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나무 8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7,8회' 베일에 싸인 정기준, 누구일까 (3)
  2.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8회' 송중기에게 주눅든 한석규, 소름돋는 치밀연기 (2)
2011.11.12 09:46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제작진이 함구령까지 내렸다는 정기준의 정체에 대해 많은 궁금증과 추측들이 오가고 있는데요, 그중 가장 설득력있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 백정 가리온(윤제문)일 듯합니다. 가리온의 호위무사같기도 하고, 가리온이 그의 호위무사같기도 한 의문의 사나이 개파이(김성현) 역시 용의선상에 올릴 수 있는 강력한 후보 중의 한사람이죠.
그런데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존재감과 무게감이 백정의 역할에 그치기에는 화면장악력이 너무 크죠. 곤구망기를 저자에 퍼뜨리고 다니며, 그 얄팍한(?) 학식을 자랑하고 다녔던 한가놈(조희봉)도 용의선상에 올려 놓았지만, 그냥 글좀 읽는 허풍쟁이 양반캐릭터가 더 맞을 듯하고요.
이미 많은 분들이 세종과 가리온의 독대장면에서 가리온의 범상치 않은 대사를 통해, 그가 큰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짐작했을 겁니다. 허담의 사인이 건익사공이라고 밝혔던 가리온이 이런 말을 했었지요. "이샤영 대감을 따라 다닐 때 북방오랑캐한테 들었습니다". 세종이 이세영을 도와 무언록을 편찬한 것을 칭찬하자, 가리온이 의미심장한 대사를 했지요. "어릴 적 소인의 아비가 도적들한테 화살 수십발을 맞고 죽었습니다. 젊은 혈기에 큰일을 내려는데 이세영대감이 절 달래서 중국으로 데려갔습니다. 은혜는 소인이 입었습니다".
워낙 천한 백정의 역할을 윤제문이 잘 소화를 하고 있기때문에 그를 정기준이라고 의심할 수 없게 하지만, 이 대사를 들은 우리 눈치빠른 시청자들은 곧바로 그 은유적인 말뜻을 파악하기 바빴지요.
정도광과 정기준을 추적해 오던 조말생에 의해 정도광이 반촌에 들어갔음이 발각되었던 날, 악연인지 인연인지 이날 똘복이가 반촌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나오다, 정도전의 밀지와 똘복이 아버지 유서가 뒤바뀐 일이 있었지요. 도망치던 정도광은 수십발의 화살을 맞고 죽음을 당했고, 목숨을 구한 윤집사가 아들 윤평과 정기준에게 정도광의 죽음을 알렸죠. 복주머니 주인을 반드시 찾으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지요.
화살 수십발을 맞고 죽었다는 말은 정도광의 죽음과 일치하고, 도적이라는 표현은 정기준이 과거 세종에게 했던 말과 일치했지요. "네 아비(이방원)는 삼봉의 조선을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 라고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정기준의 정체를 노출시킬 제작진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 가리온(윤제문)이 조선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이라는 사실입니다. 감히 사대부가 칼을 쥐고 짐승을 도축하는 일은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요. 더구나 밀본의 본원께서 말입니다. 또한 시체검안에서는 조선최고라는 말처럼, 사대부가 죽은 시신에 손을 댄다는 것은, 그들이 목숨처럼 받드는 공맹의 도에 심히 어긋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리온은 용의선상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빌미가 되기는 하죠.

그러나 와신상담(臥薪嘗膽), 절치부심(切齒腐心)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리온이 정기준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또한 비록 모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기는 하지만, 천한 백정치고는 그가 상당히 학식이 있고, 배운 티가 난다는 것이 그를 강하게 의심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화살꽂이가 되고, 일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한 정기준에게는 이방원은 죽이고 싶은 원수였을 겁니다. 하지만 글을 내세운 분들은 원수를 갚겠다고, 똘복이처럼 직접 칼을 들이대지는 않지요. 권력을 가진 자에게서는 권력을, 부를 가진 자에게서는 부를 빼앗아 더 잔인하게 복수를 하지요. 
왕을 단지 화려한 꽃일 뿐이며, 꽃이 부실하면 꺾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재상체제를 세우기 위해 밀본이라는 비밀조직까지 만들었던 정도전 일가의 소생이라면(아, 물론 드라마상 이야기입니다), 짐승을 도축하고 시신에 칼을 대는 일도 하며 와신상담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요. 더구나 어린 정기준의 어린 시절 성정을 보면, 독기가 폴폴 넘쳤던 인물같아 보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정기준의 아역배우의 연기미흡때문에 이런 인상을 남겼을 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죠.

그리고 어린 정기준의 얼굴과 윤제문의 얼굴형을 보니 상당히 닮은 구석도 있더군요. 넙대대하고 쌍커풀없는 모습은 싱크로율이 상당히 일치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말생이 세종 이도에게 보여준 암행록에 그려진 정기준의 용모파기를 보니, 싱크로율 거의 100% 일치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용모파기에 그려진 귀와 윤제문의 귀였습니다. 부처님 귀처럼 크게 늘어진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더군요. 별걸 다 가져다 붙인 것 같죠?ㅎㅎ

정기준의 몽타주는 하나의 단서일 뿐이지만, 저는 지난 회 세종의 독백을 들으며, 순간 또다른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강채윤이 이런 말을 했었지요.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종의 방백이 이어졌지요. "그만큼이었구나, 노비 똘복의 결심은...."
20여년이 흐른후 밀본의 3대 본원임을 알리며 등장한 정기준, 정기준도 강채윤이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궁으로 들어온 그 강한 결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채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칼을 갈아온 정기준입니다. 멸문지화를 당한 정기준은, 정기준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유배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태종과 조말생이 끈질기게 그를 추적했었기에, 조선에서 발붙이고 살아남기는 어려웠고요. 역적인데 살려둘 리가 없죠.
그러나 알게 모르게 이방원의 칼의 정치를 혐오한 사대부나 조정대신들은 입밖으로 내서는 안되는 이름 정도전을 흠모하고 따랐으며, 정신적 지도자로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무언록을 편찬했다는 이세영도 그쪽이었을 듯합니다. 그래서 정기준을 중국으로 데려가 살렸다고 보여지고요. 

또 하나의 가정은 가리온과 이방지(우현)의 관계입니다. 출상술을 통해 윤평이 강채윤과 마찬가지로 이방지의 제자였음이 드러났고, 윤평은 수하에게 이방지를 수소문하라는 명도 내렸지요. 그리고 더 의심스러운 점은 건익사공이나, 대침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가리온이 정학하게 알았다는 점입니다. 허담의 사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건익사공을 아는 자의 소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북방오랑캐에게 들었다는 것치고는 너무 허술한 대답이었죠. 시체가 검안소에 왔을 때 옷깃에 물이 묻어있었다는 말도 과장이 심했고요. 물 한바가지를 들이부었다면 모르겠지만, 거의 한방울로 비강을 막아 죽이던데, 옷깃을 적실 정도의 물을 흘렸다는 것도 이상하죠. 
그런데 가리온은 너무나 정확하게 그 사인을 집어 냅니다. 윤필학사의 주검을 보고도 한방에 머리 뒤에서 대침을 뽑아냈지요. 물론 시신의 상태를 보고 추측을 했을 수도 있지만, 너무 귀신같지요. 이는 살해의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집현전 학사를 죽인 윤평은 이방지로부터 배운 방법을 사용했고, 이방지와 가리온, 윤평이 서로 연결되는 인물이라면, 가리온은 윤평이 살해한 방법을 시신의 상태만으로도 유추해낼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죠.

또 하나 이방지는 조선제일검 무휼에게 유일하게 패배의 상처를 준 인물입니다. 이방지와 무휼은 왜 싸웠을까요? 이는 이방지가 무휼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음을 의미하고, 확대해석하면 이방지는 이방원의 사람이 아닌, 정도전의 사람이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 가정이 맞다면 이방지-가리온-윤평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고요.
20여년전 이신적(안석환)에게 사람들 틈으로 숨어들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정기준, 그는 철저하게 신분을 감추고, 말투도 바꾸고, 가장 의심하기 힘든 사람으로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죠. 도담댁이 있는 반촌, 백정이라는 신분은 정기준을 감쪽같이 감출 수 있었고, 굳이 밤이슬을 맞아가며 숨어다닐 필요도 없을 것이고요.

정기준이 가리온이라면, 시청자들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정말 충격적인 반전입니다. 똘복이가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한 길을 걸어왔듯이, 세종 이도가 문이 통치하는 조선, 백성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을 만들겠다고 한 길을 걸어왔듯이, 정기준은 백정이 되어서까지 재상중심의 조선을 꿈꿨던 정도전의 조선을 되찾겠다고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이 닮아있지 않나요?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길을 어쩌면 이 세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걸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약 가리온(윤제문)이 정기준이 맞다면 말이죠. 그리고 눈여겨 볼 재미있는 구도는 이 세사람이 큰 틀의 조선이라는 거예요. 똘복이-백성, 정기준-양반사대부, 이도-왕이라는 큰 틀말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3
2011.11.12 09:4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장성수의 죽음과 함께 공개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밀본, 세종을 흔들고 있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의입니다. 무휼에게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심하게 흔들리는 세종 이도였지요. 그리고 이도를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똘복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궁녀 소이가 자신을 잡아줬었지요. "전하의 탓이 아니옵니다"라며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 8회에서는 잠을 잘 수 없는 세 사람을 대조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이도를 향한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강채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소이, 그리고 아버지와는 다른 조선, 이도가 꿈꾸는 조선을 세우기 위해 잠 못 드는 세종을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모습으로 그렸지요.
가히 미친 연기력이라 할 수 있을 한석규의 연기는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군요. 핏발을 세우지 않고 목소리의 강약만으로도 분노와 불안, 그 내면심리까지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배우 한석규는 걸음걸이마저 세종에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군요.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지만, 한석규는 용포 속 고뇌하는 고독한 군주 인간 세종 자체였습니다.

경회루에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는 글귀와 함께 실려온 장성수의 시신에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크게 동요합니다. 누구보다 세종 이도의 충격이 큽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오수를 청하고, 주위를 물리는 세종이었지요. 이방원의 망령과 싸우는 세종. "군왕이란 그런 것입니까?" 이방원은 세종을 또다시 비웃습니다. "권력의 독은 안으로 감추고, 오직 인내하고 참겠다고? 그게 사람의 길일 줄 아느냐? 내가 걸었던 길보다 훨씬 더 참혹할 거라고, 내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다시 비웃는 듯하지요. "예, 참혹합니다. 허나 소자는 아버지와 다르옵니다. 의심하고 낚고 베고 죽이지 않겠습니다. 결코."

경연을 준비하라고 이르고는 경연장으로 간 세종은, 엉뚱한 주제로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회의안건은 "세법이요". 어안이 벙벙해진 대신들에게 세법 가부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13년 고을민의 반대로 부결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침착하게 응수하는 세종입니다. 세법혁파야말로 대신들과 유림의 기득권 문제가 걸린 사안이었기에, 광평대군마저도 세종의 저의를 의심하고 걱정하지요. 반발세력을 걸러내 밀본을 추리겠다는 숙청의 의도로 받아들이는 광평대군이었지요. 광평대군에게 "나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마라"라고 일축하는 장면에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상소문을 다시 읽는 세종. 무휼 역시 흔들리는 세종을 걱정합니다. "심기를 굳건히 하라"는 말에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는 세종.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인데. 그런데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할 때도, 대명(大明)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다, 국고가 낭비된다, 신분질서가 어지럽혀진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 자기네들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야."

한석규의 연기에 입을 쩍 벌리고 들으면서도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요. 세종이 세우고자 하는 조선은 자주 조선이었으며 실용의 조선이었고,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인재가 등용되는 조선이었으며 백성의 애환을 살피는 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선을 세우겠다는 세종을 왜 반대하고, 밀본이라는 개떡같은 조직이 조선을 흔들려고 하는지 세종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장성수의 시신과 함께 보낸 밀본의 글귀를 읽은 세종이 혼잣말로 "염병"이라고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정말 염병할 사대주의자들이죠. 한석규가 염병이라고 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그 세심한 연기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지문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동요하고 흔들리고 자신 없는 세종. 그가 발길을 향한 곳은 집현전이었지요. 문(文)의 통치를 하겠다며 아버지의 조선과 다른 조선을 보이겠다고, 경연하고 쟁의하고 합일점을 찾는 조선을 만들겠다고 만든 집현전. 그곳에서 세종은 젊은 자신과 만나지요. 젊은 세종(송중기)의 환시와 싸우는 세종의 모습은 주눅이 들어 있었고, 자신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한편의 모노심리극 같았던 젊은 이도와 중년 이도의 만남은 세종의 내면적인 갈등이 얼마나 극에 달해있는지와 함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세종을 보여준 장면이었지요. "네놈의 그 한심하고 잘난 결심이 이렇게 만든 거야. 네놈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네 사람을 죽인 것이다. 이방원의 무덤에 가서 눈물 흘리며 사죄해라. 이방원이 왜 이방원인가?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깜짝 등장한 송중기, 조소하고 조롱하는 연기를 소름 끼치게 잘하더군요. 송중기의 조소하는 눈빛에 공포와 죄책감에 질려 가늘게 떠는 한석규의 연기는 수천 개의 바늘로 몸을 찔러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왜 한석규인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기도 했고요.

젊은 이도와의 싸움은 자기 사람을 잃게 한 자책감으로 분노하고, 젊은 이도에게 책망받는 유약한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갈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세종의 내면을 말했던 것이지요. 후배와의 연기에서 자칫하면 한석규의 카리스마 혹은 압도감에 송중기가 묻힐 수도 있었을 장면이었지만, 한석규는 송중기를 이기려고 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파르르 떨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흔들리고 갈등하는 세종의 심리였고, 또한 강채윤과의 만남에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는 극기의 과정과 연결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저 카리스마 풀풀 넘치는 모습으로 송중기와 독대를 했다면, 가장 중요했던 장혁과의 장면에서 우직하게 그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극적 절정감을 주지는 못했을 겁니다. 완벽하게 세종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나오기 힘든 심리싸움을 그린 명장면이었습니다.

소이의 뒤를 밟던 강채윤은 장성수가 남긴 서책을 일부러 흘리고는 소이의 행동을 지켜보지요. 놀랍게도 소이는 서책을 읽더니만 책을 갈기갈기 찢어 불살라 버리죠. 그리고는 반촌의 가리온을 찾아가 불면증 약재를 구해 궁으로 들어갑니다. 소이의 이상한 행동에 처소까지 따라 간 강채윤은 소이에게 산조인을 먹지 말라며 나직히 말하지요. 강채윤은 소이가 산조인을 왜 먹는지를 알았지요.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지요.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잠을 잘 수 없는, 아니 스스로 잠을 자면 안 되도록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사연이 있음을 짐작합니다.

약으로 고통을 이기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는 채윤에게 "어찌 그것을 알았느냐?"고 묻는 이는 뜻밖에도 이도였지요. "아무 죄 없는 아비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일 수 있는 이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혹여 잠이라도 들면 아비가 무서운 모습으로 이유라도 말해달라며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나타날까봐." 어찌 고쳤느냐는 세종의 물음에 강채윤은 아비를 죽게 한 사람에게 복수할 결심으로 고쳤다고 대답하지요. 복수를 결심해야 하니 몸은 더 지치고, 모든 인생을 그것에 걸어야 하는 마음은 참혹하다는 강채윤에게 이도는 또 묻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길을 가느냐고 말이지요.
"결심이 왜 결심이겠습니까? 결심 없는 소인은 더이상 소인이 아니옵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강채윤의 말을 되뇌는 세종은 흔들렸던 자신과 똘복이를 비교해 보지요. '그만큼이었구나, 노비 똘복의 결심은.'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그 참혹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똘복이 앞으로도 그 길을 가겠다는 채윤에게 "넌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며 발걸음을 돌리지요. 강채윤이 가겠다는 길이 이도 자신을 죽이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라는 말에 보좌하고 있던 무휼이 크게 놀라지만, 세종은 모든 갈등을 털어냈다는 듯이 그의 길을 향했습니다. 휘청였던 세종의 발걸음은 어느새 곧추 서 있었고, 허허롭게 웃음 짓던 세종의 얼굴은 단호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이방원의 칼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마방진으로 숨어버렸던 이도.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는지 회의가 들어서, 또다시 마방진으로 숨으려 했던 이도였습니다. 그리고 강채윤을 보며 아버지와는 다르리라 결심했던 그 결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이방원에게 목숨을 내놓고 구했던 첫 백성 똘복이. 이도를 처음으로 임금이게 했던 똘복이가 그를 일깨웁니다. 외롭고 더 참혹해진다 해도 이도이기에 가야 한다고, 임금이기에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똘복이 아버지 석삼이. 글을 몰라 아버지와 친구를 잃었던 소이.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보낸 서찰 한 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을 때, 이도는 나의 나라에서 글을 몰라 죽는 백성은 없게 할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아전이 그리라는 대로, 글자 아닌 그림을 그리는 백성들. 그것이 누구를 위함인지도 모르는 백성들은 석삼이, 똘복이, 소이입니다.
세종은 똘복이를 첫 백성으로 얻고, 수많은 똘복이들을 만나려 했습니다. 한글은 똘복이를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똘복이 너는 나를 만나러 왔느냐, 나는 너(백성)를 만나러 가겠다', 이방원 없는 천하, 그날 그 굳은 결심 앞에 다시 선 세종 이도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