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10.08 '내딸서영이' 이보영, 아버지 존재 부정했던 이유 (2)
  2. 2012.09.23 '내딸서영이' 이보영, 이해하기 힘든 비호감 무개념 (5)
  3. 2012.09.17 '내 딸 서영이' 천호진, 가슴 먹먹하게 했던 아버지의 모습 (4)
2012.10.08 14:33




사랑과 결혼이 언제부터 이렇게 번갯불에 콩볶듯이 빨리빨리 문화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재의 사랑고백과 결혼을 조건으로 아버지와의 딜이 많이 당황스럽더군요. 

서영의 마음을 특별한 감정이라고 확신하는 우재의 밀어부치기가 숨통을 조여오는 것처럼 부담스럽기도 했고, 스토리 전개가 너무 빠르다 보니 메인커플의 사랑이야기가 우격다짐처럼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초반 이서영이라는 캐릭터를 웃지도 않는 얼음공주에다 세상과의 친화력은 제로인 캐릭터로 만들더니, 강우재는 사랑도 결혼도 불도저처럼 전투적이라 개인적으로 제 취향의 남자는 아니었네요.

 

우재의 폭풍고백에 설레였던 분들 없지 않았겠지만, 사랑이 무르익기도 전에 남의 인생을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따귀를 한대 올려주고 싶을 정도로 저돌적이라 좀 그렇더군요;; 뭐랄까 참 비현실적인 사랑이야기 같아서 쉽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고 말이죠 

한국에 남아 회사일을 하겠다는 조건으로 결혼허락을 하는 강기범(최정우), 이 결정도 공감하기는 힘들었지만, 강기범의 쿨한 캐릭터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들더군요. 아들을 눌러앉히기 위해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택하는 강기범, 똑똑한 며느리와 아들 둘을 택한 것이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죠.

사업가인 강기범은 아들을 잃느니, 아니 아들 우재가 회사를 택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를 내어주는 계산을 했던 것이죠. 며느리될 집안을 버린 것이지요. 머리싸매고 누울 차지선(김혜옥)을 보니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해도 서영의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을 것임이 예고되기도 했지요.  

뉴욕으로 함께 떠나 로스쿨을 다니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자는 우재의 제안을 거절하는 이서영에게, 일단 자존심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했지만, 사실은 다른 부분에서 서영의 속마음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비로 오해받아 경찰서에서 합의를 보고 있던 아버지, 주차관리인이 아니라 나이트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못마땅한 서영이었죠. 왜 우리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 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할까? 무능하면 무능한대로 적게 먹고 가는 똥 싸고 살면 될 것을, 자식들 위한다는 말로 사고만 쳤던 아버지가 지긋지긋합니다.

아버지가 사고를 치면 그 뒷수습은 늘 어머니와 서영의 몫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손이 부르트도록 일만 하다가 홀로 죽어가야 했고, 돈 많이 벌어 어머니를 호강시켜 주겠다는 서영의 약속도 지키게 하지 못한 아버지였지요. 

 

서영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족쇄와도 같았고, 끊어내지 못하는 굴레와도 같았습니다.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던 서영, 우재가 뉴욕으로 함께 가자는 말에 잠시 고민했던 서영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들어온 사람, 한 번도 다른 남자에게 눈길을 줄 일도, 받을 일도 없었던 서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해야 했기에, 남자에 대한 관심은 다른 세상의 일이었죠.

그런 서영에게 처음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해 준 우재, 서영도 싫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좋아한다는 고백도, 서영에게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사람이었으니까요. 

서영을 두고 갈 수없다는 우재의 고백에 서영도 상우와 상의를 하고 싶어 상우를 갔지요. 그런데 아버지의 일로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경찰서에서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봐야 했습니다. 우재와의 영화약속도 가지않고 펑펑 우는 서영, 아버지는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기회조차 박탈해 버린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요, 한강에서 목놓아 눈물을 흘린 후 우재의 프로포즈를 매몰차게 거절하는 서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스치더군요. 우재의 감정이 당황스러워서였다기 보다는, 아버지때문에 뉴욕으로 떠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서영에게 아버지는 애증이 범벅된 존재지만 아버지 이삼재가 아버지라는 것은 하늘이 두쪽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요. 사랑보다 미움이 더 큰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서영이 뉴욕으로 떠나버리면 아버지의 사고를 상우(박해진) 혼자 수습해야 하고, 자신 밖에는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서영은 누구보다 잘알고 있지요. 3분차의 쌍둥이지만 서영은 누나였고, 장녀라는 책임감이 병적으로 강한 아이입니다. 3분 동생 상우에 대한 특별한 형제애때문이기도 하고 말이죠.

서영이 그래서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운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아버지니까 말이죠. 상우에게 혼자 짐을 지울 수 없는 현실이 서영을 더 미치도록 슬프게 합니다.  

 

서영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우재의 폭탄고백으로 우재네 집은 발칵 뒤집혀 서영이 가족관계를 말해야 하는 장면이 나왔지요.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안 계신다는 말에 차지선은 뒷목잡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죠. 부모없는 고아와 결혼하겠다는 거였느냐고 말이죠.

처음에는 그런 서영이 너무 독하고 무섭고 차디찬 얼음장같아서, 어떻게 살아있는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냐고 욕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뒤돌아서 서영의 입장이 되어 이해를 해보자고 다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서영이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서영은 우재와의 교제와 결혼이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서영이 입주과외를 하면서도 느꼈던 것이고 말이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뭐하시는 분이냐고 직업을 묻자, 몇시간전에서야 알았지만 나이트클럽에서 일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닌데, 아무리 못나고 무능한 아버지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를 무시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나이트 클럽에서 일한다고 하면 좋은 직업을 가지셨다고 할 사람들도 아니고, 아무 상관없는 아버지를 욕먹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더군요. 아버지가 무능하고 창피한 것은 서영이지, 다른 사람들까지 아버지를 그렇게 보는 것은 싫었을 듯해서 말이죠. 아버지를 부정한 것이 결코 잘한 것은 아니지만, 안계신다는 말로 더이상 아버지가 회제에 오르지 않게 한 것이죠. 차라리 없는 아버지였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도 없지 않았을 거고요.

 

자식이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이, 부모에게 자식도 마찬가지죠. 가족이란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니 말이지요. 서영에게 아버지는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능한 사람이라고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은 서영이지만, 안보고 싶지만 안볼 수 없고, 모른체 하고 싶지만 모른체 할 수 없는 존재, 그런 사람이 아버지니까 말입니다. 

언제 어떻게 사고를 칠지 모르는 아버지를 상우에게 맡겨두고 사랑을 택해 미국으로 떠날 수 없는 자신이 서글프고, 다른 사람이 아버지를 무시하는 게 싫어 안 계신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보니살아있는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한 서영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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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3 12:10




잔잔합니다.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보고 있노라면, 여느 드라마와는 달리 마음이 차분해지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에는 현실에서는 보기 힘들 것 같은 가슴두근거리는 백마탄 왕자님도, 평범한 소시민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 것같은 재벌회장님도 없습니다.

위너스 회사 사장 강기범(최정우)은 무늬만 재벌이지, 우리 네와 다를바 없이 자식들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먼저 보게 돼죠. 어머니를 대신해 밑반찬을 나르는 이삼재(천호진)는 초라하지만 결코 밉지가 않습니다. 아버지의 사랑만은 넘치는 사람이죠. 아내와 딸의 관심밖에 있는 듯한 최민석(홍요섭)은 돈벌어다 주는 기계같은 가장의 서글픔을 느끼게 합니다.  

딱히 미운 캐릭터도 너무 가슴 아프게 불쌍한 캐릭터도 없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 일단은 보기 편합니다. 특히 부잣집 외동딸 호정(최윤영)의 바보스러우리만큼 순수한 모습은 일찌감치 사랑받을 캐릭터로 예약을 마쳤고요. 

도와준 답례로 바리바리 싸가지고 상우(박해진)네 옥탑방에 온 호정이 작은 냉장고를 미쳐 보지 못했다고 미안해 하는 모습은, 물정모르는 아가씨라기 보다는 귀엽더군요. 고기를 먹다가 체해 상우의 응급처치로 트림을 하면서도, 상우에게 덜컹 반해버린 부잣집 공주의 옥탑방 왕자 사랑하기가 앞으로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을 것 같지만, 이 커플은 무한애정으로 지켜보는 중입니다. 극성맞은 엄마 송옥숙의 방해와 거센 반대가 예상은 되지만 말이죠.   

 

그런데 여주인공 이서영(이보영)은 아직은 그리 호감형 캐릭터는 아니네요. 억척스러운 생활력이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뭐가 그리 불만인지 뚱하고 화난 표정은 난감스러울 정도로 억지스럽습니다. 어머니를 고생만하다 돌아가시게 했다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이서영이라는 인물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경계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듯, 차갑고 화가 나있고 불만에 가득차 있습니다. 오직 돈을 버는 것만이 이서영의 목표처럼 그려지는 것은 우악스럽기 까지 합니다.

과외를 소개받고도 이서영은 김혜옥에게 까칠하고 정안가는 인상만을 남겼을 뿐이지요. 마치 김혜옥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과한 표정연기로 까칠함을 표현하더군요. 아무리 사교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캐릭터는 현실적으로 와닿지가 않습니다. 과외하는 학생 어머니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면 자존심에 대단한 상처라도 입는 양, 뚱한 표정의 첫만남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이서영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표정입니다. '나 화 났어요' 표정이죠. 그런데 그 화나있음이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다기 보다는, '참 재수없다'의 표정으로 일관하더군요. 아르바이트를 했던 방송국 직원에게도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뚱한 표정이었지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눈웃음 살살 쳐가며 꼬리를 치라는 것도 아니고, 인사예절 정도는 지켜야 현실적이지 않나 싶은데, 이서영이라는 인물에 너무 힘을 준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서영이라는 캐릭터는 너무 인위적인 냄새가 납니다.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 얼굴에 써붙이고 다니는 듯 강요하는 느낌이 들고 말이죠.  

무엇보다 이서영이라는 캐릭터가 납득이 안된 것은 그렇게 다른 사람과는 선을 분명히 긋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자기가 피해를 입는 것도 싫어하면서, 법을 어기고도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사시를 준비하고 있는 법대생이 말이죠.

상우로부터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혼비백산해 택시를 잡으려고 하지만, 택시는 잡히지 않고 골목길까지 빈택시를 쫓아간 이서영이었지요. 마침 오토바이를 세우고 친구와 통화를 하던 강우재(이상윤)의 오토바이를 타고 무작정 공항으로 달려갔지요. 오토바이를 언제 배웠는지 그런 문제는 트집을 잡지 않더라도, 그렇게 혼자만 반듯한 듯 고고한 이서영이 남의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힘들더군요.  

이왕지사 타고 가버린 오토바이이고, 강우재와의 악연 혹은 인연을 위해 그런 우연적인 사고를 넣었다고 하더라도, 이서영이 뒷수습을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말에 경황이 없었다고 십분 양보하더라도, 장례를 치르고도 이서영은 오토바이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죠. 그렇게 똑똑하고 비상한 머리를 가진 법대생인데 말이죠.

그냥 봐도 고가의 오토바이인데 공항에서도 아무렇게나 세워두고, 집어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으로 세워두고 갔을 뿐입니다. 글쎄요, 아무리 경황이 없더라도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네요. 공항직원에게 신고라도 해두고 가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와서도 이서영은 자신이 훔쳐타고 간 오토바이에 대해서는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처럼 싸그리 잊고 있지요. 이유없는 반항을 하는 듯 이서영의 억지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나 화난 여자도 쉽게 공감하기 힘든데, 이런 무개념까지 두루(?) 갖춰서인지 아직은 정이 안가는 캐릭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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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7 11:37




개인적으로 덮어놓고 작가만 보고도 믿고 선택하는 드라마 중 하나가 소현경 작가의 작품입니다. 찬란한 유산, 검사 프린세스, 49일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가족, 사랑,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과장적인 막장설정을 넣지않는다는 점이 특히 소작가를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49일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삶의 본질과 인간의 비뚫어진 욕망,  그리고 순수한 사랑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내 딸 서영이' 첫회를 보고는, '어, 이건 딸 서영이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영이 보다는 서영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떨리는 눈과 초라하고 남루한 등이 시선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첫회부터 서영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우울한 전조를 드리우면서 출발은 했지만, 그 죽음을 보면서도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마주한 죽음이라 채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천호진의 주춤거리는 구두를 보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절벽에서 자살을 택하려는 천호진, 자식들에게 못난 아버지의 모습만 보여주고, 아내도 자기때문에 잃었다는 자책감은 그를 절벽 벼랑끝에 서게 했지요.  

자살을 하려는 그를 붙든 것은 삶이 버거웠던 듯 어깨를 주무르며 서글프게 바라보는 아내의 환영이었습니다. 아내의 환영은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동안 삶이 무거웠다고, 자식들의 키우기가 쉽지 않았었다고, 그래서 이젠 고단한 몸을 쉬어야 겠다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저으며, 아내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떠납니다. 부모니까요. 아버지마저 없으면 두 아이가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누가있겠냐고,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젓는 아내. 오열하는 천호진은 망자에 대한 슬픔 그 이상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걸머 진 무게가 엄마라는 이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이 없듯이, 자식도 선택해서 낳는 것은 아니겠지요. 못나도 잘나도 내새끼인걸요, 부모처럼 말입니다. 

 

아버지는 절망합니다. 죽음도 선택할 수 없게 하는 본능적인 사랑, 자식들을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은 아내의 환영은 환영이 아니라 이삼재(천호진)이 죽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가방을 싸가지고 서울 서영의 옥탑방으로 올라온 아버지에게 나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서영이처럼 말이죠. "엄마를 죽인 것은 아버지"라고 모진 말을 뱉고 올라왔으면서도, 가방을 들고 서있는 초라한 아버지에게 나가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서영이었지요. 서영을 멈칫하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버지 미워하지마, 너한테 생명을 주신분이잖아", 어머니의 환영을 통해 자살하려는 이삼재(천호진)를 주저앉게 한 것처럼,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어 작가는 서영의 마음을 대신합니다. 서영이 아버지와 결국은 화해할 것이라는 복선을 일찌감치 깔아준 셈입니다. 

서영과 상우의 등록금을 도박으로 탕진한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는 서영을 보고 웃습니다.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고, 엄마가 해왔던 자리를 아버지가 대신하는 모습은 가슴 찡하게 아파옵니다.

작가는 아버지라는 작고 초라해진 존재를 어머니와 치환해서 보여줍니다. 극중 이삼재의 모습은 어머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작가의 의도는 쉽게 읽혀집니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묘사하기는 사실 쉽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아예없었던 것처럼 자식들의 앞날에 저당잡히고 사는 헌신적인 삶, 사극에서는 삯바느질에 떡장사, 허드렛일 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현대물에서는 식당주방일에 도우미, 빌딩청소원 등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본질적인 모습은 같지요. 자식을 위해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는 것이 어머니다 라는...

아버지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도 같다고 봅니다. 자신만 바라보는 처자식때문에 기분내키는 대로 직장을 때려칠 수도 없고, 자식 앞날에 걸림돌이 될까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의 아버지들 마음일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명예라도 있든가, 명예가 없으면 돈이라도 많든가, 그러나 대개의 아버지들은 둘 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극중 이삼재를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아내의 심장병까지 몰랐던 무심한 아버지로 그린 것은 아버지, 이 시대 아버지들의 마음 속 깊은 죄의식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식들도 부모에게는 늘 죄의식과 채무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어버이 은혜 노래를 들으면, 괜스레 울적해지고 부모님께 못했던 일들이 떠올라 마음에 눈물이 맺히듯이 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식들이 더 번듯하게 살 수 있는데 못난 부모를 만나게 한 것이 미안하고, 더 많을 것을 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줄 수 있는게 없어서 마음이 미어지고, 좋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고생안하고 호강하며 살았을텐데 싶고.... 그럼에도 내 딸 내 아들로 태어난 것이 고맙고... 그런 것이 부모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호진의 연기를 보면 그런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읽혀져서 코끝이 찡해집니다. 고시원으로 들어간 서영이에게 김치랑 밑반찬을 가져다 주고, 딸에게는 환하게 웃지만 뒤돌아 계단을 내려오면서는 천근 만근처럼 푹 떨어지는 고개, 자식들은 모르는 부모의 마음이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식당에서 불판을 닦는 일을 하면서 새 삶을 하려는 아버지 이삼재, 이삼재는 새 삶을 살려는 것이 아니었어요. 자식들을 위해 살려는 것이었지요. 아내 은숙처럼 말이지요. 서영의 고시원 방값을 내주고, 등록금을 마련해서 공부마치게 하고, 그리고 지들끼리 잘 살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아버지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종이라고 하지요.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갚아도 갚아도 다 갚지못하는 부채가 자식에게 많이 해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을 흔히 부모의 사랑이라고도 말하지만, 부모가 되면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부채의식 비슷한 것이 생기게 되는 것같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부채의식 같은 것도 느껴지더라고요;;

반평생을 훌쩍 넘겨버린 흔적인 희끗한 머리를 이고도 굴레처럼 조여오는 부채에 이삼재(천호진)는 눈물을 흘립니다. 자식 가슴에 멍들게 한 능력없는 못난 아버지라는 죄때문에 말입니다.

천호진에게 시선이 오래 머문 이유가 이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삶의 무게에 쫓기는 불안과 절망, 그리고 더 깊이 배여나오는 초라함은, 어느날 문득 아버지의 긴 한숨과 함께 보게 되는 우리 아버지들의 처진 어깨와도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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