 순간까지 서로 할퀴면서 아파하면서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차갑게만 보였던 은조도 동수가 보낸 카드가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효선이 상처받는 것을 보고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면 마음 여린 아이였고, 세상은 무공해 동화나라라고 생각했던 효선이도 다치면 아파하고 발톱을 세우는 모습입니다.
두 사람은 아직 서로의 상처를 볼 여유도, 시간도 없었어요. 은조는 효선의 착한 모습을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사는 별종과 같이 가식적으로만 생각하고, 효선이 역시 은조가 삐딱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 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정도였어요. 서로 상처주고 할퀴면서 상대방의 상처를 이해하게 될 때 두 사람은 한뼘 쯤 성장해 있는 것을 보게 되겠지요. 
표면적으로 보면 두 사람은 빼앗고 빼앗기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은조나 효선이는 같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아이, 상처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거울처럼 닮아 있습니다. 상처를 입히는 것도, 상처를 받는 것에도 서투르고 똑같이 아파한다는 것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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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3 08:29




신데렐라 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과 세상은 발상부터가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대부분 동화의 시선이 선의 시선에서 출발하는 것을 뒤집어 본다는 것 자체도 재미있는 역발상이에요.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속 나쁜 사람들의 결과는 늘 "....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버렸기에, 착한 주인공을 괴롭히던 못된 계모나 언니들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밖의 일이었죠. 불행하게 살았다, 혹은 벌을 받고 죽었다라는 식의 단편적인 결말들로만 끝나버렸고요. 그런 점에서 동화 속 악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새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는 우리가 알고 있던 선과 악이라는 이중적인 구분이라기 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선과 악보다는 변화에 관점을 두고 봐야하는 드라마입니다.

효선, 낯선 감정 '미움'을 느끼다
은조의 엄마 송강숙과 대성참도가의 구대성 사장의 결혼으로 한 가족이 된 은조와 효선, 여전히 차갑기만 한 은조를 향한 효선의 노력은 보기 안스러울 정도입니다. 효선은 왜 은조언니가 자기에게 차갑게 구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효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효선에게 한 번도 상처를 준 적이 없었기에 효선은 누군가가 자기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에요. 대성도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효선의 학교친구들 부모님이고, 착하고 붙임성있고, 주위 친구들에게 밉상짓을 하는 일도 없었던 효선이를 미워하는 친구들도 없었지요. 겉으로는요. 
효선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아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할 필요가 없었어요. 중심이 자기에게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는 재잘재잘 쉴새없이 귀찮게 수다를 떠는 효선이가 나올 수 밖에 없었어요. 효선이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아이일뿐이에요. 그런 효선이의 모습은 착한 아이라는 공식이 따라다녔고, 착하다는 것은 효선이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착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공식이 효선이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공식처럼 따라 다닙니다. 경수라는 친구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날리는 효선의 문자를 씹어버리는 것도 같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효선이 주위에는 효선이에게 싫다 귀찮다라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 없어요. 착한 효선이를 무시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것은 나쁜 짓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대놓고 효선에게 ' 너 싫다, 귀찮다' 라고 쌩무시를 하는 사람이 효선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언니가 생겨서 주위에 마구마구 자랑하고 싶을 만큼 좋은데, 새로 생긴 언니는 무서울 정도로 곁을 주지 않습니다. 효선이가 자꾸 이러면 나도 참기 힘들 것 같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효선의 변화 시점이 바로 그 부분이에요. 뭔지 알 수 없지만 효선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었죠.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훈이 오빠가 은조를 보는 시선 역시 효선이는 불안합니다.  
수학공부를 하며 은조에게 설명하느라 자신이 들어오는지도, 모르는 것 가르쳐달라는 말에도 건성으로 대답하는 기훈오빠와 은조가 이상해 보입니다. 재잘조잘 하루종일 옆에서 떠들어도 눈길도 주지 않는 은조언니도 이상하게 보이고, 은조언니만 쫓는 기훈오빠도 이상해 보입니다. 그래서 효선은 기훈에게 묻지요. "오빠, 나 누구야? 내가 마음이 조금 이상해...."
효선은 지금 낯선 자신의 모습을 느끼기 시작한 거예요. 친구들이나 대성도가에서 일하는 아저씨 아줌마, 기훈오빠, 새엄마, 새언니 그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 주고, 자기도 그 사람들을 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알 수 없는 감정이 효선에게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미움이라는 감정이에요. 누군가가 미워지는 감정, 효선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악이라는 녀석이 없었던 거지요. 동화속 착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효선이에게는 미움이라는 녀석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에요. 누구도 효선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미워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죠.  
반면 은조는 한 번도 믿을 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새아버지가 된 구대성은 은조 엄마를 남자 잡는 상이라며 조심하라고 이르는 당숙모에게 "그 사람, 그 사람 딸아이 이제 제 식구입니다. 제 식구를 두고 험한 말씀하시는 것 그만두라" 며 화를 내는 것을 듣고 의아해 합니다. 엄마와 자기를 식구라고 말해 주고 보호해 주려는 사람도 있나 놀랍기만 할 뿐이에요.
기훈도 "넌 나보다 멋져질 거야" 라며 은조에게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해줬어요. 늘 구질구질하고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보고 멋져질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그런 세상이 은조의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지요. 효선에 비하면 은조의 변화는 더디게 진행될 것입니다. 상처가 많았던 아이였던 만큼 아무는 것도 더디고 새살이 돋아나는 것도 더디니까요.

물과 누룩, 이물질의 충돌
효선에게나 은조에게나 낯선 세상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거에요. 너무도 다른 색깔의 세상이 말이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한줄기 빛이 들어오고, 눈부시게 환한 하늘 위에 시꺼먼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낯선 세상에서 두 아이가 어떻게 각자의 상처를 치료하고, 또 서로가 입힐 상처를 봉합해 나가는 지를 보여 주겠지요. 상처가 난 부위에 새 살이 돋아날 아이 은조, 이제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하려는 아이 효선, 신데렐라 언니는 그런 두 소녀의 성장이야기가 되겠지요.
흥미로운 것은 그 세상이 술을 만드는 곳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것이에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통과의례처럼 배우게 되는 술, 그 첫 맛처럼 쓰지 않을까 싶네요. 술은 사람을 즐겁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추하게 하기도 하고, 속이 쓰리게도 해요. 마시고 나면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요.
술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효와 숙성일 겁니다. 구대성이 대성도가 직원들에게 누룩과 물의 비율을 잘못썼다면 "누룩과 물만 섞는다고 다 술인줄 아느냐!" 며 술항아리를 깨버리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구대성의 성품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지만, 이 드라마의 핵심 또한 그 장면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누룩과 물이라는 이질적인 물질이 만나서 적당한 온도와 시간동안 발효되고 숙성해야만 좋은 술이 나오듯이, 신데렐라 효선이와 신데렐라 언니 은조라는 서로에게 이방인이었던 두 사람이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한다는 의미까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효선이는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의 상태에 있고, 반면 엄마의 거친 인생 속에서 세상이 쓰레기같다고 생각하는 은조는 곰팡이 덩어리 누룩의 상태라고도 볼 수 있을 지 몰라요. 하지만 각각만으로는 좋은 술로 만들어지지는 못하지요. 효선에게 은조의 등장, 은조에게 효선이라는 이방인과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물과 누룩의 화학반응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만으로 술이 되지 못하고 누룩만으로 술을 빚을 수 없듯이, 좋은 술이 되기 위한 두 물질이 섞여 발효숙성 과정을 거치듯이, 은조와 효선이라는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부딪치면서 서로를 통해 성장해 가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신데렐라 언니의 무대가 술을 빚는 곳이라는 점이 그래서 더 공감이 가고 말이지요.

서우, 효선의 변화 살려야 하는 이유
신데렐라 언니 무대가 되고 있는 효선의 고래등 기와집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마치 깊은 바닷속만큼 고요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한 파도만이 넘실되는 것 처럼 보이는데, 바닷속에서는 이미 폭풍이 일기 시작했어요. 다만 수면위로 그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고 있을 뿐이에요. 두 여주인공의 소용돌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은조와 효선이 는 낯선 이방인들로부터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신데렐라 언니를 보면서 신데렐라 언니보다는 신데렐라 효선의 변화에 더 관심이 가더군요. 까칠하고 세상으로부터의 접근을 차단해 버린 은조의 변화는 어찌보면 쉽게 예상할 수가 있는 일들입니다. 사랑에 눈을 뜨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죠. 이 과정을 섬뜩하리만치 기존의 이미지에 반하는 파괴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문근영의 연기변신이 드라마 관전의 포인트지만, 착한 효선(서우)의 변화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은 것이기에 더 흥미롭습니다.   
은조는 새아버지가 된 구대성과 기훈때문에, 효선은 은조와 기훈으로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효선의 불안감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이 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대성도가의 고요가 깨지는 순간이 되겠지요. 그런 점에서 효선이 변화하는 시점은 동화 속에서 살고있는 효선이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고, 효선을 연기하는 서우의 연기력이 검증받을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오버스러울 정도로 어린 아이같은 효선이 상처를 받고 갈기갈기 찢어지는 시기가 효선이 6살 엄마를 잃었던 나이에서 현재의 나이로 급도약하는 시점이에요. 10여년의 멈춰버린 성장의 간극을 넘어 효선이라는 캐릭터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기에 서우의 변신이 기대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처음 코피가 터졌을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겁에 떨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아마 효선이 그런 느낌일 수도 있을 거예요. 효선이는 마치 처음 코피를 보는 아이같아 보이니까요. 한번도 상처를 입지 않았던 아이가 감당하지 못할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고통도 심하고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극복하는 방법도 서툴고 파괴적일 수도 있어요. 효선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처음으로 당하는 마음의 상처, 그 충격과 변화를 깊이있게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 변화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서우의 연기력이 도마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고, 효선의 캐릭터도 성장하지 못한 유아기적 공주에서 머물러 버릴 것입니다. 효선이 서우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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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 07:57




수목드라마 뜨거운 전쟁이 시작되었는데요, 시청자 입장으로서는 어느 프로를 볼까 골라보는 즐거운 고민도 하게 되네요. 신데렐라 언니, 개인의 취향, 검사 프린세스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드라마거든요. 제가 먼저 본 드라마는 말이 필요없는 배우, 국민여동생 문근영이 악역으로 변신했다고 화제가 된 신데렐라 언니에요. 첫방송을 보는 내내 연기자들의 숨소리까지 집중하게 만들더라고요. 서늘하면서도 반항적인 눈매로 안방에 돌아 온 문근영, 순수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것같은 서우, 미소 한 방에 주위 사람이 다 착해질 것 같은 천정명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캐릭터가 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농익은 중견연기자 이미숙과 김갑수의 열연은 드라마 전체를 끌고가는 힘이 넘쳤습니다.
신데렐라 언니는 동화가 모티브가 된 것도 흥미롭지만, 드라마에 흐르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들이 상황에 따라 물과 기름이 되기도 하는 것때문에 흥미롭습니다. 신데렐라 언니 두 여주인공 은조와 효선은 각각 보이는 상처와 보이지 않는 상처 속에 갇혀있는 인물들입니다. 두 사람의 상처는 아이러니하게도 은조에게는 엄마의 존재, 효선에게는 엄마의 부재입니다.  

신데렐라 언니 첫회는 은조(문근영)와 송강숙(이미숙) 모녀가 대성도가 구효선(서우), 구대성(김갑수) 부녀와 한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어요. 이야기는 털보장씨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김치를 써는 은조의 귀 너머로 엄마 강숙과 함께 사는 털보의 싸움소리가 들려오지요. 늘 듣는 싸움소리라는 듯 무심히 칼질을 하는 은조의 눈은 마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서늘하면서 냉소적이기까지 합니다.
은조를 부르는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던 털보장씨를 밀치고 무작정 도망나와 택시안에서 옥신각신하는 이들 모녀가 평범한 엄마와 딸이 아니라는 것을 한마디로 보여줍니다. "갈데도 없이 무작정 나오면 어떡하냐" 며 돌아가자는 엄마 강숙에게 "등짝이 보라색이 될때까지 얻어 맞으면서 왜 그 남자와 사느냐, 이것때문에 들어가려는 것이냐" 며, 털보집에서 훔쳐 나온 다이아몬드 반지에 금새 마음을 바꿔 버리는 강숙(이미숙)입니다. 속물적인 엄마 강숙과 그로인해 상처받고 세상이 싫은 딸 은조의 대조적인 모습이었지요.
은조가 장씨네 집에서 나오면서 들고 나온 다이아몬드 반지는 우여곡절끝에 대성도가 구대성과 효선과의 인연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장씨가 부른 깡패들을 피해 기차 화장실에 들어갔던 은조가 혜선에게 반지를 맡기고, 반지를 찾으러 간 강숙에게 살갑게 대하는 은조를 이용해서 강숙은 구대성을 유혹하는데 성공하고, 고래등같은 대성도가의 안주인의 자리가 강숙의 코 앞에 다가 옵니다. 구대성이 강숙의 마지막 남자가 될지, 그녀의 박복한 인생을 보니 그것도 힘들어 보입니다.  
 
엄마의 존재, 그 이질적인 상처
깡패들에게 붙들려 털보집으로 돌아온 은조는 반지를 찾으러 간 엄마 강숙과 연락이 되지않자, 엄마가 자신을 버리려 했다는 오해를 하게 되지요. 혼자 털보장씨의 집을 나갈 계획을 세운 은조가 김치를 담그며 뇌까렸던 "만세"는 소름끼칠 정도로 은조의 감정을 보여주는 반전이었어요.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동시에 교차되는, 엄마라는 존재로부터의 해방을 자축하는 희미한 미소로 변하는 순간은 은조의 심리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 장면이었어요.
은조는 그런 아이입니다. 엄마는 늘 자신을 아프게 하는 존재입니다. 엄마로 인해, 아니 엄마가 두들겨 맞아가며 이남자 저남자 품을 옮겨다니며 살아가는 쓰레기 같은 인생으로 상처받은 아이에요. 그래서 엄마를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믿는... 

반면 효선은 6살때 엄마를 잃었지만 착하고 고운 심성으로 아빠와 주위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만 맏고 자란 아이입니다.  좋아하는 기훈이 오빠에게 "오빠는 내꺼야"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면서 아무한테나 장가가지 말라고 말하는 소아기적 발달상태에 머물러 있는 아이에요.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다 착해 보이는 동화 속 착한공주처럼요. 공주의 왕자는 기훈(천정명)이지요. 오빠의 말이라면 달이 네모라고 해도 맞다고 생각하는...
그런 효선에게 반지를 찾으러 나타난 아줌마는 효선의 안에 있는 상처를 아물게 하듯 엄마 자리에 들어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며 서우의 어리광스러운 말투와 행동이 고등학생이라 하기에는 오버스럽게 어린아이같다는 생각을 하며 봤는데요, 드라마 중간쯤 가니 서우가 효선의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효선은 일종의 해리성 퇴행장애를 앓는 아이처럼 보였거든요.
강숙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해주세요" 라는 부분에서, 이 아이는 사랑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엄마가 그리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려서 엄마를 잃은 효선은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은 어린시절의 성장단계에서 멈춘 아이였던 거예요. "아, 그래서 효선이가 그렇게 마냥 착해보이는 동화속에서 살고 있는 신데렐라였구나" 싶더군요. 이 아이에게는 어른들의 세계가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엄마를 잃었던 그 나이에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멈춰있던 것이지요.
그런데 비슷한 또래의 은조는 너무나 일찍 세상에 눈을 떠 버린 애늙은이에요. 이 남자 저 남자 품을 떠돌아다니는 엄마 강숙의 거지같은 인생을 보며,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속 세상이란 결코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강조하는 아이지요. 세상이 거지같고 쓰레기 같이 보였던 이유는 엄마때문이었고요. 엄마에게서 도망치고 싶지만, 은조의 발목을 붙드는 것은 어릴 때는 무서움이었고, 지금은 엄마가 자기때문에 그렇게 살고 있다는 엄마의 하소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이제 제발 사람답지 않은 남자들한테 붙어서 밥먹지 말자" 라고 엄마에게 반항하는 은조는, "너 때문에 내 팔자 더럽게 꼬일 것 알면서도 버릴 생각은 단 한 번도 안했다"는 말에 또 다시 엄마를 떠나지 못합니다. "너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 말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은조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족쇄입니다. 엄마라는 족쇄를 풀고 싶어 도망치고 싶은 은조, 엄마라는 족쇄에 묶이고 싶은 어리고 착한공주 구효선. 이렇듯 신데렐라 언니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너무 재미있는 드라마적인 장치입니다. 

여기에 두 여자를 동시에 관찰하듯 보는 인물, 홍기훈은 사랑이라는 또 다른 갈등구조를 예고하며 다가옵니다. 은조를 데리고 오는 길에 화장실에서 도망치는 은조를 쫓으면서 기훈은 은조의 슬픈 눈을 보게 되지요. 엄마에게 가지 않으려는 반항 속에 가슴을 시리게 하는 슬픔이 보였고, 세상을 경계하는 듯한 눈빛을 맞딱뜨리고는 전기충격을 받은 듯 놀라지요. 머리 뒤꽂이로 아무렇게나 찔러넣은 나무연필이 떨어지고,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문근영의 모습, 드라마를 떠나서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상처받은 영혼의 반항, 세상을 향한 경계, 그리고 내면의 슬픔까지 하나의 표정에서 버무려내는 문근영,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요. "세상이 쉽지가 않아. 지금 어디 가봤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냐, 스무살만 넘으면 좀 달라지니까 스무살 되면 가출하는 것이 어때?" 라고 말하는 처음 본 남자에게서 은조는 이상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이 남자, 달이 네모라고 해도 믿고 싶게 만든다. 귀신에 홀린 게 분명하다"
세상은 아름다운 동화나라였던 효선이와 세상은 쓰레기장이라고 생각했던 은조에게 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남자 홍기훈(천정명)에 대한 사랑이, 의붓자매 은조와 효선의 세상을 어떻게 바뀌게 하는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일 것 같습니다.
신데렐라 언니 첫방송을 보면서 문근영의 차갑고 냉소적 변신의 성공도 눈부셨지만, 드라마 속 은조와 효선에게 너무도 다른 색깔의 엄마를 연기하는 이미숙의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력은 말이 필요없었어요. 적당히 천박스럽고, 적당히 무식하면서, 적당히 우아한 모습이 하나의 캐릭터로 흐르는 이미숙의 연기는 자연스러움 자체였습니다. 천박함 속에서도 우아함이, 우아함 속에서도 감출 수 없는 천박함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여배우가 많지 않은데 말이지요.
연기자 이미숙은 완벽을 추구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특히 세월까지도 얼굴에 고스란히 간직한 이미숙은 그녀가 왜 프로인지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여배우들이 드라마에 복귀하면서 보다 더 젊어지려는 노력을 하는데, 이미숙은 맡은 역할의 나이까지 연기의 범주에 넣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가에 자글한 잔주름마저도 캐릭터의 일부로 보여주니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잊게 만듭니다.
기존의 착한 여동생을 버리고 새로운 이미지 까칠하고 반항적인 새끼 악녀로 돌아 온 문근영, 아홉개 꼬리를 감춘 간교하고 팔자 드센 어미 여우 이미숙, 이들 모녀의 팜므파탈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데렐라 언니 다음회가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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