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1.11.08 '천일의 약속' 이미숙, 거품물고 화내는 데도 빵 터진 대사 (8)
  2. 2011.11.02 '천일의 약속' 김래원, 두 여자 농락한 나쁜남자라고? (12)
  3. 2010.01.15 '하이킥' 세경의 눈물, 잔인하고 미웠다 (30)
2011.11.08 09:35




천일의 약속은 나레이션처럼 이어지는 수애의 독백이 유난히 길고 많이 나옵니다. 가끔은 대사가 잘 안들려 몇번을 반복하고서야 대사를 캐치할 수 있을 정도로 중얼거림이 많죠. 낮게 깔린 수애의 목소리가 이서연이라는 인물의 일상을, 덤덤하게 레코딩하듯이 들려주는 장면이 드라마가 진행될 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필요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가끔 정확한 대사전달이 되지 않아 답답한 장면도 있네요. 이번회도 간신히 몇번을 돌려서 어떤 대사는(옷 내리는 걸 잊어 먹고...) 알아들었는데, 다음 대사는(??%#&%^#&#...나는 아무 것도 생각하기가 싫다. 너무 피곤하다) 안들려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제 노트북의 스피커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제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짜증도 났지만, 그닥 중요하지 않은 대사인듯 해서 목숨 걸고 들을 필요는 없을 것같아 패스~.
여튼 이렇게 수애의 독백이 많고 길어지니, 드라마가 한없이 우울해지고 쳐지는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중요한 독백이기에 귀 쫑긋하고 드라마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도 있는 듯합니다. 수애의 긴 독백이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하고, 김수현작가가 대화체 대사보다는 독백대사를 고집하고 있을까? 답답한 불만도 있지만, 이는 천일의 약속에서 이서연에게 진행되고 있는 알츠하이머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이며, 기록으로만 남게 될 이서연의 기억이기에 굉장히 슬프고 아픈 대사들이죠. 이서연의 독백은 그녀가 누구였는지 잊기전에 기억해 두는 일기같은 자서전이니 말입니다. 먼 훗날 이것을 쓴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슬픈 일기장, 서연의 지워져 가는 기록들인 것이지요.
지형의 파혼선언으로 발칵 뒤집어진 향기네와 지형네, 가장 힘들 사람은 지형과 향기겠지만, 그 힘든 심정을 가장 직설적이고 감정적으로 육두문자 퍼레이드에 가까운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 분은 오현아 여사(이미숙)였지요.
지형의 어머니 강수정(김해숙)을 통해 서연은 지형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충격에 할말을 잃는 서연은, 결혼을 원한 적은 없었다고, 결혼 날짜 잡았다는 말과 함께 이미 한달 전에 서로 정리를 했다고 했지만, 지형의 어머니가 왜 자신을 만나러 왔는지를 알아듣지요. "지형이 우리에게 돌려줘요"라고 부탁하는 강수정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할 수밖에 없는 서연입니다. 정혼자가 있었음을 알았기에, 잠시 멈출 수 없는 감정을 허락해 주는 시간만큼만 갖자고 지형과의 사랑을 시작했던 서연은, 지형의 바보같은 행동을 막아달라고 재민에게 부탁하지요.
지형의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서연은 사촌언니네 빵집에서 빵을 한 보따리 사오지요. 빵을 꾸역꾸역 밀어넣는 서연, 꽈배기, 고로케, 어려서는 그토록 먹고 싶었던 빵이었지만 고모한테 사달라고 하기 미안해서 못 먹었고, 자기 스스로 살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그 지독한 가난때문에 못먹었던 설움에 오기와 자존심이 상해 못먹었던 빵을 입이 미어터지게 밀어넣고 맙니다. 개떡같은 자신의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한 인생을 빵과 함께 그렇게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었습니다. 울음을 삼켜가며 빵을 먹고 있는 수애의 모습이 어찌나 짠하고 가슴아프던지요.
처음에는 너무 환경이 차이가 나서 넘보면 안되는 사람인 것 같아 욕심내지 않았고, 사랑하면서는 정혼자가 있음에도 욕심내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던 서연이었습니다. 어쩌면 서연이가 이렇게 닥치는 대로 먹고 싶은 만큼 빵을 사서 먹듯이, 지형도 맘만 먹으면 잡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지 않았죠.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서연이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잡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조금은 덜 비참해지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아프게 보냈던 남자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판을 뒤집어 버렸다고 합니다. 이제와서, 왜...??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 자신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것때문에, 그 알량한 동정심과 연민을 사랑이라 말하면서 곁에 있겠다고? 재민에게 두들겨 패주라고 문자를 보내고도 서연은 지형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지요.
향기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에도 요지부동이던 지형은, 만나러 온다는 서연의 문자에 빛의 속도로 달려갑니다. 무슨 말을 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지형은 서연을 향해 달려갑니다. 재민이 지형의 파혼결정에 구세주 컴플렉스냐고 만류했지만, 지형의 결심을 그 누구도 바꾸지 못하지요. 부모님께 씻을 수 없는 불효이고, 착한 향기에게는 사람으로서 못할 짓한 짐승같은 놈이지만, 지형은 자신의 뒤늦은 결정을 더 강하게 밀어부칠 수 밖에 없습니다. 서연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누구도 이서연과 바꿀 사람이 없으니까, 이서연은 박지형이 지켜줘야 하니까 말입니다. 서연이 혼자 외로이 말라비틀어져 가는 것을 지형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서연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서연에게 매일같이 달려갈 자신이 보였고, 향기에게 매일 배신하고 상처주는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향기에게는 더 상처주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지형이지요.

"나 아직 이런 말 할 수 있을 때 말해두고 싶어서 달려왔어. 나 당신 삶까지 삼켜버릴 수 없어. 이 말 꼭 기억해 줘. 내가 당신 얼굴도 이름도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멍청이로 이 세상에서 밀려난 뒤에도 꼭 기억해 줘. 당신 삶까지 망가뜨릴 수 없어. 그건 내가 아는 사랑이 아냐. 내가 빠진 늪에 같이 끌어내리는 게 아냐. 난 점점 더 내가 아닌 게 돼 가는데 내가 사라져간단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랑은 늪에 빠진 너와는 상관없이 내 볼일 보는 게 아냐. 거부하지마. 내가 지켜줄게. 그래도 너는 너야. 죽어도, 숨이 멈춰도 너는 너야".
서연은 자신이 지형이라면 도망칠 거라고 거짓말을 하지요. "미쳤니? 똥싸고 오줌싸고, 침 질질 흘리는 치매한테 내 인생 적선하게?". 적선이라고 했느냐고 되묻는 지형에게 서연은 독하게 쏟아붓지요. "적선, 동정, 연민, 자기미화, 자기도취, 웃기는 기만, 유치한 객기"이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독한데 아프다는 게 정말일까?". 여전히 서연은 변한 것이 없는데, 여전히 강하고 차갑고 자존심 강한 서연인데, 그녀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은 지형입니다. "나는 고장나고 있어"라는 서연의 말이 지형의 가슴을 후벼파기 전까지는 말이죠.
지형의 결심을 완강하게 거부할 서연임을 알기에 꾸역꾸역 빵을 먹고 앉아있던 서연과 오버랩되어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이제는 더더구나 욕심내서는 안되는 사람이기에 말이지요. 자신이 어떻게 변해갈 지 아는 서연이기에, 치매라는 것이 환자 당사자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 힘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연은 지형을 더 힘껏 죽을 힘을 다해 밀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서연의 사랑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붙잡지 못했는데, 그것이 서연이 지형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이었는데, 지형이 다 주겠다고, 지켜주겠다고 합니다.
지형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면, 서연도 지형처럼 그를 지켜주려 했을 겁니다. 지형의 마음을 서연이 모르지 않습니다. 서연도 그랬을테니까요. 하지만 사랑하는 지형이 힘든 것은 싫은 서연입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서로의 고집을 꺾기 힘들다는 것도 너무도 잘 아는 두 사람입니다.
이번회 지형의 따귀를 때리고, 분이 풀리지 않아 무차별 매질을 하는 오현아(이미숙)의 욕설에 가까운 독설이 이미숙의 열연과 함께 빛났지요. 지형은 서연의 입장에서는 착한 남자, 지고 지순한 사랑이겠지만, 향기의 입장에서는 석달 열흘을 멍석말이를 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파렴치한 남자임에는 분명하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오빠 욕먹는 것 싫다며 끝까지 서연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는 착한 향기를 보며, 요즘 시대에 저런 아가씨도 있나 싶더군요. 내 딸이어도, 그깐 놈 잊어버리고 더 좋은 놈 만나서 보란 듯이 잘 살아라고 해줄텐데, 무조건 "제 탓입니다"라고만 하는 향기가 답답스럽기도 합니다. 향기같은 여자도 없을 듯하고, 치매가 진행된 여자 곁을 지키겠다고 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박지형같은 남자도 없을 듯하고, 아무튼 김수현 작가가 새로이 내놓은 캐릭터들은 사랑을 너무 지독스럽게 하네요.
지형과 서연의 사랑도 어찌보면 요즘 시대에서는 현미경을 들고 찾아봐도, 구글에서도 검색 불가한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라는 소재가 너무 흔하고 가끔은 솜털처럼 가볍게 드라마 소재로 이용되기도 하는데, 천일의 사랑은 오랜만에 묵직하게 감성을 흔드는 드라마입니다.

이번회 지형이 따귀를 맞고 몰매를 맞은 사건(?)이 있었지요. 오득오득 씹어먹어도 오현아(이미숙)의 분이 풀리겠습니까만은, 그 화딱지 솟는 심정을 가장 직설적이고, 감정적으로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 이미숙의 미친 열연이 돋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지형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자존심 깔고 자기 고약한 성격때문에 막말을 했다고 사과도 하지만, 지형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보고는 꼭지 팽글 도는 오현아였지요. "결혼식이 내일이야. 이 황당한 녀석아. 너 정신병자냐?". 오현아는 그냥 결혼식을 올리고 1년 뒤에 차라리 이혼을 하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아, 곁에 있던 강수정을 뜨악하게도 만들었지만, 박지형이라는 캐릭터의 애정과는 별개로 이미숙의 폭풍분노가 속시원하더군요.
오현아의 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죠. 도우미 들으라고 박지형을 고자로 만들어 버리지를 않나, 명예훼손에다 물질적 정신적 피해보상 등등 걸 수있는 것은 다 엮어서 청구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는 중이죠. 아, 이분의 다음 행동이 기대되고 아주 궁금하답니다. 워낙 예측불허한 말들이 이분 입에서 줄줄이 쏟아져 나와, 오현아 어록만 챙겨도 재미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오현아의 속은 활화산일지라도 말이지요. 
그리고 그 거친 입담속에서도 순간 빵터지게 웃긴 말이 나왔는데, 저 혼자 그 올드한 말의 정겨움에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미친듯이 웃었다지요. 지형이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자, 오현아가 쌍팔년도 홈드라마도 아니고, 우리 시대에 맞게 하자며 일어나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그 뒤에 터진 오현아의 쌍팔년도 보다 훨씬 이전의 용어가 저를 배꼽쥐게 했답니다. "너 정신병자냐? 이 악질 반동분자 같은 자식아". 악질 반동분자라는 오랜만에 듣는 욕(?)이 오현아라는 단순 직설적인 캐릭터에 맞춤형인 이미숙의 명품연기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비슷한 세대라서인지 이미숙의 욕설이, 올드한 감성을 자극하기도 해서 재미있었네요. 
이미숙의 연기에 대해 한 번 포스팅을 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미숙은 작품 속 캐릭터마다 강렬한 변신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팔색조같은 배우지요. 이번 천일의 약속에서는 뜨거운 모성애를 가진 것 같지도 않고, 희생적인 어머니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양과 품위로 치장한 귀부인도 아닌 듯한, 성형중독 오현아라는 캐릭터를 잘 보여주고 있지요. 짧은 등장, 짧은 장면에서도 '역시 이미숙이다'라는 연기내공이 각인되는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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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09:26




김수현 작가가 천일의 사랑을 시작하면서, "이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말이 생각나는데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번 6회를 보면서 이해가 되더군요. 그만큼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청자에게는 이해불가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골치아프게 꼬여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박지형과 이서연의 사랑은 불륜이었고, 이들의 사랑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힘든 설정들이 많지요. 
동정을 받아야 하는데 동정을 받을 수 없는 여자 이서연, 너무나 착한 여자 향기의 눈물을 쏟게 하는 것이기에 그 선택을 응원할 수 없게 만드는 박지형, 다른 여자에게 가겠다는 남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쁜 행각을 해서 시청자가 조금은 미워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게 만드는 착한 노향기. 이들의 삼각관계는 여타의 드라마에서 보던 삼각관계의 기본틀에서 빗겨나 있지요. 사랑의 방해꾼 악역이 있으면, 얼마나 드라마를 편히 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구도를 깨버린 김수현 작가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큰일났다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래원, 아니 극중 남자주인공 박지형은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싼 인물입니다.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고, 다른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현대판 열녀 노향기 뒤에서 딴 여자랑 연애를 한 녀석을 감싸줄 건덕지가 별로 없지요. 이서연을 사랑한다는 감정도, 서연을 버리고 노향기와 결혼을 감행하려 했던 것에서, 비겁한 놈으로 그 진정성이 퇴색되어 버렸고 말이지요. 결혼할 여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남의 남자 잠시 도둑질 좀해보자고, 맞불을 지핀 이서연 역시도, 동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지요.
게다가 낚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향기의 심상치않아 보이는 임신 가능성은 도저히 박지형을 곱게 봐줄 수 없게 합니다. 임신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튼 잠자리까지 같이 한 여자(그것도 두 사람 모두와)를 결혼 이틀 전에 버리는 남자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는 없지요. 노향기는 임신은 아닌 듯하지만, 만약 임신이라면 에고, 정말 머리에서 김이 폴폴 나오게 복잡해지겠네요.
박지형이라는 인물은 지형엄마와 향기의 말대로 정말 결혼생활을 한 자신이 없었고, 사랑이 아니었으면, 향기를 정리했어야 했습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우유부단하게 질질 끌고 오다, 결국은 이 사단을 만든 무책임한 남자가 맞아요. 지형을 위한 변명을 해줄 수 있다면, 양가 집안 사이에 얽혀있는 이해관계, 비슷한 집안끼리의 편한 결혼, 게다가 멸종 희귀종 같은 노향기의 지고지순한 사랑까지 겹쳐서, 지형이 사랑 하나만을 선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겠지요. 그래서 어찌 어찌 살다보면 잊혀지겠지, 그냥 저냥 아이낳고 살아지겠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밍기적거리다 결혼 문턱까지 이르렀고요.
그런데 서연에게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넋나간 사람처럼 서연의 문제에만 골똘하더니, 결국 향기에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털어놓고 결혼을 못하겠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지난 5회까지 서연을 중심으로 전개를 했다면, 이번 회는 지형의 파혼선언과 함께 박지형과 노향기를 둘러싼 인물들의 등장이 많았지요. 역시 내공의 중년배우들은 드라마를 꽉차게 했습니다. 이미숙, 박영규, 김해숙, 임채무 중년 4인방의 반란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드라마를 임팩트있게 끌고 나가더군요. 김수현 작가의 특징인 길고 강한 대사가 입에 착 달라붙어, 호흡마저 지문으로 소화시키는 중년배우들이었습니다.
특히 향기 엄마 오현아(이미숙)의 연기는 말이 필요없이 강렬했지요. 노향기의 엄마이자, 성깔 대단한 부자집 사모님의 캐릭터를 어쩌면 그렇게 실감나게 보여주는지, 그녀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와도, 나라도 저 상황에서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처럼 자연스럽더군요.
향기를 잘아는 엄마이기에 "내가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깨자고 했다"는 거짓말에 따귀를 올려붙이는 오현아, 정말 바보 등신같은 딸래미를 보는 엄마의 속터지는 심정을 그대로 보여줬지요. 씹어 물어뜰을 놈뿐이겠습니까? 빤스만 입혀서 광화문 네거리를 머리채를 잡고 열두바퀴를 돌고, 볼이 터지도록 귀싸대기를 맞아도 싼 놈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제부터 이 나쁜남자 박지형을 아껴주려고, 편을 들어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제 글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표현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바람둥이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남자 박지형의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해주려고 합니다.
박지형에게 노향기와의 결혼은 잘 포장된 고속도로를 근사한 럭셔리 중형세단을 타고 달리는 인생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이틀을 앞두고 고속도로와 중형세단을 버리고, 가시밭길 맨발을 선택했습니다. 부모님의 결사반대에도, 향기의 지고지순한 외사랑에도 나쁜 자식, 나쁜 남자가 되려는 박지형, 어쩌면 서연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냥 서연에게 나쁜 놈이 되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결혼을 했을 지도 모르지요. 살다가 도저히 서연을 잊을 수 없어서 이혼을 하고, 서연을 다시 찾았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고요.
결혼앨범 사진까지 찍고 청첩장까지 나왔는데, 정신 나간 미친놈 소리가 딱 어울리는 미친 짓을 하고야 마는 박지형을 보면서, 어쩌면 서연에게 이별통보를 했던 것보다, 향기의 사랑을 외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연은 지형의 사랑을 동정이라고, 극구 거부하리라는 것을 지형도 알고 있을 겁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서연이기에 지형의 미친 결정은 자신이 더 초라하고 비참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죠. 바보가 되어 가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약도 마다하는 서연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서연이, 바보가 되어 누군가의 짐이 된다는 것에 자존심 상하고, 아파하는 서연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지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형은 서연을 택하려고 합니다.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그의 생활을 얼마나 힘들고, 흔들리게 하고,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느끼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치매가 어떤 병이라는 것쯤은 지형도 알고 있겠지요. 자식도 힘겨워 치매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잖아요. 아, 물론 요양시설에 의탁하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도와 형편에 따라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그 가정의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서연을 택할 남자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까요? 제 자식이라도 솔직히 거품물고 뜯어 말리고 싶을 겁니다. 이 글을 읽는 분중에 미혼남성이 있다면, 지형의 입장에서 솔직히 서연의 곁을 지켜주겠다고, 결혼을 깰 수 있을까 자문해 보시면, 지형과 같은 선택을 하는 분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김수현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를 천일의 약속, 김수현 작가는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겠느냐고, 시청자들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제는 아주 먼 옛날의 동화가 돼버린, 공룡화석처럼 오래된 이야기가 돼버린 사랑, 그 주체하지 못할 미친 감정을 박지형과 이서연을 통해 끄집어 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여자에게만 착한 남자가 되려는 박지형의 사랑을, 그래서 응원해 주려고 합니다. 가장 힘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을 잃어가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박지형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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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5 13:42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만 보는 것은 힘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 힘이 들이 들지요. 준혁의 생일날 있었던 세경과 준혁의 에피소드는 사랑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감정에 눈이 멀어 버리는지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짝사랑하는 지훈이 동료들에게 세경이 자기집 가정부일을 하는 불쌍한 아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만 쏟던 세경이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세경이만큼 눈물도 흘려야 했지요. 삼촌에 대한 세경의 마음을 알아버린 준혁이 역시 슬펐고요. 더구나 자신의 생일날 생일선물로 받은 영화데이트였는데 데이트는 커녕 세경이 누나가 다른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버렸으니 준혁의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겠지요. 
지붕뜷고 하이킥 87, 88화를 보면서 저는 세경이가 처음으로 미워졌습니다. 준혁과의 악속을 잃어버릴 정도로 지훈이 사 준 빨간목도리는 세경에게 중요한 물건이었음을 모르지는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것은 그것이 하찮은 낙서쪼가리라고 하더라도 소중하니까요. 더더구나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지요.

제가 세경이 미웠던 이유는 두가지에요. 하나는 세경의 나약함이고, 다른 하나는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만큼 자기 감정에만 빠져있었기 때문이에요. 시트콤 속 세경이를 응원하는 이유는 착하기때문이라는 것은 부언할 필요는 없겠고, 동생을 데리고 꿋꿋하게 세상을 헤쳐가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배려심많고, 순수하고, 자존심도 있고, 비굴하지 않고, 남에게 손 빌리지 않으려는 당당함이 좋았어요.
지훈이 동료들에게 중학교만 졸업하고, 동생 데리고 우리집에서 가정부하는 불쌍한 애라는 말을 듣고 돌아서는 장면에서는 세경과 함께 저도 울었어요.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을까요? 그렇다고 지훈이가 미운 것도 아니에요. 지훈이는 세경을 상처받지 않게 미리 보호막을 쳐주려고 했던 것이었으까요. 동료들에게 지훈이 분명하게 말했지요. 끝까지 책임질 수 있으면 소개해 주겠다고요. 그리고 세경이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주었어요. 지훈이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세경을 대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애시당초에 버리라는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준 거지요.

그런데 세경은 지훈의 말을 듣고 넋이 나간듯 멍해져서, 지훈이가 사준 빨간 목도리를 어딘가에 흘려버렸지요. 병원까지 와서 찾아봤지만, 목도리는 찾지 못했고요. 영화관에서 기다리던 준혁은 병원으로 세경을 찾아오고, 목도리를 잃어버렸다며 우는 세경을 보았지요. 목도리가 지훈이 사준 것임을 알게 된 준혁은 세경이 지훈을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 버렸지요.
준혁의 마음이 깨질 듯 아프듯이 세경이 준 생일선물마저 깨져 있었어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세경이 생일선물로 피아노를 쳐주었지요. 세경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그런 세경을 바라보는 준혁의 마음에도 눈물이 흐르는 모습이었고요.
87화 준혁이 생일편을 보고 저는 처음에는 세경이때문에 울었고, 다음에는 피아노를 치는 세경을 바라보는 준혁의 슬픈 눈동자때문에 마음이 아팠어요. 세경이 불쌍하면서도 미워진 건 병원에서 지훈 앞에서 목도리를 잃어버렸다고 우는 장면에서부터 였나 봐요. 그리고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는 세경이 자기감정에만 빠져있다는 게 너무 크게 보였고, 피아노를 칠 때 우는 모습은 준혁에게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준혁의 입장에서지만 말이에요.
87화를 보고 글을 쓸까 생각했다가 다음회를 더 지켜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쓰지를 않았는데, 88화를 보면서 세경이가 또 미웠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예뻐하고 아꼈던 세경이었는데 말이에요.

물론 이 글은 어디까지나 시트콤 속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세경이는 드라마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세경이는 지훈이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지훈이와 정음의 사이를 세경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지훈이는 세경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도 분명히 했어요. 만약 지훈이가 정음을 사귀고 있으면서도 세경에게 가능성을 보여준다거나 세경을 흔든다면, 정말 지훈이는 나쁜 사람이에요. 쿨가이 지훈이 양다리를 걸칠 사람도 아니지만요.
그런데 병원에서 마주친 지훈에게 세경은 목도리를 잃어버렸다며 눈물을 보였지요. 지훈도 세경이가 자신을 남자로 보고 있음을 모르지 않아요. 그런데 지훈의 입장에서 자기가 사준 목도리를 잃어버렸다고 우는 세경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드라마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저는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상대방에게 마음이 없는 것이 미안할 수도 있겠고요, 어쩌면 짜증날 수도 있을 거에요.
세경이는 지훈에게 지훈이가 사준 목도리가 눈물이 범벅될 정도로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거에요.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전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역시 지훈의 입장에서지만요.
피아노 장면에서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물론 세경이 지훈이와 나눴던 대화를 준혁이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어요. 다만 짐작하건데 준혁이 뒤에 있었고, 다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아닐 수도 있고요. 여기서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문제는 세경은 준혁에게 생일선물로 줄게 이거밖에 없다며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를 연주했는데요, 연주를 하며 세경이 또 눈물을 흘리는 거에요.
물론 시트콤 속의 장면 자체는 피아노를 치는 세경의 마음, 그것을 바라보는 준혁의 마음까지 와닿았어요. 이는 우리가 제 3자 시청자의 관점에서 세경과 준혁의 감정을 모두 읽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되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드라마속 준혁이라면 입장이 다르지요. 목도리를 잃어버린 것, 지훈이 병원에서 했던 말, 준혁에게 미안한 마음 모든 것이 짬뽕되었겠지만, 그것은 세경 자신을 위한 연주였지, 준혁이를 위한 생일 축하연주는 아니었어요.
생일선물이라고 피아노를 치면서 우는 모습, 과연 준혁이 입장에서 어땠을까요? 세경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저는 세경이 준혁이에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준혁이가 세경을 좋아하는 것은 눈치 제로 세경이 몰랐다고 치더라도, 그렇게 들떠 문자를 날리던 준혁이의 마음은 전혀 보지를 못하는 세경의 모습입니다. 더군다나 생일이었고요. 자기감정에 몰입해서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던 거겠지요. 지훈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준혁이의 감정 역시 세경의 부서진 마음 앞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거에요.
그리고 이번 88화를 보면서 저는 세경의 변화없는 모습에 실망을 했어요. 지훈이가 사골국을 끓이지 말라고 했건만, 세경이는 미련곰퉁이처럼 또 끓이고 있는 거에요. 물론 책을 펴놓고 공부하고 있었지만요. 제가 세경이 잠시 미워졌던 것은 지훈을 여전히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 해바라기 사랑때문만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한순간에 접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헤아려보지 않고, 자기감정에만 충실한 순수사랑이 과연 상대방을 위한 것일까요? 부담스러워 하는 지훈이의 마음도 헤아려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니까요. 또한 세경이 지훈을 바라보는 것이 힘든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준혁의 마음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짝사랑은 똑같이 아픈 거니까요.  
지훈이 준 빨간목도리는 세경에게 사랑의 적신호였을지도 몰라요. 이번 회에 준혁이 청색 목도리를 둘러주었는데요, 똑같이 아파하는 준혁을 보니 두 사람에게 준혁이의 목도리 색깔처럼 청신호가 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원래 지훈이와 세경이를 응원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자꾸 세경이와 준혁이라인으로 마음이 기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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