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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8 09:02




추적자는 드라마사에 큰 획을 그은 장르물이었습니다. 드라마가 현실이었고, 현실이 드라마인 괴물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소름끼치게 촘촘한 대본, 연출, 그리고 연기자들의 명연기는 내로라하는 스타 한 명 내세우지 않고도, 성공신화를 써냈습니다.
추적자의 성공신화는 시청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드라마의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추적자는 시청률의 수치를 무의미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드라마의 고질적인 병 하나가 용두사미로 끝나버리는 것인데, 추적자는 최고의 결말, 반전 중의 반전, 화룡점정으로 완성시킨 드라마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듯합니다.
추적자는 많은 수확을 남겼습니다. 좋은 연기자들이 있었고, 메시지가 있었고, 우리 사회의 단면을 세밀화처럼 보게도 했습니다.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큰 여운을 남긴 결말, 부패정권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던 4.19혁명과도 같은 기적을 보게 했고, 박근형, 손현주, 김상중 등의 명연기에 살아움직이는 캐릭터는 괴물들이 따로 없었습니다. 절대권력 서회장을 맛깔나고 매력적으로, 때로는 소름끼치게 무섭게 보여 준 박근형의 명품연기, 존경합니다.
주제의식을 이토록 다각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준 드라마는 보기 드물었습니다. 16회 분량이었지만, 50부 대작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게 다뤘으면서도, 수박겉핥기식 흉내내기도 없었고, 변죽만 울리지도 않았습니다. 둥!둥! 북이 찢어질 정도로 큰 북소리를 담았지요.

무엇보다 추적자가 남긴 가장 큰 수확은 박경수라는 괴물작가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한 줄 한 줄이 명언, 명품어록으로 남은 작가의 섬세한 필치와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직시는, 드라마를 통해 발견한 최고의 수확이 아닐까 싶습니다. 쪽대본이었는데도 이 정도의 완성도높은 대본이 나왔는데,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집필한다면, 파괴력있는 작품이 나올 듯해서 작가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회에도 작가가 던져준 숨은 반전은 많았습니다. 특히 신혜라와 서회장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더군요. 강동윤이 백홍석에게 이런 말을 했었지요. "선택의 순간이 오면, 그 때서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동안 신혜라에게 많은 선택지가 주어졌지만, 그때마다 신혜라는 거래를 해왔습니다. 물론 강동윤과도 거래를 했지만, 마지막까지 신혜라는 강동윤 곁에 남는 모습을 보였지요.
재판을 앞두고도 신혜라는 서회장과 거래를 했죠. 운전자 서지수를 감춰주는 대신에, 1년 후 출소와 한오그룹 텃밭에서 출마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이었죠.
그러나 PK준과 서지수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증거로 나오자, 신혜라는 처음으로 선택을 하더군요. 강동윤과 신혜라의 마지막 거래는, PK준 차량 동승자로 위증을 하는 대신, 살인교사혐의는 강동윤이 모두 지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신혜라에게는 살아 남으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꼼짝달싹 못하는 명백한 증거, 백수정을 차로 치고 뺑소니를 쳤다는 것을 인정하면, 8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죠. 서회장에게 약속받았던 정치적 미래가 물거품되는 것은 물론, 살인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살인교사 혐의는 강동윤이 홀로 지겠다고 했지만, 뺑소니 살인범이 되면 정치적 미래도 날아가게 되는 것이었죠. 결국 신혜라는 자신이 살기 위한 선택을 하더군요. 
블랙박스를 공개함으로써 서회장과의 거래도 없는 것이 되었지만, 마지막에 떠올린 강동윤의 말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못하게 합니다. "너는 살아남아". 신혜라의 형량이나 죄목이 드라마에서는 공개되지 않았기에, 신혜라의 아직 포기하지 않은 꿈이 어떤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날지가 두려워서 말입니다.

서회장을 통해 보여준 반전은 드라마의 백미였습니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 서회장의 의자는 여전히 그가 황제임을 보여줬습니다. 총리의 전화를 받고 욕보라는 말로 그의 건재를 과시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서회장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쉬는 장면은, 박근형이 어떤 심정으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궁금하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권력의 무상함을 얼핏 봤는데 말입니다. 
총리의 전화를 받기전 서회장은 자식들과 이별을 했지요. 서영욱은 경영수업을 위해 유학을 보냈고(물론 특검이나 청문회를 피해서 보낸 목적일 겁니다만), 서지원은 사랑하는 아빠와는 별개인 서회장의 모습을 떨어져서 보고 싶다고 집을 나가버렸지요. 자기가 누구인지(대기업 막내딸로 살아갈 것인지, 사회부 기자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 해보겠다는 의미겠지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멀리서 보면 더 잘 보일 것이라면서 말이죠. 동화책 읽어주던 손자 민성이는 스위스 왕립학교로 유학을 떠났고, 서지수는 백수정 뺑소니범으로 구속되었습니다.
큰 집에 홀로 남아, 아들병역문제로 인사청문회에서 총리가 되는 것이 힘들다는 차기 총리후보의 전화를 받은 서회장은, 여전히 자신의 의자가 가진 권력을 확인했을 지 모릅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숨을 고르는 모습에서 서회장의 노쇠한 모습을 처음으로 봤습니다. 
총리후보자의 전화 한 통, 서회장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서회장은 자식들을 지키지 못했지요. 서회장의 자식을 지켜주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었습니다. 서회장 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들 일에는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그였지만, 구속당한 서지수, 집나간 서지원, 해외로 도피시킨 서영욱, 정작 자신의 자식들은 그의 힘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었던 게지요. 자기 자식들 다 떠나고 없는 텅빈 집에서, 총리자리를 지키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은 서회장, 언론을 통해 쑥대밭이 된 서회장 집임을 알았을텐데도, 무심한 것이 서회장이 사는 세상 사람들이었습니다. 서회장의 안부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죠. 권력무상의 감정을 순간 느꼈을 법도 합니다. 서회장 발등에 떨어진 불도 뜨거운데 식혀주는 이는 한 사람도 없고, 여기저기서 제 발등 불똥 좀 치워달라는 전화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서영욱이 외국나가는 날, 비행기도 출발하기 전에 민성이 몫으로 남겨야 겠다고 오빠 지분을 달라고 요구하는 서지수, 딸자식 키워봐야 남 되나 보다 싶기도 한 서회장이었을 겁니다. 회사농사는 잘 지었던 서회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식농사는 흉작이더군요. 서지원이 그나마 나아 보이기는 하지만, 서회장이 원하는 곡식은 아니었을테고 말입니다.
가쁜 숨을 쉬는 서회장에게서 멀어지는 카메라 때문에 서회장의 마지막 표정은 보지를 못했지만, 격자 창에 갇힌 절대권력자의 절대고독은 작가나 연출진이 그리고 싶었던 서회장의 몰락이 아니었을까, 드라마 속 바람을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암시적인 원근기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뒷목잡고 쓰러지거나, 거품물고 꼴깍하면 식상하잖아요(ㅎ). 

명약관화, 권선징악, 사필귀정, 리얼리티 어느 것 하나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히 감상적 여운으로만 남지 않을 드라마의 결말은 백홍석에게는 해피엔딩, 시청자에게는 새드엔딩이었습니다. 국민들 대다수의 바람을 드라마 결말로 내지 않은 이유를, 작가는 최정우 변호사의 입을 통해 밝혔지요.
"지금 국민들은 백홍석씨에 대해 동정적입니다. 절반 이상이 무죄를 바라고 있습니다. 비겁한 거죠, 국민들이나 저나 똑같이... 백홍석씨가 빨리 풀려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 보면서 잊고 싶은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런 일이 일어난 동안 우린 과연 잘못한 것이 없는지... 백홍석씨가 중형을 받으면 마음이 불편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공범이니까요".
시청자들에게 넘겨진 백홍석에 대한 부채의식을 오래동안 잊지 않기를 작가는 바랍니다. 진행형 엔딩으로 남긴 것은 백홍석의 싸움을 잊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습니다. 피고름으로 써내려간 작가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오래동안 부채의식으로 느끼면서,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지 말고, 백홍석을 보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과감하게 드라마라는 판타지를 버리고 리얼리티를 택했습니다. 살인죄, 법정모독죄, 도주죄, 특수공무 방해죄, 백홍석에게 내려진 15년 선고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작가는 백홍석의 15년 선고를 통해, 비겁했던 우리에게 중형을 때렸습니다. 15년 형을 받는 백홍석을 보며 방청석에서 내지른 한숨이 우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답답함을 오래도록 함께 느끼자고 말입니다. 

백홍석이 맞닥뜨렸던 불편한 현실은 우리 모두가 크건 작건, 느끼고 봤던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뭘 했느냐?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싸우기를 포기하고, 못 들은 척 안 본 척 하지 않았는가?라고 말입니다. 권력이 이기는 세상, 돈이 힘인 세상에 굴복하고 복종했던 것은 우리였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오래동안 타성에 젖은 비겁함과 불편한 진실에 대한 묵인이, 우리 스스로 패배주의를 만들고 있었지는 않았는가 말입니다.
돈으로 안되는 것이 없고, 절대권력에 당연히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백홍석은 무엇을 보여줬습니까? 포기하지 않고 싸운 끝에 돈과 권력을, 결국은 무릎 꿇렸습니다. 모기 한 마리가 황소를 잡았습니다. 진실을 밝혔으니까요. 백홍석은 정의를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웠을 뿐입니다. 은폐된 진실에 정의가 들어왔고, 권력과 정치가 개입되었습니다.

백홍석의 싸움을 보며 새삼 작가에게 놀라웠던 것은, 정의라는, 사람들의 편의와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모호한 것으로 정의를 규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의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라는 것을, 불편할 정도로 담담하게 보여줬을 뿐입니다. 서회장에게도 정의가 있었고, 강동윤과 신혜라에게도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있었지요. 이들에게 맞서 싸운 백홍석에게는 정치도, 권력도, 돈도 바꿀 수 없는 진실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백홍석이 진실을 말하라는 말만 반복했던 것은, 진실만이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밝혀졌고, 죄지은 사람은 죄값을 받았습니다. 강동윤과 서지수는 서회장의 입김으로 특별사면을 통해 형량을 줄여 일찍 출소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는 차후의 문제입니다. 그들에게 평생을 따라다닐 뺑소니범, 살인교사자라는 주홍글씨는 지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세상사람들을 무시하고 살든 말든,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살인자라고 부르게 되겠죠. 이것만으로도 승리입니다.
법정에서 시작된 드라마는 법정에서 모든 것을 매듭지었습니다. 진실은 밝혀졌고 딸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의 처절한 전쟁은 끝났지요. 억울해서 답답했고, 불의에 분노했고, 현실이라 불편했고, 그러나 결코 외면할 수 없게 했던 드라마 추적자. 드라마에는 우리의 모습이 깊게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선택의 순간에 흔들리고, 얄팍한 팔랑귀에 이리 쓸리고 저리 쏠리고, 불편한 진실 앞에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해 버렸던 우리들의 모습이 말입니다.
그러나 백홍석은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정이 아빠니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죽어서까지도 원조교제에 마약한 아이라는 오명을 써야 했던 수정이의 아빠. 최종선고일에 법정에 나타난 수정이는 환영이 아니었을 겁니다. 구천을 떠돌면서 아빠 홍석을 지켜주었던 수정이의 환한 미소를 백홍석은 분명 봤을 겁니다.

"아빠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아빤 무죄야", 수정이 내려준 재판결과에 백홍석은 홀로 웃습니다. 백홍석의 미소에, 수정의 "아빤 무죄야"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듣고, 보고 싶었던 결말, 우리들 마음속에 내려두었던 판결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한 아버지를 어찌 죄인이라 하겠습니까? 아버지는 죄가 없었습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총을 들고 법정을 향했던, PK준의 살인범 백홍석에게 죄가 있었을 뿐이었지요. 수정이에게 꼭 지키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킨 아버지 백홍석, 15년 선고가 내려지는 그 순간에, "아빠는 무죄"라고 말하는 수정이 오버랩된 장면은 추적자 마지막회 최고의 감동, 최고의 결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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