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웅'에 해당되는 글 16건
- 2010.02.25 '추노' 옥에 티 넘쳤던 15회, 치정극과 시대극의 갈림길에 서다 (27)
대길이가 양반 상놈 없는 평등세상을 지나가는 말처럼 꿈꿀때, 업복이가 종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양반 사냥을 나설 때, 그리고 송태하가 원손 석견을 내세워 썩은 정치를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꿈꿀 때 적어도 색깔은 다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비록 좌절된 꿈이라 할 지라도 무작정 박수쳐 주고 싶어 가슴이 뛰었었다. 그런데 혁명은 개뿔, 갑자기 드라마는 가족 치정극으로 치닫고 있으니 방향이 틀어져도 한참 틀어져 버렸다는 생각이다.
이번회는 숨죽이고 봤던 것 만큼 드라마 곳곳에 드러나는 옥에 티가 많았던 회차였다.
황철웅은 초능력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비에 가까운 황철웅은 초능력자이다. 시간차를 두고 나섰다고는 하나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향하던 송태하의 부하들과 유생들은 황철웅의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속도 앞에 칼을 맞고 고꾸라지거나 켁 소리도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나마 대사 몇번 하고 죽은 이광재는 행운이겠다. 이광재와 칼을 겨눌 때 선연했던 핏자국이 1초가 되기도 전에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한 칼로 변해 버린 것은 굳이 옥에 티라 하기에도 염치없을 정도이다.
질질 짜는 설화, 갈수록 짜증난다
최장군과 왕손이를 밤새 찾다 들어 온 대길이 기진맥진 탈진해서 쓰러져 자버렸는데, 다음날 설화는 대길이에게 자기 마음 좀 봐달라고 징징댄다. 사랑타령도 때와 장소를 가려해야지 이건 뭐 찰딱서니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언년이 보다 심한 껌딱지 민폐 캐릭터가 되고 있으니 극 초반에 주었던 설화의 애틋함이 한방에 무너져 버렸다. 물론 바늘에 찔려 가며 대길이 위해 손수 지었다는 배자도 눈물겨웠지만, 원손 석견을 구하고 뜬금없이 애정행각을 벌였던 송태하와 언년이의 키스장면보다 짜증났던 설화의 징징댐이었다.
마루에 놓인 최장군의 비녀와 왕손이의 팔뚝찌를 싼 송태하의 편지를 보고 달려나가는 대길을 쫓아가며 우는 설화의 모습 역시 감정신으로 넣기에는 극의 흐름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제는 저잣거리에서 눈물 질질짜며, 오라버니 하고 부르는 설화 모습이 언년이 못지 않게 짜증캐릭터로 변하고 있으니, 이건 떠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대길이 옆에 붙어서 질질 짜고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짜증스러울 뿐이다.
극의 흐름을 깨는 설화의 사랑타령은 드라마 흐름상 짜증스러운 옥에 티였다.
부하 이광재의 죽음을 보고 위험을 감지하고 서원을 향해 송태하가 달리기 시작했다. 발길이 한시가 급한데 그 와중에 언제 칼을 칭칭 쌌던 천을 풀었을까? 마른 풀을 베고 달려가는 송태하의 달리는 폼이 영상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그리 칼을 늘어 뜨리고 폼잡고 뛰기에는 사태가 심각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언년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송태하는 언년이가 울던 말던 시종일과 미소를 띤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현재의 부딪친 혼란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얘기한다. 부인은 울고 있는데 저렇게 책을 읽듯이 미소띠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허무했던 대길과 언년의 만남
추노가 지금까지 시청자들 애간장을 태우며 끌어왔던 관심 하나는 언년과 대길의 만남이었다. 장장 15회만에 대길이와 언년이 만났는데, 한마디로 아! 허무함이여!이다. 조선비가 원손에게 문후를 여쭙겠다는 말에 자리를 피해 준 언년이 마당에서 애를 태우며 초조해 하고 있을 때 대길이 나타났다. 장에서 대길을 보고 차마 그 앞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죄책감에 숨죽이고 울었던 언년이 굵은 눈물을 떨구었다.
"도방노비 따위가 평온할 줄 알았더냐?" 시리도록 차가운 대길의 대사에 언년이 확 깨는 질문 " 저를 찾으셨나요?" 순간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무너져 울어도 모자랄 판에 찾으셨느냐고 묻는 폼새가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차라리 가슴이라도 쥐어 뜯으며 주저 앉지...
이어지는 대길의 대사 "노비들은 말이다, 주인에게 질문할 자격이 없단다"
그런데 언년이 또 분위기 깨는 질문이 이어진다. "혹, 제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셨었는지요?"
대길이 "반상과 주종의 법도를 어기고 주인인 나를 배신하였느냐?"고 물으니 언년이 당찬 대사를 날리기는 했는데, 10년만에 만난 대길과 하늘의 뜻이니 사람답게 사는 법도니 논의할 시점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언년이가 사람답게 살려고 대길이 얼굴을 낫으로 긋고 불 지르고 나갔던 것도 아니고, 가지않으려고 버팅기면서 큰놈이에게 끌려 갔을 뿐이었는데, 마치 대길이라는 양반과 종이라는 갈등으로 집을 나가고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것처럼 자신을 옹호하니, 언년이가 똑똑하기는 하나 맹랑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대길이가 살아있는 것으로 행복하게 죽겠다며 목숨을 거두라는 언년이에게 대길이 시원하게 일갈한다. 뭐가 행복해 보이느냐고... 대길이 말 한번 잘했다 싶다. 차라리 "살아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지난 번 저자에서의 방백이 그나마 언년이 심정을 가장 잘 나타냈다 싶다.
허무하게 끝난 대길과 언년의 해후, 대길이의 심정만 절절하게 전해졌던 옥에 티였다.
시대극인가? 치정극인가? 갈림길에 서다
이번 회 드러난 추노의 가장 큰 옥에 티는 주인공들이 싸워야 할 적을 개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극으로서의 무게감을 떨어뜨리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을 스스로 베어내고 있다. 개인의 원한을 혁명의 이름으로 과대포장시켜 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말이다. 추노에 혁파해야 할 공공의 적이 없다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황철웅은 적이라 하기에는 개인적인 상처로 싸이코가 되어 가는 인물이니 적이라기 보다는 사회범죄자쯤으로 제껴 둬야 할 것 같다. 그럼 적이 좌의정일까? 좌의정이 혁명의 대상으로 혁파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좌의정 한 사람 쳐낸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느냐는 말이다. 좌의정이라는 실세의 손아귀에서 갈팡질팡하는 인조 역시 혁명의 제거 대상은 아니다.
그런데 혁명을 꿈꾸는 첫발을 떼기도 전에 송태하와 조선비측 유생은 황철웅의 무자비한 칼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고 말았다. 꿈이 꺾이는 첫 순간이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길과 언년, 송태하의 갈등을 지극히 개인적인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는 데서 드라마 추노가 말하고자 했던 혁명은 치정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대길이와 좌의정을 엮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모든 원한의 초석을 깔아 준 황철웅이라는 인물, 대단하다. 그러나 이대길, 송태하, 천지호까지 드라마의 주인공 대부분이 황철웅의 무자비한 칼에 의해 분노하고, 그 분노가 혁명으로 귀결되는 구도를 잡는 것은 위험하다. 추노가 원한극인지 치정극인지 시대극인지 판가름나는 갈림길에 서 있기때문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종영드라마 > 추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노' 신들린 듯한 장혁의 눈물연기, 가슴으로 울다 (31) | 2010.02.26 |
---|---|
'추노' 왕손이와 최장군 살아있다? (70) | 2010.02.25 |
'추노' 옥에 티 넘쳤던 15회, 치정극과 시대극의 갈림길에 서다 (27) | 2010.02.25 |
'추노' 황철웅이 대길패거리를 공격한 이유 (27) | 2010.02.24 |
'추노' 멍청한 대길이, 세상에 눈을 뜨다 (33) | 2010.02.20 |
'추노' 최장군과 왕손이의 희생, 왜? (21) | 2010.02.19 |


- 이전 댓글 더보기
-
평장군 2010.02.25 11:10
전 어제 보면서, 조명탓을 했었는데요, 송태하가 죽은것같은 부하 깨워서 말할때, 누워있는 부하는 조명없이 시꺼멓고, 앉아있는 송태하는 조명이 과해 얼굴이 허였게 떴었죠. ㅋ
-
추노는 이미막장 2010.02.25 12:11
추노의 문제점을 좀더 강력하게 비판했음하는데 좀 약한감이 있네요, 말도많고 탈도많은 추노이지만 무엇보다 문제인것은 PD와 작가죠, 언년이 민폐리스트도 사실 어떻게 보면 PD가 과도한 노출과 메이컵을 주문한것이니까요, 신년특집 해피투게더에 이다해 나왔을때 '사극인데 자꾸 벗기더라'는 말을 한적이 있죠, 이 시점이 추노 시작하기 전이니까 이미 찍어놨던 분량입니다. 캐릭터의 혼선과 말도안되는 억지설정부분은 벌써 8회인가 언년이오빠인 큰놈이가 죽을때부터 일찌감치 시작되었죠, 말도안되는 남매설정(피는 안섞였지만 대길의 배다른형의 여동생--> 결국 여동생), 그때부터 스토리가 꼬여버리고 작가도 이제 감당하지 못한다고 누누히 지적되었죠. 추노의 제작진들은 시청자들보고 '걍 비쥬얼이나 보고 만족해'라고 얘기하는거 같죠, 또 도망친 언년이를 시체가 되어서건 살아서건 잡아오라고 킬러를 보낸 언년이서방은 어찌된거죠? 큰놈이 죽고 대니안도 죽고 오히려 더 강력한 살수를 보내야 말이 되는건데, 송태하가 언년이서방이 보낸 킬러를 죽이자 언년이서방은 그냥 스토리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습니다. 추노꾼셋의 만남도 최장군돈을 반가르자는 대길이, 받아들이는 최장군 대길이는 양아치고 최장군은 겁쟁이가 되어버렸죠, 이런 수많은 논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한계와 PD의 좋은그림에만 몰두하기가 보입니다. 스토리의 연계성이나 캐릭터의 설정, 이런건 관심없죠, 걍 근육질남자들이 똥폼잡고 뛰어다니면 끝입니다. 아름다운 러브라인처럼 시작하더니 결국 최악의 더티한 애증만 보여주는 추노는 2010년 최고의 거품형드라마가 아닐까 싶네요~
-
크리스 2010.02.25 12:12
1회부터 열심히 보아온 시청잡니다. 초록누리님 글도 몇번 읽었는데 이제 처음 글 남기네요,항상 공감하며 잘 보고있습니다^^
정말 제가 느낀 것을 그대로 콕콕 집어 주시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길이가 있기에 봅니다.
어제 장혁의 얼굴 표정은 지금까지 보아온 중 최고였던 것 같아요,소름이 돋을듯 넘 감동하며 보았네요.
아무리 몰입하려해도 몰입이 안되는 오지호이다해분량이 줄고 다른 출연자들의 비중이 늘어나길 바래봅니다만 작가나 연출가가 두사람을 심히 배려하는게 제 눈에 보일정도니,그건 저만의 바램이겠지요..
오늘은 또 어떻게 전개될지.. -
백산사랑 2010.02.25 12:27
추노는 이미 스토리가 망가진 상태에서 한 장면을 위해 앞의 스토리는 전혀 무시하죠
키스신에서 송태하의 캐릭터는 무너졌고 프로포즈에서 언년이의 케릭터는 무너졌죠
언년이가 저는 여자의 도리만을 배웠습니다 이 부분에서 웃겨서 조선시대 여자의 도리만을 배운여자가 신혼 첫날밤 뛰쳐 나오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송태하에게 한마디 지지 않고 따지고 프로포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절하고...작가의 한계가 바닥이 났고 피디는 영상만을 생각하고 멋있는 대사를 만들기는 하는데 전혀 공감이 안되는 대사가 나오고 이미 처음에 들었던 명품 드라마는 졸작 드라마로 망가져 있네요 언년이와 송태하의 분량을 줄이면 그나마 나을것 같은데 둘이 국어책 읽는 연기자를 데리고 멋있는 장면을 만들려니 영 더욱더 바닥으로 향하네요 -
포도봉봉 2010.02.25 12:28
초록누리님~ 어쩜 이리 '콕콕' 찝어서 얘기해주시는지.. 정말 공감 백배입니다.
점점 갈수록 혁명은 저 멀리 산으로 가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죽어 나가는 사람은 또 왜이리 많은지...ㅠㅠ 왕손아~~ -
혁명... 2010.02.25 19:38
물론, '사랑을 찾으려고 추노꾼이 된 몰락한 양반댁 도련님 이대길'이 주인공이지만
'훈련원판관이었으나 누명을 쓰고 혁명군이 된 도망노비 송태하'
'대길의 여종이었으나 돈 주고 양반된 혜원(언년이)'
'孝를 위해 출세를, 출세를 위해 의리따위 저버리고 살인귀가 된 황철웅'
'제멋대로 살다가 궁궐님들의 간섭때문에 부하 다잃고 복수심만 남은 천지호'
'도망갔다가 붙잡혀서 얼굴에 노비낙인 찍힌 생각 많은 노비 업복이'
이들 모두가 주인공처럼 그려지는 드라마였습니다.
조선시대의 다양한 삶을 볼 수 있었는데요,
황철웅을 제외한 모두는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각자의 희노애락이 녹아든 삶, 삶이 얽혀진 역사, 역사를 바꾸려는 혁명, 혁명의 좌절로
이어질 것 같은데요.
혁명을 하나씩 하나씩 베어나가는 황철웅이 말합니다.
'다들 정의를 내세우며 권력을 잡으려 하지만, 정작 권력을 잡으면 권력에 길들여져서 스스로 가진 권력을 부끄럽지 않게 사용할 줄 모른다'
결국 세상은 바뀌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아마도 추노는 비극으로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황철웅의 살인행각은 계속 되어야 하고,
드라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성공적으로 표현되겠지요.
결국 모두의 꿈이 좌절되고,
이미 이렇게 실패된 혁명, 드라마의 외침은 시청자들에게 또다른 혁명의지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요.(그냥 제 생각입니다 ㅎㅎ)
이런 면에서, 드라마의 성격이 '혁명의 성공'이라기 보다는
각 삶의 비극적인 아름다움 속에 녹아있는 '혁명의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추노가 영상미 등에 신경을 쓰는 것도..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려는 의도로도 보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