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아름다워'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06.07 '인생은 아름다워' 찌질남 윤다훈, 얄밉게 구는 속마음 (7)
  2. 2010.06.06 '인생은 아름다워' 경수의 눈물이 특별했던 이유 (3)
  3. 2010.05.31 '인생은 아름다워' 성적소수자, 그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20)
  4. 2010.04.12 '인생은 아름다워' 낙태 화두 던진 작가의 의도 (19)
2010.06.07 13:58




태섭의 커밍아웃은 병태네 불란지 펜션에 꽤 큰 폭풍이었지만, 가족안에서 용해되고 끌어안음으로써 적어도 태섭은 가족에게만은 냉대받지 않은 모습입니다. 극중 작은 삼촌인 병걸(윤다훈)과 수일(이민우)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태섭에 대해서 몰랐던 것을 서로가 미안해 하면서 태섭에게 강해지라고 힘을 북돋워 주는 가장 든든한 응원군들이 되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작은 삼촌 병걸의 까칠한 반응은 욕설에 가깝지만, 현실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해 이해하려 들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의 솔직한 반응일 겁니다. 병걸이 태섭이가 가족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수일의 반응처럼 겉으로 대놓고 모욕하지는 않으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을 지도 모릅니다. 병태네 가족들 중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고, 수더분해서 태섭을 가장 짠하게 생각할 것 같았던 병걸이 예상을 깨고 가장 까칠하게 나오고 있는데요, 감성이 풍부하고, 감정에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누구보다 태섭을 아끼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번회를 통해 알 수 있었어요.
병걸이 태섭이와 함께 밥을 먹고 싶지 않다며 가족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더러운 자식"이라고 욕설을 뱉은 상황은 그가 삼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태섭을 아꼈기 때문에 더 심하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병걸이도 병태의 심정 못지않게 잘나고, 예의바르고, 반듯한 태섭이가 안타까웠을 거예요. 어려서 엄마를 잃고, 새엄마 손에서 자라서 늘 기가 죽어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아이가 동성애자라니 병걸이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병태에게 끌려나가 한방 얻어맞고 병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장면에서 병걸의 진심이 드러났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미워서..." 병걸이는 누구보다 반듯하고 아까운 태섭이었기에 더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이더라고요. 누가 안그러겠어요. 허우대 멀쩡하고, 남부럽지 않은 의사 직업에 집안의 대를 이을 장손이 성적소수자라니 말이에요. 병걸을 때린 병태의 심정도 편하지 않습니다. 병걸이의 심정을 병태(김영철)가 모르는 바는 아니에요. 병걸이 처럼 그렇게 태섭이에게 모질게 말하고 때려서라도 바꿔주고 싶었을 병태였을 겁니다. 그것이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병걸보다는 더 잘 알고 있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했을 뿐이었어요. 병걸을 때리고 우는 병태를 보니, 태섭때문이기 보다는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것 같더라고요.
가족들이 자신을 볼 때마다 받을 상처를 잘 아는 태섭은 가족들에게 일일이 사과를 합니다. 아무리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고, 혼자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을 알지만, 태섭에게 매일같이 눈 뜨면 산이 턱하니 가로막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태섭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나돌면, 막연한 찝찝함때문에 진료를 거부할 환자들도 분명 있을 거고, 시선도 곱지 않을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이런게 잘못되었다, 혹은 불합리 하니 고쳐야 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겠지요. 병걸이 아무리 마음으로는 태섭이 안됐고 가슴 아파도 생각을 고치기 힘들고, 수일 역시 드러내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응원해 주는 입장이 아니듯이 말이지요. 

가족들에게 커밍아웃 하고, 한 사람 두 사람 태섭이의 성정체성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마다, 태섭이도 감당해야 할 상처들이 하나 둘씩 늘어날 것이라 예상하고, 멸시도 달게 받겠다고 마음 먹지만, 막상 삼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상처를 받습니다. 뒤 따라 온 민재 품에 안겨 울 때는 저도 함께 울었네요. 처음으로 태섭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항상 깍듯하게 "어머니" 라고 부르던 태섭이었는데, "죄송해요, 엄마. 죽는 날까지 죄송해요, 엄마" 라고 우는데, 가슴도 아프고, 한편으로는 태섭과 민재가 20여년간 알게 모르게 쳐 둔 새엄마와 의붓아들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해서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민재와 병태의 이성적인 생각이 마음에 들고, 진정으로 태섭을 품어주는 가족애에 깊은 감동을 받고 있지만, 극중 병걸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더러운 자식이라고 쏘아 붙이고, 못돼먹게 보일 정도로 화를 내고, 까칠하게 구는 것도 태섭이가 가족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수의 가족들이 경수에 대해 그렇게 몰인정스럽게 구는 것 역시 경수가 그들의 자식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이들의 딜레마는 동성애자가 내 가족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집일이었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 버릴 수도 있을 문제임에도, 내 가족이 그렇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고, 더 화가 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성적소수자가 내 가족이 아닌 타인이었을 경우에는 훨씬 더 관대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경수 아버지는 드라마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저명한 학자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집안의 자식이라고 하지요. 경수 아버지도 공개적인 장소나 학술지에 비슷한 주제로 의견을 개진할 때에는 경수에게 대하는 태도를 취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경수에게는 그런 아버지의 태도가 위선적으로 보이겠지만, 자식이기에 인정하기 싫어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병태나 민재가 커밍아웃한 태섭보다 더 용기있어 보이는 것은 내 가족인데도 품었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생각도 들어요.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일이라면 그러던지 말던지 상관없지만, 내 가족이기 때문에 더 싫고,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클 것 같아요. 그래서 태섭을 품는 민재네 가족들이 대단해 보였고, 크게 감동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이들이 가족이었기 때문에 품었다고만 생각했는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가족이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극중 경수 가족과 병걸이처럼 말이지요.
이번회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특히 민재와 태섭이 우는 장면에서 김해숙의 가슴 찢어지는 어머니의 연기가 너무나 가슴깊게 와닿았는데, 병걸의 왕방울 같은 눈물도 뭉클했어요. 까칠하고 찌질해 보이는 병걸이가 얄밉기도 하지만, 가족이기에 용납하기 싫은 병걸의 마음이 전해지더라고요. 병걸이도 민재나 병태처럼 결국은 태섭을 품고 누구보다 더 따뜻하게 안아주리라 생각하지만, 병걸 역시 태섭이 때문에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는 삼촌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태섭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운 표현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섭의 문제는 사실 불란지 펜션 모든 가족에게 상처이고 아픔일 거예요.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태섭의 제 3의 성을 의학적으로, 혹은 심리치료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겠지요. 할머니가 툇마루에서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병준과 병걸에 대해 걱정하면서, "사람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야 하는데..."라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민재나 병태가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르게 하자고 했는데, 저역시 끝까지 몰랐으면 싶은 생각이 듭니다.  
24회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태섭이 때문에 처음으로 웃었네요. 그 말쑥한 청년이 샤워를 하다가 비누거품에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그것도 알몸으로 넘어지는 장면은 상당히 웃겼답니다. 항상 말끔하고 옷에 먼지 한톨 안묻히고 다닐 것 같은 블링블링한 남자가 지금까지 등장인물들 중에 가장 폼나게(?ㅋㅋ) 넘어 주시더라고요.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상처받더라도, 혼자 끙끙대고 고민하던 때보다는 커밍아웃한 이후의 태섭이의 인생이 더 살만하고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7
2010.06.06 11:39




인생은 아름다워는 잔잔한 감동 속에 우리가 무관심 혹은 무시했던 부분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해보게 하는 가족드라마이자 큰 의미의 사회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리뷰글을 쓰기 전에 오늘 있었던 개인적인 이야기 한토막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휴일 오전이라 조금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동영상에 올라 온 드라마와 무한도전을 다운로드 걸어 두고, 딸아이와 조카를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인데, 동네 역사가 200년은 넘은 오래된 동네입니다. 때마침 그곳에서는 Bread and Honey Festival이 한창이어서 차량을 통제하고 있더라고요. 주택가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아이스 크림 가게까지 걸어가야 했지요.
길거리에는 밴드의 음악이 흥겨웠고, 축제일이라 유난히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 하와이언 티셔츠를 세트로 입고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학생들로 북적북적 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연례행사로 하는 축제인데, 모르고 나갔는데 행운이었지요. 평소에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일이 드문데, 저는 자연스럽게 딸아이의 손을 잡고 혼자서 흥분해서 "우리 잘 나왔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딸아이가 제 손을 뿌리치는 겁니다. "엄마, 손은 빼고 걷자구요" 이러면서요. 전 아무 생각없이 "왜?"이러면서 다시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딸아이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겁니다. 옆에 있던 조카 왈 "이모 여기서 그러시면 레즈비언으로 봐요". 허걱! 예전에 딸아이도 한 번 그런 말을 했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제 차림이 짧은 청 반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얼굴을 반은 덮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으니, 그냥 보기에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어요. 제가 몸도 날씬한 편(자랑질 죄송;;)이라 가까이서 얼굴을 보지 않으면 나이가 짐작이 되지 않았을 터라, 충분히 그런 오해를 살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외국에 나와서 알게 된 게 외국 사람들은 동성끼리는 손을 잡지 않고 다닌 답니다. 여기서는 동성끼리 손을 잡고 다니면, 동성애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네요. 그러고 보니 쇼핑몰을 다닐 때도 젊은 학생들을 많이 보는데, 여학생들도 손을 잡고 다니는 아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동성애가 화제가 되어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가면서 딸아이 학교 친구 중에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그 아이가 집에서도 커밍아웃을 했는지 였거든요. 딸아이는 "그걸 제가 왜 물어봐요? 우린 그런 깊은 얘기는 안나눠요. 사회의 시선이니 그런 고리타분하고 무거운 얘기는 안해요. 그냥 똑같은 얘기해요" 이러더라고요. 딸아이가 말하는 똑같은 얘기라는 것은 이성친구들이 누구 사겼는데 어땠느니 저땠느니 하는 같은 얘기들이라는 겁니다. 동성애자들과는 특별한 얘기를 할 것 같다는 제 편견이 부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회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경수를 맞이하는 태섭의 가족들의 모습처럼요.
인생은 아름다워 태섭의 상대역인 경수가 처음으로 폭풍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짠해지더군요. 처음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해 주는 태섭의 가족들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정말 미치도록 싫어서 우는 모습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경수와 함께 우는 태섭이 역시 같아 보였고요. 
민재의 요리작품사진을 찍으러 온 경수, 경수가 태섭의 상대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병태의 집을 방문한 것이었기에 병태와 가족들의 반응이 자못 궁금했습니다. 김수현 작가는 어떤 식으로 경수까지 병태의 집에서 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특히 병걸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맥빠질 정도로 감동은 없었어요. 맥빠질 정도의 무덤덤한 반응, 그 자체가 감동이었어요. 그것이 경수에게는 호들갑스러운 환영인사나 경수에게 "자네를 인정하네" 라는 말보다 더 감동스러웠으리라 생각들더라고요. 여느 이성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말처럼 "태섭이랑 잘 지내달라는 부탁밖에는 할말이 없다"는 병태는 어렵게 "자네 부모님은 받아들이셨느냐?"고 물을 뿐이었습니다.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말에도 쉬운 일 아니라고 이해해 주라며 경수를 안타깝게 여길 뿐입니다. 병태 역시 태섭을 받아들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지금도 병태의 마음에 미련이 남아 있음을 병태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사진 작업을 끝낸 경수에게 민재는 늘 그래왔듯이 씻고 가라고 말합니다. 병태는 일하러만 오지 말고 가끔 들러서 밥도 얻어 먹고 가라며, 집에 데리고 온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에게 할 수 있는 인사를 하지요. 경수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었던 것은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은 병태네 가족들의 태도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들은 경수를 인정한다, 아니다를 떠나 태섭의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로 대하듯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주었을 뿐이에요. 자연스럽다는 것, 그것은 경수를 인정해 준다는 것보다 따뜻한 위로였고, 경수나 태섭이와 같은 제 3의 성을 가진 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나 인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봐주는 것,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당하지 않는 것, 그것을 경수는 민재와 병태를 통해서 받았기에 경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병걸 삼촌이 "너도 게이냐?"며 무례한 말을 하지만 경수에게는 병걸의 말이 더 이상 충격적인 상처도 되지 못했을 거예요. 이미 경수는 그보다 더 심한 말들을 가족들에게 매일같이 들어야 했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도 괴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경수가 받은 상처는 끔찍했습니다. 동생은 자살을 기도했을 정도로 경수 가족들은 경수를 받아들이지 못했고요.
경수가 태섭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하는 말이 동성애자들의 심정을 대변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라도 집에서 이해받아서 다행이다. 너랑 나 탈출구도 없이 몰리면 길은 하나 뿐이야. 한 날 한 시에 세상 하직하는 것, '동성애자 동반자살' 신문 한 귀퉁이에 가사 나는 거지"
경수의 대사를 들으며 이것이 동성애자들의 보이지 않는 현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 사건들 중에 동성애자여서 받는 스트레스때문에 죽었을 사건들도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사회적 통념과 편견이라는 것이 어느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경수는 태섭을 인정했다는 병태 가족들이 어쩌면 별종들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막상 병태네 집에 와서 칼국수를 먹으면서 그들은 경수나 태섭을 특별하게 대하지도 않았고 일부러가 아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대해주는 것을 보고 경수가 속으로 오히려 당황했을 지도 몰라요. 창살 없는 감옥, 출입구조차 없는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 경수는 비로소 자신에게도 숨쉴 수 있는 창문 하나 쯤은 달려있고, 자신이 갇혀있는 감옥에 자물통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것도 느낍니다.

커밍아웃 이후 처음으로 경수는 똑같은 사람에게 대하는 태섭의 가족을 통해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서러움을 함께 느꼈을 듯 싶더군요. 감사하면서도 왜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서 당연하게 사람으로서 받아야 할 대우마저도 감사해야 하는 자신이 또다시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는 경수를 부둥켜 안고 함께 우는 태섭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고요. 
아직은 많이 어려울 지도 몰라요. 경수나 태섭이와 같은 성적소수자들을 편견없이 같은 인간으로 본다는 것이요. 하지만 그들을 위해 창문 정도는 만들어 줘야 하고, 적어도 자물통은 채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를 통해 태섭도 민재도 병태도 눈물을 흘렸지만 경수의 눈물을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 왔어요. 경수에게는 태섭의 가족은 확대적인 의미로 사회의 시선이었고, 비록 그 작은 사회안 역시 성적소수자가 있었기에 경수에 대해서도 관대한 시선을 보여줬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경수의 입장에서는 가족 아닌 타인의 집단으로부터 이해를 받는다는 것은 큰 의미에서 포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적소수자의 가장 큰 바람은 특별하게 배려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이해 혹은 인정해 준다는 일종의 동정심의 시각도 아닐 겁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다른 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호기심의 대상이나 질타의 대상이 되지 않고, 또한 심리적 죄인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것일 겁니다. 그런 대우를 처음으로 받아봤기에 경수가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수의 눈물이 지난 주 태섭의 커밍아웃으로 흘린 눈물과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그런 성적소수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눈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3
2010.05.31 13:09




김수현 작가의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민재와 병태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태섭을 품으며 감성을 건드려 주었다면, 정신병자 혹은 미친새끼라는 악담을 퍼붓은 삼촌 병걸(윤다훈)에게 지혜의 입을 빌어 동성애는 위법이 아니라고 맞받아 쳐준 것이지요. 동성애는 위법도 전염병도 아닌 성적 유전자가 다른 것 뿐이에요. 다만 다르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정서에 맞지 않고, 성적으로 동성에 끌린다는 것 뿐일 겁니다.
저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김수현작가가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김수현 작가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권장한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습니다. 다만 겉으로 불거지지 않은 문제를 건드려 주었을 뿐이고,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성적 소수자를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중 자기 조카임에도 또라이라며 막말을 하는 병걸이나 냉소적으로 보는 수일(이민우)같은 사람이 우리사회에 분명히 있고, 누구의 생각이 편견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을 만큼 우리사회에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동성애자에 대해 그런 사람이 있구나, 나랑은 다른 사람일 뿐이라고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병걸이나 수일이 왜 그렇게 비뚫어지고 아집이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병걸이나 수일처럼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을 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냐며 충분히 혐오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성적특수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고, 심지어는 더럽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혹은 이 모든 것이 남 일이며, 그저 이해 혹은 인정해 주면 그뿐이라는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생각이 옳다 그르다를 편가르기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 지 모릅니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고, 남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가족인 병태나 민재까지도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태섭의 아픔을 보며, 중요한 것을 하나 깨우쳤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추구권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 혹은 이해에 의해 그나마 아주 일부분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지난 주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 리뷰글을 올리고 충격적인 댓글을 보고는 하루 종일 심장이 벌렁거린 일이 있었어요. 그대로 옮겨보자면 "게이 새끼들은 다 죽여버려야 한다" 는 댓글이었습니다. 드라마 리뷰글을 올리면서 극중 캐릭터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 혹은 망했으면 좋겠다라는 등등의 댓글은 항상 있는 일들이지요. 드라마에서 용서하지 못할 악역들에 대해서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댓글은 드라마 캐릭터가 아니라 게이라는 성적 소수자들을 싸잡아 지칭하고 있었기에 너무나 충격적인 글이었어요. 아무리 익명의 인터넷상이라고 해도, 그런 범죄적인 생각을 버젓이 남의 글에 쓰고 가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조두순이나 용서하기 힘든 악질범들에 대해서였다면 충분히 이해되었을 텐데, 그 언어와 사고의 폭력성에 놀랐고 무서웠어요. 
그런데 만악 한국이나 외국이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동성애 커플에게 공개적으로 대놓고 욕을 한다면, 과연 사람들에게 잘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는 의문입니다. 아마 인격무시이다, 사회적 편견이다 라며 여론에서도 난리가 났을 겁니다. 속으로는 동성애자를 이해해 주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공개적으로 욕을 하거나, 비난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는 것쯤은 적어도 우리사회에서 지켜지고 있고, 또한 지켜져야 할 상식일 겁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피해를 주지도 않았는데, 동성에게 끌리는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요. 더구나 선택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말입니다.

작년이었나, 저희집 아이들이 이곳 캐나다에서 우리나라 에버랜드와 같은 원더랜드라는 놀이동산에 놀러갔다가 좀 놀랐다며 전해준 이야기가 뒤늦게 생각납니다. 그날은 캐나다 동성애자들끼리 놀이동산에서 모임을 가졌었나 보더라고요. 동성애자 커플을 길거리에서도 아주 가끔은 봤던 아이들이었는데도, 동성애커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게 많아서 같이 섞여서 놀이기구를 타기가 찜찜했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함께 간 외국인 친구들도 비슷한 기분들이었다고 털어 놓더라고요. 저도 많이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도, 그런 광경을 본다면 고운 시선으로 볼 자신은 솔직히 없습니다. 하물며 한국에서는 더 심하겠지요.

그런데 그 찜찜함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부분에서 찜찜했다고 하더라고요. 전 그냥 단순히 불결해 보였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냥 불편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시선이 자꾸 가게 되니까, 혹시 차별적인 눈으로 쳐다본다고 생각할까 봐서요. 이성애자들이 키스를하거나 껴안고 있을때는 아무렇지 않게 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커플 옆을 자연스럽게 지날 수 있는데, 동성애커플의 경우는 옆을 지나치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왠지 돌아서 가야 할 것 같더라네요.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니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물론 호기심으로 구경하듯 힐끔거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고, 속으로 혐오하고 겉으로도 불쾌한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남들과 다른 성적 유전자를 가진 그들은 분명 사회적으로 약자이고, 소수자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도 이성애자와 똑같이 인격체이며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병태가 태섭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면서 말하지요. 네가 무슨 죄졌느냐고요.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줬느냐 고요.
다른 사람과 다른 성적 성향을 가졌다는 것 하나로 움츠러들고 죄인처럼 살아가는 그들은 어쩌면 사회적 인식의 편견이 나은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 마치 흉악법처럼, 전염병자처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가해자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병준(김상중)의 대사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집만 따뜻하면 돼요. 태섭이만 행복하면 돼요" 
태섭이의 행복을 말하는 대목에서 과연 이런 성적 소수자들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이 주고 말고 할 권리가 있을까 싶더군요. 그나마 집에서라도 행복할 수 있는 태섭이는 집 밖에서는 행복할 권리가 없을까? 태섭의 가족들이 경수의 가족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고 몰아세웠다면, 태섭은 집에서도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행복추구권도 이들 성적소수자들에게는 권리가 아니라 엄청난 행운 혹은 혜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수현 작가는 가족 속에서 그 화해와 이해의 실타리를 품과 동시에 인간의 권리로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저는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성애가 위법이 아니라는 말 역시도 파괴력을 가진 말이었어요. 알게 모르게 범죄자처럼 냉대받는 성적소수자들은 성문법보다 더 혹독한 사회적 편견이라는 사회법으로 죄인 아닌 죄인으로 취급받는게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고, 많은 부분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옅어지고, 나와는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열린생각도 많아지고 있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극중 병걸이나 수일같은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지혜나 초롱이, 호섭이 같이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그러나 모든 것을 떠나 그들도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추구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마음들이 열려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손가락 View On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20
2010.04.12 12:03




소화불량으로만 알았던 양지혜에게 폭탄이 떨어졌다. 임신 7주라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원하지 않았던 임신 사실에 까칠한 지혜는 대경실색해서 남편 수일을 향해 앙칼지게 화를 내고 만다. 아이는 지나 하나로 끝내고 잘 키우고, 아이 육아에서 일찍 손떼고 늙어 우아하게 테라스에서 책보며 여유자적한 생활을 즐기겠다는 야무진 꿈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지혜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은 사실 젊어서 누구나 그려보는 미래상이었을 것이다. 그게 말처럼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바로 가까이 꽤 세련되고 요리연구가로 전문적인 일을 가지고 있는 엄마의 삶을 보면서도 지혜는 상당히 이기적인 꿈을 꾼다.  
극중 지혜는 정을 주기 힘든 캐릭터다. 좋은 말로 하면 완벽하고 자로 잰듯 깔끔한 성격이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한마디로 피곤 그 자체인 여자라는 말이다. 지혜가 그리는 50대 이후의 삶을 들여다보면 지혜는 굉장히 이기적인 젊은 주부이며 딸이다. 자신은 자식에게 손털고 독립적으로 여유자적 우아하게 살고 싶으면서도 현재 친정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자신의 모습은 안중에 없다. 
인생은 아름다워 8회에서는 양지혜(우희진)의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가족회의가 열리면서 소름끼치는 대사들이 오갔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지혜의 폭탄선언에 가족들은 생긴 아이인데 지우려고 하느냐며 대부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반면, 의사인 태섭은 낙태가 어느 선에서 합법적인지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 차이, 그리고 선진국에서 18~24주내의 태아는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며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례까지 예를 들며,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만이 아닌 균형있는 시각들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극중 대사로 옮겨가 보자.
아버지(김영철): 도대체 반드시 하나여야 하는 이유가 뭐냐?
수일(이민우): 자식한테 투자하는 세월이 너무 긴 것도 싫고, 몸매 망가지는 것도 싫고 뱃살 늘어나 주글거리는 것도 싫다고 한다
지혜(우희진): 우선 경제적으로 둘은 벅차다. 요즘 애들한테 들어가는 돈 강남은 월 평균 2~300은 보통이다
엄마(김해숙): 어차피 생긴 아이를 안 낳겠다는 것은 생명존중사상에도 위배된다
지혜: 내 몸에 생긴 일이고, 결정권은 나한테 있고 행복추구권도 있다.
수일: 내 자식이기도 하다
할머니: 자리 잡은 아이를 어떻게 못 낳게 해? 그것은 살인죄야
태섭(송창의): 낙태에 대한 논쟁의 역사가 긴데, 기독교에서는 수태 순간이 생명으로 보는 반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태 후 24주까지는 생명으로 보지 않았다. 24주후 태아가 엄마와 떨어져 혼자 살 수 있을 때를 생명으로 간주했다. 미국에서도 논쟁중인데 대부분 선진국에서 18주내에서의 낙태는 허용한다 
다음날 삼촌 윤다훈은 지혜에게 더욱 심하게 직격탄을 날린다.
병걸(윤다훈): 내가 이서방같으면 당장 이혼이야. 너 살인자거든. 아름드리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출발하는데, 씨앗은 생명이 아니냐? 생명의 근거와 출발이 씨앗인데, 너는 그 씨앗을 죽이려는 살인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거야. 그런 생명에 대한 의식이 없는 너는 심각하고, 소름끼치는 악독한 여자야. 내 자식을 죽인 여자 무서워서 어떻게 사냐?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대사들이다. 생명인데 어떻게 지우려고 하느냐는 식의 대사가 진부해지기 까지 하는 대목이었다. 매회 한 사람씩 넘어지는 엔딩은 예기지 않은 돌발사고가 우리 인생에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지혜의 임신은 자로잰 듯 계획적인 지혜의 인생에서는 최고의 충격으로 넘어진 사건이 아닐까 싶다.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로 출산장려금에 교육보조금까지 지급하겠다는 정부시책에도 출산률이 올라갈 기미는 없어 보인다. 육아에 대한 부담, 감당되지 않는 교육비, 게다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육아문제가 심각한 게 현실이다.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손주들을 맡아주던 시대도 옛말이 되어 버렸다. 어느 한 사람만의 의견이 옳다고 볼 수 없다. 자신의 몸에 생긴 일이니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지혜나, 생명을 함부로 지우면 안된다는 가족들의 말은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임신을 원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방어하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그게 아닌 지혜와 같은 경우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김수현 작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살인의 범주로까지 낙태를 화두로 던졌다. 드라마 속의 지혜의 경우는 원하지 않았던 임신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 둘을 키우지 못할 상황도 아니고, 지혜의 생각 여하에 따른 문제니 말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꼭 낙태가 필요해 보이지 않는 지혜와 수일 부부의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별로 유쾌하지 않은 낙태라는 문제를 드라마속으로 끌어들인 김수현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작가는 아이가 생겼으니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져야한다느니,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로 불유쾌한 소재를 풀어가지 않는다. 좀더 잔인한 방법으로 불유쾌함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극중 할머니 고점례여사와 삼촌 병걸(윤다훈)의 대사 "살인죄와 살인자의 길" 이라는 말에서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다. 
김수현은 한발 더 나아가 케케묵은 논쟁일 수도 있는 태아를 생명으로 봐야하느냐 아니냐를 넘어서,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에 서슬퍼런 일침을 가해 버린다. 어떻게 가족들의 대화 속에 "넌 살인자의 길을 가고 있는 거야" 라는 말을 넣을 수 있었을까? 여기서 작가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하지 않는 임신, 우리사회에 충분히 많이 있고, 지금도 어느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핏덩이로 버려지는 태아들이 있다. 살인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머리가 쭈뼛쭈뼛해지는 순간이었다.
부부에게 원하지 않은 아이가 생겼을 경우,  물론 그 부부의 문제이고 개인적인 선택이겠지만, 우리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인 가족 안에서까지 자행될 수 있는 죄에 대한 노작가의 걱정이고, 애정어린 충고이며, 경고가 아닐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4 Comment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