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 10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1.05 '뿌리깊은 나무' 장혁, 어린 똘복이의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 (17)
  2. 2011.11.04 '뿌리깊은 나무 10회'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23)
2011.11.05 08:30




한석규, 장혁, 조진웅, 윤제문 등 명배우들의 열연이 드라마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 의문이었던 정기준의 정체가 백정 가리온으로 밝혀짐으로써 본격적으로 2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배우와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날로 높아지고 있지요.
한석규의 연기력이야 중언부언할 필요없고, 그의 곁을 묵직하게 지켜주는 무휼 조진웅은 호위무사를 넘어, 가장 믿음직한 친구같은 모습까지 극의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백정으로, 밤에는 밀본의 3대 본원으로 모습을 감추고 살아왔던 정기준 역의 윤제문은, 백정으로서도 정기준으로서도 미친연기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현전 학사의 의문사를 통해 그 종착점이 한글임을 밝혀갈 겸사복 강채윤이라는 인물을, 출중한 액션신과 능청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수사관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보이고 있는 장혁의 연기 또한, 큰 흠을 잡을 수 없이 좋습니다.
강채윤을 연기하는 장혁을 보며, 추노의 대길이가 오버랩된다는 지적도 많지만, 크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대길이와 강채윤은 전혀 다른 한과 증오를 가진 인물로 그 캐릭터 자체가 다른 인물이지요. 그런데도 추노의 대길이를 보는 듯한 느낌은 무술신이 많다는 점, 사극이라는 점, 그리고 분노를 표현하는 비슷한 감정선과 표정연기때문일 듯합니다.
강채윤이 추노의 대길이를 뛰어넘었느냐 아니냐는, 장혁의 연기가 진화와 성숙을 했느냐의 질문과 동일하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 추노는 거의 장혁이 원톱이었던 드라마였습니다. 원톱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미친연기와 대길에 대한 시청자들의 연민과 사랑이 절대적이었죠. 여기에 마초적인 야성미를 드러내고, 절권도를 비롯, 화려한 액션신은 추노의 꽃이었지요.
그런데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화려한 액션신을 거부하는 듯한 시청자들의 의견도 상당히 많다는 점이 이상합니다. 출상술이라는 흥미로운 무공도 와이어 액션이 드러나게 보이는 연출로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고, 기절한 윤필학사를 가벼이 들고 밤하늘을 유유히 나는 윤평(이수혁)이나, 대나무 숲에서 두 사람이 공중을 날아 주먹과 발을 교차하는 모습은 너무나 시각적으로만 보여지는 연출이었죠.
그럼에도 강채윤이라는 인물에 장혁의 캐스팅은 완벽합니다. 장혁의 감정선 주무기인 이글거리는 눈빛연기, 그리고 무술과 운동으로 단련된 몸놀림은, 장혁 외에 다른 배우를 생각하기 어렵게 할 정도지요. 권상우 정도가 이런 무술신을 연기와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떠오르기는 하지만, 장혁의 발음도 문제로 지적되는 마당에, 권상우의 발음은 정확한 발음을 요하는 사극에는 무리일 듯하고요.

그런데 장혁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뭔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뻥 하고 터지지 못하는 듯한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아니 너무 터뜨리려고 힘을 주다 보니, 기승전결의 감정선이 물흐르듯 흘려야 하는데, 중간과정이 생략된 듯한, 혹은 힘을 과도하게 넣은 모습이 가끔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때문일까 생각해 보니, 아역 똘복이에 대한 잔상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게 처음 감지된 장면이 주자소에 화재가 나고, 불속으로 뛰어들어 간 강채윤이 나인 소이를 구해 나왔던 엔딩장면이었습니다. 기절한 소이를 일으켜 다짜고짜 "누구야, 그 놈 누구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죠. 너무 갑작스러워서 앞 장면이 편집실수로 잘려나간 줄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다분히 의도된 장면이기는 했었지요.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무휼이 지난 날 어린 똘복이가 강채윤임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죠. 팔뚝에 남겨진 자신의 도흔을 보고 의문을 품었던 무휼은, 소이를 붙들고 소리를 지르는 강채윤을 보고, 그가 똘복임을 알았지요.
 "나 한짓골 똘복이야. 누구야, 어떤 개새끼야. 죽여버리겠어. 우리 아버지 죽인 원수 죽여 버리겠어"라며, 울부짖던 어린 똘복이를 기억해 내게 한 장면이죠. 반촌의 도담댁에게 똘복이를 맡긴 것도 무휼이었죠. 이 대목은 여전히 제가 물음표로 남겨두고 있는 부분입니다. 무휼이 왜 하필 밀본의 핵심인물인 도담댁에게 똘복이를 맡겼을까, 이런 궁금증? 
여튼 무휼은 "이 아이의 기를 꺽고 온순하게 만들어 자네 사람으로 만들게, 자네도 그 기를 꺾지 못하면 죽여야 하네"라며, 똘복이를 반촌에 맡겼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정도광을 만나 밀본지서와 아버지의 유서가 바뀌었고, 밀본의 수장 정기준을 찾으라는 어명은, 운명처럼 그와 마주해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지요. 

이방원의 공포정치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마방진으로 숨었던 유약한 임금에서, 우리 글자라는 경천동지할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이도. 한 장의 글귀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24년을 가장 천한 백정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웅크리고 있었던 정기준. 감히 임금의 목을 따겠다고 칼을 숨기고 궁으로 들어온 강채윤이라는 인물들은, 신분고하를 떠나 입체적이고, 드라마적인 캐릭터들이죠.
세월과 함께 그들은 모습도 변했고, 생각도 변했고, 성격도 달라졌습니다. 아역에서 성인배우로의 변화처럼 말이지요. 송중기의 세종과 한석규의 세종은 180도 달랐고, 어린 정기준과 백정 가리온은 경악스러운 탈바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캐릭터의 싱크로율을 따질 필요를 느끼게 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그런데 유독 어린 시절의 모습에 발목잡힌 배우가 장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는 장혁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작진의 주문때문이라는 생각이 큽니다. 성인 강채윤에게서 어린 똘복이를 연상시키게 하라는 주문이 느껴지는 장면이, 밑도끝도 없이 순간적으로 꽥 지르는 강채윤의 마지막 대사 장면이에요. 어린 똘복이의 모습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청자들이(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처음에는 아린 똘복이의 연기가 좋았는데, 회가 거듭되니 눈을 희번덕거리며, 빽빽 소리만 지르는 모습에 짜증난다는 원성이 늘어갔다는 것을 제작진이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역배우중 어린 똘복이가 그나마 연기는 가장 나았지만 말입니다.
장혁에게서 똘복이의 모습을 반복시키는 것이 지금 장혁의 연기에서 가장 문제점이라고 보여집니다. 윤평과 출상술을 겨뤘던 장면이 있었지요. 강채윤 역시 이방지의 출상술을 쓴다는 것에 놀란 윤평이 "너 누구냐!"고 묻자, 그동안 무게잡고 진지하게 합을 겨루던 강채윤이, "이제 좀 관심이 생기냐, 이 개자식아!!!!"라며, 똘복이 모드로 돌아가 급발진 고성을 질러 놀라게 해버렸지요. 이런 장혁의 급발진 고성이 가끔씩 나오고 있는데, 장혁의 감정선을 오히려 붕뜨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탁이 윤평의 칼을 맞고 누워있을 때, 박포가 입 잘못 놀렸다가 호되게 당하는 장면이 있었죠. "천한 목숨 간신히 붙여놨더니..."라는 말에 급흥분하는 강채윤은 박포를 죽일 듯이 살기로 내려쏘면서 "세상에 천한 사람 천한 신분은 있어도 천한 목숨은 없다. 똑똑히 새겨라, 뒤지기전에..."라며, 살기를 보였죠.
이 장면은 9회, 10회 밀본 하수인이라는 누명을 쓴 가리온의 무죄를 입증해 살리려는 강채윤으로 연결되는 복선이기도 했습니다. 의금부의 추포에 반항하고 도망친 가리온이 강채윤에게, "목숨이라고 다같은 목숨입니까? 제가 양반입니까, 사대부입니까, 양인도 못되고 버러지 팔자입니다. 백정이 금부에 끌려가면 그냥 죽는 겁니다. 소인의 목숨은 파리새끼 천한 목숨입니다" 라며, 강채윤을 자극했으니 말이지요. 제작진은 이렇게 치밀하고, 촘촘하게 대사 하나도 연결을 해 두었더군요.
"천한 목숨따위는 없는 거야, 니놈이 진정 억울하다면 억울하게 죽게 하지 않을 것이야..."라며, 가리온을 바라보는 강채윤의 눈은 젖어들고 있었고, 가리온에 대한 의심을 거두기도 했지요. 강채윤이 천한 목숨이라는 말에 왜 그렇게 연민을 가지고 분노하는지, 강채윤의 응어리진 한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이처럼 나직하게 대사를 이를 갈듯 씹으면 강채윤의 감정선이 더 도드라지는데, 똘복이 모드로 돌아가면 왠지 급발진 자동차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장혁이 연기하는 강채윤이라는 인물은 감정이 의뭉스럽지 못하고, 직설적이기는 합니다. 전장에서 생사를 오가며 잠 대신 이도를 향한 복수의 칼을 갈았던 집요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또한 능청스럽게 연기도 잘하는 처세술의 달인이기도 하고, 용의주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소리지르고 반항만 하던 어린 똘복이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죠.
그런데 눈동자를 뒤집으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만은 똘복이와 달라지지 않았지요. 이 모습을 똘복이를 기억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장혁의 연기를 과소평가하게 하는 역작용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담댁의 하수인 끝수가 어린 똘복이의 살기를 떠올리고 강채윤을 알아보기도 한다니, 장혁이 어린 돌복이와 싱크로율을 맞추기 위해 오버하는 연기가 계속 필요한 모양입니다. 어린 똘복이의 이미지를 요구하는 것이니, 장혁이 이를 의식해서 오버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똘복이라는 인물이 세종 이도에게 직간접적으로 한글을 창제하는 동기를 부여한 중요한 인물이기에, 어린 똘복이의 회상신이 자주 나오는 것이 이해는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장혁이 어린 똘복이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신경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잘하다 한 장면에서 오버해 버리면, 그냥 꽝이 돼버리는 그런 느낌이 똘복이의 모습이 나올 때입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장혁에게는 이 말을 무시하라는 말을 더 해주고 싶으니 말이지요. 정 필요하다면 끝말을 강한 고성으로 내지르는 것보다는, 톤을 내려 감정을 잘근잘근 씹는다는 느낌이 나오게 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장혁은 감정폭발의 기승전결을 잘 연결하는 배우입니다. 똘복이를 연상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억지스럽게 어린 똘복이와의 싱크로율을 맞추려는 것이 장혁의 표정연기에서는 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똘복이의 어린 시절 강한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장혁의 좋은 감정선을 더 자연스럽게 보여줄 듯합니다.


 **인용한 사진은 삭제했습니다. 제작사가 저작권 침해라는 이유로 글을 블라인드처리하기에, 발행 당일 이후에는 사진을 내림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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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4 01:11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의 비밀스러운 전개도 흥미진진했지만, 그동안 설왕설래했던 정기준의 정체가 백정 가리온(윤제문)이라는 사실은 충격과 경악이었습니다. 너무나 쉬운 단서들을 던져 준 제작진때문에 더 놀라운 반전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의심했지만, 가리온이 정기준이었군요. 지난 글에서 가리온이 정기준일 가능성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했었는데, 글이 삭제조치를 당한 것을 어제 알았습니다. 독자분들이 글을 읽기 위해 클릭했다가 아무 것도 뜨지 않은 화면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을지...저도 어이없고 기막히지만, 독자분들도 마찬가지였을 듯하네요.

최고의 반전, 가리온(윤제문)이 정기준이었다니....
비록 블라인드 처리되기는 했지만 가리온이 정기준일 것이라고 추측한 근거는, 아비가 도적들에게 수십발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말한데서 그가 정기준일 정황은 충분했지요. 손톱만큼의 재주를 뽐내다가 일가족이 죽었다는 말 역시 같은 배경을 가진 것이었고요. 또한 정기준의 용모파기와 싱크로울 100%일치하는 귀모양이 같다는 점, 그리고 집현전 학사들의 사인을 귀신같이 알아냈다는 점은 그가 윤평, 이방지와 관련된 인물임을 추측하게 했었습니다. 또한 허담학사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건익사공을 들었는데, 물 한방울로 죽었음에도 검안소에 왔을 때, 옷깃이 물에 젖어있었다고 말했던 점이 거짓말같다는 추측을 했었고요.
뼈속까지 양반사대부인 그가 조선에서 가장 천한 백정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길을 걸어왔던 것에서, 그의 참혹하고 외로운 길이 강채윤과 세종 이도의 그것과 같았다는 글을 참 정성스럽게도 썼는데, 제작사측이 없애버렸군요.
그런데 지난 9회에서는 가리온이 백정의 목숨은 파리새끼 목숨과도 같다며 울부짖는 모습에, 심하게 흔들려서 가리온이 천지계원이 아닐까 다른 추측도 했었습니다. 윤제문의 진심을 담은 연기가 정말 천한 백정의 애환을 절절하게 담았기에 더 감쪽같이 속았고 말이죠. 미친연기력의 윤제문, 역시 비중있는 배우의 무게감과 존재감은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상상과 추측의 재미가 드라마를 열배 즐겁게 즐기게 하기에, 뿌리깊은 나무는 너무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세종의 가장 강한 견제자 정기준이 세종의 하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있는 설정입니다. 위험한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이렇게 소름끼치게 실감되다니 말이죠.

이런 정리글이 삭제되어 참 분통이 터지네요. 이런 분석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드라마를 꼼꼼히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쉽게 저작권 침해라는 횡포와 행패에 가까운 행위로 싹둑 잘라 내버리지는 못할텐데, 개인적으로 마음이 불편하네요. 그외에 뿌리깊은 나무와 관련된 대부분의 리뷰글이 삭제조치로 블라인드처리되어, 지금 제 마음이 제 마음이 아니랍니다. 협조를 구해 다시 글만 복원하는 방법을 찾아 다시 복구는 해보겠지만, 영 씁쓸하네요.
앞으로는 글을 올리고 하루 뒤에 인용한 사진자료들은 다 삭제할 생각입니다. 사진없는 글이 드라마 리뷰를 보는 감흥을 떨어뜨리기는 하겠지만, 글 자체를 없애버리는 처사에 이렇게 대처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뿌리깊은 나무만 저작권 침해라는 이유로 삭제조치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천일의 약속은 그대로 두었던데 말입니다. 이는 SBS측보다는 제작사가 가위를 들고 있는 것같아 보이는데, 음,,,제작사 상당히 얄밉군요. 제가 인용한 사진으로 책받침을 만들어 팔아먹는 것도 아니고, 떡을 쪄 먹을 것도 아닌데... 다른 블로거의 글들은 무사한지 모르겠지만, 제 글은 지난 글들 모두 대부분 블라인드 처리되어 제가 표적이 되었나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속이 쓰려서 화풀이 좀 길게 했습니다ㅠㅠ.
여튼 가리온이 이신적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장면은 소름끼치는 반전이었습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 자체가 소름이었다기 보다는,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반전을 거듭하는 표정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굽신거리고 눈치만 보는 듯한 힘풀린 눈동자에 서서히 힘을 주더니, 수만볼트 안광을 쏘다내며, 이신적에게 본원의 명을 거역한 것을 추궁하는 장면은, 과연 윤제문이구나 라는 말이 튕겨나오게 하더군요. 비밀조직의 수장이며, 조선의 가장 천한 백정, 두 얼굴의 정기준 가리온, 그의 무섭도록 완벽한 1인2역에 감탄, 또 감탄했네요. 한석규, 장혁, 윤제문, 조진웅 이들 미친 4인방의 불꽃튀는 연기는 감히 경쟁을 한다는 말을 못하겠어요. 그저 자신들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자신을 던지고 있을 따름이라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들의 연기는 비교분석하지 않으려고요^^;;

남사철에게 놀아난 세종과 강채윤, 그리고 정기준 가리온
세종도 정기준도 강채윤도 시청자도 남사철의 자작극에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는데요, 남사철은 철저하게 사대부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꼴통 사대부였군요. 가부조사를 나가지 않으려는 남사철의 오줌 잘금거리는 공포심에서 비롯된 어마어마한 거짓말이 밀본의 본원을 드러내게 하고, 세종과 강채윤을 교묘하게 속이기 까지 했으니 말이죠. 가리온을 구출하기 위해 파옥을 단행하는 거사를 일으켰다면, 정기준이 정체가 세종과 강채윤에게도 들통이 났을텐데, 결국 소이와 강채윤, 세종이 합심해서 가장 큰 적을 구해낸 꼴이 되었으니, 일이 골치아프면서도 재미있게 되버렸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을 불러 한글을 검증받는 세종, 이번회는 귀요미 돋는 세종, 삐짐대왕 세종의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하며 깨알같은 재미도 주었지요. 성삼문과 박팽년의 입바른 지적에 당황스러워 하고, 귀엽게 화를 내는 세종, "냉정한 것들 같으니라고!"에 빵터지기도 하고, 무휼을 놀리는 세종의 모습도 귀엽기까지 했다죠. 강채윤에게 가리온의 무혐의를 밝힐 수있을 결정적 힌트를 주며 독대하는 자리에서, 무휼이 5보 떨어져 있었다고 토라지는 세종, "다음부터는 3보 이내에 있어야 되느니라. 보면은 은근히 신경을 안써" ㅎㅎ.
그나저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세종의 알송달송한 말을 채윤이 풀어가는 모습은, 그의 동물적 감각이 놀랍기만 했지요. 세종이 무휼에게 넌 못알아 들었잖느냐며 면박을 주고, 무휼을 뻘쭘 창피하게도 했지만, 저도 세종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말이 처음에는 남사철 사건에 어떤 힌트였는지 이해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에게 열정적으로 한글의 원리에 대해 설명을 하는 중, 밀본을 언급한 세종이었지요. 아무래도 한글창제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할 세력이 사대부였기에 그런 우려를 토로했던 듯 싶습니다. "상왕이 정도전 일가와 심온 대감, 강상인 일가를 모두 추단하신 것이 밀본때문이었다는 풍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순간 세종은 머리를 잡고 큰 실수를 깨달았지요. 세종을 정신 번쩍 들게 한 것은 풍설이라는 단서였지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세종은 심온대감이 밀본이 아니었음을 확신했었고, 심온대감을 제거한 것이 왕권에 대항하는 밀본에 놀라, 힘을 가진 모든 세력은 숙청해 버렸던 이방원의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근자에 일어난 해괴한 일들을 밀본의 짓이라고 믿어버린 이도 역시, 아버지 이방원에게 잠재해 있던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결국 남사철 집에 남겨진 협박장과 칼은 집현전 학사의 죽음을 본 남사철 공포심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지요. 가리온 역시 만천하가 아는 백정인데, 자신의 칼을 여보란 듯이 사건현장에 남겨두고 갈 바보도 아닐테고, 더구나 조선 최고의 검시실력을 자랑하는 가리온이 그런 실수를 했을 리는 없는 일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강채윤의 함정수사에 말려든 남사철은 조말생 대감과의 협공으로 붙잡혔고, 그는 밀본도 뭣도 아닌 찌질이 겁쟁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우라질 같은 놈이 다 있단 말이냐!", 세종의 한마디가 그를 정리해 주더군요.
또 한명의 판관 강채윤, 가장 무서운 자, 가장 멀리있는 자의 의미
세종은 가리온을 구명하기 위해 소이에게 겸사복 강채윤을 만나라고 하지요. 가리온의 무죄를 밝혀달라는 소이의 청에 강채윤은 냉소적입니다. 사건 당일 소이는 어명을 받고 가리온을 만났었고, 세종의 밀명이 드러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가리온을 구명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채윤이었지요. 국가 대사를 위해 천한 목숨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비꼬는 채윤에게, 소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요. "왜 때죽나무와 산조인을 섞어 먹느냐 하셨죠? 어린 시절 나의 치기로 아비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전하의 대사는 전하의 것만이 아닙니다. 저의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자고 싶습니다. 벗어나고 싶습니다. 구해 주십시오".
자신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잠 못이루는 소이, 채윤은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애틋하고 가련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그녀를 말이지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두 사람이지요. 나인 소이가 어린 시절 시집오겠다던 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강채윤은 얼마나 놀랄 것인지, 서로를 죽은 줄만 알고 있던 두 사람이 언제쯤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지....
강채윤을 만나고 온 소이가 세종에게 묻지요. "왜 그 자입니까? 그 자가 물었습니다. 대의를 위해서인지, 가리온의 목숨을 위해서인지...".
잠시 상념에 잠긴 듯하더니 세종 이도가 입을 열었지요.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왕이 외었을 때, 모두가 내게 대의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했다. 또한 왕은 그래야만 한다고 했고...헌데 내가 대의로 한 것을 두고, 어떤 놈이 '지랄하고 자빠졌네'했다. 그 자가 바로 강채윤이다.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자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더냐, 그래서 그 자다. 또 한 명의 판관, 가장 무서운 자,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자".
성삼문과 박팽년 외에 또 한명의 판관 강채윤이라는 인물의 의미는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며, 세종의 과제이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정기준, 아니 정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세종이 싸우는 이념은 '대의'의 뿌리가 다름에 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떠받들고 지탱하는 뿌리를 사대부로 봤지만, 세종은 그 뿌리를 똘복이, 즉 백성에게 뒀지요. 정도전과 세종의 성리학적 이념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백성을 위한 민본주의, 성리학의 이념이자 근간입니다. 허나 나라를 경영하는 주도권이 재상에게 있느냐, 왕에게 있느냐를 두고 이방원과 정도전은 의견을 달리했고, 세종 이도 역시 마찬가지지요. 이방원-정도전, 세종 이도-정기준, 대를 이은 이들의 싸움은 표면적으로는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입니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죠.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세종 이도와 정기준의 차이는 그들을 지탱하는 뿌리의 다름입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밀본지서를 금과옥조로 삼고 사대부들을 뿌리로 세우려 했고, 세종은 똘복이와 같은 백성이 뿌리가 되어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랐습니다. 한글은 세종이도가 백성에게 가는 길이었습니다. 백성을 얻는 방법이었고, 백성을 받드는 길이었고, 백성을 위하는 길이었습니다. 세종이 그 오랜 시간 비밀조직 천지를 이끌면서 집현전 학사들에게 조차 실체를 밝히지 않고, 홀로 외로이 걸어왔던 길, 백성에게 향하는 길이었지요. 그것이 세종의 대의였습니다.
그러나 정기준의 대의는 답보상태, 아니 후퇴를 했습니다. 오히려 대의에 역행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고 말이지요.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사대부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일에 게거품을 물며 반대를 했고, 백성을 위한 세법개혁이나 농사, 상업에 필요한 실용학문을 천시했죠. 왜? 백성의 힘이 커짐을 경계하고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백성들, 부유한 백성들은 왕 못지않게 경계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을 반대하기 위한 반대일 뿐이었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집현전을 철폐해야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똑똑한 학자들,날로 새로워지는 학자들의 논리에 고인물이 당할 재간이 없었던 거죠. 경연은 왕을 견제하기 보다는 세종, 즉 왕권을 강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이죠. 경연을 강조했던 정도전에 반해 정기준이 집현전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사상적 퇴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기준이 가리온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예상은 했지만 아이러니한 그의 모습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더군요. "백정의 목숨은 파리새끼 버러지 목숨입니다"라고 했던 말이었어요.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을지, 궁여지책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는지 모르겠어서 말이지요. 국가를 왕-사대부양반-양민-천민 등 철저한 신분계급에 따라 성리학의 질서를 대입시켰던 것이, 이들 유학을 숭배하던 성리학자들 아니었습니까. 신분을 감추고 백성들 사이에 몸을 숨긴 정도전이 반촌에 숨어든 것은 공자의 사당이 그곳에 있었고, 성리학의 요람이자 성지이기 때문이라는 설득력은 있지만, 천민들이 모여사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에서 이율배반적이지요. 사람 취급하지 않은 천민들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점, 과연 정기준은 그들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변화는 없었을까가 자못 궁금하기만 합니다. 
가리온이 세종의 한글창제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할 지, 종국에는 "이도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고 했던 그의 말을 철회할 날이 오겠지만, 가리온이 결정적으로 세종의 한글창제에 마침표를 찍을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극적입니다. 아직 미완인 부분이 후음인데, 소이를 통해 가리온에게 전달한 밀명이 이와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말이지요. 가리온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저는 이부분이 참으로 궁금하네요. 작가가 멋지고 의미있게 갈무리를 하겠지만 말입니다.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강채윤을 가장 무서우면서 가장 믿을 만한 자이며, 가장 멀리있는 자라고 했지요. 강채윤은 돌복이로 대변되는 세종의 백성을 상징하겠지요. 임금이라는 자리는 백성의 말을 가장 무서워 해야 하는 자리이며, 백성의 믿음 위에 서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요. 임금과 가장 멀리있으나 가장 무서운 자, 백성을 두려워 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못지않게 군주가 지녀야 할 기본덕목입니다.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궁에 들어 온 똘복이라는 드라마적인 설정은 있지만, 세종의 백성을 대하는 자세는 오늘 가장 필요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 판관으로 백성으로 대변되는 똘복이 강채윤을 둔 것은, 백성이 원하지 않으면, 백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힘을 들여 만들어 왔다고 해도 버릴 것이라고 했던, 세종의 위대한 민본주의 정신에 일치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크지요. 집현전 학사들의 검증, 재검증을 거치고도, 백성을 위한 일을 그 백성에게 또 검증을 받으려 하는 세종대왕,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일들을 똥고집으로 강행하는 어떤 이들의 모습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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