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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12 '추노' 무거운 사랑에 가벼워진 혁명 (27)
가장 큰 줄기는 대길이와 언년이의 쫓고 쫓기는 안타까운 사랑이겠지요.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 그 사연 하나만으로도 추노라는 소재는 성공적인 사극멜로드라마지요. 그러나 혁명을 얘기하기에는 의미가 퇴색해 버렸습니다. 혁명보다는 사랑에 그 무게중심이 쏠렸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추노에서 말하고자 하는 혁명은 실패입니다. 원손 석견을 왕위에 세우고자 하는 것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고, 혁명의 중심인물로 세운 송태하를 영웅적인 인물로 그리지 못했다는 점이 두번째 실패 요인입니다.
우선 원손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혁명이 실패한 첫째 이유라고 했는데요, 원손을 왕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것은 정통성이라는 명분싸움에서는 합당한 혁명의 논리가 되겠지만, 드라마 추노에서는 그 외의 것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린아기가 세자가 되고 다음 보위에 내정된 것은 조선 왕조사에서 수없이 있었던 일이기에 새로울 것은 없는 일입니다. 원손 석견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인조의 적장자인 소현세자의 아들이라는 점이겠지요. 소현세자가 청의 볼모로 잡혀가서 8년만에 조선에 돌아와 두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기에, 그리고 독살이라 의심되는 부분때문에 석견을 왕위에 옹립한다는 것은 타도의 대상이 그 의문의 중심에 있는 패륜적인 왕 인조라고 볼 수 있겠지요.
송태하가 스승이라 따르는 임영호는 이름만 드높았을 뿐 어떤 사고를 가진 인물인지 드라마에서 드러내 준 것이 없기에 그를 따르는 유생들과 송태하와 부하들은 임영호 팬클럽 회원쯤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드라마 추노의 혁명관의 실패는 임영호라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기에 오는 혼란일 것입니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이재준 대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가장 영웅적으로 그려졌어야 할 송태하가 가장 답답한 캐릭터로 나오고 있으니, 도망노비나 쫓는 추노꾼 이대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요. 언년이에게 약속한 앙반 상놈 없는 평등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사 하나로도 이대길은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 돼버렸고, 정작 새로운 세상을 세우겠다, 역사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았던 송태하는 원손과 언년이를 데리고 조선팔도를 도망치는 신세만 되고 말았어요.
20회에서 호기심 많은 언년이는 송태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지요. 대길이랑은 왜 같이 다니게 된 거냐? 여기에 얼마나 머무실 요량이냐? 청에서 무엇을 배우셨는냐? 승하하신 저하는 어떤 생각을 하셨느냐? 등등... 언년이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차게 물어봤지만 송태하는 이번회에도 답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멋드러지게 칼을 꺼내 뭔가 결심한 듯 폼만 잡다 말았어요. 이러니 시청자가 한 번 예상해보라는 질문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제작진이 송태하의 갈 길을 송태하의 입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 근 10여회를 뜸을 들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제가 송태하라면, 아니 작가라면 어떤 방향으로 송태하의 앞길을 그릴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저는 송태하의 생각이 그 테두리가 작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처음 원손을 왕위에 세우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큰 테두리의 혁명이 아니라, 그가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송태하 나름의 각성이고 혁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 중심에는 원손과 부인 언년이가 있겠지만요.
그런데 송태하의 말이 크게 달라진 곳이 두군데가 있었어요. 하나는 대길이 앞에서 내 부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감옥에서나 그 이전에는 항상 "내 부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그냥 부인이라는 호칭을 썼다는 점이에요. 대길이와 언년이와의 관계를 알게 된 연유이기도 하겠고, 대길이에 대한 감정적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거리감도 느껴지더군요. 자신이 지금 하려는 일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을 때를 대비한 말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내 부인이라는 말로 언년이는 자신의 여인이라고 굳이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대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같기도 하고요. 물론 억지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는 송태하의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송태하는 더이상 원손을 내세운 혁명이라는 기치를 걸지 않겠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니까요. 이는 송태하가 언년이 노비였음을 알고 난 이후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각성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태하는 왕을 새로 세우겠다는 혁명가에서 백성을 지키는 혁명가로 거듭나고, 그 현장에서 죽고자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송태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은 듯 보입니다. 원손을 왕위에 세운다느니 썩은 정치를 갈아엎겠다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이 노비로 떨어져 살아본 그 민초들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월악산에 모여든 막바지 인생들, 그 민초들 역시 자신이 보듬고 가야 할 백성이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의 범주에 넣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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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에서 온 여자 2010.03.12 11:00 신고
추노 이제 4회만 남겨 놓고 있네요.
앞으로의 얘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대충 감이 잡힙니다.
잘 읽고 가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
옥이 2010.03.12 12:47
송태하가 이제 노비에 대해 혁명을 생각하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그래두...추노는 군데군데 사람냄새가 나서 좋은것 같아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추노팬 2010.03.12 15:35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이 이 드라마의 주제와 연결되는 거 아닌가 싶네요.
그 둘의 사랑이야말로 거창한 이상보다
더 이루기 힘든 것이니까요.
유교적 질서를 다 무너뜨려야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잖아요?
그 둘은 지금도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기에 더 그렇구요.
언년이는 송태하의 아내로 양반집 부녀자 행세를 하지만
사실 속내가 그렇지만은 않을 거 같거든요.
그 둘이 유교적 속박을 뛰어넘는 사랑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겠지요.
이 드라마가 대길과 언년의 사랑이야기에서 시작되고
또 대길이는 언년이때문에 추노가 되었고
그녀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대길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송태하가 죽어야 가능한 이야기이겠지만은요.-
노비낙인 2010.03.15 12:16
정작 얼굴에 노비낙인이 새겨진 노비 업복과 초복..은 죽게될것같은데...업복이얼굴에 노비낙인이새겨지게하고 잡혀온 도망노비들의 피눈물을 머금은 이천의 집과 전답..언년에대한사랑으로 노비들을 고통스런삶으로 다시 몰아넣은 대길과 혜원이 행복해진다면..세상을바꾸는 씨앗이 아닌 세상에 대한 씁쓸함을 느끼게되는게아닌가요?수단방법가리지말고 타인의 피눈물을흘리게하더라도 개인의행복,목표만 이루면된다는걸보여주기위함이 추노가 보여주고자하는게아닐텐데여..(여자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자신이 기억하는사람은 사랑하는여인을위해 세상을바꾸겠단 용기를가졌던사람인데 정작 그의 삶과해온일은 정반대되는 삶과 일을 해왔거든여?추노꾼이란것을알게됐을때..추노꾼자체에 혜원이가 문제의식이 전혀없다면..나혼자만 잘먹고잘살면 그만이란건지..남에게 어떤일을해왔든..(자신땜에 추노꾼이된것을 가슴아프게생각하는것과는별개로)대길이는 혜원을 사랑하기때문에 계집종 언년이.보단 송태하의아내 김혜원으로 살아가길바라지 되돌릴려고하지않을것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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