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그 후의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11.20 '신의 6회(재)' 왜 하필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181)
  2. 2012.11.18 '신의 5회(재)' 제 뒤에 계신 분, 제가 연모하는 분입니다 (120)
  3. 2012.11.18 '신의 4회(재)' 그 아이,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121)
2012.11.20 12:30




행복과 비극은 같이 붙어다니는 실과 바늘인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는 처음 행복이라는 것을 느껴 보았고, 동시에 평생 지울 수 없는 비극과 마주해야 했다. 내 손으로 어리신 경창군 마마를 보내드려야 했다. 그 분 눈 앞에서... 그리고 비극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분이 떠난 그 날까지... 처음으로 품어본 욕심, 심장이 터질 듯한 행복과 함께...

 

"제가 개인적으로... 저 뒤에 계신 분을 연모하기 때문에 왔다는 말입니다", 덕성부원군 기철은 뭐가 그렇게도 우스운지 숨이 꼴깍 넘어가게 웃어보였다. 만만치 않은 상대다. 쉽게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호기를 부려봤다. 죽기로 작정하고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내공도 제대로 모을 수 없고, 기철에게서 나오는 음산한 냉기는 내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하늘의원을 끌고 온 연유, 덕성부원군 드디어 속내를 밝힌다. 강화에 유배되어 있는 선왕마마의 병을 치료하라는 요구를 내건다. 하늘의원과 나, 그리고 전하까지 엮으려 함을 모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기철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그 분을 그곳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선왕마마를 보고 싶은 마음 또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폐위되고, 나를 유독 따르던 분, 가여운 선왕마마를 난 지켜드리지 못했다. 나의 의지와 선택과는 무관한 일이 고려왕이라는 자리였기에...

힘없는 나라, 욕지거리가 나는 그런 세상이었다. 

따라주는 술을 아무 의심없이 마시려는 분, 정말 대책없는 분이시다. 다행히 독은 없는 듯했다. 그 분은 그런 나를 힐책했지만, 의선이 고쳐줄 것이라는 말로 기철에게 그 분이 의선임을 강조했다.

성질 사나운 분, 기원의 욕지거리에 "지랄들을 하셔요" 거침없는 대꾸로 맞받아친다. 피식,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아무튼 못말리는 분이다. 그리고 무지 쎄다. 독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도 끄떡없는 그 분, 뒤에 알았지만 그 분은 술을 좋아했다. 그 분도 잊고 싶은 것이 많은 걸까? 내가 잠에 취해 살았듯, 그 분은 술에 취해 힘든 것을 잊고 싶었을까?  

 

왜 하필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강화로 가는 길, 그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 건 내 욕심이겠지. 그냥 넘기는 법이 없는 분, 혹이나 마음에 짐이 될까 덕성부원군 집에서 연모한다고 했던 말은 사정이 있어서 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역시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못들은 걸로 해주겠다면서도, 이미 들었다고 가슴팍을 한 대 치고는 저만치 달려가 버린다. 장난을 좋아하는 분, 그 순간 난 세상이 정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가슴만 쿵쾅쿵쾅, 내 심장에서 내는 천둥소리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세상은 정지되고 내 가슴은 쿵쾅거리는데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정말 미치겠다.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몰라 애궂은 대만이를 잡는다.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하늘의원 중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어쩌다가, 왜!!!".

대만이가 알 턱이 있나, 순진한 대만이 녀석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모른단다. '니가 알리가 있겠느냐...'. 길게 나오는 한숨, '임자, 왜 하필 임자였습니까?'.

(*이때 최영의 말을 유심히 들어야 할게 여인이라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그 분, 하늘의원, 의선이라는 말이 아닌 여인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은 것은, 최영이 은수를 여인으로 마음에 품었다는 것을 말하겠죠?). 

그리고 이 장면 전에 은수가 얼결에 최영의 팔을 잡았을  때, 반사적으로 은수의 팔을 꺾어 "검을 가진 자의 뒤에 다가서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장면은 심장은 벌렁거리더이다ㅎ. 뭘해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최영의 눈빛, 표정, 숨소리, 침 삼키는 모습까지, 하나도 놓치지 못하게 하는 이민호는 마성의 남자(내남자하자고 하면 임자팬들 거품물겠죠;;)

 

대만이를 그 분의 수술도구를 가져오라고 보내고, 우린 강화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만두로 요기를 시키고(그 분은 밥을 굶기면 잔소리가 심해지는 분이다), 나는 따라붙는 그림자가 있는지 살펴야 했다. 역시나 그냥 '네' 하는 법이 없다. 왜? 어딜? 꼬치꼬치 말끝마다 질문이다. 허겁지겁 만두를 싸서 나와 혼자 하늘문으로 가겠다고 길을 알려달라고 한다. 겁이 났으리라. 선왕마마를 고치지 못하면 삼문에 목을 댕강 잘라 걸겠다고 했으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나 연모한대매", 가슴이 서늘하게 아파온다. 연모하는 이를 어느 사내가 쉽게 보낼 수 있었을까? 다시는 만나지 못할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 같은 하늘,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살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쉽게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보고 싶으면 혼자라도 볼 수 있을테니...  

처음 말을 타보는 그 분은 겁이 나 한참을 말앞에서 심호흡만 내쉬었다. 성질이 뻗쳐온다. 강화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말에 앉혀주니 의외로 말타기를 쉽게 배운다. "말을 믿고 고삐를 말에게 맡겨봐요". 뭐든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 묻는게 많고, 금방 배우고, 금방 잊어버리고, 울다가도 금방 웃어버리고, 알 수 없는 분...

함께 말을 타고 가는 그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 끝까지 가고 싶었다. 그 분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가 이내 내 마음에 가득 들어찬다. 어린아이와 같은 웃음소리, 처음이다. 그 분을 모셔온 후 그토록 환하고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웃게 하고 싶다. 돌아가는 날까지 좋은 기억만 채워주고 싶다. 그리고 난 싸우고 있었다. 그대로 그 분과 세상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욕심과... 

***이장면에서 은수가 말타기를 무서워하자 최영이 그러지요. 나를 믿으라고, 떨어지면 받아주겠다고... 이때 은수가 말에서 미끈해서 이민호가 멋지게 한 손으로 은수를 척 낚아채서 자기 말에 태우는 모습을, 혼자서만 상상하며 흐뭇해 했답니다. 근데 이런 장면없이 가서 쪼매 야박한 제작진이었습니다.

 

"내 이름은 은수에요, 유은수"

***담요를 던져주고는 검집으로 최영 근처 한 장소를 콕 집어 잠자리를 정해주는 최영, 야밤에 단둘이 남사시럽게 딱붙어서 자라는 거냐는 말에, 시크하게 "멀리있으면 지키기가 힘이 듭니다", 은수가 고분고분 최영이 지정해 준 곳에 담요를 깔고 눕지요.

그런데 최영의 아픈 곳을 쿡쿡 찌르는 은수, "지키는 거 좋아해요? 직업병인가? 임금님도 지켜야 되고, 약속도 지켜야 되고, 나도 지켜야 하고...", 최영은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픈데, 그래서 은수의 말에 착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 최영이었지요*** 

"내 이름 알아요? 은수에요, 유은수", 그러고 보니 난 그 분의 이름도 알고 있지 못했다. 유. 은. 수... 그 분의 이름을 나직히 불러본다. 가슴에 새기듯 한 자 한 자, 유. 은. 수...

"결혼은 했어요?", 이어지는 그 분의 말이 가슴을 쿡쿡 찔러온다. "사람이나 베는 살인마를 누가 좋아하겠어", 그 분께 사람베는 모습만 보였구나(*개인적으로 이때 살인마라는 단어는 무지무지 싫었습니다, 살... 하다가 아차하는 모습으로 삼켜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했더랍니다*). 

"나도 혼인 안했어요. 화려한 싱글로 서울에서 살다가 그쪽에게 납치돼 왔어요.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장하시고, 지금쯤 외동딸래미 없어졌다고 우리엄마 앓아 누우셨겠다". 그 분에게도 소중한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 때야 생각했다.

그 분이 더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근처에 박쥐(화수인)가 있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하다. 그 분에 대한 말들이 부원군 기철에게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 입좀 다물고 자요". 

 

그 날 밤, 별 하나가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이 약속도 지켜줘요. 먼저 임금님 치료끝나고 하늘문에 나 데려다 줘요". 굿나잇! 잘자라는 하늘말 인사를 하며 돌아눕더니 이내 잠이 든다. 피곤한 하루, 그 분이 마음 편히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난 그 밤이 행복했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이 도려내지는 듯 찌릿찌릿 아파왔다. '돌려보내줘요, 데려다줘요' 그 분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메아리가 되어 가슴 한 복판을 쓸고 있었다.  

아무말도 못했다. 돌려 보내주겠다는 말, 내 마음은 돌아눕는 그분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안가면 안됩니까? 여기, 내 곁에 남으면 안됩니까?',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을 나는 그렇게 몇번이고 되뇌이고 있었다. 그 분이 준 아스피린을 씹으며...

*** 본방에서는 놓쳤는데 다시 보니 은수가 하늘문으로 데려다 달라는 약속 지켜달라는 말에 이민호의 표정에 슬픔 비슷한 침묵이 있더군요. 화수인이 은수의 곁으로 다가가자 나뭇가지를 던져 접근금지시키는 모습, 동작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리도 폼이 나는지 하악하악*** 

'그 날밤, 나는 감히 행복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귀찮은 박쥐(화수인)를 돌려보내고, 그 여자의 말을 곱씹어보면서... 그대는 정인이라 부르는데 저 여인은 그대를 살인자라 부르네, 그런데 저렇게 마음 편히 딱붙어 자는 건 뭐지?...

그 분, 나를 믿고 있는 것일까... 돌려 보내주겠다는 말, 지켜주겠다는 말, 아니 나를 믿고 있음일까...

곤히 잠든 그 분을 깨우고 싶었습니다. 더 말해달라고, 임자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임자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밤새 이야기해 달라고 깨우고 싶었습니다. 임자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버리는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유.은.수, 유.은.수...나는 그 밤 내내 임자의 이름만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 하나가 내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왜 하필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돌려 보내달라는 그 분의 말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소리에 실려온다. 삼켜버린 내 마음, 내 욕심을 쫓아내기 위해, 나는 그 날 밤 모닥불만 하염없이 휘젓고 있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고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 밤 알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새롭게 발견한 최영의 감정선이었습니다. 자는 은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은수를 돌려보내기 싫은 마음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고요해서 더 깊이가 느껴지는 이민호의 표정연기, 그러니 더더욱 빠져나오기가 힘드네요ㅠㅠ 대장은 알랑가? 우리 임자들 마음을***

 

***글 찾기 힘들다는 분들이 많아 발행글로 올리니 추천은 신경쓰시지 마시고, 마음 내키는대로 사뿐이 즈려밟고 가세요.

***경창군과의 해후, 그리고 벌어지는 사건은 다음회와 연결되는 내용이라 7회 리뷰에서 함께 정리할게요.

***신의 병동에서 알립니다. 마음 헛헛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멈칫하는 증세를 겪는 분들, 영스피린 두 알을 오독오독 씹어드시기 바랍니다. 꼭 소리가 나게 오독오독 씹어드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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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8 14:27




결국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안간힘을 다해 버티려고 했지만, 시야가 흐려지고 온몸에서 진액이 다 빠져나가 버린 마른짚단처럼... 

죽음의 문턱, 나는 온몸으로 그곳을 향해 질주했다. 그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내나라 고려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달라는 새 왕의 간청도, 왕비마마의 살라는 명도, 눈물이 그렁해서 죽지말라던 그 분도, 돌려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지켜주겠다는 언약도, 이대로 눈 감으면 모든 것이 끝, 나는 그렇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싸우고 있었다. 

꽁꽁 얼어 죽어버린 심장이 소리를 낸다. 희미하게 그 분의 소리가 얼어 버린 내 심장을 깨운다. "나 지켜준대매". 멈춰있던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살아났고, 내 심장과 함께 겨울 속에 살고 있던 내 마음도 그렇게 살아나고 있었다. 얼어버린 봄이 녹고, 나는 그렇게 봄을 맞았다. 내 심장이 돼버린 그분과 함께... 

 

"지금 쓰러져 버리면 내 마지막 기회가 날아가 버린다구!"

 

시야가 흐려지고 기운이 빠져나가는 일이 하루에도 몇번씩,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 분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지기도 하고, 기둥에 몸을 기대 우달치 애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잠시 혼절을 했다가 깨나기도 했다.

의식을 놓을 때마다 아버지는 얼음호수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돌려보내기 위함이었음을, 한참 후에야 나는 알았다.

아버지는 물으신다. "찾았느냐?", 아직 찾지 못하였다는 나를 아버지는 그렇게 돌려 보낸다. 가서 더 찾아보라고... 찾을 때까지 오지 말라고... 그래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곳에 있다가 온다. 그렇게 나는 산다는 것이 싫고 귀찮고,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음호수 낚시터는 최영의 내재적인 의식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고자 하는 마음, 세상을 향한 미련을 버리고 마음의 빗장을 걸어버린 최영의 의식*** 

기철 그 자는 강했다. 그 자를 본 순간 직감했다. '힘들겠다'. 그러나 쓰러질 수 없었다. 아니 쓰러져서는 안됐다. 기철 그 자를 막지 못하면, 내 마지막 기회가 날아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최영의 마지막 기회는 처음에는 살아야 하는 이유, 명분을 찾았느냐는 아버지의 질문과 연관지어 생각했었는데, 은수를 지켜준다는 약속, 돌려보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나 재해석이 되더라고요. 임자팬의 의견은 어떠한지요? 매희를 지키지 못했던 최영이 은수를 지난 번에 돌려보낼 기회를 놓친 것을 자책하는 중의적인 의미가 아니었나 싶어서 말이죠)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하늘의원에 대한 소문이 궁내는 물론 저자에 쫙 퍼졌다. 입단속 제대로 하지 못한 주석이를 늘씬하게 패줬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한시가 급하다. 그 분을 하늘문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욱씬욱씬 복부의 통증이 느껴지지만, 이를 악물고 전의시를 항했다.

애들 몇을 붙여줄테니 먼저 떠나라고 짐을 꾸리라하니, 그럼그렇지 한 번에 '네'하는 법이 없는 분이다. 조잘조잘 정말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시끄러운 분, 임금님 빽이 있다고 도자기를 자랑하는 철딱서니 없는 분, 마음은 급해 미치겠는데 천하태평이다. '임자, 임자가 지금 위험하다고!!'.  

의선이라는 직함으로 전의시의 보호를 받게 하라는 어명이 떨어졌다는 말에 온몸에 힘이 빠진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그 분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보이고 싶지않았는데... 아니 이렇게 쓰러져서는 안되는데, 쓰러져도 그 분을 보내드린 후의 일이어야 했는데, 그러나 내 몸은 내 마음을 읽지 못하였다.

 

장어의에게 물으니 일각을 혼절했다고 한다.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겼다는데, 누워있을 시간이 내겐 없었다. 그 분이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놈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화공을 쓰는 여인이 전의시까지 침입했다.

전의시에 침입자가 있었다는 소리에 의선의 안위가 걱정된 임금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밀지의 함정을 전하께 보고하니 고민이 짙어지는 모양이다. 기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힘없는 왕의 심중이 읽혀져 마음이 무거워 온다. 알아서 판단하시라 최대한 시큰둥하게 대답을 마쳤다. '나 좀 놓아달라고요!'.  

임금은 내 시큰둥한 기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의선을 붙잡으라 명한 것이 전하였으니까... 그런 내게 임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온다. 궁을 나가려는 이유에 대해...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했고 그 한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는 말이 고맙지가 않다.

그게 그 분에 대한 마음의 시작이었음을, 언제나 전하보다 그 분이 먼저였던 마음때문이었음을 한참후에야 알았지만, 그 때는 고려무사의 언약의 값, 내 목숨값의 자존심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적월대 스승님의 죽음, 성왕의 패악에 대해 남 이야기 하듯 그렇게 담담하게 들려드렸다. 전하의 민망하고 미안해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여리신 분, 염치가 있는 분, 그간 봐 온 임금들 중에는 가장 영민한 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내린 명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분이었다. '왜 싸워야 하는지...' 그 답을 가져오란다. 떠나기 힘들겠다.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분께 빚이 있습니다

 

임무를 마치면 미련없이 궁을 나서겠다고, 천혈이 다시 열리기 까지 낚시나 하며 지내겠노라는 대답을 하며, 흥분하고 있는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언제 열릴지 모를 천혈, 그 분을 그 때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때문이었을까? 마음으로만 품어본 내 욕심이 그 분을 위험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 빚은 그렇게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 분을 품은 마음과 함께.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했다. 그 분에게 진 빚은 목숨으로 갚을 수 없었다.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 빚이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평생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다. 왕이 가고 난 후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 몸은 죽음을 향해 미친듯 달려가고 있었다. 꿈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매희, 그 아이가 보였다. 너로구나, 정말 너로구나... 겨우 갓 스물이 넘은 나이, 우리는 행복했다. 매 순간 죽음과 마주해야 했던 밤의 부대, 우리의 밤은 피로 칼을 물들였지만, 너와 나의 낮은 그리도 밝고 행복했다. 함께 있음에 든든했고, 두렵지 않았고, 사는 이유였던 너. 

'함께 있자', 그러나 그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사라져 간다. 흔적도 없이, 행복한 미소만 남긴채... 그 아이를 따라가려는 나를 붙드는 소리, 나를 깨우는 목소리, 그분의 울먹이는 소리가 아득하게 먼곳에서 들려왔다. 점점 커진다. "나 지켜준대매, 옆에 딱 붙어있으라매...".

그 아이가 나를 놓았다는 것을, 그 아이를 이제서야 놓아주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긴 겨울이 끝났음 또한...  

 

"제가 연모하는 분입니다"

 

왕의 의중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이다. 검을 들고 적월대가 되고, 우달치가 되어서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던 어명을 거역하고, 그분을 향해 달려갔다. 나를 살게 한 사람, 내가 지켜줘야 하는 그 분을 향해...

 

"최씨집안의 영이 덕성부원군을 뵈러왔다", 우달치 대장, 귀찮기만 했던 족쇄를 던져버렸다. 내 눈은 그 분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기철 일당과 싸우는 이민호의 액션은 오매 멋져부러 자체였습니다. 우월한 기럭지, 민첩한 몸놀림, 고요하지만 매와 같은 눈빛, 이민호의 액션연기는 두말하면 입아프게 멋집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대만이 신호를 보내왔다, 찾았다는 신호다. 문 앞, 왜 그랬을까? 처음으로 내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여주기 싫었다. 그 분이 걱정하는 것이 싫다. (천음자의 음공에 입과 귀에서 피가 난 최영, 입술의 피를 쓰윽 닦는 이민호의 모습은, 좀 거시기한 말로 진짜 섹시터져~였답니다. 피를 닦는 모습도 화보라고나 할까...에고고 부끄부끄ㅎ)  

임자다. 재빠르게 그 분의 모습을 살폈다. 아무일 없는 듯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임자, 임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이 얼마나 길었는지 아십니까? 내 평생 이렇게 긴 시간은 없었을 겁니다'.

순간 멈칫했다. 그 분을 보고 하마터면 와락 안을 뻔했다. 날 보자 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열이 내렸다고... '임자, 그거 아십니까? 그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뜨겁게 뛰고 있었는지'.  

덕성부원군 기철, 막아서는 그자에게 난, 난, 내 마음을 말해버렸다. "개인적이라는 말뜻 모르십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제 뒤에 계신 분을 연모하기 때문에 왔단 말입니다. 연모하는 여인이 한밤중에 끌려가 낯선 곳에 갇혀있다 하는데 그 어떤 사내가 손놓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달려왔습니다".  

'임자, 그것 아십니까? 연모한다는 그 말, 내 진심이었다는 것... 임자를 감히 마음에 품습니다. 홀로... 그래서 힘이 듭니다'.

그분을 보내주겠다는 약속, 지켜주겠다는 언약과 그 분을 품은 내 마음과의 힘든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건만, 내 심장은 태양보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은 4회, 5회 두 편 올렸습니다. 4회는 이전글로 이동해서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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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8 14:25




처음이다. 스승님과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이... 누구에게도 밀하고 싶지 않았던 그 어느 봄 그 날, 지금도 눈을 뜨면 너무 생생해서 보낼 수가 없는 그들...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를...

나는 그로부터 쭉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야 살아졌다. 잠을 자는 동안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가끔 꿈속에서 그들을 만나 함께 있으면 안되느냐고 간청을 해보지만, 스승님과 그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만 지을 뿐이다. 이젠 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스승님과 그 아이, 그 이유를 나는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다. 스승님과 그 아이는 오래전에 나를 놓아주었다는 것을...  

그러나 여전히 나는 그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 함께 했던 시간들, 내나라 고려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도 좋았던,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던 뜨거움을 어디서 무엇으로 다시 채울 수 있을까? 내 얼어붙은 심장은 그렇게 오랜시간 꽁꽁 얼고 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그렇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은 왕,

죽을 때까지 입밖으로 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으시면 납득하시겠습니까?

그 분께 빚이 있습니다.

 

왕비마마의 부르심을 받고 왕비마마 처소로 간 나는 뜻밖의 말에 멍해 있었다. 똑같은 말, 그 분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죽지마라, 그대 왕비의 명이다", 그분도 같은 말을 했다. "죽지마요".

 

***본방에서 놓쳤던 최영의 감정선이 다시 보니 달리 해석이 되더군요. 노국공주가 최영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열을 재자 얼음땡되어서 긴장하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노국공주와 최영, 공민왕을 삼각관계로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었거든요. 그런데 노국공주의 말에 멍해했던 것은 은수의 '죽지마요"라는 말이 오버랩되어서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볼수록 이민호의 연기는 깊이와 캐릭터 해석에 혼신을 다했다는 생각에 감탄 또 감탄하게 되네요. 4회 5회에 걸쳐서 나오는 매희와의 회상씬(최영의 꿈속)을 보면서는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정말 중증입니다. 미쳤나 봅니다ㅠㅠ)  

선혜정 독살 현장에서 나온 밀지, 기철의 함정임이 분명하다.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지만, 기철이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미이다. 새 왕에게 반역을 기도하는 자들을 처리했다는 명분을 얻고 새 왕을 좌지우지하려는 속셈이다. 판단은 왕의 몫. 기철에게 무릎을 꿇든지 싸우든지 둘 중 하나. 나에게 물어보면 내 대답은 당연히 싸움이다. 허나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궁을 떠나기 위해서는 관여해서는 안된다.

밀지의 비밀, 기철의 함정이다. 선혜정의 중신들을 독살하고 생색을 내 새왕을 수중에 넣으려 함이리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새왕이 알아서 할 일이고... 밀지의 비밀을 밝혔으니 임무는 끝이라고 궁을 나가도 좋다는 윤허를 기다리는 나에게, 새 왕은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고 허락하지 않는다.  

영민한 왕이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는 알려줬지만,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않았음에 대한 지적이리라. 전하는 나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전하와 내가 같은 답을 구할 수 있을까... 같은 길을 갈 수 있을까... 조금씩 조금씩 전하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궁을 나가려는 이유를 임금은 벗으로 청한다고 했다. 왜였을까? 그냥 왕을 설득시키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었지만, 내가 떠난 후 남을 내 형제와도 같은 우달치 아이들을 부탁하고 싶었다. 그 날 매희를 지키고 가버린 내 스승님처럼 그렇게 나는 우달치 애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을 성왕처럼 대하지 말아달라는, 왕을 지키는 우달치들을 전하도 지켜달라는,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간청이었다. 

 

"신은 적월대 대원이었습니다. 내나라 고려를 지키겠다는 뜻 하나로 모인 부대, 아비를 잃은 후 떠돌던 나를 받아준 대장은 내 두 번째 아비였고, 대원들은 내 형제, 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아이, 차마 이름을 부르기도 힘이 드는 매희, 그 아이는 나의 동지였고, 나의 나의 첫 연정이었습니다. 지켜줘야 하는 사람, 꼭 지켜줘야 했던 그 아이를 나는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는데도, 나는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충혜왕의 패악에 목숨으로 적월대를 지킨 스승님, 나는 검을 들지 못했다. 수백번도 더 생각한다. 매희를 농락하는 왕을 향해 검을 빼지 않을 것이 잘한 것이었을까? 그날 매희를 지켰어야 했던 것일까? 그랬더라면 나는 이렇게 죽은 듯이 살아가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기다리고 있는 적월대 대원들을 생각하라는 스승님의 유언에, 어렸던 나는 사람같지도 않은 왕이라는 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내 목숨 하나 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았으나,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적월대 내 형제 누이들을 개죽음으로 몰 수는 없었다. 내 눈에서는 분노가 흘렀고, 분노는 차디찬 피가 되어 무릎에 고이고 있었다. 왕에게 충성은 언약하며 무릎을 꿇은 그 자리에서 나는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것만이 대원들을 지킬 수 있었기에... 그리고 그날 나는 그들과 함께 죽었다.

 

그 아이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매희가 떠났다. "뒤는 걱정마, 언제나 니 뒤엔 내가 있으니까", 그 아이는 내 뒤에 항상 있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절대로 내 눈밖에 벗어나지 마라, 그래야 내가 널 지켜주지", 그 아이와의 약속을 나도... 지키지 못했다.  

내게는 봄이 없다. 그날 성상께서 부르신 그 어느 봄날과 함께 내게 봄도 함께 가버렸다. 스승님과 매희 그아이와 함께 내 봄도... 그래서 나는 늘 겨울 속에 산다. 매서운 바람이 잦아들고 봄이 오면 온몸에 한기를 느낀다. 잔인한 봄이 오고, 가고, 또 오고, 또 가지만, 나는 봄을 거부한다. 그렇게 내 삶에서 나는 봄을 버렸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겨울 꽁꽁 언 호수에서 산다. 봄이 두렵다. 그로부터 7년 나는 겨울보다 추운 봄의 계절에 살고 있었다. 매희야, 나 너무 춥다...  

들꽃이 만발한 봄 어느 날 너의 채찍이 나를 향해 날아오던 그 들판, 나는 언제나 그곳에서 너를 만난다. 잡으려고 하면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너를 붙잡기 위해, 나는 그 들판 언저리를 매일 서성인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네가 서있을 것만 같아서... 봄바람처럼 따뜻한 너의 숨결, 꽃처럼 아름다운 너의 미소가 멀어져 간다. 어제는 그제보다 더 멀리, 오늘은 어제보다 더 멀리 그렇게 멀어져만 가는 너...

검에 매달아놓은 너의 두건, 너를 만지고 느끼고 함께 숨쉬고, 그래서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언제나 네가 내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너를 보내지 못하는 것이 혹이나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혼자있을때 가만히 너의 두건을 만져본다. 대답없는 너, 매희야 듣고 있지? ... 보고 있지?  

그리고... 매희야, 알고 있지? 그 분을 쫓고 있는 내 모습을... 그 분을 향해 달려가는 있는 내 마음을... 

 

나 그분에게 빚을 졌다. 그 분 돌려보내야 겠다. 그래서 살아야 겠다. 그 분 지켜주기로 한 내 언약, 매희 너는 지키지 못했지만, 그분은 꼭 지켜줘야겠다. 매희 너라도 그렇게 했으리라는 것, 그렇게 하라는 너의 미소가 허락임을, 나 믿어도 되지?

너무 오랫동안 너를 붙잡고 놓아주질 못했다. 그것이 나를 위함이라는 것, 내 미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와 스승님을 편히 보내지 못했다. 이젠 너를 놓아주려 한다. 나 그래도 될까?

 

*** 최영의 과거를 하나로 묶어 정리하다보니 4회 5회 내용이 섞여있습니다. 4회와 5회 리뷰를 함께 올께 올리니 어느 것을 먼저 읽으셔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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