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3.06 '추노' 대길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작가가 말하는 희망? (42)
  2. 2010.03.02 '추노' 노비당 그분의 배후, 또 있다? (22)
2010.03.06 07:17




대길이와 송태하의 옥중대화가 드라마 추노의 결말이 암시된 중요한 부분이라 따로 정리를 했습니다. 송태하의 한계일 수 밖에 없는 계급의식을 결국 송태하는 극복하지 못했고, 대길이는 살아가는 이유였던 언년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함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송태하에게 확인시켜 주었지요. 송태하가 신분의식을 버리지 못한 것이 한계이지만, 양반사상이 골수에 박힌 송태하가 한계를 가졌다고 평가를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관점이고,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한계라고 규정할 수만은 없겠지요.
송태하는 대길과의 옥중 대화에서 "노비로 떨어져서 살아봤더니 어떠했느냐?"는 질문에도 한 번도 자신이 노비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며, 정신까지 굴복한 적은 없다고 대답함으로써 신분에 대한 견고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대길이 자신의 부인을 노비시절의 이름 언년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그 이름을 모른다고 혼란을 피해 가려고 합니다. 자신의 부인은 양반 김혜원일뿐이고, 김혜원이어야 하니까요. 자신의 부인이 언년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부인이 노비였음을 스스로가 인정해야 하기때문에 결코 언년이라는 이름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계집 하나 지키지 못하는 놈이 세상을 논할 자격이 있나?"

대길이 혁명이니 새 세상이니 뭐가 중요하냐며 "계집 하나 지키지 못하는 놈이 세상을 논할 자격이 있나?" 라고 물었지요. 그리고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느냐고 따졌던 장면이 있었어요. 아마 이 때 송태하의 마음은 이미 결코 혜원(언년)이 자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언년이를 지킬 사람은 대길이라는 것을 송태하 스스로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다만 사랑에 대한 패배감과 노비였던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혼란스러움에 그 꼿꼿한 자존심이 상처를 입고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짐승같이 울부짖는 대길의 뇌리에는 온통 언년이 하나임을 읽었을 테니까요.
송태하는 부인 혜원의 사랑보다는 시대적인 사명, 즉 원손을 지키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우선일 수 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대길이와 자기 스스로에게는 그것이 같은 길이며, 결코 양분될 수 없는 일이라 강조하지만, 이미 송태하는 알고 있습니다. 
대길이 송태하에게 네놈이 구하려는 사람이 임금손자인지 언년인지 물었을 때도 송태하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네 일이 아니니 상관말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지요. 또한 언년이라는 이름을 모른다고 혜원이 노비였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양반계급의식은 송태하에게서는 깨지지 못할 금강석과 같은 뿌리입니다. 송태하같은 양반들의 사고로는 세상이 열두 번 뒤집어진다 해도 양반의 피와 상놈의 피가 다르다는 것이 세상을 받치고 있는 근본입니다. 송태하의 한계이자 그가 대길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사랑에서도 혁명관에서도 말이지요. 
현 시대 우리 눈에 비춰보면 한계일 수 밖에 없지만 당시 조선 사대부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일 겁니다. 결국 평등사상은 농민과 노비 등 피지배계층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지요. 신분적 자각은 그 신분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계층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동학농민전쟁이 그러했고, 장길산이 그러했지요. 대길이 개인적인 이유이지만 혁명적인 인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 죽음 앞에 두 사람이 누구를 혹은 무엇을 떠올렸을까 궁금하더군요. 대길은 죽음 직전 언년이를 떠올리고, 언년이를 부르며 혼절했었는데, 송태하가 목매달렸다면 그가 마지막에 한 생각이 무엇이었을까? 송태하는 언년이도 떠올렸겠지만,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는 원손과 소현세자, 혹은 먼저 간 전부인과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송태하의 가슴에 맺힌 한(恨)이기 때문이에요. 송태하가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대길이가 마지막에 언년이를 부른 것도 10년간을 가슴에 품었던 언년이에 대한 한이었지요.
대길이와 송태하의 대화를 보면 두 사람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름을 엿볼 수 있었어요. 대길이는 자신의 죽음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교수대에서 밧줄에 매달리는 순간에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지요.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언년이 때문었어요. 집안이 몰락하고 칼부림이 난무한 저잣거리 난잡꾼들 사이에서 추노꾼이 되었던 것도 언년이를 찾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송태하는 죽음에 항상 담담합니다. 죽는 자리가 명예롭다면 죽는 것이 억울할 게 없다는 인물입니다. 죽을 때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을 하는데요, 군인이었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늘 죽음을 준비했던 인물이었지요.

다행으로 대길이와 송태하는 구출되었고, 대길이는 언년이를 향해, 송태하는 언년이가 데리고 있는 원손을 향해 언년이의 사가 여주로 향했습니다. 결국 대길이와 언년이, 송태하는 원손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돼버렸지요. 
사랑과 신분의 괴리를 송태하가 극복할지는 모르겠지만, 송태하는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로 대변되는 양반들의 한계 역시 드라마 추노에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지요. 모든 주인공들이 각성해 버리면 그것도 재미는 없잖아요. 어떤 이는 한계속에 혁명을 노래하다 좌절하고, 어떤 이는 세상을 뒤집어 버리려 총을 들고, 또 어떤 이는 하루 세끼 밥먹는 것으로도 행복한 삶이고, 또 어떤 이는 사랑에 인생을 걸기도 했던 다양한 인생들이 우리네 삶이고, 그런 모든 것이 축적되어 온 것이 혁명의 역사, 좌절의 역사, 사랑의 역사이니까요.
대길이는 희망의 밀알
막바지에 접어든 추노를 보면서 요즘 한 가지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추노가 시작할 때만 해도 대길이는 반드시 죽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 대길이는 반드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네요. 대길이라는 캐릭터의 매력때문만은 아니에요.
제가 보는 조선의 희망은 대길이라는 인물이기 때문이에요. 한계를 가진 송태하보다는 가장 혁명적이면서도, 거창하게 혁명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대길이라는 불씨 하나 쯤은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대길이와 송태하가 옥중에서 나눈 대화 중에 드라마 결말을 암시하는 듯한 중요한 대사가 있었어요.

대길이가 송태하에게 '반드시 살아서 지킬 사람 있으면 지키고 구할 사람 있으면 구하라'고 했었지요. 그리고 "네놈이 만약 세상을 바꾸게 되면 그런 거나 한 번 해 봐라. 살기 힘들어서 도망가는 놈 없고, 그런 놈 잡으러 다니는 나같은 놈 없는 그런 세상... 이 빌어먹을 사랑 하나 마음대로 못해보고 세상 참 지랄같잖아?"
그 때 송태하의 대답은 패배주의적인 대답이었어요. "내일이면 우린 죽을 것이다"라고요. 대길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살아서 이루라고 말을 하고 있었는데, 송태하는 죽음을 얘기해 버렸거든요. 송태하의 말에 대길이는 "난 안 죽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이유 하나 쯤은 누구나 있게 마련이거든" 이라고 대답했지요.
이 대목에서 대길이는 반드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송태하와 부정하는 대길이가 너무 대조적이었거든요. 대길이의 말에서 순간 스피노자의 명언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떠올랐어요.
대길이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제 바람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희망 하나 남겨두는 것과 동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혁명은 조선비나 송태하같은 거창한 명분을 건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네 삶 속에 대길이가 남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으면 싶어요. 양반 상놈 없는 평등한 세상은 대길이 같은 작은 각성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신분을 깰 수 없는 송태하는 혹이라도 언년이를 인정한다해도 개인적이라는 한계를 가집니다. 하지만 대길이는 다르지요. 대길이가 총을 들고 칼을 들고 양반집, 혹은 궁궐을 쳐들어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에요. 살아남아서 평등한 세상을 염원하는 의식의 흐름, 그 작은 한 축이라도 대대손손 남겼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많은 세월이 필요할 지 모르지만, 대길이 같은 인물이 하나 둘 늘어나 민초들의 삶 속에 노래가락처럼 뿌리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언년이 역시 죽이면 안되겠지요. 대길이가 살아가는 이유니까요.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가장 높은 담장은 궁궐일 것입니다. 그런데 궁궐의 담보다 높은 벽이 있습니다. 바로 송태하로 대변되는 사대부들의 뿌리깊은 신분의식입니다. 송태하가 아닌 대길이가 살았으면 하는 이유는 이것때문이에요. 대길이가 조선의 사과나무이기를 바라는 것 말이지요.
결국은 혁명도 세상도 다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했던 대길이와 언년이, 그 사랑 하나만은 지켜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이천에 사뒀다는 땅에서 옆에는 최장군, 길목에는 왕손이가 여곽하면서 오손도손 사는 것도 바라고 싶네요. 자식들 낳아서 그 자식들, 또 그 다음 세대에게 사과나무의 희망이 이어져 신분해방의 밑거름이 되고, 그리하여 미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혁명의 이름 아래 모이게 되는 작은 밀알 하나쯤은 남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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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2 07:02




시청자들이 궁금해 했던 노비당의 당수 그분(박기웅)이 밝혀졌는데요, 극 중 이름은 없고 아직은 그분이라는 3인칭 대명사로 통하고 있지요. 물소뿔과 관련된 상인을 암살하는 과정에서 위기에 처한 업복이와 끝동이를 구하며 극적으로 등장했는데요, 그분의 드라마에서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지난 글 <업복이에게 암살 지령 내린 그분, 누구?>에서 저는 기생행수 찬을 그분 혹은 그분의 명령을 받는 인물이라고 추측한 바 있습니다. 그 글에서 좌의정에 대해서는 그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제로에 가깝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지금도 그분과 관련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기생행수의 정체에 대한 글을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이 좌의정이 의심간다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저도 사실 긴가민가 의혹을 품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좌의정은 그분과 관련된 인물의 선상에는 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글 중간에 밝히도록 하겠고요, 혜성처럼 등장한 그분은 조금 싱겁게 등장을 한 점도 있지만, 여전히 그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16회 리뷰글을 올리면서 대길이와 송태하의 결투의 중요성과 노비당 그분에 대해서 글을 올리겠다는 말씀을 드려서, 대길이와 송태하의 대결은 <송태하의 잘려나간 상투의 의미>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렸고요, 이번 글은 약속드린 대로 그분에 대한 글입니다. 다음 17회에서 아마 그분이 대길이와 송태하, 혹은 왕손이와 최장군을 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전에 그분에 대한 것을 집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요.

그분과 기생행수 찬과의 관계
저는 여전히 기생행수 찬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어요. 새로 들어온 제니 역시 발언이 당돌해서 정체가 의심되는 부분이 많은데, 일단 그분과 제니를 엮기에는 제니가 등장한 시점이 업복이에게 화살로 밀지, 즉 천냥짜리 어음을 가지고 있던 박병의를 암살하라는 명령 이 후라는 점에서 일단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또한 찬의 기루에 오기 전에 평양기생이었다는 점에서도 개연성이 부족한 면이 있지요. 그런데 기생행수 찬이나 좌의정 이경식에게 대하는 그 당돌한 발언 때문에 제니 역시 궁금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현재 좌의정의 동선을 꿰뚫고 있는 인물은 기생행수 찬과 좌의정 곁에 있는 딸랑이(이분 극중 이름을 모르겠네요)입니다. 그런데 딸랑이는 그간의 언행으로 봐서 노비당을 이끌만한, 혹은 이용할 만한 배포 큰 인물은 아닌 것 같고요, 저는 기생행수 찬이 노비당 그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노비당 그분이 종으로 있던 양반집이 몰락하면서 형제들도 뿔뿔이 팔려갔다고 했는데요, 기생행수가 그분의 누이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과 기생 찬이 관계있다는 것은 그분이 얻은 정보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기생 찬은 좌의정이 박병의에게 어음 천냥을 준 일이나 좌의정이 물소뿔을 사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청의 용골대가 푼 자객들이 제주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좌의정이 간파하고 있었던 일이었고요. 사실 이를 기생 찬과 얘기를 나눈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좌의정이 수하와 정치적 논의를 주로 하는 비밀장소가 기생 찬의 기루라는 점에서 기생 찬도 알았을 것이라는 전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추측은 그분이 기생 찬의 기루에서 일을 하는 종일 수도 있겠지요. 날랜 몸을 보아 기생찬과 좌의정의 대화를 엿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기루에서 일하는 노비가 매번 잠복해서 기생 찬의 방을 기웃거릴 수도 없을테니 단순한 종은 아닐 겁니다. 또한 그분은 지금은 한양에 살지 않고 팔도를 돌아다니며 뜻을 같이 할 동지들을 규합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도 했었지요. 전국에 2천여명의 노비당 조직이 있다는 것을 보면, 그분은 전국적으로 활동을 해야하는 자유를 부여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이고요. 따라서 기생 찬의 전폭적인 협력없이는 그분이 그렇게 전국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노비당이 대길이와 송태하, 그리고 왕손이와 최장군을 구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16회가 끝나고 다음회 예고편에서 암시가 되었습니다. 업복이과 끝동이가 총을 겨누는 모습도 비춰졌고, 그분이 지도를 펼치고 작전을 짜는 모습도 있었어요. 그 지도는 포청의 건물배치도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런데 노비당에서 왜 송태하와 대길이를 구하려고 하는냐에 의문을 품어야겠지요. 이는 송태하가 원손과 연관된 인물이고, 송태하를 구출한다는 것은 곧 왕과 정치실세인 좌의정에게 총을 들이미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노비당이 포청관아를 습격했다는 것은 양반들에게는 위협적인 일이지요. 더구나 노비당이 습격해서 구출한 인물이 도망노비 송태하라는 사실은 단순한 사건이 아닌 것이지요. 송태하는 어떤 의미이든지 현 정치실세들의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소현세자와 관련된 인물이며 아직도 살아있는 소현세자의 아들 석견과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도망노비를 구출했다는 것과는 사안이 다른 문제이지요. 
좌의정을 비롯한 정치실세는 송태하의 배후에 또 다른 세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임영호가 죽었고, 석견을 옹립하려는 유생 대부분이 제거되었는데, 여전히 반정의 기미가 있는 세력이 활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양반실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위협을 보여 주기 위해 노비당의 업복이가 관아를 습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관아의 습격이 실패한다면 송태하와 대길이 교수형에 처할 위기에서 새끼줄을 명중해서 살릴 가능성도 있겠지요. 극적인 장치이기는 합니다만.

송태하와 이대길을 구출하라는 지시는 기생행수 찬이 내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생 찬은 송태하가 붙잡힌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좌의정의 성정상 이대길 역시 그대로 둘 위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을 겁니다. 좌의정이 송태하를 추노하고 있던 것은 기생찬이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대길이에게 일을 지시할 때 기생행수 찬을 대동하고 있었고, 대길이 몸값을 흥정할 때 묘하게 흥미롭다는 표정을 보였지요. 기생찬은 대길이 예사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압구정 정자에서 대길의 배포를 보고 알았을 겁니다. 물론 원손을 왕위에 옹립하자는 뜻을 같이 품을 수는 없더라도 좌의정이 공적이라는 것은 공통적인 이해관계이지요. 
대길이를 찾아 온 천지호가 대길이를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천지호 역시 대길이의 구출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크겠지요. 황철웅과의 대결이 예고편이 나왔는데 무술 실력이 한참 딸리는 천지호가 변을 당하지 않기만을 바라네요. 천지호도 알고 보면 추잡한 개차반이지만 극중 천지호의 비중이 적지 않아 일찍 수명을 단축시키지나 말았으면 싶네요. 황철웅의 마지막 숨통은 천지호가 끊어 주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황철웅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의혹이 많아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데, 아직 황철웅의 심적인 부분이 나오지 않아 섣불리 추측하기가 어려워서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황철웅에게도 그분 못지 않은 큰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비당 업복이가 대길이와 송태하를 구출하면서 세사람의 운명적인 만남과 연합이 이뤄지게 되겠지요. 노비당이 대길이와 송태하 혹은 왕손이와 최장군(이 두사람은 살아있다는 전제하에서 입니다)을 구출하면서 수세에 몰리게 될 것이고 관으로부터 대대적인 추포령이 떨어지면, 마지막으로 이들이 몰려들게 될 곳이 짝귀가 있는 월악산이 아닐까 조심스레 점쳐 봅니다. 노비당의 그분과 짝귀 역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동지일 가능성도 있을 거고요.

그분이 좌의정의 조종을 받는다면 실망이다
많은 분이 노비당의 그분이 좌의정의 조종을 받는 인물일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않고 있는데요, 저는 극적인 반전은 크지만, 추노에 흐르는 민초들의 저항이라는 그 역사적 의미는 실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비당을 이끌면서 종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그분은 좌의정의 꼭둑각시 노릇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노비당이 모인자리에서 모두에게 양반다리를 하라며 같은 사람임을 역설했습니다. 큰일하는 처지에 남녀노소 구분도 두지 않은 혁명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입니다. "누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맙시다. 양반만 양반다리 하라는 법 있습니까?" 라는 행동에서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지요. 그보다 경천동지할 발언은 "양반 상놈이 뒤집어져 우리가 그들을 부리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왕이 되는 세상이 올 겁니다"라는 발언이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좌의정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면 그런 발언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분의 언행은 극중에서도 연기가 아닌 마치 도를 터득한 사람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좌의정을 조종을 받기에는 그분의 혁명적인 사고관이 득도를 한 이상으로 진지하고 심오했지요.
또한 좌의정이 노비당의 배후라면 박병의를 죽였을 때 5만냥어치의 물소뿔을 천냥에 강탈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거사 자금으로 노비당이 회수하길 원했다면 그 보다 큰 돈을 지원해 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요. 또한 노비당을 좌의정이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이용하고자 했다면, 암암리에 거사자금을 대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노비당을 조직적으로 규합시켜 도성을 향하게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 역시 노비당의 제거 1순위가 될 것인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목적도 없기 때문이죠.
물론 좌의정을 용의선상에 놓을 수 있는 여지 한가지는 있습니다. 바로 노비당을 이용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켜 왕권을 흔들고, 노비당을 일망타진해서 공을 세우는 계책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현실성은 떨어져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노비당이 좌의정에게 조종되는 꼭두각시 당이라고 한다면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드라마 추노는 비록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일지라도 그 좌절 속에서 역사가 진보해 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선 이전에 노비들의 난이 있었지요. 고려시대 망이, 망소이의 천민의 난,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의 난 등이 그것이지요. 만적의 난은 사전에 발각되어 좌절되었지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말은 노비와 피지배계층들의 의식 속에 뿌리 깊은 저항의식의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그분의 신분해방을 위한 계급투쟁 역시 주체적인 신분자각에서 비롯된 저항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좌의정이라는 양반계급에게 이용당한 무지몽매한 민초들이라고 한다면, 좌의정에게 이용당했다는 극적인 반전은 클 지 모르나 길바닥 사극 추노 속의 역사적 의의는 평가받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역사는 비록 성공하지 못하고 수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그분과 노비당과 같은 밑바닥에서의 저항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조선을 뒤흔들었던 홍길동이 그러했고, 임꺽정 역시 주체적으로 신분해방을 설파하고 저항했던 인물이지요. 홍길동이나 임꺽정같은 신분해방 의식은 피지배계층의 저변의식으로 확대해 가면서 저항의식의 밑거름이 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어요. 이후 숙종때 활약했던 장길산과 같은 인물 역시 어느 날 뚝 떨어져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동학농민전쟁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추노 속의 노비당 그분이 좌의정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이 아닌 주체적인 신분해방론자이기를 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좌절하고 실패한 저항들이었지만 민중들사이에서는 늘 꿈이 있었습니다. 신분제 타파를 들고 봉기한 동학농민전쟁이 우연속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요.
민초들 사이에 끊임없이 희망을 노래했던 파랑새에 대한 꿈이 입에서 입으로 세대를 거쳐 파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나 송태하 업복이 대길이는 우리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장길산, 전봉준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제가 그분이 좌의정의 꼭둑각시가 아니길 바라는 이유입니다. 

관련글: '추노' 송태하의 잘려나간 상투의 의미
           '추노' 업복이에게 암살 지령 내린 그분,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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