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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10 '뿌리깊은 나무 11회' 세종의 반전, 가리온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14)
2011.11.10 16:02




가리온이 정기준(윤제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세종을 가시적으로 죄어 올 밀본의 움직임이 활발해 질 듯합니다. 집현전 철폐를 첫번째 할일로 천명한 정기준, 집현전이 세종 이도를 위한 권력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죠. 조선팔도에서 몰려든 밀본 조직원들은 인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정과 지방의 핵심관료들도 있었고, 유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기준이 정도전의 조카라고 할지라도, 유림과 밀본조직원들의 반발은 피하지 못합니다. 밀본지서, 강채윤이 땅속에 고이 모셔둔 그 천쪼가리에 씌여진 글자들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였죠. 선비, 사대부라는 자들이 이렇게 형식을 중요시하니, 이들 머리 속에 들어있는 성리학의 이념은 볼짱 다 본 거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이를 충동질한 인물은 우의정 이신적이었지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전형적인 박쥐같은 인물입니다.
간밤에 세종에게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했지만, 저승사자와 같은 정기준의 눈빛에 입도 뻥끗못하고 돌아섰던 인물이지요. 정기준에게는 신뢰를 얻지 못한 무늬만 밀본인 인물, 정기준이 이신적을 노려보는 눈빛을 보니, 이신적의 명이 길지 않을 것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더이다. 능구렁이 같은 이신적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느낌으로는 훗날 최만리와 함께 세종의 한글창제를 극렬하게 반대할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재미있는 추측은 정기준은 이신적과는 반대로 세종의 한글창제를 지지하는 인물로 돌아설 것 같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글 말미에서 찾아보시와요^^

정륜암, 암암리에 명맥을 유지해 온 밀본원들이 정도전을 추모하고 비밀회합을 하던 장소라고 하지요. 같은 장소에서 세종과 정기준이 정도전을 추모하는 예를 갖추는 모습이 의미심장했습니다. 결국 세종도, 정기준도, 정도전의 조선건국 이념에 대의를 두었다는 것이 다르지 않은데, 우째 다른 길을 걷고 있는지...
조선을 움직이고 지탱하는 뿌리가 백성과 사대부라는 것만이 다를 뿐, 결국은 민본에 바탕을 둔 성리학의 신봉자들이 아닙니까? 정기준이 밀본조직원들에게 행한 연설을 들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똑똑한 재상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점, 왕은 권력의 꽃일 뿐 권력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 왕의 패도정치를 막고자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패도정치는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것이며, 결국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패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기에, 목숨을 걸고 왕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지요.
상대가 세종이 아니었다면 정기준의 명분은 엄청난 힘을 가졌을 것이나, 상대가 헛점이 별로 없는 지나치게 똑똑하고 어진 임금인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정기준은 이도가 훌륭한 왕이기에 더 위험하다는 말을 합니다. 훌륭한 왕이기에 이도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기를 계속한다면, 사대부들의 왕을 견제하는 책무는 소홀히 하게 될 것이며, 혹이라도 이후의 왕들이 잘못된 왕이 나온다할지라도 사대부의 힘은 약해져, 조선을 지키라는 삼봉의 유지를 받들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지요. 정기준의 걱정은 선견지명의 지적이었고, 틀리지 않았습니다. 세종의 아들 세조를 통해 바로 확인되었고, 이후 조선왕조에서 등장한 폭군들을 상기해 보면, 정기준은 말이 들어 맞았으니 말입니다.
여담이지만, 목구멍의 해부도를 그리기 위해 사체해부를 하는 세종과 정기준의 모습은, 잠시나마 헛 것을 봤나 싶을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는 동지같은 모습으로 보이더군요.

사체해부를 한 일을 두고 궁녀들, 성삼문과 박팽년, 그리고 정인지과 광평대군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을 했지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손이 효의 근본이라 귀가 닳도록 배운 유학의 기본 도를 왕이 어긴 것이었으니, 우리 글자고 나발이고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면서 말이지요. 전하의 편집병때문이라고 막말도 서슴지 않는 성삼문과 박팽년이었지요. 삐짐대왕 세종 이들의 말이 얼마나 야속하게 들렸는지, 혀까지 차가면서 분통터져 하더군요. 지금까지 어떻게 글자를 만들어 왔는지, 그 과정을 다 봐왔으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이 있다고 그냥 좀 믿고 따라와 주면 안되겠니?라고 화를 내는 세종에게 소이가 조용히 말을 하지요. 설명하시라고 말이지요.
세종은 한글의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한자는 수천년을 거쳐 사람들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한글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기에 보편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졌다는 것이지요. 그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큰 보편성, 즉 자연의 이치를 담으려고 했고, 소리에 충실한 글자를 만들어야 했다고 말하지요. 소리가 자연이고 소리를 내는 원리가 자연의 이치이기에, 소리를 내는 목 기관의 구조를 봐야 했던 것이라고 말이지요. 
설명을 하다보니 열뻗치는 세종, 이런 자연의 이치고 보편성이고 다 때려치우고 "이 글자들은 내 혀를 닮았다, 내 목구명을 닮았다, 내 이를 닮았다. 그래서 백성들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라며 울먹이죠. 그리고 그가 만난 바다에 대해 얘기합니다. "뱃사람들이 왜 미신을 믿겠느냐?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을 만나기 때문이다. 나도 만났다. 백성이다, 거대한 백성...하여 믿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글자를 만든다면, 백성들이 써 줄 것이라는...그런 믿음을....헌데 이게 잘못된 것이냐?".  감동으로 고개를 떨구는 궁녀들, 그리고 무휼, 집현전 학사들....감동이라는 것, 이해라는 것, 설득을 시킨다는 것이 이런 것임을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소이의 말대로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세종은 그의 글자를 보여주고 이해시켰던 것이지요.

그런데 긴가민가 했던 의구심이 몇번씩이나 스치고 지나갔는데, 이를 바득바득 갈고 눈가를 바르르 떨며 분노하는 세종 이도(한석규)때문에, 설마 아니겠지 했던 일들이 다시 머리를 흔드네요. 설마가 사람잡는다는데, 이번회 정륜암에서 가리온(정기준)에게 어사주를 내리는 세종을 보니, 정기준임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처음 가리온을 만났던 장면에서도 의심했던 부분입니다. 가리온이 아버지가 도적놈들에게 화살을 수십발을 맞고 죽었다는 얘기를 할 때, 담담하게 '그랬었구나'라는 말로 짧게 끝내버렸지만, 이도의 얼굴은 가늘게 떨며 동요하는 빛이 보였었지요.
해부가 끝나고 정기준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유를 알면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같다는 말에, 이도는 소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지요. 자기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말을 잃어버렸다고, 하여 소이에게 말을 가르치고 싶었다고 말이지요.
사체해부가 끝나고 소이가 "가리온이 그리 믿었을까요?"라고 묻자, "내가 그를 속인 것이라 생각하느냐? 가리온에게 한 말 또한 나의 진심이다"라며 세종은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지요. 세종이 소이를 위해 글을 만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고, 소이는 똘복이와 마찬가지로 그가 가장 두려워 하는 자, 그러나 가장 믿는 자 백성이었기에 세종의 진심은 소이에게도 전달이 되었고, 또한 시청자에게도 전달되었지요.
그러나 세종이 삼킨 말은 가리온은 믿지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왜냐? 세종은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세종의 언행을 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지요. 특히 가리온에 대한 그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입니다. 다만 밀본과 정기준이라는 이름이 거론되면, 바르르 떨며 분노하는 세종 이도의 표정으로 인해 혼돈스럽기는 하지만, 전 왠지 세종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가리온을 하필이면 하고 많은 장소를 두고 정륜암으로 불렀다는 겁니다. 그곳은 정도전을 따르는 유림과 유생들이 은밀히 모여 정도전의 넋을 추모하는 비밀회합장소라고 말까지 친절하게 해주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한낱 백정에게 세종은 정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경건한 예까지 갖춰 그를 추모합니다. 이런 세종을 본 정기준은 그 속을 알지 못해 미치고 폴짝 뛸 일이었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한석규라는 배우가 어떤 배우입니까. 드라마 속 많은 복선들을 아주 섬세하게, 그러나 시청자들에게는 반만 흘려주는 식으로 드러내는 훌륭한 배우가 아닙니까? 정기준에게 자신에게도 술 한잔을 달라고 청하고는 세종은 뜬금없이 정도전의 이름을 거론하지요. 그리고 잠깐 정기준의 움찔하는 모습을 살피더군요. "이곳이 역적 정도전이 성균관 재조시절 우생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이라지? 하여 성균관 유생들이 지금도 은밀히 이곳에 모여 정도전의 넋을 기린다 하더구나".
마치 정기준임을 알고 있다는 암시를 시청자에게 주듯, 세종은 가리온을 부른 이유를 말하지요. "오늘 이 자리에 너를 부른 것은 너에게 내린 명을 삼봉만은 이해할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내 그의 책을 일고 또 읽어 얻은 결론이니 말이다. 모두들 성리학에 반한다 하겠으나, 삼봉만은 과인과 뜻을 같이 했을 것 같구나". 그리고 어마어마한 사실을 말하지요. 해부할 것이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삼봉 정도전이 이해를 하든 말든, 뜻을 같이 하든 말든 가리온과 삼봉이 무슨 상관이라고 이런 말을 꺼냈을까요?
성리학에 반한 일이란 사체해부라는 엄청난 일의 파장을 두고 한 말일 터, 그러나 굳이 가리온을 데리고 가서 정도전에게 이해해 주십사고 말한 것은, 가리온의 손으로 그 엄청난 일을 자행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그의 조카이기에, 그리고 밀본의 수장이기에 더더구나 그런 예를 취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삼봉 정도전은 사대부의 나라를 굼꿨지만, 삼봉 정도전의 조선건국 이념의 더 깊은 뜻은 백성에게 있었습니다. 결국 정치라는 것이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성리학의 근간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세종은 읽고 또 읽어 결론을 얻었다고 했지요. 결국 삼봉 정도전과 세종 이도는 같은 목적을 두었던 것이지요. 그 끝은 백성을 향하고 있었기에 말이지요. 그러나 행간을 놓친 사대부들은 권력, 정치의 주체가 왕이 아닌 사대부(재상)여야 한다는 말만 중시했고, 대상이 되는 백성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정도전은 이해해 줄 것이라 믿고, 과인과 뜻을 같이 했을 것같구나" 라고 한 말은 정기준에게 직접 하는 말과 같았습니다. 정도전이 꿈꿨던 나라, 이상적인 조선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정기준, 너 역시 내 뜻을 이해해 줄 것이다" 라고 말이지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비아냥 거렸던 정기준에게, 이도는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함께 한 것입니다. 네가 꿈꾸는 나라도 백성을 위하는 나라, 성리학의 이념이 살아있는 나라가 아니더냐고 되물으면서 말이지요.
이도가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근거의 또 하나는, 조말생이 반촌으로 내금위 병사들을 변복을 시켜 보냈던 그날 밤, 이도 역시 무휼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무휼에게 정도광과 정기준을 살려오라는 명과 함께 말이지요. 그리고 이도의 조선, 나의 집현전에는 정기준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었지요. 명령을 받았던 무휼은 한발 늦고 말았지요. 정도광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이상한 점은 무휼이 정도광의 수하(윤평의 아버지)를 뒤쫓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추측컨데 무휼은 집사를 뒤따라 갔을 것이고, 그곳에서 윤평과 정기준을 봤을 거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섣불리 나설 수는 없었을테고, 정기준과 윤평을 비밀리에 반촌에 맡겼을 가능성이 높지요. 똘복이를 맡겼던 것처럼, 반촌은 치외법권 지역이며, 안전한 곳이었으니 말이지요. 도담댁에게 직접 맡겼다면, 음,,,무휼도 밀본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살 수 있는 문제지만, 도담댁을 반촌의 실세정도라고 생각했다면, 은밀히 부탁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죠.
이세영 대감을 따라 북방으로 갔다는 정기준을 말을 참고하면, 이세영이라는 인물이 세종의 사람이었는지 밀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밀본이었다고 해도 정기준을 거뒀을 가능성이 있고, 다르게 생각해보면 세종이 부탁을 했을 수도 있었음도 배제하기는 어렵죠. 조말생의 추적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했을 것이고 말이지요. 백정이 되었고, 사체검안의 제 일인자가 된 정기준을 세종이 궁으로 부르기는 쉬운 일이었죠.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한글창제 프로젝트에 정기준을 합류시킨 것이지요. 엄청난 반전 아닙니까? 혼자서만 좋다고 웃는 초록누리.ㅎㅎㅎ너무 멋진 것 같아서 말이죠. 가장 위험하고 무섭고 두렵고 멀리 있는 자와 함께 한다는 것, 세종에게는 똘복이만이 가장 무섭고 두렵고 멀리있는 자가 아니었어요. 정기준도 같았지요. 
정기준은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그 일에 깊숙이 관련되어 일조하고 있다는 것에 불안해 합니다. 도대체 무엇일까? 글자를 만드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정기준은 어떤 반응을 할까요? 저는 세종 이도의 뜻을 마지막에는 지지할 것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정기준은 밀본의 수장이기는 하나, 반역을 꿈꾸지는 않습니다. 왕권을 견제하려는 이유는 패도정치를 막기 위함이고, 패도정치의 가장 큰 희생자는 결국 백성입니다. 그가 기득권을 지키려고 했거나 반역을 꿈꿨다면, 거병을 일으켰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24년을 백정으로 신분을 감추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혜강선생을 비롯한 밀본의 원로들은 정기준의 생각과는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상속자라는 문서를 보여야만, 본원으로 인정하고 명을 따르겠다는 형식주의자들에게서, 정기준은 선비정신을 잃어가는 그들을 봅니다(아니 보게 될 것이라고요). 정도전의 대의보다 종이문서따위가 중요한 사람들, 학문과 이상은 변질되었고, 밀본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사대부들의 말뿐인 대의로 전락해 가고 있음을 보겠지요. 정기준이 세종을 지지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하는 진심을 확인하게 될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드라마의 긴장감을 위해 지금 당장은 아니고, 정기준 역시 그의 참담하고 외로웠던 길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번뇌를 통해서 얻어 가겠지요. '백성을 어떤 모습으로 만나야 하는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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