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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2 선덕여왕: 그들만의 정치 이야기, 고현정 죽이기 우려된다 (4)
2009.07.22 11:03





지리한 장마같았던 선덕여왕이 덕만의 출생에 대한 비밀의 열쇠가 풀리면서 일단 비는 멈춘 것 같아보인다. 
덕만은 어머니 소화가 남긴 소엽도를 통해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한걸음 다가섰다. 17,18회의 내용은 소엽도를 중심으로 덕만의 출생의 비밀 밝히기였다. 소엽도가 진흥대제가 남긴 유품임을 알게 된 덕만은 자신이 황실의 물건을 가지고 있게 된 연유를 풀고자 모험을 시도한다. 소엽도를 가지고 있다며 자신의 소엽도를 그려 왕과 만나고자 한다는 상소를 죽방과 고도를 시켜 왕이 읽는 장계 속에 몰래 넣었던 것이다. 덕만이 몰래 올린 상소는 을제(신구)대등의 손에 들어가면서 덕만은 위험에 처하고 다행히 알천랑의 도움으로 덕만은 현장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덕만이 미실의 그림에서 소엽도를 보았다며 진흥대제의 소엽도에 대해 묻자, 천명은 소엽도에 대한 행방을 추적하다가 아버지 진평왕과 어머니로부터 다른 대답을 듣고 의문을 가진다. 소엽도, 소화, 문노, 칠숙이 사라진 날이 자신이 태어난 그날에 벌어진 일들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날의 사료를 뒤지다가 천명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에 대한 계시록을 찾게 된다.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쌍둥이였음을 알게 되었으나 나머지 쌍둥이가 여자아이였다는 말에 덕만이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버린다. 그러나 유신랑이 덕만이 여인이었음을 밝히면서 모든 의문을 풀고 덕만이 나머지 쌍둥이임을 알게된다(유신랑은 지난 전투에서 쓰러진 덕만을 보살피던 중에 덕만이 여자였음을 알게 되지 않았나 추축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18회분량의 선덕여왕을 시청해 오면서 몇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여전히 극의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하고 있음이 보였다. 선덕여왕은 그 시대적 인물들의 설정 오류로 이미 정통역사극은 될 수 없고, 그렇다고 황당무계한 퓨전사극이라 하기에는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들이 실제로 등장하고 있기 대문에 퓨전사극에도 분류되기는 힘들다. 사실과는 너무 먼 극의 스토리로 우리 역사상 첫 여왕이라는 선덕여왕을 재조명한다는 역사적 시각도 설득력을 잃어버렸다. 
선덕여왕은 미실과 선덕여왕의 두 축을 중심으로 한 권력쟁취를 위한 역사를 참조한 허구적인 정치사극이다. 그러나 이 두축의 균형은 드라마 초반부터 갖추지 못했다. 드라마의 흐름이 미실, 즉 고현정을 중심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극의 전개가 한사람에게 지나치게 편중되다 보니 억지가 많아지고 부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은 당연하게 되었다. 고현정은 혼자서 선덕여왕을 끌고 가려니 힘이 부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몇십년이 흘러도 같은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현정을 앞세운 드라마가 고현정 죽이기로 흘러갈 우려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덕만, 천명, 유신이 미실에 맞설 적수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혼자 공놀이 하고 있는 고현정에게는 라이벌이 필요한데 그 라이벌이 될 인물들에게 무게를 실어주지 않다보니 고현정의 카리스마 만들기가 오히려 고현정 죽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덕만은 천명과 유신랑과 짜고 첩자로 미실에게 접근하여 소싯적 자신이 읽었던 책을 읽어주러 소위 밤마실을 다녔다. 그때마다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미실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미실은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 이번회에서 그 그림이 밝혀졌다. 바로 소엽도로 호랑이를 죽인 진흥대제의 무용담을 담은 정밀화였다. 
그런데 그림을 본 덕만은 또다시 어색하기 그지없는 멍때린 장면으로 그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덩달아 나도 그림을 보니 소엽도, 덕만이 사막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기적의 소엽도가 호리호리한 풍운아의 목에 걸려 날리고 있지 않는가?
미실이 왜 진흥대제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그 깊은(?) 뜻이 천명에게 진흥대제의 '사람을 얻는 자가 시대의 주인이 된다' 말을 일깨워 주면서 천명의 사람을 치려한다고 위협하기 위함이었다지만, 덕만의 소엽도에 대한 비밀의 열쇠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터였다.

왜 미실인가? 덕만의 출생에 대한 비밀의 열쇠를 왜 미실을 통해 전해야만 했는지 생각해보니 제작진이 지나치게 고현정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의 중심에 미실을 두고 있다보니 소엽도의 열쇠마저 미실에게서 흘리는 것을 보며 미실, 즉 고현정을 지나치게 많이 부각시키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보이는 것이다.

MBC는 대하사극 드라마의 자존심을 고현정이라는 배우에 걸었다. 선덕여왕은 고현정을 내세운 사극이다. 첫회부터 고현정을 아역배우를 쓰지 않고 진흥대제(이순재)의 곁을 지키는 소녀(?)로 분장시켜 내보낸 이유도 첫방부터 고현정을 통해 시청자를 확보하려는 수였다. 그런데 그게 무리수였기 때문에 미실의 드라마상 나이와 전혀 맞지않는 고현정의 외모가 여전히 시비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미실의 나이를 계산하느라 골머리를 쓰다가 지금은 포기해 버렸지만..
이제는 고현정의 외모가 아니라 드라마에서의 무게에 대해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모든 걸 다 꿰뜷고 있는 천년묵은 여우같은 미실을 애송이 삼총사가 대적하기에는 확실히 무리다. 그들 삼총사는 도원결의를 흉내낸 우중결의를 했다. 삼총사 손 하나씩 포개면서 천명이 맹세의 서약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아자아자 화이팅!'하고 외쳐버려 쫓겨가는 가야인의 서러움을 목도하는 삼총사의 굳은 결의 분위기가 깨져버렸지만..
그런데 미실에게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바닥이 나버렸다. "두려우냐?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두가지다, 도망가거나 분노하는 것" 이 대사 벌써 몇번째로 보내주고 있는지 제작진을 알기나 할까? 미실 입으로도 또 숱하게 천명이나 덕만이 회상하면서. 그러다보니 억지로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세뇌시키고 있다는 느낌까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 삼총사에게는 두려운 미실이지만 시청자는 여전히 두렵지 않은 미실이다. 그녀의 카리스마도 바닥을 보이고 새로운 대사공략의 묘수도 못 찾아서 그런 모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육참골단으로 3회분을 했고, 사다함의 매화는 4회분량을 차지했다. 사람을 얻는자가 시대의 주인이 된다는 드라마 타이틀에 걸린 말도 수없이 반복되었고 여기에 인력구(人力口) 같은 양념까지 첨가하며 2회분을 더했다.

현재 미실에게는 강렬한 정치적 대사나 카리스마 혹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균형이다. 미실에게 독점되어 있는 힘을 덕만, 천명, 유신의 삼총사에게 나눠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번회의 우중결의가 '애송이 삼총사'를 '울트라 파워 삼총사'로 만들어 갈지 아니면 다시 미실에게 휘둘리는 모습으로 몇회를 또다시 질질 끌어갈지 모르겠지만 현시점에서는 삼총사의 변화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런 이유로 덕만의 출생에 대한 비밀은 빨리 풀려야 한다. 출생의 비밀을 더 연장하다가는 미실과 대적하는 선덕여왕이 아니라 신라의 소공녀 이야기가 되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비밀이라는 것은 매력적인 드라마의 장치이다. 그러나 비밀도 지나치게 끌다보면 답답해진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방향의 급속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덕만의 신분을 하루 빨리 회복시켜 진정 미실을 압박하는 스토리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실도 변화하고 더 강한 모습으로 이들 삼총사와 대결하는 모습으로 미실을 더욱 미실답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두려움, 그게 미실이다'는 고현정의 카리스마에 더 이상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청자는 미실이 두렵지 않다. 미실을 두려워 하는 이들은 멍때리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이들 삼총사 뿐이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두려움을 세뇌시키고 있을 뿐이다. 미실의 두려움을 세뇌시키는 보조적인 장치로 썼던 사다함의 매화 약발은 이제 끝나버렸다.

그러면 무엇으로 미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이들 삼총사를 강한 인물로 만들어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하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드라마가 간과하고 있는 백성, 즉 민중들의 등장이다.
나는 덕만이 미실에게 밤마실 다니면서 나눈 정치에 관한 선문답 같은 대화를 통해 백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혹자는 덕만은 백성에게서, 미실은 권력을 통해서 정치를 펴는 상반적인 인물이라고 분석을 했지만 드라마가 보여 준 덕만의 정치의식 성장은 부분은 미흡하다. 미실이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두려움이라는 부분 역시 너무 미흡하다.
이는 드라마가 그 백성, 즉 민초들을 간과해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번 가야인들의 강제 이주를 통해 보여줄 것을 기대했던 나는 또다시 실망만 하게 되었다. 단지 우중맹세 따위의 도원결의 흉내에 웃음만 나왔을 뿐이다. 

김유신은 가야 출신의 화랑이고 아버지 김서현의 가야인들의 정치 지도자이다. 그런데 집안의 이를 위해 가야인들의 이주에 이렇게 소극적인 분노만을 보여주었다. 김서현의 정치적인 입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유신이 이끄는 낭도들은 어떠한가? 화랑의 낭도들은 부족연합국인 신라에서는 그 지방 양민들의 자제들로 구성되었다. 김유신의 낭도들은 이들 가야국 출신들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덕만과 죽방, 고도를 제외하고.
그런데 이들 낭도들은 아무런 분노도 없었고, 울고 불고 할만한 사연도, 사람도 없었다. 이들 낭도 중에 한명도 가족들이 이주하지 않았단 말인가? 가야인들이 강제로 이주당하던 날 이들 낭도들은 유신이 안됐다는 말만 할 뿐 히히덕 거리며 닭싸움을 하고 있었다. 군대 내무반 같은 분위기를 일삼는 이들 낭도들은 코믹을 위한 엑스트라 역할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낭도들은 오늘날 군대처럼 격리된 집단생활을 하고 있지만 화랑은 격리집단이 아니었다. 일정기간 필요에 의해 수련을 하며 생업도 하던 조직이었다.

덕만이 낭도로 들어갔을 때 기대했던 것은 군대 내무반의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이들의 삶을 통해 민초들의 삶과 밀접하게 엮이면서 덕만의 정치의식, 혹은 미실의 절대권력에 대한 반정치의식의 성장을 기대했었다. 덕만이 경험했다는 어린 시절은 여곽에서 심부름하면서 틈틈이 문물에 대해 정보를 얻고 공부하는 정도였다. 소화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도망쳐야 했고. 이역만리 외국생활에서도 민초들의 삶이 덕만과 밀접하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계림으로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김유신의 용화낭도라는 현실과 격리된 일종의 군대 내무반으로 편입돼 버렸다.
신라는 앞으로 덕만이 다스려야 할 나라이다. 그런데 덕만은 이들 민초들과 아무런 교류가 없다. 하다못해 저잣거리의 백성이나 낭도들의 실제 가정 모습도 없다.

드라마가 놓친 것은 바로 죽방과 고도라는 인물의 역할이다. 이들을 낭도에 편입시키면서 덕만이 백성들의 삶을 엿보면서 미실의 정치에 공포정치에 반발하고, 정치의식을 배울 수 있었던 통로를 간과해 버린 것이다. 죽방과 고도를 백성들의 실제 삶 속에 던져놓았다면 이문식이라는 걸쭉한 배우를 통해 덕만이 간접, 혹은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민중들의 생각을 보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민중들과의 소통통로가 될 수 있었을 이들을 기회주의적인 도둑놈들로 그리면서 덕만의 백성들과의 소통 창구의 길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화를 이역만리 타클라마칸이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 숨어살면서 민초들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주었다면 죽방과 고도의 역할에 대한 미련도 작겠지만 그렇지 못했으니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따라서 선덕여왕은 애초에 미실의 절대권력에 반하여 등극하는 여왕이 아니라 혈족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되는 반쪽짜리 여왕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민중들과 위정자의 소통은 중요한 덕목이다. 미실이 백성을 힘으로 누르려 한 그 두려움의 실체도 이 드라마에서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단지 미실이 소문냈다는 '미실은 어린아이도 잡아먹는다'는 입소문 뿐이었다. 눈으로 확인하는 백성들의 분노, 미실의 공포정치가 어떤 식으로 행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단지 소문으로만 보여줄 뿐이다. 드라마에 나와야 할 제3의 주인공인 백성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극들에서 왜 저잣거리나 양민들의 고달픈 현실을 주인공과 결부시켜 보여줬는가? 그 이유는 주인공의 이유있는 분노와 성장을 그리기 위해서이다.
미실을 통해 드라마는 끊임없이 두려움을 이기려면 도망가거나 분노하라고 한다. 삼총사의 분노를 끌어내기 위함이지만 그들이 분노해야 하는 상대는 미실이 아니다. 미실에 의해 자행되는 백성들의 핍박받는 현실에 분노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극히 개인적으로 분노한다. 천명, 유신, 덕만 모두 미실 개인에 분노하고 있다. 백성들이 배제되고 있는 그들의 분노는 결국 그들만의 정치싸움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선덕여왕은 그들만의 정치이야기만이 될 뿐이며 덕만이 여왕으로 등극해야 할 당위성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미실과 덕만의 구체적인 정치차별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민초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배제된 채 선문답 같은 정치논쟁만으로 정치차별화를 보여준다면 정치사극으로서의 선덕여왕은 실패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

알천랑이 들어오면 사총사, 다시 김춘추가 합세해서 지구방위수호대 독수리 5형제를 결성시키는 따위의 눈요기로 승부하지 말고 이제는 주인공들을 미실에 버금가도록 성장시켜야 한다. 머뭇거리다가는 고현정이라는 좋은 배우 죽이기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고현정은 이들 적수가 강해져야 더 강한 모습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고현정 주위의 인물들을 하나같이 허수아비처럼 모셔두고 있는 것이 고현정에게는 오히려 실이다. 고현정을 중심으로 한 안방정치에 국한되고 있는 무대를 백성 속으로 확대해야 하고, 병풍처럼 모셔져 있는 세종이나 설원공의 역할도 무게를 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현정의 맞수로 성장해 갈 삼총사의 극중 무게를 실어줘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지금 필요한 것은 고현정의 단독 카리스마가 아니다. 두 중심축들의 팽팽한 힘의 균형인 것이다. 더불어 정치의 근본이 되는 민초들의 모습 또한 현실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덕여왕은 고현정을 내세운 그들만의 정치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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