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그 후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2.11.23 '신의 8회(재)' 저를 가지십시오, 싸움은 제가 하겠습니다 (150)
  2. 2012.11.22 '신의 7회(재)' 마마, 이제 제가 아프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152)
  3. 2012.11.16 '신의 3회(재)' 죽지마요, 그 분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103)
2012.11.23 16:55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인생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아닐까. 경창군 마마의 죽음은 나의 긴 화두였던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

죽음과도 같은 삶,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누구를 위해 달려가야 하는지, 갈 길을 잃었던 나는 긴 시간 잠을 자고 있었다. 살기가 싫었고, 사는 것이 귀찮았고, 무엇보다 나를 살게 할 그 무엇을, 누구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내가 만든 얼음호수, 쇠사슬에 그렇게 나를 꽁꽁 묶어두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옥사에 갇혀 알았다. 얼음호수 그곳은 내가 나를 가둬둔 감옥이었음을... 그리고 나는 그 감옥을 나왔다. 내 스스로 옭아매었던 사슬을 끊고... 

 

비껴간 시선, 그래도 나는 임자를 봅니다 언제나... 

 

그 분은 내 시선을 그렇게 피했다. "당신이 죽였어? 저리가, 그 더러운 손 치워", 어린 경창군 마마의 가슴에 칼을 꽂은 나를 그 분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의원이기에 더더욱이나... 그 텅빈 눈을 보고 그래서 나는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분이 기철을 따라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싸웠을 것이다. 목숨을 내놓고서라도...설사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 분을 지키기 위해, 칼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했다. 그 분이... 무사로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칼을 던졌고,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것만이 그 분을 살릴 수 있었기에...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질투를 알았고, 가슴이 텅 비어버리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았고, 그리고 그 분을 연모하는 내 마음을 알았다. 목숨으로 지켜주고 싶은 분, 멀어져가는 그 분의 눈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을까?

그것으로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겐 가장 고통이었다. 역모죄로 끌려가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 분의 얼굴을 잊지않기 위해 내 가슴에 그렇게 새기고 있었다. 오래오래... 그리고 그 분과 나의 시선이 엇갈렸음을 그때 나는 알지못했다. 그 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얼음호수, 사슬을 끊어내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 잠에서...

 

어리신 선왕마마를 그렇게 보내드리고, 마음놓고 울지도 못했다. 뜨거운 피가 흘러내린다. "영아, 그자가 가르쳐줬어, 어찌하면 널 살릴 수 있을지, 너무 아프다 영아".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나를 살리겠다고 스스로 독을 드신 선왕마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눈물밖에 없다는 것이 미치게 한다.

힘들다. 살기 싫다. 자고 싶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그 분의 어깨에 기대 또다시 잠을 잘 수만 있다면, 미칠 것같은 내 마음을 잠재울 수 있을까? 그분의 약병, 조심히 꺼내본다. 노란 소국 한송이, 시들어가는 꽃이 그 분인양 나는 그렇게 그 분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든다. 편하게, 아주 편하게...  

꿈을 꾸었다. 처음으로 죽는다는 것이 두려웠다. 녹아내린 얼음호수에서 나는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죽고 싶었던 내가 살고자 발버둥을 친다. 살고 싶어졌다. 아니 죽자고 살아야 겠다.

 

주상전하의 또 다른 하명이 내려졌다. "어떻게 싸우는지 가르쳐줘요".내 팔을 가만히 잡고 말씀하시는 주상전하는 진심을 보여주었다. 의선이라는 말에 고개가 자동으로 들려진다. 내 온 몸의 신경은 온통 그 분의 안전만이 궁금했으니까...

"의선을 부원군에게 보낸 건 그것만이 의선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랬어요. 내곁에 있으면 그 분이 더 위험해지니까. 나는 힘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튀어나간다. "그 분 그 집에서 안전하십니까?". 그 분의 안전을 주상도 알지 못한다.(***여기서 공민왕과 최영의 의선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알 수 있죠. 최영은 곁에 딱 붙어있으라고, 그래야 지켜줄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좀 다르죠? 은수는 최영이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니까***) 

***이어지는 장면은 은수의 뒤를 쫓는 이민호 최영의 그윽한 눈빛에 홀라당 빠져드는 아련아련 장면이 이어졌지요. 전 이 장면을 엄청 좋아한답니다. 기철과 은수가 숲나들이를 갔을때 은수를 지켜보는 최영의 모습, 미치게 설레게 하고, 은수가 비틀거릴때 안아 올려주는 장면은 심장 벌렁벌렁이랍니다*** 

'임자, 언제나 임자가 먼저였습니다'. 그 분에게 나는 사내이고 싶었다

 

고백하건데 언제나 그 분이 먼저였다. 주상전하가 누구와 왜 싸워야 하는지 답을 알고 있다고 했을 때도,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을 때도, 나는 그 분이 먼저였다. 그 분이 안전한지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감옥을 탈출해 그 분께 먼저 달려갔던 마음, 나는 그것을 감히 그 분에 대한 연모라 말한다. 분명 연모였다. 하늘말로 사랑이라는 것, 나는 미치도록 그 분이 보고 싶은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 분께 달려간다. 오늘도 내일도... 

기철과 웃고 있는 그 분, 술에 취한 듯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고 걸음걸이도 비틀거린다. 기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이어지는 듯한 대화, 기철이 뭐가 좋은지 웃고 있다. 화가 치민다, 그것이 질투임을 나는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 분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내 가슴은 벅차게 뛰고 있었을 뿐.

그 분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노란 꽃, 그분이 내게 줬던 그 꽃이다. 내 발밑에도 그 분의 꽃은 그렇게 지천으로 피어 그 분 앞에 나서지 못하는 내 마음을 아프게 흔든다, 진한 꽃향기와 함께... 나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분도... '임자, 그 때 얼마나 임자 앞에 나타나고 싶었는지, 임자는 모를 겁니다. 얼마나 임자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는지 모를 겁니다. 나 여기 있다고, 내가 지켜주겠다고'. 

자운대감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살금살금 도망치는 그 분, 비틀거리는 모습이 넘어질 것만 같다. 기철의 눈을 피해 달아나느라 발을 헛디디고야 마는 덜렁이, 그 분을 가만히 안아본다. 버둥대는 그 분을 더 꼭 안아본다.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나 해 본 거예요. 나리, 미안해요", 버둥거리는 그 분을 안고 있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안고 싶었다. 미치게 보고 싶었다. '임자 몰래 그렇게 임자를 처음으로 안았습니다. 임자, 그 때 내 가슴은, 내 손은 임자를 연모하는 사내의 마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분을 받쳐주었던 사람이 기철이 아니었음에 두리번 거린다. '혹시 저를 찾고 계십니까?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그 분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말을 타고 기철과 함께 돌아가는 그 분을 오래 지켜만 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이 그 분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저를 가지십시오, 싸움은 제가 하습니다

 

주상은 말했다. 왜 싸우려고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왕이 되고 싶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이런 왕이라면 내 목숨 기꺼이 내놓고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목숨의 가치라는 것, 그것을 뼈저리게 배웠으니까. 경창군 마마의 목숨값으로 살리신 내 목숨값, 그것은 삶의 가치였다.

"저보고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답을 올리겠습니다. 왕은 싸우는 분이 아닙니다. 가지시는 분입니다. 우선 저를 가지십시오, 그러면 싸움은 제가 하겠습니다".  

이 싸움은 주상의 싸움만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이 싸움은 내 싸움이기도 하다. 그 분을 지키는 것, 지켜주겠다는 무사의 언약, 나는 그 분을 위해 싸우려 한다는 것을...

 

주상은 원의 호복과 변발을 벗어던지고 황룡포와 익선관을 썼고, 나는 무사 최영의 검을 들었다. 나를 가둔 감옥, 얼음호수의 쇠사슬이 녹았음을 본다. 나를 가두고 있던 알을 나는 온몸으로 깨고 나왔다. 나 최영은 그렇게 고려를, 그리고 그 분을 온 몸으로 안고 있었다, 내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내 심장이 다하는 그날까지...

 

***최영의 각성과 데미안을 비교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댓글로 의견교환 해보세요^^).

***숲에서 은수를 받쳐주었을 때 저는 최영이 왠지 은수를 사심으로 안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임자팬들의 의견은 어떤지요?

***오늘 신의병동 임자팬들을 위한 대장의 서비스는 수레창살 사이로 은수를 보는 쓸쓸함이 묻어있는 눈빛,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은수를 보며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 지킴의 눈빛되겠습니다. 은수에게만 고정된 눈빛, 그 때의 최영 마음이 어떠했는지 눈빛으로도 읽혀지죠. 한 여인만을 지켜보는 한남자의 마음의 깊이와 무게, 우리가 최영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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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2 10:06




'마마, 영입니다. 마마, 소인이 들려드린 하늘나라 그곳에 지금, 계십니까?'.

사람이 살다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7년전의 그 날처럼... 강화에서의 그 날은 송두리째 지우고 싶은 날이다. 아직도 눈에 생생한 경창군 마마, 그리고 마마의 마지막 말씀이 가슴을 저민다.

 "영아, 덕성부원군이 가르쳐줬어, 어찌하면 널 살릴 수 있는지... 나도 갈 수 있을까? 거기 하늘나라... 아프다 영아, 너무 아파..."

난 그렇게 경창군 마마를 보내드렸다. 더이상 아프시지 않게, 내손으로... 그것이 경창군 마마의 우달치에게 내렸던 마지막 명이자, 경창군 마마의 우달치로서의 내 마지막 임무였다. "이젠 제가 아프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줘. 너무 아퍼". 

 

 

역모의 함정에 빠졌다. 그리고...그 분을 내 심장에 함께 품었다

 

싸늘이 식어있는 화로, 언제 먹었는지 알 수 없는 빈그릇들, 구석구석 덮개처럼 쳐진 거미줄, 그런 곳에서 가여운 경창군마마는 병과 힘들게 싸우고 계셨다. 가슴이 미어진다. 이런 곳에 그 어린 선왕마마는 홀로 내던져졌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계셨을까...

'마마, 송구합니다, 참으로 송구합니다'.

의선은 종양이라는 알아들을 수없는 병명을 내렸다. 와야 할 대만이가 감감무소식이다. 마음이 급하다. 전의시로 의선의 도구를 가지러 마마의 거처를 나섰다. 손을 흔드는 그 분과 마마의 모습이 좋았다. 언제나 나를 웃게 하는 분, 이대로 마마와 의선을 모시고 아무도 모르는 어촌에서 낚시나 하고 살면... 안될까... 허황된 꿈인줄을 알면서도 그들의 환한 미소에는 아픔이 없었다. 마마도 그 분도, 그리고 나도...  

집을 에워싼 자객들, 의선과 경창군 마마가 위험하다, 한시바삐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위리안치중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경창군 마마의 목숨이 걸렸지 아니한가?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이쪽도 저쪽도 우리편이라기에는 애매하다는 말에 처음으로 마음에 쏙 드는 답을 하신다. "그럼 그냥 우리 내빼요".

 

***자객들을 처치하는 최영 이민호의 액션씬은 돈주고도 보고 싶은 장면이었습니다. 날렵하고 민첩한 몸놀림, 손가락 사이로 검잡이를 돌리는 모습은 진기에 가까웠죠. 잘때도 검을 잡고 잤다는 이민호, 검이 손에서 춤을 추었죠*** 

 

뒤따라 오는 자객들을 처치하기 위해 경창군 마마와 그 분을 먼저 보내야 했다. 그 분이시니까 마마를 잘 보살피실 것이다. 마마를 애처롭게 내려다 보던 그 분의 따스한 표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마를 지킬 것이라고 믿게 했으니까...

역시나 또 질문이 이어진다. "우리만 가라는 거예요? 왜요?", "한 번만이라도 '왜요?" 하지 말고 내가 하란대로 해봐요", 고삐를 의선의 손에 쥐어주고 뒤를 향해 달렸다. 검에 베어나가는 자객들, 튀기는 피, 나무 사이로 그 분의 시선이 느껴진다. 걱정스런 모습으로, 겁에 질린 모습으로 말을 돌려 가는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사람을 베는 모습을 그분에게 보여주는 것이 싫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시는 분... 

 

그 분의 어깨, 처음으로 나는 편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숲속의 폐가, 익숙한 내 말 냄새, 의선이 숨어있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인기척에 겁없이 단도를 들고 달려온다. 에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는지 고려에 있는 동안은 검술도 가르쳐야 할 것 같다. "누군지 묻지도 않고 찌릅니까? 제대로 찌를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찌르는게 아닙니다. 칼은 주인과 적을 가리지 못하니까요!".

마마가 힘겨운 듯 신음을 내며 끙끙앓고 계신다. 가슴이 아프다. 저 어린 몸이 얼마나 힘드신 건지... 그 분의 표정에서 나는 읽었다, 마마의 병이 심각하다는 것을... 오래 버티지 못하시리라는 것 또한.

 

번개빛에 내 얼굴에 묻은 피가 보였나 보다. 수건을 던져주며 시선을 외면하는 의선, 경창군 마마 곁에 앉으려는 나를 차갑게 밀어낸다. "저리가요, 애 깨우지 말고...". 애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벌컥 화를 냈지만, 힘들었을 마마를 자게 하려는 그 분의 마음이 읽혀져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마마를 내려다 보는 그 분의 표정이 어둡다. 마음이 무겁다. 밀려오는 불길한 예감, 의선의 표정이 마마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가여운 분,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의선, 꼭 좀 살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온 몸이 물 먹은 솜덩이같이 무겁게 쳐져간다. 난 그렇게 지쳐가고 있었다. 마마를 돌보다 잠든 의선이 잠이 깼나 보다. "이봐요. 어젯밤에 나 잔 뒤로 좀 잤어요?", 곁에 앉는 그 분을 피해 자리를 옮기니 또 따라와 앉는다. 어쩌라고!

"여기 기대고 자요, 이제부터는 내가 지켜줄테니까 여기 기대고 눈 좀 붙이라고", 사내더러 여인의 어깨에 기대고 자라니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인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고 말았다. 꿈결인듯 그분의 중얼중얼 소리가 자장가처럼 귓가를 맴돌고,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졸린 눈커풀을 나는 끝내 이기지 못하고 말았다. 잠결에 들리는 그 분의 목소리, "피냄새". 내게 배여있는 피냄새, 그 분의 말이 마음 한 구석을 쓰라리게 쓸고 지나감에도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쉬고 싶었다. 잠시라도, 아니 그 분의 어깨가 너무 편했다.  

 

지켜준다는 그 분의 말, 너무 익숙하다. 늘 내가 했던 말,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태어났다고도 생각했던 나는 누군가의 지킴을 받고, 그 분의 어깨에 기대 곯아 떨어지고 말았다. 맥을 짚어보고 열을 재는 그 분의 손길을 느끼면서...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던 것이... 그 분이어서였을까?

10년이고 평생이고 날이 밝기를 바라지 않았던 내 바람을 뒤로 하고, 어김없이 야속하게도 날이 밝았고, 잊고 싶은,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그 날은 시작되었다. 나와 그 분의 운명을 바꿔놓았던 그날이... 

 

 

거기서는 당신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돼,

같이 가면 안돼요? 같이 가요, 하늘세상으로... 나하고 같이

 

경창군 마마의 웃는 모습,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꿈에도 모른채 우리는 잠시 아픔을 잊고 웃을 수도 있었다. "너 이름이 모니? 니가 뭔데 날 아프게 하니?" 하늘나라의 주문, 그 짧은 시간이 마마에게 긴 행복으로 기억되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궁으로 돌아오라는 주석의 말, 따를 수 없었다. 상황은 급박했고 무엇보다 병 중인 경창군 마마를 두고 갈 수는 없는 일. 역모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주상께서는 내 진심을 알아주시리라. 그것이 전하를 감히 시험했던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전하가 내리신 임무를 소인 아직 마치지 못했습니다", 말뜻을 알아주실까?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영민하신 분이시니 말뜻을 알아채시리라. 그럼에도 아직 나는 주상전하의 대답을 알지 못한다. 왜 싸우려고 하시는지... 함께 할 수 있을 분인지 나역시 전하를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 분이라면 함께 대답을 찾을 수도 있으리라,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내나라 고려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주석과 함께 온 사냥꾼 놈이 강화현령에게 우리를 이끌었다. 나는 지금도 그 일을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 참담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내 손으로 경창군 마마를 그리 보내드리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 후로도 오래동안 경창군 마마와 그 분의 눈은 나를 미치게 슬프게 만들었다.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 가슴이 으깨지는 고통이 눈물이 되어 흘렀지만, 감히 경창군 마마의 고통에 비할 수 있을까? 나를 살리고자 한 마마의 마음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강화현령이 마련한 처소에 경창군 마마를 모시고도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뒤를 보고 또 돌아본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 그 때 마마의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켜드릴 수 있었을까?

마당에 심어져 있는 약초들, 그리고 그 분의 꽃, 나는 그 때까지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꽃이 누군가의 향기가 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노란 소국이 그 분에 대한 미치도록 깊은 그리움이 될 것임 또한, 알지 못했다. 꽃향기를 맡는 그 분의 모습, 오래도록 훔쳐보고 싶었지만, 마마가 걱정되어 그 분께 더 시간을 내어드릴 수 없었다. 

꽃 한송이를 내미는 그 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한 그 분은 그렇게 늘 해맑았다. 금새 잊어버리고, 금방 화내고, 뻑하면 울고, 그러나 더 쉽게 웃는 분.

"내 선물이에요. 꽃향기가 당신 피냄새를 좀 가려줄 것 같아서요". 꺄르르 웃으며 돌아서는 그 분, 미치게 한다. 임자 그거 모르지요, 임자의 향기는 세상 어느 꽃향기보다 향기롭다는 것을. 바닥에 떨어진 노란 꽃 한 송이, 그 분인양 품었다. 그 분이 준 약통 속에 고이고이, 내 심장에 그렇게 고이고이... 

***이민호와 김희선의 아름다운 비주얼은 축복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대장모습에 드라마 내용은 아파도 눈은 호사스러웠답니다***

 

마마가 계신 곳을 지키고 있는 사병들, 불안하다. 그런데도 난 조반을 먹는다고 좋아하는 그 분을 따라가고야 말았다. 불안한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도 마마를 살피러 들어가지 못했다. 그 시각 마마를 뵈러 들어갔다면, 마마가 독을 드신 일은 없었을까? 그렇게 끔찍한 고통속에 돌아가시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 마마의 심장에 칼을 꽂지않아도 되었을까? 평생 이 괴로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하늘세상으로 같이 가자는 그 분의 말을 선택했을까? 혼란스런 생각이 어지러이 일렁인다. 

 

역모였다, 모든 것이 나를 역모로 엮으려는 기철의 수작, 그것을 알면서도 난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주석이가 전하의 답을 가져오리라는...

역모라는 말에 그 분의 표정이 굳어진다. 마마를 데리고 하늘문으로 가겠다고, 가서 마마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보내달라는 의선,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하늘문이 열려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관군의 검문을 피해 그곳까지 무사히 가리라는 보장도 없고, 일일이 대꾸해줘야 아니 정말 미치고 환장이다.  

"같이 가면 안돼요? 당신 거기선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돼, 같이 가요 하늘세상으로... 나하고 같이",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전하와 약속한 무사 최영의 언약, 그 일을 마치면...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삼켜버린 내 대답을 그 분은 알았을까...(*은수가 함께 가자고 했을때 얼음처럼 굳어있던 최영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부분은 임자팬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하늘나라에 가면 환한 불빛이 길을 잃지 않게 마마를 지켜줄 겁니다.

거기서는 왕도 되시지 마시고 아픔같은 것 없기를...

 

보초를 서던 사병들이 보이지 않는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에 퍼져온다. 마마가 무사하신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좀 주무셨습니까?", 마마의 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또 아프셨습니까?".

마마의 몸이 이상하다. 피부가 뭉개지고 있는 발진, 독이다. 온몸의 장기들을 서서히 태워 고통스럽게 죽이는 화고독. 의선을 불렀지만 방법이 없다고 한다. 치밀어 오는 화를 참을 수가 없다. 의원이라매, 근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니, 알면서도 난 그렇게 화를 참지 못하고 답답함을 내지르고 말았다. 마마의 고통을 두 눈 뜨고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것에 미칠 것만 같아서. 

"영아, 그 자가 가르쳐줬어. 어떻게 하면 널 살릴 수 있는지" 나를 살리겠다고 그 어린 마마가 독을 스스로 드셨단다. 그 어리시고 가여운 분이, 나같은 놈을 살리겠다고...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가슴이 찢어진다. 고통스러워 하는 마마를 난 그렇게 보내드렸다. 내 손으로...

"마마, 하늘나라에는 말도 없는 마차들이 저혼자 달립니다. 아주 넓은 길이 그런 마차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이 빛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가시게 되면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길을 잃지 않으실 겁니다"...'마마 그곳에서는 부디 아프지 마시기를... 임금으로 태어나지도 말고, 의선님같은 엄마 아들로 태어나시기를...'. 

소나기처럼 뜨거운 눈물이 흘러 얼음장보다 차가운 슬픔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가슴에는 수만개의 송곳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 손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임자팬 눈에는 눈물이 줄줄, 가슴이 꽉 매여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창군을 안고 눈을 질끈 감아 진한 고통을 표현하는 장면은, 오열보다 더한 슬픔을 전합니다. 남자가 그렇게 무겁게 슬픔을 찍어내리는 것, 고통의 무게를 여백으로 남겨둘 줄 아는 이민호의 연기는 진짜 갑!*** 

 

'임자, 그날 임자의 차가운 말은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했습니다. "당신이 죽였어? 손대지마, 그 더러운 손 치워", 그리고 임자가 나를 보는 그 서늘한 눈... 설명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더 큰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으니까요'. "내가 하란대로 하라고! 내 옆에 있으라고!! 그래야 지켜줄 수 있다고 대체 몇번을 말해야 기억하겠습니까!!!" 

뒷걸음치며 달려가는 그분을 쫓았지만, 한 발 늦었다. 떨어지는 그 분을 받아드는 기철, 마마에게 독을 준 그 자 기철, 정녕 죽여야 할 놈이다. 내가 싸워야 하는 적, 전하가 왜 싸워야 하는지 나 역시 답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 놈 품에서 내리려고 바둥거리다 곁에 멍하니 서있는 의선, 내 눈은 그 분의 눈에 고정되고 있었다. 해야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이, 울컥울컥 솟구쳤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 분이 내 눈을 피한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내 가슴처럼 텅빈 하늘만 올려봐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그 분이 울고 있다는 것을... 나때문에 울고 있었음을 그 때 난 알지 못했다. 허허로운 바람만이 쏴아 하고 밀려들고 있었을 뿐.   

 

***개인적으로 7, 8회는 좋아하는 회차입니다. 요때부터 최영 이민호의 마력에 완전 홀딱 빠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은수의 김희선도 감정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하기도 했고요. 최영의 각성과 최영에 대한 은수의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고요.

화보처럼 아름다웠던 은수와의 노란 소국 에피소드, 부드러운 아빠미소, 두 눈을 질끈감으며 눈물 한 줄기를 흘리고는 경창군을 끌어안으며, 감정절제로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던 씬, 본방때도 그랬지만 다시봐도 눈이 퉁퉁 불어터지게 줄줄 눈물이 나서 한동안 감정 추스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더 진하게 아파오는 이유는 뭘까요?*** 

***가끔은 아픔을 더 절절하게 느끼고 싶을 때가 있지요. 경창군 마마를 보내는 영, 기철 앞에 무릎꿇고 은수에게 시선을 고정하다 은수가 고개를 돌리자 허허로운 웃음을 짓는 영, 방문 앞에서 은수의 그림자를 만져보고 긴 한 숨을 짓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회 은수를 기다리는 천혈 근처 나무아래에서의 영을 보며 저 혼자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故김현식님의 '내사랑 내곁에' 라는 노래에요.

숙제 내드립니다. 노래를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노래 꼭 찾아 들어보시고, 가삿말과 멜로디를 음미하시면서 영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가는데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줄 모르고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그리도 낯설고 멀기만한 지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곁에 있어줘
이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곁에 있어줘 

이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숙제는 댓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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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6 09:48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습니다. 임자의 칼에 맞고 정신을 잃어가면서 임자의 목소리를 잠깐 들은 것도 같습니다. 장어의의 음성도 들렸고, 그리고 나는 긴 잠에 빠졌습니다.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이 사람 죽는다"는 말이 아득히 멀어지는 듯하다가,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잠들기 전 잠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분은 나를 살릴 것이다', 그리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나 좀 그냥 죽게 내버려 두면 안됩니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요. 그 분에게 내 몸을 맡기고 누워있는 동안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지요. 단잠에 빠진 듯 나는 그렇게 편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하늘의원 그 분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유홍준 교수가 말했지요. "아는 것 만큼 보인다", 본방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다시 보니 더 많이 보이고,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도 생깁니다. 당시 강릉대군이었던 공민왕을 찾던 내관이 내자가 술상을 차려주면 그 뒤에 옹냐옹냐 잠자리에 든다는 바로 그 도치아저씨라는 것도 눈에 들어오고, 보면 볼 수록 많은 것들이 더 세세하게 보이는 신의입니다. 이곳이 이민호 최영앓이 환자들 입원실(ㅎㅎ)이니 사심 가득 넣어도 괜찮겠죠?ㅎ

이민호 연기가 참 대단했다는 생각을 첫회부터 다시보니 더 잘 보이더라고요. 은수를 훔쳐보며 살며시 미소짓는 남자의 마음, 은수와 새로받은 임무에 짜증내고 화냈던 이유, 우달치 숙소에서 왜 화를 내며 잠을 자려했었는지 등등...

그리고 이때부터 시작된 은수의 뒤를 쫒는 최영의 눈, 빠져나오기 힘든 그 눈빛의 의미는 '시작'이었습니다. 그 분에게 향하는 연모.... 

 

'살아났다, 빌어먹을... 또 골치 아파지겠군'

 

눈을 뜨니 그 분은 피곤한 듯 구석에 잠들어있었다. 배에 통증이 몰려온다. 내 배를 어떻게 한 건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뼘도 안되는 작은 칼로 내 배를 가르고 꿰매고 했겠지. 그리고 그 분은 하늘세상에서도 왕비마마를 수술할 때처럼 그렇게 침착하고 진중했으리라.

하늘의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그 분이 위험하다는 말과 같음이리라. 놈들은 그 분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또 있을지도 모를 놈들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 난 본능적으로 검을 찾아 들었다.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들었지만, 몸이 비틀거려 소리를 내고 말았다, 젠장.

소리에 그 분이 깨어나 작은 칼을 들고 방어태세를 취한다. 엉거주춤한 자세, 검술의 기본기가 전혀없는 분이다. "찔러놓고 밤새 치료해 주시고 또 찌르실라고? 그리고 또 치료해 주고?",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지, 왜 살려냈느냐고 화를 내야 할 지 정리가 되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 미안해진다. 고맙다는 말을 먼저 했어야 했을까? 그 분은 내가 왜 죽고 싶어하는지 알지못하는 분이시니... 

그래도 죽음으로 어명을 지켰으니 이 정도했으면 우달치의 임무는 한 거겠지. '난 이제부터 자유야!!!'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애써 참고 서있었다. 수술한 자리가 당겨오고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너무 아팠다. 그런데 이건 또 뭔소리! 왕이 안떠났단다. 빌어먹을... 끝까지 편하게 냅두지 않는군. 서둘러 의장을 갖추고 왕을 만나러 가야했다. 객잔은 다시 습격받을 것이고, 이젠 하늘의원이 위험하다.

따라가지 않겠다고 버팅기는 하늘의원, 하늘문이 있는 동네를 떠날 수 없다며 떠나기를 거부한다. "이 몸으론 싸울 수가 없어요. 임자를 골라 잡은 것은 임자가 누군지 저들이 알았다는 거야, 도망가는게 상책이야", 방구나오기 전까지는 금식이라는데 기운도 없는데 어떻게 싸우냐고 이 답답한 분아! 그래도 안간다고 바득바득 대든다. "그냥 '네'하는 법이 없구만... 임자 돌려보내겠다는 약속 지키려면 우선 임자가 살아있어야 되잖아. 그 때까지는 내가 지켜준다고! 그러니까 그냥 내 옆에 딱 붙어 계시라고!!".

 

그랬다. 하늘의원을 돌려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분을 지켜드려야 했다. 나 고려무사 최영의 언약은 아직 끊나지 않은 내 목숨과 함께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끝나지 않은 마지막 임무, "하늘아래 믿는 자는 그대 최영뿐이오"

... '그러든가 말든가, 혼자 믿으십시오'

 

돌아온 황궁, 을씨년스럽기만 한 황궁은 궁을 지키는 금군 몇을 빼고는 텅비어 있다.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이는 텅빈 편전, 중신들이라는 자들의 그림자조차 모두 거두어 가버린 궁궐이 새 왕을 맞이하고 있었다. 황망스러워 왕의 얼굴을 힐끗보니 그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상한 자존심을 애써 감추고 있었지만, 그도 나처럼 휘청이고 있었다. 나는 온몸으로 퍼져오는 고열과 통증으로, 그는 허울뿐인 옥좌의 무력함으로...

 

오자마자 골치아픈 일이 생겼다. 새 왕을 보필할 충신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누구와 왜 싸워야 하는지 이유를 알아오라는 것이 현왕의 명이시란다. 선왕 경창군 마마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면, 궁을 떠나 평민으로 살게 허락한다는 허가서를 무시하고, 현왕으로서 내게 내린 임무란다. 속으로는 들이 받아버리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정치라는 것 관심은 없지만, 새 왕이 알아서 잘해주겠지. 못하면 그만이고, 어차피 십수년을 그래왔지 않은가, 원의 황실과 부원배 무리들이 잘 말아잡수실 것이다만,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직은 고려무사 최영 우달치 대장의 일은 그렇게 끝이 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하늘의원, 왜 날 살렸냐고!!!'

새 왕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최영 그대뿐이라는 말이 급체한 것처럼 가슴에 얹혀왔다. '전하, 무사는 죽음으로 믿음을 증명해 보입니다. 전하는 무엇으로 전하의 믿음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하늘의원을 돌려보내도 된다는 말씀을 어기신 것은 전하가 아니었습니까? 그런 전하를, 무사의 언약을 지키지 못하게 한 그런 전하를 제가 믿어야 합니까?', 꾹꾹 눌러버린 내 대답이었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수술 후의 최영의 상태였습니다. 달려드는 은수의 칼을 피하지 않고, 은수의 손에 힘을 실어 더 깊숙이 자신의 복부에 칼을 찔러넣었던 최영이 왜 은수에게 그냥 내버려두고 가라고 했는지, 3회를 보면서 이해되기도 했답니다. 

 

최영에게는 사는 것이 귀찮았습니다. 살 이유도 명분도 찾지못했던 최영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성장통을 겪고 있었지요. 그저 힘들 것이라는 생각만 했지, 그가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을 참고 있었다는 것은 눈여겨 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의 상태를 물어보지 않은 것이 괘씸스러울 정도였더라고요. 충석이 괜찮으시냐고 물어봐주고, 대만이 대장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봐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더군요.

조일신 나쁜 놈은 최영을 죽일 작정으로 간신히 출혈을 막아주고 있었던 칼을 빼버리고 죽음 직전에 이르게 했으면서도 궁으로 돌아가기를 채근하고, 궁으로 돌아와서는 군사를 이끌고 기철의 집으로 출병하라는 오지랖이 태평양인 주제넘는 명까지 내리고 말이죠. 공민왕도 최영의 몸상태에 대해서는 관심밖이었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최영,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혼자 참으면서 내색조차 하지 않는, 그 아이(매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고통이, 사는 내내 최영을 그렇게 살아가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달치와 은수, 공민왕 앞에서 얼마나 힘겹게 버티고 서있었는지, 식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비틀거리려는 몸을 정신력으로 이겨 버티고 서있던 최영, 핏기 가신 하얀 입술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죠.

최상궁이 얼굴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고 했을 때, 은수도 최영의 안색을 보고 패열증의 후유증이 오고 있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을 뿐이었지요. 대전을 나와서야 온몸의 기운이 떨어져 풀썩 주저앉아 몸의 내공을 끌어올리는 최영, 그 고독한 어깨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우달치 병영으로 온 은수가 열을 재보려고 손을 잡으려 했을때 최영은 부드럽게 그 손을 치워버렸죠. 전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운이 떨어지고 있어서 은수의 손을 거칠게 밀치도 못하고, 미풍처럼 부드럽고 힘없이 은수의 손을 치우는 모습...

 

"죽지마요", 그 분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성큼성큼 내 심장에 들어 온 그 분, 내 눈은 나도 모르게 임자를 향합니다 

 

궁으로 돌아와 좋은 것은 그 분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들켜서는 안되는 내 몸상태를 확인하겠다고 손을 덥썩 잡지를 않나, 허연 다리를 아무데서나 드러내고 쏘다니지를 않나, 좀 무대뽀 저돌적인 그 분의 성정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 분 눈을 마주하면 잠깐씩 온몸이 굳어지는 증상이 시작되었다. 우달치 애들이 그 분의 드러난 다리를 쳐다보는데 속에서 불이 치밀어 올랐다. 확 눈깔을 다, 여튼...다른 사내가 그 분을 쳐다보는 것이 싫다. 쳐다보기만 해도 닳아질 것같아서 보는 것도 아깝고 또 아깝다.

***그 분은요, 참 귀여운 분이십니다. 쉴새없이 떠들기를 좋아하고 밥을 굶기면 화를 냅니다. 하긴 살려면 밥을 먹어야 겠지만, 이슬만 먹고 사는 것 같았던 그 분이 배고픔을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뒷간도 가야한다고 합니다. 하늘나라 사람들도 우리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나봅니다***

 

내 발길은 나도 모르게 전의시로 향하고 있었다. 그 분은 중얼중얼 꼴이 말이 아니라고 불만이 한가득이다. 그러고보니 여인들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구나... 왜 하필 저 분이었을까? 남자의원이었다면 편했을텐데... 밥을 안준다고 투정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곡괭이를 들고 또 어정쩡한 경계태세다.

 

 

'아무튼 못말리는 분이다. 임자,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몸을 낮추고 움직임을 최대한으로 작게, 그리고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지... 가르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거봐 다치잖아, 덜렁거리더니.. 그리고 잠시 심장이 내려앉는 듯, 나는 숨소리도 내지못하고 고개를 돌려야 했다. 드러난 허연 다리... 임자, 미안합니다, 일부러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구없어요?" 하마터면 튀어나갈 뻔했다, 여기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떡을 먹고 켁켁거리는 그 분을 더기에게 지켜달라고 부탁을 하고 발길을 돌렸다. 또 내 상태를 보자고 덤빌 것이 분명하니까....  

***요때 더기에게 미소를 지으며 저 분 좀 지켜줘야 겠다고 말하는 장면, 그 목소리가 어찌나 부드럽든지, 더기가 최영을 좋아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스럽기 까지 했더랍니다***

 

아프다, 정말로 많이 아프다.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불에 타는 듯 통증이 몰려오고 있었다. 병영이 소란스러워 보니 그 분이 양다리를 드러내고 우달치 숙소까지 찾아와 내 몸상태를 보자고 막무가내다. 어떻게든 모르게 해야 한다. 전의시로 모셔드리라고 돌아서는데 그 분 못말리는 성질이 다시 나온다.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 니가 잡아왔잖아! 나 내집에서 샤워하고 내 잠옷입고 내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그런데 니가 잡아왔잖아! 밥도 제대로 안줄 거면서. 아무리 자고 깨도 꿈도 아니고, 그럼 내가 진짜 사람 찌른 건데 치료해 주겠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당신 찔렀어, 미안하니까 제발 치료 좀 받으라고!!". 

죽었다 깨나도 임자는 날 찌르지 못한다는 말을 씹어 버렸는지 자책하는 하늘의원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그렇잖아도 궁에 돌아와 일이 꼬이고 있는데, 미치고 폴짝 뛰겠다. 그리고 오래도록 난 그날 그 분에게 화를 냈던 것을 자책했다. "도대체 나를 왜 살리겠다고 나댄 겁니까? 임자때문에 지금 내가 또 무슨...", 하지않아도 될 말이라 그쯤해서 멈췄지만, 정치에,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귀찮았고, 궁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미치게 싫었다. 그만 쉬고 싶었으니까... 죽을 수도 있다는 말, 죽음이 두려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그들에게 내 상태가 알려지면 골치아파지니까... 

새 왕이 내린 임무를 마치면 하늘의원을 천혈로 근처로 데리고 가서 보내드리고, 조용히 살고 싶었다. 아니 죽고 싶었는지도...

졸지에 잡혀버린 손, 들켰다. 가방에서 작은 통을 찾아 내미는 그 분, "내 비상 아스피린줄게요. 해열 진통 소염작용이 있으니 하루 두 알씩 세번 먹으세요" 나지막히 그분이 중얼거렸다. "죽지..마요", "뭐요?", "죽지 말라고...당신이 싸이코 또라이라는 건 알겠지만, 나 혼자 놔두고 죽어버리면 나 혼자 어떡해", 순간 멍해있던 내게 약통을 쥐어주고는 가버렸다.

울먹이는 목소리,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는 그 분. 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슴에 가시가 박힌 듯 아파왔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분의 눈물이 검에 베이는 것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할 거라는 것을... 마룻바닥이 내 머리를 향해 달려오고, 그 분은 그렇게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요? 은수가 나직하고 "죽지마요"라며 울먹이는데, 두 번 보면서 은수의 그 말이 최영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한마디였음을 깨닫기도 했답니다.

 

"죽지마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 분의 눈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이었다. 내게 죽지말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은... 무사는 검에 목숨을 맡긴다. 무사에게 죽지말라라니... 내가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 그것이 무사의 세계, 전쟁터였다.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한 번도 삶이란 것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살기 위해 검을 든 것이 아니라, 베기 위해 들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서서히 알아가고 있었다. 이 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검이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한 때가... 그 분을 지키지 못할까봐 내 속에서 두려움이 또다시 자라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나는 새로운 적과 싸워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 내 안에서 살기 시작한 그 분과 싸워야 했고, 그 분을 향해 바람보다 빠르게 눈이 가고, 천둥보다 크게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고, 심장이 불에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과 오랜 시간 싸워야 했다. 그 분을 향해 달려가는 내 마음과 내 욕심과...

 

보내고 싶지않은 마음,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욕심이라는 것이 내 안에서 자라가고 있었다. 대만이의 발보다 빠르게, 하늘나라에서 본 쇠마차들보다 더 빠르게 그 분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임자, 그거 아십니까? 그 때부터 쭉 내 눈은 임자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임자는 나를 웃게 만든 따스한 햇살과도 같았다는 것을...' 

 

***고백: 대장, 저는 한 대 맞아야 겠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퍽!

어제 글을 올린다고 약속을 했는데 '보고싶다'를 올리고 나서 잠시 쉬자고 누웠는데, 그만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일어나니 아침이더랍니다. 그동안 여러가지로 몸이 분주했는데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나 봅니다. 어제 임자팬들 헛걸음하시게 해서 죄송.

***너무 소중한 댓글들, 이곳 신의방은 임자들 방이니 마음놓고 마음 속 말 다 하셔도 됩니다. 이민호 최영을 보내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분들, 이곳에서 실컷 풀어놓고 가세요^^ 입원실은 넉넉하니 마련되어 있습니다. 영스피린도 무한정 무료 공급됩니다. 

***최영의 마음이 드러나면 글도 더 쫄깃쫄깃 아련아련 달짝지근할 겁니다. 심장박동수 체크해 두시기 바랍니다.

----이상, 신의 종합병원 임자병동 관리실에서 알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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