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나무 3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4회' 세종대왕이 욕을 하는 이유 (1)
  2.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회' 서서히 드러나는 세종 이도의 야망 (2)
2011.11.12 09:31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역사의 큰 비극은 옳고 그름이 맞서 싸울 때가 아니라, 두 옳음이 맞서 싸울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왕조의 기틀을 세워야 하는 태종, 왕의 일인독주를 막으려는 사대부, 그들이 싸우는 명분은 대의였습니다. 양측의 입장에서 둘 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싸움은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비극이었죠.
그럼, 세종 이도의 대의는 무엇이었을까요? 훈민정음 반포를 앞두고 집현전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도 대의끼리의 충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살인사건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것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지만, 그 끝은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종 이도의 대의로 귀결됩니다. 

집현전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 드라마에서는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정도전-정도광-정기준으로 이어지는 밀본이라는 조직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사대부의 나라가 정도전이 기초하고 세운 조선이었고, 그것이 조선의 새통치질서 즉, 대의라고 봤지요. 따라서 사대부들은 칼로 지배하는 이방원의 대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태종이 죽고 세종이 실질적 권력을 잡았음에도 사대부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습니다. 왕과 신하의 마찰은 권력 주도권과 기득권의 싸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왕실재정을 위해 귀족들의 잇권을 침해하면 폭군이며 폭정이라며 반발했고, 백성들을 위한 토지정책이나 구휼정책들 역시도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었지요. 실질적인 소유자 양반들의 재산침해였기 때문이죠. 부와 권력이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은 과거나 요즘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는 권력이 부였다면, 요즘은 부가 권력으로 순서가 바뀌었을 뿐, 둘의 관계는 업어치나 매치나입니다.
집현전의 살인사건에 숨겨진 한글창제 저지음모는 사대부들의 기득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지적재산권 싸움이라고 할 수 있죠. 글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기에, 그들의 재산과도 같았고 특권이었죠. 그런데 임금이 이를 백성들에게 나눠준다고 하니, 경천동지할 일이었죠.

본격적인 드라마의 진행을 앞두고, 정리하지 못한 것이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세종이 깨달은 마방진의 답부분입니다. 백성이 근간이 되는 조화로운 세상이라는 간결한 말로 이도의 답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하례는 지랄"이라는 말로, 파격적으로 등장한 한석규의 새로운 세종으로 인해, 세종에게 욕이 어떤 의미였는지, 드라마 내용과 관련해서 정리를 했습니다.  

마방진에서 구한 세종의 답은?
"대의? 지랄하지 말라고 해. 우리 아버지 죽이는 대의가 뭔데? 반푼이도 아들 살리는 것 아는데...임금은 백성의 어버이랬잖아, 대의로 지랄 말라고 해". 똘복이의 말에 충격받은 이도의 눈에 눈물이 고였었지요. 그리고 처음으로 얻은 백성이라며, 무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저아이를 살리라고 했지요.(핵심: 세종이 처음으로 얻은 그의 백성 똘복이에게 지랄이라는 욕을 배웠다는 것, 그가 살린 첫 백성이 그를 죽이러 왔다는 것이 드라마틱한 재미기도 하지요)

빈찬합을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결심을 했던 이도는 빈찬합과 방진의 모형이 같은 것을 보고 깨닫습니다. 궁녀들을 모아 결국 33방진을 푸는데 성공했지요. 이도가 깨달은 것은 방진의 답, 숫자의 배열이 아니라, 규칙이었습니다. 어떠한 숫자의 방진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숫자도 빼지 않고 같은 답을 구할 수 있는 규칙이 있음을 알아낸 것이지요. 5방진 8방진 16방진 25방진 33방진 55방진, 어떤 숫자의 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가로세로 대각선 모두 같은 합의 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종 이도는 그날 이 규칙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종의 질문에 대한 답도 내놓을 수 있었지요. 마방진이 아무리 숫자가 커진다고 해도 풀 수 있는 규칙이 있었듯이, 그의 조선도 그의 식대로 풀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고 말이지요. 마방진의 규칙을 찾고 세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 랄'이었습니다. 그리고 놀이는 끝났다며 방진을 치우라고 말하지요. (핵심: 똘복이가 했던 말 '대의로 지랄하지마'입니다. 이도가 방진을 풀고 했던 말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어요. 이 단순한 답을 찾기 위해 내가 지랄을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방원과 사대부와의 싸움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지요. 자기에게 편한대로 대의를 만들고, 그것을 명분으로 지랄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도가 내놓은 답은 현명한 자를 모아 전각을 세워, 글이나 읽으며 아버지 태종의 사후를 준비하고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문으로 통치할 것라며, 경연하는 조선을 만들 것이고 말하지요. 경연은 사대부들이 왕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펄쩍 뛰는 태종에게, 이도는 단호하게 대답했지요. "그것이 고려에서 개혁된 조선의 시작이었고, 조선의 정체이며, 성리학의 이상이니까요".

왜 집현전을 만들었을까?
세종은 지랄을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진의 규칙을 찾았듯이 조선의 이념 성리학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기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했고, 연구해야 했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가진 이론을 알아야 하고, 약점과 오류 또한 지적할 수 있어야 하지요. 따라서 학문을 권력이나 정치를 위한 목적으로 두지 않은, 똑똑하고 현명한 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정기준이 내 집현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그 학식의 깊이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이지요. 
   
세종이 집현전을 지어 오랜 시간 인내하고 기다린 것은, 그들의 성숙이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여 이치를 터득하게 하는 것이었죠. 기득권의 논리로, 멋대로 맛대로 해석하고, 주자선생이 말씀하셨다 하면 모든 게 통하는 수구세력의 논리에 맞설 수 있어야 했지요. 집현전은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서책과 경전에만 몰두하는 그들을 대신들은 적대세력으로 여기지는 않지요. 그럼에도 집현전은 신권으로 대변되는 사대부와 대신들에게는 눈엣가시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는 학사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습니다. "책만 파는 니들이 정치를 알아?" 이런 식이었죠.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연, 세종은 드라마에서 표헌한 대로 집현전이라는 '친위부대'를 통해, 해박한 논리와 학식으로 그들을 견제했고, 사사건건 소위 태클을 겁니다.  세종의 영리한 자기 사람 관리방식이었고, 통치방식이었습니다.서책이나 읽는 서생들이라고 만만하게 봤던 대신들이 번번히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 문(文)의 통치입니다. 

왜 세종은 욕을 입에 달고 살까?
욕쟁이 세종캐릭터는 다혈질 세종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를 위해 욕쟁이 세종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드라마 속 세종의 욕은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백성들의 말을 상징하기도 하고, 백성과 임금의 직접 소통을 막는 사대부들에 대한 세종의 속풀이용 꿍시렁이기도 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나라입니다. 이상이 현실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헛된 망상이 되고, 백성없는 임금(나라)은 뿌리없는 꽃일 뿐이죠. 백성을 잊은 임금은 한나라의 어버이라 할 수 없듯이 말이지요. 공자왈 맹자왈 주자께서...어쩌고 저쩌고..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것이 대의라고 하면서, 대의는 여러개의 얼굴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위장을 하기도 합니다. '주자께서 그리 가르치셨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조선의 사대부에게 주자의 말씀은 앞뒤토막 다 자르고 철저하게 기득권을 위해 해석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우라질! 

백성들은 한자를 모르기에 정확하게 자기의견을 말하기 어려웠고, 전달하기도 힘들었지요. 성리학을 해석하는 데도 평생을 글만 읽혀왔다는 사대부들도 '아'다르고 '어'다르게 해석하니, 몽매한 백성들이 글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죠. 우리 말과 한자가 그 발음과 뜻이 달랐기 때문이죠.
집현전에 잠입했다 잡힌 강채윤이 붙잡혔을 때는, "집현전에 똥을 싸러 갔다는 말이냐?"라며, 임금의 입에 담기에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똥'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뱉습니다. 똥을 한자로 표현하면 '변'이라는 말이 있지만, 변을 싸다, 변을 누다, 변을 보다, 그 어떤 식으로 해도 똥만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지요. 변 하나만 해도 한자의 모양도 뜻도 다른 글자가 열개가 넘더군요.

욕은 감정과 그 정서를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우라질, 지랄, 젠장같은 우리말을 소리와 뜻이 일치하는 한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요. 음이 같아서 뜻은 다른 글자가 돼버리니 말입니다. 똘복이에게 처음 들었던 지랄을 한자로 간질병을 떤다라고 표기할 수도 없으며, 어떤 한자를 조합해도 지랄을 표기하는 한자는 없었죠. 백성들은 성리학이 뭔지, 주자선생이 뭐하고 굴러먹다 조선으로 들어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심지어 산간벽골에서는 고려가 망했는지, 이씨 조선이 세워졌는지 조차 모르는 백성조차 많았고, 백성을 위한 나라를 이상으로 삼은 성리학의 나라에서 정작 백성은 소외된 채 살고 있습니다.

마방진의 규칙을 따르면 어떤 숫자라도 풀 수있듯이, 이와 기의 조화,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가 조화를 이룰 때 만물이 평화로우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조화를 이루는 나라가 성리학의 이상국가입니다. 그의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조선입니다. 백성과 소통하는 조선이어야 했고, 소통의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지랄, 젠장, 우라질, 빌어먹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욕쟁이 괴짜군주 세종, 박학다식 논리정연한 논리로 대신들을 제압하는 세종, 그는 태종에게 자신했던 그런 조선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복잡한 마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같은 답을 얻었듯이, 힘이 아닌 말로써 설득하고, 토론과 논쟁으로 합의점을 찾아가고, 백성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도 백성을 근본으로 삼은 성리학의 원칙으로 귀결됩니다. '누구를 위한 제도와 원칙인지'가 바로 선 나라, 세종이 꿈꾸는 조선의 대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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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2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탄탄한 극본, 힘있는 연출, 송중기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뿌리깊은 나무 3회, 밀본지서를 가지고 반촌에서 도망치는 정도광을 가로막고 말을 빼앗아 달아나는 똘복이, 그 과정에서 똘복이의 잃어버린 복주머니는 그에게 궁으로 가야 하는 복수의 이유를 되뇌이게 합니다. 반촌에 군사를 풀 수 있는 자는 오직 한사람 왕이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를 죽게 하고, 아버지의 유서마저 임금때문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똘복이는 그렇지 않아도 악밖에 남지 않은 듯한데,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에 이를 듯하더군요. 광기어린 어린 똘복이의 괴성이 회가 갈수록 거북스럽게 여겨져서 참... 하긴 송중기의 아역 충녕대군과 정기준의 아역연기는 뭐라 할말이 없게 만드는 심각한 수준이었답니다. 아역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연기가 참 거시기 하더구만요.
 
쫓기는 자 정도광, 정도광을 잡으려고 반촌에 난입한 조말생(태종측), 정도광과 정기준을 구하려고 온 무휼(세종측)의 일촉즉발 대립 속에, 멋모르고 또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된 똘복이, 세종 이도가 꿈꾸는 조선도 그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 가는 과정을 촘촘한 스토리로 엮었습니다. 
아버지 태종에게 맞서는 세종, 그들의 조선이 다름을 정기준을 찾으려는 이유의 다름을 통해 드러냈지요. 태종 이방원은 강한 왕권을 위해 정기준을 없애야 했고, 세종 이도에게는 자신이 꿈꾸는 조선을 위해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조선은, 1 하나가 아닌 23456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이었기에, 정기준이 상징하는 정도전의 사대부 세력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모두의 조선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태종의 조선은 군주의 한 사람의 나라였지만, 세종의 조선은 조선백성 모두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리학의 기본이념 민본주의를 재선포한 것입니다.
왕자의 난과 공신들의 숙청을 통해 왕권을 잡은 태종 이방원에게 조선은 불안한 나라였습니다. 삼봉 정도전을 살해한 이방원에게 사림은 등을 돌렸고, 대의와 명분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대부들에게 이방원은 주자의 도를 모르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원은 말합니다. "전장을 누비며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제거하고, 태조 이성계를 왕위에 올린 실질적인 공은 다름 아닌 이방원의 '칼'에서 나왔다고, 따라서 조선은 나의 것이다라고...".
그런 이방원에게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재상(신하)이다. 꽃이 부실하다 하여 나무가 죽는 것이 아니나,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가 죽는다. 부실한 꽃은 꺾으면 그만이다". 한마디로 왕이 뚯대로 따르지 않으면 폐하면 그만이라고 지하동굴에 새겨놓은 삼봉의 글귀는 이방원에게는 간담서늘한 경고였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했던 말, "꽃은 꽃일뿐 뿌리가 되지도 뿌리를 없애지도 못하오"에 대한 설명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왕은 한 나라의 얼굴,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었던 것이지요. 밀본의 정체는 정도전의 나라(사대부의 나라)를 사수하라는 밀명이었던 셈입니다. 

세종은 이방원보다 더 야망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세종이 어린 시절 본 것은 '칼보다 강한 글의 힘'이었습니다. 과장에서 나온 한장의 종이가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급기야 열대여섯의 어린 유생을 찾아 죽이려는 것을 본 이도는 아버지 태종의 칼을 떨게 한 것이, 다름 아님 글이었음을 본 것입니다. 세종이 문치주의를 표방한 것은 아버지 태종의 나라보다 강한 조선, 영원무구한 조선을 꿈꿨기 때문인 것이지요. 조선의 글이 필요하다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이도입니다. 글이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어쓰는 조선, 세종에게는 수치였을 겁니다. 세종은 유약한 임금이 아니었고, 국방에서도 적극적인 임금이었습니다. 김종서로 하여금 6진을 개척하게 하고, 국경을 확장한 것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장에서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홀연히 사라진 어린 유생 정기준, 세종이 훗날 태종과 군주과 국가관을 극명하게 달리 하게 한 인물입니다. "왕은 허군이고, 실군은 재상이다. 이것이 조선을 건국한 삼봉선생의 치국 기본사상이었다"는 답안을 본 이도는 그 담대한 답안에 놀라 정기준을 따라가게 되고, 글을 본 태종 역시 조말생을 시켜 정기준을 쫓게 됩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아우 정기광의 아들이었고, 태종은 정도광의 집 지하동굴에서 벽에 새겨진 정도전의 글을 보고 경악합니다. 정도전이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너의 아버지는 삼봉의 나라를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라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주먹을 날리는 이도, 그런 이도에게 정기준은 "네 아버지와 다를 바 없구나"라며 비웃음을 날리죠. 정기준의 집은 이미 병사들에 의해 살육이 자행되고 있었고, 이도의 만류에도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며, 담대하게 자신을 밝히며 걸어나가는 정기준을 보고 이도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정기준의 말은 두고두고 어린 이도를 괴롭혀 온 숙제이기도 했습니다.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과도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정기준을 향해 칼이 내려치는 찰나, 정도광은 아들을 구해 말을 타고 도망갑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정기준이 숨어있는 이도를 향해 지은 비웃음이 이도를 짓눌러 왔습니다. 

태종의 명으로 비밀리에 밀본을 추적해 오던 조말생의 움직임을 보고 받은 세종은 정도광, 정기준을 쫓는 것임을 직감하고 무휼을 보냅니다. "반드시 살려서 데리고 오라"는 명과 함께 말이지요.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마방진을 풀어낸 이도, 그의 마방진, 그의 조선이 아버지와 어찌 다를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했기에 세종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태종에게 "살려만 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면서 까지 태종과 한판승부를 벌인 세종이었지요. 겉으로는 효심깊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권위는 살려준 듯하나, 은밀하게 주고 받는 태종과의 설전에서는 "제 방식대로 방진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세종이었지요.

세종 이도가 내놓은 방진의 답은 '문이 통치하는 나라'였습니다. 태종은 그런 세종에게 밀본에 대해 아느냐며 정기준의 생존에 대해 언급하지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리는 세종 이도에게는 지난 날의 깊은 상처가 지나갑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오래도록 짓눌러왔던 정기준의 조소에 대한 답을 구한 이도, 그를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때 하지 못했던 답을 말해 줄 것입니다. "조선은 정도전의 나라도, 내 아버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다. 조선의 뿌리는 사대부가 아니라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물론 세종이 신분을 망라한 평등한 세상을 꿈꾸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아무리 임금이었더라도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조선은 건국이념은 성리학입니다. 성리학은 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합니다. 성리학은 계급을 초월한 학문이나 이념은 아니지요. 하늘과 땅의 위치가 불변이듯, 상하 지배 피지배관계가 불변한 이치이며, 그 이치안에서의 조화를 말했던 학문이죠. 백성을 통치대상이 아니라 보호대상으로 가르치고, '인'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철학입니다. 오늘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부분이죠. '군자(사대부)는 학문과 백성을 가르치는데 힘쓰고, 소인은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익히 들어온 문구만을 봐도, 그 근간에는 계급적 질서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도 성리학이 가르치는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역할을 하는 조화를 이루는 세상입니다. 그 조화에 정기준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사대부 세력은 반드시 필요했고, 왕과 신하(사대부)와의 평화는 피의 종결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에게 아버지의 칼은 폭정이었고, 조선의 불안이었습니다. 모든 왕조(나라)의 숙원은 대대만년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존속되는 것일 겁니다. 세종과는 방법적으로 달랐지만, 태종이 칼의 정치를 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종은 대대만년 조선을 지킬 수 있는 답을 칼이 아닌 조화에서 구합니다. 

세종의 눈에 비친 아버지 태종의 나라는 이 조화가 깨진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마방진은 정도전의 통치이념과는 다릅니다. 정도전은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사대부의 나라는 이방원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권력의 핵심 ' 마방진의 1'에 사대부를 대치한 것에 불과하니 말이지요. 세종의 조선은 왕의 나라도 아니요, 사대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를 꿈꿉니다. 그의 마방진은 모든 숫자들, 조선의 백성들 모두를 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드라마의 제목이 왜 뿌리깊은 나무인지가 드러납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무엇을 뜻하는 지도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의 '나무'는 세종이 꿈꾸는 거대한 마방진, 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며, 뿌리는 '백성'입니다. 정도전이 말한 밀본이 사대부를 지칭했다면, 세종은 백성으로 대상을 확대합니다. 뿌리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마른다는 용비어천가의 첫구절은, '조선의 영원무구함'을 염원한 노래한 세종의 원대한 청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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