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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04 '넝쿨째 굴러온 당신' 차윤희-방말숙 2차 전쟁, 날카로운 문제제기 (10)
2012.06.04 07:41




기 센 며느리 차윤희와 싸가지 시누이 방말숙의 2차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코를 잡아 비틀어버린 이후 잠시 휴지기를 가졌던 두 사람이 말을 놓는 문제로 전면전으로 치달았는데요, 올케를 가르치겠다는 방말숙의 싸가지도 한참 미달되는 싸가지 발언이 발단이 되었지요.
바람 잘 날 없는 장수빌라 시월드의 이야기지만, 흥미로운 싸움 소재임에는 분명합니다. 결혼한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을 언어적인 서열관계의 굴욕감 비슷한 문제를 드라마에서 정식 소재로 화두를 던졌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침소봉대의 느낌도 들고 말이죠.
임신한 윤희에게 직장일을 그만두게 할 심산으로 임신 축하떡을 가지고 방송국을 찾아간 엄청애와 전막례는, 예기치 않은 일로 윤희의 임신사실을 오히려 부정해주고 윤희를 곤경에서 구해줬지요. 차윤희를 시기하는 라이벌 피디가 윤희의 임신사실을 이유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속셈을 읽었던 것이죠. 정말 이렇게 까지 여자의 적이 여자일까 싶기는 하지만, 아무튼 여자들 일하기 참 힘듭니다. 임신이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윤희를 피하는 직원들을 보면, 오버스럽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임신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꼬집는 장면이기도 했지요.
담배연기를 피해 창가로 책상을 옮겨주고, 감기에 걸린 직원이 윤희곁에서 피해주는 것이 좋은 배려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웬지 비꼬는 듯한 인상까지 주는 것을 보니 화도 나더군요. 과장확대하면 임신과 출산이 부부의 난자와 정자를 인공수정해 시험관에서 이뤄질 날이 오지않을까 하는 미래사회 공상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병원 시험관에서 부부의 이름이 적힌 수정관에서 자라는 태아들이라...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삭막한 세상이 아닐까요? 탯줄로 이어져 나누는 엄마와의 정서적 교감도 없이 미래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공장같은 세상을 생각하면 말이죠.
이렇게 된다면, 모성과는 별개로 기혼여성들이 몸도 편하고 직장생활도 임신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으니 여자들은 편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요즘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사실 사회적으로는 문제입니다. 출산률 저하 역시도 임신과 동시에 퇴직이 권고되는 이유 또한 포함되는 것이고 말이죠. 그런 삭막스런 세상을 바라지는 않겠죠. 그러니 임신여성들에게 사회적 배려, 직장에서도 배려하는 마인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욕은 혼자 먹고 있는 방말숙, 눈치없는 말숙이가 이번회도 사고를 치고 말았지요. 방송국에서 윤희의 임신을 숨겨준 일로 윤희의 폭풍감동을 고백받고 3대의 훈훈한 고부관계가 구축되나 싶었는데, 그만 말숙이 떡보자기를 열어 축임신이라는 커다란 글자를 보게 한 것이었지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아도 이렇게 가족이 될 수 있구나", 가슴이 울컥해졌다는 윤희의 감동과 감사의 인사가 떡이 돼버린 순간이었죠.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전막례와 엄청애, 왜 감동한거냐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윤희, 분위기 파악못하고 떡을 쳐묵쳐묵하고 있는 말숙에게 전막례 할머니 촌철멘트 던지십니다. "넌 어떻게 그리 개념이 없냐!!".
목욕탕을 다녀오는 길에 출근하는 윤희를 본 방말숙, 기어이 사단을 만들고 맙니다. 웬만하면 엄마랑 할머니 말좀 들으라면서 말이죠. 말을 안들으니 자기라도 나서서 가르쳐야 겠다는 말숙의 말에, 윤희 눈꼬리 30센티는 올라가고 머리에서 김이 펄펄 올라옵니다. "방말숙!!", 막나가냐는 말숙에게 윤희 한 술 더 떠 으름장까지 놔버리죠. "열두살이나 어린 너한테 존대말하기 싫다. 내 남편은 내동생한테 반말하는데 나는 왜 그래야 하니? 말..쑥..아". 어른들한테 이르겠다는 말에도 눈하나 깜짝않은 윤희입니다. "말해!".
거품물고 들어가는 말숙, 윤희가 반말을 했다고 일숙에게 말해봐도 큰 반응이 없고, 할머니에게 고자질을 하는 말숙이었죠. 말숙이의 성격을 아는 할머니지만, 그래도 반말은 경우가 아니라며 윤희를 불러 타이르지만, 윤희는 물러설 태세가 아닙니다. 말숙의 올케 길들이기와 윤희의 시누이 길들이기 한판 전쟁이 예고된 것이지요.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두 사람을 불러낸 일숙 앞에서 윤희와 말숙이 결국 핏대를 올려버렸는데요, 말을 올리지 못하겠다는 윤희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은 말숙의 버릇없는 태도와는 별개의 이유에서 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시댁에서 손아래 동생들에 대한 존댓말에 대한 잠재적인 불만이 제 안에도 있었나 봅니다. 아가씨라는 호칭이야 바꿀 수 없는 것이고, 생각해보니 손아래 시누이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쓰면서 느껴지는 서열관계에서 아래사람이 된 듯한 느낌때문일 겁니다. 일단 우리 말이라는 게 존대를 하면 서열관계에서 아래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말이죠. 가족관계에서는 유독 며느리에게만 시댁의 모든 가족들에게 나이불문 같은 항렬 이상에게는 존댓말을 하는 것이 관습법처럼 굳어있다는 것은 썩 유쾌한 관습법이 아닌 듯하고요. 워낙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굳어있어서 문제를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니 윤희의 말에 공감이 가더라고요.
"호칭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극존칭을 쓰다보니 아가씨가 오히려 저를 우습게 보고, 자기가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유쾌하지 않아요". 가족관계에서, 특히 시월드에서 며느리 입장이 되어 바라보는 문제점은 언어는 물론 서열관계에서도 모든 게 억울하네요. 아이를 낳아 그 집안 대를 이어줘야 하고, 층층이 알지도 못하는 조상들 제사챙겨 줘야 하고, 아이를 낳지못하면 대가 끊겼다고 원망받아, 아무튼 무슨 죄를 지었다고 여자는 결혼하면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어느 집의 며느리임을 우선하며 시월드를 받들고만 살아야 하는지 말입니다.
관습이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약속 내지는, 규율이라는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좋은 미풍양속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며느리에게 불문법처럼 굳어진 사회적 관습도 미풍양속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물론 존댓말은 형식적인 시댁에서의 언어불문률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속에서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서열 우선 심리는, 손아래 시누이가 올케의 존대말에 자신이 윗사람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자들은 이런 문제가 없는데, 여자들끼리의 일종의 보이지 않는 알력관계가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말이죠. 며느리도 여자, 시어머니도 여자, 시누이도 여자, 딸도 여자인데 가족관계에서는 왜 이렇게 복잡한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속 방귀남의 캐릭터가 국민남편, 국민아들 교과서라면, 차윤희가 부딪치고 있는 시월드는 신개념 내훈을 세우고 있는 것같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버선목 뒤집듯 내 자신도 뒤집어 보게도 합니다. 처남이나 처제는 쉽게 남편의 동생이 되는데, 왜 아가씨나 도련님은 동생이 되지 못하고 서로 어려운 가족관계에 머물러야 할까요? 차윤희와 방말숙은 어떤 해법으로 풀어갈지 두 사람의 2차전쟁이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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