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8회' 송중기에게 주눅든 한석규, 소름돋는 치밀연기 (2)
  2.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6회' 강채윤이 감춘 군나미욕, 글자에 숨겨진 비밀은? (3)
  3.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6회' 세종은 왜 똘복이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을까? (1)
  4.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4회' 세종대왕이 욕을 하는 이유 (1)
  5.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회' 서서히 드러나는 세종 이도의 야망 (2)
2011.11.12 09:4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장성수의 죽음과 함께 공개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밀본, 세종을 흔들고 있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의입니다. 무휼에게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심하게 흔들리는 세종 이도였지요. 그리고 이도를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똘복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궁녀 소이가 자신을 잡아줬었지요. "전하의 탓이 아니옵니다"라며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 8회에서는 잠을 잘 수 없는 세 사람을 대조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이도를 향한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강채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소이, 그리고 아버지와는 다른 조선, 이도가 꿈꾸는 조선을 세우기 위해 잠 못 드는 세종을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모습으로 그렸지요.
가히 미친 연기력이라 할 수 있을 한석규의 연기는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군요. 핏발을 세우지 않고 목소리의 강약만으로도 분노와 불안, 그 내면심리까지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배우 한석규는 걸음걸이마저 세종에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군요.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지만, 한석규는 용포 속 고뇌하는 고독한 군주 인간 세종 자체였습니다.

경회루에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는 글귀와 함께 실려온 장성수의 시신에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크게 동요합니다. 누구보다 세종 이도의 충격이 큽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오수를 청하고, 주위를 물리는 세종이었지요. 이방원의 망령과 싸우는 세종. "군왕이란 그런 것입니까?" 이방원은 세종을 또다시 비웃습니다. "권력의 독은 안으로 감추고, 오직 인내하고 참겠다고? 그게 사람의 길일 줄 아느냐? 내가 걸었던 길보다 훨씬 더 참혹할 거라고, 내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다시 비웃는 듯하지요. "예, 참혹합니다. 허나 소자는 아버지와 다르옵니다. 의심하고 낚고 베고 죽이지 않겠습니다. 결코."

경연을 준비하라고 이르고는 경연장으로 간 세종은, 엉뚱한 주제로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회의안건은 "세법이요". 어안이 벙벙해진 대신들에게 세법 가부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13년 고을민의 반대로 부결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침착하게 응수하는 세종입니다. 세법혁파야말로 대신들과 유림의 기득권 문제가 걸린 사안이었기에, 광평대군마저도 세종의 저의를 의심하고 걱정하지요. 반발세력을 걸러내 밀본을 추리겠다는 숙청의 의도로 받아들이는 광평대군이었지요. 광평대군에게 "나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마라"라고 일축하는 장면에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상소문을 다시 읽는 세종. 무휼 역시 흔들리는 세종을 걱정합니다. "심기를 굳건히 하라"는 말에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는 세종.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인데. 그런데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할 때도, 대명(大明)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다, 국고가 낭비된다, 신분질서가 어지럽혀진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 자기네들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야."

한석규의 연기에 입을 쩍 벌리고 들으면서도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요. 세종이 세우고자 하는 조선은 자주 조선이었으며 실용의 조선이었고,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인재가 등용되는 조선이었으며 백성의 애환을 살피는 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선을 세우겠다는 세종을 왜 반대하고, 밀본이라는 개떡같은 조직이 조선을 흔들려고 하는지 세종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장성수의 시신과 함께 보낸 밀본의 글귀를 읽은 세종이 혼잣말로 "염병"이라고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정말 염병할 사대주의자들이죠. 한석규가 염병이라고 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그 세심한 연기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지문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동요하고 흔들리고 자신 없는 세종. 그가 발길을 향한 곳은 집현전이었지요. 문(文)의 통치를 하겠다며 아버지의 조선과 다른 조선을 보이겠다고, 경연하고 쟁의하고 합일점을 찾는 조선을 만들겠다고 만든 집현전. 그곳에서 세종은 젊은 자신과 만나지요. 젊은 세종(송중기)의 환시와 싸우는 세종의 모습은 주눅이 들어 있었고, 자신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한편의 모노심리극 같았던 젊은 이도와 중년 이도의 만남은 세종의 내면적인 갈등이 얼마나 극에 달해있는지와 함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세종을 보여준 장면이었지요. "네놈의 그 한심하고 잘난 결심이 이렇게 만든 거야. 네놈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네 사람을 죽인 것이다. 이방원의 무덤에 가서 눈물 흘리며 사죄해라. 이방원이 왜 이방원인가?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깜짝 등장한 송중기, 조소하고 조롱하는 연기를 소름 끼치게 잘하더군요. 송중기의 조소하는 눈빛에 공포와 죄책감에 질려 가늘게 떠는 한석규의 연기는 수천 개의 바늘로 몸을 찔러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왜 한석규인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기도 했고요.

젊은 이도와의 싸움은 자기 사람을 잃게 한 자책감으로 분노하고, 젊은 이도에게 책망받는 유약한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갈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세종의 내면을 말했던 것이지요. 후배와의 연기에서 자칫하면 한석규의 카리스마 혹은 압도감에 송중기가 묻힐 수도 있었을 장면이었지만, 한석규는 송중기를 이기려고 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파르르 떨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흔들리고 갈등하는 세종의 심리였고, 또한 강채윤과의 만남에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는 극기의 과정과 연결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저 카리스마 풀풀 넘치는 모습으로 송중기와 독대를 했다면, 가장 중요했던 장혁과의 장면에서 우직하게 그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극적 절정감을 주지는 못했을 겁니다. 완벽하게 세종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나오기 힘든 심리싸움을 그린 명장면이었습니다.

소이의 뒤를 밟던 강채윤은 장성수가 남긴 서책을 일부러 흘리고는 소이의 행동을 지켜보지요. 놀랍게도 소이는 서책을 읽더니만 책을 갈기갈기 찢어 불살라 버리죠. 그리고는 반촌의 가리온을 찾아가 불면증 약재를 구해 궁으로 들어갑니다. 소이의 이상한 행동에 처소까지 따라 간 강채윤은 소이에게 산조인을 먹지 말라며 나직히 말하지요. 강채윤은 소이가 산조인을 왜 먹는지를 알았지요.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지요.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잠을 잘 수 없는, 아니 스스로 잠을 자면 안 되도록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사연이 있음을 짐작합니다.

약으로 고통을 이기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는 채윤에게 "어찌 그것을 알았느냐?"고 묻는 이는 뜻밖에도 이도였지요. "아무 죄 없는 아비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일 수 있는 이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혹여 잠이라도 들면 아비가 무서운 모습으로 이유라도 말해달라며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나타날까봐." 어찌 고쳤느냐는 세종의 물음에 강채윤은 아비를 죽게 한 사람에게 복수할 결심으로 고쳤다고 대답하지요. 복수를 결심해야 하니 몸은 더 지치고, 모든 인생을 그것에 걸어야 하는 마음은 참혹하다는 강채윤에게 이도는 또 묻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길을 가느냐고 말이지요.
"결심이 왜 결심이겠습니까? 결심 없는 소인은 더이상 소인이 아니옵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강채윤의 말을 되뇌는 세종은 흔들렸던 자신과 똘복이를 비교해 보지요. '그만큼이었구나, 노비 똘복의 결심은.'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그 참혹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똘복이 앞으로도 그 길을 가겠다는 채윤에게 "넌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며 발걸음을 돌리지요. 강채윤이 가겠다는 길이 이도 자신을 죽이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라는 말에 보좌하고 있던 무휼이 크게 놀라지만, 세종은 모든 갈등을 털어냈다는 듯이 그의 길을 향했습니다. 휘청였던 세종의 발걸음은 어느새 곧추 서 있었고, 허허롭게 웃음 짓던 세종의 얼굴은 단호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이방원의 칼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마방진으로 숨어버렸던 이도.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는지 회의가 들어서, 또다시 마방진으로 숨으려 했던 이도였습니다. 그리고 강채윤을 보며 아버지와는 다르리라 결심했던 그 결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이방원에게 목숨을 내놓고 구했던 첫 백성 똘복이. 이도를 처음으로 임금이게 했던 똘복이가 그를 일깨웁니다. 외롭고 더 참혹해진다 해도 이도이기에 가야 한다고, 임금이기에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똘복이 아버지 석삼이. 글을 몰라 아버지와 친구를 잃었던 소이.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보낸 서찰 한 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을 때, 이도는 나의 나라에서 글을 몰라 죽는 백성은 없게 할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아전이 그리라는 대로, 글자 아닌 그림을 그리는 백성들. 그것이 누구를 위함인지도 모르는 백성들은 석삼이, 똘복이, 소이입니다.
세종은 똘복이를 첫 백성으로 얻고, 수많은 똘복이들을 만나려 했습니다. 한글은 똘복이를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똘복이 너는 나를 만나러 왔느냐, 나는 너(백성)를 만나러 가겠다', 이방원 없는 천하, 그날 그 굳은 결심 앞에 다시 선 세종 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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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누리 2011.11.12 10:1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삭제되었던 글 재발행입니다.
    한꺼번에 글을 발행해서 혼동스러웠을 듯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리뷰자료로 정리해두기 위해 복구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 감사 2011.11.17 23:40 address edit & del reply

    이렇게 좋은 글에 코멘트가 하나도 없어서 달고 갑니다.
    구구절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초록누리님 글을 통해 뿌나의 뿌리가 더 깊어짐을 느낍니다.

2011.11.12 09:39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윤필이 남긴 사자전언으로 20년만에 재등장한 밀본, 곤구망기(ㅣ口亡己)를 통해 세종이 비밀리에 그의 비밀조직인 천지계원들과 하는 일이 한글창제임을 드러냈지요. 곤구망기에 대한 궁금증은 곧바로 풀렸지만, 여전히 모든 사건의 핵심이 들어있는 한자가 풀리지 않아 전전긍긍했네요. 
풀리지 않은 의문은 윤필이 남긴 군나미욕(君那彌欲)이라는 글자인데요, 아무래도 내용 일부가 불에 타서 없어진 듯하지만, 군나미욕이라는 글자는 강채윤이 한글창제를 둘러싼 비밀에 접근하게 될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문을 품어야 할 대목은 왜 윤필이 집현전으로 들어가려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찾고자 함이었는지 입니다.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으로 집현전은 출입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집현전  학사들은 사가독서를 하라는 명이 떨어졌지요. 집현전으로 둘어가려던 윤필을 때마침 순찰을 돌던 강채윤에 의해 제지당하고, 1차 진입은 실패했지요. 윤필은 그날밤 다시 집현전으로 몰래 들어갔고, 윤필은 무엇인가를 찾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윤필은 서고가 아닌 허담이 죽은 책상을 뒤졌죠. 책상 아래에서 비밀문서통을 발견하고 펼쳐 읽고 있던 순간, 강채윤에 의해 발각되었고 말이죠. 그리고 문제의 타다남은 군나미욕이라는 글이 쓰인 비밀종이를 불에 태워버리려고 했지요.

불에 던져진 종이를 강채윤이 출상술을 이용해 건져냈고, 초탁의 구슬에 나가떨어진 윤필은 잠시 기절상태였습니다. 그때 부엉이 소리가 들리더니, 가면(윤평-이수혁)이 나타나 윤필을 납치해 유유히 빠져나가버렸죠. 윤평 역시 출상술을 썼고, 강채윤은 스승 이방지에게서 배운 출상술을 또 쓰는 놈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요.
강채윤은 불에서 건진 종이를 무휼에게 보고하지 않고 숨기고 있는데요,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곳곳에 미스터리를 풀 단서들을 남기고 역으로 풀어가는 방식에 능한 작가들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단서라고 볼 수 있지요.

군나미욕에 대해서는 허담의 죽음부터 거슬러 갈 필요가 있는데요, 허담과 고인설은 비바사론(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과 관계된 인물이지요. 허담이 죽은 날 비바사론도 함께 없어졌다고 나왔지만, 드라마에서는 이상하게 비바사론을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담댁과 가면 윤평과의 대화에서도 비바사론에 대한 얘기는 없었고, 밀본의 핵심조직원으로 밝혀진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 역시도 비바사론에 대한 것은 언급을 하지 않았지요.
밀본에서도 천지의 조직원들을 다 파악한 것은 아니고, 핵심요원들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요, 성삼문과 박팽년조차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고, 곤구망기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8명밖에 없다라고 한 세종의 말을 빌어보면, 그 조직이 철저히 비밀에 가려진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리 장성수(류승수) 역시도 천지계원이고, 성삼문과 박팽년보다는 핵심인사 같아 보이더군요. 윤필이 타살되었다는 성삼문의 말에도 "그런 소문을 왜 나만 모르고 있었느냐"며 시치미를 떼는 모습도 의뭉스럽게 보였고 말이지요.

그럼 윤필은 왜 허담이 죽은 현장을 가려했던 걸까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천지계는 2인1조로 운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한 조일 가능성이 크고, 허담과 윤필이 또 한조일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각자 비밀리에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서로 공유를 했고요. 따라서 허담이 강채윤으로 부터 건네받은 비바사론에 대해서는 세종과 정인지, 무휼말고도 허담과 윤필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요.
 
허담이 집현전 번을 섰던 날 살해를 당했다는 것은 집현전 내부에 첩자가 있음을 의미하는데, 심종수(한상진)의 정체를 통해 풀렸지만, 비바사론이 집현전 내부에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중요한 일을 공개적으로 기록할 수도 없었고, 같은 팀이었던 한림과 윤필은 자신들이 연구한 것을 비밀리에 집현전에 남겨두기로 했겠죠?(제 추측).

윤필과 허담은 같은 것을 정리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글은 자음과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글자지요. 집현전 학사들은(한글프로젝트팀)은 각자 팀별로 우리 말 첫소리 중간소리, 끝소리를 각자 분담해서 정리를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산스크리트어로 된 범어 경전 비바사론입니다. 산스크리트어를 보면 우리 한글과 비슷한 모양이 많아 그 어원에 대한 논쟁도 뜨거운데, 이런 것은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닌 듯해서 패스합니다만, 여하튼 허담과 윤필은 같은 글자를 연구하던 팀이었던 듯합니다. 

군나미욕이라는 글자(임금군, 어찌나, 두루미, 하고자 할 욕)를 가지고 이뜻 저뜻 만들어 봤지만, 스토리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너무 골머리를 쓴 탓에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오더라고요. 
그런데 6회에서 곤구망기라는 사자전언을 밀본이라고 푸는 세종을 보며, 퍼뜩 찾아보고 싶은 자료가 있었어요. 세종이 곤구망기를 보고 '밀본'이라는 글자를 조합한 것은 이미 ㄱ, ㄴ, ㄷ, ㅏ, ㅗ, ㅣ 등의 28글자를 거의 만들었음을 의미하고, 그것을 소리내어 읽는 방법까지 일렀음을 말하지요. 훈민정음은 그 공표를 두고, 3년의 시간차를 두었지요. 1443년에 이미 완성되었는데, 1446년에야 공포를 했으니 말입니다. 이는 보완해야 할 문제도 있었지만, 그만큼 한글을 둘러싼 반발세력의 저항에 부딪쳤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대주의 유학파 최만리같은 학자가 대표적이지만, 중국의 견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그 비밀스런 기간을 픽션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니, 군나미욕의 궁금증이 풀렸네요. 군나미욕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술된 '예'였습니다. 윤필과 허담은 훈민정음 창제한 이유과 글자를 읽는 법을 정리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리작업 일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작업은 비밀점조직으로 구성되어 각각 팀별로 수행하고 있었던 것으로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일부인데요,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은 분들은 직접 훈민정음 해례본 자료를 참고하시면 될 듯하고요, 여기서는 군나미욕에 관련된 것만 정리합니다. 해례본 사진자료에서도 'ㄱ'과 'ㅇ'에 관한 부분을 보면 군(君)자와 욕(欲)자의 첫소리라는 것이 쓰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ㄱ. 牙音이니 如君字初發聲.이요 竝書하면 與字初發聲하니라
ㄱ는 엄소리니 군(君)자의 처음 펴어 난 소리와 같으며
ㄴ.舌音이니 如那字初發聲하니라
ㄴ는 혀소리니 나(那)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ㅁ.脣音이니 如彌字初發聲하니라
ㅁ는 입술소리니 미(彌)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ㅇ.후음이니 如欲字初發聲하니라
ㅇ는 목소리니 욕(欲)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

첫소리(자음) ㄱ. ㄴ. ㅁ. ㅇ을 소리내는 한자 예가 군나미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윤필과 허담은 ㄱ,ㄴ,ㅁ,ㅇ 에 대한 정리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세종의 치밀한 조직관리때문에 더 놀랐습니다. 또한 혀소리, 목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등등으로 세분화하여 얼마나 체계적으로 만들었는지, 새삼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창조물인가에 깊은 감사와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똥지게를 진 모습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올 줄 아는 세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극중에서는 똘복이가 지랄이라는 말을 하는 것에 놀라고, 궁녀들에게 저잣거리의 천한 말을 배우기도 하고, 욕도 하는 세종이지만, 진정으로 백성의 모든 소리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았다면, 한글은 어쩌면 반쪽짜리 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우리 말 발음중 격음이나 경음은 비속어나 욕에 많이 들어가죠(이를테면 ㅇㅇ끼라든가, ㅇ발같은 말). 세종이 욕을 몰랐다면, 고매한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면, 그래서 백성들의 소리, 신음소리, 하다못해 개새끼 왕왕거리는 소리까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자음 한 두개, 혹은 모음 한 두개가 빠진 한글이 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세종이 태종의 처소를 나오며 방백하는 장면이 있었지요. "아버지는 제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모르십니다"라고요. 세종 자신조차도 몰랐을 듯합니다. 한글이 얼마나 엄청나고 위대한 업적인지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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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12 09:5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2011.11.12 10:0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초록누리 2011.11.12 10:0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작권 침해로 삭제되었던 글 재발행입니다.
    한꺼번에 복구를 해서 혼동스러웠을 듯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리뷰자료로 정리해두기 위해 복구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1.11.12 09:35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어찌 힘들지 않았겠는가? 어찌 그 길을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겠는가? 유학을 근본으로 삼고, 성리학을 목숨으로 삼는 사대부 양반들의 나라에서 그들의 뿌리가 되는 한자를 두고, 백성의 말을 글자로 만들어 보급하겠다는 것은 그들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으니...
그래서 세종 이도는 고독했고, 흔들렸고, 힘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세종을 잡아준 이는 말못하는 나인 소이였습니다. 대범하게도 궁에서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커다란 눈에 눈물을 한가득 담고 쏘아보던 아이, "너때문이야"라는 원망의 눈을 마주한 세종은, 그 아이에게서만은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글을 몰라 아비와 가족들을 잃은 아이가 똘복이만이 아니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 6회에서는 어린 소이(신세경)와 젊은 세종(송중기)의 만남, 그리고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었는데요, 송중기의 깜짝등장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처음 만남부터 세종에게 담이(소이)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지요. 감히 왕에게 돌을 던지는 아이, 얼마나 가슴에 맺혔기에, 얼마나 그 분노와 증오가 컸기에...그런 담이(어린 소이)에게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는 임금, 어린 소이도 그 진심을 전해받았을 듯합니다.  

그리고 세종의 비밀조직이 밝혀졌는데요, 천지계였지요. 정기준의 밀본과 세종의 천지, 두 조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원수를 죽이겠다고 궁으로 들어온 강채윤의 수사팀이 비밀스럽게 맞물리면서, 더욱 그 스케일이 커지고 있습니다. 화려한 액션과 의문스러운 사람들의 등장은, 모든 사건과 밀접한 고리를 만들면서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고 긴장감 넘치게 합니다.
특히 뛰어난 무공을 가진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한상진)와 베일에 싸인 정기준과의 관계가 흥미롭죠. 여기에 수상스러운 인물 가리온(윤제문)의 진짜 정체가 뭔지 궁금증 폭발입니다. 정기준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저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 듯한데, 윤제문이 워낙 그 연기력이나 포스가 장난이 아니어서, 정기준이라고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닐 듯합니다.

왜 천지인가?
세종의 비밀조직이 등장했는데요, 죽은 집현전 학사들과 정인지, 성삼문(현우), 박팽년(김기범) 등이 계원으로 있는 천지입니다. 조직원의 암살은 이미 밀본이 천지조직을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천지내에 밀본의 스파이가 있을 듯하지요. 뛰어난 무공을 가진 심종수의 정체를 통해 밀본의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있다는 것도 새삼 확인했고 말이지요.
윤필의 시신에 돋보기로나 볼 수 있는 문신이 있던 것을 본 강채윤은 학사들을 신체검사해야 겠다고 집현전에 왔는데요, 사방팔방 들쑤시고 다니는 강채윤의 수사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죠. 집현전에 와서 신체검사를 해야겠다고 떠들고 간 이유는, 같은 문신을 한 사람들이 표면에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아니나다를까 성삼문과 박팽년이 허담과 윤필의 시신을 빼내, 자신들과 같은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되지요. 적들이 노리는 것은 천지계원이며, 천지계원이 자신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지요.
그런데 그 문신의 모양을 보니 작은 원 안에 네모 모양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의미를 좀 풀어봤는데요,  두가지가 내포된 듯합니다. 문신의 ㅇ과 ㅁ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또 한글을 언문이라 한 것과 유추해서 첫자음 ㅇ과 ㅁ을 말하는 듯도 하고요. 

"소이 네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똘복이가 왔다"
죽은 윤필이 사자전언(死者傳言)으로 남긴 곤구망기(ㅣ口亡己)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집현전의 학사들도 그 뜻을 알지못해 궁금증 폭발입니다. 놀랍게도 곤구망기를 푼 이는 세종 이도였지요.
ㅁ ㅣ ㄹ 을 조합해 '밀'이라는 생소한 글자를 만들고, 뚫린 입에 가시처럼 들어있던 활자본의 의미로 ㅁ와 ㅣ를 조합해 ㅂ을 만들고, 한자 亡을 합치니 '본'이라는 글자가 완성되었지요. 윤필이 남긴 사자전언은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과 자신을 죽이려는 자의 배후가 '밀본'임을 가르켰지요. 밀본의 조직원인 심종수(한상진)가 곤구망기를 풀었다해도 한글을 모르는 그에게는 '젠장 빌어먹을' 이게 뭔 그림이야 였을 겁니다.

'밀본', 정기준 일가가 몰살되고 20여년이 흐른 후에 다시 등장한 밀본의 정체에 경악하는 세종, 그것이 세종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천지계원들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세종은 흔들립니다. 세종을 짓눌러온 트라우마, 자신때문에 백성이 죽었다는 것은 큰 일을 앞 둔 세종을 무겁게 짓눌러옵니다.
또한 "우리 아버지 죽인 지랄같은 임금을 죽여버리겠다" 울부짖던 똘복이가 겸사복 강채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세종은, 그의 무서운 증오심과 집념에 놀라 비틀거리지요.  
소이를 찾은 세종은 흔들리는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지요. 너무 힘들고, 고독하고, 그 짐이 무겁다고 말이지요.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없는 자리, 그게 조선의 임금이란 자리다. 내 일을 하다 내 사람들이 죽었다, 내가 죽인 것이야...".
자책감에 괴로워 하는 세종에게 소이(신세경)은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합니다. "전하의 책임이 아닙니다".  세종 이도의 두 눈에 굵은 눈물이 흐르고, 비로소 세종은 격한 감정을 누르고 한 인간이 아닌, 백성의 아버지 세종으로 돌아오지요, "전하의 책임이 아닙니다" 소이의 필답에 격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인간 세종의 모습은 서글프게까지 다가옵니다. 인간 세종의 내면을 표현하는 한석규의 연기는 말이 필요없네요. 

"흔들리지 마라, 네가 흔들리면 나도 무너진다"
강채윤이 한지골 똘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무휼은 강채윤을 죽이려고 하지만, 강채윤이 편전에 들었다는 보고를 받고 경악하여 편전으로 향하지요. '전하가 위험하다'. 가면을 쓴 자가 윤필을 납치하던 상황을 몸으로 설명하는 강채윤, 관모에 대침을 숨기고 들어왔던 강채윤은 비수대신 침을 사용하려 했었지요. 무휼이 한발만 늦었으면 세종의 목숨은 어찌 되었을지 모릅니다.
가면(정기준의 수하 윤평-이수혁)이 나무에서 표창을 날렸다는 대목에서 강채윤이 대침을 날렸을 듯하더군요. 관모에서 대침을 빼는 강채윤을 보며, 오메 숭악한 놈, 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지요.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보니, '그때 침을 날렸더라면, 한글은 어찌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식은 땀이 흐르더이다. 픽션임에도 이렇게 살떨리게 흥분하고,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팽팽한 긴장감,, 한석규, 장혁, 조진웅의 연기는 최고입니다!

무휼로부터 강채윤의 정체를 알게 된 세종은 그 집요함에 놀라고, 비틀거리지요. 그리고 자신때문에 식솔들을 잃은 살기 가득한 아이의 눈을 떠올립니다. 똘복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 소이가 강채윤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게 돼버리지요. 소이는 세종이 비밀리에 추진하는 프로젝트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한 번 본 것은 다 외워버리는 소이의 특출한 재능은, 아직은 활자로 만들 수 없는 '그것'의 살아있는 인쇄본이기 때문이죠. 한글창제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방진은 소이의 머리속에서 퍼즐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활자들이며, 제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니까요.
세종은 소이가 강채윤(똘복이)의 정체를 절대로 알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강채윤을 무휼의 뜻대로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뒤죽박죽 헝클어지는 세종, '한글, 소이, 똘복이, 그리고 곤구망기를 통해 드러난 밀본, 정기준' 등이 세종을 힘겹게 하지요. 밀본과 강채윤이 관계도 세종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고 말이지요. 세종에게 강채윤은 어사주나 내려달라는 꽤 똑똑하고 배짱있는 인물이 더이상 아닙니다. 윤필의 사자전언으로 드러난 밀본과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인설, 허담, 윤필의 죽음 현장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인물이니 말이지요. 
광평대군의 처소를 찾아 소이와 필담을 나눈 이유는 더 이상 자신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려고, 그 거대한 마방진을 포기하려는 인간적인 갈등때문이었습니다. 소이가 끝까지 전하의 책임이 아니라고 대답해주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세종은 똘복이의 정체를 소이에게 말해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세종을 단단하게 세워 준 이는 다름아닌 소이였지요. 누구보다 세종의 고뇌와 고독과 힘겨움을 잘 알고 있는 소이, 소이 앞에서는 한 나라의 임금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흘리는 눈물도 보일 수 있었던 세종 이도였지요. 누구보다 신뢰하고 믿고 아끼는 아이, 자신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아이, 그 아이가 그토록 잊지못하고 그리워 하는 똘복이를 감출 수 밖에 없는 이도입니다. 
"울지 마라, 어명이다. 나를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려서는 아니된다", 소이가 눈물을 보였더라면, 세종은 말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 하는 똘복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감춰버린 못된 나를 용서하라는 듯이, 그 옛날 자신에게 돌을 던진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세종은 또 마음으로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세종이 말했던 "나를 위해"는 '힘든 나를 위해'의 의미도 있었고, '내가 하려는 일을 끝까지 하기 위해'의 의미도 있습니다. 

"네가 흔들리면 나도 무너진다. 흔들리지 마라"고 했던 것은 그 때문이지요. 세종이 비밀리에 만들고 있는 한글, 그 모든 것을 머리 속에 외우고 있는 소이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지요. 내 사람을 죽여가면서 까지 세종이 남기고 가려는 마지막 일이 그의 운명이듯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동무가 살아왔다는 것을 몰라야 하는 것이 소이의 운명이라고, 인간적인 번민을 한줄기 눈물로 끊어내는 세종 이도였습니다. 

한글이 위대한 것은 그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위대한 창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최만리같이 한글창제에 반대해해 거세게 반발했던 경학파들과 사대부들의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지켜낸 의지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사대부들의 반발과 싸워햐 했던 세종은 임금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던 고독한 군주였던 것이지요.
전하의 책임이 아니라며, 끝까지 세종을 지지하고 지켜준 소이. 소이라는 인물은 세종의 정신적 동반자로 요약되지만, 한글은 세종 혼자서 해낸 업적이 아니었음을 환기시켜 줍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정인지, 이개 등등 집현전에서 날밤을 세웠던 집현전 학사들이 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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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누리 2011.11.12 10:0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작권 침해로 삭제되었던 글 재발행입니다.
    한꺼번에 복구를 해서 혼동스러웠을 듯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리뷰자료로 정리해두기 위해 복구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1.11.12 09:31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역사의 큰 비극은 옳고 그름이 맞서 싸울 때가 아니라, 두 옳음이 맞서 싸울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왕조의 기틀을 세워야 하는 태종, 왕의 일인독주를 막으려는 사대부, 그들이 싸우는 명분은 대의였습니다. 양측의 입장에서 둘 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싸움은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비극이었죠.
그럼, 세종 이도의 대의는 무엇이었을까요? 훈민정음 반포를 앞두고 집현전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도 대의끼리의 충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살인사건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것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지만, 그 끝은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종 이도의 대의로 귀결됩니다. 

집현전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 드라마에서는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정도전-정도광-정기준으로 이어지는 밀본이라는 조직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사대부의 나라가 정도전이 기초하고 세운 조선이었고, 그것이 조선의 새통치질서 즉, 대의라고 봤지요. 따라서 사대부들은 칼로 지배하는 이방원의 대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태종이 죽고 세종이 실질적 권력을 잡았음에도 사대부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습니다. 왕과 신하의 마찰은 권력 주도권과 기득권의 싸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왕실재정을 위해 귀족들의 잇권을 침해하면 폭군이며 폭정이라며 반발했고, 백성들을 위한 토지정책이나 구휼정책들 역시도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었지요. 실질적인 소유자 양반들의 재산침해였기 때문이죠. 부와 권력이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은 과거나 요즘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는 권력이 부였다면, 요즘은 부가 권력으로 순서가 바뀌었을 뿐, 둘의 관계는 업어치나 매치나입니다.
집현전의 살인사건에 숨겨진 한글창제 저지음모는 사대부들의 기득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지적재산권 싸움이라고 할 수 있죠. 글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기에, 그들의 재산과도 같았고 특권이었죠. 그런데 임금이 이를 백성들에게 나눠준다고 하니, 경천동지할 일이었죠.

본격적인 드라마의 진행을 앞두고, 정리하지 못한 것이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세종이 깨달은 마방진의 답부분입니다. 백성이 근간이 되는 조화로운 세상이라는 간결한 말로 이도의 답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하례는 지랄"이라는 말로, 파격적으로 등장한 한석규의 새로운 세종으로 인해, 세종에게 욕이 어떤 의미였는지, 드라마 내용과 관련해서 정리를 했습니다.  

마방진에서 구한 세종의 답은?
"대의? 지랄하지 말라고 해. 우리 아버지 죽이는 대의가 뭔데? 반푼이도 아들 살리는 것 아는데...임금은 백성의 어버이랬잖아, 대의로 지랄 말라고 해". 똘복이의 말에 충격받은 이도의 눈에 눈물이 고였었지요. 그리고 처음으로 얻은 백성이라며, 무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저아이를 살리라고 했지요.(핵심: 세종이 처음으로 얻은 그의 백성 똘복이에게 지랄이라는 욕을 배웠다는 것, 그가 살린 첫 백성이 그를 죽이러 왔다는 것이 드라마틱한 재미기도 하지요)

빈찬합을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결심을 했던 이도는 빈찬합과 방진의 모형이 같은 것을 보고 깨닫습니다. 궁녀들을 모아 결국 33방진을 푸는데 성공했지요. 이도가 깨달은 것은 방진의 답, 숫자의 배열이 아니라, 규칙이었습니다. 어떠한 숫자의 방진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숫자도 빼지 않고 같은 답을 구할 수 있는 규칙이 있음을 알아낸 것이지요. 5방진 8방진 16방진 25방진 33방진 55방진, 어떤 숫자의 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가로세로 대각선 모두 같은 합의 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종 이도는 그날 이 규칙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종의 질문에 대한 답도 내놓을 수 있었지요. 마방진이 아무리 숫자가 커진다고 해도 풀 수 있는 규칙이 있었듯이, 그의 조선도 그의 식대로 풀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고 말이지요. 마방진의 규칙을 찾고 세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 랄'이었습니다. 그리고 놀이는 끝났다며 방진을 치우라고 말하지요. (핵심: 똘복이가 했던 말 '대의로 지랄하지마'입니다. 이도가 방진을 풀고 했던 말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어요. 이 단순한 답을 찾기 위해 내가 지랄을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방원과 사대부와의 싸움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지요. 자기에게 편한대로 대의를 만들고, 그것을 명분으로 지랄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도가 내놓은 답은 현명한 자를 모아 전각을 세워, 글이나 읽으며 아버지 태종의 사후를 준비하고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문으로 통치할 것라며, 경연하는 조선을 만들 것이고 말하지요. 경연은 사대부들이 왕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펄쩍 뛰는 태종에게, 이도는 단호하게 대답했지요. "그것이 고려에서 개혁된 조선의 시작이었고, 조선의 정체이며, 성리학의 이상이니까요".

왜 집현전을 만들었을까?
세종은 지랄을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진의 규칙을 찾았듯이 조선의 이념 성리학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기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했고, 연구해야 했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가진 이론을 알아야 하고, 약점과 오류 또한 지적할 수 있어야 하지요. 따라서 학문을 권력이나 정치를 위한 목적으로 두지 않은, 똑똑하고 현명한 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정기준이 내 집현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그 학식의 깊이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이지요. 
   
세종이 집현전을 지어 오랜 시간 인내하고 기다린 것은, 그들의 성숙이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여 이치를 터득하게 하는 것이었죠. 기득권의 논리로, 멋대로 맛대로 해석하고, 주자선생이 말씀하셨다 하면 모든 게 통하는 수구세력의 논리에 맞설 수 있어야 했지요. 집현전은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서책과 경전에만 몰두하는 그들을 대신들은 적대세력으로 여기지는 않지요. 그럼에도 집현전은 신권으로 대변되는 사대부와 대신들에게는 눈엣가시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는 학사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습니다. "책만 파는 니들이 정치를 알아?" 이런 식이었죠.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연, 세종은 드라마에서 표헌한 대로 집현전이라는 '친위부대'를 통해, 해박한 논리와 학식으로 그들을 견제했고, 사사건건 소위 태클을 겁니다.  세종의 영리한 자기 사람 관리방식이었고, 통치방식이었습니다.서책이나 읽는 서생들이라고 만만하게 봤던 대신들이 번번히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 문(文)의 통치입니다. 

왜 세종은 욕을 입에 달고 살까?
욕쟁이 세종캐릭터는 다혈질 세종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를 위해 욕쟁이 세종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드라마 속 세종의 욕은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백성들의 말을 상징하기도 하고, 백성과 임금의 직접 소통을 막는 사대부들에 대한 세종의 속풀이용 꿍시렁이기도 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나라입니다. 이상이 현실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헛된 망상이 되고, 백성없는 임금(나라)은 뿌리없는 꽃일 뿐이죠. 백성을 잊은 임금은 한나라의 어버이라 할 수 없듯이 말이지요. 공자왈 맹자왈 주자께서...어쩌고 저쩌고..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것이 대의라고 하면서, 대의는 여러개의 얼굴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위장을 하기도 합니다. '주자께서 그리 가르치셨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조선의 사대부에게 주자의 말씀은 앞뒤토막 다 자르고 철저하게 기득권을 위해 해석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우라질! 

백성들은 한자를 모르기에 정확하게 자기의견을 말하기 어려웠고, 전달하기도 힘들었지요. 성리학을 해석하는 데도 평생을 글만 읽혀왔다는 사대부들도 '아'다르고 '어'다르게 해석하니, 몽매한 백성들이 글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죠. 우리 말과 한자가 그 발음과 뜻이 달랐기 때문이죠.
집현전에 잠입했다 잡힌 강채윤이 붙잡혔을 때는, "집현전에 똥을 싸러 갔다는 말이냐?"라며, 임금의 입에 담기에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똥'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뱉습니다. 똥을 한자로 표현하면 '변'이라는 말이 있지만, 변을 싸다, 변을 누다, 변을 보다, 그 어떤 식으로 해도 똥만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지요. 변 하나만 해도 한자의 모양도 뜻도 다른 글자가 열개가 넘더군요.

욕은 감정과 그 정서를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우라질, 지랄, 젠장같은 우리말을 소리와 뜻이 일치하는 한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요. 음이 같아서 뜻은 다른 글자가 돼버리니 말입니다. 똘복이에게 처음 들었던 지랄을 한자로 간질병을 떤다라고 표기할 수도 없으며, 어떤 한자를 조합해도 지랄을 표기하는 한자는 없었죠. 백성들은 성리학이 뭔지, 주자선생이 뭐하고 굴러먹다 조선으로 들어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심지어 산간벽골에서는 고려가 망했는지, 이씨 조선이 세워졌는지 조차 모르는 백성조차 많았고, 백성을 위한 나라를 이상으로 삼은 성리학의 나라에서 정작 백성은 소외된 채 살고 있습니다.

마방진의 규칙을 따르면 어떤 숫자라도 풀 수있듯이, 이와 기의 조화,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가 조화를 이룰 때 만물이 평화로우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조화를 이루는 나라가 성리학의 이상국가입니다. 그의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조선입니다. 백성과 소통하는 조선이어야 했고, 소통의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지랄, 젠장, 우라질, 빌어먹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욕쟁이 괴짜군주 세종, 박학다식 논리정연한 논리로 대신들을 제압하는 세종, 그는 태종에게 자신했던 그런 조선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복잡한 마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같은 답을 얻었듯이, 힘이 아닌 말로써 설득하고, 토론과 논쟁으로 합의점을 찾아가고, 백성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도 백성을 근본으로 삼은 성리학의 원칙으로 귀결됩니다. '누구를 위한 제도와 원칙인지'가 바로 선 나라, 세종이 꿈꾸는 조선의 대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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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누리 2011.11.12 10:0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작권 침해로 삭제되었던 글 재발행입니다.
    한꺼번에 복구를 해서 혼동스러웠을 듯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리뷰자료로 정리해두기 위해 복구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1.11.12 09:2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탄탄한 극본, 힘있는 연출, 송중기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뿌리깊은 나무 3회, 밀본지서를 가지고 반촌에서 도망치는 정도광을 가로막고 말을 빼앗아 달아나는 똘복이, 그 과정에서 똘복이의 잃어버린 복주머니는 그에게 궁으로 가야 하는 복수의 이유를 되뇌이게 합니다. 반촌에 군사를 풀 수 있는 자는 오직 한사람 왕이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를 죽게 하고, 아버지의 유서마저 임금때문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똘복이는 그렇지 않아도 악밖에 남지 않은 듯한데,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에 이를 듯하더군요. 광기어린 어린 똘복이의 괴성이 회가 갈수록 거북스럽게 여겨져서 참... 하긴 송중기의 아역 충녕대군과 정기준의 아역연기는 뭐라 할말이 없게 만드는 심각한 수준이었답니다. 아역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연기가 참 거시기 하더구만요.
 
쫓기는 자 정도광, 정도광을 잡으려고 반촌에 난입한 조말생(태종측), 정도광과 정기준을 구하려고 온 무휼(세종측)의 일촉즉발 대립 속에, 멋모르고 또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된 똘복이, 세종 이도가 꿈꾸는 조선도 그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 가는 과정을 촘촘한 스토리로 엮었습니다. 
아버지 태종에게 맞서는 세종, 그들의 조선이 다름을 정기준을 찾으려는 이유의 다름을 통해 드러냈지요. 태종 이방원은 강한 왕권을 위해 정기준을 없애야 했고, 세종 이도에게는 자신이 꿈꾸는 조선을 위해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조선은, 1 하나가 아닌 23456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이었기에, 정기준이 상징하는 정도전의 사대부 세력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모두의 조선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태종의 조선은 군주의 한 사람의 나라였지만, 세종의 조선은 조선백성 모두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리학의 기본이념 민본주의를 재선포한 것입니다.
왕자의 난과 공신들의 숙청을 통해 왕권을 잡은 태종 이방원에게 조선은 불안한 나라였습니다. 삼봉 정도전을 살해한 이방원에게 사림은 등을 돌렸고, 대의와 명분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대부들에게 이방원은 주자의 도를 모르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원은 말합니다. "전장을 누비며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제거하고, 태조 이성계를 왕위에 올린 실질적인 공은 다름 아닌 이방원의 '칼'에서 나왔다고, 따라서 조선은 나의 것이다라고...".
그런 이방원에게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재상(신하)이다. 꽃이 부실하다 하여 나무가 죽는 것이 아니나,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가 죽는다. 부실한 꽃은 꺾으면 그만이다". 한마디로 왕이 뚯대로 따르지 않으면 폐하면 그만이라고 지하동굴에 새겨놓은 삼봉의 글귀는 이방원에게는 간담서늘한 경고였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했던 말, "꽃은 꽃일뿐 뿌리가 되지도 뿌리를 없애지도 못하오"에 대한 설명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왕은 한 나라의 얼굴,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었던 것이지요. 밀본의 정체는 정도전의 나라(사대부의 나라)를 사수하라는 밀명이었던 셈입니다. 

세종은 이방원보다 더 야망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세종이 어린 시절 본 것은 '칼보다 강한 글의 힘'이었습니다. 과장에서 나온 한장의 종이가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급기야 열대여섯의 어린 유생을 찾아 죽이려는 것을 본 이도는 아버지 태종의 칼을 떨게 한 것이, 다름 아님 글이었음을 본 것입니다. 세종이 문치주의를 표방한 것은 아버지 태종의 나라보다 강한 조선, 영원무구한 조선을 꿈꿨기 때문인 것이지요. 조선의 글이 필요하다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이도입니다. 글이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어쓰는 조선, 세종에게는 수치였을 겁니다. 세종은 유약한 임금이 아니었고, 국방에서도 적극적인 임금이었습니다. 김종서로 하여금 6진을 개척하게 하고, 국경을 확장한 것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장에서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홀연히 사라진 어린 유생 정기준, 세종이 훗날 태종과 군주과 국가관을 극명하게 달리 하게 한 인물입니다. "왕은 허군이고, 실군은 재상이다. 이것이 조선을 건국한 삼봉선생의 치국 기본사상이었다"는 답안을 본 이도는 그 담대한 답안에 놀라 정기준을 따라가게 되고, 글을 본 태종 역시 조말생을 시켜 정기준을 쫓게 됩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아우 정기광의 아들이었고, 태종은 정도광의 집 지하동굴에서 벽에 새겨진 정도전의 글을 보고 경악합니다. 정도전이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너의 아버지는 삼봉의 나라를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라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주먹을 날리는 이도, 그런 이도에게 정기준은 "네 아버지와 다를 바 없구나"라며 비웃음을 날리죠. 정기준의 집은 이미 병사들에 의해 살육이 자행되고 있었고, 이도의 만류에도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며, 담대하게 자신을 밝히며 걸어나가는 정기준을 보고 이도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정기준의 말은 두고두고 어린 이도를 괴롭혀 온 숙제이기도 했습니다.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과도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정기준을 향해 칼이 내려치는 찰나, 정도광은 아들을 구해 말을 타고 도망갑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정기준이 숨어있는 이도를 향해 지은 비웃음이 이도를 짓눌러 왔습니다. 

태종의 명으로 비밀리에 밀본을 추적해 오던 조말생의 움직임을 보고 받은 세종은 정도광, 정기준을 쫓는 것임을 직감하고 무휼을 보냅니다. "반드시 살려서 데리고 오라"는 명과 함께 말이지요.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마방진을 풀어낸 이도, 그의 마방진, 그의 조선이 아버지와 어찌 다를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했기에 세종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태종에게 "살려만 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면서 까지 태종과 한판승부를 벌인 세종이었지요. 겉으로는 효심깊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권위는 살려준 듯하나, 은밀하게 주고 받는 태종과의 설전에서는 "제 방식대로 방진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세종이었지요.

세종 이도가 내놓은 방진의 답은 '문이 통치하는 나라'였습니다. 태종은 그런 세종에게 밀본에 대해 아느냐며 정기준의 생존에 대해 언급하지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리는 세종 이도에게는 지난 날의 깊은 상처가 지나갑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오래도록 짓눌러왔던 정기준의 조소에 대한 답을 구한 이도, 그를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때 하지 못했던 답을 말해 줄 것입니다. "조선은 정도전의 나라도, 내 아버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다. 조선의 뿌리는 사대부가 아니라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물론 세종이 신분을 망라한 평등한 세상을 꿈꾸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아무리 임금이었더라도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조선은 건국이념은 성리학입니다. 성리학은 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합니다. 성리학은 계급을 초월한 학문이나 이념은 아니지요. 하늘과 땅의 위치가 불변이듯, 상하 지배 피지배관계가 불변한 이치이며, 그 이치안에서의 조화를 말했던 학문이죠. 백성을 통치대상이 아니라 보호대상으로 가르치고, '인'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철학입니다. 오늘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부분이죠. '군자(사대부)는 학문과 백성을 가르치는데 힘쓰고, 소인은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익히 들어온 문구만을 봐도, 그 근간에는 계급적 질서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도 성리학이 가르치는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역할을 하는 조화를 이루는 세상입니다. 그 조화에 정기준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사대부 세력은 반드시 필요했고, 왕과 신하(사대부)와의 평화는 피의 종결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에게 아버지의 칼은 폭정이었고, 조선의 불안이었습니다. 모든 왕조(나라)의 숙원은 대대만년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존속되는 것일 겁니다. 세종과는 방법적으로 달랐지만, 태종이 칼의 정치를 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종은 대대만년 조선을 지킬 수 있는 답을 칼이 아닌 조화에서 구합니다. 

세종의 눈에 비친 아버지 태종의 나라는 이 조화가 깨진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마방진은 정도전의 통치이념과는 다릅니다. 정도전은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사대부의 나라는 이방원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권력의 핵심 ' 마방진의 1'에 사대부를 대치한 것에 불과하니 말이지요. 세종의 조선은 왕의 나라도 아니요, 사대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를 꿈꿉니다. 그의 마방진은 모든 숫자들, 조선의 백성들 모두를 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드라마의 제목이 왜 뿌리깊은 나무인지가 드러납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무엇을 뜻하는 지도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의 '나무'는 세종이 꿈꾸는 거대한 마방진, 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며, 뿌리는 '백성'입니다. 정도전이 말한 밀본이 사대부를 지칭했다면, 세종은 백성으로 대상을 확대합니다. 뿌리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마른다는 용비어천가의 첫구절은, '조선의 영원무구함'을 염원한 노래한 세종의 원대한 청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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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2
  1. 초록누리 2011.11.12 10:0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작권 침해로 삭제되었던 글 재발행입니다.
    한꺼번에 복구를 해서 혼동스러웠을 듯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리뷰자료로 정리해두기 위해 복구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여왕의걸작 2011.11.12 21:39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랬군요. 제가 2회까지 보고 초록누리님의 리뷰를 보려고 보니 비공개가 되었거나 삭제되었다고 메시지가 뜨더군요.

      그래서 앞부분으로 넘어와보니 똑같은 제목의 글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읽게 되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나 봅니다. 마침 3회를 보려던 참 이었는데 뭔가 찌릿 텔레파시가 통한 듯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