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2.01.21 '남극의 눈물' 가슴찡한 펭귄의 새끼사랑과 충격적인 남극의 변화 (15)
  2. 2011.12.29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최고의 코믹왕은? (9)
  3. 2011.12.27 '뿌리깊은 나무 해례본' 뿌리가 된 세종, 드라마에서 놓쳤던 부분 (6)
  4.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8회' 송중기에게 주눅든 한석규, 소름돋는 치밀연기 (2)
  5.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6회' 세종은 왜 똘복이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을까? (1)
2012.01.21 08:14




영하 40~50도의 추위를 허들링으로 이겨내는 황제펭귄의 모습에 감동하고, 그들의 눈물겨운 새끼사랑은 우리를 부끄럽게 까지 했습니다. 숙연함이 느껴졌던 남극 펭귄들의 생태계는 사람들이 엿보는 것조차 미안해 지는 그 무엇으로 다가왔습니다. "인간은 남극의 친구일까? 침입자일까? 남극의 주인들은 말이 없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송중기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길게 남네요.
남극의 주인 6종류의 펭귄은 성격도 다르고, 사는 지역도 다르지만 새끼에 대한 사랑만은 같았습니다. 황제펭귄과 킹펭귄은 한개의 알을 낳아 부화시키지만, 두 개의 알을 낳아 첫번째 알 하나를 버리는 마카로니 펭귄도 있었고, 두개의 알을 다 품는 아델리 펭귄, 젠투펭귄, 턱끈펭귄도 있습니다.
황제펭귄과 모습이 비슷하지만, 붉은 색을 띄는 킹펭귄의 자식사랑이 감동을 주었는데요, 펭귄들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가족들이 함께 산다고 하지요. 무려 15개월을 함께 산다고 합니다. 자식사랑이 유난스러운 킹펭귄, 새끼들이 크면 공동육아형태로 새끼들을 남겨두고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가는데요, 새끼들은 부모들이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가면, 그들을 노리는 천적으로부터의 위협에 노출되어야 합니다.
사냥꾼 자이언트 패트롤(갈매기과)이 그들인데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수무책 당하고 끌려가는 킹펭귄 새끼를 애처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이언트 패트롤에게도 그들이 부양하는 새끼들이 있었고, 먹고 먹히는 그들의 관계는 인간들이 감정이입으로 개입해서는 안되는 그들의 세계였습니다.
집요하게 새끼펭귄 한 녀석만을 공격하는 자이언트 패트롤, 어린 새끼를 구하기 위해 모여든 어른펭귄과의 대치상황은 장면만으로도 가슴 찡하게 합니다. 달려가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것이 그들의 먹이사슬관계를 유지하는, 그들만의 질서이기에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공격당한 새끼펭귄을 둘러싸고 자이언트 펭귄의 사나운 부리를 막아보지만, 결국 한 마리가 희생당하는 장면을 보고는,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독한 남극의 추위, 천적과의 사투를 이겨내야 하는 펭귄들, 새끼들은 천적들의 공격을 받아가면서도 스스로 강해져 갑니다. 추위에 적응하고 싸워가며 단단해져 가는 새끼펭귄들, 가슴 뭉클한 장면이 또 있었지요. 친구가 위험에 처하자 새끼들이 서로가 울타리가 되어 자이언트 패트롤의 공격을 막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추위와 천적의 위협으로부터 함께 이겨내는 방법들도 스스로 체득해 가는 새끼 펭귄들이었습니다.
펭귄들의 공동생활을 보면서, 의아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것이 적에게 대처하는 그들의 본능이었습니다. 알을 낳지 못하거나, 잃어버리고, 혹은 새끼를 부화시키지 못한 황제펭귄이나 킹펭귄들은 남의 알을 훔치려 들거나, 새끼를 훔치려 드는 얌체행위도 했었지요. 그런데 사냥꾼 자이언트 패트롤 앞에서는 한마음으로 경계를 하고,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더군요. 인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끼리 머리터지게 싸우면서도, 국가적인 일에 있어서는 애국으로 뭉치는 그런 모습말입니다.   
그런데 남극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빙하가 녹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조류인플루엔자로 펭귄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죠. 사우스조지아 해변에서 발견된 1,500 여마리의 턱큰 펭귄의 떼죽음은 충격이었습니다.
이어진 송중기의 내레이션은 섬뜩하게 무섭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지구 최후의 생태계 남극은 면역력이 없습니다". 말로 전하지 못하는 펭귄들의 분노, 인간들에 대한 경고로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들려오는 펭귄들의 절박한 애원같아서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대형선박을 끌고 나타나는 침입자들, 그리고 녹아내리고 있는 남극의 빙하들, 수세기를 살아온 지도마저 바뀌고 있는 미스테리한 일들, 웨델해표의 떼죽음은 원인마저 규명할 수 없어서, 남극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탐조원들조차 충격에 빠뜨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극의 빙하가 녹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남극의 동쪽에서는 반대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얼음이 두꺼워지고 대륙빙도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요즘 실감하고 있는 지구의 기후변화가 단순한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남극의 기온은 상승하고, 오히려 대륙의 기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미래에 닥칠 재앙에 대한 경고로도 들립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보고되는 이상기후, 그리고 예측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을 것같은 위험신호로도 보이고요. 우리나라도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죠.

방송을 보면서 경악했던 것은 폐허가 된 남극기지에 쥐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극에 쥐가 살고 있다니, 방송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남극연안에 비가 잦아지고, 에스페란사 마을의 경우는 최고 영상 8도까지 올라간 일도 있다고 하니,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합니다. 
펭귄들의 대륙 남극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입니다. 포경기지가 있던 곳에 쥐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침입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기지가 들어올 때 쥐들도 함께 들어왔고, 기지에서 서식하던 쥐들이 온난화가 진행됨에 따라 번식도 늘어갔던 것일테고요. 세균없는 청정지역 남극, 쥐들의 번식은 남극에서 살고 있는 펭귄들과 남극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세균과 같기에 사우스조지아 섬에서는 쥐박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부차적인 문제 또한 심각하다고 하지요. 2차감염을 막기 위한 쥐사체 수거를 해야 하는데, 이또한 쉬운 일은 아닌듯 하더군요. 원인모를 떼죽음을 당한 웨델해표의 죽음도, 남극에서 벌어지고 있는 2차세균감염의 여파일 수도 있으리라는 짐작도 되니, 실로 무서운 재앙입니다.
눈물겨운 가족애를 보여준 펭귄들에게도 눈에 띄는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먹이를 구하러 바다에 간 부모펭귄들이 돌아오지 않아 새끼펭귄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다쪽 대륙이 추워지고 있으니 그곳으로 먹이를 구하러 간 부모펭귄들이 먹이를 구하지 못하거나, 돌아오는 길이 더뎌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돌아온 부모들도 있었지만, 펭귄밀크가 부족해서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새끼를 피해 도망다니는 엄마펭귄까지 나올 지경이었으니 말이지요. 그 장면이 어찌나 슬프던지요. 새끼사랑이 그토록 지극한 펭귄이지만, 주고 싶어도 줄게 없는 부모펭귄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어서 말이지요.
남극의 눈물을 보면서 왜 눈물일까 물음표를 던져가며 시청했는데, 남극도 북극이나 아마존, 아프리카 처럼 피폐해져 갈 날도 머지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짓눌러 오더군요. 남극의 눈물은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는 남극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남극생명체들의 눈물이었고, 소리없는 아우성이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 무한한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인간들에게 보내는 애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와달라는...
송중기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가슴을 파고 듭니다. "인간은 남극의 친구일까, 침입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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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9 09:42




명품연기 명대사를 남겼던 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가 남긴 최고의 감동은 백성을 땅끝까지 내려가 사랑한 지극히 고독했던 인간세종, 그리고 군왕 세종의 업적 한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페셜로 방송한 뿌리깊은 나무 제자해는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7과 드라마 주인공들의 뇌구조를 공개해 큰 재미를 주었는데요, 특히 강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연기의 혼을 실은 배우들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보너스 재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명장면 베스트는 젊은 이도가 태종 이방원에게 처음으로 맞서는 장면으로 꼽혔습니다. 송중기와 태종 이방원 역의 백윤식, 그리고 무휼의 존재감을 드러낸 명장면이었지요. 세종 이도가 꿈꾸는 조선의 시작이 그날부터 시작되었으니, 드라마의 탄생배경이기도 합니다. 어린 똘복이를 구한 이도, 그가 구한 첫백성은 왕의 대의를 지랄하지 말라고 욕을 하는 백성이었고, 글자를 몰라 아버지와 동무를 잃은 분노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도 없는 가여운 백성들이었죠.
그가 처음으로 본 궁궐 밖 세상, 조선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사대부들을 위한 나라, 백성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나라, 백성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말로만 떠들고 있었던 그런 나라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맞서면서 세종이도는 그가 꿈꾸는 조선, 모두를 품는 거대한 마방진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관문이자 결실이 백성들의 말을 본 뜬 조선의 글자, 훈민정음이었습니다.

수많은 명장면들이 시청자를 감동의 도가니로 넣었는데, 아쉽게도 빠진 것이 있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정륜암에서의 정기준과의 끝장토론 장면과, 광평을 잃은 세종이 슬픔을 가누지 못할 때 그를 일으켜 세워준 강채윤의 비난을 들은 후 고뇌를 끝내면서, 훈민정음이라는 네 글자를 적는 장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사실 모든 한장면 한장면이 버릴 수 없는 명장면들이었던 이유는, 한글이 요술방망이로 뚝딱해서 나올 수 없는 연구와 노력의 산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한석규의 연기는 근엄세종, 카리스마 세종, 지극히 인간적인 세종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았지요. 연기본좌 한석규의 미친연기는 매회 불이 활할 타오르듯 시청자를 매료시켰고, 조연들의 연기와 완벽한 한 호흡을 이루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지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있었으니, 밀본 정기준과의 첨예한 대립이라는 무거움 속에서도 깨알같은 웃음으로 허를 찌른 반전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무거운 축을 담당했으면서도 허를 찌르는 세종의 코믹함(?)은 무휼과 밀당하는 장면에서도 귀요미돋는 달달커플 한쌍으로 가장 사랑을 받았고 말이지요.

 

명장면 베스트 번외편으로 제가 뽑은 코믹명장면으로 뿌리깊은 나무 그 역병같았던 드라마의 또다른 매력들도 감상해 보실까요? 코믹왕도 선정해 봤는데요, 드라마 속에서는 세종을, 드라마 밖에서는 조말생 대감 이재용을 코믹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처음 똘복이가 강채윤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겸사복으로 궁에 들어왔을때, 강채윤은 사기꾼같은 입담에 행동도 깨방정 자체였지요. 이도를 죽이겠다는 숭악한 마음을 감추기 위함이었지만, 강채윤의 코믹깨방정을 압도한 인물이 있었지요. 용포를 입고 인자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세종대왕이 현신했나 싶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일치했던 석규세종입니다. 닉네임으로 욕세종이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하례는 지랄이라며, 거침없이 쏟아지는 욕은 물론이거니와 똥지게를 진 모습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지요.

 

욕세종 등장, 감칠맛 나는 충격 "우라질, 지랄하고 자빠졌네"
인상적인 욕세종의 장면들이 많지만 그중 두 장면으로 압축해 봤습니다. 경연장에서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해 신하들이 주절주절 반대가 극심했었지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이 완강한 조말생대감의 코앞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던 장면, 뜨헉!하고 놀라는 조말생대감의 표정은 대사없이도 웃음 빵터지게 했던 코믹장면이기도 했지요.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벌이시나이까, 공자왈 주자왈에 대한 세종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우라질". 아직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한자로 쓰기는 했지만, 그 신랄한 비웃음이 통쾌했던 장면입니다.
욕세종의 절정은 정기준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 하고 있음을 알고 도성에 방을 붙이고 이적(오랑캐)의 글은 안된다며, 여론몰이를 하자 내놓은 대답이었지요. 광평을 납치해서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했지만, 세종은 광평의 목숨을 두고 협상하지 않겠다며, 그 참혹한 심경을 감추고 이렇게 말했지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그저 눈만 껌벅이며 아무 대꾸조차 못하고 얼음땡 시켜버린 장면이었죠.
손뼉도 마주해야 소리가 난다고, 그 황망한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입맛만 다시는 황희대감, 눈동자 굴리는 소리까지 들리게 느껴졌던 이신적(안석환)의 눈동자 연기는, 중년연기자들의 연기내공이 이런 것이라고 확인시켜준 명품연기였고 말입니다.
세종과 무휼의 밀당, 귀여운 남남로맨스 
세종이 무휼을 놀려먹는 모습도 코믹명장면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했던 장면들이었지요. 이도를 죽이겠다고 칼을 숨기고 들어온 강채윤, 채윤에게 밀명을 내리면서 독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신경써주지 않았다고 무휼을 놀리는 장면이었죠. 앞으로 3보 이내에 있으라며 무휼을 뻘쭘하게 만들었지요. 무휼을 놀리는 세종의 장난기는 그뿐이 아니었지요. 공포심에 대한 힌트를 채윤이 알아들었을 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세종, 무휼 너도 말귀를 못알아 들었지 않았느냐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세종이었죠.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엉거주춤 세종의 뒤를 따르는 무휼에게서 조선제일검 내금위장의 체면은 땅에 곤두박질을 쳤지만, 스트레스 많았던 세종의 유일한 쉼터는 무휼이었기에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은 투기하는 무휼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했다죠ㅎ.
세종의 놀림을 조석으로 받은 인물 가운데 정인지 역시 빼면 섭하지요. 소이의 출중한 암기력과 방대한 업무를 칭찬하면서, 정인지에게 소이의 녹봉 십분의 일만 받으라고, 놀고 먹는다는 말로 정인지를 하얗게 질리게 만들기도 했지요. 훗날 정인지가 어떤 인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생각하니,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말로 들리기도 하네요. 정인지가 세조의 왕위찬탈을 적극 도왔던 것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초탁과 박포, 우리를 빼면 섭해요
사실 드라마에서 코믹감초역할로 배치한 인물이 초탁과 박포, 그리고 옥떨이 정종철일 겁니다. 특히 초탁과 박포는 북방떨거지와 한양돼아지새끼라며 티격태격 앙숙처럼 보였지만, 누구보다 채윤의 곁에서 훈훈한 동료애를 보여줬던 인물들이지요. 채윤이 죽었을때 가장 슬프게 울었을 친구들이었는데, 마지막회 반포식장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가 잡지 않아서 쪼금 서운하기도(ㅎ) 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소이의 시신을 광화문으로 데려온 이들도 초탁과 박포였겠지요.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보니 연두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개파이가 아니라 박포(신승환)였다는군요.ㅎ

이신적과 한가놈의 바퀴달린 눈동자, 소리까지 들리더라
박포와 초탁외에 대놓고 웃기지는 않았지만, 시청자들에게 표정만으로도 즐거움을 선물해 준 분들이 있었지요. 바로 이신적(안석환)과 한가놈(조희봉)입니다. 안석환의 능수능란한 눈동자 연기는 대사보다 더 많은 내면심리를 전해줘, 그의 표정연기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엿보게 했지요. 본명이 한명회로 밝혀진 한가놈의 찌그러진 표정과 눈동자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극적 재미였습니다. 밀본에서는 정기준의 참모 한가놈이 가장 두뇌가 명석하고, 사태를 분석하는 눈도 날카로웠지요. 소이의 속치마에 적힌 글자로 한글을 쓰고 읽는 법을 독학하고, 연두와 개파이에게 한글까지 가르쳤던 두번째 한글선생님되시겠습니다. 첫 선생님은 채윤에게 한글을 가르친 소이가 되겠고요.
이 외에도 재미있는 코믹장면들이 많았지만 다 열거할 수는 없겠네요. 이 장면들 정리하느라 1부부터 24부까지 재복습했답니다;;. 추천안하고 글만 읽고 쌩가버리면 삐질거임! ㅎㅎ 농담입니당^^

"전하의 글자는 달랑 스물여덟자다"
코믹장면은 아니었지만, 코믹보다 더 기분 즐겁게 웃겼던 장면을 꼽아본다면 광평대군과 채윤의 대화입니다. "5만자 중에 천자를 배우는데도 그리 오래 걸렸는데, 도대체 전하가 만드신 글자는 몇글자나 되십니까? 5천자요? 아니면 3천자요?". "스물여덟자". "천 스물여덟자요?". " 아니 그냥 스물 여덟자". 
스물여덟자라는 그 짧고 강한 말에 배여있던 광평대군의 자신감과, 헛소리를 들은 듯한 채윤의 표정이 대조적으로 클로즈업되었는데, 다시 봐도 스물여덟글자에 삼라만상을 다 담을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이 가슴벅차게 자랑스러움으로 밀려오더라고요.
코믹명장면 베스트를 정리해 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최고의 코믹왕 본좌에도 역시 세종이 1위^^. 

신세경이 반한 당구치며 춤추는 조말생대감, 귀요미 훈남등극
여기서 끝나면 진짜 섭섭하지요. 촬영장 에피소드에서 월척 코믹왕이 등장했답니다. 드라마에서는 욕세종, 삐짐대왕, 짓궂은 세종이 코믹왕이었지만, 촬영장 에피소드를 통해 공개된 연기자들의 모습에서 의외의 반전왕이 있었으니, 놀랍게도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습니다. 조말생은 드라마에서도 멋진 보수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도 했고, 밀본 정기준을 속이고 한글유포의 임무를 위해 나인들을 궁밖으로 빼돌린 연극에서도, 최고의 배우로 등극했던 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재용의 촬영장에서의 소탈하고 장난기있는 모습에 하트뿅뿅이었답니다. 촬영장에서는 인기만점 훈남에다가 후배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분이더라고요. 신세경의 이상형으로 뽑히기도 했답니다. 이재용의 구레나룻이 멋지다는 신세경, 이재용은 자신의 매력을 멋진 옆선이라며 자신있게 자랑하기도 했는데요, 위로 치올라간 눈썹과 어울리게 구레나룻도 길게 빼서 단호한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재용의 소탈한 다른 모습에 빵터졌으니, 귀여운 모습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었답니다. 정말 귀요미 이재용이었습니다. 늘 재미있는 말과 행동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훈훈하게 하기도 하고, 소품을 이용해 당구치는 모습으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더군요. 소탈한 모습과 재미있는 모습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즐겁게 만든 중년연기자 이재용, 뿌리깊은 나무 카메라 밖 코믹왕이셨습니다. 

대본, 연기자, 연출, 시청자의 사랑이라는 네박자가 맞은 올해 최고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드라마를 빛낸 모든 연기자들에게 조말생대감의 입을 빌어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뿌리깊은 나무 24부까지 오는 동안 내내 행복했고, 한글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님, 정말정말정말 존경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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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7 13:39




한글 그 위대함과 세종대왕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남겼던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의 명품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었지요. 스페셜로 편성된 해례본을 보면서 한가지 놓쳤던 부분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드라마가 끝나고서도 그 긴 여운은 아마도 주인공들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때문이었을 겁니다. 고독한 세종, 향원정을 거니는 쓸쓸한 세종만을 남긴 제작진의 인정머리없음이 못내 서운하면서도, 그럴 수 있었겠다고 제작진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저희집에서는 여전이 설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장치로서 소이 채윤 무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희생하고 버려야 했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이었기에 죽음을 죽음으로 보는 것보다는 세종의 건강, 편안함, 인간관계 등을 상징했다고 보니, 드라마 결말이 가슴에 구멍이 뚫릴 정도의 슬픔으로 자리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한글과 세종대왕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는 점에서 드라마사에 길이 남기고 싶은 마음이 크고요. 
아무리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도 스페셜은 관심도가 떨어지는데, 저는 오히려 드라마에서 놓쳤던 중요한 것을 되짚어 생각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장성수 학사의 주검과 함께 밀본 수장 정기준이 세종에게 보낸 짧은 협박의 문구가 그것입니다. 화시화이이의(花是花而已矣) 불가이위근(不可以爲根)-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
드라마에서 뿌리는 백성을 의미했고, 강하고 튼튼한 백성이 나라를 튼튼하게 지탱하는 근본이며, 글을 깨우친 백성의 힘, 백성에게 권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글자를 통해 주려했던 세종의 거시적인 역사관과 애민정신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였지요.
그런데 압축된 스페셜편을 보다보니 밀본의 시작이며 세종과 대립했던 이 짧은 문구에서 놓쳤던 것이 비로소 보였습니다. 세종은 뿌리가 되었는가? 다시 말해 세종은 백성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상한 질문이 그것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을 백성이라는 집단 속에 넣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겨나더라는 것이죠. 왕은 지배계층의 최정점이기에, 백성이라는 피지배층과는 물과 기름처럼 다른 계급인데 말입니다.
조선을 이끌고 지배하는 중심이 왕이냐 사대부냐로 놓고 본다면, 조선을 지탱하는 뿌리 싸움에 대한 세종과 밀본의 대립은 성사되지만, 정도전과 정기준의 논점대로라면, 왕은 뿌리가 될 수 없다는 말에서 이상한 싸움논리가 발견되더라는 겁니다. 밀본은 왕이라는 권력이 조선을 독단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논지에서, 조선을 운영하는 체계는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재상총재제를 내세웠죠.
그런데 세종은 백성이 그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방법으로 글자를 제시했습니다. 뭔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 싸움이지요. 즉 사대부는 왕이 뿌리가 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즉 왕권견제의 카드로 재상총재제를 내세웠는데, 세종은 백성으로 뿌리에 대한 답을 냈다는 겁니다. 그럼 밀본에서 말하는 꽃(임금)은 어떻게 된 걸까요? 뿌리가 된 걸까요? 아니면 꽃인 채로 남았을까요?
밀본이 우려한 대로 뿌리가 되었다면, 세종과 백성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에 대한 질문이 제 속에서 나왔고, 한참동안 그 답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백성과 함께 하는 임금이라는 생각도 했고, 왕도 한나라의 구성원인 백성이다라는 원론적인 생각도 해봤는데 이도저도 맞다 싶은 게 없더라죠.
그리고서야 세종과 정기준의 정륜암에서의 끝장토론을 떠올렸습니다. 세종은 글자를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지요. "임금은 늘 견제당하는 존재이기에 한계가 있다. 하여 나는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하게 하려 한다. 백성이 힘을 가지고 그 권력을 나눠 가지게 되는 새로운 균형, 새로운 질서, 새로운 조화다. 나의 글자는 그런 새로운 세상의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세종의 말에 정기준은 반박했죠. "권력을 나누려는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백성의 욕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세종을 몰아세웠고, 정기준의 말에 세종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요. 광평을 잃고, 반포식에서 무휼과 채윤, 소이마저 잃은 세종은 처참한 모습으로 용상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정기준에게 대답을 할 수 있었지요. "너 때문에 백성을 사랑하게 됐다. 여기가 이렇게 아픈데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가 있겠느냐, 그것이 바로 사랑이야".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에 대한 기나긴 세월의 고뇌와 싸움 속에서 얻은 답이었습니다. 소이와 채윤은 백성이었습니다. 소이와 채윤을 드라마에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세종의 마음 속에서 생각했던 백성이라고 생각하면, 좀더 분명해지지요. 억압받고 고통받으면서도 그 몫을 지고 있던 백성들, 그들의 고통이 아팠던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며, 사랑하기에 고통의 짐을 나눠지려고 했던 세종이라고 생각하면, 채윤과 소이는 세종의 마음 속 고통받는 백성의 모습으로 치환되지요. 소이와 채윤의 죽음이 결말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았고, 죽음과 백성의 고통을 대치하는 장치였을 뿐이라고 생각된 순간, 소이와 채윤의 죽음이 큰 슬픔이 되지 않았던 이유였습니다. 
무휼의 죽음은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슬펐고 안타까웠지요. 마지막까지 세종을 지켰던 호위무사, 무휼은 세종의 육체를 상징하는 장치였기 때문이에요. 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세종은 건강이 악화되었고 당뇨의 합병증으로 시력까지 극도로 나빠졌고, 육체적으로 고통도 심했습니다. 무휼의 죽음은 그런 세종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 나온 글자라는 의미로 풀어봤거든요. 집현전 학사들의 죽음 역시 하루 두 시각밖에 잠을 자지 않고 책과 연구에 씨름했던 세종의 고단함을 상징하기도 했고 말이지요.
드라마에서 허구의 가상인물들은 모두 죽음으로 끝났던 이유, 결말반전에 대한 제작진의 집착이라기 보다는 그 모든 가상 인물들은 세종의 건강, 인간적인 욕망, 반대세력, 우리 글자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들로 상징화시켰던 것이기에, 마지막 그 모든 희생과 반대들이 한글반포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 소이, 채윤, 무휼, 광평 등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야 했습니다. 드라마속에서 잃은 세종의 소중한 사람들은 그만큼 많은 고통과 노력 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세종의 위대함과 노력을 다 보여주기에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종은 기꺼이 백성이 되었습니다. 밀본이 우려했던 뿌리가 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백성과 함께 하는 뿌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백성 위에 사랑과 애민으로 군림하는 군주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군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우연히 제작진의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뿌리깊은 나무는 백성에 대한 세종의 멜로물이었다고 하더군요. 세종이 사랑한 대상은 여인 소이가 아니라, 글자가 진정으로 필요했던 소이라는 백성이었고, 백성의 어버이로서의 자격과 의무를 묻고 신뢰했던 강채윤이라는 백성이었던 것이지요. 가상 속의 소이와 채윤이라는 백성은 세종이 글자를 창제해야만 하는 이유를 부여한 가엾고 고통받는 백성들이었고, 반포식 이후 향원정을 거닐며 세종은 다른 모습의 백성들을 상상해 보지요.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하루 하루 생생지락을 누리는 백성들의 행복한 미소를 말입니다.
사체해부를 한 것을 두고 성삼문과 박팽년의 반발에 세종이 말했지요. "이 글자들은 내 혀를 닮았다. 내 목구멍을 닮았다. 백성들의 것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세종은 자신을 백성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의 혀가 금으로 된 것이 아니었고, 임금의 목구멍이 옥으로 세공된 것도 더더구나 아니었지요. 백성과 똑같았습니다. 내 혀를, 내 목구멍을 닮았다는 말에서 세종이 얼마나 백성과 자신을 같은 자리에 두었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었죠. 
여기서 세종이 뿌리가 되었느냐?에 대한 답이 나온 것이지요. 밀본이 견제하던 뿌리가 되었기에 그 권력을 나누고자 했고, 함께 책임지고자 했던 세종이었지요. 드라마를 통해 세종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혹은 정확하게 알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았던 메시지는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과 함께, 더불어 살고자 했던 한 위대한 지도자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절실히 원하는 그런 모습이기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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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4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장성수의 죽음과 함께 공개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밀본, 세종을 흔들고 있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의입니다. 무휼에게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심하게 흔들리는 세종 이도였지요. 그리고 이도를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똘복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궁녀 소이가 자신을 잡아줬었지요. "전하의 탓이 아니옵니다"라며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 8회에서는 잠을 잘 수 없는 세 사람을 대조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이도를 향한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강채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소이, 그리고 아버지와는 다른 조선, 이도가 꿈꾸는 조선을 세우기 위해 잠 못 드는 세종을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모습으로 그렸지요.
가히 미친 연기력이라 할 수 있을 한석규의 연기는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군요. 핏발을 세우지 않고 목소리의 강약만으로도 분노와 불안, 그 내면심리까지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배우 한석규는 걸음걸이마저 세종에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군요.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지만, 한석규는 용포 속 고뇌하는 고독한 군주 인간 세종 자체였습니다.

경회루에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는 글귀와 함께 실려온 장성수의 시신에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크게 동요합니다. 누구보다 세종 이도의 충격이 큽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오수를 청하고, 주위를 물리는 세종이었지요. 이방원의 망령과 싸우는 세종. "군왕이란 그런 것입니까?" 이방원은 세종을 또다시 비웃습니다. "권력의 독은 안으로 감추고, 오직 인내하고 참겠다고? 그게 사람의 길일 줄 아느냐? 내가 걸었던 길보다 훨씬 더 참혹할 거라고, 내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다시 비웃는 듯하지요. "예, 참혹합니다. 허나 소자는 아버지와 다르옵니다. 의심하고 낚고 베고 죽이지 않겠습니다. 결코."

경연을 준비하라고 이르고는 경연장으로 간 세종은, 엉뚱한 주제로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회의안건은 "세법이요". 어안이 벙벙해진 대신들에게 세법 가부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13년 고을민의 반대로 부결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침착하게 응수하는 세종입니다. 세법혁파야말로 대신들과 유림의 기득권 문제가 걸린 사안이었기에, 광평대군마저도 세종의 저의를 의심하고 걱정하지요. 반발세력을 걸러내 밀본을 추리겠다는 숙청의 의도로 받아들이는 광평대군이었지요. 광평대군에게 "나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마라"라고 일축하는 장면에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상소문을 다시 읽는 세종. 무휼 역시 흔들리는 세종을 걱정합니다. "심기를 굳건히 하라"는 말에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는 세종.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인데. 그런데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할 때도, 대명(大明)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다, 국고가 낭비된다, 신분질서가 어지럽혀진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 자기네들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야."

한석규의 연기에 입을 쩍 벌리고 들으면서도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요. 세종이 세우고자 하는 조선은 자주 조선이었으며 실용의 조선이었고,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인재가 등용되는 조선이었으며 백성의 애환을 살피는 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선을 세우겠다는 세종을 왜 반대하고, 밀본이라는 개떡같은 조직이 조선을 흔들려고 하는지 세종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장성수의 시신과 함께 보낸 밀본의 글귀를 읽은 세종이 혼잣말로 "염병"이라고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정말 염병할 사대주의자들이죠. 한석규가 염병이라고 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그 세심한 연기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지문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동요하고 흔들리고 자신 없는 세종. 그가 발길을 향한 곳은 집현전이었지요. 문(文)의 통치를 하겠다며 아버지의 조선과 다른 조선을 보이겠다고, 경연하고 쟁의하고 합일점을 찾는 조선을 만들겠다고 만든 집현전. 그곳에서 세종은 젊은 자신과 만나지요. 젊은 세종(송중기)의 환시와 싸우는 세종의 모습은 주눅이 들어 있었고, 자신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한편의 모노심리극 같았던 젊은 이도와 중년 이도의 만남은 세종의 내면적인 갈등이 얼마나 극에 달해있는지와 함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세종을 보여준 장면이었지요. "네놈의 그 한심하고 잘난 결심이 이렇게 만든 거야. 네놈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네 사람을 죽인 것이다. 이방원의 무덤에 가서 눈물 흘리며 사죄해라. 이방원이 왜 이방원인가?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깜짝 등장한 송중기, 조소하고 조롱하는 연기를 소름 끼치게 잘하더군요. 송중기의 조소하는 눈빛에 공포와 죄책감에 질려 가늘게 떠는 한석규의 연기는 수천 개의 바늘로 몸을 찔러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왜 한석규인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기도 했고요.

젊은 이도와의 싸움은 자기 사람을 잃게 한 자책감으로 분노하고, 젊은 이도에게 책망받는 유약한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갈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세종의 내면을 말했던 것이지요. 후배와의 연기에서 자칫하면 한석규의 카리스마 혹은 압도감에 송중기가 묻힐 수도 있었을 장면이었지만, 한석규는 송중기를 이기려고 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파르르 떨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흔들리고 갈등하는 세종의 심리였고, 또한 강채윤과의 만남에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는 극기의 과정과 연결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저 카리스마 풀풀 넘치는 모습으로 송중기와 독대를 했다면, 가장 중요했던 장혁과의 장면에서 우직하게 그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극적 절정감을 주지는 못했을 겁니다. 완벽하게 세종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나오기 힘든 심리싸움을 그린 명장면이었습니다.

소이의 뒤를 밟던 강채윤은 장성수가 남긴 서책을 일부러 흘리고는 소이의 행동을 지켜보지요. 놀랍게도 소이는 서책을 읽더니만 책을 갈기갈기 찢어 불살라 버리죠. 그리고는 반촌의 가리온을 찾아가 불면증 약재를 구해 궁으로 들어갑니다. 소이의 이상한 행동에 처소까지 따라 간 강채윤은 소이에게 산조인을 먹지 말라며 나직히 말하지요. 강채윤은 소이가 산조인을 왜 먹는지를 알았지요.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지요.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잠을 잘 수 없는, 아니 스스로 잠을 자면 안 되도록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사연이 있음을 짐작합니다.

약으로 고통을 이기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는 채윤에게 "어찌 그것을 알았느냐?"고 묻는 이는 뜻밖에도 이도였지요. "아무 죄 없는 아비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일 수 있는 이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혹여 잠이라도 들면 아비가 무서운 모습으로 이유라도 말해달라며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나타날까봐." 어찌 고쳤느냐는 세종의 물음에 강채윤은 아비를 죽게 한 사람에게 복수할 결심으로 고쳤다고 대답하지요. 복수를 결심해야 하니 몸은 더 지치고, 모든 인생을 그것에 걸어야 하는 마음은 참혹하다는 강채윤에게 이도는 또 묻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길을 가느냐고 말이지요.
"결심이 왜 결심이겠습니까? 결심 없는 소인은 더이상 소인이 아니옵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강채윤의 말을 되뇌는 세종은 흔들렸던 자신과 똘복이를 비교해 보지요. '그만큼이었구나, 노비 똘복의 결심은.'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그 참혹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똘복이 앞으로도 그 길을 가겠다는 채윤에게 "넌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며 발걸음을 돌리지요. 강채윤이 가겠다는 길이 이도 자신을 죽이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라는 말에 보좌하고 있던 무휼이 크게 놀라지만, 세종은 모든 갈등을 털어냈다는 듯이 그의 길을 향했습니다. 휘청였던 세종의 발걸음은 어느새 곧추 서 있었고, 허허롭게 웃음 짓던 세종의 얼굴은 단호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이방원의 칼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마방진으로 숨어버렸던 이도.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는지 회의가 들어서, 또다시 마방진으로 숨으려 했던 이도였습니다. 그리고 강채윤을 보며 아버지와는 다르리라 결심했던 그 결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이방원에게 목숨을 내놓고 구했던 첫 백성 똘복이. 이도를 처음으로 임금이게 했던 똘복이가 그를 일깨웁니다. 외롭고 더 참혹해진다 해도 이도이기에 가야 한다고, 임금이기에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똘복이 아버지 석삼이. 글을 몰라 아버지와 친구를 잃었던 소이.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보낸 서찰 한 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을 때, 이도는 나의 나라에서 글을 몰라 죽는 백성은 없게 할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아전이 그리라는 대로, 글자 아닌 그림을 그리는 백성들. 그것이 누구를 위함인지도 모르는 백성들은 석삼이, 똘복이, 소이입니다.
세종은 똘복이를 첫 백성으로 얻고, 수많은 똘복이들을 만나려 했습니다. 한글은 똘복이를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똘복이 너는 나를 만나러 왔느냐, 나는 너(백성)를 만나러 가겠다', 이방원 없는 천하, 그날 그 굳은 결심 앞에 다시 선 세종 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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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35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어찌 힘들지 않았겠는가? 어찌 그 길을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겠는가? 유학을 근본으로 삼고, 성리학을 목숨으로 삼는 사대부 양반들의 나라에서 그들의 뿌리가 되는 한자를 두고, 백성의 말을 글자로 만들어 보급하겠다는 것은 그들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으니...
그래서 세종 이도는 고독했고, 흔들렸고, 힘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세종을 잡아준 이는 말못하는 나인 소이였습니다. 대범하게도 궁에서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커다란 눈에 눈물을 한가득 담고 쏘아보던 아이, "너때문이야"라는 원망의 눈을 마주한 세종은, 그 아이에게서만은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글을 몰라 아비와 가족들을 잃은 아이가 똘복이만이 아니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 6회에서는 어린 소이(신세경)와 젊은 세종(송중기)의 만남, 그리고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었는데요, 송중기의 깜짝등장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처음 만남부터 세종에게 담이(소이)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지요. 감히 왕에게 돌을 던지는 아이, 얼마나 가슴에 맺혔기에, 얼마나 그 분노와 증오가 컸기에...그런 담이(어린 소이)에게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는 임금, 어린 소이도 그 진심을 전해받았을 듯합니다.  

그리고 세종의 비밀조직이 밝혀졌는데요, 천지계였지요. 정기준의 밀본과 세종의 천지, 두 조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원수를 죽이겠다고 궁으로 들어온 강채윤의 수사팀이 비밀스럽게 맞물리면서, 더욱 그 스케일이 커지고 있습니다. 화려한 액션과 의문스러운 사람들의 등장은, 모든 사건과 밀접한 고리를 만들면서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고 긴장감 넘치게 합니다.
특히 뛰어난 무공을 가진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한상진)와 베일에 싸인 정기준과의 관계가 흥미롭죠. 여기에 수상스러운 인물 가리온(윤제문)의 진짜 정체가 뭔지 궁금증 폭발입니다. 정기준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저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 듯한데, 윤제문이 워낙 그 연기력이나 포스가 장난이 아니어서, 정기준이라고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닐 듯합니다.

왜 천지인가?
세종의 비밀조직이 등장했는데요, 죽은 집현전 학사들과 정인지, 성삼문(현우), 박팽년(김기범) 등이 계원으로 있는 천지입니다. 조직원의 암살은 이미 밀본이 천지조직을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천지내에 밀본의 스파이가 있을 듯하지요. 뛰어난 무공을 가진 심종수의 정체를 통해 밀본의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있다는 것도 새삼 확인했고 말이지요.
윤필의 시신에 돋보기로나 볼 수 있는 문신이 있던 것을 본 강채윤은 학사들을 신체검사해야 겠다고 집현전에 왔는데요, 사방팔방 들쑤시고 다니는 강채윤의 수사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죠. 집현전에 와서 신체검사를 해야겠다고 떠들고 간 이유는, 같은 문신을 한 사람들이 표면에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아니나다를까 성삼문과 박팽년이 허담과 윤필의 시신을 빼내, 자신들과 같은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되지요. 적들이 노리는 것은 천지계원이며, 천지계원이 자신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지요.
그런데 그 문신의 모양을 보니 작은 원 안에 네모 모양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의미를 좀 풀어봤는데요,  두가지가 내포된 듯합니다. 문신의 ㅇ과 ㅁ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또 한글을 언문이라 한 것과 유추해서 첫자음 ㅇ과 ㅁ을 말하는 듯도 하고요. 

"소이 네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똘복이가 왔다"
죽은 윤필이 사자전언(死者傳言)으로 남긴 곤구망기(ㅣ口亡己)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집현전의 학사들도 그 뜻을 알지못해 궁금증 폭발입니다. 놀랍게도 곤구망기를 푼 이는 세종 이도였지요.
ㅁ ㅣ ㄹ 을 조합해 '밀'이라는 생소한 글자를 만들고, 뚫린 입에 가시처럼 들어있던 활자본의 의미로 ㅁ와 ㅣ를 조합해 ㅂ을 만들고, 한자 亡을 합치니 '본'이라는 글자가 완성되었지요. 윤필이 남긴 사자전언은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과 자신을 죽이려는 자의 배후가 '밀본'임을 가르켰지요. 밀본의 조직원인 심종수(한상진)가 곤구망기를 풀었다해도 한글을 모르는 그에게는 '젠장 빌어먹을' 이게 뭔 그림이야 였을 겁니다.

'밀본', 정기준 일가가 몰살되고 20여년이 흐른 후에 다시 등장한 밀본의 정체에 경악하는 세종, 그것이 세종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천지계원들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세종은 흔들립니다. 세종을 짓눌러온 트라우마, 자신때문에 백성이 죽었다는 것은 큰 일을 앞 둔 세종을 무겁게 짓눌러옵니다.
또한 "우리 아버지 죽인 지랄같은 임금을 죽여버리겠다" 울부짖던 똘복이가 겸사복 강채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세종은, 그의 무서운 증오심과 집념에 놀라 비틀거리지요.  
소이를 찾은 세종은 흔들리는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지요. 너무 힘들고, 고독하고, 그 짐이 무겁다고 말이지요.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없는 자리, 그게 조선의 임금이란 자리다. 내 일을 하다 내 사람들이 죽었다, 내가 죽인 것이야...".
자책감에 괴로워 하는 세종에게 소이(신세경)은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합니다. "전하의 책임이 아닙니다".  세종 이도의 두 눈에 굵은 눈물이 흐르고, 비로소 세종은 격한 감정을 누르고 한 인간이 아닌, 백성의 아버지 세종으로 돌아오지요, "전하의 책임이 아닙니다" 소이의 필답에 격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인간 세종의 모습은 서글프게까지 다가옵니다. 인간 세종의 내면을 표현하는 한석규의 연기는 말이 필요없네요. 

"흔들리지 마라, 네가 흔들리면 나도 무너진다"
강채윤이 한지골 똘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무휼은 강채윤을 죽이려고 하지만, 강채윤이 편전에 들었다는 보고를 받고 경악하여 편전으로 향하지요. '전하가 위험하다'. 가면을 쓴 자가 윤필을 납치하던 상황을 몸으로 설명하는 강채윤, 관모에 대침을 숨기고 들어왔던 강채윤은 비수대신 침을 사용하려 했었지요. 무휼이 한발만 늦었으면 세종의 목숨은 어찌 되었을지 모릅니다.
가면(정기준의 수하 윤평-이수혁)이 나무에서 표창을 날렸다는 대목에서 강채윤이 대침을 날렸을 듯하더군요. 관모에서 대침을 빼는 강채윤을 보며, 오메 숭악한 놈, 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지요.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보니, '그때 침을 날렸더라면, 한글은 어찌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식은 땀이 흐르더이다. 픽션임에도 이렇게 살떨리게 흥분하고,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팽팽한 긴장감,, 한석규, 장혁, 조진웅의 연기는 최고입니다!

무휼로부터 강채윤의 정체를 알게 된 세종은 그 집요함에 놀라고, 비틀거리지요. 그리고 자신때문에 식솔들을 잃은 살기 가득한 아이의 눈을 떠올립니다. 똘복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 소이가 강채윤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게 돼버리지요. 소이는 세종이 비밀리에 추진하는 프로젝트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한 번 본 것은 다 외워버리는 소이의 특출한 재능은, 아직은 활자로 만들 수 없는 '그것'의 살아있는 인쇄본이기 때문이죠. 한글창제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방진은 소이의 머리속에서 퍼즐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활자들이며, 제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니까요.
세종은 소이가 강채윤(똘복이)의 정체를 절대로 알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강채윤을 무휼의 뜻대로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뒤죽박죽 헝클어지는 세종, '한글, 소이, 똘복이, 그리고 곤구망기를 통해 드러난 밀본, 정기준' 등이 세종을 힘겹게 하지요. 밀본과 강채윤이 관계도 세종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고 말이지요. 세종에게 강채윤은 어사주나 내려달라는 꽤 똑똑하고 배짱있는 인물이 더이상 아닙니다. 윤필의 사자전언으로 드러난 밀본과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인설, 허담, 윤필의 죽음 현장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인물이니 말이지요. 
광평대군의 처소를 찾아 소이와 필담을 나눈 이유는 더 이상 자신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려고, 그 거대한 마방진을 포기하려는 인간적인 갈등때문이었습니다. 소이가 끝까지 전하의 책임이 아니라고 대답해주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세종은 똘복이의 정체를 소이에게 말해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세종을 단단하게 세워 준 이는 다름아닌 소이였지요. 누구보다 세종의 고뇌와 고독과 힘겨움을 잘 알고 있는 소이, 소이 앞에서는 한 나라의 임금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흘리는 눈물도 보일 수 있었던 세종 이도였지요. 누구보다 신뢰하고 믿고 아끼는 아이, 자신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아이, 그 아이가 그토록 잊지못하고 그리워 하는 똘복이를 감출 수 밖에 없는 이도입니다. 
"울지 마라, 어명이다. 나를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려서는 아니된다", 소이가 눈물을 보였더라면, 세종은 말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 하는 똘복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감춰버린 못된 나를 용서하라는 듯이, 그 옛날 자신에게 돌을 던진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세종은 또 마음으로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세종이 말했던 "나를 위해"는 '힘든 나를 위해'의 의미도 있었고, '내가 하려는 일을 끝까지 하기 위해'의 의미도 있습니다. 

"네가 흔들리면 나도 무너진다. 흔들리지 마라"고 했던 것은 그 때문이지요. 세종이 비밀리에 만들고 있는 한글, 그 모든 것을 머리 속에 외우고 있는 소이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지요. 내 사람을 죽여가면서 까지 세종이 남기고 가려는 마지막 일이 그의 운명이듯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동무가 살아왔다는 것을 몰라야 하는 것이 소이의 운명이라고, 인간적인 번민을 한줄기 눈물로 끊어내는 세종 이도였습니다. 

한글이 위대한 것은 그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위대한 창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최만리같이 한글창제에 반대해해 거세게 반발했던 경학파들과 사대부들의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지켜낸 의지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사대부들의 반발과 싸워햐 했던 세종은 임금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던 고독한 군주였던 것이지요.
전하의 책임이 아니라며, 끝까지 세종을 지지하고 지켜준 소이. 소이라는 인물은 세종의 정신적 동반자로 요약되지만, 한글은 세종 혼자서 해낸 업적이 아니었음을 환기시켜 줍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정인지, 이개 등등 집현전에서 날밤을 세웠던 집현전 학사들이 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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