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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5 '천일의 약속' 지워지는 서연의 기억, 통증없는 고통이 시작되다 (3)
2011.10.25 10:34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서연, 수애가 혼자 소주를 마시며 절규하고, 공포로 오한에 떠는 모습이 가슴 아팠던 천일의 약속 3회였습니다.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서연은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초점을 잃은 서연은 어디선가 읽은 글귀로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인 양 물어보지요. "이제부터 저는 약을 먹어도 볼 별일 없이 호두 속알처럼 뇌가 쪼그라들어 어처구니 없는 바보가 됐다가 5~6년만에 죽는다는 거죠". 
이제 겨우 서른인데, 서른 살의 서연에게 내리는 형벌이 너무나 가혹합니다. 집나간 엄마를 대신해 여섯살 때부터 동생을 키워왔는데, 상을 내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치매라니....그래, 남의 남자 잠깐 도둑질한 것, 그것이 이리도 큰 죄였는지, 더이상 욕심내지 않고 돌려주겠다는 데도, 이렇게 가혹하게 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서연은 신을 원망하고 저주해 봅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썩은 나무토막처럼 자신의 모든 것들이 비워져 간다는 공포에 몸이 사시나무 떨리는 서연이지요. 하늘을 원망하고, 자신에게 벌을 내린 신을 저주도 해보고, 욕지거리를 뱉어보기도 하지만, 서연을 기다리는 것은 자신에게서 오늘과 어제가 지워져 갈 것이라는 끔찍한 병입니다.
자신의 병을 점점 현실적으로 느껴가면서, 서연은 점점 예민해져 가지요. 가위가 생각나지 않은 서연에게는 민권(박유환)의 "노화현상이 빨리 오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더이상 농담이 될 수없기에 서연은 불같이 화를 내며 들어가 버리지요. 보이지 않은 검은 손이 서연의 뇌를 싹둑싹둑 잘라버리는 것같아 서연은 무섭습니다.  
이서연, 서른 살, 출판사 팀장, 신춘문예 당선 소설가, 동생 민권, 고모네 가족들, 그리고 그 사람과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져 버린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서연이지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모르고, 그저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되었다가, 죽어가는 지도 모르게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말같지 않은 현실, 서연은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신의 저주와 싸우기 위해, 아니 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외우고 또 외웁니다.
너무나 사소한 것들, 매일 사용하는 칫솔, 치약, 비누가 형광펜처럼, 가위처럼 기억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은 서연은, 잊지않기 위해 또박또박 말해 보지요. 외울 필요없는 것을 외우고 있는 서연의 모습은,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너무나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으로 담아낸 장면이었습니다.
심장이 끊어지는 이별의 아픔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알츠하이머형 치매라는 말도 남일처럼 덤덤하게 듣던 서연, 서연은 너무 어려서 철이 들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여자인 듯 보입니다. 의사의 진단을 들으면서도 마치 책을 읽듯이 덤덤하게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서연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수애가 일부러 서연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감정선을 극도로 절제를 해버렸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너무 감정을 절제를 해버리니 충격적인 일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도 들어 아쉽더군요. 너무 충격이 커서 제정신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덤덤하게 이어가는 대사때문에 잠시 제 감정선이 흔들렸습니다. 수애가 서연이라는 역을 무난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때때로 연극무대같은 분위기는 어쩔겨? 싶다고 할까요.
대사에서도 서릿발같은 독기랄까, 아니면 아예 냉기폴폴 차가움이랄까, 뭐라도 하나는 확실하게 느껴지면 좋을텐데, 간이 덜 된 나물을 씹는 느낌이 드는게 여전히 아쉽네요. 혼잣말하는 듯한 대사가 수애의 방백이라면 차라리 좋을텐데, 상대배우와 함께 하는 장면이라 독백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에도 수애의 깊은 표정이 대사의 덤덤함과 가끔씩 생략돼 버리는 감정마저도 커버를 해주니 다행입니다. 물론 혼자 소주를 마시면서 절제했던 감정을 폭발하며,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않고 인정하고 싶지않은 서연의 내면심리를 잘 연결을 잘 시키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천일의 사랑 3회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 있었다면, 욕실에서 서연이 물건들의 이름을 암기하는 장면이었어요. 치약, 칫솔이라는 너무나 일상적인 단어를 잊어버린다는 것을 한 번도 상상을 못한 일이기에, 누군가에게는 없어질 단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많이 아파왔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단어조차 누군가에게는 없는 지워져버린, 지워져가는 단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서글프게 다가오더군요. 그냥 잠깐 생각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말들처럼 사라져 버린다는 것, 이처럼 잔인한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한번도 잊을 일 없다고 생각했던 너무나 평범한 단어들을 기억하려는 서연을 보며, 통증없는 고통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 지도 실감이 되더군요. "침 뱉어 줄거야",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 보란 듯이 이기겠다고,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머리 속의 지우개에게 욕을 하는 서연의 고통도 이해가 충분히 되었고 말이지요.    
드라마에서 끊긴 필름을 잇듯이 서연의 어린 시절, 그리고 이서연과 박지형이 사랑했던 시간들이 섞여드는데, 처음에는 이런 기법이 조금은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서야 그 이유가 파악되더군요. 천일의 약속은 과거의 회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풀어가지 않지요. 박지형과 이서연이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에 잠깐 그들의 좋았던 시간을 마치 어제일처럼 불쑥불쑥 보여줍니다. 그것이 서연이 잃어가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제 개인적인 시선이지만요.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김수현작가가 그리려는 사랑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서연은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형 치매환자입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는 시청자의 예상마저 뒤엎고, 박지형과의 뜨거웠던 사랑마저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를 사랑하는 박지형, 어쩌면 그는 매일 매일 서연에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워지면 다시 그리고, 지워지면 또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듯이 말이지요. 서연이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은 서연에게는 과거가 아닐테니까 말입니다. 서연에게 기억이 아니라, 늘 지금 이순간 현재로 있어주는 것, 그것이 박지형이 이서연을 사랑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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