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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5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송혜교, 원숙한 내면연기가 반갑다 (37)
2013.02.15 10:13




일본 드라마가 원작이라고 하는데 보지 않아서 내용은 잘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행세를 하며 사기행각을 했던 대표적인 작품을 떠올리면 알랭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입니다.

죽은 필립의 사체가 요트에서 끌어올려지고, 아무것도 모른채 필립행세를 해 온 톰(알랭드롱)이 부두로 들어오는 엔딩장면이 압권인 작품이죠.

그겨울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조인성의 우수에 찬 듯,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무심하기도 하고 비열하기도 한 표정을 보니, 젊은 시절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드롱이 잠시 스치더군요. 올백 헤어스타일로 반항기와 우수의 눈빛을 동시에 쏘아내는 표정은 제임스 딘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조인성의 연기가 그만큼 강렬하고 좋았습니다ㅎ.

송혜교는 또 어떻고요, 차갑고 냉소적인 표정에도, 여전히 소녀같은 외모에 가끔 짓는 미소는 천사의 모습같기도 했습니다. 그냥 송혜교의 미소를 보면 세상이 한없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오영, 그녀의 미소는 마음이 내는 소리처럼 보였거든요. 송혜교의 연기에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세상과 차단했지만 누구보다 밝고 따뜻하고 투명하리만큼 때묻지 않은 순수,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볼 수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라 덮어놓고 선택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생각보다 훨씬 잘 나온 듯합니다. 노희경 작가의 세상과 화해하는 따뜻한 시선을 좋아하기에 작가에 대한 믿음도 한몫했지만, 감각적인 영상미와 절제된 원숙미로 돌아온 조인성과 송혜교의 복귀는 삼박자의 하모니를 이루었습니다. 김태우의 무정한 듯 비열한 연기도 극중 무게감을 더했고, 배종옥과 김규철의 절제된 연기는 고급스런 고명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대본, 연출, 배우의 삼박자 하모니 외에도 이 작품을 명품으로 만드는 또 하나는 제목에서 보여지듯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바람의 의미일 겁니다. 냉기서리고 혹독하기만 한 차가운 겨울, 그 속에 부는 바람이 삭풍이 아니라 미풍일 될 듯한 따뜻함입니다.

드라마의 주제는 일찌감치 던져주었습니다. 조인성(오수)의 나레이션이었죠.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그래서 누구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시간이 가면 기억도 못할 값어치 없는 사랑에 하나뿐인 제 목숨을 걸기도 하고, 또 누구는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하찮은 순간의 욕망에 허무하게 제 인생을 걸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두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럼 나도 덩달아 이 더러운 시궁창같은 삶에서 의미를 한 번 찾아봐? 그러면 내 인생이 뭐가 바뀌나... 세상에 태어나 믿을 거라고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온 내게도 찬란히 눈부신 햇살이라도 비추나?".

삶의 의미, 작가는 이 무거운 주제를 사랑과 결부시키면서도 통속적이지 않습니다. 작가의 통속의 거부는 송혜교와 조인성의 절제된 연기에 흐르는 원숙한 내면연기를 통해 드러나고 있더군요. 그래서 두 배우의 원숙한 연기가 반갑습니다.

송혜교의 초점없는 퀭한 눈동자, 단지 시각장애인이라는 연기를 넘어선 고독과 절망의 싸늘함이 느껴지는 눈빛은 시각장애인의 육체적 장애만을 그리고 있지 않더군요. 오영이라는 인물의 트라우마, 엄마 오빠에게 버려지고 홀로 남겨졌다는, 그래서 세상 누구도 어느 것도 믿지 못하는 강한 불신과 경계를 담아내고 있더군요.

그리고 간간히 나오는 희뿌옇게 보이는 빛의 감지는 그녀에게 남아있는 세상과의 화해 가능성의 복선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완전이 닫혀있지 않다는 이중적인 의미로 읽혀져서 말이죠. 그녀의 시력상실이 뇌종양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종양을 믿지 않는다는 오영의 말을 빌어보면, 강한 정신적 충격때문에 실어증이 오기도 하듯이, 어렸을때의 정신적 충격으로 시력이 상실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봤습니다(이건 의학적으로 검색해보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강보에 싸여 추운 겨울 나무밑에 버려진 오수와 엄마와 오빠(죽은 오수)가 떠나고 암흑의 세상에 던져진 오영은 각기 다른 상처로 세상에 냉소적인 인물들입니다. 쾌락과 환락, 이왕 태어난 목숨이니 한바탕 질펀하게 놀아나 보자는 오수는 첫사랑 희주의 불의의 사고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인물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소라(서효림)의 농간으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78억이라는 상상같은 액수를 갚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청부폭력배 조무철(김태우)에게 린치를 당하고 칼에 찔리는 등, 100일이라는 시한부 생명의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죠.

 

무철(김태우)의 칼에 찔려 협박당하는 순간, 그는 죽음의 공포를 절감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그는, 맹목적인 삶이라고 할지라도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같은 이름을 가졌던 죽은 오수가 PL그룹의 진짜 아들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절망 같은 삶에서 한가닥 희망을 찾아 나서죠. 78억이라는 거대한 판돈, 아니 그 이상을 얻을 수도 있을 게임이 시작된 겁니다. 겜블러였던 오수에게 78억은 게임과 같았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한 판 승부수....

그리고 그 게임이 잘못되었음을 알아가게 돼죠. 게임의 말이라 여겼던 앞못보는 시각장애인 오수의 동생 오영, 그녀는 똑똑했고, 치밀했고,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과 같은 절망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죠. 오수가 죽지 못해 살고 있다면 그녀는 죽기 위해 사는 궁궐 속의 인형, 갇혀있는 새와도 같았습니다.

 

78억을 뜯어내기 위해 오영의 집에 들어왔지만, 오수는 그 집의 많은 비밀들과 마주합니다. 왜 왕비서(배종옥)은 죽은 오수의 편지를 오영에게 전해주지 않았을까? 왕비서의 맹목적인 오영에 대한 보호의식은 모성과도 같은 사랑일까, 아니면 또다른 감춰진 욕망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의 삶 역시도 무의미한 절망속에 던져지고 그 끝에서 찾은 희망은 아니었을까?(개인적으로 저는 왕비서 배종옥의 캐릭터에도 급호기심 발동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게임을 방해하는 예상밖의 복병을 만납니다. 오영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과 말이죠. 그리고 오영을 볼 때마다 자신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살아야 할 의미없이 박제된 삶의 한가닥 탈출구 죽음을 갈구하는 오영과 죽지못해 살고자 하는 오수는 너무도 닮아있었던 겁니다.

삶과 죽음은 정반대 단어지만 그들에게는 같은 의미였습니다. 오수에게는 매일을 사는 것이 죽음과도 같았고, 오영에게는 죽음이 그녀를 자유의 세상에서 살게 하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장애가 되지 않는 역설적인 의미의 삶이었던 것이었죠.

자신을 죽여주면 아무 조건이나 조사없이 유산을 주겠다는 유언장을 쓰겠다는 제안을 하는 오영, '왜 이 여자는 죽고 싶어 환장하는 것일까? 나는 죽기가 싫어서 이렇게 죽은 오수 행세를 하며 사기까지 치고 있는데... 궁금하다...너의 닫힌 마음의 문이 무엇때문이었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다 죽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데 오영이라는 여자는 시각장애때문에 죽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진 오수입니다.

 

오영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인간들이 '돈'때문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오수는 죽음과도 같은 참담한 그녀의 고독을 보게 돼죠. 밤마다 엄마의 온실 비밀방에서 어릴 적 비디오를 틀어놓고 엄마와 오빠, 그리고 행복했던 그녀의 6살을 생각하며 웃음짓는 그녀는 시들어버린 화초들만 가득한 온실에서만 행복한 아이였습니다. 온실밖을 나서는 순간 그녀는 고독과 절망이라는 세상에 버려진 6살 꼬마였습니다.

연민... 그녀에 대한 연민은 1년전에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친오빠가 차에 치여 죽어가는 것도 보지 못한채 울며 택시를 부르던 그녀... (**이 장면이 어찌나 울컥하고 목이 매이던지 엄청 울었답니다 ㅠㅠ)

오수의 눈에 도로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오영의 친오빠 오수와 시각장애인 오영, 두 남매의 엇갈림은 오래도록 그에게 짐처럼 남아있었습니다. 자기때문에 죽은 오수, 자기때문에 죽은 첫사랑 희주, 희주의 죽음으로 자신을 증오하는 폭력배 무철의 섬뜩한 눈빛, 오수야말로 죽고 싶을만큼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죽지 못하는 것은, 아니 살고 싶은 것은 그 절망이라는 놈과 한판 붙고 싶은 겜블러의 근성인지, 치기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갓난아이를 나무밑에 버리고 딱 한 번 나타나 5만8천원을 건네주고 도망쳐버린 생모에게, 당신없이도 이렇게 보란듯이 잘산다고 보여주고 싶은 애증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어버린다면 허무하게 끝나버린 게임처럼, 버려진 그의 인생이 너무도 가여울 것같아 악착같이 살고 싶은 오수입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그에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답게 살라고? 엿먹으라지... 그냥 살아지니까 사는 거야!

 

장변호사(김규철)라는 사람이 찾아와 오수냐고 물었을때, 그는 자신이 오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오수가 죽은 진짜 PL그룹의 오수임을 알고서도 오수는 진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순간 눈에 고이는 눈물은 조인성의 소름돋는 내면연기였습니다. 그 눈물에는 죽은 오수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떳떳하지 못한 부끄러움, 그리고 '택시!'를 부르며 지팡이를 들고 떨고 서있던 여자에 대한 부채의식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진실을 밝히지 못한 죄책감과 재벌 아들이 되어 78억을 뜯어내고 무철의 공포에서 벗아나고 싶었던 순간의 욕심, 자신을 죽은 오수로 둔갑시켜버린 뒷일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 말이죠.

죽은 오수가 그랬지요. 자신의 이름 한자를 이름에는 잘 쓰지 않는 지킬 수(守)를 쓴 것은 동생 영이와 세상을 지키라는 의미로 어머니가 지어준 것이라고요. 동생 영이를 지키라는 유언과도 같은, 숙명과도 같은 '오빠'역할을 못하게 한 것이 바로 오수때문이었습니다. 그날 형사들을 피해 도망치는 자신을 따라 달리던 죽은 오수가 차에 치었던 것은 오수 자신때문이었죠.

진성(김범)에게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며 멍하게 서있던 오수의 불안하게 떨리는 눈, 그리고 넋나간 듯한 얼굴에 차오르는 눈물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오수의 복잡한 심경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었던 눈빛이었습니다.

돈때문에 PL그룹 오영의 성과도 같은 집에 들어왔지만, 그 이유를 깜빡깜빡 잊어버리게 되는 오수입니다. 오영, 그 여자의 초점없는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놀라는 오수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녀가 자신의 속을 보고 있는 듯한 날카로운 느낌, 그리고 죽고싶다는 그녀의 절망이 먼저 보이곤 합니다. 오수의 78억짜리 게임판이 혼란으로 빙빙 돌기 시작합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삶일지라도 의미를 찾고 싶어 몸부림치는 오수, 남부러울 것 없이 다 가졌지만 나날이 깊어가는 절망으로 죽고 싶어하는 오영, 두 사람의 대조적인 삶은 우리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 삶의 의미에 대해서 말이죠. 삶의 가치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일까?

오수와 오영은 상처입은 새들입니다. 한 사람은 거친 세상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를 흘리고 아파하고, 한 사람은 새장 속에서 탈출하려 제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새장을 온몸으로 부딫히기를 반복하죠. 이 가여운 새들은 서로의 날개로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을까요? 그 겨울, 그들의 꽁꽁 언 마음에 부는 바람은 어떤 바람일까요? 삭풍이어도 미풍이어도 바람이 의미있는 이유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겠죠. 삭풍이라면 서로가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미풍이라면 웅크린 날개를 펴고 따사로운 햇살아래 그 바람을 온몸으로 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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