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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21 '내 마음이 들리니' 장준하가 초코우유만 마시는 이유 (14)
2011.06.21 14:53




"저는 못듣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입니다". 청각장애임을 고백하는 차동주는 더이상 들리지 않는 세상이 무섭지도, 자신의 뒤에서 수근거리는 사람이 두렵지도 않습니다. 동주의 눈을 보고 이야기해 주는 봉우리가 있어 괜찮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전하는 눈, 코, 입, 눈썹이 전하는 소리를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불편하지만, 더이상 부끄럽지 않습니다".
차동주는 비로소 갇힌 세상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왔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발걸음을 움직이듯이, 들리지 않는 암흑의 세계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봉우리의 목소리를 따라 걸어 나왔습니다. 소리를 잃었다는 충격에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두고, 어머니 태현숙과 수호천사 장준하의 보호를 받은 철가면이, 스스로의 힘으로 감옥을 나온 것입니다. 철가면 속에 숨기고 있던 흉측한 화상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말이지요.
세상은 차갑지 않았습니다. 아니 한줄기 빛조차 들지않는 차가운 감옥에서 살아왔음을 몰랐던 것이 미안하다고 말해 줍니다. 어떤 이들은 수근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근거림은 동주를 위협하지 못합니다. 보지 않으면 되니까요. 그들은 죽어라고 동주 뒤에서 소리칩니다. '겁나지? 너 귀가 안들린다며?'. 하지만 차동주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뒤에서 수근대고 소리치는 사람이 더 화나고 답답할 뿐이죠. 등뒤에서 혼자 소리칠 수 밖에 없는 준하형처럼 말이지요.
어머니 태현숙에게 동주가 사는 세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말이 필요없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영상이 예뻐서가 아니었어요. 들리지 않는 세상에 대해 그렇게 간결하게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 싶은 대사때문입니다. "움직이는 그림책같은 세상 속에 갇혀 살아서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라는 표현이에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는 물 속 세상,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팔로 발로 허우적거려야 하고, 상대의 입술을 읽기 위해 눈조차 감을 수없는 암흑같은 세상을, 동주는 태현숙에게 목숨을 걸고 보여줍니다. 말해줍니다. 이렇게 답답하고 숨이 막혀 죽을 것같이 힘든 세상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요. 그런데 그런 세상보다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가 동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더 힘들다고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말이지요. 
전세역전이라는 말이 썩 달갑거나, 어울리지는 않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들과 들을 수 없는 차동주 사이의 답답함이 처지가 바뀐 듯합니다. 이제는 동주가 감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동주에게 다 전하지 못하기에 답답할 뿐이죠. 장준하는 차동주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에 불길처럼 타오르던 분노마저 잊어버리고, 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내심 동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것이 준하가 원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 저는 끝까지 준하를 놓지 않고 있답니다. 준하가 동주에게, 어머니가 버리면 내 16년이 다 무너질 것 같다며, 그때는 동주에게 자신의 수호천사가 돼달라고 했지요. 수호천사 차동주를 만들기 위해, 동주를 강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동주 역시 준하에게 화를 내고 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동주는 망가져 가는 준하때문에 슬플 뿐입니다. 이제는 자기차례라고 생각하는 동주입니다. 어머니에게서, 최진철에게서 준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기 위해 동주는 강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비밀때문에 준하형 등 뒤에서 보호받지 않아야 하기에, 스스로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것이지요. 그것이 준하가 자신의 수호천사가 되기 위해서 힘을 키우라고 한 것에 대한 동주의 답이었습니다.

차동주를 세상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장준하였습니다. 유치한 장난처럼 보였겠지만, 준하는 에너지셀 신제품 쇼장에서 어둠 속에 차동주를 두고 문을 닫았지요. 준하의 행동을 저는 준하가 동주에게 내미는 손이라고 생각했어요. 준하는 기댈 곳이 필요했거든요. 봉우리도 어깨를 내주지 않고, 차가운 어머니는 복수로 눈이 멀었고, 최진철은 자신이 가졌다고 생각한 우경을 지키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장준하를 바라봐 주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준하는 동주에게 손을 내밀어 봅니다. 형이 필요하다고, 형이 함께 있어달라고 준하의 손을 잡아주길 기다려 봅니다.
그런데 동주가 '형'을 부르지 않습니다. 어둠이 무서워서 한발짝도 못 내딛었던 아이가, 손을 잡아 달라고 부탁하지 않습니다. 혼자 뚜벅뚜벅 문을 열고 나옵니다. '더이상 어둠이 무섭지 않아, 형이 이젠 필요없어'라면서요. 피날레 전에 동주가 무슨 일을 할 지 알았던 준하는 동주를 막으려고 했지만, 준하의 손을 놓고 혼자서도 걸을 수 있게 된 동주는 세상을 향해 고백합니다. "저는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차동주 너는 못듣는 사람이 아니라, 잘보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 순간 준하는 알지요. 동주가 정말로 준하를 버리려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동주에게도 필요없어졌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더 화가 나고,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준하입니다. 준하없이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동주였습니다. 태현숙이 충격을 받고 준하에게 말리라고 해도, 준하는 그런 동주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에 쏴 하고 밀려오는 공허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이름없는 아이, 다시 버려지는 느낌입니다.
태현숙이 동주를 말리라고 할 때 준하가 말했지요. "못들었어? 나 필요없대잖아!". 준하의 말은 그런 의미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외롭고, 막나가고 싶은 준하입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준하입니다. 30년간 버림받았다는 끔찍한 악몽을 깨주는 사람말이지요. 

그런 준하를 아버지 봉영규가 부릅니다. 밥 먹으러 오라고, 집은 안창피하니까...마루(준하)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봉영규는 준하의 마지막 구원이지만, 어떻게 바보아버지라고 버렸는데 이제서야 외롭다고, 배고프다고 밥달라고 찾아갈 수가 있을까요? 사람이기를 포기했던 봉마루로서 치뤄야 하는 죄값이라고 생각하는 준하입니다. 심하게 허기가 지는 준하입니다. 아버지의 봉영규의 밥을 너무나 간절히 먹고 싶은 준하입니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나 바보 봉영규 아들 아니라잖아. 내 아버지는 최진철이야". 그러니 못된 봉마루를 놓아달라고, 죄책감 그만 느끼게 해달라고, 더 외롭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말해보지만, 바보아버지는 준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봉영규는 들리는 것만 듣는 사람이니까요.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이니까요. 거짓말을 배우지 못한 바보,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바보니까요. 할머니랑 우리가 가르쳐 준 것만 듣고 믿는 사람이니까요. 
"아니야. 근데 봉영규가 봉마루 아버지야. 어머니가 그랬어. 너 아주 갓난애기였을 때, 이 애기가 네 아들이라 그랬어. 그니까 내가 네 아버지야. 마루야, 미안해... 딱 한 번만 집에 와. 집은 안창피하니까...밥 맛있게 해줄게...". 꼭 한 번만 오라며, 애써 웃음짓는 봉영규는 그렇게 죄인처럼 계단을 올라갑니다. 너무 미안해서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죄송해서, 얼굴조차 마주하기 미안한 봉영규, 마루를 버릴 수 없다고, 쉰을 훌쩍 넘겨 내일 모레 환갑인 아버지는 절뚝절뚝 힘겹게 올라갑니다.  
어머니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하지만, 어머니는 상을 주지 않습니다. 더 이상 어머니의 복수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장준하에게 밥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주는 초콜렛 아이스크림이 미치도록 먹고 싶습니다. 장준하에게 초코아이스크림은 태현숙의 아들이라는,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태현숙은 준하에게 초코 아이스크림을 주지 않습니다.
장준하는 유난히 초콜렛을 좋아합니다. 준하는 초코아이스크림만 먹고, 초코우유만 마시지요. 마음이 써서 그래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쓰고 허하기 때문이에요. 버림받았다는 준하의 트라우마는 늘 누군가의 사랑에 목말라했지요. 가까이서도 늘 마음의 거리를 뒀던 어머니, 어머니의 눈은 다정했지만, 손은 차가웠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차동주가 될 수 없었던 준하는, 아주 가끔 동주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을 지도 몰라요. 그러면 태현숙이 온전히 장준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그때마다 준하에게 동주는 야구볼을 던졌습니다. 징그럽게 안고 몸으로 말했습니다. 형을 사랑한다고....
어머니의 뜻을 어기면 가차없이 버림받을 것을 알았기에, 준하는 태현숙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했지요. 귀가 먼 동주를 세상 사람들에게서 숨기기 위해 의사로 만들었고, 우경을 빼앗기 위해 경영학까지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동주가 말했지요. 형은 하늘을 보면서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의대공부와 MBA공부 둘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때까지 동주도 준하도 몰랐어요. 장준하를 위한 인생은 없었다는 것을요. 어머니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두 가지가 되는 사람이 되라면 두가지, 아니 세 가지 네 가지도 해야 했던 준하였지요. 준하가 어머니 뜻대로 잘해주면, 어머니는 상을 줬습니다. 초코아이스크림을 사줬습니다.
늘 허기지고, 사랑에 목말랐던 준하는 초코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만큼은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초코아이스 크림을 먹기 위해, 준하는 16년을 어머니의 뜻을 한 번도 거역하지 못했지요. 태현숙에게는 세상이 뒤집혀도 차동주가 될 수 없었던 장준하, 그래도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던 준하였어요. 세상에 부모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같은 슬픔을 잊게 해주었으니까요. 버림받았다는 것을 잊게 해주었으니까요.
그러나 태현숙을 차지할 수는 없었지요. 태현숙은 차동주의 어머니였을 뿐이었습니다. 가끔씩 차갑게 쏘아보는 태현숙의 시선, 등을 두드려 주길 주저하는 손, 좋은 밥 좋은 옷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그 허기를, 준하는 초코아이스크림과 초코우유로 잠시잠깐 위로를 받았습니다. 가슴 한 구석이 쓰고 아려올 때마다, 초콜렛은 준하의 허허로움을 달래줬습니다. 준하가 초코우유만 마시는 이유입니다.
초코아이스크림보다 더 달고 맛있는, 초코우유보다 더 든든한 아버지 봉영규의 밥을, 준하가 빨리 먹었으면 좋겠네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늘 따뜻한 아버지의 밥, 마루는 누가 뭐래도 봉영규의 아들이라고, 슬프게 웃는 아버지의 밥을 말입니다. 그토록 배터지게 먹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집 밥, 영원히 장준하, 아니 봉마루를 허기지게 하지 않을 초코우유, 아버지의 밥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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