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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10 '싸인' 정병도의 유언, 자살인가 타살인가? (28)
2011.02.10 08:26




국과수로 실려 온 사체에는 개인의 구구절절한 사연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폐부를 몸에 남은 싸인으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산자의 입을 통해 전달받는 것보다 통렬한 고발입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사건일까 궁금하게 하는 드라마 싸인, 이번 사건은 20년전 국과수에서 있었던 대기업 간부들의 의문사 조작사건으로 정병도 원장의 과거로 시선을 돌렸지만, 단발적으로 보인 모습은 얼마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맷값재벌 사건을 드라마에서 단죄하려는 모습까지 복합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야구방망이 한대에 100만원씩 계산해서 화물연대 소속 탱크로리 운전기사를 때리고, 2천만원을 준 만행을 저지른 가해자 최철원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며칠전에 뉴스로 접했는데요, 드라마 싸인에 나온 한영그룹의 정차영 사장을 보니 아주 판박이더구만요. 최이한 경사에게 수표를 뿌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얼굴짝을 아주 불이 나도록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살인죄가 적용되는 범죄자이니만큼 죄값을 톡톡히 치르겠지만 말입니다. 이명한(전광렬)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 사회에는 죽어야 마땅한 쓰레기들이라는 말입니다.
맷값재벌의 통렬한 고발, 후련하다
드라마 싸인이 대담하게 우리 사회의 썩은 환부를 정면으로 그려가는 것을 보면서, 소름끼치게 무서우면서도 드라마에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서 보고 나면 속이 후련해요. 현실도 이렇게 속이 후련하게 진실과 정의가 이기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병도 원장이 목숨과 함께 가져가 버린 20년전의 진실, 그것은 약자라서 지키지 못하는 강자의 횡포에 대한 굴복이었습니다. 이명한 원장이 왜 권력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정병도 원장의 죽음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기도 했지요.
윤지훈의 아버지가 다녔던 한영그룹 중견간부들의 연이은 사망사건, 공통분모에 정차영 이사가 연루되어있음이 드러났지요. 사망하기 전에 하나같이 정차영을 만났다는 다이어리의 약속일정이 실마리가 되겠지만, 그놈 낯짝을 보니 그냥 당할 놈은 아닌 듯하더군요. 사인은 예고편에도 나왔듯이 독극물에 의한 사망으로 판명이 나지만,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어떻게 죽었느냐, 즉 독극물 사인이 아닌, 왜 죽였느냐의 메시지입니다.
또한 현재의 사건은 20년전 정차영의 부친이 저질렀던 사건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식지분으로 간부의 반발에 부딪히자 목숨을 앗아 버린 것이지요. 사고사를 위장해서 말입니다. 재벌의 불법적 재산축재 범죄행위였습니다. 재벌의 불법 상속과 증여, 은닉, 자금세탁, 해외로 빼돌리기 등등 생각나는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세세한 것까지 드라마에서 대사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재벌의 불법적 재산축적문제까지 드라마는 사회고발적 시선으로 메시지를 확대합니다. 드라마 싸인이 진정 드러내고 도려내고 고발하고 싶은 부분들이죠. 돈으로 진실까지 사버리고, 은폐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썩은 폐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20년전 한영그룹의 간부 5명이 자연사 혹은 사고사를 가장한 의문사를 당했는데, 왜 국과수가 그 사실을 은폐했느냐 입니다. 20년전 사체를 부검한 담당 부검관이 정병도 원장이었음을 알게 된 윤지훈, 자신의 아버지의 사인을 밝혀준 정병도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윤지훈이 충격을 받고 정병도 원장에게 향하지요. 같은 시각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인터뷰한 주인혁을 만난 고다경과, 사건파일을 통해 20년전에도 같은 의문사가 있었음을 알게 된 최이한과 정우진 검사도 정병도의 집을 향합니다. 네사람의 눈앞에 벌어진 충격적인 장면은 정병도 원장의 죽음이었습니다.
정병도와 이명한의 20년전 이야기
윤지훈의 전화를 받고 지훈을 기다리던 정병도 원장에게 먼저 모습을 나타난 인물은 뜻밖에도 이명한 원장이었습니다. 윤지훈이 20년전 한영그룹의 의문사를 조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 이명한이 정병도의 입을 막기 위해서였지요. 국과수의 존폐가 걸린 문제, 무엇보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정병도 원장의 치부를 윤지훈이 감당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윤지훈이 정병도 원장집에서 함께 살때 사용하던 지훈의 방에서 목맨 채로 발견된 정병도 원장, 애타게 선생님을 부르는 윤지훈의 절망스러운 흐느낌으로, 정병도 원장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눈 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본 듯한 박신양의 연기는 정말 말이 필요없더군요.
정병도 원장이 신념과 소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명한이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에, 우리는 사회부조리보다는 국과수의 과거 열악한 환경과 마주해야 합니다. 거액의 뒷돈이 오간 사체부검, 정병도가 소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과수를 다른 방식으로 지키고자 한 오늘의 이명한의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다. 재벌의 금권 앞에 과거 국과수는 힘없는 기구였을 뿐이었고, 국과수 부검의들의 직업적 사명관마저 흔들리게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요. 실제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국과수 법의학자들을 만나 사전조사를 했는데, 투철한 사명관과 직업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더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요. 한번도 국과수와 법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는 국과수라는 기구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기 보다는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망자의 몸을 다룬다는 일 자체가 소신과 사명감이 없다면 힘든 일이기에, 그들의 수고로움과 직업적 고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병도 원장의 죽음을 보며 이명한이 권력형 인간이 된 이유와 정병도 원장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명한이 권력이 필요했던 한 가지 이유는 20년전 정병도의 부검소견서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검소견서는 두 개였습니다. 윤지훈이 국기기록원에서 열람한 부검소견서는 정병도 원장이 국과수의 '무엇'-저는 자존심과 소신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과 바꾼 돈의 기록물이었습니다. 한영그룹에서 나온 큰 돈은 정병도 원장이 국과수의 열악한 설비투자에 사용했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명한이 보관하고 있는 진짜 부검소견서입니다. 이명한이 왜 진짜 부검소견서를 보관하고 있을까 에 대한 해답은 이명한만이 알고 있겠지만, 저는 국과수의 자존심과 소신이 굴복하는 것을 본 이명한이 절치부심의 증거로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힘을 가지겠다는 다짐같은 것이기도 하고요.
정병도의 유서, "우리는 과학적 진실만을 추구한다"
롤모델이었던 선배의 권력과 금권에 의한 굴복을 본 이명한이 권력을 가지려고 한 이유는, 굴복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법의관의 양심을 버린 한 번의 굴욕으로 아끼는 후배가 변질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정병도 원장, 20년 후 같은 사건을 마주하며 그가 선택한 것은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윤지훈에게만은 진실을 알리고 싶어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병도 원장이 죽음을 택할 정도로, 사랑하고 걱정한 사람은 윤지훈이었습니다.
정병도 원장은 죽음을 선택하면서 윤지훈에게 한 줄의 유서를 남겼지요. 지훈이 사용했던 방 대들보에 적힌 "우리는 오직 진실만 추구한다"는 국과수의 모토였습니다. 정병도 원장이 마지막 가는 길을 윤지훈의 방으로 택한 이유는 윤지훈에게 유서를 남기고 싶어서였겠지요. 정병도 원장이 윤지훈에게 남긴 유언은 진실만 보고 가는 국과수를 지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가 한 번의 실수로 평생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 일을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고, 법의관이 되겠다는 윤지훈에게 처음에도 그랬듯이 마지막까지도 진실에 귀를 기울이라는 가르침을 남기며 떠난 것이지요. 
권력과 야합하는 이명한에게도 그만의 명분은 존재합니다. 국과수를 지키겠다는 명분, 국과수의 위신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대외적인 명분을 내세우는 이명한과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국과수를 지키는 것이라는 윤지훈과의 대립은, 정병도원장의 죽음을 통해 더 첨예한 대립으로 치닫습니다.
"어려운 부탁인데 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명한이 정병도를 살해하지는 않았겠지요. 자살을 종용했을 것이고, 정병도는 진실을 안고 사라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정병도 원장의 죽음, 자살일까요, 타살일까요? 너무나 많은 대답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자살이었음에도 타살이었고, 타살이었음에도 자살이었으니 말입니다. 그 키를 쥐고 있는 이명한 원장, 그가 정의의 편에 있는가, 불의의 편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것은 '진실'이라는 한가지 입니다. 
20년전과 똑같은 상황을 마주한 이명한과 윤지훈, 두 사람은 어떤 길을 택할까요? 정병도 원장이 윤지훈에게 유언으로 전달한 글귀가 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훈이 20년전에 써둔 글귀, 국과수의 모토 "우리는 오직 과학적 진실만을 추구한다". 모든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아버지 대에서 저지른 업보를 되물림하고 있는 정차영, 그가 아버지가 20년전에 저지른 죄값까지 단죄받기를 바랍니다. 정병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큽니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권력형 타살도, 권력형 자살도 더이상은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0년 후 똑같이 발생하는 대기업 간부들의 의문사, 윤지훈이 맞딱뜨리게 될 20년 전의 진실과 현재의 진실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스승 정병도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두 인물, 윤지훈과 이명한은 결국 한지점에서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진실의 시작점입니다. 죽은자의 말을 듣느냐 산자의 말을 듣느냐의 갈림길이자, 국과수의 존립이유 지점이 되겠지요. 한 인간의 죽음을 통해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단면들,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는 싸인, 드라마를 통해 던지는 굵직한 메시지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재미, 그 이상의 의미를 던집니다. 갈수록 흥미에 의미를 더하는 드라마 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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