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29 '선덕여왕' 문노의 유언, 통곡하는 비담 (69)
  2. 2009.09.09 '선덕여왕' 신라 국호의 의미, 세번째 답은 '국사' (56)
2009.09.29 06:51




국선 문노의 죽음과 함께 시대의 주인이 될 영웅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덕만공주와 유신랑은 유신랑이 미실새주와 타협하는 과정에서 알을 깨고 나왔다고 볼 수 있겠고, 이번회는 비담의 각성에 대한 이야기가 초점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여전히 불투명 껍질 속에서 칼을 갈고 있는 김춘추(유승호)는 몇회 더 지난 후에 껍질을 벗겠지만, 껍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노는 김춘추의 엉뚱한 모습을 보는 것도 드라마의 재미가 아닌가 싶네요. 김춘추의 엉뚱함에 이유있는 복선을 깔아놓은 것도 후일 김춘추가 알에서 깨고 난 모습을 보는 재미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겠지만요.
선덕여왕 37회의 가장 큰 사건은 문노의 죽음이었지요. 그에 앞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김유신의 혼례얘기도 있었지만, 김유신과 덕만공주는 이제 각자의 길을 정한 듯 보입니다. 덕만공주는 정책가로서 군주의 길을, 김유신은 명장으로서 병법가로서의 길을 택했지요. 미실새주와 타협한 김유신이 하종의 여식 영모(티아라 큐리)와의 혼인으로 미실가문의 사람이 되었지만, 덕만공주와 뜻은 같음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 덕만공주 측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오해와 의심도 예상되지만, 유신랑은 서로의 믿음에 흔들리지 말자는 다짐이 김유신의 행보가 덕만공주와 같음을 암시했지요.

선덕여왕 37회의 큰 사건 문노의 죽음은 신라황실과 정치세력 간에 큰 파장을 일으킬만한 사건이지요. 문노는 정치적 이권이나 정치파벌의 밖에 있었던 인물이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황실, 화랑, 그리고 미실에게도 컸던 인물입니다. 그것은 문노가 앞을 내다보는 신통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었지요. 바로 문노가 준비해 온 삼국통일에 대한 대업때문이지요. 문노는 그의 한마디가 곧 힘이 되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미실도 문노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문노의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는 선견지명의 혜안때문이었습니다.
문노는 덕만공주를 왕이 될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덕만공주는 문노의 검증선상에 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문노가 비담에게 한 유언은 의미가 큰 것이었지요. 덕만공주를 왕으로 인정하는 말을 남겼거든요. 비담에게 한 문노의 유언을 보기전에 문노의 생애 마지막이 돼버린 비담과의 대결장면으로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문노와 비담의 검술 대결은 제가 꼽고 싶은 이번회 명장면이기도 했습니다.
문노와 염종과의 대화를 엿들은 비담은 스승 문노의 뒤를 밟았지요. 그리고 문노에게 무릎을 끓고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으며 많이 노력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문노의 대답은 싸늘함 자체입니다. "그래 네 주제를 잘 아는구나. 넌 노력이 필요해, 아니 이참에 내 너를 더 확실히 가르쳐주마. 그런데 이곳 서라벌에서는 아니고 어디 첩첩산중으로 들어가자꾸나"라면서요. 비담은 지금 야욕으로 불타있는데 스승의 말이 귀에 들어올리가 없지요. 보아하니 황실도 어수선하고 정세도 어지러운데 원래 이런 난세에 영웅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스승 문노는 이 난세의 영웅으로 유신을 점찍고 있으니, 심하게 마음 상한 비담은 십수년간 봐 온 정을 봐서라도 자기에게 영웅으로 가는 길, 즉 삼한지세의 책을 달라고 하지요. 비담 자신에게도 꿈이 있다면서요.
"책의 주인은 왕보다 높고 왕보다 더 오래 지속될 역사의 주인, 삼한역사의 주인이라 하셨잖아요. 그리고 그 책이 제 것이라 했기에, 또한 스승님께 인정받으려고 그 어린 나이에도 사람들 수십명을 죽이고 그 책을 지켰다"고요. 문노는 그런 비담에게 참으로 모질게 한마디를 해버리지요. "오로지 내 칭찬을 받으려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 너의 진심이었기때문에 줄 수 없어. 미실처럼" 이라고 말이지요. 문노는 어린 비담에게서 야욕을 위한 비정하고 비열한 미실의 성정을 봤던 것이지요. 그리고는 절대로 책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버립니다.
비담은 시대의 주인이고 싶은 야심을 놓지 못하지요. 어려서부터 스승이 말한 그 책의 주인이 되겠다는 일념하나로 살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꿈을 접을 수는 없지요. 그리고 다시 문노의 뒤를 밟습니다. 문노가 드디어 삼한지세를 완성해서 유신에게로 향하고 있었거든요. 비담은 문노의 길을 막고 자신을 베고 가라 합니다. 그 책은 자기 것이라면서요. 에고 그 책이 뭐라고 스승님께 칼을 겨눌까? 다음 글에 김춘추에 대한 글을 올릴 생각인데, 미리 한마디 하자면 비담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책을 종이접기를 해버리는 춘추는 비담과 참 대조적인 인물이에요. 김춘추가 비상함을 보여주는 대목이 바로 삼한지세 책을 찢어 종이접기를 해버리는 모습이었거든요. 김춘추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말하기로 하고 다시 문노와 비담에게로 화제를 돌리지요.
비담의 책 뺏기는 필사적이에요. 그 책은 자기 것이니 자신 아닌 누구도 그 책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요. 그렇게 주인이 아니라고 말을 해주도 알아듣지 못하는 비담에게 문노가 딱 잘라 말하지요. "네놈은 이 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어"라고요. 그러니 비담 열 받지요. 스승이면 그 자격을 만들어줬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비켜서라는 스승에게 NO NO 고개를 젓고 말아요. 결국 두 사람 타협점이 보이지 않지요. 스승의 검술과 무예를 익히 알고 있을텐데도 겁대가리 상실한 것을 보면 비담에게 비밀 필살기가 있나 봅니다.

죽어도 가지겠다며 칼을 빼든 비담의 날 선 눈앞에 절대로 줄수 없다는 문노도 칼을 빼들고 맙니다. 비록 문노 자신은 잔인한 어린 비담을 보며 마음을 닫아버렸지만 비담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지요. 비담이 덕만공주 일에 가담한다고 했을때 문노가 덤덤히 비담을 보내 준 이유는, 비담이 세상에 나가 무엇인가를 보고 배우게 하고 싶어서 였거든요. 그런데도 비담은 자신의 뜻대로 변화하지 않았고, 문노의 눈에는 비담이 너무 위험해 보였기에 그 싹을 잘라내려 했던 것이지요. 이어지는 박빙의 검술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어요. 청출어람이라 했던가요? 비담이 검술에서 한 수 위를 보이는 순간 문노는 비밀리에 완성하고 있었던 권법을 선보이기 시작했지요. 비담도 문노의 새로운 권법에는 밀리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공격을 하려는 찰나 문노에게 독침이 날아들었지요.
독침을 맞는 문노를 보는 짧은 순간 저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문노는 비담을 보호하려는 듯 비담의 가슴을 치며 비담을 밀쳐냈거든요. 문노는 독침을 맞는 순간 누군가가 암살하려는 것을 알았던 게지요. 자식같았던 비담을 보호하려는 어버지의 모습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왜 비담에게 자신의 비법을 보였는지에 대한 생각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문노는 풍월재 비재에서 비담의 무술이 어쩌면 자신의 수준을 능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본 것 같았어요. 비담이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눌때 그 이글거리는 눈빛의 의미를 이미 알았지요. 이 싸움으로 자신의 명이 다했다는 것을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문노가 마지막 가는 길에 비담에게 정식으로 가르쳐주지 않았던 비법을 전수하고자 했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습니다.

독침을 맞고 쓰러진 문노는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맙니다. 죽어가는 스승을 지켜보는 제자 비담, 그 장면은 선덕여왕 또 하나의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문노는 죽음 앞에서야 비담을 보았지요. 비담에게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을요. 너무 늦은 제자 비담의 모습이었지만 문노는 아마 죽으면서도 행복했을 거라는 감상적인 생각도 해봤어요. 비담의 피속에 흐르는 미실의  잔인한 성정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자신의 죽음 앞에 그 야욕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이 있었음을 문노는 그제서야 보았지요. 책이 아니라 자신을 업고 뛰었던 비담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독살사건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담을 쓰다듬어 주며 스승으로서 부족했고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너의 성정을 배려하고 고쳐줄 생각을 못했구나. 넣어주려고만 했지... 미안하구나. 마지막에야 네 마음을 보았는데 너무 늦었구나... 허나 고맙구나" 라면서요. 저는 이 대목에서 문노는 대업을 위한 명분과 개인적인 일에서 할일을 다했구나, 그래서 문노의 마지막 가는 길이 행복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한지세가 누구 손에 들어갔든지 그는 책을 완성을 했고, 문노가 개인적으로는 그토록 바라던 비담의 변화 또한 지켜보고 갔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문노는 비담에게 한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저는 이 문노의 마지막 유언이 앞으로 비담의 행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문노의 유언은 비담에게 서라벌에 돌아가 화랑이 되어 유신을 따르고 덕만공주를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담이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말을 하고 숨을 거둡니다. "누가 뭐라해도 넌 내 제자이니라" 스승 문노의 주검을 안고 우는 비담의 굵은 눈물은 예전 제가 올렸던 <두번 버림받았던 비담의 오열>에서 보여주었던 눈물과는 달랐어요. 문노는 비담에게는 스승이자 아버지이자 요즘 말로 롤모델이었고, 비담에게 살아갈 인생의 목적과 꿈을 심어준 사람이었지요. 집이었고 하늘이었던 스승 문노의 죽음을 지켜 본 비담은 어미를 읽은 사자의 울음과도 같았고, 회한이 가득한 불효자의 눈물과도 같았어요. 비담은 한번도 스승 문노에게서 제자로 인정받지 못했지요. 풍월재 선발 비재에서 문노의 제자 자격으로 참가한 것은 우격다짐식의 상황이었어요. 이후에 비담은 수차례 문노에 자신이 제자냐고 물었지만 문노는 한번도 제자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스승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던 비담에게 문노는 마지막 죽음 앞에서 비담을 제자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듣고 비담은 통곡하였지요.
앞서 문노의 유언이 앞으로 비담의 행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요. 사실 비담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테리에요. 스승의 주검을 안고 우는 비담의 통곡은 가벼이 넘길 수는 없는 장면이었어요. 스승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리고 자신을 제자로 인정해 주는 자신의 소원과도 같았던 그말을 듣고 비담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는 두고 볼일이겠지만, 문노를 죽게 한 배후가 김춘추였다는 다음회 예고는 갈피를 잡기 어렵게 하거든요.
문노의 유언, 즉 김유신을 따르고 덕만공주를 도우라는 말은 결국은 문노의 평생 대업 삼한일통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루라는 스승의 유언에 대한 비담의 선택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닭도령 비담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 중의 하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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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9 09:13




드라마 '선덕여왕' 32회는 과거와 현재(당시 신라)를 넘나드는 수수께끼 놀이 같은 것이었지요. 15대 풍월주 선발 비재에는 유신랑과 보종랑이 참가를 했는데, 드라마를 보다보니 시청자들도 함께 비재에 참가하고 있는 듯합니다. 풍월주 비재는 돌아온 국선 문노공께서 맡아주셨는데 문제출제를 쉽게 내주지 않아요. 사지선답형도 아니고 주관식 문제도 아니고, 더구나 논술문제도 아니었던 두번째 비재는 신라 국호가 가진 의미 세 가지를 알아오라는 것입니다. 첫번째 두번째 의미는 유신랑측이나 보종측도 쉽게 찾았지요. 워낙 주위에 쪽집개 과외로 단련되신 분들이 많으니 신라(新羅)라는 한자풀이에서 조금 난이도를 높여서 의미를 부여하면 되니까요.
저도 이왕 비재에 참가했으니 의미를 좀 살펴볼까요.
첫번째 의미는 신라의 자연적 환경에서 답을 찾습니다(서라벌, 즉 쇠벌이라는 의미는 철의 밭이라는 뜻이지요). 당시 신라 낙동강 유역은 질좋은 철의 산지였고, 이 금속문화를 잘 이용 발전해 온 나라가 가야국이었지요. 철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은 당연히 농기구와 무기입니다. 즉 답은 농기구와 무기 제작기술을 높여 안으로는 '농업생산력을 높이고 밖으로는 강한 무기를 만들어 무력증진에 힘써라'입니다.
두번째 의미는 사람에서 찾았지요. 여기서 힌트는 역시 신라라는 한자어입니다. 그물 라(羅)라는 의미는 여러가지 재료들로 그물을 엮는다는 것인데, 이를 사람세계로 넓혀보면 '두루두루 니편 내편 가리지 말고 똑똑한 인재를 잘 활용하자' 이런 뜻이 되겠지요. 좀 유식하게 답을 표현하면 신진세력을 흡수해서 신흥세력을 키우고 신라를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진흥대제가 신흥세력의 활용을 가장 잘 보여주었는데요, 성공적인(?) 인물이 설원공, 문노, 미실이었지요. 재주가 비상하여 써줬더니 박힌 돌 빼고 통째로 삼키려는 미실같은 변종도 나오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세번째 답은 오리무중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버립니다. 세번째 답은 지증왕의 유훈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지증왕도 이미 세상에는 없고, 지증왕의 유훈을 알고 있었던 진흥대제도 아시다시피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교직에 몸담고 계시니 저희가 알리가 있나요. 당시 세번째 유훈을 알고 있었던 이들이 이사부와 역사편찬을 했던 거칠부였는데 이 분들도 다 고인들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미실과 세종이랍니다. 미실과 세종은 세번째 의미와 깊숙이 관련되어 있어서, 세번째 의미의 사회적 파장과 자신들의 못된 짓이 들통날까봐 입에 자물쇠를 채워버립니다. 심지어는 보종에게 문제를 풀려해도 풀어서도 안된다고 못을 박지요. 어떤 비밀이기에 승부욕 강한 미실도 풀어서는 안된다고 했을까 사뭇 궁금합니다.
미실측이야 어찌하고 있든 유신랑은 15대 풍월주가 되어야 하고 덕만공주도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문노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니 답을 찾아야 합니다. 세번째 의미를 알기위해 유신랑과 알천랑은 진흥대제가 거칠부에게 명하여 편찬하게 했던 국사가 보존되어 있는 서고에 갔다가 지증왕대의 국사중 1권이 소실되어 다시 편찬하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신라라는 국호의 세번째 의미는 이때 고의였든, 미실의 말대로 실수였든 빠져버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국사를 편찬한 거칠부가 문노공의 장인이었다는 점과 쌍둥이 출생과 함께 우연치고는 요상스럽게도 같은 날 이승을 하직하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거칠부라는 인물 탐구에 들어간 덕만공주와 유신랑은 난이도 중 최고 심화과정에 들어갑니다. '거칠부가 진흥대제의 명에 따라 국사를 편찬했던 벼슬아치였고 장수였다' 이런 것은 기본과정에 나와있는 내용이거든요. 심화과정 학습에서 덕만공주와 유신랑은 거칠부가 문자마방진과 세필에 남다른 관심과 재주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덕만공주와 유신랑은 이를 토대로 거칠부가 마지막으로 남긴 서찰을 살핍니다. 그 서찰은 문노가 진평왕에게 전해주었던 것인데, 덕만은 서찰이 전해진 그 시각 "응애응애" 첫울음도 크게 터뜨리지 못하고 소화 품에 안겨 궁밖으로 버려졌고요. 엉덩이나 한대 때려줬는지 모르겠네요. 태어날 때 엉덩이를 때려서 몽고반점이 생긴다고 하던데... 물론 우스개 소리입니다. 수수께끼 푸느라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냥 긴장 좀 풀고 싶어 쓴 말입니다.
거칠부의 마지막 편지를 마방진으로 풀어보니 소엽도를 살피라는 답이 나왔지요. 그러고 보니 덕만공주의 소엽도가 드라마 '선덕여왕' 비급 1호였나봅니다.  예고편에 보니 소엽도에는 깨알보다 작은 글씨로 덕업일신(德業日新)이라 새겨져 있던데, 아마 화랑세기에 나오는 신라국호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이라는 국호를 말하는 모양입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이라 함은 간단히 '왕의 업적을 날로 새로이 하고 사방으로 뻗쳐나간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우리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합니다. 세번째 의미 말입니다. 
그럼 이 세번째 의미가 대체 뭐길래 진흥대제는 후손에게 알려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게 하려 했으며, 미실은 왜 그 의미를 감추려고 했는지 알아봐야 겠네요. 많은 분들이 31회때부터 짐작했던 대로 신라 국호 세번째 의미는 삼국통일이겠지요. 그런데 미실은 왜 이를 없애면서까지 역사를 왜곡하려고 했을까? 그야 물론 자신의 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지요. 미실은 에고이스트입니다. 자기애가 강해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해서는 안되고, 내가 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도 해서는 안돼'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지요. 진지왕을 보위에 올렸다가 애까지 낳았는데 황후를 시켜주지 않자 다시 폐위를 시키면서 '내 말 안들으면 험한 꼴 당한다'는 것을 젊은 화랑들을 앞세워 보여준 황후집착증 환자였고요.

진지왕을 폐하고 미실은 진평왕을 보위에 올립니다. 사실 진흥대제가 후계자로 지목한 사람이 진평왕이었는데, 미실이 음모를 꾸미는 바람에 진평왕은 다소 늦게 왕관을 쓰기는 했지반 황제자리는 애초에 진평왕 것이었지요. 미실은 '황제자리는 이 손안에 있소이다' 하면서 진평왕을 위협했으니 진평왕은 이때부터 미실 눈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게 됩니다. 그리고 황후 자리를 향해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 즉 미실을 황후로 봉한다는 화백회의 만장일치 통과를 앞두고 미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립니다. 미실이 쥐도새도 모르게 수장시키려했던 마야부인(현재의 마야황후 윤유선)이 나타났거든요. 결국 미실에게 황후자리는 너무 먼 그대가 돼버렸구요. 이때부터 미실의 삐딱선 타기가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못먹는 것 남도 줄 수 없다는 못된 심보와 자신의 권력이 몰락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세번째 국호의 의미는 거칠부가 기록한 국사(國史)라는 사서(史書) 자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답은 왕권강화를 통한 삼국의 통일입니다.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불가피 하게 백제, 고구려와 전쟁을 치뤄야 하고, 전쟁을 하려면 최고통수권 즉 왕권이 강화되어야 하지요. 이는 결국 귀족세력의 약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귀족세력을 기반으로 한 미실에게는 타격이 클 것입니다. 황제도 되지 못하고(미실은 황제를 꿈꾸지는 않았지요, 미실 생각의 한계인지 덕만이 앞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황후도 되지 못하는 에고이스트 미실에게는 귀족을 등에 업은 지지기반까지 빼앗길 판인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지요. 그러니 거칠부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어버리고 역사도 슬쩍 빼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었지요.  
그런데 저는 이 글의 제목에서 세번째 답은 '국사(國史)'라고 했습니다. '국사'는 드라마에서 언급되었다시피 진흥대제가 거칠부에게 신라 지증대제의 유업을 후손에 전해, 당시에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후손이 이룰 수 있도록 전하는 신라의 꿈에 관한 신라 사서였습니다. 그리고 진흥대제는 그 사서의 이름을 '국사'라 칭하도록 명합니다. 왜 국사일까? 마땅히 한나라의 역사서, 즉 사기는 국호를 쓰는 통상적인 예를 보아 '신라사' 라고 했어야 할 것 같은데 진흥대제는 '국사'라 하라고 명했습니다.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대립하였고 삼국은 상호 적대 전쟁국이었습니다. 진흥대제가 고구려, 백제를 의식하지 않고 통틀어 국사라고 이름지으라 한 것은 지증왕의 유업이 곧 삼국의 통일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지증왕, 진흥왕이 감히 꿈꿀 수 없었던 꿈은 삼국통일이었지만, 진흥왕은 국사라는 명칭에 그 꿈을 담아놓은 것이었지요. 신라사가 아닌 삼국통일국의 의미인 국사라 칭하면서 말입니다. 미래의 통일삼국의 역사서, 그 서막을 염원하는 의미가 바로 국사라는 이름에 담겨있는 것이지요.
사족이지만 전 신라의 삼국통일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덕만공주, 즉 미래의 선덕여왕은 백제, 고구려의 침공에서 몇번이나 당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나당연합군에 의해 삼국통일이 이룩되면서 삼국통일의 의미는 엄밀히 말해 자주적 통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바람에 고구려의 그 광활한 영토(대동강, 즉 평앙이북)들이 당나라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까요. 이는 당시 신라의 힘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후일 이런 역사는 또 다시 되풀이됩니다. 독도가 자기땅이라고 망발을 일삼는 일본 역시 언제부터 그 목소리를 높여왔는지를 보면, 국가의 자주적인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독도에 대한 망언은 결코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우리 영토에 대한 위협이며, 일제강점기 당시의 그들의 지배논리를 여전히 펴고 있다는 증거이지요.(독도는 우리땅!!) 
후일 신라의 삼국통일은 비록 부분적 영토통일이었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차후에 벌어지는 문제이니 여기서는 깊게 들어가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과연 이 세번째 의미는 어떤 식으로 공개될 것이며, 미실의 다음 수 또한 궁금합니다. 이제부터 덕만공주와 김유신은 이 세번째 의미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군주의 대업, 신라의 대업을 위해 꿈을 꾸어 가겠지요. 삼국통일의 꿈을 향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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