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03 시티홀: 젊은 정치의 희망을 제시한 드라마
  2. 2009.06.26 시티홀: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
2009.07.03 10:16





수목드라마 시티홀이 그동안 마음 졸였던 신미래와 조국의 해피앤딩으로 끝났다. 시티홀은 로맨스 드라마면서 정치라는 옷을 입고 인주라는 작은 소도시의 시장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현실을 풍자했다는 평가 속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등장인물을 현실의 정치인으로 구체화시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는데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시티홀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권모술수, 돈정치가 만연한 구시대 구린내 나는 정치에 대항해 승리하는 도덕정치에 대한 희망이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정치에 대한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이상들은 신미래와 조국의 입을 빌어 주옥같은 대사들로 전달되었다고 보여진다. 신미래의 선거유세, 조국의 선거유세는 이상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치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였다.

둘째, 사랑을 통해 이 드라마는 젊은 정치를 얘기하고 있다. 물론 사랑이라는게 젊음의 전유물은 아니며 연령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선 드라마의 주인공 신미래와 조국 커플, 그리고 민주화와 이정도 커플, 차세대 대기업을 이끌어 갈 고고해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에 막 접어들었다. 한커플은 새로 사랑을 시작하고 다른 커플은 잘못된 사랑을 바로잡아가는 사랑을 한다. 그리고 고고해는 정경유착이라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들이 주역으로 활동하며 이상과 꿈을 펼쳐나가게 되는 5~6년후 이들의 나이는 40대 중후반이다. 그렇다면 10대들의 순수함도 20대의 열정적인 색깔과는 또 다른 30,40대의 사랑을 정치라는 코드와 버무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정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의 30,40대라는 나이는 유권자 중 가장 큰 비율 즉, 가장 영향력이 큰 세대라고 할 수 있다. 30,40대라는 세대는 경제적 성장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자식들은 좀 더 배운 사람으로 키우자는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배출한 교육1세대들이다. 다시말해 교육수준도 높고 정치의식 또한 강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정치에 가장 민감하면서도 정치에 가장 무관심한 세대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이 세대의 사랑과 야망을 정치라는 코드와 버무려서 보여준 이유는 바로 이 아리러니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었나 싶다.


사진출처: 브레이크뉴스

마지막으로 신미래와 조국의 괄호가 주는 메시지다.
신미래는 고고해에게 조국은 자신에게 괄호, 즉 숨은 의미라며 조국에게 신미래는 쉼표였다는 고고해를 한마디로 넉다운 시켜버린다. 그리고 조국은 그로부터 6년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국민의 괄호, 즉 국민의 숨은 의미가 되겠다는 연설을 한다. 신미래의 괄호는 사랑이었고 조국의 괄호는 국민의 참일꾼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청자들, 넓게는 국민들에게 괄호(정치적인 면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민심이며 올바를 선택이라 감히 생각해 본다.
시티홀은 수많은 선거를 치뤄 온 우리는 과연 우리에게 주어진 괄호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에 반문을 던진다. 교육수준은 높고 정치의식 또한 깨어있는 이 세대, 이는 우리사회의 젊은 희망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괄호이다. 이 괄호안의 세대가 제 역할을 하고 낡고 구린내 나는 구시대적인 것들을 털어낼 때, 즉 우리에게 던져진 괄호의 의미에 대해 능동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참여할 때 우리는 우리 조국의 신미래를 해피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희망이 될 수 있다. 시티홀의 해피앤딩은 조국과 신미래만의 것이 아니다. 젊은 정치, 즉 구시대적인 것에 과감히 반대하고 도전할 주체가 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던져진 또하나의 괄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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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07:14






드라마 시티홀. 사랑과 정치라는 두 장르 다 성공할 수 있을까?
코믹멜로라는 흥행보증수표 차승원, 김선아라는 두배우의 캐스팅에서부터 성공하리라 예상은 했지만 드라마에서 정치라는 민감한 부분을 어떻게 건드려 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던게 사실이었다.
종영을 앞두고 있는 시티홀이 지금까지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코믹이라는 코드와 신미래의 정치에 대한 주옥같은 대사들이 적절히 버무려지면서 속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면서 선방했다고 보여진다.
주옥같았던 신미래의 어록을 다시한번 상기해 보자.

"정치란 당끼리 고받고 싸우는 것, 떨어지고 떨리는 것, 기적으로 사한 짓 하는 것, 상인은 없고 기배만 가득한 것, 줄만하면 뒤통수 는 것... 정리하면, 마담 마폭보다 더 구린것.
근데 내가 바라는 정치는, 성껏 국민의 삶을 유하는 것이에요."

마지막 대사 "정치란 정성껏 국민의 삶을 치유하는 것" 이거 정치인이 준수해야 할 의무사항으로 법이라도 만들어 추가시켰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이번주 방영된 시티홀은 가슴이 무겁고 답답했다. 정치라는 구린내 나는 구석을 긁어주던 신미래의 가뭄에 단비같은 대사가 없어서도 아니고, 신미래와 조국의 닭살애정연기에 키득거리지 못해서도 아니다.
영문도 모른채 선거법위반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신미래, 그리고 그 내막의 썩은냄새가 무엇때문인지 알면서 괴로워하는 조국, 어제의 열렬한 지지자와 후원자가 고소장의 증인이 되어 속된 말로 뒤통수를 치는 실망과 배반의 모습, 정치이익집단의 추악함 등은 우리의 정치사회 현주소와 맞물려 있어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의 삶은 매사가 크든 작든 '선택'이라는 자의적 혹은 타의적 상황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어찌보면 삶이란 선택, 결정, 행동이라는 범주를 죽을때까지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옳고 그름, 손해와 이익,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계산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러한 선택 앞에 자유로울 수 없는게 인간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동물이 아닐까?  



사진출처: 브레이크뉴스

 
드라마 시티홀은 선택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조국은 신미래의 검찰소환이 자기때문이기에 신미래를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아님 둘 다를 위해서든 정치적 선택을 해야하고, 신미래 또한 자신을 옭아맨 정치적 음모와 인주시장으로서 펼치고 싶었던 꿈 앞에 또한 정치적 선택을 해야한다.
시청자들에게는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큰 권력, 즉 여론이라는 키워드를 던졌다. 그런데 이 여론이라는 것이 복잡한 집단이기주의들을 종합세트이다보니 어떤 것이 가장 맛이 있는지, 어떤 것이 가장 영양가가 있는지, 어떤 것이 가장 비싼 것인지, 어떤 것이 가장 예쁜지, 사람마다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취향도, 식성도 다르다보니 옥석을 가려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이 중 어느 것을 고를지 선택하라고 줄까지 세우려 한다.
드라마 시티홀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모습을 신랄하고 꼬집고 비판하면서 두 주인공 조국과 신미래를 선택의 기로에 세웠다. 그리고 드라마 밖의 시청자들에게도 어떤 정치를 원하느냐고 묻고 있다. 

드라마의 결말을 구성하는 데에는 몇가지 깨지지 않는 공식이 있다. 정의와 불의 앞에서는 정의를, 좌절 앞에서는 희망을, 오해와 복수 앞에서는 용서와 화합을, 야망과 사랑 앞에서는 사랑을 승자의 편에 세운다는. 
그래서 조국과 신미래의 선택은 중요하다. 물론 드라마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영리한 시청자들은 선택과 결말도 예상은 하지만 혹시 모를 미연의 사태에 촉각을 곤두 세운다. 왜냐면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좌절하고 싶지않으며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재확인함으로써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정치라는 세계가 드라마처럼 시시비비,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공익과 사리사욕, 진실과 거짓이 한눈에 읽혀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선택 앞에 훨씬 자유롭고 분명할 수 있을텐데 이 정치판이라는 게 양파같아서 한꺼풀 벗겨도 속도 안보이고 화도 돋구고 눈물도 나고, 심지어는 슬픔과 비통함에 울게까지 했다.  

사랑과 정치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의와 소신, 사랑과 야망, 정의와 불의, 행동과 침묵 등등의 상반적인 선택 앞에 드라마 시티홀이 사랑과 정치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주기를 기대한다. 드라마를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해소하고 싶은 심정, 이것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던지는 선택의 화두다.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권력은 여론이라는 민심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어느 쪽에 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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