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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02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의 냉소,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반전 (21)
2011.12.02 08:16




40여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세종과 정기준, 두 사람의 만남이 이리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당혹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세종이 마지막으로 설득하고 품어야 할 사람이 정기준임을 알기에, 조금 더 아껴둘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은 세종도, 강채윤도 알게 되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겠지요. 소위 사대부의 보이지 않는 실세 밀본 본원이 백정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비밀조직을 이끌어 왔다는 것은 까무라칠 일이지요. 무엇보다 세종이 정기준을 어떻게 설득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즈음해서,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했던 역사적 의미를 보여 준 최만리와의 대화는 곱씹어야 할 명대사였습니다. 세종이 정기준을 설득하고 그의 사람으로 만들 논리가 최만리와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방지를 만난 강채윤, 제자이기에 앞서 그와 너무나 닮은 꼴인 강채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이방지는 강채윤이 밀본과 뜻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요.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주군의 여자를 연모하고 있는 모습이 지난날의 자신과 같음에 마음이 천근만근이지요.
이방지가 무휼에게 채윤과 소이의 앞날을 약속받는 장면이 가슴 찡했고, 주상이 하지 않는다면 무사로서 목숨을 빚진 자로서 약속한다는 무휼의 말은 금강석보다 강해 보였던 명장면이었죠. 칼을 든 무사들의 진정한 약속, 칼을 두고 맹세하는 모습이었기에 더욱이나 인상적이었더 장면이습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든 것이 중화를 거스르고 조선을 망하게 할 것이라며, 사대부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투신자살한 유생 박세명, 그가 남긴 격문이 도성 곳곳에 나붙어 조정대신들의 글자반포에 대한 반대와 세종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지기만 합니다.  
세종과의 독대를 청한 최만리, 세종이 최만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는, 군주이기에 앞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역사학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더이다.

최만리는 자신을 밀본이라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려도 좋다며, 밀본이 노비 서용의 과거급제 사건을 통해 모두가 글자를 아는 세상이 가져올 혼란을 말했다고 하지요.
"진정 그것이 혼란이기만 한 것이냐? 백성들이 글자를 안다면 배우고자 할 것이고, 잘 살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삶의 즐거움을 찾아 살아서 꿈틀거릴 것이다".
그 꿈틀이 신분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최만리의 반박에 대한 세종의 일갈은 통쾌하기 까지 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무너진다. 영원한 것이 어디있더냐. 전조 고려 전조를 보아라. 정체되어 썩다 사대부들에 의해 귀족들은 멸했다". 
최만리는 지지않고 지금은 고려와는 달리 시험으로 본다고 전조와의 차별성을 말하지만, 세종은 그 어폐를 꼬집습니다. "그 시험은 무엇으로 보느냐? 너희들만 아는 너희들의 글자 한자로 시험을 본다. 정작 한자를 아는 너희들만 관료가 되는 것 아니냐? 이대로라면 100년 뒤에는 서얼들의 과거가 금지될 것이고, 200년이 지나면 양반들만 시험을 보게 될 것이고, 300년이 지나면 양반을 사고팔고 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조선은 그렇게 경직될 것이고, 그 폐해 또한 날로 심해질 것이다. 역서를 보아라. 어느 나라의 역사든 다 그렇지 않느냐. 하여 그 폐해를 이겨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희망으로서 글자를 만든 것이다".
최만리는 더 거세게 반발합니다. "하오면 양반을 없앨 수 있습니까? 노비를 없앨 수 있습니까? 사농공상의 지위를 없앨 수 있습니까?".
"못한다. 못한다. 못한다".
"헌데 글자라는 희망만 백성들에게 내리면 그 희망으로 고신당하는 백성들은 어찌 합니까?".
"그것 또한 역서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길을 모색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찾고 찾는 중에 싸우고 타협하여 이뤄가야만 조선은 천세만세를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은 전조 고려처럼 썩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만리와의 대화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신분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임금이 신분질서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40 여년 밖에 되지 않은 갓 시작된 조선의 임금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드라마속 세종이 조선의 앞날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점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더군요. 이후 서얼금고법으로 서얼이 과거시험을 영구히 보지 못하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임진왜란후 세종의 말 그대로 조선사회 신분질서의 혼란으로 양반을 사고파는 일들이 성행했으니 말입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성리학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성리학으로 세워진 나라가 성리학의 이념논쟁, 일례를 들어 예송논쟁으로 시작된 당쟁이 조선을 정체되게 했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멸망하게 되었으니, 실로 세종의 혜안은 600년 뒤를 내다봤던 아니겠습니까. 세종의 글자가 한글로 통일되면서 보편화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이 망한 이후였으니, 개탄스럽기 까지 합니다.
한글이 조선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백성들의 의식은 세종의 말대로 꿈틀대며 일어났고, 신분사회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기에 이르렀으며, 공자왈 맹자왈 서책이나 끼고 한량짓하던 양반들은 도태되어 몰락하게 되었으며, 잡학이라 천시하던 잡문에 능한 중인, 양인들이 부를 축적해 갓떨어진 양반들을 조롱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나왔으니 말입니다.
세종은 성리학, 한자의 한계를 이리도 멀리 내다봤던 것입니다. 왜냐? 성리학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며, 기득권자들은 그 기득권으로 인해 망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집중되고 정체되어 있으면, 필히 그 권력에 맞서는 새로운 권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천년만년 갈 것같았던 고려가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신흥권력에 의해 망하는 것을 보았던 세종, 권력이란, 지배층이란, 영원히 보장된 금줄이 아니라는 것을 세종은 역사를 통해 알았던 것이지요.
세종이 백성에게 눈을 돌린 것은 드라마속에서는 똘복이의 모습을 통해서였지만,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은 백성이 주인공이 될 세상을 똘복이를 통해서 봤습니다. 백성은 분노하지 않는자가 아니라, 다만 분노를 감추고 있다는 것뿐임을, 그리고 분노할 이유 앞에서는 누구보다 무섭게 분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기준을 만나기로 결심한 세종, 그러나 행방이 묘연해진 이방지로 인해 정기준과의 만남은 불발되었지요. 마음이 심란한 세종은 무휼과 소이만을 데리고 정륜암에 오르고, 고기를 싸서 따라온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밝히면서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대치상황으로 뿌리깊은 나무 18회가 끝났습니다.
고기를 써는 개파이의 꽃반지를 보고 그가 탈바가지를 썼던 고수였음을 알아챈 무휼이 칼을 빼들고, 무휼과 개파이를 보던 세종이 가리온의 눈빛에 놀라 멍해져 있는데, 정기준이 뒷짐을 지고 그의 정체를 밝혔지요. 귀싸대기를 열두번도 때려주고 싶은 싸갈통 머리없는 모습으로 세종앞에 선 정기준에게, "네가 정기준이냐?"며 냉소로 마주하는 장면은 돈주고도 못볼 명장면이었습니다.
정기준, 그가 누구입니까? 성리학, 유학의 질서를 목숨보다 숭배하는 자 아닙니까? 그런데 삼강오륜이 기본인 자가 임금 앞에서 뒷짐을 지고 이름자까지 뱉는 모습은 이미 그의 사상적 오류를 고백하는 장면이나 다름없었지요. 세종을 시해하고 반역을 결심했다기로 서니, 그는 그가 신봉하는 성리학에서 단정하는 패륜을 저지른 것입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안 세종, 아니 한석규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냉소에 전율이 일더군요. 경악의 눈빛도 아닌 썩소를 날리다니, 반전 중의 반전장면이었으며 한석규가 해석하는 세종은 명물 중의 명물임을 느끼게 했지요.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비웃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을 향한 욕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실망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삼봉의 조선을 훔친 이방원의 조선,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어린 세종에게 자괴감을 안겨주었던 오랜 트라우마의 근원 정기준은 그렇게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고작 보여주는 것이 집현전 학사들을 죽이는 폭력이었고, 노비의 장원급제와 유생의 죽음으로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동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비웃었던 이방원의 모습과 빼다박은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정륜암에서 벌어지게 될 고수들의 대결과 함께 뭔지 모를 불안한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지만, 세종과 정기준이 벌일 논쟁의 승패는 세종의 냉소에서 이미 판가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정도전의 건국이념에 발이 묶여 한치의 발전도 없는 모습으로, 오히려 퇴보하고 정체된 모습의 정기준이었기에, 세종은 정기준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어린 유생시절의 패기와 의협심, 냉철한 지성은 사라지고, 왕권을 견제하는 재상총재제를 구현하겠다는 빌미는 있었지만, 정작 사대부 선비정신을 버린 것은 정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의 냉소 속에 읽혀졌던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 비웃음, 욕, 실망감은 그때문이었겠지요. 웃음 하나에도 내면을 모두 담아내다니, 한석규 무서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연기력입니다.

***'뿌리깊은 나무' 이전 리뷰글들 대부분이 또다시 블라인드처리되었네요ㅠㅠ.
글만 복구해서 다시 올려놓겠습니다. 워낙 애착이 있는 작품이고, 심혈을 기울여 쓴 글들이라 제 블로그에도 꼭 남겨두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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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21
  1. kangdante 2011.12.02 08:36 address edit & del reply

    예나 지금이나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 하면서
    결국은 가진자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야비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드라마죠?..

  2. 모피우스 2011.12.02 08:4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맛깔스런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어제 정말로 재미있었습니다.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3. ♡ 아로마 ♡ 2011.12.02 08:4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대상은 한석규씨죠..
    연기의 폭이 발로 표현할수가 없어요 ;;
    어제도 애들이랑 시간 가는줄 모르고 봤거든요..
    마지막 장면 완전 대박이었어용 ㅋ

    글구 무휼...
    전 한석규 다음으로 무휼...이분이 맘에 듭니다..
    다이어트 한 후에 인물도 나구~ 카리스마도 있구~ㅎㅎ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꽤 맘에 드네요 ^^;;

  4. 2011.12.02 08:53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5. 여왕의걸작 2011.12.02 10:2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어제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 심장이 쪼그라드는 줄 알았습니다.
    설마 무휼이 죽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다음 주까지 일주일을 어떻게 마음조리며 기다릴지..

    개파이의 정체가 너무 궁금하네요.
    저는 물속에 빠졌던 이방지가 나타나 도움을 주고
    아마 이방지의 죽음으로 희생이 일달락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6. kalms 2011.12.02 10:3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리뷰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만,
    제가 말꼬리만 좋아해서 (죄송하지만)
    세종의 대사는 ...
    역사를 아는 작가가 무리하게 갖다 붙인 거잖아요.
    저는 좀 불편하던데요...
    허구인 줄 다 알고 보고 있지만
    연기를 잘 하는 게 ... 진짜처럼 하는 것이듯이요.
    성의가 없었다고 할까요...

    • kalms 2011.12.02 10:44 신고 address edit & del

      마저 읽은 뒷부분은 시원시원하게 동감합니다.
      다만, 세종이 그리워하는 그 마음으로 정기준을 바라보다 보니
      역시나 제작진이 미워질 지경이었습니다.
      왕을 너무 미화한다는 지적도 있기는 합니다만,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을 미화하는 걸로 봐야겠죠.

  7. 날아라뽀 2011.12.02 11:0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무휼이 알아채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ㅋ
    재미있어요^^

  8. Ustyle9 2011.12.02 11:3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보고 갑니다. 어제는 앞부분을 퇴근 때문에 못봐써 덕분에 이야기 전개가 잘보였네요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9. 왕비마마 2011.12.02 11:49 address edit & del reply

    어제 정말 마지막에 소름이 쫘아악~
    이거 일일 드라마 해주면 안될까요??? ㅋㅋ

    울 초록누리님~
    따뜻~한 오늘 되셔요~ ^^

  10. 저두 2011.12.02 13:08 address edit & del reply

    한석규의 썩소에 아~~ 했습니다. 젤 좋았던장면이였고 정기준을 한순간 초라하게 만든 장면이였어요

  11. 하얀구름 2011.12.02 15:01 address edit & del reply

    초록누리님 언제나 글 참 잘쓰십니다 요즘 뿌리깊은 나무 보는재미로 삽니다 어제 가장 소름돋게 한 마지막 명장면 .. 세종과 정기준이 마주한 그 눈빛... 세종역할을 어찌 그리 잘 연기하는지... 다시금 한석규의 연기에 소름이 돋습니다 다음주가 넘 기다려지네요

  12. 김미정 2011.12.02 17:12 address edit & del reply

    잘보고갑니다. 드라마를 정말 깊이 이해하며 보시네요.^^
    어제는 정말 깊이 몰입해서 보느라 끝나고는 두통이 오더군요.

  13. 색연필 2011.12.02 17:50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한 회 한 회 볼 때 마다 한글에 놀라고 한석규의 연기에 새삼 또 놀라고 놀라고...정말이지 일주일이 10년 처럼 느껴 질 것 같습니다 ㅠㅠ

  14. lady 2011.12.02 19:15 address edit & del reply

    이 드라마가 한류상품으로 이름을 떨쳐서 우리 문화, 역사 그리고 한글의 우수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흥미롭게 기다리며 시청하고 있어요. 모든 배우의 뛰어난 연기까지 만점의 드라마입니다.

  15. 지나가다가.. 2011.12.02 20:55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그런데...왜?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 거예요??

  16. 큰소리뻥뻥 2011.12.03 06:23 address edit & del reply

    글쎄...
    세종대왕께서 조선의 미래를 내다보고 한글을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극과 역사는 구분되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17. ruwin126 2011.12.03 13:00 address edit & del reply

    "최만리와의 대화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신분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임금이 신분질서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입니다."
    읽다가 손발이 오그라드는줄 알았습니다.
    역사와 사극을 구분 못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

  18. 유머나라 2011.12.03 16:14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위대하신 분이어요, 킹 세종.
    이 드라마 보며 다시 한번 느꼈어요.
    아주 잘 만든 드라마여요~~

  19. ERIS 2011.12.05 15:54 address edit & del reply

    내가 느낀 것들을
    이렇게 다른 이의 글로 볼 수 있어서 참 기분이 오묘합니다.
    단지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혼자만의 망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암튼
    방갑습니다 ^^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그 내공... 배우고 싶을 정도입니다 ^^

    • 2011.12.05 16:07 address edit & del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