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해'에 해당되는 글 4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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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31 '미스리플리' 충격변신 이다해, 두 얼굴의 가면 누가 씌웠나? (6)
- 2010.04.18 '하이킥 결말 처참했다', 신세경의 고백을 보고 (49)
- 2010.03.28 '추노' 언년이 캐릭터 실패 이유 네가지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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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무죄추정의 원칙'... 어춘심을 살해하고도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갔던 민준국(정웅인), "망할놈의 원칙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그 원칙을 혐오하던 사람이 그 원칙으로 한 사람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필사적으로...".
코끼리 퍼즐을 예를 들어 최후변론을 한 서도연 검사의 말도 쉽게 이해되었고,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장혜성의 변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도연 검사가 예시했던 사건의 피해자가 혜성의 어머니였다는 것을 밝히면서 까지 수하의 무죄를 주장한 장혜성, 민준국이 빠져나갔던 것과 같은 법의 원칙에 근거해 수하는 무죄판결을 받고 나오게 되었지요. 휴~~ 다행. 수하의 선고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일주일이 참 길었다우~
박수하를 목격했다는 신고자 문성남을 찾아간 서도연, 그리고 도연과 과일가개 아줌마를 지켜보고 있는 민준국의 등장으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했죠.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살해당할 가능성이 커보이기는 한데, 뒤를 캐고 다니는 과거 11년전의 또다른 목격자 서도연(이다희)도 민준국의 범행대상에 오를 것 같아 불안하군요. 곧 형집행정지로 풀려날 것이라는 황달중 역시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수하의 공판은 5:4라는 배심원 평결이 나왔지만, 아내를 토막살인했다는 죄목으로 25년째 감옥에서 살고 있는 황달중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마치 남일 얘기하듯 자신의 머리가 뭐가(뇌종양?) 생겨 형집행정지로 다음 주면 나가게 될 거라는 황달중, 뒤에 이어진 황달중의 미소가 너무 맑고 좋아보여서 슬펐습니다. "박수하 그 친구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친구는 나처럼 살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민준국에게 왼손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증언으로 수하에게 유리한 증인이 돼주기도 했던 황달중, 그는 25년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지만, 수하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만족해 하는 그의 미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혜성의 최후변론 마지막 말이 가슴께에 얹혀오더군요. "(무죄임에도) 인생의 빛나는 시간을 감옥에서 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망할 놈의 원칙(형법 325조)이 필요한 겁니다. 제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놔 준 개떡같은 원칙이지만, 또 그 원칙이 피고인을 살릴 수 있는 지푸라기같은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울음을 꾹꾹 참으며 최후변론을 마치고 나온 혜성은 끝내 화장실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지요. 어머니를 죽인 살인마를 내보내야 했던 법이었는데, 수하를 살리기 위해 그 원칙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자신이 잘한 일이었냐고 물으면서 말이죠. 우리가 흔히 법대로 하자는 말을 하는데, '법대로'라는 말, 적용되는 사례는 하늘과 땅차이의 결과로 나오는군요.
김공숙(김광규) 판사도 이번 재판은 개운한 마음이었을 듯 합니다. 지난 번 민준국 재판때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볼 일보고 뒷처리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온 듯한 표정이더니 말입니다.
무죄판결을 받고 법원로비에 우두커니 서있는 박수하,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직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수하에게 세상은 망망대해 같았을 겁니다. 수하의 집주소를 알고 있던 혜성이 수하를 아파트까지 데려다 주지만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수하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열쇠수리공을 기다려야 했지요.
30분안에 온다는 열쇠수리공을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혜성은 세상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죠. 자신의 어깨에 잠든 혜성의 머리를 기대주는 수하, 재판중 메모를 하던 혜성의 왼손바닥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수하입니다. 참 고마운 손입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참 좋은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혜성의 손에 입을 맞추는 수하, 마치 숭고한 의식을 치루듯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하는 손키스에 가슴이 벌렁...
온 마음이 담아 잠든 혜성에게 전하는 수하의 마음, 혜성의 손을 잡고 감사의 키스를 한 일이 벌렁할 일이 아니었는데, 너무 숭고한 의식같아서 뭉클했는데도, 수하(이종석)땜시 덜컹했네요. 요즘 이 어린 남자에게 제 마음도 홀라당 빠지고 있는 중이라...ㅎ
충기에게서 건네받은 일기장, 완전히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퍼즐 한 조각처럼 장혜성과의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한 수하입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도, 혜성에 대한 기억이 없음에도 혜성을 보면 자석처럼 수하 마음이 따라가죠.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 망망대해같은 세상에서 수하의 손을 잡아줄 단 한사람처럼 느껴지는 수하입니다. '난 당신을 잊지않았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면 내가 꼭 지켜주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어느 날 적어둔 자신의 일기, 일기속의 당신이 장변임을 수하는 알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었어도 가슴은 그녀를 기억하는 수하입니다.
이종석의 담백한 내면연기가 참 좋더군요. 자신의 감정을 다 표출하지 않는데도 이종석의 졸린듯 촉촉한 눈빛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고, 감정을 싣기보다는 착잡하게 내뱉는 대사톤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목소리가 매력적입니다.
물론 어린 연하남 수하에게 빠지고 있는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애써 부인해보고 수하와 거리를 두고 피하려고 해보지만 혜성도 수하를 좋아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지요. 재판이 끝나고, 수하의 무죄를 끌어내면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느냐고 다시 묻겠다던 차관우 변호사를 피하는 혜성, 화장실 앞에서 차관우를 보고 잽싸게(완전 티나게 ㅎㅎ) 몸을 숨겼지만, 들켜버렸지요. "내가 안되는 이유, 물어봐도 돼요?", "내가 말도 안되게 어이없게도 그 애가 자꾸 신경쓰여요. 정말 말도 안되게 내가 그 애를 좋아하나봐요".
혜성은 수하를 좋아하게 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수하를 피해다녔죠, 사무실로 찾아온 수하때문에 책상밑에서 발에 쥐가 나도록 숨어있어도 보고, 김공숙 판사의 가운을 방패로 거리에서 엉덩이를 쭉 빼고 숨어걸어가기도 했고, 수하에게 절대로 연락하지 말라는 포스트잇까지 붙여두고 왔지만, 수하를 그녀 마음에서 밀어내지는 못했더군요.
결국 회전문에서 수하에게 꼼짝없이 잡힌 혜성, 수하에게 모진 말로 거리를 두려고 하지요. "널 피곤할 정도로 싫어했어. 니가 아니라 민준국이 나한테 특별해서 열심히 변호한거야. 네 덕에 변호사가 뭔지 알게 된 것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치만 거기까지! 그니까 너도 여기까지!!".
수하와 만나기를 불편해 한다는 눈치를 채고 있었던 차관우의 구조전화로 수하를 두고 커피숍을 나와 도망치듯 택시를 타고 가버린 혜성, 혜성의 귀에 수하의 말이 자꾸 맴맴 돕니다. "가지마요, 가지마".
커피숍에서 수하에게 모진말을 해주고 돌아서 버렸던 혜성, 차관우가 집까지 바래다 주었는데, 결국 나가고 말았죠. 억수같이 비가 오는데, 그 바보같은 녀석은 아마도 그 자리에서 꼼짝않고 혜성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혜성은 기억도 못하는 약속을 지킨다고 10년을 찾아 혜성 앞에 나타났던 그 녀석, 그 녀석의 쇠심줄같은 고집, 그 멈추지 못하는 사랑을 혜성은 이미 알고 있거든요.
"진짜 미치겠다, 너를 어떡하면 좋으냐...", 비를 쫄딱 맞고 커피숖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수하, 혜성의 가슴이 철렁합니다. '안되는데, 이건 아닌데... 어린 널 좋아하고 있는 나는 어떡하면 좋냐... 니가 아니라 내 마음이 날 겁나게 한다, 수하야'.
수하가 웃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웃고 있습니다. 떨어뜨린 우산을 주워 혜성에게 씌워주면서 수하는 웃습니다. '와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기억은 잃었어도 내 가슴은 여전히 당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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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를 본 소감은 스토리 전개는 빨라서 좋았는데, 연출과 편집이 산만한 느낌이었습니다. 남녀 주인공들이 얽히는 과정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억지스러움이 많았죠. 같은 고시원에서 장미리와 박유천이 만나는 장면도, 아트홀에 면접을 보러갔다가 성추행을 당하고 나온 장미리와, 피아니스트 아내의 불륜현장을 보는 장명훈(김승우)과의 첫만남도 헐거워 보이는 전개였습니다. 장면이 급작스럽게 다른 인물로 옮기는 것이 반복되어, 스토리가 다소 정신없이 전개되었고, 교차편집이 지나치게 반복되다 보니, 연출은 산만하고 스토리 흐름도 들쑥날쑥해서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미스 리플리는 바닥인생의 한 여자에게 천우신조같은 고속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세상아 엿먹어봐라'는 듯 세상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엘리베이터를 타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속인 것이 아니라, 너희가 속은 거야' 라며, 세상을 조롱하고 싶은 여자, 이 여자의 거짓말에 세상은 조롱거리가 되고, 그럼에도 잘못은 너의 거짓말에서 시작되었다고, 손가락질 받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아, 그럴 것 같다고요. 신정아의 사건이 말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저는 그렇게 봤거든요.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서 드라마 메시지도 이런 것이 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포주에게 겁탈을 당하려는 위기를 모면하고, 건물에 화재사고를 내고는 한국행 비행기를 탄 장미리, 토악질을 해가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번 이유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입니다. 양아버지의 노름빚을 갚고 한국으로 가서 엄마를 찾으려는 장미리, "최소한 이렇게는 안살 거 아냐..." 한국이라는 나라는 밑바닥 술집여자보다는 다른 인생을 살 기회를 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가진 것, 배운 것없는 그녀는 냉대를 당합니다. 고아에 고졸학력은 장미리가 어떤 재능을 가졌든 문전박대의 이유가 돼버립니다.
양아버지가 진 노름빚을 갚기 위해, 사창가에서 술팔고 웃음을 팔았던 장미리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취업비자없이 한국에 장기체류할 수 없는 장미리, 장미리가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길은 취업해서 비자를 취득하는 방법뿐입니다. 취직은 그녀의 절박한 희망이 셈이죠. 그러나 고아출신, 고졸학력은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기 만큼 힘이 듭니다. 여기저기 면접을 다니지만, 그녀를 채용하겠다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그녀의 운명을 가른 한마디는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였습니다. 앞뒤토막 다 자르고 동경대 나왔다면 취사선택해서 들어버리는 장명훈, 장미리는 순간 동경대 나온 인재가 돼버린 것입니다. '세상 재미있다, 될대로 되라지, 동경대가 별거냐?' 처음에 오해한 것은 장명훈 당신이야.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12글자에 불과한 말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말이 돼버리지요. 듣는 사람의 오해에 말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절박함에 거짓말이 시작되고,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가기만 합니다.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다른 거짓말이 필요했고,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장미리의 모습은 진짜와 가짜가 뒤죽박죽돼 버리겠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도 모르게 섞여버리죠.그녀의 첫번째 거짓말,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는 '동경대를 나왔다'로, 장미리는 동경대 출신인재로 가짜 학력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녀에게 가면이 씌워진 거죠. 그녀의 학력가면을 누가 씌웠는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과 함께 말이지요.
첫회 직업여성의 모습부터 냉소적이고 까칠한 모습까지 미스 리플리 신고식을 무사히 치룬 이다해, 바닥까지 떨어진 장미리의 심리변화를 잘 표현했고, 감정처리도 무난하게 해냈습니다. 아직은 영글지 않은 장미리라는 캐릭터임에도 그렁그렁 맺힌 눈물만으로도, 희망없는 세상을 향한 비참함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아하면서도 슬픔과 청초함이 돋보이는 눈매를 가진 이다해, 장미리라는 복합적인 인물에 캐스팅된 것은, 이다해에게는 연기변신의 큰 분수령이 될 기회를 잡은 듯합니다.
***덧붙이기: 기대되는 박유천
성균관 스캔들로 연기자로서도 제2의 인생을 출발한 박유천은 첫회 분량은 적었지만, 다정하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같더군요. 최명길의 아들로 나오는 것을 보면 재벌가의 아들인데도, 가난한 고시원에 짐을 푼 것이 좀 의아하더군요. 나레이션을 통해 짐작한 바로는 최명길(이화)의 친아들은 아닌 듯하고, 복잡한 가정사가 숨겨있는 듯보이더라고요. 일본에서 돌아와 고시원에 방을 구하는 것이 조금 현실감이 부족해 보였지만, 장미리와의 만남을 위한 설정이라고 보여졌습니다.
세상을 향해 가면을 쓰기로 한 여자 장미리, 가면 속의 얼굴을 두 남자가 봅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되겠죠. 첫장면에서 장미리의 해맑은 웃음 위로 흐르는 두 남자의 나레이션으로 표현되는 여자는 가면 속 장미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두 남자가 사랑한 장미리지요. '어머니의 눈을 닮은 여자, 웃는 얼굴이 예쁜 여자, 삶의 기쁨을 가르쳐 준 여자, 심장같은 여자...'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또다시 묻게 될 듯합니다. 그녀에게 가면을 씌운 사람은 누구일까 입니다. 거짓의 가면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장미리라는 여자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의 질문이 되겠지요. 장미리의 거짓말이 나쁜 것인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게 한 학벌병에 걸린 우리 사회의 단면이 더 나쁜 것인지, 다소 버거운 질문에 얼마나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지는 드라마가 끝날 즈음에 나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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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아저씨 2011.05.31 12:42
ㅎㅎㅎ 요거 어제 멋모르고 티브이 틀었더니 호텔에서 김승우 나오고 하고 싶은데로 하게 놔둬~ 하는장면~
이프로 였군요~~ 조금 보다가 다른곳으로 돌렸는데~ㅎㅎㅎ
좀더 볼걸~ㅎㅎㅎ
추노가 끝나고 이다해와 오지호의 인터뷰를 보니 극 결말에 자신들도 죽고 싶었었다고 하더군요. 주인공들의 죽음은 그만큼 강렬한 여운을 남기기에 그런 욕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 다 죽을 수 있는 상황들이었어요. 황철웅과 관군들에 의해 쫒기는 상황이었고, 삶보다는 죽음이 더 가까웠던 절박한 상황이었지요. 그럼에도 작가는 희망을 남주고 싶은 이유로 대길에 의해 이들을 지키게 했어요.
그런데 세경과 지훈의 죽음은 거창하게 각성이라는 말로 포장은 했지만, 죽음으로 이어질만한 숭고한 사랑도 아니었고,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그런 무게를 가진 사랑도 아니었어요. 더구나 지훈이 각성했다고 까지 붙일만큼의 뒤늦은 깨달음도 아니었고요.
하이킥 결말의 문제는 각성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준에다 죽음을 끼워넣었다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차라리 황당스럽게도 공항가는 길에 빗길사고로 죽어버렸다는 식의 설정이었다면, 충격까지는 아니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재수없는 사고사를 당해 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결말 역시 납득이 가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각성이라는 말로 시청자를 우롱했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이웃 중에 하이킥의 결말을 본 이후 충격에 그 후 드라마 리뷰글을 더 이상 올리기 싫어졌다는 분도 있고, 하이킥 팬 중에는 그동안 받아 두었던 파일들을 전부 삭제해버렸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모든 분들이 결말에 허무감과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이킥의 충격적인 결말에 대한 후유증이 컸다는 것은 그만큼 하이킥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와 파급효과가 컸음을 반증하는 예일 것입니다.
그런데 극중 세경의 행복 우선 순위는 뭐였을까요? 처음 하이킥의 제작의도에서 밝힌 것은 세경의 성장이었어요. 그리고 세경은 서울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의탁할 곳 없는 동생과 다행스럽게 순재옹네 집에서 가정부 생활을 하며 적은 월급이지만, 그돈으로 신애 뒷바라지할 적금도, 그리고 못다한 공부를 계속할 꿈도 키우고 있었어요. 지훈에 대한 지독한 짝사랑으로 세경이 힘들기도 했지만, 세경은 봄이 오면 아버지와 함께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도 가지고 있었어요.
이런 세경의 강한 모습에 세경의 행복을 열렬히 응원했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지훈이 못돼 보이기도 했었지요. 저도 처음에는 지훈이와 세경이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훈이 정음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고,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굳이 사랑하는 사람을 세경의 시선에서 떼놓으려고 하는 것이 무리다 싶어 지훈과 정음을 지지해 주기로 방향을 틀었어요. 왜냐면, 세경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에서 지훈과 세경의 러브라인을 지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훈의 입장에서는 정음과 사귀는 것이 행복한데 지훈에게 세경을 봐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내가 좋아하는 세경이라는 애가 지훈이 너를 지독히 좋아한다, 그러니 너도 세경이를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신세경의 충격고백, 의미가 큰 이유
주인공이었던 신세경이 하이킥 결말에 대해 돌이켜보니 처참했다고 한 고백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세경이 죽음으로 가자는 결말을 제의했든, 감독의 의견에 따랐든 신세경이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을 때, 저는 배우 신세경 개인에 대해서 안티가 되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20살밖에 안된 여배우의 생각이 이뤄지지 못할 사랑에 대해 죽음이라는 소아기적인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충격이었거든요. 따지고 보면 지훈과 세경이 죽음으로 맞설만큼 이뤄지지 못할 상황도 아니었어요. 까놓고 지훈이 세경을 좋아하고 있었다고, 그 우습지도 않은 각성을 했다면, 세경을 데리고 도망이라도 쳤을 수 있을 것이고, 가족들에게 당당히 폭탄선언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지훈이 각성했기 때문에 일부러 자동차 사고를 내고 세경과 동반죽음을 택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 점에서 신세경이 늦게나마 하이킥 결말에 대해 처참했다고 말한 기사를 접하고 신세경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덜어낸 것 같습니다. 신세경의 하이킥 결말에 대한 고백은 김병욱 피디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김피디 작품의 결말이 하나같이 죽음이 나오지 않은 것들이 없었고, 충격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에 끔찍하기도 했었는데, 그 중 지붕뚫고 하이킥이 가장 끔찍했었거든요. 김피디는 감독으로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세경의 고백에 귀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서 죽음으로 결말을 내는 것은 많이 있고, 흔한 장치들입니다. 하지만 하이킥의 경우는 죽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사랑의 자각이라는 문학적 감수성을 죽음의 무게와 동일선상에 놓아 버렸기에 위험하기까지 한 결말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죽음이 삶의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각이었든 진실한 사랑이었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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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2010.04.18 21:26
하이킥의 결말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사람들만
인터넷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듯 하네요~
시청자의 입맛대로 구성하는 작품이 있으면
제작자 입맛대로 구성하는 작품도 있으면 안될까요??
머랄까..
사랑이 크기 때문에 억지를 쓰는 느낌..
비난은 약간 무리수인듯^^
저는 상당히 괜찮은 결말이라 생각했기에^^ -
흐음 2010.04.18 23:26
저도 감독의 소년적인 감수성에 실망했다는 점은 정말 동감합니다!!!
당황스러웠어요 저도 어린시절엔 특히나 그랬었죠
비극을 좋아하고 더 높은 작품성에 대한 경외가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해피엔드가 언제가 가볍고 우스운 건 아니었어요 ㅋ
어렵고 우울해야지만 멋진 작품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지요 20대 초중반쯤 되니
그런 것들이 슬슬 알아지더라구요 ㅋ
노희경작가의 책을 샀더니 그런 부분이 있더군요 자기도 그랬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 그러신 듯 했어요 지난날의 치기어림에 민망해하면서 글을 쓰셨더랬죠
그래서 김병욱 감독의 다른 센스를 좋아하지만 엔딩을 구상했을 그 모습에 어찌나 ㅋ
어이없고 웃기던지.. 글 잘 읽고 갑니다 ㅎ -
hhh2046 2010.04.18 23:34
산골소녀외 다른 인물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품을까 했던 시청자들에게
멋지게 하이킥해주시고 시트콤 자체를 끔찍하게 만들어버렸죠
신세경양이 좋은 배우이고 앞으로 더 커갈 배우임은 확실하나...
사실 종방연 인터뷰나 여러차례 인터뷰를 봤을때
어느 분의 말씀따나 자신 캐릭에 대한 애정도가 부족해보이더군요
아니면 여운을 남길 결말을 남겨 배우로써 남을 커리에만 집중했거나...
신세경이란 배우는 자신이 맡은 세경이가 오로지 사랑에만 목메서
가족간의 행복을 모두 잊은채로 죽음을 맡기전 사랑하는 사람과 있는게
세경이만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다니 씁쓸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이 달라졌는진 모르지만
전 솔직히 한동안 일었던 파장 때문에 결말에 대해서 다시금 인터뷰한건 아닐까 하고 생각되네요
어쨌거나 시청자들에게 파문을 던졌던 결말이니까요 -
23 2010.04.19 03:30
한가지 걸리는게
결말도 결말이지만
세경이 직접 그 결말을 제시 했다는 찌라시 기사 한줄 때문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세경을 비난한건 참 보기 좋지 않았어요
인터뷰를 통해 세경입에서 직접 나온 말도 아니었고
출처불분명한 기사 한줄에 사람들은 세경을 '혼자 주목을 받으려하는 이기적인 배우'로 각인 했죠.
세경은 그당시 극중 '세경'에 몰입중이었고, 또 완벽한 몰입을 위해서 주어진 상황을 스스로 정당화
하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건 혼자 돋보이려는 이기심이 아닌, 배우로써의 책임감이었죠.
찌라시 기사 때문에 마녀사냥하듯 (초록누리님께서 그랬다는게 아닙니다) 우르르 달려가서
비난하다가 이제와서 그녀를 용서하네 마네 하는것 보기가 씁쓸하네요. -
다른 생각 2010.04.19 04:07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말에 분노합니다.
저도 결말이 씁쓸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에서는 최선이었다고 보는 쪽입니다.
감독이나 작가는 등장인물의 아주 세세한 부분을 설정하게 됩니다.
성격에서 과거의 삶, 그리고 예측가능한 미래까지 ...
세경이의 미래는 정말 암울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세경이 이민을 가지 않는다면 야주 약간의 긍정적 변화를 가질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낯선 땅으로 이민을 선택하지요.
거기서 그녀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진거죠.
이민후에 그녀가 선택할수 있는 직업은 지금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을수 없지요.
아버지를 위해서 동생을 위해서 그녀는 점차 더 나락에 떨어지는 희생의 길을 택한 겁니다.
그녀에게 지훈과의 동행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입니다.
감독은 그 순간에서 멈춰주고 싶었던 거죠.
지훈이라는 인물은 강한 것 같지만 실제론 소심하죠.
그는 결코 세상의 편견을 무시하고 세경을 선택할 정도의 인물이 아니예요.
이기적인 아버지와 속물적이고 과격한 누나에게 대항할 힘이 그에겐 없어요.
락커 등 그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려고 했을 때마다 누나에 의해서 나가 떨어졌던 인물이죠.
그도 세경처럼 자기가 원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내면의 고독을 끌어앉고 있던 존재이고 그런 면에서 세경에게 공명과 각성을 한거죠.
그의 세경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세속적인 사랑과는 다른거지요.
지훈이 정음을 사랑한 것은 사실이고 정음의 현실을 알게된 그가 정음을 버리고 세경과 새로운 인생을 살 만큼 모질지도 모험적이지도 않아요.
그런 선택을 하는 순간, 순재는 물론이고 정음에게도 날을 새웠던 현경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는 자명하죠.
한마디로 그때부터 신파조의 막장 드라마가 되는겁니다.
사고가 안났다면 그는 세경을 어설프게 바래다 주고 다시 복잡한 마음에 정음에게 갔을 겁니다.
그러면 세경을 제외하고는 조금은 해피엔딩이겠죠.
몇일전 지훈이 세경에게 자기가 붙잡으면 가지 않을거냐고 묻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하죠.
겨울은 이미 지나고 다 결정된 미래였습니다.
거기서 선택할 세경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어쩔수 없이 그 차안입니다.
개인적으로 차 사고가 났다는 뉴스 장면을 삭제하고 그냥 좀더 모호하게 보여줬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랬다면 시청자들은 각자의 도피처로 향하겠죠.
둘만의 도주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거고 그러면서 지훈의 정음에 대한 배신을 비난하기도 하겠죠.
pd는 그런 쉬운 도피는 허용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씁쓸합니다. -
1234 2010.04.19 06:13
저도 개인적으로 하이킥 씁쓸하고 뭔가 찝찝한 결말이라 싫긴한데......
위를 보니 다수 혹은 대다수가 그렇다고 하면 그게 옳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사람들이 있어서
더 씁쓸하네요..........
다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이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다른생각일 뿐입니다
그것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서 다르다고 틀린것이라 말하는 건 정말 웃긴일이죠.........
그냥 보고 가려다가 어이없어서 한마디 남기고갑니다..... -
Americano Enthusiast 2010.04.19 22:14 신고
즐겁고 유쾌하게 매일 챙겨 본 시트콤에 꼭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엔딩을 했어야만 했던가 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언제나 처럼 기억속에 유쾌한 작품으로 남았으면 했을텐데 결말은 여태 즐거움을 주었던 모든것들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거마냥 느껴졌었거든요... 김감독님의 작품은 늘 재미있었는데 유독 결말만 자꾸 우울한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신세경양의 의견이 개입되어있긴 했지만, 그래도 다음 작품은 꼭 해피엔딩이길...
-
지나가다 2010.05.01 09:32
극중 세경의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세경의 가족이 세경이한테 어떤 의미인지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은 세경이 한테 한편으로 무엇보다 큰 짐입니다.
세경의 가족안에서의 역할은 엄마.
자신의 꿈을 희생해서 신애를 키우는 존재...
세경이는 검정고시도 보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지만...
가족과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신애를 위해서 그 꿈을 다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는
선택을 합니다.
혼자라면 똑똑한 세경이는 자기 꿈을 이룰수도 있겠지만...
세경이는 그 가족안에서 엄마잖아요...
배우 신세경이 슬픈 엔딩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바란것은 그 역할을 정말 잘 이해했기 때문이겠죠. 이를 비난한 사람들이 정말 한심할 뿐... -
뒤늦게 하이킥을 본 2013.01.14 05:19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감정을 이입하여 보았던 극중 인물의 해피엔딩이나 성장을 바라게 돼죠.
그래서 지뚫킥의 엔딩이 충격적이었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감독이 단순히 문학적 허무주의 빠져 사랑의 각성이라는 명목 하에 죽음이라는 엔딩을 제시한 것일까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죽음'이라는 장치를 사용한 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엔딩이었다고 봅니다.
단순히 허무주의에 젖어 허세를 부려 지어낸 처참한 결말이라기보단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 아니었을까요? 그들의 죽음이 현실적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지세 커플의 해피엔딩은 내용 전개상 생뚱맞아 보입니다. 당연히 사랑의 도피를 하거나, 아니면 둘 다 엄연한 성인이니 주변의 반대 따위 무릅쓰는 등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결말이 여태 보여준 캐릭터들의 설정이나 인물 관계도 속에서는 오히려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입니다. 해피엔딩이 아니라도 죽음은 너무 가혹하다는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게 되었으나 오히려 그런 결말 때문에 오히려 시청자들을 '현실'로 이끄는 장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었던 세경의 가슴아픈 사랑을 '몇년 후'와 같이 뻔한 장면을 보여주어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견뎌야 했던 성인식과도 같은 사랑을 추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제시했다면 그닥 인상깊은 결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죽음과 시간의 정지라는 비현실적(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이끌며 그곳에서만 자신들의 마음을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이 실제로는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세경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죽음이라는 장치로 영속화시키며 극적인 아름다움을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지훈세경이 지훈의 대학 근처로 시간여행을 떠나듯 데이트를 했던 곳의 카페 역시, 지훈세경이 들렀을 때가 카페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세경은 없어지기 하루 전의, 지훈의 기억이 담긴 카페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죠. 당장 다음날이면 없어질 카페에서, 과거의 지훈과 현재의 지훈과 함께하며 다시 보지 못할 마지막 지훈의 추억(지훈이 왔다갔다는 메시지) 옆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그 장면에서 마지막 결말까지 이어지는 플로우가 전혀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저 뿐일까요?
단순히 결말에 대해 감독이 충격을 주려는 의도였거나 문학적 감수성을 죽음과 동일시했다는 것, 그리고 감독이나 배우가 자기 감정에 빠져 죽음에 대해 유아기적 발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견이 좀 터무니없어보여 한 자 뒤늦게라도 남기고 갑니다.
추노 속 출연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기대이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송태하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고, 특히 업복이의 최후는 공형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지요. 일찍 죽은 천지호 성동일 역시 드라마가 끝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극중 언년이의 캐릭터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은 크게 네가지로 보여집니다.
언년이의 감정선이었던 돌멩이 분실
언년이 역시 대길이가 도련님이던 시절, "난 말이다, 다 싫구나. 네가 힘든 것도 네가 추운 것도... 다 싫구나" 라며 추운 날 호호 불던 자신의 얼어터진 손을 데워주던 돌멩이를 10년간 간직하며 대길도련님에 대한 마음을 간직했지요. 언년이가 혼례를 올렸던 날, 언년이는 그 돌멩이를 꺼내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나왔지요.
그런데 충주에서 자객 윤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언년이를 송태하가 구해 도망가는 길에 대길이가 던진 칼에 언년이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지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송태하의 뒤에서 말에 실려가던 언년이가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언년이는 대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돌멩이를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이 때부터 언년이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년이가 그 돌멩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대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때때로 보여 주었다면, 송태하와 대길의 사이에서 언년이의 고뇌하는 모습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언년이 감정선을 이어갈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돌멩이 분실사건입니다.
언년이와 송태하의 성급한 혼례식
맥이 풀려버린 애정라인을 복구한 것은 최장군과 왕손이가 송태하의 손에 죽었다고 오해하게 하면서 대길이는 송태하를 쫓을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송태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가닥을 잡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가운데 어정쩡하게 낀 언년이는 이 때부터 더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대길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무런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원손의 보모로서의 자리밖에는 없어 보였지요. 송태하의 부인으로서도 딱히 진한 사랑이나 애틋함은 없어 보였고요.
두고두고 이쉬운 점은 이때도 언년이가 가끔씩 돌멩이를 꺼내 들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었다면, 언년이도 민폐녀의 꼬리표에서 하나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대길이를 만나도 무덤덤, 송태하와 대화는 새 세상에 대한 토론 밖에는 없다보니 점점 언년이의 입지는 작아지고, 원손의 보모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어요. 돌멩이 분실사건에 이어 성급한 혼례는 언년이의 감정선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만든 치명타였어요.
언년이가 죽었다면 결말의 극적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 만날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해 주렴" 이 대사는 그 이전에 송태하가 자리를 피해주면서 언년이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배를 구하러 가면서 방백으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눈물 줄줄 흘리게 했던 "나의 언년아, 나의 사랑아" 는 칼에 맞은 언년이를 품에 안고 했었더라면 싶어요. 송태하는 물론 원손을 데리고 떠났어야 했어요. 대길이 송태하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는 맞는 것이었거든요. 송태하가 원손을 안고 대길과 언년을 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언년이에게 했던 대사를 원손마마에게 했더라면 훨씬 멋졌을 것 같습니다. "원손마마,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상도, 미래상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용골대 사신을 향해 마치 여검사처럼 추궁하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요. 차라리 대길이의 삶의 의미였던 여인으로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면, 마지막에 언년이가 조금 사랑스러워 졌을 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 고 짝귀에게 말했던 언년이의 대사도 아귀가 맞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강한 여성으로서의 언년이를 그리는 것도 실패했는데, 10년간을 돌멩이를 움켜쥐고 살아왔던 사랑의 무게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언년이를 죽인 이다해
언년이는 송태하와 있을 때도, 대길이와 있을 때도 감정선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읽는 것을 실패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처리는 무미건조했고, 무엇보다 언년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대사톤과 표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어요. 대길 장혁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길이와 언년이의 감정선은 대길이 혼자서 언년이 감정까지 1인 2역으로 끌고 갔다고 본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이다해의 언년이는 실패였습니다. 언년이의 캐릭터는 이다해 아니라 누가 했더라도 실패했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는 작가나 감독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연기자에게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다해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극중 여주인공이 민폐녀로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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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공감하실 줄 알았는데.. 2010.03.28 23:38
그게 아니네요. 원래 댓글을 잘 남기지 않지만 초록누리님글에 안티가 너무 많은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윗 글의 거의 모든 부분에 상당히 공감을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추노를 정말 재밌게 봤지만 언년이의 감정연기에는 정말 두고두고 아쉬움을 느낍니다. 저를 중반까지 흡입력있게 이끌어 왔던 힘은 탄탄한 스토리도 있었지만 대길과 언년의 사랑이었습니다. 시장씬에서 이다해의 연기를 보고 정말 감탄하며 다운받아 몇번을 돌려볼 정도로 최고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 였던거 같아요. 그 뒤로 물론 대본상으로도 기회가 없었지만 대사 한마디.. 눈빛 하나하나에 충분히 언년이의 마음을 실어 나를 수 있었을텐데.. 그런 세심한 부분을 이다해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단 생각이 듭니다. 초록누리님도 그걸 말하고 있는 것 같구요... 몇 가지 예를 들었던 장면.. 마지막회에서의 대길과의 마지막 대화.. 충분히 애잔함을 더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너무 살리지 못했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대길이에게 애잔함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참고로 대길과 언년이 만났을때부터 언년이를 송태하와 묶어주는 작가와 연출의 의도에 정말 속상해 했던 1인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찾아 해맸는데.. 그렇게 만나기를 기다렸는데..ㅠㅠ 만나고 나서 너무 허무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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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0.03.28 23:47
이다해씨 인터뷰를 보면 좀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는힘을 키우는게
연기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될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만심을 보게 되요..
대본이 좀 허술하다해도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들은 그 캐릭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기도 하지요..
연기자 탓 보다는 대본 탓을 하게 된다는것 아니겠습니까? -
하지원 생각나네요. 2010.03.29 00:59
"추노"의 이다해를 보다보니 문득, "발리에서 생긴일"의 하지원이 생각납니다. "발리"에선 도대체 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나중엔 짜증이 나더니, 하지원의 깊은 연기가 여주인공을 이해하게 하더군요. 그런게 연기이지않나 싶어 비교됩니다. "추노"...일주일동안 몸삻을 앓을 정도로 너무 좋아하는 드라마였는데, 저도 여주인공이 너무 아쉽습니다. 2%만 더 채웠어도, 완벽한 명품드라마가 될수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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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le 2010.03.29 02:21
ㅎㅎ 이건 내용중에 수정이 되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네요.. 글의 의도와는 맞지 않지만..
>대길의 칼을 맞은 후 송태하의 말 뒤에서 돌을 떨어뜨리다<
부분이 드라마 내용과는 다르네요
대길의 칼을 맞은 후 동굴에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서 다른 마을로 이동중에
송태하가 혼절한 언년이를 업고 이동하는 중에 돌맹이를 떨어뜨렸습니다...
제가.. 무개념은 아니구요.. 내용이 다른부분이 있어서..
정확하게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글을 읽다가.. 다른 부분이 있으면..
뭐랄까.. 조금.. 글에대한 느낌이 달라지는 듯해서 글을 남깁니다..
ㅎㅎ 중복이였으면 죄송하네요 ㅎ -
anubith 2010.03.29 02:58
일단 제목 자체가 자극적인거 저도 공감합니다만.....글 내용 자체는 맞는 말인데요?
장혁이 니가 그리워서 찾은게 아니라고 할때 그 대사 씬에서만 해도 장혁이 숨을 고르며
힘겹게 감정을 연기하는거에 비해서 참 쉽게도 얘기하더군요. 대본상의 역할이
패널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배우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보는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대길이 도망가라고 할때도 그저 '서럽게 울기' 밖에 안하더군요.
아 물론 그 이상 뭘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그 서럽게 우는 씬에서도
전혀 슬프다는 느낌은 못받았습니다. 그건 저만의 느낌이겠죠 뭐
대길이 자신의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보러 따라올 때도 그 어이없는 푸근한 미소란......
대길이 역을 맡은 장혁의 경우 눈빛과 표정 대사 어감 모든 것으로 감정 처리를
하는 것에 비해서 굉장히 비교되더군요.
기회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본인이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했을 뿐 -
purple 2010.03.29 03:05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군요.
이다해씨는 추노 최대의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언년이 캐릭터가 이도저도 아니게 돼 버린 이유는, 드라마의 중심 멜로라인과 여주인공 캐릭터를 그따위로밖에 그리지 못한 작가, 또 그것을 ok한 감독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거죠. 어디 감정선을 드러낼 만한 제대로 된 씬이 있기나 했습니까? 언년이라는 캐릭터가 아쉬움을 남긴 이유는 연기자의 캐릭터 구축 실패가 아니라, 작가의 역량부족이라는 것을 친절하게 써놓으시고 제목은 이다해한테 큰 문제가 있는것마냥 해놓으시다니.. 평소 이다해 팬도 아닌데 이런 어이없는 흠집내기 글을 보니 댓글을 안 달 수가 없네요. -
마스 2010.03.29 07:48
저는 작가의 여성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언년이한테 투영된것이라 생각해요. 참고로 이다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입니다. 그래서 감정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하죠. 의외로 대본의 디테일에 놀란적이 많은데..끝까지 언년이는 조선의 여인으로 마무리 시키더군요. 대길이는 첫사랑을 위해 목숨을 거는 남자의 로망의 절정으로 마무리 되었고, 언년이는 정조를 지키는 조선의 여인으로 마무리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다해의 연기력보다는 이다해의 감정선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 작가와 연출자의 문제가 더 컸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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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비 2010.03.29 09:38
그냥 지나치려다가 한마디 적습니다. 글의 대부분은 언년이 즉 "이다혜"와 상관없는 글의 구성이더군요. 고작 5분1정도가 언년이 관련인데 이다혜의 연기력을 탓하는 것 같군요.
추노에서 등장하는 인물중 자신의 의지에 따라 믿고 있는 신념 또는 목적을 위해 투쟁하는 이는 세사람뿐입니다. 사랑하는 언년이를 찾기 위해 추노꾼이 된 대길이, 마직막 원손을 지키는 것과 무사로써의 송태하, 정적마져 자신의 수하로 만들어 버리는 탁월한 모사꾼 이경식 이 세사람뿐이죠. 나머지 등장인물은 누구의 지시를 따르거나 함정에 이용당하는 소모품에 불과합니다.
자 그럼 글에서 지적한 돌맹이 분실 사건입니다. 언년이는 그야말로 작가의 실수인지 아니면 비중을 적게 둔 것인지는 모르지만 목적을 상실한 여주인공이 되어버렸습니다. 최사과와 혼례를 치루던 첫날밤 길을 떠나지만 무엇을 위해 떠나야 하는지 목적이 없습니다. 다만 돌맹이 하나로 그막연함을 대신해줄 뿐입니다. 그리고 쫒기는 와중에 돌맹이를 분실하죠. 이것은 누구나 아시겠지만 연출진이 대길이와의 연인 관계를 정리하는데 복선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뻔한 스토리이기는 하지만요.
다음은 언년이의 연기력 논란입니다. 언년이의 등장을 모두 통편집으로 빼 버린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작가와 연출진은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 많은 것을 보여주었음에도 지루함이 없었습니다. 극에서 천지호의 등장은 오포교보다도 횟수가 적은데도 주인공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여기서 이다혜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다혜가 분한 언년이는 노비시절 이야기 빼고는 보여줄 것이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사람냄새 나는 저잣거리 말을 구성지게 할수도 없는 지극히 절제해야하는 사대부(신분세탁을 했지요)가 아녀자의 인물을 그려야 했습니다. 남자들처럼 화려한 액션을 보여줄 것도 없었고 극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위치도 할 일도 없었고 그져 보모로 전락한 케릭터가 되고 만 것입니다.
자 생각을 해보세요. 추노에서 등장하는 인물중 이다혜 혼자서만 대화체도 다르고 차분한 연기를 하지요. 극은 치열한데 다들 숨 넘어가듯 급한 상황인데 말이지요. 주인공중 하나지만 할일 없는 주인공이 되어버렸습니다. 말 그대로 아쉽지만 연출진의 실수라면 실수입니다.
다만 언년이의 논란보다 추노라는 드라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입니다. 초록누리님의 글을 기다려보겠습니다.
화려한 짐승남들의 저잣거리 무용담 속에서도 노비들의 이야기는 조용히 진행시켜 왔어요. 특히 과거 관동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업복이였음에도,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은 민초들이 그만큼 힘없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도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호랑이의 포효보다 강한 분노 한 방을 위해 숨죽이고 살게 했었지요. 하지만 조용한 사람이 더 무섭다고 업복이는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 낸 이름없는 영웅이었습니다.
"우리같은 노비가 있었다"
초복이를 월악산 영봉으로 보내고, 노비당 동지들을 향해 장례원으로 간 업복이는 처참하게 살해된 동료들의 시신과 수색하는 관원들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 숨 한자락이 붙어있던 끝봉이로부터 이 모든 것이 그분 그놈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지요.
"업복이랑 도망 가 둘이 살아. 무섭다, 그 놈들 정말 무서운 놈들..."이라며 끝봉이가 숨을 거둘 때 업복이의 그 울음이 아직도 눈물나게 합니다. 업복이 공형진은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 올라오는 슬픔과, 끝봉이 이름만 애타게 부르면서도 슬픔의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절절함을 소름끼치게 표현했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보고도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터져 나오는 곡성을 참으며 입만 벌리던 그 상황이 너무나 가슴 절절하게 와닿은 장면이었어요. 공형진의 소름끼치는 연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업복이는 봤어요. 선혜청 습격의 성공으로 들떠 궁궐로 쳐들어 가자며, 내일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흥분하고 기대에 찼던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요. 홀로 가 본 궁궐의 담장은 성처럼 높고 견고했고, 지금까지 가장 커 보였던 주인양반집 문과는 비교도 안되게 높고 컸다는 것을요. 또한 좌의정이 그분을 시켜 자신들을 이용하고 버리려 했음을요.
"내는 개죽음 당하지 않을 거라니,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을 거라니, 그렇게만 되면 개죽음은 아니라니, 안 그러나 초복아?"
초복이에게 전해지지 않을 말이었지만, 여느 장수보다 멋지고 여느 혁명가보다 뜨거웠던 노비 업복이의 출정식 결의였어요. 총 네자루를 지고 광화문을 향해 당당하게 선 업복이는 광화문 수문병을 총으로 쏘고 궁궐로 진입했지요. 궁궐로 들어가는 업복이의 표정은 두려움없이 담대했고, 화승총을 든 손은 한치의 떨림도 없었어요. 양반들을 죽이면서 수없이 고민했고,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주춤거리기도 했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업복이의 모습이었어요. 궁궐로 들어가면서 반짝이 아버지를 돌아보며 지었던 쓴웃음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업복이의 표정같습니다.
바닥에 누운 업복이와 궁궐 밖 반짝이 아버지의 시선이 교차되는 장면, 그리고 반짝이 아버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장면은 추노에서 하고 싶었던 말, 드라마에 시종일관 흘렀던 민초들의 분노, 꺾을 수 없는 희망과 의지를 보여주었던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양반의 저녁 노리개로 팔려 가는 것을 보면서도, 슬픔이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던 반짝이 아버지였지요. 반짝이 아버지의 주먹은 새로운 업복이로 이어질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고, 순종하는 역사가 아닌 항거하는 역사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업복이는 닫혀가는 궁궐 밖 세상을 향해 외쳤어요. "노비도 사람이다" 라는 것을요. '분노하지 않는 순종은 굴복이며, 희망도 없다'는 것을요.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이 나오지 않은 이유
업복이가 궁궐로 들어가 총을 쏜 사람은 그분과 조선비, 그리고 좌의정 이경식을 향해서 였어요. 이들 세사람을 향한 업복이의 총구가 달랐어요. 그분과 조선비를 향해서는 관동명포수답게 한 번에 심장을 명중해 버렸지요. 그런데 좌의정 이경식의 죽음 장면은 좌의정을 향해서 총은 쐈지만, 좌의정 이경식이 쓰러지는 장면과 굴러떨어지는 관모만으로 좌의정의 죽음을 암시했지요. 저는 감독의 연출이 이렇게 담대하고 세심하게 함축적인 메시지의 복선을 깔았다는 데서 놀랍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도망노비와 양민들을 추쇄해서 그들을 북방으로 올려 성을 축성하자는 의견을 인조 임금에게 주청하고 나오던 좌의정 이경식을 죽인 곳은, 놀랍게도 조선의 중요한 정치를 논하던 근정전 입구인 근정문 앞이었습니다. 업복이는 좌의정의 몸뚱아리가 아닌 양반이라는 지배계층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쏜 것이었어요. 업복이는 양반들의 지배논리와 의식,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썩어빠진 정치를 향해 쏴 버린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세상을 바꾸자고 혁명을 노래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업복이의 혁명은 성공했습니다. 썩은 사회의 정점에 있는 좌의정을 죽였다는 점, 그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은 한걸음 가까워졌기 때문이에요.
가볍지 않은 업복이의 죽음
또 하나 업복이의 최후를 보며 새삼 놀라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업복이의 죽음은 비록 화면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업복이가 최후를 맞이 한 장소는 어디였을까요? 네, 바로 높디 높은 대궐,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쓰고 나오는 궁궐 안이었어요.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출생과 함께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가장 비천하고 힘없는 사람, 이름자 하나 제대로 짓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개똥이, 사월이, 오월이, 초복이, 업복이, 언년이로 불리웠던 노비가 조선에서 가장 큰 집, 가장 큰 힘을 가진 대궐 마당에서 죽었다는 것, 저는 이런 드라마 속 의미들이 너무 멋진 연출들이었고, 그 상징적인 의미에 박수를 치고 싶더군요.
업복이는 죽어가며 닫혀가는 궁궐문 안에서 반짝이 아버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어요. 우리가 주인되는 세상, 사람이,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 그 세상에 누워 있다. 나는 죽지만 죽지 않는다. 아저씨가 있고, 월악산에 남겨 둔 초복이가 있고, 또 다른 끝봉이, 개놈이가 있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요. 포기하지 말자고요. 희망은 포기하는 순간 내 것이 될 수 없고, 꿈을 꾸는 순간 내 것이 되는 것이라고요. 초복이와 은실이의 대사가 업복이가 궁궐에서 죽어가며 전해 준 메시지인 것이에요.
"저 해가 누구 건지 알아? 우리 거야. 왜냐면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업복이는 사랑하는 초복이에게 결국 가지 않는 길을 택했어요. 대길이나 송태하는 사랑을 택했지만, 업복이는 남은 초복이를 위해 세상을 향해 더 나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 지엄한 궁궐을 홀홀단신으로 들어가 가장 부조리한 사람 좌의정을 쏴버렸습니다. 좌의정 이경식같은 인물들은 반복해서 나오겠지요. 오포교의 자리에 더 악랄한 육포교가 앉았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또 다른 업복이와 초복이가 나오듯이 업복이의 외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끝나지 않은 민초들의 노래
저는 송태하도 죽었을 거라고 지난 글에서 예상했는데, 여하튼 대길이, 송태하, 업복이는 같은 지점 죽음에서 만났습니다. 죽음을 가장 강하게 거부했던 대길이에게 황철웅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고 물었지요. 대길이 "저 놈이 세상을 바꾼대잖아, 이 지랄 같은 세상" 이라고 대답해 줬을 때 황철웅은 무너졌어요. 이들이 달리는 이유, 희망의 의지는 결코 꺾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대길이 역시 새 세상을 위해 죽었어요. 송태하가 바꾸겠다는 세상, 그 세상과 언년이가 같은 무게였고, 같은 의미였기에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대길이는 설화에게 이렇게 좋은 날이라고 했을 지도 몰라요. 대길이 그랬지요. 누구나 죽을 수 없는 이유 하나쯤은 있는 거라고요. 대길이가 죽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언년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대길이는 또 죽을 수 있었던 것이에요. 언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업복이나 대길이는 죽었어도 죽지 않았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긴 여운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죽음으로 희망을 말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들 가슴에 살아있고,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우리들의 누이, 형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추노 시즌 2로 그 이야기를 계속 해주었으면 싶네요.
추노의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수고하셨다는 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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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2010.03.27 14:11
블로거분 리뷰읽다 또 한번 우네요.
제가 가장 애정하던 캐릭터는 대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최종회에서는 업복이의 죽음이 더 강렬하게 남는것 같아요.
대길이는 죽을수 밖에 없는 인물이란걸 알았기에 내심 죽는 장면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기대 이하였다고 밖에는 표현할길이 없네요.
언년이라는 삶의 의미를 지켜낼수 있었기에 죽음또한 의연히 맞이할수 있었던 대길이였지만
더 드라마틱한 상황을 기대했었거든요.^^::
앞으로 추노를 추억할때면 업복이의 마지막 미소와 장렬한 죽음이 가장먼저 생각날것 같아요.
굴러 떨어진 사모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했구요.
(역시 곽감독은 알레고리를 표현함에 있어서 여타 연출자분들보다 뛰어나신것 같아요.
멜로라인은 좀 약하지만.....)
마지막 시원한 한방을 날려준 업복이때문에 뇌리에 강렬하게 남을 최종회...
업복이가 어쩌면 우리들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였기에 가장 가슴을 울린것 같네요.. -
뎀뎀 2010.03.27 21:58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을 이렇게 깔끔하게 표현하는 글을 찾다니요.
그리고 특히 머리에 총을 쐈다는 분석에서 깜짝 놀랐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