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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01 '천일의 약속' 수애, 시청자 울린 한마디 "아직 아냐" (8)
2011.11.01 09:15




지형과 재민, 그리고 동생 문권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것에 자존심 상해하고 분노하는 서연. 무너지지 않으리라 덧셈 뺄셈을 반복하고, 심지어 주기도문까지 영어로 외우며 자신의 병을 부정하던 서연이 무너지는 모습에 함께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동안 치매라는 것에 대해 너무나 피상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려 했던 제 머리가 산산히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네요. 그리고 당해보지 않았기에, 경험하지 않았기에, 머리로만 치매를 이해하고 아파하려 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연의 고통은 그동안 막연하게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미치지 못했고, 바보가 되어가는 것를 거부하는 몸부림이 먼저였지요. 비약보다는 단계적 심리묘사를 해가는 작가의 섬세함이 와닿더군요. 그래요, 만약 치매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면 '내가 바보가 된다고?'라는 반응이 먼저일 듯합니다. 기억이나 추억이 지워져간다는 것은 다음 고통일 듯합니다.
재검을 받고 치료를 하자는 지형과 재민의 권유를 뿌리치는 서연, "난 멍청이 돼가면서 느리게 죽어가는 것보다, 빨리빨리 끝내고 싶어. 주변사람한테 폐끼치면서 동정받으면서,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그렇게 무거운 보따리고 길게 끌고 싶은 생각없어. 텅텅 빈 껍데기로 사고나 치면서 가까운 사람 아까운 시간 갉아 먹으면서...". 
그래도 치료를 받으며 시간을 벌자는 지형에게 착한 "남자 흉내 그만내고 꺼지라"며 독설을 내뱉은 서연이었지요. 그리고 덧붙이는 서연의 말이 가슴을 후벼파더군요. "강요하지마, 지금 이대로 난 아니다 우기게 놔둬". 자신이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서연은 강한 자기부정과 최면을 걸며 버티고 있었지요. 메모장을 써가며 일일이 체크하고, 어려운 단어들만 골라가며 반복해서 외워보고, 다른 사람들 누구에게나 있는 건망증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안간힘을 써가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되자 정말 사실이 되는 것같아 더 두렵고, 화나는 서연입니다. 들키고 싶지않은 치부, 홀라당 벗겨져 자신의 머리속을 누군가 들여다 보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화나는 서연이지요. 증세가 심해져 누구나 다 알아채기 전까지는 정상이고 싶었던 서연입니다. 그때는, 그때는 자신이 바보가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할테니까요. 그래서 상할 자존심도 남아있지 않고,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것도 모르고, 동정을 받고 있는 것도 모른채, 심지어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도 모른채, 텅빈 나무처럼 그렇게 멍하니 고통없이 그들의 눈을 마주할 수 있을 것같아서 말이지요.

죽을만큼 사랑했던 지형, 그래서 그 행복했던 어느 순간에는 이대로, 사랑하는고 행복한 상태로 그 시간이 정지되기를 바랐었고, 한 번쯤은 신이 그녀를 돌아다 봐주기를 바랐던 서연이었습니다. 불행으로 점철되었던 그녀 인생에서 단 한번의 축복으로 허락해 주기를 바라기도 했던 서연이었지요. 그러나 그것이 헛된 망상임을 알았을 때, 서연은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행복같은 것은 없다고, 신의 축복이나 선물따위는 그녀의 인생에 없다고, 아니 보란듯이 거절하겠다고, 그것이 이서연이 박지형에게 내세울 수 있는 자존심이었고, 신에 대항하는 무기라고 생각했던 서연이었지요.
그래서 그 사람이 결혼 날짜가 잡혔다고 이별통보를 받고서도 서연은 무너지지 않았지요. 그 사람 앞에서 무너지는 것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남루한 인생을 두번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 서연이 살고 싶다고, 아직은 아니라고 치매를 부정하며 무너져 우는 모습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더군요.  

서연은 재민에게 자신의 병을 알린 문권에게 불같이 화를 내지요. 차라리 그럴 수만 있다면 누나의 머리와 자기 머리를 바꾸고 싶다고, 대신 죽어줄 수 있다면 죽겠다는 동생 문권(박유환)의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문권의 말이 정말 제가 동생이어도 그럴 수 있겠다 싶어, 가슴 짠하게 울려오더군요. 이 드라마 왜 이리 슬퍼요?ㅠㅠ
죽을 날짜 받아 놓은 사람처럼,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진단을 받은 서연에게, 지금 그 누가 무슨 말을 한다한들 위로도, 병을 없애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머리를 대신 바꾸고 싶다는 동생 문권이나,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 서연이나 가슴만 답답하고 힘들 뿐이죠. 매순간 절망이 가슴을 숨도 쉬지 못하게 내리누르고 있는 것을, 서연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다 알지 못하겠지요. 
동생에게 불같이 화를 쏟아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배달전화번호를 찾아 만두국을 시키려는 서연, 그러나 가방을 회사에 두고 왔다는 문권의 말은 그녀의 가슴을 쿵!하고 내려치지요. 대신 전화를 걸겠다는 문권에게 "바보 취급하지마. 아직 아냐"라며, 만두국을 시키는 서연은 그렇게 바보가 되어 가는 자신과 마주하기를 겁내고 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을 잃어가며, 바보가 되어가면서 느껴야 하는 서연, "아직 아냐"라는 단 네글자의 짧은 말이 이렇게 가슴을 아리게 하다니, 드라마가 끝나고서도 한동안 멍해져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형(김래원)의 넋나간 표정처럼 그렇게 말이에요.
아직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 걸까? 서연은 아직은 바보가 되지 않았다고 언제까지 말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금 이대로 멈춰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겹치니 펑펑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연은 그 시간이라는 놈이 제트기처럼 빨리 지나가 주기를 바랐을 겁니다. 지형을 떠올려도 가슴 아프지 않게, 그래서 어느날 백화점에서 배가 불러 만나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며 지나갈 수 있게 말이지요. 5년 후에는 아빠가 된 지형, 10년 후에는 40대 아저씨가 된 지형을 만나도, 그저 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누렇게 희미해진 옛날 사진처럼, 내려놓은 지도 모르게 내려놓았다가, 언젠가는 공룡시대 화석처럼 그렇게 잊혀질 수 있게, 아니 잊을 수 있게 말이지요.
도로의 자동차들처럼 시간이 그렇게 휙휙 지나가 주길 바랐던 서연은, 이제는 제발 가지 말아달라고, 멈출 수 있으면 멈춰달라고, 아직은 아니고 싶다고 빌어보는 서연입니다.
비로소 혼자 감당하고자 하는 서연의 마음이 읽혀지기 시작하더군요. "자존심...너무 아프다. 나는, 내 인생은 마지막까지 이렇게 남루해야 되는 거니!...". 그동안 안간힘을 쓰고 서있던 서연이 맥이 풀려 쓰러져 버리고, 재민에게 "오빠, 나 좀 집에 데려다 줘"라며 오열하는데, 서연의 말이, "오빠 살려줘, 살고 싶어"처럼 들리면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아직은 살고 싶다고, 아직은 이서연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다고 말이지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병을 부정하던 서연이 장재민에게 안겨 엉엉 우는 장면은, 그냥 서연에게 투영되어 있는 수애의 모습을 보게 했습니다. 마치 자신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듯이, 살고 싶다고 아프게 우는데, 가슴을 먹먹하게 하더이다.
그동안 수애가 맡은 서연이라는 캐릭터가 대사의 부담감과 사랑, 이별,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 등 너무나 많은 감정선들이 얽혀있어서, 무엇이 그녀의 주된 고통인지 애매모호한 감이 있었는데, 그 혼재된 모든 감정들을 목놓아 우는 오열로 정리를 해주더군요. 아마도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서연때문에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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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8
  1. 온누리 2011.11.01 09:51 address edit & del reply

    기억을 잃어간다는 병
    그리고 어릴 적 한 대의 기억에서 멈추어 버린다는 이 병을 실제로 오랫동안 목격했습니다
    그것 하나만 갖고도 수애라는 배우가 배역을 맡은 역할이
    정말 힘들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아마도 저 친구이기에 더 실감이 나질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잘보고 갑니다^^

  2. 박씨아저씨 2011.11.01 09:52 address edit & del reply

    나 이거 아직 한번도 안보았는데~
    수애씨는 좋아합니다~ㅎㅎㅎ

  3. 굄돌 2011.11.01 10:19 address edit & del reply

    저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수애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기억을 잃어간다는 건 내가 누구인지,
    네가 누구인지를 모르게 된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오늘은 아침미사가 없는 날이라 편히 이웃방문을 하고 있네요.
    오후에 장례미사가 있어서 수업 전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4. 왕비마마 2011.11.01 11:26 address edit & del reply

    계백을 보느라 이 드라마는 항상 재방으로 보는데~
    어서 빨리 보고싶네요~ ^^:;;
    수애씨 워낙 연기파셨지만 진짜 이번엔 주인공으로 빙의 되신 듯~ ^^;;;

    울 누리님~
    기분 좋~은 11월 되셔요~ ^^

  5. 모피우스 2011.11.01 12: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수애 연기가 장난아니었습니다.

  6. 혜진 2011.11.01 16:53 address edit & del reply

    전 지금 초록누리님의 글을 읽으며.. 눈물이 주루룩 흐릅니다.
    저번주 수애가 거울보고 양치하며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건 치약,스킨 바디로션...이러면서
    알츠하이머 엿먹어라~라고 했던가요.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연기 잘 한다..라는 생각 보다.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구요. 아... 이 가을 요즘 저에게 최고의 드라마입니다. ㅠ.ㅠ

  7. 김형준 2011.11.01 19:40 address edit & del reply

    눈시울을 불키며 글을 읽었습니다.

    누군가의 삶. 아니 무섭지만 그 삶이

    내 삶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어서 더 가슴이 먹먹해옵니다.

    제 가까이에도 한 분이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더디 가는 시간 앞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그 분 생각이 나서 잠시 기도를 드립니다.

    초록누리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글이 참 아름답습니다.

  8. ee 2011.11.02 01:24 address edit & del reply

    fta로 죽네사네 하는데 드라마 처보고 이런거나 쓰고 앉았고...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