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키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3.27 '추노' 업복이, 좌의정의 어디를 쏘았나? (29)
  2. 2010.03.25 '추노' 업복이와 초복이 노비키스에 담긴 의미 (32)
2010.03.27 07:32




추노 최종회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고, 인상깊었던 업복이의 최후는 드라마 추노에 관통하고 있는 분노, 울분, 설움, 희망,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의 과제까지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추노의 주인공은 업복이와 초복이라는 노비들, 가장 낮은 자 민초들이었습니다.
화려한 짐승남들의 저잣거리 무용담 속에서도 노비들의 이야기는 조용히 진행시켜 왔어요. 특히 과거 관동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업복이였음에도,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은 민초들이 그만큼 힘없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도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호랑이의 포효보다 강한 분노 한 방을 위해 숨죽이고 살게 했었지요. 하지만 조용한 사람이 더 무섭다고 업복이는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 낸 이름없는 영웅이었습니다. 
추노 최종회 최고의 명장면은 업복이가 궁궐로 들어가 화승총을 날리고, 붙잡혔던 15분여의 장면이었습니다. 대길이의 죽음은 뜨거운 사랑을 받은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것에, 그리고 이대길을 연기하는 장혁의 눈부신 연기에 감정선을 끓어오르게 했다면, 업복이는 그 담대함과 죽음 자체에 대한 의미가 컸던 부분이었어요. 제가 업복이의 죽음 부분을 따로 정리한 이유는 추노의 메시지가 업복이에게 함축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같은 노비가 있었다"
초복이를 월악산 영봉으로 보내고, 노비당 동지들을 향해 장례원으로 간 업복이는 처참하게 살해된 동료들의 시신과 수색하는 관원들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 숨 한자락이 붙어있던 끝봉이로부터 이 모든 것이 그분 그놈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지요.
"업복이랑 도망 가 둘이 살아. 무섭다, 그 놈들 정말 무서운 놈들..."이라며 끝봉이가 숨을 거둘 때 업복이의 그 울음이 아직도 눈물나게 합니다. 업복이 공형진은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 올라오는 슬픔과, 끝봉이 이름만 애타게 부르면서도 슬픔의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절절함을 소름끼치게 표현했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보고도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터져 나오는 곡성을 참으며 입만 벌리던 그 상황이 너무나 가슴 절절하게 와닿은 장면이었어요. 공형진의 소름끼치는 연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업복이는 노비당 그분이 무엇때문에 '노비들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 '양반세상을 뒤엎고 노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 라며 노비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희망을 주었는지, 왜 노비들을 이용해 양반사냥을 했었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르고 죽겠지요. 일을 꾸민 좌의정 이경식과 그분(그놈)을 죽여 버렸으니까요. 
업복이는 봤어요. 선혜청 습격의 성공으로 들떠 궁궐로 쳐들어 가자며, 내일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흥분하고 기대에 찼던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요. 홀로 가 본 궁궐의 담장은 성처럼 높고 견고했고, 지금까지 가장 커 보였던 주인양반집 문과는 비교도 안되게 높고 컸다는 것을요. 또한 좌의정이 그분을 시켜 자신들을 이용하고 버리려 했음을요. 
죽은 끝봉이에게 업복이 울며 말하지요. "내는 초복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야, 갸가 먼저 가서 기다린다 그랬는데...." . 기다리고 있는 초복이에게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요. 조용히 숨어 둘이 일콩달콩 살고 싶었을 업복이에요. 하지만 업복이는 알았어요. "그럼 세상은 누가 바꾼대요?" 라며 동지들에게 보냈던 초복이가 누구보다 자신의 결정을 잘했다고 할 것이라고요.
"내는 개죽음 당하지 않을 거라니,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을 거라니, 그렇게만 되면 개죽음은 아니라니, 안 그러나 초복아?" 
초복이에게 전해지지 않을 말이었지만, 여느 장수보다 멋지고 여느 혁명가보다 뜨거웠던 노비 업복이의 출정식 결의였어요. 총 네자루를 지고 광화문을 향해 당당하게 선 업복이는 광화문 수문병을 총으로 쏘고 궁궐로 진입했지요. 궁궐로 들어가는 업복이의 표정은 두려움없이 담대했고, 화승총을 든 손은 한치의 떨림도 없었어요. 양반들을 죽이면서 수없이 고민했고,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주춤거리기도 했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업복이의 모습이었어요. 궁궐로 들어가면서 반짝이 아버지를 돌아보며 지었던 쓴웃음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업복이의 표정같습니다.
그 분을 시켜 노비들을 이용한 우두머리가 좌의정임을 알게된 업복이는 좌의정을 향해 총을 겨눴습니다. 수하 뒤에 숨는 좌의정의 공포에 떠는 모습은 좌의정의 죽음보다 통쾌해 보였어요. 칼을 들고 덤벼드는 그분을 향해 한방, 변절자 조선비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한방, 그리고 좌의정을 향해 한방을 쏘고는 붙잡히고 말았지요.
바닥에 누운 업복이와 궁궐 밖 반짝이 아버지의 시선이 교차되는 장면, 그리고 반짝이 아버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장면은 추노에서 하고 싶었던 말, 드라마에 시종일관 흘렀던 민초들의 분노, 꺾을 수 없는 희망과 의지를 보여주었던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양반의 저녁 노리개로 팔려 가는 것을 보면서도, 슬픔이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던 반짝이 아버지였지요. 반짝이 아버지의 주먹은 새로운 업복이로 이어질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고, 순종하는 역사가 아닌 항거하는 역사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업복이는 닫혀가는 궁궐 밖 세상을 향해 외쳤어요. "노비도 사람이다" 라는 것을요.  '분노하지 않는 순종은 굴복이며, 희망도 없다'는 것을요.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이 나오지 않은 이유
업복이가 궁궐로 들어가 총을 쏜 사람은 그분과 조선비, 그리고 좌의정 이경식을 향해서 였어요. 이들 세사람을 향한 업복이의 총구가 달랐어요. 그분과 조선비를 향해서는 관동명포수답게 한 번에 심장을 명중해 버렸지요. 그런데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 장면은 좌의정을 향해서 총은 쐈지만, 좌의정 이경식이 쓰러지는 장면과 굴러떨어지는 관모만으로 좌의정의 죽음을 암시했지요. 저는 감독의 연출이 이렇게 담대하고 세심하게 함축적인 메시지의 복선을 깔았다는 데서 놀랍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업복이가 죄의정을 쏜 부위는 어디였을까요? 바로 좌의정의 머리였어요. 양반들 대갈통에 구멍을 내겠다는 말을 업복이가 늘 했었지요. 좌의정은 양반계층의 최고 지위에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에요. 그 양반들 대갈통을 향해 업복이가 총을 쐈던 것이지요. 드라마 추노는 매회 선혈이 낭자한 죽음이 이어졌지만,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만은 화면에서 처리하지 않았어요. 굴러떨어진 벼슬아치들의 상징인 관모로 좌의정의 죽음과 함축적인 의미, 그 모든 것을 보여 주었어요. 
도망노비와 양민들을 추쇄해서 그들을 북방으로 올려 성을 축성하자는 의견을 인조 임금에게 주청하고 나오던 좌의정 이경식을 죽인 곳은, 놀랍게도 조선의 중요한 정치를 논하던 근정전 입구인 근정문 앞이었습니다. 업복이는 좌의정의 몸뚱아리가 아닌 양반이라는 지배계층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쏜 것이었어요. 업복이는 양반들의 지배논리와 의식,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썩어빠진 정치를 향해 쏴 버린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세상을 바꾸자고 혁명을 노래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업복이의 혁명은 성공했습니다. 썩은 사회의 정점에 있는 좌의정을 죽였다는 점, 그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은 한걸음 가까워졌기 때문이에요.

가볍지 않은 업복이의 죽음
또 하나 업복이의 최후를 보며 새삼 놀라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업복이의 죽음은 비록 화면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업복이가 최후를 맞이 한 장소는 어디였을까요? 네, 바로 높디 높은 대궐,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쓰고 나오는 궁궐 안이었어요.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출생과 함께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가장 비천하고 힘없는 사람, 이름자 하나 제대로 짓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개똥이, 사월이, 오월이, 초복이, 업복이, 언년이로 불리웠던 노비가 조선에서 가장 큰 집, 가장 큰 힘을 가진 대궐 마당에서 죽었다는 것, 저는 이런 드라마 속 의미들이 너무 멋진 연출들이었고, 그 상징적인 의미에 박수를 치고 싶더군요. 
업복이는 죽어가며 닫혀가는 궁궐문 안에서 반짝이 아버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어요. 우리가 주인되는 세상, 사람이,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 그 세상에 누워 있다. 나는 죽지만 죽지 않는다. 아저씨가 있고, 월악산에 남겨 둔 초복이가 있고, 또 다른 끝봉이, 개놈이가 있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요. 포기하지 말자고요. 희망은 포기하는 순간 내 것이 될 수 없고, 꿈을 꾸는 순간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요. 초복이와 은실이의 대사가 업복이가 궁궐에서 죽어가며 전해 준 메시지인 것이에요. 
"저 해가 누구 건지 알아? 우리 거야. 왜냐면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업복이는 진정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이루겠다며 혁명을 꿈꿨던 송태하는 동지들의 죽음과 불분명한 명분으로 결국은 원손의 목숨과 언년이를 지키는 것도 작은 희망이라며 개인의 각성으로 이어졌습니다. 대길이 역시 마찬가지에요. 양반 상놈 없는 세상에서 언년이와 평생 함께 살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꿈이고 희망이었던 언년이를 잃고 사랑만 쫓는 추노꾼이 되고 말았어요. 물론 송태하나 대길이의 각성과 그 의미가 결코 작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업복이는 사랑하는 초복이에게 결국 가지 않는 길을 택했어요. 대길이나 송태하는 사랑을 택했지만, 업복이는 남은 초복이를 위해 세상을 향해 더 나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 지엄한 궁궐을 홀홀단신으로 들어가 가장 부조리한 사람 좌의정을 쏴버렸습니다. 좌의정 이경식같은 인물들은 반복해서 나오겠지요. 오포교의 자리에 더 악랄한 육포교가 앉았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또 다른 업복이와 초복이가 나오듯이 업복이의 외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끝나지 않은 민초들의 노래
저는 송태하도 죽었을 거라고 지난 글에서 예상했는데, 여하튼 대길이, 송태하, 업복이는 같은 지점 죽음에서 만났습니다. 죽음을 가장 강하게 거부했던 대길이에게 황철웅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고 물었지요. 대길이 "저 놈이 세상을 바꾼대잖아, 이 지랄 같은 세상" 이라고 대답해 줬을 때 황철웅은 무너졌어요. 이들이 달리는 이유, 희망의 의지는 결코 꺾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대길이 역시 새 세상을 위해 죽었어요. 송태하가 바꾸겠다는 세상, 그 세상과 언년이가 같은 무게였고, 같은 의미였기에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대길이는 설화에게 이렇게 좋은 날이라고 했을 지도 몰라요. 대길이 그랬지요. 누구나 죽을 수 없는 이유 하나쯤은 있는 거라고요. 대길이가 죽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언년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대길이는 또 죽을 수 있었던 것이에요. 언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마지막 대길의 죽음은 언년이와 함께 사는 앙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 송태하가 꿈꿨던 세상, 업복이가 꾸었던 세상과 명분을 함께 했어요. 청으로 도망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던 송태하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송태하 역시 비겁한 도망이 아니라, 떳떳한 죽음을 택함으로써 언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했어요. 언년이는 늘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궁금해 했고 답을 바라고 있었어요. 그래야 자신도 나리를 따르지 않겠느냐고요. 언년이에게 송태하가 "청으로 가지 않습니다" 라고 했을 때 고맙다고 했던 이유는 송태하가 또 다시 도망자의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을 겁니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희망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라는 말이 있지요. 드라마 추노는 이 희망을 놓치지 않는 한, 희망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살아있는 한 실패는 있어도 절망은 없음을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마지막 대길이가 태양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은 끝나지 않은 혁명, 민초들의 노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계속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업복이나 대길이는 죽었어도 죽지 않았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긴 여운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죽음으로 희망을 말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들 가슴에 살아있고,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우리들의 누이, 형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추노 시즌 2로 그 이야기를 계속 해주었으면 싶네요. 
추노의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수고하셨다는 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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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07:37




긴 시간 함께 해왔던 추노가 이제 마지막회를 남기고 있습니다. 추노의 결말은 누가 죽고 살아 남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천성일 작가와 곽정환 감독은 추노의 메세지를 단 한컷에 담아 추노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 그 한 컷에 추노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함축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추노의 주인공은 대길이도 송태하도 언년이도 아닌, 바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우리들이었습니다. 노비의 문신을 새기고 살아가는 수많은 업복이와 초복이의 모습을 닮은 우리들이 바로 추노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노비당을 이끌었던 그 분이 예상했던 대로 좌의정의 수하였고, 비열하고 추잡한 인간이었음이 드라마를 통해 드러나는 순간, 그 섬뜩한 웃음이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 분의 정체가 아니라 그 분의 대사때문이었어요. "냄새 나, 가까이 오지 마" 그리고는 개놈이를 사정없이 죽여버리지요. 어안이 벙벙한 끝봉이가 왜 우리한테 이러세요? 라고 물었지요. "모자란 놈들이라 다루기가 쉬우니까" 라고 그 분이 대답했는데, 저는 그 분이 지었던 싸이코같은 웃음보다 그 대사에 치를 떨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렇게 예리하게 대놓고 우리들에게 묻고 있는지, 그 대담성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민초를 대변하는 바닥인생들, 그들은 하나같이 모자라고 무식하고 우매한 민중들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글을 깨우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달콤한 사탕발림에 죽도록 이용당하고, 이용당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자각없는 민초들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였습니다. 무식하고 모자라면 당한다는... 결국 붓든 자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이름없는 개놈이와 끝봉이, 강아지들이 우리들의 모습이었던 것이죠.
추노의 메세지를 담아 낸 업복이와 초복이의 키스 이야기를 드라마 속에서 하겠습니다. 선혜청을 습격한 후 하루를 산속에서 자고 온 업복이는 초복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초복이 어디갔느냐고 묻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지요. 초복이가 시집을 갔다는... "누가 시집을 갔대요? 초복이가 왜 시집을 가요?"  왜 마음대로 시집을 보내느냐며 우리가 짐승도 아니고, 니들이 뭔데 사람을 마음대로 팔아 라고 업복이가 주인양반을 향해 울부짖고, 그 분노는 기어이 업복이 손에 낫을 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목숨을 살려달라는 말도 양반이랍시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자구절만 읊어대는 주인양반에게, 업복이가 알아듣게 얘기하라는 대목에서는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결국 무릎을 꿇고 목숨을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모습이 통쾌하기까지 했네요. 주인 양반을 위해 풀질하고 곡식 추수하던 낫이라는 연장이 업복이라는 노비의 손에서 신분을 거역하는 분노의 의미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초복이의 남편이 될 노비가 업복이의 얼굴에 새겨진 노비낙인을 보고 도망친 적이 있었느냐고 묻지요. 초복이는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다며 추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도망치면서 사는 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초복이는 자신의 남자가 있다며 첫날밤 합방을 거부하지요. 초복이는 여전히 당차고 야무졌습니다. 초복이는 정해 준 운명을 거부할 줄 아는 여자였어요. 노비의 운명은 주인이 정해 준 것이었어요. 시집가라면 가고, 남의 집으로 팔려가도 힘없이 주인의 말에 순종해야만 하는 가장 수동적이고, 자신의 의지가 없는 계층입니다. 초복이는 이렇게 남이 정해 준 운명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자기 운명을 자기가 개척하려는 인물인 게지요.
자기 남자가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순간 업복이의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초복이는 업복이가 자신을 데리러 와줄 것을 믿었고,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던 "어디가면 어련히 찾아갈려고..." 했던 말을 놓치지 않았어요. 양반들처럼 업복이가 구구절절 연애편지로 마음을 전한 일도 없었지만, 다리 아프다고 업어달라면 정말 다리가 아파서 그러는 줄 알고 등을 내밀었던 무신경한 아저씨 같았지만, 손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업복이의 순진한 사랑을 초복이도 다 알고 있었어요.
월악산 영봉으로 초복이를 홀로 보내며 업복이도 남자로서, 약한 개인으로서의 고민을 합니다. 끝봉이가 오늘 밤 장례원을 치기로 전했던 말도 다 잊고 싶은 업복이입니다.
"초복아, 우리 그냥 도망가서 우리 둘이 살까? 나는 사냥하고 너는 농사짓고...  호랑이 잡아서 큰 값에 팔아서 꽃놀이도 가고, 물놀이도 가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애기도 낳고... 우리 둘이 그냥 그렇게 살까? 그렇게 살길 바라나?"
이 말을 듣는 초복이도 속으로는 얼마나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을까 싶어요. 좋아하는 아저씨랑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서 살며, 해저녘에는 아저씨 등에 업여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쌀밥에 고기반찬이 아니어도, 강냉이 죽에 푸성귀만 먹어도, 다른 사내에게 팔려가지 않고 아저씨랑 사는 행복을 초복인들 어찌 꿈꾸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초복이는 업복이를 장례원 약속 장소로 가라고 말합니다. "그럼 세상은 누가 바꿔요? 가서 싸워야지요" 초복이는 남편이 될 뻔한 사람에게도 당당히 말했지요. 도망치며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요. 도망치며 살지 않을 거라고요. 초복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도 혁명에 대해서도 모르는 여자에요. 세상을 바꾸는 일에 왜 여자는 안되느냐고 따지고, 때로는 좋은 일을 위해 나쁜 사람과 손을 잡기도 하고 손을 놓기도 해야 한다는 가장 강하고 실존적인 여자에요.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을 잡아주길 바라면서도, 큰 일을 하라며 동지들을 배신하지 말라는 초복이에게 "그리 말해줘서 고맙다" 고 하는데, 초복이와 업복이의 이별은 가장 슬프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믿음직스러웠어요. 두려움 앞에 가장 먼저 도망칠 것 같았던 초복이와 업복이는 가장 강한 인물들이었어요.
초복이 업복이에게 오실거냐고 물었지요. "내가 널 거기다 혼자 두고 어찌 혼자 사나? 꼭 가겠다" 고 말한 업복이가 초복이를 찾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마지막회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요. 사람 취급도 못받던 노비 업복이에게 노비가 주인되는 새 세상에 대한 꿈을 말해 주었던 그 분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개놈이 끝봉이 모두에게 칼을 들이 댄 사실을 알고, 업복이 어디를 향해 그 분노를 터뜨릴지 가슴이 조마조마해요. 개죽음 당하지 않을 것이라 했던 업복이의 말에 끝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지게 되고요.
동지들을 향해 가던 업복이 걸음을 멈추고 초복이에게 키스를 했는데, 저는 그 장면이 지금까지 추노에서의 장면 중 가장 의미있고 아름다웠던 장면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업복이와 초복이의 볼에 새겨진 노비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드러났던 노비키스는 드라마 추노의 메시지였어요. 업복이와 초복이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도망노비들이에요. 초복이는 상전의 명령을 무시하고 팔려 간 집에서 도망나왔고, 업복이는 초복이를 팔아 넘긴 주인을 살해하고 도망나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업복이와 초복이의 도망은 이번 한 번이 아니었지요. 초복이는 과거에 도망쳤던 전력으로 낙인이 새겨졌고, 업복이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지금의 도망은 도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의 도망은 노비로서의 현실적인 고달픔으로 인한 도망이었지만, 이번의 도망은 꿈을 꾸기 위한 도망이었거든요. 사람답게 살겠다는 희망을 향해 현실을 거부하고 나온 것이에요. 
업복이가 주인양반에게 했던 말이 있어요. "니들이 뭔데 사람을 마음대로 팔아?" 업복이의 자각은 '사람'이라는 이 한마디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짐승처럼 취급받으면서도 노비라는 이유로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스스로 낮았던 자가 사람임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메세지는 작가가 언년이의 입을 통해서도 전했어요. "세상에 노비라는 것보다 비참한 것은 없답니다"  
마지막회 한 회를 남기고 많은 시간 업복이와 초복이의 애절한 이야기에 할애한 것은 마지막 엔딩장면 노비 문신이 각인된 업복이와 초복이의 키스신을 위한 것이었어요.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는 이별의 키스가 아니었어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초복이, 그냥 도망가서 살까? 라고 물었던 업복이에게 도망치지 말자고 말한 초복이, 현실을 회피하고 도망쳐서 숨어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가서 싸우라고 말한 초복이, "그리 말해줘서 고맙다" 며 만감이 교차하는 눈물과 함께 슬프게 웃는 업복이, 두 사람의 노비키스가 이 드라마가 말하는 희망의 메세지였습니다.
대길이 말했지요. "세상에 매여있는 것들은 말이야, 그게 다 노비란 말이지" 라고요. 돈, 권력, 세상적인 욕망들에 매여사는 우리 모두는 현대판 노비인지도 모릅니다. 알게 모르게 좌의정과 그 분으로 대변되는 권력에 농락당하고, 이용당하는 노비당 노비들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노비당 그 분이 좌의정에게 "심지어는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놈도 있다"라고 말하자, 좌의정 이경식이 "그건 곤란하시네. 희망은 희망으로 끝나야지. 그게 신념으로 바뀌면 아니 될 일이야"라고 말했지요. 좌의정의 말을 온 몸으로 거부한 이들이 업복이와 초복이었습니다. 초복이가 업복이의 "그냥 우리 둘이 살자"는 말을 거부하고 동지들에게 보낸 것, 그것은 세상이 언젠가는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어요.
드라마 추노는 노비키스를 통해 21C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노비처럼 살것인가, 아닌가" 에 대해서요. 희망과 신념을 버리지 않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업복이와 초복이, 가장 신분이 낮았고 약했지만, 가장 강한 사람들로 태어 난 업복이와 초복이의 노비키스가 드라마 추노의 핵심이자,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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