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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21 '천일의 약속' 빵터진 수애의 발차기와 수애 죽음 해피엔딩인 이유 (29)
쪽대본처럼 부산스럽게 흘러버린 마지막회는 수애의 치매과정을 고속으로 필름을 돌리듯 정신없이 보여주기에 바빴고, 바쁘게 바뀌는 화면을 따라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시청자는 기저귀를 차려고 낑낑대던 수애를 안고 우는 지형과 함께 잠시 울다가, 느닷없이 나와버린 공동묘지 장면에서 허걱하고, 정신수습할 사이도 없이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엔딩자막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네요.
빵터진 수애의 발차기
드라마가 끝나고 들었던 생각을 한줄요약을 하면, 배우들이 작품 살리느라 고생많았네 정도? 한줄보태기를 한다면, 서연이라는 치매환자는 공주처럼 살다간 행복한(?) 치매환자라는 것, 또 한줄을 더 보탠다면 '혹이라도 나에게도 그 병이 온다면 저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혹은 나는 지형이처럼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리고 굳이 더 한마디를 하자면, 치매보험에 드는 것이 좋겠다는 보험광고는 성공적이었다는 점ㅎㅎ. 고모님이 치매보험 6개나 팔았다고 어찌나 좋아하는지 말입니다.
하긴 뒷치닥거리 그렇게 열심히 해주고, 엉덩이까지 별안간 걷어 차였는데, 재민이 실적 올리게 보험이라도 많이 팔았으니 그게 어딘가 싶고 말이지요. 경찰서에서 서연을 찾은 장면에 이은 수애의 발차기,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과장은 아니지만 황당한 편집에 웃음보가 터져버렸네요. 급한 마무리와 함께 수애의 병세 진행과정만을 나열하다 보니,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우스운 장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야 치매시설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고, 다들 집에서 마지막까지 모시는 경우가 많았지요. 수애처럼 예전 살던 곳으로 가서 온 가족들이 찾으러 다닌 일도 많았고, 경찰서에서 모시고 온 적도 많았어요. 특히 오래전에 사시던 시골동네를 하루종일 걸어가서 논두렁에서 잠든 할아버지를 동네 어르신이 알려줘서 모시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사랑보다는 치매수애의 명연기와 마지막까지 보릿자루가 돼 버린 김래원이 불친절한 작가를 만나 작품운이 없었다는 찜찜함이 많이 남네요. 드라마를 통해 치매로 죽어가는 여자를 지키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느끼고 싶었지만, 결국은 수애를 위한 수애의 드라마, 치매수애만이 남았군요. 치매를 앓아가는 한 여인을 지켜보는 박지형이라는 인물을 감정을 절제하고 묵묵히 보여준 김래원의 연기는 좋았지만, 여주인공 하나를 위해 모든 배우들이 들러리가 돼버린 것은, 연기자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서연의 마지막 인사, "안녕, 잘있어"
뒤죽박죽된 서연의 기억들,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정신이 돌아왔다, 서연의 치매는 급속도로 악화되고, 고모부도 고모도, 재민이도, 지형이마저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진행되지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알아보지 못하고 말을 걸고, 행동도 난폭해지기도 하지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것에 서연은 더 지쳐가기만 합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서연의 기억들이 스르르 소리없이 빠져나가, 빈껍데기 호두알처럼 쪼그라드는 것을 지켜보는 지형과 고모,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몰래 울었을지, 그저 대신 아파주지 못함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지요.
예은이와의 이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하기만 한 서연, 한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던 서연이 잠깐 예은이의 볼을 만지는 순간은 자신이 예은이 엄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안녕, 잘있어". 자신이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서연의 마지막 인사, 그리고 한참이나 예은이와 눈을 마주치는 서연이었지요. 지형의 가슴에 안겨 예은의 눈을 좇는 서연의 눈에는, 곧 잊혀져 버리겠지만 마지막으로 딸의 얼굴을 기억하려는 서연의 짧은 희망도 같이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서연에게서 아이가 일찍 지워져 버렸는지, 시청자도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치매라는 것이 이토록 잔인한 것인지, 지켜보는 이만 답답할 뿐이지요.
한밤중에 기저귀를 차려고 버둥대는 서연을 보며 우는 지형, 그렇게 똑똑하고, 분명한 것 좋아하고, 깔끔했던 서연이 망가지는 것을 지형도 볼 수가 없었는지, 하지말라고 괜찮다고 우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지형이 왜 우는지조차 모르고,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모르고 텅비어 버린 세상을 힘없이 바라보는 서연의 초점없는 눈빛은 또 얼마나 아려오던지요. 그리고 짧은 시간, 흑백으로 화면이 바뀌면서 서연은 차디찬 땅에 쉬고 있었습니다. 서연의 잃어버린 기억을 그곳에서 다시 찾았을지,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만 남기고, 짧지만 행복한 삶을 마감했습니다.
서연의 죽음, 해피엔딩인 이유
저는 서연의 죽음을 새드엔딩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죽음이 반드시 새드엔딩인 것만은 아니지요. 서연에게는 삶이 고통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습니다. 더 오랜 시간 서연을 붙잡고 있는 것은 서연에게도 비극이고, 지형에게도 힘듦이었습니다. 불치의 병 치매, 서연의 죽음은 예정된 일이었고, 서연은 누구보다 공주처럼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갔으니, 서연이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쁜 삶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지켜주고 보살펴줬다는 것만으로도, 서연은 두려움 속에서 마지막을 마감하지는 않았으니 말이지요.
서연의 죽음은 지형에게는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래 끌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자연사였으니 도덕적 지탄에서도 빗겨간 김수현 작가였고 말이지요.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도 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산 사람마저 죽은 사람처럼 일상생활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치매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형과 고모네 식구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서도, 서연의 죽음은 그리 슬퍼할 일은 아닐 듯싶군요. 기억을 잃어가면서 자존심이 송두리째 내팽겨지는 고통을 내려놓은 서연이게도 말입니다. 매정한 말이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치매환자는 드물기 때문에 말이지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겠지요. 행복했던 순간, 사랑스러웠던 순간, 아프고 망가져가는 모습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지형의 사랑, 지형의 사랑이 어떤 색깔이었는지 쉽게 말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뜨거운 사랑도 아니었고, 운명같은 사랑도 아니었고, 가슴 저리는 시린 사랑도 아니었고, 두근두근 설레이는 달달한 사랑도 아니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며 솔직히 서연의 지형에 대한 사랑은 많이 느끼지 못했지만, 지형의 서연에 대한 사랑은 느꼈어요. 지형의 사랑은 초반에 그토록 욕을 먹었던 책임지는 사랑이었습니다. 향기를 버린 것에 대한 도덕적 지탄을 가장 많이 받았고, 약혼자가 있음에도 다른 여자와 놀아났다고 비난 속에 있었던 캐릭터였지요. 서연도 그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는 부분이었고요.
서연에 대한 추억과 기억은 공룡화석처럼 깊이 남겠지만, 서연에 대한 사랑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게 했으면 싶군요. 지형이같은 남자라면 예은이가 딸려있어도 좋은 여자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할 기회 또한 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치매라는 병이 찾아 온 서연에게는 비극이지만, 그래도 그만한 사랑을 받았으니 행복했노라고, 사랑하는 여자를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지형의 사랑도, 끝까지 책임졌으니 비겁했다는 미안함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 이만하면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네요. 무엇보다 서연과 지형이 치매의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다행일 듯싶고요.
자신의 늪으로 지형을 끌어들이기 싫어했던 서연, 그 늪이 자기의 몫이라고 걸어 들어갔던 지형,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수도 없이 반복했던 천일 동안의 약속, 늪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시간이 행복했노라고, 그들은 오랜 시간 후에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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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론 2011.12.21 10:19
웃음이 나올만한 장면이 아닌데;; 왜 웃죠? 가족들이 그 장면에서 웃는데 이상하고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지하게 몰입을 안 하고 모두 다른 사람 얘기라고 치부해서 그런거라고요.
치매라는 병에 한번쯤 두려움을 가져본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천일의 약속은 그런 두려움을 현실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죠 마지막편이라 치매환자의 행동들을 폭풍처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요 오히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박지형이 이서연을 끌어안고 기저귀 안 차도 돼 하지마라고 오열하는 부분은 아직도 찡하네요 -
호빗 2011.12.21 10:36
주인공이 망가져가는것을 최소화하고 싶은? 마지막회가 너무 지나친 속도로 흘러가서 정신 없었어요.
허무한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향기 라는 캐릭터가 큰 짐 다 떠안으면서 끝나진 않았군, 하는 안도가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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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2011.12.21 18:08
저 역시 수애의 발차기 장면이 가슴아팠는데 윗분들도 그러시군요.
원래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두다 말하지 못해 한이 맺힌 것마냥 쏟아내고 읊어대고...것도 자연스런 대화체가 아니라 무슨 문장의 마침표 찍는것마냥 말예요.
이 드라마도 뻔하려니...하며 지나가면서 봤고 역시 뻔했죠.
그런데...치매를 그려내는 방식이 참 좋다 싶었습니다. 구태의연하게 끌고가지 않은 점도 좋구요.
아무래도 여자주인공을 한계상황까지 몰고가는것은 드라마의 분위기나 전체 색깔과는 어울리지 않았을테고 딱 적절하게 드라마의 색에 맞게 풀어냈다고 봅니다.
질질 끌다가 한편에 몰아붙인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이 역시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수애의 변화를 생각하면 수긍이 가고 현실적으로도 치매는 하루하루가 다를테니까요.
계속 불만으로 어디보자...이런 어줍잖은 생각으로 봤는데 마지막회는 역시 김수현작가의 내공이 있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저귀 장면이나 문건이 예은을 안고 우는 장면에선 같이 눈물짓기도 했네요.
아마도...제가 느끼기엔 애초에 예은이한테 정을 안준 것 같습니다. 자신은 어차피 떠나가야, 것도 언제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니 무덤덤하게 눈도 제대로 안마주치고 그랬겠지요. 그러나 더는 버팅길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아이와 처음으로 정식으로 눈을 마주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지요...그리고 지형의 독백처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는데 전 그웃음이 왠지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딸에 대한 애절함이 담긴 웃음이다...생각이 들더군요. 차마 정을 줄수도 없고 이미 자신의 마음까지 모르게 된 수애가 지을 수 있는 감정표현. 그렇게 낳고자 자신의 병을 악화시키면서까지 낳은 아이에 대한 사랑...
뭐, 그렇게 느껴지더라구요... -
cheat mw3 2012.05.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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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of ra 2012.05.09 21:24
질질 끌다가 한편에 몰아붙인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이 역시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수애의 변화를 생각하면 수긍이 가고 현실적으로도 치매는 하루하루가 다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