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세종'에 해당되는 글 4건
- 2011.12.29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최고의 코믹왕은? (9)
- 2011.12.02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의 냉소,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반전 (21)
-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4회' 세종대왕이 욕을 하는 이유 (1)
- 2011.11.04 '뿌리깊은 나무 10회'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23)
수많은 명장면들이 시청자를 감동의 도가니로 넣었는데, 아쉽게도 빠진 것이 있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정륜암에서의 정기준과의 끝장토론 장면과, 광평을 잃은 세종이 슬픔을 가누지 못할 때 그를 일으켜 세워준 강채윤의 비난을 들은 후 고뇌를 끝내면서, 훈민정음이라는 네 글자를 적는 장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사실 모든 한장면 한장면이 버릴 수 없는 명장면들이었던 이유는, 한글이 요술방망이로 뚝딱해서 나올 수 없는 연구와 노력의 산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명장면 베스트 번외편으로 제가 뽑은 코믹명장면으로 뿌리깊은 나무 그 역병같았던 드라마의 또다른 매력들도 감상해 보실까요? 코믹왕도 선정해 봤는데요, 드라마 속에서는 세종을, 드라마 밖에서는 조말생 대감 이재용을 코믹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욕세종 등장, 감칠맛 나는 충격 "우라질, 지랄하고 자빠졌네"
인상적인 욕세종의 장면들이 많지만 그중 두 장면으로 압축해 봤습니다. 경연장에서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해 신하들이 주절주절 반대가 극심했었지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이 완강한 조말생대감의 코앞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던 장면, 뜨헉!하고 놀라는 조말생대감의 표정은 대사없이도 웃음 빵터지게 했던 코믹장면이기도 했지요.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벌이시나이까, 공자왈 주자왈에 대한 세종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우라질". 아직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한자로 쓰기는 했지만, 그 신랄한 비웃음이 통쾌했던 장면입니다.
손뼉도 마주해야 소리가 난다고, 그 황망한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입맛만 다시는 황희대감, 눈동자 굴리는 소리까지 들리게 느껴졌던 이신적(안석환)의 눈동자 연기는, 중년연기자들의 연기내공이 이런 것이라고 확인시켜준 명품연기였고 말입니다.
세종이 무휼을 놀려먹는 모습도 코믹명장면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했던 장면들이었지요. 이도를 죽이겠다고 칼을 숨기고 들어온 강채윤, 채윤에게 밀명을 내리면서 독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신경써주지 않았다고 무휼을 놀리는 장면이었죠. 앞으로 3보 이내에 있으라며 무휼을 뻘쭘하게 만들었지요. 무휼을 놀리는 세종의 장난기는 그뿐이 아니었지요. 공포심에 대한 힌트를 채윤이 알아들었을 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세종, 무휼 너도 말귀를 못알아 들었지 않았느냐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세종이었죠.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엉거주춤 세종의 뒤를 따르는 무휼에게서 조선제일검 내금위장의 체면은 땅에 곤두박질을 쳤지만, 스트레스 많았던 세종의 유일한 쉼터는 무휼이었기에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은 투기하는 무휼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했다죠ㅎ.
초탁과 박포, 우리를 빼면 섭해요
사실 드라마에서 코믹감초역할로 배치한 인물이 초탁과 박포, 그리고 옥떨이 정종철일 겁니다. 특히 초탁과 박포는 북방떨거지와 한양돼아지새끼라며 티격태격 앙숙처럼 보였지만, 누구보다 채윤의 곁에서 훈훈한 동료애를 보여줬던 인물들이지요. 채윤이 죽었을때 가장 슬프게 울었을 친구들이었는데, 마지막회 반포식장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가 잡지 않아서 쪼금 서운하기도(ㅎ) 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소이의 시신을 광화문으로 데려온 이들도 초탁과 박포였겠지요.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보니 연두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개파이가 아니라 박포(신승환)였다는군요.ㅎ
박포와 초탁외에 대놓고 웃기지는 않았지만, 시청자들에게 표정만으로도 즐거움을 선물해 준 분들이 있었지요. 바로 이신적(안석환)과 한가놈(조희봉)입니다. 안석환의 능수능란한 눈동자 연기는 대사보다 더 많은 내면심리를 전해줘, 그의 표정연기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엿보게 했지요. 본명이 한명회로 밝혀진 한가놈의 찌그러진 표정과 눈동자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극적 재미였습니다. 밀본에서는 정기준의 참모 한가놈이 가장 두뇌가 명석하고, 사태를 분석하는 눈도 날카로웠지요. 소이의 속치마에 적힌 글자로 한글을 쓰고 읽는 법을 독학하고, 연두와 개파이에게 한글까지 가르쳤던 두번째 한글선생님되시겠습니다. 첫 선생님은 채윤에게 한글을 가르친 소이가 되겠고요.
"전하의 글자는 달랑 스물여덟자다"
코믹장면은 아니었지만, 코믹보다 더 기분 즐겁게 웃겼던 장면을 꼽아본다면 광평대군과 채윤의 대화입니다. "5만자 중에 천자를 배우는데도 그리 오래 걸렸는데, 도대체 전하가 만드신 글자는 몇글자나 되십니까? 5천자요? 아니면 3천자요?". "스물여덟자". "천 스물여덟자요?". " 아니 그냥 스물 여덟자".
스물여덟자라는 그 짧고 강한 말에 배여있던 광평대군의 자신감과, 헛소리를 들은 듯한 채윤의 표정이 대조적으로 클로즈업되었는데, 다시 봐도 스물여덟글자에 삼라만상을 다 담을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이 가슴벅차게 자랑스러움으로 밀려오더라고요.
신세경이 반한 당구치며 춤추는 조말생대감, 귀요미 훈남등극
여기서 끝나면 진짜 섭섭하지요. 촬영장 에피소드에서 월척 코믹왕이 등장했답니다. 드라마에서는 욕세종, 삐짐대왕, 짓궂은 세종이 코믹왕이었지만, 촬영장 에피소드를 통해 공개된 연기자들의 모습에서 의외의 반전왕이 있었으니, 놀랍게도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습니다. 조말생은 드라마에서도 멋진 보수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도 했고, 밀본 정기준을 속이고 한글유포의 임무를 위해 나인들을 궁밖으로 빼돌린 연극에서도, 최고의 배우로 등극했던 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재용의 소탈한 다른 모습에 빵터졌으니, 귀여운 모습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었답니다. 정말 귀요미 이재용이었습니다. 늘 재미있는 말과 행동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훈훈하게 하기도 하고, 소품을 이용해 당구치는 모습으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더군요. 소탈한 모습과 재미있는 모습으로 후배들과 촬영장을 즐겁게 만든 중년연기자 이재용, 뿌리깊은 나무 카메라 밖 코믹왕이셨습니다.
대본, 연기자, 연출, 시청자의 사랑이라는 네박자가 맞은 올해 최고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드라마를 빛낸 모든 연기자들에게 조말생대감의 입을 빌어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종영드라마 > 뿌리깊은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가 뽑은 명장면 베스트, 최고의 코믹왕은? (9) | 2011.12.29 |
---|---|
'뿌리깊은 나무 해례본' 뿌리가 된 세종, 드라마에서 놓쳤던 부분 (6) | 2011.12.27 |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 울리고 감동시킨 최고의 명장면 (36) | 2011.12.23 |
'뿌리깊은 나무' 반전의 열쇠 연두, 광화문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29) | 2011.12.22 |
'뿌리깊은 나무' 결말반전, 세종과 정기준은 화해할 수 있을까? (5) | 2011.12.17 |
'뿌리깊은 나무' 화끈한 세종, 너털웃음 속에 감춘 무서운 한 수 (5) | 2011.12.16 |


-
아빠생각 2011.12.29 10:45 신고
글 잘보았습니다. 전 뿌리 깊은 나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못했으나
중간 중간을 볼때마다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배우 분들도
섬세한 연기를 펼쳤으나, 한서규라는 연기자가 역시 대단한 연기자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작은행동, 작은표정하나에도 함축적이면서도 느껴지는 감정의
전달력들이 제 몸으로 고스란히 느껴짐을 느꼈습니다. 역시 한석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감탄하게 만들고도 남았지요. 잘보고 가며 도장콕콕 찍고갑니다.
가는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박씨아저씨 2011.12.29 10:53
ㅎㅎㅎ 자주는 보지 못했지만 가끔 세종이 욕하는 장면 압권이더라구요^^
과연 그시절에 왕이 그런욕을 했을지도 궁금하구요^^
메세지에 댓글 남기려니 안되어서~다시 로그인~ -
지니레카 2013.03.03 01:26
박씨아저씨// 실제로 사관들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종이 말한 욕이 이두(한자음을 빌려 우리말을 옮기는 글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자주요;;
본편에서 나왔던 "한자로 적은 '우라질'"도 물론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은 세종도, 강채윤도 알게 되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겠지요. 소위 사대부의 보이지 않는 실세 밀본 본원이 백정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비밀조직을 이끌어 왔다는 것은 까무라칠 일이지요. 무엇보다 세종이 정기준을 어떻게 설득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즈음해서, 세종이 글자를 만들려했던 역사적 의미를 보여 준 최만리와의 대화는 곱씹어야 할 명대사였습니다. 세종이 정기준을 설득하고 그의 사람으로 만들 논리가 최만리와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방지가 무휼에게 채윤과 소이의 앞날을 약속받는 장면이 가슴 찡했고, 주상이 하지 않는다면 무사로서 목숨을 빚진 자로서 약속한다는 무휼의 말은 금강석보다 강해 보였던 명장면이었죠. 칼을 든 무사들의 진정한 약속, 칼을 두고 맹세하는 모습이었기에 더욱이나 인상적이었더 장면이습니다.
세종과의 독대를 청한 최만리, 세종이 최만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는, 군주이기에 앞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역사학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더이다.
최만리는 자신을 밀본이라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려도 좋다며, 밀본이 노비 서용의 과거급제 사건을 통해 모두가 글자를 아는 세상이 가져올 혼란을 말했다고 하지요.
"진정 그것이 혼란이기만 한 것이냐? 백성들이 글자를 안다면 배우고자 할 것이고, 잘 살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삶의 즐거움을 찾아 살아서 꿈틀거릴 것이다".
그 꿈틀이 신분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최만리의 반박에 대한 세종의 일갈은 통쾌하기 까지 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무너진다. 영원한 것이 어디있더냐. 전조 고려 전조를 보아라. 정체되어 썩다 사대부들에 의해 귀족들은 멸했다".
최만리는 더 거세게 반발합니다. "하오면 양반을 없앨 수 있습니까? 노비를 없앨 수 있습니까? 사농공상의 지위를 없앨 수 있습니까?".
"못한다. 못한다. 못한다".
"그것 또한 역서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길을 모색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찾고 찾는 중에 싸우고 타협하여 이뤄가야만 조선은 천세만세를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은 전조 고려처럼 썩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만리와의 대화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신분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임금이 신분질서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40 여년 밖에 되지 않은 갓 시작된 조선의 임금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드라마속 세종이 조선의 앞날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점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더군요. 이후 서얼금고법으로 서얼이 과거시험을 영구히 보지 못하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임진왜란후 세종의 말 그대로 조선사회 신분질서의 혼란으로 양반을 사고파는 일들이 성행했으니 말입니다.
한글이 조선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백성들의 의식은 세종의 말대로 꿈틀대며 일어났고, 신분사회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기에 이르렀으며, 공자왈 맹자왈 서책이나 끼고 한량짓하던 양반들은 도태되어 몰락하게 되었으며, 잡학이라 천시하던 잡문에 능한 중인, 양인들이 부를 축적해 갓떨어진 양반들을 조롱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나왔으니 말입니다.
세종이 백성에게 눈을 돌린 것은 드라마속에서는 똘복이의 모습을 통해서였지만,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은 백성이 주인공이 될 세상을 똘복이를 통해서 봤습니다. 백성은 분노하지 않는자가 아니라, 다만 분노를 감추고 있다는 것뿐임을, 그리고 분노할 이유 앞에서는 누구보다 무섭게 분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고기를 써는 개파이의 꽃반지를 보고 그가 탈바가지를 썼던 고수였음을 알아챈 무휼이 칼을 빼들고, 무휼과 개파이를 보던 세종이 가리온의 눈빛에 놀라 멍해져 있는데, 정기준이 뒷짐을 지고 그의 정체를 밝혔지요. 귀싸대기를 열두번도 때려주고 싶은 싸갈통 머리없는 모습으로 세종앞에 선 정기준에게, "네가 정기준이냐?"며 냉소로 마주하는 장면은 돈주고도 못볼 명장면이었습니다.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안 세종, 아니 한석규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냉소에 전율이 일더군요. 경악의 눈빛도 아닌 썩소를 날리다니, 반전 중의 반전장면이었으며 한석규가 해석하는 세종은 명물 중의 명물임을 느끼게 했지요.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자신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비웃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을 향한 욕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석규의 냉소에는 정기준에 대한 실망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 이전 리뷰글들 대부분이 또다시 블라인드처리되었네요ㅠㅠ.
글만 복구해서 다시 올려놓겠습니다. 워낙 애착이 있는 작품이고, 심혈을 기울여 쓴 글들이라 제 블로그에도 꼭 남겨두려고요.
투표하러 가기: http://campaign.daum.net/LifeOnAwards2011/vote/community/tistory#mCenter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종영드라마 > 뿌리깊은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 울음바다로 만든 한석규의 미소 (6) | 2011.12.08 |
---|---|
'뿌리깊은 나무' 세종-정기준의 끝장토론, 어떻게 설득할까? (16) | 2011.12.03 |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의 냉소,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반전 (21) | 2011.12.02 |
'뿌리깊은 나무' 세종 이도, 광화문에 왜 나갔나? (12) | 2011.11.26 |
'뿌리깊은 나무 7,8회' 베일에 싸인 정기준, 누구일까 (3) | 2011.11.12 |
'뿌리깊은 나무 8회' 송중기에게 주눅든 한석규, 소름돋는 치밀연기 (2) | 2011.11.12 |


-
kangdante 2011.12.02 08:36
예나 지금이나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 하면서
결국은 가진자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야비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드라마죠?..
-
kalms 2011.12.02 10:39 신고
리뷰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만,
제가 말꼬리만 좋아해서 (죄송하지만)
세종의 대사는 ...
역사를 아는 작가가 무리하게 갖다 붙인 거잖아요.
저는 좀 불편하던데요...
허구인 줄 다 알고 보고 있지만
연기를 잘 하는 게 ... 진짜처럼 하는 것이듯이요.
성의가 없었다고 할까요...
-
ruwin126 2011.12.03 13:00
"최만리와의 대화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신분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임금이 신분질서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입니다."
읽다가 손발이 오그라드는줄 알았습니다.
역사와 사극을 구분 못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 -
ERIS 2011.12.05 15:54
내가 느낀 것들을
이렇게 다른 이의 글로 볼 수 있어서 참 기분이 오묘합니다.
단지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혼자만의 망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암튼
방갑습니다 ^^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그 내공... 배우고 싶을 정도입니다 ^^
역사의 큰 비극은 옳고 그름이 맞서 싸울 때가 아니라, 두 옳음이 맞서 싸울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왕조의 기틀을 세워야 하는 태종, 왕의 일인독주를 막으려는 사대부, 그들이 싸우는 명분은 대의였습니다. 양측의 입장에서 둘 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싸움은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비극이었죠.
그럼, 세종 이도의 대의는 무엇이었을까요? 훈민정음 반포를 앞두고 집현전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도 대의끼리의 충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살인사건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것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지만, 그 끝은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종 이도의 대의로 귀결됩니다.
태종이 죽고 세종이 실질적 권력을 잡았음에도 사대부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습니다. 왕과 신하의 마찰은 권력 주도권과 기득권의 싸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왕실재정을 위해 귀족들의 잇권을 침해하면 폭군이며 폭정이라며 반발했고, 백성들을 위한 토지정책이나 구휼정책들 역시도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었지요. 실질적인 소유자 양반들의 재산침해였기 때문이죠. 부와 권력이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은 과거나 요즘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는 권력이 부였다면, 요즘은 부가 권력으로 순서가 바뀌었을 뿐, 둘의 관계는 업어치나 매치나입니다.
집현전의 살인사건에 숨겨진 한글창제 저지음모는 사대부들의 기득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지적재산권 싸움이라고 할 수 있죠. 글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기에, 그들의 재산과도 같았고 특권이었죠. 그런데 임금이 이를 백성들에게 나눠준다고 하니, 경천동지할 일이었죠.
본격적인 드라마의 진행을 앞두고, 정리하지 못한 것이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세종이 깨달은 마방진의 답부분입니다. 백성이 근간이 되는 조화로운 세상이라는 간결한 말로 이도의 답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하례는 지랄"이라는 말로, 파격적으로 등장한 한석규의 새로운 세종으로 인해, 세종에게 욕이 어떤 의미였는지, 드라마 내용과 관련해서 정리를 했습니다.
마방진에서 구한 세종의 답은?
"대의? 지랄하지 말라고 해. 우리 아버지 죽이는 대의가 뭔데? 반푼이도 아들 살리는 것 아는데...임금은 백성의 어버이랬잖아, 대의로 지랄 말라고 해". 똘복이의 말에 충격받은 이도의 눈에 눈물이 고였었지요. 그리고 처음으로 얻은 백성이라며, 무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저아이를 살리라고 했지요.(핵심: 세종이 처음으로 얻은 그의 백성 똘복이에게 지랄이라는 욕을 배웠다는 것, 그가 살린 첫 백성이 그를 죽이러 왔다는 것이 드라마틱한 재미기도 하지요)
빈찬합을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결심을 했던 이도는 빈찬합과 방진의 모형이 같은 것을 보고 깨닫습니다. 궁녀들을 모아 결국 33방진을 푸는데 성공했지요. 이도가 깨달은 것은 방진의 답, 숫자의 배열이 아니라, 규칙이었습니다. 어떠한 숫자의 방진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숫자도 빼지 않고 같은 답을 구할 수 있는 규칙이 있음을 알아낸 것이지요. 5방진 8방진 16방진 25방진 33방진 55방진, 어떤 숫자의 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가로세로 대각선 모두 같은 합의 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종 이도는 그날 이 규칙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종의 질문에 대한 답도 내놓을 수 있었지요. 마방진이 아무리 숫자가 커진다고 해도 풀 수 있는 규칙이 있었듯이, 그의 조선도 그의 식대로 풀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고 말이지요. 마방진의 규칙을 찾고 세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 랄'이었습니다. 그리고 놀이는 끝났다며 방진을 치우라고 말하지요. (핵심: 똘복이가 했던 말 '대의로 지랄하지마'입니다. 이도가 방진을 풀고 했던 말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어요. 이 단순한 답을 찾기 위해 내가 지랄을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방원과 사대부와의 싸움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지요. 자기에게 편한대로 대의를 만들고, 그것을 명분으로 지랄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도가 내놓은 답은 현명한 자를 모아 전각을 세워, 글이나 읽으며 아버지 태종의 사후를 준비하고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문으로 통치할 것라며, 경연하는 조선을 만들 것이고 말하지요. 경연은 사대부들이 왕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펄쩍 뛰는 태종에게, 이도는 단호하게 대답했지요. "그것이 고려에서 개혁된 조선의 시작이었고, 조선의 정체이며, 성리학의 이상이니까요".
왜 집현전을 만들었을까?
세종은 지랄을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진의 규칙을 찾았듯이 조선의 이념 성리학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기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했고, 연구해야 했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가진 이론을 알아야 하고, 약점과 오류 또한 지적할 수 있어야 하지요. 따라서 학문을 권력이나 정치를 위한 목적으로 두지 않은, 똑똑하고 현명한 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정기준이 내 집현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그 학식의 깊이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이지요.
세종이 집현전을 지어 오랜 시간 인내하고 기다린 것은, 그들의 성숙이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여 이치를 터득하게 하는 것이었죠. 기득권의 논리로, 멋대로 맛대로 해석하고, 주자선생이 말씀하셨다 하면 모든 게 통하는 수구세력의 논리에 맞설 수 있어야 했지요. 집현전은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서책과 경전에만 몰두하는 그들을 대신들은 적대세력으로 여기지는 않지요. 그럼에도 집현전은 신권으로 대변되는 사대부와 대신들에게는 눈엣가시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는 학사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습니다. "책만 파는 니들이 정치를 알아?" 이런 식이었죠.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연, 세종은 드라마에서 표헌한 대로 집현전이라는 '친위부대'를 통해, 해박한 논리와 학식으로 그들을 견제했고, 사사건건 소위 태클을 겁니다. 세종의 영리한 자기 사람 관리방식이었고, 통치방식이었습니다.서책이나 읽는 서생들이라고 만만하게 봤던 대신들이 번번히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 문(文)의 통치입니다.
왜 세종은 욕을 입에 달고 살까?
욕쟁이 세종캐릭터는 다혈질 세종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를 위해 욕쟁이 세종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드라마 속 세종의 욕은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백성들의 말을 상징하기도 하고, 백성과 임금의 직접 소통을 막는 사대부들에 대한 세종의 속풀이용 꿍시렁이기도 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나라입니다. 이상이 현실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헛된 망상이 되고, 백성없는 임금(나라)은 뿌리없는 꽃일 뿐이죠. 백성을 잊은 임금은 한나라의 어버이라 할 수 없듯이 말이지요. 공자왈 맹자왈 주자께서...어쩌고 저쩌고..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것이 대의라고 하면서, 대의는 여러개의 얼굴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위장을 하기도 합니다. '주자께서 그리 가르치셨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조선의 사대부에게 주자의 말씀은 앞뒤토막 다 자르고 철저하게 기득권을 위해 해석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우라질!
백성들은 한자를 모르기에 정확하게 자기의견을 말하기 어려웠고, 전달하기도 힘들었지요. 성리학을 해석하는 데도 평생을 글만 읽혀왔다는 사대부들도 '아'다르고 '어'다르게 해석하니, 몽매한 백성들이 글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죠. 우리 말과 한자가 그 발음과 뜻이 달랐기 때문이죠.
집현전에 잠입했다 잡힌 강채윤이 붙잡혔을 때는, "집현전에 똥을 싸러 갔다는 말이냐?"라며, 임금의 입에 담기에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똥'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뱉습니다. 똥을 한자로 표현하면 '변'이라는 말이 있지만, 변을 싸다, 변을 누다, 변을 보다, 그 어떤 식으로 해도 똥만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지요. 변 하나만 해도 한자의 모양도 뜻도 다른 글자가 열개가 넘더군요.
욕은 감정과 그 정서를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우라질, 지랄, 젠장같은 우리말을 소리와 뜻이 일치하는 한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요. 음이 같아서 뜻은 다른 글자가 돼버리니 말입니다. 똘복이에게 처음 들었던 지랄을 한자로 간질병을 떤다라고 표기할 수도 없으며, 어떤 한자를 조합해도 지랄을 표기하는 한자는 없었죠. 백성들은 성리학이 뭔지, 주자선생이 뭐하고 굴러먹다 조선으로 들어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심지어 산간벽골에서는 고려가 망했는지, 이씨 조선이 세워졌는지 조차 모르는 백성조차 많았고, 백성을 위한 나라를 이상으로 삼은 성리학의 나라에서 정작 백성은 소외된 채 살고 있습니다.
마방진의 규칙을 따르면 어떤 숫자라도 풀 수있듯이, 이와 기의 조화,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가 조화를 이룰 때 만물이 평화로우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조화를 이루는 나라가 성리학의 이상국가입니다. 그의 조선은 백성 모두를 품는 조선입니다. 백성과 소통하는 조선이어야 했고, 소통의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지랄, 젠장, 우라질, 빌어먹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욕쟁이 괴짜군주 세종, 박학다식 논리정연한 논리로 대신들을 제압하는 세종, 그는 태종에게 자신했던 그런 조선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복잡한 마방진도 규칙에 따라 숫자를 배열하면 같은 답을 얻었듯이, 힘이 아닌 말로써 설득하고, 토론과 논쟁으로 합의점을 찾아가고, 백성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도 백성을 근본으로 삼은 성리학의 원칙으로 귀결됩니다. '누구를 위한 제도와 원칙인지'가 바로 선 나라, 세종이 꿈꾸는 조선의 대의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종영드라마 > 뿌리깊은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뿌리깊은 나무 6회' 강채윤이 감춘 군나미욕, 글자에 숨겨진 비밀은? (3) | 2011.11.12 |
---|---|
'뿌리깊은 나무 6회' 세종은 왜 똘복이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을까? (1) | 2011.11.12 |
'뿌리깊은 나무 3-4회' 세종대왕이 욕을 하는 이유 (1) | 2011.11.12 |
'뿌리깊은 나무 4회' 웃기는 세종 한석규, 허를 찌르는 완벽한 반전 (1) | 2011.11.12 |
'뿌리깊은 나무 3회' 서서히 드러나는 세종 이도의 야망 (2) | 2011.11.12 |
'뿌리깊은 나무' 신세경-장혁, 가슴을 적신 감동연기 (23) | 2011.11.11 |

최고의 반전, 가리온(윤제문)이 정기준이었다니....
뼈속까지 양반사대부인 그가 조선에서 가장 천한 백정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길을 걸어왔던 것에서, 그의 참혹하고 외로운 길이 강채윤과 세종 이도의 그것과 같았다는 글을 참 정성스럽게도 썼는데, 제작사측이 없애버렸군요.
이런 정리글이 삭제되어 참 분통이 터지네요. 이런 분석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드라마를 꼼꼼히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쉽게 저작권 침해라는 횡포와 행패에 가까운 행위로 싹둑 잘라 내버리지는 못할텐데, 개인적으로 마음이 불편하네요. 그외에 뿌리깊은 나무와 관련된 대부분의 리뷰글이 삭제조치로 블라인드처리되어, 지금 제 마음이 제 마음이 아니랍니다. 협조를 구해 다시 글만 복원하는 방법을 찾아 다시 복구는 해보겠지만, 영 씁쓸하네요.
앞으로는 글을 올리고 하루 뒤에 인용한 사진자료들은 다 삭제할 생각입니다. 사진없는 글이 드라마 리뷰를 보는 감흥을 떨어뜨리기는 하겠지만, 글 자체를 없애버리는 처사에 이렇게 대처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뿌리깊은 나무만 저작권 침해라는 이유로 삭제조치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천일의 약속은 그대로 두었던데 말입니다. 이는 SBS측보다는 제작사가 가위를 들고 있는 것같아 보이는데, 음,,,제작사 상당히 얄밉군요. 제가 인용한 사진으로 책받침을 만들어 팔아먹는 것도 아니고, 떡을 쪄 먹을 것도 아닌데... 다른 블로거의 글들은 무사한지 모르겠지만, 제 글은 지난 글들 모두 대부분 블라인드 처리되어 제가 표적이 되었나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속이 쓰려서 화풀이 좀 길게 했습니다ㅠㅠ.
남사철에게 놀아난 세종과 강채윤, 그리고 정기준 가리온
세종도 정기준도 강채윤도 시청자도 남사철의 자작극에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는데요, 남사철은 철저하게 사대부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꼴통 사대부였군요. 가부조사를 나가지 않으려는 남사철의 오줌 잘금거리는 공포심에서 비롯된 어마어마한 거짓말이 밀본의 본원을 드러내게 하고, 세종과 강채윤을 교묘하게 속이기 까지 했으니 말이죠. 가리온을 구출하기 위해 파옥을 단행하는 거사를 일으켰다면, 정기준이 정체가 세종과 강채윤에게도 들통이 났을텐데, 결국 소이와 강채윤, 세종이 합심해서 가장 큰 적을 구해낸 꼴이 되었으니, 일이 골치아프면서도 재미있게 되버렸습니다.
그나저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세종의 알송달송한 말을 채윤이 풀어가는 모습은, 그의 동물적 감각이 놀랍기만 했지요. 세종이 무휼에게 넌 못알아 들었잖느냐며 면박을 주고, 무휼을 뻘쭘 창피하게도 했지만, 저도 세종의 공포를 읽을 수 있느냐는 말이 처음에는 남사철 사건에 어떤 힌트였는지 이해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순간 세종은 머리를 잡고 큰 실수를 깨달았지요. 세종을 정신 번쩍 들게 한 것은 풍설이라는 단서였지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세종은 심온대감이 밀본이 아니었음을 확신했었고, 심온대감을 제거한 것이 왕권에 대항하는 밀본에 놀라, 힘을 가진 모든 세력은 숙청해 버렸던 이방원의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근자에 일어난 해괴한 일들을 밀본의 짓이라고 믿어버린 이도 역시, 아버지 이방원에게 잠재해 있던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강채윤의 함정수사에 말려든 남사철은 조말생 대감과의 협공으로 붙잡혔고, 그는 밀본도 뭣도 아닌 찌질이 겁쟁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우라질 같은 놈이 다 있단 말이냐!", 세종의 한마디가 그를 정리해 주더군요.
세종은 가리온을 구명하기 위해 소이에게 겸사복 강채윤을 만나라고 하지요. 가리온의 무죄를 밝혀달라는 소이의 청에 강채윤은 냉소적입니다. 사건 당일 소이는 어명을 받고 가리온을 만났었고, 세종의 밀명이 드러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가리온을 구명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채윤이었지요. 국가 대사를 위해 천한 목숨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비꼬는 채윤에게, 소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요. "왜 때죽나무와 산조인을 섞어 먹느냐 하셨죠? 어린 시절 나의 치기로 아비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전하의 대사는 전하의 것만이 아닙니다. 저의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자고 싶습니다. 벗어나고 싶습니다. 구해 주십시오".
자신과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잠 못이루는 소이, 채윤은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애틋하고 가련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그녀를 말이지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두 사람이지요. 나인 소이가 어린 시절 시집오겠다던 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강채윤은 얼마나 놀랄 것인지, 서로를 죽은 줄만 알고 있던 두 사람이 언제쯤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지....
잠시 상념에 잠긴 듯하더니 세종 이도가 입을 열었지요.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왕이 외었을 때, 모두가 내게 대의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했다. 또한 왕은 그래야만 한다고 했고...헌데 내가 대의로 한 것을 두고, 어떤 놈이 '지랄하고 자빠졌네'했다. 그 자가 바로 강채윤이다.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자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더냐, 그래서 그 자다. 또 한 명의 판관, 가장 무서운 자,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자".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세종 이도와 정기준의 차이는 그들을 지탱하는 뿌리의 다름입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밀본지서를 금과옥조로 삼고 사대부들을 뿌리로 세우려 했고, 세종은 똘복이와 같은 백성이 뿌리가 되어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랐습니다. 한글은 세종이도가 백성에게 가는 길이었습니다. 백성을 얻는 방법이었고, 백성을 받드는 길이었고, 백성을 위하는 길이었습니다. 세종이 그 오랜 시간 비밀조직 천지를 이끌면서 집현전 학사들에게 조차 실체를 밝히지 않고, 홀로 외로이 걸어왔던 길, 백성에게 향하는 길이었지요. 그것이 세종의 대의였습니다.
정기준이 가리온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예상은 했지만 아이러니한 그의 모습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더군요. "백정의 목숨은 파리새끼 버러지 목숨입니다"라고 했던 말이었어요.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을지, 궁여지책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는지 모르겠어서 말이지요. 국가를 왕-사대부양반-양민-천민 등 철저한 신분계급에 따라 성리학의 질서를 대입시켰던 것이, 이들 유학을 숭배하던 성리학자들 아니었습니까. 신분을 감추고 백성들 사이에 몸을 숨긴 정도전이 반촌에 숨어든 것은 공자의 사당이 그곳에 있었고, 성리학의 요람이자 성지이기 때문이라는 설득력은 있지만, 천민들이 모여사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에서 이율배반적이지요. 사람 취급하지 않은 천민들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점, 과연 정기준은 그들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변화는 없었을까가 자못 궁금하기만 합니다.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강채윤을 가장 무서우면서 가장 믿을 만한 자이며, 가장 멀리있는 자라고 했지요. 강채윤은 돌복이로 대변되는 세종의 백성을 상징하겠지요. 임금이라는 자리는 백성의 말을 가장 무서워 해야 하는 자리이며, 백성의 믿음 위에 서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요. 임금과 가장 멀리있으나 가장 무서운 자, 백성을 두려워 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못지않게 군주가 지녀야 할 기본덕목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모든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 측에 있습니다.
'종영드라마 > 뿌리깊은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뿌리깊은 나무 11회' 세종의 반전, 가리온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14) | 2011.11.10 |
---|---|
'뿌리깊은 나무' 장혁, 어린 똘복이의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 (17) | 2011.11.05 |
'뿌리깊은 나무 10회' 세종의 마지막 판관이 중요한 이유 (23) | 2011.11.04 |
'뿌리깊은 나무' 충격반전, 윤제문(가리온)도 천지계원? (54) | 2011.11.03 |
'뿌리깊은 나무 7회' 과격한 세종, 사극사상 이런 파격은 처음 (27) | 2011.10.27 |
'뿌리깊은 나무' 송중기(이도)의 난, 아버지와 다른 나의 조선은... (6) | 2011.10.11 |


- 이전 댓글 더보기
-
푸른소 2011.11.04 09:26
열혈독자의 한사람으로 누리님의 속상한 마음에 저도 마구마구 신경질 납니다..ㅌㄷㅌㄷ
사진이 않된다면 글이라도 꼭 되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희의 독백에 참 울컥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림을 굳게 믿은 세종님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스의 구제금융 사태를 보면서...
사연이야 어떻든 우리가 맞은 IMF 때를 생각하게 하더군요...
후유증은 좀 오래 남았지만 국민 모두 금이라도 모아서 빚부터 갚아보자고
힘쓰던 뿌리들의 힘을 말이지요...
집현전부터 없애버리자는 정기준...결국 세종님의 신념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겠지요...
힘내세요...누리님!!! -
river 2011.11.04 12:23
이미 창제되어 있는 한글에 유일하게 미진한 부분이 '후음'이라는 것과 가리온의 직업이 '백정'이라는 점이 절묘한 장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글창제와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걸 어떻게 아셨을까? 상상으로 될 성질이 아닌데'라며 궁금해 했었더랬습니다. 후음을 실제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이 '백정'이었을테니 참으로 절묘한 장치겠지요. 게다가 '내가 너무나 무서워하는 판관'이라는 왕의 말은 '이미 알고 계셨구나'라는 짐작도 해보게 합니다. 참 오랫만에 명품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모모10 2011.11.04 14:07
공자의 사당이 아니라 문성공 안향의 사당이 아닌지요....조선에 성리학을 들여온 분....
그리고 세종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 아니라...백성들로 부터 올라오는 민주주의와 신권에 의한 독재의 대립인 것 같습니다. 세종은 백성들의 생각과 의견을 말뿐만 아니라 글로서도 듣기를 원했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였으나 사대부들은 그것을 끝까지 반대하면서 자기들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니 말입니다. 세종, 문종까지..보면 왕권을 강화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항상 신하들에게 묻고 맞기고 아니라면 계속 다시...하는 그런 모습이죠. "믿었으면 맡기고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으니깐요. 그런상황에서 세조가 결국 왕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키는데...결과는 왕권이 그 이후로 계속 약화되는 모습만 보이게 됩니다. 결국 세종의 민본주의가 가장 강한 왕권강화의 방법이기는 하다 생각됩니다. -
뷰티살롱 2011.11.04 17:04
저도 요즘 SBS의 저작권 시비로 몇개의 글을 블라인드 되었는데, 다른 유명 연예블로거님들은 '화면캡처를 그냥 사용하네?'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드랬어요. 지난 무사백동수 글 포스팅 5~6개를 몽땅 블라인드 되어서 속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뿌리깊은 나무> 시청하면서도 아예 포스팅 하지 않고 있는 1인이랍니다. 간만에 한개의 글을 포스팅하기는 했는데, 아마도 다음주경에는 다시 저작권침해로 블라인드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작권 저작권 뜻을 알고 하는 짓거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 글 잘읽고 동감하는 바예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