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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05 '49일' 신인정의 수치심과 강민호의 분노, 동정할 수 없는 이유 (14)
송이경은 노경빈에게 자기 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지요. 귀신이 들렸다는 오싹한 느낌이 아닌 측은하고 가여운 느낌, 그리고 자신을 누군가가 걱정해주고 있다는 느낌말이지요. "이수 이후 처음이에요. 누군가가 날 걱정해 주는 느낌..."
송이경과 송이수의 과거 사연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는데, 송이경의 사연을 들으니 왜 송이경이 그렇게 시체처럼 세상을 포기하고 살았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다섯 살 2월에 춘천역에서 엄마에게 버려지고 이수를 처음 만난 것은, 춘천의 고아원이었습니다. 같은 2월에 갓난아기때 버려진 아이, 그 아이는 울고 있는 송이경에게 초콜렛을 건네주며, 그 이후로 18년을 송이경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비참함을 잊고 살아 갈 수 있었던 삶의 이유였고, 자신의 삶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단 한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인간들 세상에서 '말'이라는 직접적이고 편리한 전달방법보다 더 진심으로 다가오는 것은, 간절하게 전하는 '마음'일 겁니다. 송이경을 걱정하는 진심, 그리고 통곡하던 그 여자의 간절하고 절박한 사연을, 말보다 생생하게 전달받은 송이경입니다. 송이경도 그랬으니까요. 이수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악몽처럼 하루 아침에 죽어버린 이수, 그에게 듣고 싶은 말만큼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이경이었으니까요.
임기를 끝내기 전이기에 송이수의 봉인된 기억이 해제된 것이 송이경과 송이수가 남겨둔 간절한 일, 그리고 지현을 살리는 일에 걸림돌이 될 지, 디딤돌이 될 지 예측하기 무서울 정도로 혼란스럽기만 하네요. 물론 저는 디딤돌이 되리라는 긍정적이고 해피한 일로 믿고 싶지만요.
지현의 아버지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지현의 영혼이 아버지에게 돌아오라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순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선 신일식 사장이 지현의 말을 듣고 환영처럼 지현의 모습까지 보게 되지요. 아버지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지현은 송이경을 위해 뭔가를 해주려고 합니다. 삶과 죽음이 인간이나 영혼의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현입니다. 자신과 같은 49일 여행자는 지현에게 눈물을 얻으러 다니는 대신, '평생 고생한 아내를 위해 꽃다발이라도 줄 것을, 어머니를 한 번 더 볼 걸, 그리고 자식들에게 편지라도 한 통 써놓을 걸'하고, 후회하고는 죽음의 시간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이경이 근무했던 서울호텔에서 받은 이경의 물건에서 찾은 스케줄러 송이수의 사진은 지현을 경악하게 만들지요. 스케줄러의 간절한 일이 송이경이 아니라, 사진 속의 여자와 관계되었다며, 송이수를 바람둥이로 몰아부치는 지현입니다. 지현이 조금 성질이 더 욱했더라면, 스케줄러 따귀를 아낌없이 때려줬을 정도로 이수에게 분노폭발하는 지현이었지요.
오늘은 신인정과 강민호이 비뚤어진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강민호가 신가산업을 부도내고, 신지현네 재산을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민 것은, 신일식 사장과 케케묵은 원한이 있었던 때문도 아니었어요. 세상에 대한, 자신의 가난에 대한 분노때문이었습니다. 신일식 사장과 지현이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는 강민호의 말에, 뭐 저런 개떡같은 놈이 있나 싶었다지요. 13살 때 늘 폭행을 일삼은 노름꾼 아버지의 죽음은 강민호와 어머니에게는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했지요.
어머니와 보따리를 싸서 야반도주를 한 강민호는 아버지의 폭행대신, 낯선 도시에서 처절한 배고픔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죽고 싶을 만큼 비참함, 모멸감, 무시, 냉대...잘못한 것도 없는데 세상은, 신은 너무나 불공평했습니다. 누구는 운좋게 태어나서 배고픔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누리며 살고, 누구는 뼈빠지게 새벽부터 생선장사에 야채장사에 허리가 휘어지게 일하는데도, 공부할 책값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지요. 나를 비참하게 만든 세상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해주겠다고, 내가 바꿔놓겠다고... 아무도 나처럼 살아보지 않고 법, 도덕, 관습 따위로 옳다 그르다 말하지 말라고...운없이 걸린 사람이 신일식 사장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신인정이 달콤한 제안을 했습니다. 자기가 얹혀 살고 있는 신지현에게서 모든 것을 잃게 해달라고,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신지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달라고...
잘못된 분노표출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에게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지만, 그의 분노는 결코 정당성을 얻지 못합니다. 일종의 묻지마 살인처럼, 묻지마 분노이기 때문입니다. 운없이 걸린 신일식 사장은 성실하게 자신의 기업을 일궜습니다. 강민호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불공평하게 빼앗긴 것이 아니지요. 다만 가지지 못했을 뿐이지만, 그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남에게서 빼앗는 것으로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에요. 그의 가난이, 그의 비참함이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너절했다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그럴 수도 있어요. 고생이라고는 모르는 지현의 순수하고 해맑은 웃음은, 인정에게는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네가 가진 것이 없어져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또 사면 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새 옷을 친구에게 선심쓰듯 던져줄 수 있을까?". 인정이 느꼈던 비참함은 충분히 지현을 시기질투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있지요. 하지만 인정의 비참함 역시 정당화될 수도, 동정을 받아서도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신인정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신지현에게 화풀이할 자격은 없습니다. 자존심이 상했다면 지현의 집에서 나와야 했고, 지현이 주는 옷을 거절했어야 했고, 선심이라고 생각하는 지현의 우정을 받지 말아야 했어요. 필요해서 다 받아놓고는, 그것때문에 비참했다고 말하는 신인정은 속이 배배 꼬여있다고 밖에 안보여요. 물론 고마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요. 지현을 자신도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현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지만, 상대방의 진심에서 나오는 우정마저도 선심이라며 자격지심을 느꼈다면, 신인정은 받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자존심이지요. '너는 고생을 몰라서 내가 느끼는 비참함을 몰라, 그것이 너의 잘못이야' 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는 말이에요. 물론 지현이 한편으로는 사려깊지 못했지만, 인정의 비참함을 똑같이 느껴보라고, 가난으로 떨어져라는 말을 하는 것은, 억지스런 피해의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9일은 삶과 죽음, 존재한다는 것과 없어짐의 차이가 분명한 것처럼, 강민호와 신인정의 악행과 신지현이라는 인물의 순수를 뚜렷하게 대비시키면서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자칫 강민호와 신인정의 악행마저 동정과 이해의 감정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면, 은혜를 원수로, 무차별적인 분노마저 정당화시키는 위험한 사고로 이끄는 드라마가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악행의 동기가 상대적이 아니라,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이라는 것에서 드라마는 그 위험성에서 탈피합니다. 잠시 신인정이 지현에게 고백하는 말을 듣고, 그녀의 비참함에서 그럴수도 있겠다고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녀의 자존심과 비참함을 냉정하게 바라보니, 신인정의 분노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정리가 되더군요.
강민호와 신인정도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를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함을 드라마를 통해 배웠으면 싶습니다. 강민호와 신인정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환기시키고자 한 것은, 잘못된 피해의식에서 나온 비뚫어진 욕망이겠지요. 신인정이 신지현에게 "나도 지현이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어요"라고 고백한 것은, 신인정이 한방울의 눈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복선이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이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두었다는 겁니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내일이 달라진다
송이경에게 빙의된 지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들통나 버렸습니다. 지현이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은 이상, 인간들이 인간들 스스로 지현을 인식하는 것은 지현에게 패널티 사유는 되지 않겠지요. 송이경의 사연을 알게 된 지현은 송이경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나서고, 자기 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느끼는 송이경은 자신에게 나타나는 인물들의 사연을 알고 싶어 할 듯하더군요.
잠에서 깨어나듯 신지현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송이경, 송이경과 송이수의 얽힌 오해를 풀어주려는 신지현, 봉인된 기억을 풀고 송이경을 기억해 버린 스케줄러 송이수, 송이경이라는 한 사람의 육체 안에서 벌어지는 두 여자의 교감은 결국 하나의 결론을 향하는 것 같습니다. 신지현의 소생과 송이경에게 송이수의 간절한 소원, 송이경에 대한 진심을 전함으로써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말이지요.
전생의 모습이 현재의 수명을 결정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이 후생의 수명을 결정한다는 스케줄러 송이수의 말은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주제입니다. "수명은 당신들이 정하는 거야"라는 송이수의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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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낙네 2011.05.05 11:10
아...늘 재방송으로만 보고 돌려보기로 한꺼번에 보다보니
진짜 방송날짜를 모르고 있었네요~^^
하지만 정말 정말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입니다~~
점심 준비한다고 들어왔다가 정신없이 빠져서 보고있습니다.ㅎ
오늘은 놓치지 말고 봐야겠어요~
행복 가득한 날 되세요~초록누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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굄돌 2011.05.11 07:45
아무래도 어제 글인가 싶어
날짜 한 번 클릭해봤어요.
성삼일 끝나고 나면 좀 여유 있을까 했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일도 일이지만 자꾸 쉬고 싶은 마음에
놀았다 쉬었다~~
ㅎㅎ -
지나 2011.05.14 12:55
저는 강민호와 신인정이 나름 이해가 가기도 해요...; 물론 잘못되었지만요. 하지만 누군가 나를 공격한다면 나도 힘을 키워서 상대를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법 해요. 강민호에겐 세상이 그 대상이었겠지요. 잘못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의 행동은 세상과의 대결이고 무너진 자신을 일으키는 힘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은 어떻든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 이외 다른 사름은 세상이란 이름의 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처절해서 그가 인생의 다른 답을 찾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야만 그의 마음에도 평안과 행복이 싹틀 것 같아요. 신인정의 마음도 한편에선 이해가 가요. 나는 너와 같은 눈높이에 있는 친구인데 넌 왜 자꾸 내게 선심쓰듯이 마음을 쓰는냐고 한 번쯤 지현이에게 표현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인정은 지현을 사랑해요. 그리고 지현의 도움도 필요했지요. 하지만 지현의 선택과 그녀의 마음에 휘둘리고 있었지요. 인정이 부탁할 때까지 지현은 기다릴줄 몰랐어요. 자신의 것을 나누어 줄때도 인정을 배려하지 않았지요. 인정에게 묻질 않았어요. 인정은 부탁하려 했어요. 지현이 먼저 물어봐줬다면 고마워했을 거예요. 근데 지현은 달랐죠. 너 가져. 라고 하면 가져야하고 있으라면 있어야하고인정은 지현과 같은 눈높이에 있질 못했어요. 인정은 바랬죠. 그녀가 알아주길. 우린 친구임을 그녀가 알아주길. 아무리 외치고 알려줘도 그녀는 몰라요. 인정이 지현을 사랑한만큼 지현도 인정을 사랑했을까요? 이쯤에서 인정은 지현을 버려야했는데 버리질 못했어요. 순수한 사랑이 변질되는것은 순간. 인정은 마음먹게 됩니다. 그래. 니가 아무래도 모르겠다면 내가 알게해줄게. 나를 보게 해줄게. 날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너에게 정말 진실이 어떤건지 알게 해줄게. 아니 어쩜 넌 니 방식으로 날 사랑한거야. 그래서 나도 니 방식으로 널 사랑해줄게. - 자격지심의 바닥인지는 몰라도 인정의 마음이..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적어도 지현은 그부분에선 인정에게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