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4회' 세종대왕이 욕을 하는 이유 (1)
  2.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4회' 웃기는 세종 한석규, 허를 찌르는 완벽한 반전 (1)
  3.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회' 서서히 드러나는 세종 이도의 야망 (2)
  4. 2011.11.05 '뿌리깊은 나무' 장혁, 어린 똘복이의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 (17)
  5. 2011.11.03 '뿌리깊은 나무' 충격반전, 윤제문(가리온)도 천지계원? (54)
2011.11.12 09:31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역사의 큰 비극은 옳고 그름이 맞서 싸울 때가 아니라, 두 옳음이 맞서 싸울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왕조의 기틀을 세워야 하는 태종, 왕의 일인독주를 막으려는 사대부, 그들이 싸우는 명분은 대의였습니다. 양측의 입장에서 둘 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싸움은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비극이었죠.
그럼, 세종 이도의 대의는 무엇이었을까요? 훈민정음 반포를 앞두고 집현전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도 대의끼리의 충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살인사건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것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지만, 그 끝은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종 이도의 대의로 귀결됩니다. 

집현전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 드라마에서는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정도전-정도광-정기준으로 이어지는 밀본이라는 조직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사대부의 나라가 정도전이 기초하고 세운 조선이었고, 그것이 조선의 새통치질서 즉, 대의라고 봤지요. 따라서 사대부들은 칼로 지배하는 이방원의 대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태종이 죽고 세종이 실질적 권력을 잡았음에도 사대부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습니다. 왕과 신하의 마찰은 권력 주도권과 기득권의 싸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왕실재정을 위해 귀족들의 잇권을 침해하면 폭군이며 폭정이라며 반발했고, 백성들을 위한 토지정책이나 구휼정책들 역시도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었지요. 실질적인 소유자 양반들의 재산침해였기 때문이죠. 부와 권력이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은 과거나 요즘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는 권력이 부였다면, 요즘은 부가 권력으로 순서가 바뀌었을 뿐, 둘의 관계는 업어치나 매치나입니다.
집현전의 살인사건에 숨겨진 한글창제 저지음모는 사대부들의 기득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지적재산권 싸움이라고 할 수 있죠. 글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기에, 그들의 재산과도 같았고 특권이었죠. 그런데 임금이 이를 백성들에게 나눠준다고 하니, 경천동지할 일이었죠.

본격적인 드라마의 진행을 앞두고, 정리하지 못한 것이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세종이 깨달은 마방진의 답부분입니다. 백성이 근간이 되는 조화로운 세상이라는 간결한 말로 이도의 답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하례는 지랄"이라는 말로, 파격적으로 등장한 한석규의 새로운 세종으로 인해, 세종에게 욕이 어떤 의미였는지, 드라마 내용과 관련해서 정리를 했습니다.  

마방진에서 구한 세종의 답은?
"대의? 지랄하지 말라고 해. 우리 아버지 죽이는 대의가 뭔데? 반푼이도 아들 살리는 것 아는데...임금은 백성의 어버이랬잖아, 대의로 지랄 말라고 해". 똘복이의 말에 충격받은 이도의 눈에 눈물이 고였었지요. 그리고 처음으로 얻은 백성이라며, 무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저아이를 살리라고 했지요.(핵심: 세종이 처음으로 얻은 그의 백성 똘복이에게 지랄이라는 욕을 배웠다는 것, 그가 살린 첫 백성이 그를 죽이러 왔다는 것이 드라마틱한 재미기도 하지요)

빈찬합을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결심을 했던 이도는 빈찬합과 방진의 모형이 같은 것을 보고 깨닫습니다. 궁녀들을 모아 결국 33방진을 푸는데 성공했지요. 이도가 깨달은 것은 방진의 답, 숫자의 배열이 아니라, 규칙이었습니다. 어떠한 숫자의 방진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숫자도 빼지 않고 같은 답을 구할 수 있는 규칙이 있음을 알아낸 것이지요. 5방진 8방진 16방진 25방진 33방진 55방진, 어떤 숫자의 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가로세로 대각선 모두 같은 합의 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종 이도는 그날 이 규칙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종의 질문에 대한 답도 내놓을 수 있었지요. 마방진이 아무리 숫자가 커진다고 해도 풀 수 있는 규칙이 있었듯이, 그의 조선도 그의 식대로 풀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고 말이지요. 마방진의 규칙을 찾고 세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 랄'이었습니다. 그리고 놀이는 끝났다며 방진을 치우라고 말하지요. (핵심: 똘복이가 했던 말 '대의로 지랄하지마'입니다. 이도가 방진을 풀고 했던 말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어요. 이 단순한 답을 찾기 위해 내가 지랄을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방원과 사대부와의 싸움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지요. 자기에게 편한대로 대의를 만들고, 그것을 명분으로 지랄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도가 내놓은 답은 현명한 자를 모아 전각을 세워, 글이나 읽으며 아버지 태종의 사후를 준비하고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문으로 통치할 것라며, 경연하는 조선을 만들 것이고 말하지요. 경연은 사대부들이 왕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펄쩍 뛰는 태종에게, 이도는 단호하게 대답했지요. "그것이 고려에서 개혁된 조선의 시작이었고, 조선의 정체이며, 성리학의 이상이니까요".

왜 집현전을 만들었을까?
세종은 지랄을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진의 규칙을 찾았듯이 조선의 이념 성리학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기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했고, 연구해야 했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가진 이론을 알아야 하고, 약점과 오류 또한 지적할 수 있어야 하지요. 따라서 학문을 권력이나 정치를 위한 목적으로 두지 않은, 똑똑하고 현명한 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정기준이 내 집현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그 학식의 깊이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이지요. 
   
세종이 집현전을 지어 오랜 시간 인내하고 기다린 것은, 그들의 성숙이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여 이치를 터득하게 하는 것이었죠. 기득권의 논리로, 멋대로 맛대로 해석하고, 주자선생이 말씀하셨다 하면 모든 게 통하는 수구세력의 논리에 맞설 수 있어야 했지요. 집현전은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서책과 경전에만 몰두하는 그들을 대신들은 적대세력으로 여기지는 않지요. 그럼에도 집현전은 신권으로 대변되는 사대부와 대신들에게는 눈엣가시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는 학사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습니다. "책만 파는 니들이 정치를 알아?" 이런 식이었죠.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연, 세종은 드라마에서 표헌한 대로 집현전이라는 '친위부대'를 통해, 해박한 논리와 학식으로 그들을 견제했고, 사사건건 소위 태클을 겁니다.  세종의 영리한 자기 사람 관리방식이었고, 통치방식이었습니다.서책이나 읽는 서생들이라고 만만하게 봤던 대신들이 번번히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 문(文)의 통치입니다. 

왜 세종은 욕을 입에 달고 살까?
욕쟁이 세종캐릭터는 다혈질 세종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를 위해 욕쟁이 세종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드라마 속 세종의 욕은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백성들의 말을 상징하기도 하고, 백성과 임금의 직접 소통을 막는 사대부들에 대한 세종의 속풀이용 꿍시렁이기도 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나라입니다. 이상이 현실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헛된 망상이 되고, 백성없는 임금(나라)은 뿌리없는 꽃일 뿐이죠. 백성을 잊은 임금은 한나라의 어버이라 할 수 없듯이 말이지요. 공자왈 맹자왈 주자께서...어쩌고 저쩌고..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것이 대의라고 하면서, 대의는 여러개의 얼굴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위장을 하기도 합니다. '주자께서 그리 가르치셨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조선의 사대부에게 주자의 말씀은 앞뒤토막 다 자르고 철저하게 기득권을 위해 해석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우라질! 

백성들은 한자를 모르기에 정확하게 자기의견을 말하기 어려웠고, 전달하기도 힘들었지요. 성리학을 해석하는 데도 평생을 글만 읽혀왔다는 사대부들도 '아'다르고 '어'다르게 해석하니, 몽매한 백성들이 글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죠. 우리 말과 한자가 그 발음과 뜻이 달랐기 때문이죠.
집현전에 잠입했다 잡힌 강채윤이 붙잡혔을 때는, "집현전에 똥을 싸러 갔다는 말이냐?"라며, 임금의 입에 담기에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똥'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뱉습니다. 똥을 한자로 표현하면 '변'이라는 말이 있지만, 변을 싸다, 변을 누다, 변을 보다, 그 어떤 식으로 해도 똥만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지요. 변 하나만 해도 한자의 모양도 뜻도 다른 글자가 열개가 넘더군요.

욕은 감정과 그 정서를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우라질, 지랄, 젠장같은 우리말을 소리와 뜻이 일치하는 한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요. 음이 같아서 뜻은 다른 글자가 돼버리니 말입니다. 똘복이에게 처음 들었던 지랄을 한자로 간질병을 떤다라고 표기할 수도 없으며, 어떤 한자를 조합해도 지랄을 표기하는 한자는 없었죠. 백성들은 성리학이 뭔지, 주자선생이 뭐하고 굴러먹다 조선으로 들어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심지어 산간벽골에서는 고려가 망했는지, 이씨 조선이 세워졌는지 조차 모르는 백성조차 많았고, 백성을 위한 나라를 이상으로 삼은 성리학의 나라에서 정작 백성은 소외된 채 살고 있습니다.

마방진의 규칙을 따르면 어떤 숫자라도 풀 수있듯이, 이와 기의 조화,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가 조화를 이룰 때 만물이 평화로우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조화를 이루는 나라가 성리학의 이상국가입니다. 그의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조선입니다. 백성과 소통하는 조선이어야 했고, 소통의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지랄, 젠장, 우라질, 빌어먹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욕쟁이 괴짜군주 세종, 박학다식 논리정연한 논리로 대신들을 제압하는 세종, 그는 태종에게 자신했던 그런 조선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복잡한 마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같은 답을 얻었듯이, 힘이 아닌 말로써 설득하고, 토론과 논쟁으로 합의점을 찾아가고, 백성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도 백성을 근본으로 삼은 성리학의 원칙으로 귀결됩니다. '누구를 위한 제도와 원칙인지'가 바로 선 나라, 세종이 꿈꾸는 조선의 대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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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26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사랑받았던 젊은 세종 송중기에서 인간적인 세종과 카리스마 넘치는 괴짜군왕 한석규로의 변화는 완벽한 캐릭터의 반전이었습니다. 아마도 세종을 다룬 사극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세종을 만난 듯합니다. "이방원없는 천하다"라며 한줄기 눈물을 흘리는 송중기의 모습이 연못에 일렁이고, 중후한 세종 한석규로 바뀌는 과정은 빼어난 영상미로 젊은 세종과 중년 세종의 변화를 담았지요. 이번 뿌리깊은 나무 4회에서 최고의 영상미로 꼽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곱고 여린 노랑나비가 호랑나비로 변해 연못을 나는 모습은, 젊은 세종과 중년 세종의 함축적인 캐릭터의 변신을 담아낸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만큼이나 죽음도 가볍지 않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태종 이방원(백윤식), 두 부자는 죽는 순간에도 논쟁을 멈추지 않았지요. 태종의 독설과 염려도 여전했고 말이지요. "내가 갔던 길보다 훌씬 더 참혹할 게야. 훗날 넌 반드시 내 무덤 앞에 무릎꿇고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고백하며 울 것이다". 세종을 마지막까지 시험해 보는 태종이었지요.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조선의 임금은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니까요"라며, 태종이 했던 말로 응수하는 세종. 태종은 세종의 멱살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지요. "해내거라, 그래야 네놈을 왕으로 세운 제일 큰 업적이 될 거이니...". 세종의 확신에 찬 대답에 미소를 짓는 태종, 그의 마지막 눈빛은 아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왕, 조선의 찬란한 문화르네상스를 연 성군 세종대왕이니, 진실로 태종의 가장 큰 업적은 세종대왕을 낳았다는 것일 겁니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릴 수나 있었겠습니까? 머리 터지게 한자랑 씨름했겠지요.

한석규의 세종은 어떨까? 한마디로 명불허전입니다. 정확한 발음발성,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력, 게다가 그 파격적 캐릭터 변신은 "그래, 바로 그거야"라며 흥분하게 했답니다. 온화한 듯 진지한 듯 감을 잡기 어려운 표정으로 "하례는 지랄...", "젠장, 우라질"이라는 거친 말들이 튀어나오는데, 곤령포 입은 지엄한 임금님께서 입단속을 그리 안하시는 모습에 뻥뻥 터졌고, 궁녀에게 "우라질이 맞느냐?"며, 진지하게 물으며, "과하게 많다, 우라지게 많다, 우라질...이 얼마나 내 정서를 잘 표현하였느냐? 궁궐에는 이런 말이 없어"라며, 경연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한석규의 세종은 대박이었습니다. 작품뿐만이 아니라 인간 세종, 군주 세종의 새로운 캐릭터로서도 대박입니다.

세종의 거친 말속에도 우리글의 필요성을, 한글을 만들어야 하는 세종의 집념을 제대로 담아냈고 말이지요. 경연장에서도 당태종이 어땠고, 고려왕조에서 어땠고, 주자선생이 어땠고 하는 고리타분한 그놈의 경서 읊조리는 신하들을 한자로 '우라질"이라고 몰래 적으며, 자신의 정서를 기록하는 세종이었죠ㅎ. 운동이 부족해 옥체가 상할까 저어된다고 하도 난리들을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신경쓰지 말라며 스트레칭을 하는 세종은 또 어땠고요. 능청스러운 세종의 모습까지 감히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새로 등장한 세종은 물건입니다(죽여주시옵소서). 
웃음보터진 성삼문(현우)의 허벅지를 꼬집는 박팽년(김기범) 등 샤방샤뱡 빛나는 젊은 꽃미남 학사들도 등장해서 눈까지 호강했는데, 괴짜스러운 천재 성삼문과 박팽년의 대조적인 캐릭터도 눈여겨 봤답니다. 

그러나...여기까지의 세종을 보고 웃기는 임금님일세 라고 하면 큰 코 다칩니다. 경연의 주제 '부민고소금지법'을 선왕대에 이미 금지된 법을 왜 다시 경연을 하시느냐고, 그 불피요함에 대해 미주왈 고주왈 남의 나라 법과 경전을 들어 반대하는 신하들을 입도 딸싹 못하게 눌러버리는 언변과 논리는 오금저리게 만들었지요. 이현령 비현령 자기들 편한 대로, 유리한대로만 해석하려드는 기득권자들을 완벽한 논리로 박살내는 모습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말입니다. "주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끝마다 주자 주자를 거론하는 탁상공론자들에게, 주자께서는 한시도 백성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경전의 행간을 읽으라는 세종의 일갈은 참으로 멋집니다.

이번 경연의 하이라이트는 "전하께서 한가지 질문을 빠뜨렸다" 고 지적하는 성삼문(현우)때문에 벌어진 상황입니다.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한 세종의 질문은 두 가지였죠. 첫째, 성리학의 나라에서 감히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고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런데 간관들이 내말을 듣지 않는 것은 어긋나지 않는 것이냐? 둘째, 백성들의 고소마저 금지한다면 수령들은 왕보다도 제약이 없게 되는데, 이들은 누가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하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가 빠졌다고 성삼문이 감히 왕에게 지적을 하지요.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린 놈이 뭘안다고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어른 말씀하시는데..."였죠.
얼굴빛이 싸늘하게 변하는 세종, "바로 이것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식이 얄팍하다는 이유로,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하극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진다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백성들의 입을 막는다면, 과인은 대체 어디서 백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단 말이오?". 게임 끝입니다. 반어와 비유, 헛점을 낚을 유도심문까지, 참으로  우라지게 박학다식 논리정연한 세종!!! 말까지 서민적이고 우리정서에 꼭 맞는 표현만 골라서 하시고 말이지요.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과 비바사론(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의 증발사건을 보고받은 세종이 "이런 빌어먹을"이라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뱉는 모습도 나왔지요. 실제로 세종대왕이 욕을 잘했다는 것도 전해지는데, 궁궐에 임금이 사용해야 하는 욕을 궁중용어로 따로 만들어 가르치지도 않았을테니, 감정대로 욕나오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임금도 사람인데 말이지요. 
무엇보다 눈여겨 보아야 하는 대목은 임금이 궁녀들에게 저잣거리의 상스러운 백성들 말을 배우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우라질처럼 한자로 옮겨적을 수 있는 말들은 그나마 표기라도 할 수 있지요. 젠장, 빌어먹을 같은 말을 어떻게 한자로 표기해야 할지 참 깝깝한 일이지요.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한 경연을 통해서도 한글, 우리글이 왜 반드시 필요한 지를 말해줍니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은 성리학에서 가르치는 성군의 덕목이지요. 헌데 그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니 글로 적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수령들이나 관리들이 지들 욕하는 백성들의 입을 자기들 편한대로(위 아래 엄격한 규범이 있는 주자학에 위배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이렇게 막고 있으니 말이지요.

집현전 학사 허담과 김종서의 6진에서 무관 고인설 살해사건이 발생하고, 첫회 강채윤(장혁)이 세종 암살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장면으로 다시 이어지면서,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종서의 추천으로 겸사복으로 궁에 들어온 강채윤(똘복이), 첫날부터 여기저기 궁을 들쑤시고 말썽을 일으키면서 무휼과 세종의 눈에 띄게 되었지요. 오로지 이도의 암살만이 목표인 강채윤이 집현전에서 일어난 사건현장에 잡입했다가 무휼(조진웅)에게 걸리고,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요. 
고인설과 허담을 죽인자는 같은 놈이라 생각한다며, 고인설 수사일지를 보여주며 위기를 넘긴 강채윤은 때마침 취조현장에 온 세종과 다시 재회합니다. 고인설 수사일지를 본 세종이 허담 살해사건을 수사하라는 명을 내리고, 강채윤은 비밀수사원으로 집현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됩니다.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사건을 해결하면 어사주를 내려달라는 간청을 한 강채윤, 집현전에서 발행하는 연쇄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강채윤은 세종의 조선과 마주하게 될 듯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석삼이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하려는 이도의 조선, 임금을 지랄이라고 증오하는 한지골 똘복이가 더이상 없는 조선, 지랄을 지랄로, 우라질을 우라질로, 백성의 소리를 그들의 말로 쓰고 읽고 듣고 싶어하는 이도의 조선을 말이지요.

주인공들이 코믹과 진지를 겸한다는 것은 모험일 수 있습니다. 특히 사극에서는 말이지요. 동이에서 숙종 역의 지진희가 그 경계를 허물어서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세종 역의 한석규도 인간적인 세종과 카리스마 세종으로 그간 정형화된 세종대왕의 캐릭터에 파격을 감행했는데요, 한석규의 세종이 너무나 멋지네요. 역시 지도자는 사람냄새가 나야 더 가까움을 느끼게 되나 봅니다. 아무리 백성백성, 국민국민 떠들면 뭐합니까? 경연을 펼치던 신하들처럼 경서 나부랭이나 줄줄 읊어대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과 진배없는데 말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업적, 최고의 존경을 받는 성군 세종대왕, 한글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말하기 전헤 더 먼저 칭송하고 감사하고 되집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의 결정체이니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지도자들이 가슴깊이 새겨야 할 마음입니다. 국민들을 어여삐 좀 여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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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2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탄탄한 극본, 힘있는 연출, 송중기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뿌리깊은 나무 3회, 밀본지서를 가지고 반촌에서 도망치는 정도광을 가로막고 말을 빼앗아 달아나는 똘복이, 그 과정에서 똘복이의 잃어버린 복주머니는 그에게 궁으로 가야 하는 복수의 이유를 되뇌이게 합니다. 반촌에 군사를 풀 수 있는 자는 오직 한사람 왕이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를 죽게 하고, 아버지의 유서마저 임금때문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똘복이는 그렇지 않아도 악밖에 남지 않은 듯한데,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에 이를 듯하더군요. 광기어린 어린 똘복이의 괴성이 회가 갈수록 거북스럽게 여겨져서 참... 하긴 송중기의 아역 충녕대군과 정기준의 아역연기는 뭐라 할말이 없게 만드는 심각한 수준이었답니다. 아역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연기가 참 거시기 하더구만요.
 
쫓기는 자 정도광, 정도광을 잡으려고 반촌에 난입한 조말생(태종측), 정도광과 정기준을 구하려고 온 무휼(세종측)의 일촉즉발 대립 속에, 멋모르고 또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된 똘복이, 세종 이도가 꿈꾸는 조선도 그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 가는 과정을 촘촘한 스토리로 엮었습니다. 
아버지 태종에게 맞서는 세종, 그들의 조선이 다름을 정기준을 찾으려는 이유의 다름을 통해 드러냈지요. 태종 이방원은 강한 왕권을 위해 정기준을 없애야 했고, 세종 이도에게는 자신이 꿈꾸는 조선을 위해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조선은, 1 하나가 아닌 23456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이었기에, 정기준이 상징하는 정도전의 사대부 세력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모두의 조선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태종의 조선은 군주의 한 사람의 나라였지만, 세종의 조선은 조선백성 모두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리학의 기본이념 민본주의를 재선포한 것입니다.
왕자의 난과 공신들의 숙청을 통해 왕권을 잡은 태종 이방원에게 조선은 불안한 나라였습니다. 삼봉 정도전을 살해한 이방원에게 사림은 등을 돌렸고, 대의와 명분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대부들에게 이방원은 주자의 도를 모르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원은 말합니다. "전장을 누비며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제거하고, 태조 이성계를 왕위에 올린 실질적인 공은 다름 아닌 이방원의 '칼'에서 나왔다고, 따라서 조선은 나의 것이다라고...".
그런 이방원에게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재상(신하)이다. 꽃이 부실하다 하여 나무가 죽는 것이 아니나,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가 죽는다. 부실한 꽃은 꺾으면 그만이다". 한마디로 왕이 뚯대로 따르지 않으면 폐하면 그만이라고 지하동굴에 새겨놓은 삼봉의 글귀는 이방원에게는 간담서늘한 경고였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했던 말, "꽃은 꽃일뿐 뿌리가 되지도 뿌리를 없애지도 못하오"에 대한 설명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왕은 한 나라의 얼굴,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었던 것이지요. 밀본의 정체는 정도전의 나라(사대부의 나라)를 사수하라는 밀명이었던 셈입니다. 

세종은 이방원보다 더 야망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세종이 어린 시절 본 것은 '칼보다 강한 글의 힘'이었습니다. 과장에서 나온 한장의 종이가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급기야 열대여섯의 어린 유생을 찾아 죽이려는 것을 본 이도는 아버지 태종의 칼을 떨게 한 것이, 다름 아님 글이었음을 본 것입니다. 세종이 문치주의를 표방한 것은 아버지 태종의 나라보다 강한 조선, 영원무구한 조선을 꿈꿨기 때문인 것이지요. 조선의 글이 필요하다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이도입니다. 글이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어쓰는 조선, 세종에게는 수치였을 겁니다. 세종은 유약한 임금이 아니었고, 국방에서도 적극적인 임금이었습니다. 김종서로 하여금 6진을 개척하게 하고, 국경을 확장한 것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장에서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홀연히 사라진 어린 유생 정기준, 세종이 훗날 태종과 군주과 국가관을 극명하게 달리 하게 한 인물입니다. "왕은 허군이고, 실군은 재상이다. 이것이 조선을 건국한 삼봉선생의 치국 기본사상이었다"는 답안을 본 이도는 그 담대한 답안에 놀라 정기준을 따라가게 되고, 글을 본 태종 역시 조말생을 시켜 정기준을 쫓게 됩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아우 정기광의 아들이었고, 태종은 정도광의 집 지하동굴에서 벽에 새겨진 정도전의 글을 보고 경악합니다. 정도전이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너의 아버지는 삼봉의 나라를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라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주먹을 날리는 이도, 그런 이도에게 정기준은 "네 아버지와 다를 바 없구나"라며 비웃음을 날리죠. 정기준의 집은 이미 병사들에 의해 살육이 자행되고 있었고, 이도의 만류에도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며, 담대하게 자신을 밝히며 걸어나가는 정기준을 보고 이도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정기준의 말은 두고두고 어린 이도를 괴롭혀 온 숙제이기도 했습니다.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과도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정기준을 향해 칼이 내려치는 찰나, 정도광은 아들을 구해 말을 타고 도망갑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정기준이 숨어있는 이도를 향해 지은 비웃음이 이도를 짓눌러 왔습니다. 

태종의 명으로 비밀리에 밀본을 추적해 오던 조말생의 움직임을 보고 받은 세종은 정도광, 정기준을 쫓는 것임을 직감하고 무휼을 보냅니다. "반드시 살려서 데리고 오라"는 명과 함께 말이지요.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마방진을 풀어낸 이도, 그의 마방진, 그의 조선이 아버지와 어찌 다를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했기에 세종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태종에게 "살려만 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면서 까지 태종과 한판승부를 벌인 세종이었지요. 겉으로는 효심깊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권위는 살려준 듯하나, 은밀하게 주고 받는 태종과의 설전에서는 "제 방식대로 방진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세종이었지요.

세종 이도가 내놓은 방진의 답은 '문이 통치하는 나라'였습니다. 태종은 그런 세종에게 밀본에 대해 아느냐며 정기준의 생존에 대해 언급하지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리는 세종 이도에게는 지난 날의 깊은 상처가 지나갑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오래도록 짓눌러왔던 정기준의 조소에 대한 답을 구한 이도, 그를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때 하지 못했던 답을 말해 줄 것입니다. "조선은 정도전의 나라도, 내 아버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다. 조선의 뿌리는 사대부가 아니라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물론 세종이 신분을 망라한 평등한 세상을 꿈꾸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아무리 임금이었더라도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조선은 건국이념은 성리학입니다. 성리학은 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합니다. 성리학은 계급을 초월한 학문이나 이념은 아니지요. 하늘과 땅의 위치가 불변이듯, 상하 지배 피지배관계가 불변한 이치이며, 그 이치안에서의 조화를 말했던 학문이죠. 백성을 통치대상이 아니라 보호대상으로 가르치고, '인'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철학입니다. 오늘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부분이죠. '군자(사대부)는 학문과 백성을 가르치는데 힘쓰고, 소인은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익히 들어온 문구만을 봐도, 그 근간에는 계급적 질서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도 성리학이 가르치는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역할을 하는 조화를 이루는 세상입니다. 그 조화에 정기준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사대부 세력은 반드시 필요했고, 왕과 신하(사대부)와의 평화는 피의 종결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에게 아버지의 칼은 폭정이었고, 조선의 불안이었습니다. 모든 왕조(나라)의 숙원은 대대만년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존속되는 것일 겁니다. 세종과는 방법적으로 달랐지만, 태종이 칼의 정치를 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종은 대대만년 조선을 지킬 수 있는 답을 칼이 아닌 조화에서 구합니다. 

세종의 눈에 비친 아버지 태종의 나라는 이 조화가 깨진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마방진은 정도전의 통치이념과는 다릅니다. 정도전은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사대부의 나라는 이방원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권력의 핵심 ' 마방진의 1'에 사대부를 대치한 것에 불과하니 말이지요. 세종의 조선은 왕의 나라도 아니요, 사대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를 꿈꿉니다. 그의 마방진은 모든 숫자들, 조선의 백성들 모두를 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드라마의 제목이 왜 뿌리깊은 나무인지가 드러납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무엇을 뜻하는 지도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의 '나무'는 세종이 꿈꾸는 거대한 마방진, 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며, 뿌리는 '백성'입니다. 정도전이 말한 밀본이 사대부를 지칭했다면, 세종은 백성으로 대상을 확대합니다. 뿌리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마른다는 용비어천가의 첫구절은, '조선의 영원무구함'을 염원한 노래한 세종의 원대한 청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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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5 08:30




한석규, 장혁, 조진웅, 윤제문 등 명배우들의 열연이 드라마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 의문이었던 정기준의 정체가 백정 가리온으로 밝혀짐으로써 본격적으로 2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드라마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배우와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날로 높아지고 있지요.
한석규의 연기력이야 중언부언할 필요없고, 그의 곁을 묵직하게 지켜주는 무휼 조진웅은 호위무사를 넘어, 가장 믿음직한 친구같은 모습까지 극의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백정으로, 밤에는 밀본의 3대 본원으로 모습을 감추고 살아왔던 정기준 역의 윤제문은, 백정으로서도 정기준으로서도 미친연기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현전 학사의 의문사를 통해 그 종착점이 한글임을 밝혀갈 겸사복 강채윤이라는 인물을, 출중한 액션신과 능청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수사관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보이고 있는 장혁의 연기 또한, 큰 흠을 잡을 수 없이 좋습니다.
강채윤을 연기하는 장혁을 보며, 추노의 대길이가 오버랩된다는 지적도 많지만, 크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대길이와 강채윤은 전혀 다른 한과 증오를 가진 인물로 그 캐릭터 자체가 다른 인물이지요. 그런데도 추노의 대길이를 보는 듯한 느낌은 무술신이 많다는 점, 사극이라는 점, 그리고 분노를 표현하는 비슷한 감정선과 표정연기때문일 듯합니다.
강채윤이 추노의 대길이를 뛰어넘었느냐 아니냐는, 장혁의 연기가 진화와 성숙을 했느냐의 질문과 동일하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 추노는 거의 장혁이 원톱이었던 드라마였습니다. 원톱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미친연기와 대길에 대한 시청자들의 연민과 사랑이 절대적이었죠. 여기에 마초적인 야성미를 드러내고, 절권도를 비롯, 화려한 액션신은 추노의 꽃이었지요.
그런데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화려한 액션신을 거부하는 듯한 시청자들의 의견도 상당히 많다는 점이 이상합니다. 출상술이라는 흥미로운 무공도 와이어 액션이 드러나게 보이는 연출로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고, 기절한 윤필학사를 가벼이 들고 밤하늘을 유유히 나는 윤평(이수혁)이나, 대나무 숲에서 두 사람이 공중을 날아 주먹과 발을 교차하는 모습은 너무나 시각적으로만 보여지는 연출이었죠.
그럼에도 강채윤이라는 인물에 장혁의 캐스팅은 완벽합니다. 장혁의 감정선 주무기인 이글거리는 눈빛연기, 그리고 무술과 운동으로 단련된 몸놀림은, 장혁 외에 다른 배우를 생각하기 어렵게 할 정도지요. 권상우 정도가 이런 무술신을 연기와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떠오르기는 하지만, 장혁의 발음도 문제로 지적되는 마당에, 권상우의 발음은 정확한 발음을 요하는 사극에는 무리일 듯하고요.

그런데 장혁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뭔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뻥 하고 터지지 못하는 듯한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아니 너무 터뜨리려고 힘을 주다 보니, 기승전결의 감정선이 물흐르듯 흘려야 하는데, 중간과정이 생략된 듯한, 혹은 힘을 과도하게 넣은 모습이 가끔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때문일까 생각해 보니, 아역 똘복이에 대한 잔상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게 처음 감지된 장면이 주자소에 화재가 나고, 불속으로 뛰어들어 간 강채윤이 나인 소이를 구해 나왔던 엔딩장면이었습니다. 기절한 소이를 일으켜 다짜고짜 "누구야, 그 놈 누구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죠. 너무 갑작스러워서 앞 장면이 편집실수로 잘려나간 줄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다분히 의도된 장면이기는 했었지요.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무휼이 지난 날 어린 똘복이가 강채윤임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죠. 팔뚝에 남겨진 자신의 도흔을 보고 의문을 품었던 무휼은, 소이를 붙들고 소리를 지르는 강채윤을 보고, 그가 똘복임을 알았지요.
 "나 한짓골 똘복이야. 누구야, 어떤 개새끼야. 죽여버리겠어. 우리 아버지 죽인 원수 죽여 버리겠어"라며, 울부짖던 어린 똘복이를 기억해 내게 한 장면이죠. 반촌의 도담댁에게 똘복이를 맡긴 것도 무휼이었죠. 이 대목은 여전히 제가 물음표로 남겨두고 있는 부분입니다. 무휼이 왜 하필 밀본의 핵심인물인 도담댁에게 똘복이를 맡겼을까, 이런 궁금증? 
여튼 무휼은 "이 아이의 기를 꺽고 온순하게 만들어 자네 사람으로 만들게, 자네도 그 기를 꺾지 못하면 죽여야 하네"라며, 똘복이를 반촌에 맡겼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정도광을 만나 밀본지서와 아버지의 유서가 바뀌었고, 밀본의 수장 정기준을 찾으라는 어명은, 운명처럼 그와 마주해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지요. 

이방원의 공포정치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마방진으로 숨었던 유약한 임금에서, 우리 글자라는 경천동지할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이도. 한 장의 글귀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24년을 가장 천한 백정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웅크리고 있었던 정기준. 감히 임금의 목을 따겠다고 칼을 숨기고 궁으로 들어온 강채윤이라는 인물들은, 신분고하를 떠나 입체적이고, 드라마적인 캐릭터들이죠.
세월과 함께 그들은 모습도 변했고, 생각도 변했고, 성격도 달라졌습니다. 아역에서 성인배우로의 변화처럼 말이지요. 송중기의 세종과 한석규의 세종은 180도 달랐고, 어린 정기준과 백정 가리온은 경악스러운 탈바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캐릭터의 싱크로율을 따질 필요를 느끼게 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그런데 유독 어린 시절의 모습에 발목잡힌 배우가 장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는 장혁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작진의 주문때문이라는 생각이 큽니다. 성인 강채윤에게서 어린 똘복이를 연상시키게 하라는 주문이 느껴지는 장면이, 밑도끝도 없이 순간적으로 꽥 지르는 강채윤의 마지막 대사 장면이에요. 어린 똘복이의 모습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청자들이(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처음에는 아린 똘복이의 연기가 좋았는데, 회가 거듭되니 눈을 희번덕거리며, 빽빽 소리만 지르는 모습에 짜증난다는 원성이 늘어갔다는 것을 제작진이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역배우중 어린 똘복이가 그나마 연기는 가장 나았지만 말입니다.
장혁에게서 똘복이의 모습을 반복시키는 것이 지금 장혁의 연기에서 가장 문제점이라고 보여집니다. 윤평과 출상술을 겨뤘던 장면이 있었지요. 강채윤 역시 이방지의 출상술을 쓴다는 것에 놀란 윤평이 "너 누구냐!"고 묻자, 그동안 무게잡고 진지하게 합을 겨루던 강채윤이, "이제 좀 관심이 생기냐, 이 개자식아!!!!"라며, 똘복이 모드로 돌아가 급발진 고성을 질러 놀라게 해버렸지요. 이런 장혁의 급발진 고성이 가끔씩 나오고 있는데, 장혁의 감정선을 오히려 붕뜨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탁이 윤평의 칼을 맞고 누워있을 때, 박포가 입 잘못 놀렸다가 호되게 당하는 장면이 있었죠. "천한 목숨 간신히 붙여놨더니..."라는 말에 급흥분하는 강채윤은 박포를 죽일 듯이 살기로 내려쏘면서 "세상에 천한 사람 천한 신분은 있어도 천한 목숨은 없다. 똑똑히 새겨라, 뒤지기전에..."라며, 살기를 보였죠.
이 장면은 9회, 10회 밀본 하수인이라는 누명을 쓴 가리온의 무죄를 입증해 살리려는 강채윤으로 연결되는 복선이기도 했습니다. 의금부의 추포에 반항하고 도망친 가리온이 강채윤에게, "목숨이라고 다같은 목숨입니까? 제가 양반입니까, 사대부입니까, 양인도 못되고 버러지 팔자입니다. 백정이 금부에 끌려가면 그냥 죽는 겁니다. 소인의 목숨은 파리새끼 천한 목숨입니다" 라며, 강채윤을 자극했으니 말이지요. 제작진은 이렇게 치밀하고, 촘촘하게 대사 하나도 연결을 해 두었더군요.
"천한 목숨따위는 없는 거야, 니놈이 진정 억울하다면 억울하게 죽게 하지 않을 것이야..."라며, 가리온을 바라보는 강채윤의 눈은 젖어들고 있었고, 가리온에 대한 의심을 거두기도 했지요. 강채윤이 천한 목숨이라는 말에 왜 그렇게 연민을 가지고 분노하는지, 강채윤의 응어리진 한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이처럼 나직하게 대사를 이를 갈듯 씹으면 강채윤의 감정선이 더 도드라지는데, 똘복이 모드로 돌아가면 왠지 급발진 자동차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장혁이 연기하는 강채윤이라는 인물은 감정이 의뭉스럽지 못하고, 직설적이기는 합니다. 전장에서 생사를 오가며 잠 대신 이도를 향한 복수의 칼을 갈았던 집요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또한 능청스럽게 연기도 잘하는 처세술의 달인이기도 하고, 용의주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소리지르고 반항만 하던 어린 똘복이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죠.
그런데 눈동자를 뒤집으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만은 똘복이와 달라지지 않았지요. 이 모습을 똘복이를 기억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장혁의 연기를 과소평가하게 하는 역작용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담댁의 하수인 끝수가 어린 똘복이의 살기를 떠올리고 강채윤을 알아보기도 한다니, 장혁이 어린 돌복이와 싱크로율을 맞추기 위해 오버하는 연기가 계속 필요한 모양입니다. 어린 똘복이의 이미지를 요구하는 것이니, 장혁이 이를 의식해서 오버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똘복이라는 인물이 세종 이도에게 직간접적으로 한글을 창제하는 동기를 부여한 중요한 인물이기에, 어린 똘복이의 회상신이 자주 나오는 것이 이해는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장혁이 어린 똘복이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신경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잘하다 한 장면에서 오버해 버리면, 그냥 꽝이 돼버리는 그런 느낌이 똘복이의 모습이 나올 때입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장혁에게는 이 말을 무시하라는 말을 더 해주고 싶으니 말이지요. 정 필요하다면 끝말을 강한 고성으로 내지르는 것보다는, 톤을 내려 감정을 잘근잘근 씹는다는 느낌이 나오게 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장혁은 감정폭발의 기승전결을 잘 연결하는 배우입니다. 똘복이를 연상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억지스럽게 어린 똘복이와의 싱크로율을 맞추려는 것이 장혁의 표정연기에서는 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똘복이의 어린 시절 강한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장혁의 좋은 감정선을 더 자연스럽게 보여줄 듯합니다.


 **인용한 사진은 삭제했습니다. 제작사가 저작권 침해라는 이유로 글을 블라인드처리하기에, 발행 당일 이후에는 사진을 내림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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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3 08:43




세종대왕님, 이렇게 가슴을 울컥하게 하고, 복받쳐 오르는 감사함을 눈물로 밖에 표현할 수 없게 하시다니요? 당신이 창제하신 그 위대한 한글로도 당신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제가 얼마나 한심스러운지요.
"이것은 모두 우리의 소리들이다. 그렇다, 나는 우리의 글자를 만들고 있다. 우리의 소리를 딴 우리의 글자...". 우리의 글자라고 힘주어 말하는 한석규의 대사에 가슴이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오더군요. 그냥 그렇게 눈물이 핑글 돌았네요.
"전하! 문자를 만들다니요? 글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성공한 예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글자란 본시 수천년을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한자가 왜 중화를 지배하고, 주변국을 모두 지배하는 것이겠습니까? 한자는 수천년을 두고 생겨난, 그 자체로 사람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어찌 중화의 질서를 벗어나고, 역사를 거스르려 하십니까?"
유학을 학문과 사상의 뿌리로 삼아온 성삼문과 박팽년의 반발에도 세종 이도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침착하게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만면에 미소를 띈 채 말이지요.
"그것을 검증받으려 한다, 너희에게...이미 대부분의 글자가 완성됐다. 너희들은 아무 정견도 없이, 아무 편견도 없이 나의 글자를 보아다오. 그리고 판단하거라, 나의 글자가 역사를 거스르는 것인지 아닌지...내 아무리 큰 힘을 들여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이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고, 조선을 후퇴시키는, 백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 말한다면, 나는 버릴 것이다". 우리글 창제에 중화의 도를 들어 거세게 반발하는 성삼문과 박팽년의 손을 잡고, 세종은 간곡하게 부탁을 하지요. "온 정성을 다해 죽을 힘을 다해 판단하겠노라, 그것만 약조를 해다오". 

***막간을 이용해서 한 마디, 박팽년(김기범)의 그 오만 인상 쓴 얼굴, 클로즈업될 때마다 너는 왜 그런 표정이냐? 소리가 나온다는;;;
드디어 한글을 세상에 내 놓으려고 결심을 굳힌 이도, 그러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라면, 평생을 두고 해온 일임에도 '무'로 돌리겠다는 세종이었습니다. "너는 너의 길을 가거라,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라며, 발길을 돌렸던 세종은 무휼에게 정기준의 행적을 쫓은 암행록을 건네며, 밀본에 대한 모든 수사를 강채윤에게 일임하라고 했지요. 그가 누구인줄 알면서도 강채윤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이도에게 무휼은 무리수라고 걱정을 합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을 비밀방, 베일에 싸인 글자방을 보여주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정체를 알리는 세종의 행동에, 무휼도 정인지도 우려가 크지요. 자칫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죠.

세종은 강채윤에게 밀본의 수사를 일임하고, 성삼문과 박팽년에게 우리 글을 만들고 있다는 비밀을 폭로한데서 그치지 않았지요. 또 하나의 무리수가 있다며 소이의 의견을 묻는 세종입니다. 소이는 가리온을 언급했고, 세종은 소이에게 반촌으로 가라는 명을 내렸지요. 무휼이 "가리온을 그만큼 믿으시옵니까?"라고 세종을 만류하려 했지만, 소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라며 세종과 뜻을 같이 하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 남사철의 집에 괴한이 들어와 경고장과 함께 가리온의 칼을 두고 간 사건이 발생합니다. 남사철은 세종의 명에 따라 세법 가부조사를 다시 하라는 명을 받은 인물이었고, 협박장을 받은 남사철은 연이은 집현전 학사의 죽음이 자신에게도 닥치고 있다는 불안감에 가부조사 파견근무를 못하겠다는 말을 전하지요.
경고장에는 "금상이 벌이는 패역한 일에 관계된 모든 사람을 죽일 것이다"라고 씌어 있었지요. 그런데 경고장과 함께 남겨진 칼은 놀랍게도 백정 가리온의 칼이라는 것이 밝혀져, 가리온은 의금부에 추포를 당하게 되지요. 무조건 몽둥이질을 하는 의금부 관원들의 칼을 빼앗아 위협하고 달아난 가리온(윤제문), 강채윤이 가리온을 붙잡아 밀본이냐며, 그 근거들을 댑니다. 지난 밤 남사철의 집에 갔다는 점, 강채윤의 방을 뒤졌다는 점, 그리고 증거물 칼이 가리온의 칼이라는 것이 근거였지요. 
강채윤의 추궁에 가리온은 남사철의 집에 제사가 있어 쇠고기를 대려고 간 것이며, 칼은 그날 밤 없어졌다고 말을 하지요. 방뒤짐은 무훌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했고요. 그런데도 "왜 무고를 입증하지 않고 도망을 가려했느냐?"는 채윤의 추궁에 대한 가리온의 대답은, 강채윤도 시청자도 울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양반입니까? 사대부입니까? 양인도 못되고 버러지 팔자입니다. 백정이 금부에 끌려가면 그냥 죽는 겁니다. 목숨이 다같은 목숨입니까? 소인의 목숨은 파리새끼 목숨입니다. 이런 천한 목숨도 있는데, 어찌 벌어질 일을 모르겠습니까?". 
십수년전 아무 영문도 모른채 죽어야 했던 아버지 석삼이, 그리고 심온대감집의 노비들이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천한 목숨들을 떠올리며, 채윤은 가리온에게 겨눴던 칼을 거두고 말지요. "천한 목숨따위는 없는 거야. 네 놈이 진정 억울하다면, 억울하게 죽게 하지 않을 것이야". 
그러나 뒤이어 닥친 의금부 관원들에게 몰매를 맞으며 실신한 가리온은, 채윤의 눈앞에서 의금부로 추포당하고 말지요. 분노로 일그러지는 강채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분노로 일그러졌습니다. 세종 이도였지요. 소이에게 무엇인가 명을 전했던 직후의 일이었기에, 세종은 붓을 던지며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예고편에 가리온을 살려달라고 부탁하는 듯한 소이의 모습과 수상쩍은 몰락양반 한가놈의 클로즈업된 모습도 나왔고, 정기준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도담댁(송옥숙)도 비추면서, 가리온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끝났는데요, 가리온이 정기준이어도, 혹은 가리온이 다른 인물이어도 가리온의 진짜 정체는 충격일 듯합니다. 

지난 글에서 가리온 윤제문이 정기준이 아닐까, 몇가지 의심가는 정황들을 정리해서 글을 올렸는데, 이번회를 보면서 가리온이 정기준이 아닐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정기준의 정체, 사실 이번회도 가리온이 정기준일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사가 나와서, 직접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이 이렇게 쉽게 가리온이 정기준이라고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더군요. 뒷통수를 치는 반전을 준비한 듯합니다. 양반 종자일 뿐인 한가놈(조희봉)도 수상한 인물로 부상되었고 말이지요. 여하튼 정기준이 누구인지 궁금한데, 10회에서는 속시원하게 밝혀지는 건가요?
반촌으로 들어온 강채윤의 환영하는 의미로 술을 받아 온 가리온이 그런 말을 했지요. 왜 궁녀 소이에게 몸에 해로은 약재를 주느냐고 말하자, 가리온은 알송달송한 말로 자신의 과거를 흘렸지요. "죽을 것 같은 고통 제가 잘 아니까 안타까운 마음에...자책감이 무서운 거거든요. 어렸을 때 잘난 척하다 가족들이 다 죽었다고 하던가...전 압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손톱만한 재주 좀 있다고 자랑 좀 하다가...".
손톱만한 재주는 그가 정기준이라고 가정하면, 그의 글재주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정기준은 어린 유생시절 과거장에서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는 정도전의 말을 써서 풍지풍파를 일으키고, 가문이 몰살당한 일이 있었지요. 도적들한테 아비가 수십발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얘기와 함께 꿰맞춰 보면, 가리온이 정기준일 것이라는 암시는 충분한 셈이죠.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회를 보면서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작진이 일종의 함정을 판 것도 같은데요, 가리온은 드라마에서도 나왔듯이 의술도 있고, 약초에 대한 상식도 해박한 인물이지요. 백정의 신분이라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똑똑한 재주를 가졌고요. 조선 제일의 시신검시인이며, 백정이기도 합니다. 가리온은 이세영 대감을 도와 무언록 완성에 도움이 컸다는 말도 세종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요.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가리온은 세종의 밀명에 따라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천지계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이상한 점은 가리온은 시신을 검안하면서 별 희안한 사인은 다 맞추고도, 천지계원임을 말해주는 자문(문신)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강채윤도 발견할 수 있었던 문신을 가리온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자신도 같은 문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윤제문, 가리온이 천지계원이라면 정말 충격반전 중의 충격반전일 듯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추측과 상상입니다. 만약 맞았다면 돗자리 깔아야 할까봐요^^
가리온이 천지계원일 수도 있다는 가정이 가능한 이유는, 세종이 장영실을 중용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가지지요. 신분이 아닌 재주를 가진 인재를 중용했던 세종이라면, 의술과 약초학, 그리고 사인 분석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리온의 재주를 아꼈을 겁니다. 소이에게 반촌 가리온에게 가라고 은밀히 지시했던 것은, 한글창제와 관련된 어떤 일을 정리하라는 말이었고, 성삼문과 박팽년에게 "이미 대부분의 글자가 완성됐다. 내일부터는 너희들에게 그것을 알려줄 것이다"라고 했던 것은 가리온에게 시켰던 결과물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도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파리목숨 취급당하는 천한 백정이 우리글 창제에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 세종이 말하지 않았던 세번째 무리수란 이것을 말함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가리온은 정기준이 판 함정일 것 같습니다. 세종의 주변인물을 감시하는 정기준이 밤중에 소이가 가리온을 찾아온 것을 의심하고, 가리온에게 올가미를 씌워 세종에게 경고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한편으로는 밀본에 대한 수사를 교란시키기 위함이기도 하고요. 남사철을 협박하고 간 괴한의 팔찌가 윤평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심종수에게는 도담댁이 모른다고 말했지만, 정기준의 지시였을 것이라 보여집니다. 심종수는 어째 팽당한 느낌이죠? 표나게 설레발을 치고 다녀서, 정기준에게 찍힌 듯 싶기도 하고 말이죠.ㅎ 
성삼문과 박팽년에게 "나의 글자를 보아다오"라던 세종의 모습은, 한석규의 연기력과 함께 심금을 울린 장면이었습니다. 성삼문과 박팽년 이외에 또 한명의 판관이 있다고 했지요. 이도가 자신의 외롭고 참혹한 길을 인내하며 걸어왔듯이, 긴 세월을 이도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칼을 갈며 궁으로 들어온 강채윤이겠지요. 이도의 첫백성 똘복이 강채윤, 글을 몰라 아비를 잃어야 했던 똘복이의 분노는 이도의 글과 어떻게 화해하게 될까요?
문자를 만드는 것이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반발하는 성삼문과 박팽년, 그들 앞에 펼쳐진 세종 이도의 청사진은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그리고 성삼문과 박팽년, 또한 보게 되겠지요. 중화의 역사를 벗어난 새로운 자주 조선, 우리의 역사를 만들고자 하는 세종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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