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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0 12:30




행복과 비극은 같이 붙어다니는 실과 바늘인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는 처음 행복이라는 것을 느껴 보았고, 동시에 평생 지울 수 없는 비극과 마주해야 했다. 내 손으로 어리신 경창군 마마를 보내드려야 했다. 그 분 눈 앞에서... 그리고 비극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분이 떠난 그 날까지... 처음으로 품어본 욕심, 심장이 터질 듯한 행복과 함께...

 

"제가 개인적으로... 저 뒤에 계신 분을 연모하기 때문에 왔다는 말입니다", 덕성부원군 기철은 뭐가 그렇게도 우스운지 숨이 꼴깍 넘어가게 웃어보였다. 만만치 않은 상대다. 쉽게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호기를 부려봤다. 죽기로 작정하고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내공도 제대로 모을 수 없고, 기철에게서 나오는 음산한 냉기는 내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하늘의원을 끌고 온 연유, 덕성부원군 드디어 속내를 밝힌다. 강화에 유배되어 있는 선왕마마의 병을 치료하라는 요구를 내건다. 하늘의원과 나, 그리고 전하까지 엮으려 함을 모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기철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그 분을 그곳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선왕마마를 보고 싶은 마음 또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폐위되고, 나를 유독 따르던 분, 가여운 선왕마마를 난 지켜드리지 못했다. 나의 의지와 선택과는 무관한 일이 고려왕이라는 자리였기에...

힘없는 나라, 욕지거리가 나는 그런 세상이었다. 

따라주는 술을 아무 의심없이 마시려는 분, 정말 대책없는 분이시다. 다행히 독은 없는 듯했다. 그 분은 그런 나를 힐책했지만, 의선이 고쳐줄 것이라는 말로 기철에게 그 분이 의선임을 강조했다.

성질 사나운 분, 기원의 욕지거리에 "지랄들을 하셔요" 거침없는 대꾸로 맞받아친다. 피식,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아무튼 못말리는 분이다. 그리고 무지 쎄다. 독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도 끄떡없는 그 분, 뒤에 알았지만 그 분은 술을 좋아했다. 그 분도 잊고 싶은 것이 많은 걸까? 내가 잠에 취해 살았듯, 그 분은 술에 취해 힘든 것을 잊고 싶었을까?  

 

왜 하필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강화로 가는 길, 그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 건 내 욕심이겠지. 그냥 넘기는 법이 없는 분, 혹이나 마음에 짐이 될까 덕성부원군 집에서 연모한다고 했던 말은 사정이 있어서 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역시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못들은 걸로 해주겠다면서도, 이미 들었다고 가슴팍을 한 대 치고는 저만치 달려가 버린다. 장난을 좋아하는 분, 그 순간 난 세상이 정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가슴만 쿵쾅쿵쾅, 내 심장에서 내는 천둥소리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세상은 정지되고 내 가슴은 쿵쾅거리는데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정말 미치겠다.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몰라 애궂은 대만이를 잡는다.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하늘의원 중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어쩌다가, 왜!!!".

대만이가 알 턱이 있나, 순진한 대만이 녀석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모른단다. '니가 알리가 있겠느냐...'. 길게 나오는 한숨, '임자, 왜 하필 임자였습니까?'.

(*이때 최영의 말을 유심히 들어야 할게 여인이라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그 분, 하늘의원, 의선이라는 말이 아닌 여인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은 것은, 최영이 은수를 여인으로 마음에 품었다는 것을 말하겠죠?). 

그리고 이 장면 전에 은수가 얼결에 최영의 팔을 잡았을  때, 반사적으로 은수의 팔을 꺾어 "검을 가진 자의 뒤에 다가서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장면은 심장은 벌렁거리더이다ㅎ. 뭘해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최영의 눈빛, 표정, 숨소리, 침 삼키는 모습까지, 하나도 놓치지 못하게 하는 이민호는 마성의 남자(내남자하자고 하면 임자팬들 거품물겠죠;;)

 

대만이를 그 분의 수술도구를 가져오라고 보내고, 우린 강화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만두로 요기를 시키고(그 분은 밥을 굶기면 잔소리가 심해지는 분이다), 나는 따라붙는 그림자가 있는지 살펴야 했다. 역시나 그냥 '네' 하는 법이 없다. 왜? 어딜? 꼬치꼬치 말끝마다 질문이다. 허겁지겁 만두를 싸서 나와 혼자 하늘문으로 가겠다고 길을 알려달라고 한다. 겁이 났으리라. 선왕마마를 고치지 못하면 삼문에 목을 댕강 잘라 걸겠다고 했으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나 연모한대매", 가슴이 서늘하게 아파온다. 연모하는 이를 어느 사내가 쉽게 보낼 수 있었을까? 다시는 만나지 못할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 같은 하늘,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살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쉽게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보고 싶으면 혼자라도 볼 수 있을테니...  

처음 말을 타보는 그 분은 겁이 나 한참을 말앞에서 심호흡만 내쉬었다. 성질이 뻗쳐온다. 강화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말에 앉혀주니 의외로 말타기를 쉽게 배운다. "말을 믿고 고삐를 말에게 맡겨봐요". 뭐든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 묻는게 많고, 금방 배우고, 금방 잊어버리고, 울다가도 금방 웃어버리고, 알 수 없는 분...

함께 말을 타고 가는 그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 끝까지 가고 싶었다. 그 분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가 이내 내 마음에 가득 들어찬다. 어린아이와 같은 웃음소리, 처음이다. 그 분을 모셔온 후 그토록 환하고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웃게 하고 싶다. 돌아가는 날까지 좋은 기억만 채워주고 싶다. 그리고 난 싸우고 있었다. 그대로 그 분과 세상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욕심과... 

***이장면에서 은수가 말타기를 무서워하자 최영이 그러지요. 나를 믿으라고, 떨어지면 받아주겠다고... 이때 은수가 말에서 미끈해서 이민호가 멋지게 한 손으로 은수를 척 낚아채서 자기 말에 태우는 모습을, 혼자서만 상상하며 흐뭇해 했답니다. 근데 이런 장면없이 가서 쪼매 야박한 제작진이었습니다.

 

"내 이름은 은수에요, 유은수"

***담요를 던져주고는 검집으로 최영 근처 한 장소를 콕 집어 잠자리를 정해주는 최영, 야밤에 단둘이 남사시럽게 딱붙어서 자라는 거냐는 말에, 시크하게 "멀리있으면 지키기가 힘이 듭니다", 은수가 고분고분 최영이 지정해 준 곳에 담요를 깔고 눕지요.

그런데 최영의 아픈 곳을 쿡쿡 찌르는 은수, "지키는 거 좋아해요? 직업병인가? 임금님도 지켜야 되고, 약속도 지켜야 되고, 나도 지켜야 하고...", 최영은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픈데, 그래서 은수의 말에 착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 최영이었지요*** 

"내 이름 알아요? 은수에요, 유은수", 그러고 보니 난 그 분의 이름도 알고 있지 못했다. 유. 은. 수... 그 분의 이름을 나직히 불러본다. 가슴에 새기듯 한 자 한 자, 유. 은. 수...

"결혼은 했어요?", 이어지는 그 분의 말이 가슴을 쿡쿡 찔러온다. "사람이나 베는 살인마를 누가 좋아하겠어", 그 분께 사람베는 모습만 보였구나(*개인적으로 이때 살인마라는 단어는 무지무지 싫었습니다, 살... 하다가 아차하는 모습으로 삼켜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했더랍니다*). 

"나도 혼인 안했어요. 화려한 싱글로 서울에서 살다가 그쪽에게 납치돼 왔어요.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장하시고, 지금쯤 외동딸래미 없어졌다고 우리엄마 앓아 누우셨겠다". 그 분에게도 소중한 가족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 때야 생각했다.

그 분이 더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근처에 박쥐(화수인)가 있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하다. 그 분에 대한 말들이 부원군 기철에게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 입좀 다물고 자요". 

 

그 날 밤, 별 하나가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이 약속도 지켜줘요. 먼저 임금님 치료끝나고 하늘문에 나 데려다 줘요". 굿나잇! 잘자라는 하늘말 인사를 하며 돌아눕더니 이내 잠이 든다. 피곤한 하루, 그 분이 마음 편히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난 그 밤이 행복했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이 도려내지는 듯 찌릿찌릿 아파왔다. '돌려보내줘요, 데려다줘요' 그 분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메아리가 되어 가슴 한 복판을 쓸고 있었다.  

아무말도 못했다. 돌려 보내주겠다는 말, 내 마음은 돌아눕는 그분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안가면 안됩니까? 여기, 내 곁에 남으면 안됩니까?',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을 나는 그렇게 몇번이고 되뇌이고 있었다. 그 분이 준 아스피린을 씹으며...

*** 본방에서는 놓쳤는데 다시 보니 은수가 하늘문으로 데려다 달라는 약속 지켜달라는 말에 이민호의 표정에 슬픔 비슷한 침묵이 있더군요. 화수인이 은수의 곁으로 다가가자 나뭇가지를 던져 접근금지시키는 모습, 동작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리도 폼이 나는지 하악하악*** 

'그 날밤, 나는 감히 행복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귀찮은 박쥐(화수인)를 돌려보내고, 그 여자의 말을 곱씹어보면서... 그대는 정인이라 부르는데 저 여인은 그대를 살인자라 부르네, 그런데 저렇게 마음 편히 딱붙어 자는 건 뭐지?...

그 분, 나를 믿고 있는 것일까... 돌려 보내주겠다는 말, 지켜주겠다는 말, 아니 나를 믿고 있음일까...

곤히 잠든 그 분을 깨우고 싶었습니다. 더 말해달라고, 임자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임자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밤새 이야기해 달라고 깨우고 싶었습니다. 임자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버리는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유.은.수, 유.은.수...나는 그 밤 내내 임자의 이름만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 하나가 내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왜 하필 저 여인을 데려왔을까?'.

돌려 보내달라는 그 분의 말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소리에 실려온다. 삼켜버린 내 마음, 내 욕심을 쫓아내기 위해, 나는 그 날 밤 모닥불만 하염없이 휘젓고 있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고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 밤 알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새롭게 발견한 최영의 감정선이었습니다. 자는 은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은수를 돌려보내기 싫은 마음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고요해서 더 깊이가 느껴지는 이민호의 표정연기, 그러니 더더욱 빠져나오기가 힘드네요ㅠㅠ 대장은 알랑가? 우리 임자들 마음을***

 

***글 찾기 힘들다는 분들이 많아 발행글로 올리니 추천은 신경쓰시지 마시고, 마음 내키는대로 사뿐이 즈려밟고 가세요.

***경창군과의 해후, 그리고 벌어지는 사건은 다음회와 연결되는 내용이라 7회 리뷰에서 함께 정리할게요.

***신의 병동에서 알립니다. 마음 헛헛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멈칫하는 증세를 겪는 분들, 영스피린 두 알을 오독오독 씹어드시기 바랍니다. 꼭 소리가 나게 오독오독 씹어드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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