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건
- 2011.12.14 엄마 부끄럽게 한 아들의 말, "일장기를 달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32)
배추는 평소에는 30포기 정도를 했는데 올해 조금 많이 해야 했어요.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들과 딸이 각각 따로 살다보니 살림이 늘어난 때문이기도 하고, 딸아이 친구들에게 나눠 주려고 마음먹고 넉넉하게 했습니다. 딸아이 친구들이 한국음식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특히 김치와 불고기에 환장(?)을 한답니다. 대학의 낭만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딸아이 학교생활을 지들끼리는 교도소라고 표현하더군요. 정말 제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빡세게 시키는 곳이 캐나다 대학인 것 같더군요. 딸아이는 프로젝트가 많아, 거의 새벽에 들어오거나, 어떤 때는 학교 스튜디오에서 밤을 새는 일이 많은데, 가끔 금요일이면 친구들과 음식 한두가지를 해가지고 모여서 파티를 하며 자기들끼리의 낭만같은 것을 누리기도 한답니다. 뭘 보내주나 고민하다 김치와 불고기를 들려 보냈는데, 이후로는 그것만 가져오라고 한다네요.
딸아이가 함께 잘 노는 그룹은 서양아이들도 있고 중국아이들도 있는데, 특히 중국아이들이 김치와 불고기를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얘네들이 김치를 먹는 것을 보면 우리와는 좀 다르더라고요. 우리는 김치를 밥반찬으로 먹는데 얘네들은 샐러드식으로 먹는답니다. 밥이나 요리랑 먹는 것이 아니라 김치만 메인요리로 먹는 거예요. 속쓰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여튼 허리가 터져나가게 한 김장은 한국김치를 선전할 작은 외교관의 임무를 띠고, 지금 김치냉장고에서 잘 숙성되고 있는 중이랍니다.
김장을 다하고 아이고 데이고 끙끙거리며 쉬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시험기간이라 아들은 집에 오지 못한다기에 생일선물만 아들집에 던져두고 왔었어요. 니트 셔츠와 후드 티셔츠, 벨트를 선물로 주고 왔는데, 아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옷투정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랍니다. 엄마가 사주는대로 군말없이(?) 입는 편이라, 옷을 고르는데 크게 까탈스럽지는 않아요.
그런데 옷 하나가 마음에 안든다고 리턴하라고 전화를 했더라고요. 사이즈를 잘못 봤나 싶어서, 사이즈에 문제가 있냐고 물었더니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는 겁니다. 디자인? 아니 엄마의 안목을 지금 무시하시는 거임? 아들은 그런 디자인이 아니라 무늬가 마음에 안든다더군요. 무늬? 아무 무늬없는 단색 후드티가 무슨 무늬가 있었어?
헉, 맞다... 순간 우리 아들이 얼마나 개념아들로 보이던지요. 비싼 메이커라고 설명해가면서 귀찮음을 모면하려고 했던 제가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이 아들이 지난 1박2일 관련글에서 스타크래프트 실력에 관해서는 캐나다 숨은 고수라고 언급했던 게임광 아들이랍니다. 여름방학을 보내고 나서 공부한다고 초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몇년간 빠져있던 게임을 진짜로 딱 끊어버리는 것을 보고는, 저희집 식구들이 믿기지가 않아 놀랐습니다. 지난 달에 남편이 왔다갔는데, 그런 아들을 보고 믿음이 갔는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14시간의 비행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노라고, 아들 생각하니 마음이 흡족해서 기분좋았노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미역국도 못끓여 먹이고 마음이 헛헛했는데, 일장기를 달고 다닐 수는 없다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아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감정이 꽉 차오르더라고요. 이런 얘기 블로그에 올려도 되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Living in Canada' 카테고리의 다른 글
'TV동화 행복한 세상' 딸아이의 이야기가 방송으로 나옵니다 (16) | 2012.04.12 |
---|---|
왕따폭력에 대한 딸의 제안, 교복로고 캠페인 어떻게 생각하세요? (14) | 2011.12.28 |
엄마 부끄럽게 한 아들의 말, "일장기를 달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32) | 2011.12.14 |
캐나다 학생들이 뽑은 한국 최고의 상징은? (38) | 2009.12.07 |
40대 아줌마, 블로그와 함께 새로운 세상에 눈뜨다 (61) | 2009.11.30 |
엄마를 감동시킨 딸아이의 선택 (54) | 2009.10.30 |

- 이전 댓글 더보기
-
푸른소 2011.12.14 08:47
너무도 바쁜 아침시간인데...댓글을 달지 않을수 없네요...
소위 말하는 특템을 한 기분이랄까...
누리님이 이리 미인이셨군요...ㅎㅎ
따뜻한 글같이 좀은 푸짐~~~한 아주머니이실것 같았거든요....푸하하하...
뿌리깊은 나무를 사랑하시는 누리님의 아들임을 인정해야 겠어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가운데 지켜야할 자존심을 아드님은
멀리 타국에서도 지켜내고 있는듯하여 정말 흐믓하네요...울 아들녀석도 그리 커야 할텐데...^^
누리님의 김장맛도 보고싶어요...아직 한번도 김치에 손대보지 못한 주부(?)라서리...
행복하세요~~~누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