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니 편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5.28 '신데렐라 언니' 작가나 제작진은 안 보는 드라마? (18)
  2. 2010.04.29 '신데렐라 언니' 구대성의 죽음, 공주들의 동화는 끝났다 (18)
2010.05.28 10:24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를 보면서 12,3회 정도 되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 '언제 이 드라마가 끝날까' 였어요. 은조의 우는 장면과 감정과다로 은조뿐만이 아니라, 시청자도 파김치가 되는 느낌이 들게 했었지요. 은조라는 캐릭터는 상당한 끈기와 인내심을 요구하는, 막연하게 사랑해 주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의무감까지 들게 했었어요. 물론 은조역을 문근영이 연기하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문근영이기 때문에 끝까지 의리와 애정을 놓으면 안될 것 같았거든요. 철저히 은조가 되었던 문근영의 연기는 훌륭했고, 특히 구대성의 영정 앞에서 "아빠,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며 통곡했던 장면은 드라마 전체에서 문근영이 흘렸던 눈물 중에 최고로 감정을 끌어 올렸던 것 같습니다. 8년만에 돌아온 기훈이 "은조야" 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눈물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던 수정같았던 눈물도 있었네요.
그러나 이후의 은조의 눈물은 슬픈 은조만을 위한 눈물이었고, 은조의 캐릭터는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은조의 캐릭터가 방향을 잃어가더니 드디어 17회에서는 기훈이나 은조나 은조의 나레이션처럼 미쳐 버리더군요. 우는 은조보다 보핍보핍에 맞춰 어색한 춤을 따라하는 모습이나 핑크색 머리띠를 하고 오랜만에 다리를 드러낸 은조가 예뻤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았을 듯합니다. 우는 문근영보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문근영은 보기 더 나은 것은 사실이었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은조는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우는 은조에게 짜증도 났지만, 16회까지 애정을 놓지 않았던 은조라는 캐릭터는 아니었습니다. 전혀 새로운, 그래서 낯설기까지 한 은조가 어느 별에선지 뚝 떨어져 나온 듯하더군요. 게다가 포항제철을 열 네덧번을 다녀왔음직한 기훈의 해맑은 소년같은 표정은 사진캡쳐용 혹은 보도자료용 표정들이었고,  드라마 기훈이라는 캐릭터와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져서 황당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두터운 철판을 깐 기훈이도 민망스러웠는지, 스스로 뻔뻔해지겠다는 말로 변명까지 늘어놓더군요(아, 작가가 그렇게 변명을 했다는 뜻입니다). 배우들의 아름답고 멋있는 표정만을 즐겨보는 시청자들에게는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팬서비스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 혹은 제작진께 묻고 싶습니다. 기훈이 죽도록 사죄해야 할 사람이 은조뿐입니까? 기훈이는 분명히 구대성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죄를 은조에게만 사죄를 하고, 다 털어놨다고, 이젠 아주 마음도 몸도 새털처럼 가볍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기훈이의 죄의식은 은조에게뿐이었고, 죽은 구대성이나 효선, 심지어는 어린 준수와 송강숙에게는 그다지 느낄 필요도 없었다는 건지... 아픈 효선이에게 눈감고 자라는 장면에서는 무슨 효선이가 어린 애도 아니고 "착하지" 대사까지 하더군요. 아직도 효선이를 고등학생쯤으로 보고 있다고 변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은조에게 다 털어놨다고 시도때도 웃는 통에 면상이라도 한대 때려주고 싶더군요. 잘못을 까발리면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고(물론 속으로야 하겠지요),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는 제 편할 대로 생각하는 단순한 기훈이는 준수랑 친구 먹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그동안 구대성의 죽음과 효선에 대한 죄의식으로 주구장창 울고 짜던 은조까지 단순해져서, 어안이 벙벙하고 배신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은조의 캐릭터를 변질시켜 버렸는지, 중간에 연출자가 바뀐 게 아니라 작가가 바뀐 것 아닌가요?
도대체 작가나 제작진은 피드백이라는 것은 하는지 모르겠네요. 시청자들 중에는 신데렐라 언니를 두번씩 세번씩 봤다는 분도 있더군요. 그런데 제작진은 대본에 따라 촬영, 편집, 방송만 내보낼 뿐 드라마는 전혀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청률이나 드라마에 대한 반응만 체크하시지 마시고, 드라마를 시청자와 함께 제대로 봤으면 싶네요.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않으니 은조나 기훈의 지난회 감정선같은 것은 안중에 없습니다. 심하게 얘기해서 그날 그날 생각나는 대로 작가는 대본을 쓰고, 제작진 역시 찍고 편집하고 방송으로 내보내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싸잡아서 은조와 기훈이를 공감되지 않는 사랑에 집착하게 하고, 그러다 보니 캐릭터의 감정선까지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스토리 라인까지 버려가면서 변해야 하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솔직히 은조와 기훈의 캐릭터는 변한 것이 아니라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성장해야 할 캐릭터들이 변질되고 있을 뿐입니다. 변질과 성장은 다른 것입니다. 은조가 냉소적이고 독기나 펄펄 날리는 모습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도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니 술로 치면 막걸리가 맥주로 변했다는 비유를 하고 싶네요.
그러고보면 작가는 구대성네 가족은 문근영을 눈물근영으로 서우는 엄마잃은 천사로 만들어 가면서 지키려 하고, 홍주가는 쓸만한 인간은 하나도 없는 구성원들로 만들어 작정하고 파탄내려고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은조와 기훈이라는 캐릭터, 저는 기훈이라는 캐릭터는 홍주가 아버지와 형을 만나고 대성도가에 형을 자빠뜨리겠다는 심산으로 잠입했을 때부터, 이렇게 처절하게 부숴질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천정명의 연기력과 함께 기훈의 캐릭터는 도저히 수습불가입니다. 기훈의 캐릭터는 그렇다쳐도 은조는 뭔가 싶습니다.
은조의 캐릭터는 변했고, 변질되어 솔직히 기훈의 캐릭터보다 엉망이 돼가고 있습니다. 기훈이야 워낙 오락가락 정신없이 널을 뛰어서 이제는 어떤 모습이 기훈인지 헛갈리기까지 하지만, 은조를 이렇게 망가뜨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작진에게 묻고 싶군요. 네, 저는 정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문근영은 확실히 연기의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왜? 더 이상 보여줄게 없으니까요. 더 이상의 스토리도 없고, 은조를 새장에 가둬두고 눈물이나 짜라고 하고, 이제는 그것도 안되니 춤이나 추고 노래나 시켜보자고 드는 느낌입니다. 문근영의 뛰어난 감정선과 연기력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더 큰 새장을 만들어 주어야 함에도, 마치 독수리를 참새 새장에다 가둬버린 느낌입니다. 기훈이랑 그동안 16회까지 보여 주었던 은조의 모든 눈물과 번민, 지긋지긋할 만큼 우려먹엇던 구대성에 대한 죄의식과 사랑마저 잊고 알콩달콩 사랑이나 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줍니다. 
엄마 못 찾았다고 동동거리는 은조를 껴안고 토닥토닥 한번 해주니 그 동안 피눈물을 흘리던 일들은 다 잊고 싶다고요? 기훈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기훈이 대성도가를 이용해 형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심정까지 동정하고 눈물까지 흘려 버립니다. 구대성을 위해 흘린 눈물과 대성도가를 살리겠다고 불철주야 몸이 부서져라고 일하던 은조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무너질 수, 아니 변할 수 있는 아이였느냐고요.
* 요즘들어 문근영과 천정명을 보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근영의 연기도 힘이 많이 빠진 듯 보였고, 천정명은 제 개인적으로는 본인이 연기하면서도 기훈의 그런 행동과 대사들을 납득했을까 싶어서, 갑자기 힘없는 연기자들이 불쌍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천정명의 경우는 살짝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찍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대본에만 충실한 모습이더군요. 은조를 안고 있어도 무념무상, 자기 어머니에 대한 아픔을 얘기할 때도 무념무상이더군요. 연기력인지, 자포자기인지... 은조와의 애틋한 감정신이 차라리 한 두회 전에 나왔더라면, 천정명도 좀 폼나게 감정을 잡을 수도 있었을텐데, 이건 뭐 애 토닥거리는 심정으로 러브신을 찍어야 했으니 무슨 맛이 났겠냐 싶기도 하고요.
문근영의 초반 연기를 보고 저는 문근영이 성장이 무서울 정도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지만, 이제는 작가나 제작진이 문근영의 성장을 어디까지 막을지 두렵다는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이쯤되니 작가나 제작진이 문근영과 천정명의 안티로까지 보입니다. 천정명의 연기에 대해서는 저는 지금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고 보지만, 연기력을 떠나 캐릭터의 비호감을 극대화시키는 이유는 뭔가 싶네요. 아마 작가는 대본만 쓰고, 제작진은 작품만 만들고 있나 봅니다. 제발 본인들이 만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해 보라고 충고하고 싶네요. 시간에 쫓긴다고 변명만 하지말고, 작품의 완성도, 개연성, 산으로 가는 스토리, 연기자들의 감정선 등등을 시간내서 1회부터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 보라고 충고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시청자의 눈으로, 마음으로 드라마를 다시 돌려보기를 하다보면 산으로 간 캐릭터들과 스토리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2회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정말 다행입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란 틀렸지만 벌여놓은 일 수습이라도 잘 하고. 더 이상 배우들을 망가뜨리지나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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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3 Comment 18
2010.04.29 07:36




예감은 했지만 대성참도가 구대성의 죽음이 너무 급작스러워서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많이 울었어요. 사람을 떠나 보낸다는 것이, 더구나 마음 든든하게 의지하던 사람과의 이별은 감당하기 힘들어지네요. 그 이별이 드라마 속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새 은조와 효선, 그리고 강숙의 마음과 동화되어 버린 구대성에 대한 사랑도 제 사랑이 돼 버렸나 봅니다. 사실 이번회를 보고 글을 올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제게도 이별할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아마 이 글을 쓰는 동안 저는 또 많은 눈물을 흘려가며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기훈의 나레이션이 등장하면서 어쩐지 은조와 효선에게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결과가 구대성의 죽음이었네요. 구대성의 죽음은 은조와 효선, 송강숙의 시선에서 담아내기에는 그 감정의 기폭이 너무 크기에 기훈의 시선에서 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구대성의 죽음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해 버린 기훈, 그리고 구대성의 죽음을 받아 들여야 하는 송강숙, 효선, 은조의 나레이션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번 신데렐라 언니 9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글을 두개로 나눠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은조와 효선, 은조와 기훈의 파트가 신데렐라 언니 스토리에 하나의 방점을 찍으며 정리가 되었기에 이 부분도 언급해야 할 것 같아요. 

괘종시계의 묵직한 시계추, 구대성의 죽음
대성도가에 닥친 위기는 이웃 친척들의 도움으로 해결된 듯싶었는데, 더 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지요. 대성도가에 쌀을 대주던 도매상들이 구성도가에 쌀을 공급하지 않으려 하고, 은조는 은행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홍주가 홍회장을 찾아 간 기훈은 아버지로부터 큰 돈을 대성도가에 빌려주게 하고 다행히 대성도가는 비싼 값으로라도 쌀을 사서 탁주를 만들어 일본으로 가는 배에 선적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기훈은 수주를 넣었던 일본회사가 유령회사였다는 것과, 이 모든일이 이복형 기정이 꾸민 짓임을 알게 됩니다. 기정과의 전화통화를 듣게 된 구대성은 쌀을 사기 위해 차용한 돈이 홍회장 돈이었고, 홍회장과 대성이 대성도가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지요. 홍주가로부터 내쳐진 기훈을 자신의 그늘에 품어 주고 아들처럼 믿었던 기훈의 배신에 대성은 쓰러지고 맙니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어요. 
아내 송강숙의 진심어린 사랑을 이제서야 비로소 느끼며 행복했는데, 은조와 효선이 따로 술을 마시겠다며 응어리진 마음을 터놓고 좋은 사이가 될 것도 같았는데, 아버지라고 불러주지 않았지만 자기의 건강을 염려해 술잔을 받아들이는 은조마음이 기특하고 든든했는데, 그래서 집 한귀퉁이 글처럼 "가화만사성"을 이룰 것도 같았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한채 다 버리고 간듯 편안하게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어요. 작지만 천천히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왔던 그의 삶의 철학처럼 욕심없이 말이지요. 남은 사람들의 가슴 미어지는 통곡소리를 들으며 구대성이 가는 걸음도 가볍지는 않았을텐데, 인생사가 그렇듯이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기훈의 비밀도 알려주지 못하고 떠나 버렸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대성참도가 탁주만 남겨둔 채 말입니다. 

기훈, "내가 하루아침에 저 예쁜 여자애들의 아버지를 빼앗았다"
병원 응급실 한 귀퉁이, 감히 다가서지도 못하고 바로 볼 수도 없는 기훈은 구대성 아저씨의 죽음이 자신때문이었기에 울지도 못합니다. 아니 울 자격도 없습니다. 무엇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 자신을 버린 홍주가에 대한 원망이 왜 구성참도가 구대성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기훈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자기때문에 구대성이 죽었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에요. 구대성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열하는 효선과 송강숙, 넋이 나간채 바르르 떨고 있는 은조, 두 아이들의 아버지를 빼앗아 버린 자신과 홍주가는 죄값을 받아야 한다는 것만이 서서히 기훈의 마음을 조여옵니다. 아주 오래전 은조가 기차역에 나와주었다면 이 더러운 진흙탕 속에 발을 담그지 않았을 것이라는 회한과 원망만을 간직한 채 말이지요. 여전히 사랑하는 여자지만 이제는 사랑할 수 없는 여자 은조, 기훈은 이제 더이상 기차역에서 은조를 기다리는 풋풋한 청년이 될 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아저씨에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던 했던 기훈이지만, 그 넉넉한 아저씨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자신때문에 죽어 버렸습니다. 기훈의 마음을 드라마 속에서 아직 다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기훈이 예전의 기훈이 될 수 없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기정과 홍회장 그 어른들의 추한 싸움 속으로 기훈이 진짜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것이 은조와 효선 두공주를 위한 일이든 홍주가에 대한 자신의 원한을 되갚아주는 일이든지 말이지요. 

송강숙, "하느님, 부처님, 신령님과 맞짱떠서 이긴 나를 가지고 놀아? 이제 내가 너희를 가지고 놀아주겠어!"
은조에게 털보장씨와의 그간 밀회를 들켜버린 강숙은 은조가 믿든 안믿든 진심이었어요. 송강숙은 정말 개처럼 구대성에게 충성합니다. 약 먹을 시간을 알람까지 맞춰두고 지극정성으로 구대성을 간호하고 책에서나 읽었던 현모양처가 따로 없을 정도에요. 구대성이 없는 송강숙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구대성이 쓰러지고 난 후 깨달은 송강숙이었어요. 구대성은 송강숙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싶었던 남자였고, 진심으로 좋아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자신의 마지막 남자라고 생각했던 구대성이 눈앞에 누워 있습니다. 사망하셨다는 의사의 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죽어 버렸습니다. 효선이가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앞이 깜깜해져 옵니다. 효선이 아빠를 부르며 우는 소리가 낮잠자는데 왱왱거리며 들리는 야채 장수 마이크 소리같습니다. 낮잠에서 깨났는데도 그 소리가 잦아들지 않습니다. 잠결에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꿈이 아닙니다. 바로 얼마전에 휴대폰으로 사진찍고 큼직한 알타리김치를 받아 먹으며 웃어 주던 남편이 "나 진짜 죽었소" 라며 누워 있습니다.  
효선을 붙들며 조용히 해보라고, 울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보라며 반 정신 나간 여자처럼 울부짓는 송강숙 이미숙의 그 짧은 장면은 너무 생생스러워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그 순간 송강숙에게는 악 밖에 남아 있진 않아 보였어요. "나, 하느님 부처님 신령님하고 맞짱떠서 이긴년이야. 그런데 운수 사납다는 팔자 네까짓게 감히 날 가지고 놀아? 이거야? 내 드러운 팔자라는 게? 나, 안져. 팔자? 그래 이제 나랑 맞짱 떠보자. 이제 내가 내 팔자랑 맞짱 떠 보겠어!"
송강숙은 정말 자신의 팔자라는 년과 맞짱을 뜰 것같아 보입니다. 마음 잡고 잘 살아 보겠다는 데도 허락되지 않는 더러운 팔자라면, 그 보다 더 더럽게 살아봐 줄게 하는 듯이 보였거든요. 인간의 감정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듯한 송강숙은 신데렐라 언니의 핵폭탄 같아요. 은조와 효선이 어른이 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기 까지 합니다.
괘종시계의 묵직한 시계추같았던 구대성의 자리를 대신할 송강숙은 마치 살풀이라도 하려듯 달려들 것 같습니다. 송강숙의 불안한 시계추는 은조와 효선을 어른의 세계로 이끌 수 밖에 없을 테지요. 은조가 감당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입니다. 은조가 잡고 있는 효선 역시 따라 올 수 밖에 없겠지요. 구대성이 "나를 버리지 마라" 고 한 그 말이 은조에게는 효선에게도 동일하게 작동할테니까요. 효선 역시 이제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고 빚이라고 생각할 은조이니까요. 아버지의 딸이라는 무게로 말이지요.

효선, "아빠! 이제 나는 누가 지켜줘요?"
구대성의 죽음이 가장 슬플 사람은 효선일 거예요. 세상에 단 한사람, 자신의 편이고 유일하게 효선이 꺼였는데, 그런 아빠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애교를 떨어봐도 아빠는 눈을 뜨지 않습니다. "효선이 왔따아~~~" 아무리 말해도 아빠는 대답이 없습니다. 그저 눈물만 흐릅니다. 무섭습니다. 
어렸을 때는 효선은 죽음이 뭔지 몰랐어요. 엄마가 죽었다고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잠시 집을 비운 걸로만 알았어요. 하루 이틀 몇년을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았고, 비로소 엄마가 죽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주 천천히 알았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알았어요. 다시는 효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다시는 효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요. 아빠의 까칠한 수염을 만질 수도 없고, 도가에서 집에서 불호령을 하던 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를 더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을요. 더 이상 아빠 어깨에 기대어 은조에게 "용용 죽겠지, 우리 아빠야" 라고 응석받이처럼 유치하게 은조 약을 올려줄 수도 없다는 것을요.
이제는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효선인데, 그 빈자리가 얼마나 아프고 그리운 자리라는 것을 알아 버렸는데, 세상에 하나뿐인 '효선이 꺼' 아빠가 죽었다고 합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합니다. 침대밑 효선의 물건 상자에 넣어 둔 엄마 사진처럼, 아빠는 그렇게 꺼내 보고 그리워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어른되서 아빠 힘들지 않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효선이 어른이 되는 것도 보지 못하고, 효선이 시집가는 것도 못보고 아빠 혼자 엄마한테 가버렸다고 합니다. 겉으로만 좋아해 주는 새엄마와 미워서 아니 효선을 너무 잘 알아서 얄미운 은조 모녀 속에다 효선이 혼자 던져버리고 가버렸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집에 새엄마와 새언니가 온 게 아니라 효선이가 새엄마와 새언니 집에 남겨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아빠, "아빠! 효선이 혼자 두고 어떻게 가실 수가 있어요. 이제 나는 누가 지켜 줘요?" 비명처럼 아빠를 부르는 효선, 효선이에게 더이상 아빠는 없습니다. 지켜줄 든든한 나무가 어느 날 갑자기 뭉텅 잘려나가 버렸습니다. 이제 "너 혼자 힘으로 어른이 되라"면서요.
아버지의 죽음은 이제 효선이 더 이상 어린아이의 시간 속에 머물 수 없음을 말합니다. 스스로 지켜야 하니까요. 그렇게 효선은 다른 시계로 발을 디뎌야 합니다. 어른이 되는 시계추로 말이지요.

은조,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단 1초라도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은조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처음으로 은조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구대성, 쓰레기같았던 이름 송은조를 구은조로 바꿔 준 사람, 은조에게 구대성은 다른 세상이었어요. 따뜻하고 기대고 싶고, 엄마의 가식적인 사랑때문에 자신이 빚처럼 여겨졌던... 은조의 인생에는 영영 없을 줄 알았던 존재가 아버지였어요. 백만번쯤 바뀐 엄마의 남자들은 그저 엄마가 스쳐 간, 이름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남자들이었을 뿐이었어요.
그런 은조에게 구대성은 처음으로 손을 얹어 주었어요. 기훈이 떠나던 날, 은조의 상처를 처음으로 보듬어 주고, 대성도가에 남아있을 이유가 되어 주겠다던 구대성, 그 때부터였는지 몰라요. 구대성은 은조에게는 하나의 의미가 돼버렸어요. 반듯하게 살아야 하고, 구대성이 사랑하는 일까지 사랑하고 싶어졌지요. 미생물학과에 진학해서 효모를 연구하고, 그것이 대성도가를, 아니 구대성을 웃게 하는 일이라면 은조는 쓰러져도 좋았어요. 은조의 하늘이었고, 숨쉬는 숲이었던 구대성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언젠가 효모연구가 성공하면 은조는 구대성에게 주고 떠날 생각이었어요. 구대성이 아니라 대성도가를 말이지요. 
뜯어먹을 게 많아서 좋다는 엄마의 말에 어깨를 떨어뜨리고 가는 쓸쓸한 구대성의 뒷모습은 은조의 모습과도 같았어요. 어느 날 새벽 가방을 챙기고 떠나려던 자신의 모습을 닮아 있었으니까요. 그런 자신을 붙잡아 주었던 구대성의 묵직한 손을 은조는 기억합니다. 효선처럼 팔짱을 끼어주지도 못하고 구대성의 뒤만 마치 오리새끼처럼 따라다닐 뿐이었어요. 어떻게 붙잡아 줘야 할지도 몰랐던 은조는 어린아이였거든요. 감정표현에 서투르기만 한...
그런 은조에게 구대성은 "나를 버리지 마라. 그래주면 고맙겠다"며 더 큰 팔로 안아주었어요. 엄마와 자기가 운수사나운 모녀가 아니었느냐는 말에 "날 아버지라고 한번 안해줄래?" 라며, 네 엄마와 너는 내 가족이야. 가족에게 어떻게 운수사나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니? 라고 돌려 말해주었어요.
 
한번도 불러보지 못했기에 입만 달싹이고 말았는데, 나가는 구대성에게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 마음 속에서는 수만번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제 영영 그 소리를 해드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니, 은조가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라는 소리를 한 번 듣고 싶다고 했는데, 은조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 영영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계단에서 무너지는 은조에게 아픔이 가슴을 찢고 나오려 합니다. 가슴을 누르고 눌러도 그 아픔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혼자 불러보는 아버지, 그 말조차 목구멍에서 찢어져 버립니다. 숨을 쉴 수 조차 없습니다. 너무 아파서 소리를 내면 심장이 터져 죽어버릴 것 같아서 소리조차 지를 수 없습니다. 소리를 내면 가슴이 터져 산산이 부숴져버릴 것 같습니다. 너무 아파서 "아버지"라고 소리내어 불러보지만 "아..."하고 다음 말도 찢겨져 버립니다.
은조는 이게 악몽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건 분명 악몽이고 나는 대성도가에서 책상에 앉아 있는 거야. 아버지가 모주를 들고와서 쉬엄쉬엄 공부하라며 효모 이야기를 해줍니다. "바람이 물이 공기가 해 준 일이야. 은조 너희모녀가 좋은 효모를 가지고 왔어" 아버지가 은조를 향해 웃어줍니다. 아버지라고 한 번 불러주지 않으련? 하면서요. 머뭇거렸지만 은조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세상에 한 분밖에 없는 은조의 아버지인데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아무도 은조를 욕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하고 아버지를 부르려 하는데 12시 종소리가 들립니다.  
되돌아오니 은조는 병원 비상계단에 쪼그리고 울고 있습니다. 조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그 병원입니다. 시계바늘을 돌릴 수만 있다면, 딱 1초만이라도 아버지라고 불러달라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백만번 천만번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야속한 시계는 거꾸로 돌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짓눌러지듯 아프고 터질 것 같은 걸 보면 이건 악몽이 아닙니다.
은조도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대성도가, 그곳을 지키던 어른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에요. 은조의 아버지 구대성이 말이지요. 세상이 싫어 도망가겠다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습니다. 은조도 이제는 아버지를 대신할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를 버리지 않는 일이 대성도가를 지키는 일일테니까요. 
"아.." 소리 밖에 내지 못하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우는 은조,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아빠를 잃은 효선,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은조와 효선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두 아이의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가슴을 후벼팝니다. 아버지를 잃은 은조와 효선은 이제는 영영 동화속 공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하거든요. 버팀목 없는, 아버지의 든든한 두 팔이 없는 무서운 어른들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동화를 마무리해야 겠지요. 그래서 아버지를 부르는 이 아이들의 소리가 더 아파오고 구대성의 죽음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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