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쇼카이 정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7.19 각시탈: 소름끼치는 키쇼카이의 정체, 정한론은 현재진행형 (5)
  2. 2012.06.23 '각시탈' 살아있는 비밀조직 키쇼카이의 정체와 그 무서운 음모 (5)
2012.07.19 14:29




난데없이 친일논란에 휩싸였던 각시탈, 저는 개인적으로 참 통쾌했던 장면이었습니다. 기미가요는 드라마 전개상 필요한 부분이었기에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리랑을 부를 수도 없잖아요. 완창을 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죠.
그것보다는 욱일승천기를 찢지 않은 각시탈에게 불만이 나오기도 했는데, 저는 다른 시각으로 봤습니다. 일한합방 축하 현수막을 칼로 베어버린 장면은, 욱일승천기를 벤 것 이상의 큰 의미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욱일승천기를 찢는 것보다 합방축하 현수막을 찢는 장면으로, 합방을 부정한다는 항일정신을 더 상징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베일에 싸여있던 키쇼카이의 목적이 드러나면서는 더더욱이나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와닿기도 했고요.
목단을 피신시키려는 강토에게 총을 겨누는 슌지, "역시 네놈이었어. 반갑다, 각시탈". 강토를 의심해 온 슌지가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만 강토였지요. 그러나 강토가 각시탈이라고 밝히지는 않겠지요. 그럴듯한 변명으로 이번에도 빠져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슌지 앞에서도 탈을 벗을 강토지만, 슌지는 실수를 했습니다. 각시탈은 탈을 벗고 나타난 적이 없었죠. 각시탈의 단벌의상인 백의를 입고 말입니다. 백의착용금지령을 내린 일제, 이시용을 보니 뼈를 오득오득 소리가 나게 씹어주고 싶더군요.
사실 백의금지를 내린 것이 일제강점기때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숙종때도 청의를 입으라는 명이 내려지기도 했고, 백의에 대한 분분한 의견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오행설에 입각해 청색옷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고, 흰색이 제례때 입는 소복의 색이다 보니 평상복은 색깔옷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기도 했고요.
어디선가 읽었는데, 백의민족은 단군의 자손을 뜻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더군요. 단군의 제사를 지내는 민족이라는 해석이었는데, 여튼 각시탈에서도 백의금지령이 내려지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내린 백의금지령은 그 이전에 내려졌던 것과는 의도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빨래하기가 힘들고 위생에 문제가 있다는 예시를 하기도 했지만, 사실 따지고 들어가보면 일제가 백의에 일종의 노이로제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한말 단발령이 내려지자 각지에서 의병들이 들고 일어났죠. 그때 의병들이 흰옷을 입고 집결을 했다고 합니다. 백의는 일제에 대한 저항, 항거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키쇼카이의 목적이 드디어 밝혀졌지요. 지난 글에 키쇼카이의 정체에 대한 유추를 했는데 너무나 똑같아서 소름돋더군요 (2012/06/23 '각시탈' 살아있는 비밀조직 키쇼카이의 정체와 그 무서운 음모). 메이지 유신이후 대두된 정한론자들이 키쇼카이였더군요. 명성황후를 시해한 극우세력이기도 합니다. 1870년대부터 제기되었던 정한론은 말그대로 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을 조선이라고도 하고, 한국이라고도 했습니다. 소름끼치게 무서운 야심은 그들의 경성천도 목적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글에서 일본 역사와 함께 언급을 하기는 했지만, 경성천도설은 실제로 제기되었던 주장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무서운 것은 이들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정한론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당시 두 개의 정치세력으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조슈 번 지역 출신들의 조슈파(드라마에서는 콘노국장과 총독이 이 세력에 해당되죠)와 지방 사무라이로 중앙에서 축출된 강경파입니다(우에노 키쇼카이 회장과 기무라 타로 같은 사무라이)였습니다.
강경파가 주장한 것이 정한론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이 이뤄진 당시에는 내실부터 다지자는 부국강병론자들인 조슈파와 대립해, 지방으로 내려간 정한론자들이 난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이게 유명한 서남의 난입니다. 이후 이들 강경파는 조슈파를 견제하기 정치세력으로 결집하고, 중앙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는데요, 조슈파와 강경파는 조금씩 타협을 해가기 시작했죠. 부국강병을 이루고 해외식민지를 무력으로 넓혀가야 한다는 군국주의로 합일점을 찾은 것이죠. 이때부터 정한론은 일본의 정치이념이 됩니다. 

지난 글에서 키쇼카이의 정체에 대해 추측을 해봤을 뿐인데 너무 비슷해서, 경성천도설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시 옮겨보겠습니다. 키쇼카이 회장 우에노(전국환)은 1870년대부터 주장된 사무라이 강경파들의 정한론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입니다. 무서우 것은 그의 입에서 경성천도 계획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섬나라 일분인들에게는 대륙진출은 꿈이었습니다. 조선은 그들의 제국주의 꿈을 향한, 대륙으로 들어서는 첫관문이었죠. 1930년대는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기치 아래 일제가 군국주의를 확장하는 절정기였습니다. 일제의 제국주의 야욕은 경성천도 계획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요.
일본의 경성천도설은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자 도요카와 젠요란 자가 주장했던 것입니다. 도요카와 젠요는 일본 수도 도쿄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도를 조선의 경성(서울)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경성천도와 관련, 구체적으로 800만명의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하게 하고, 조선인 800만명을 일본으로 이주시켜 조선을 영구적으로 종속시키려는 계획을 짰던 인물입니다. 대동아 공영권에 대한 야심이면서, 지진, 해일 등으로 불안한 일본의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기 까지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900 여회에 걸쳐 한반도를 침략해 온 일본, 끈질기고 지속적으로 침략해 온 이유는 내륙진출에 대한 침략근성때문이었습니다. 키쇼카이의 음모처럼 말이죠. 이들의 목표는 조선을 완전하게 일본화시켜 조선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조선말, 글, 민족성, 의복, 성씨와 이름에 이르기까지 모두 없애버리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것이죠.
800만명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시키고자 했던 경성천도 계획은 도요카와 젠요라는 미친놈의 망상, 키쇼카이로 상징되는 군국주의의 정체였던 것입니다. 키쇼카이는 여전히 살아있는 망령조직이며,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일본군국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그 속에 조선을 정벌하자고 했던 정한론이 뿌리깊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뿌리깊은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은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잖습니까? 애국가나 아리랑을 부르면 가슴 밑바닥에서 차오르는 감정, 그것을 우리는 우리민족의 정서라고도 합니다. 한민족, 백의민족으로 면면히 내려온, 역사를 살면서, 배우면서, 거치면서, 몸으로 마음으로 정신으로 습득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군국주의도 뿌리에서 뿌리로 이어지고 있는 그네들의 정서입니다. 그 무서운 정서의 바탕에 정한론이 깔려있다는 것, 결코 좌시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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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5
  1. 여강여호 2012.07.19 14:3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드라마 한 편에 대한 초록누리님의 포스팅으로
    제대로 한국 근대사 공부를 하고 갑니다.

  2. 만화가 엄두 2012.07.19 18:4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의 자식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 아니면 총과 칼로 얼룩진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 국가의 기본 방위력은 지켜져야 겠지만, 일본이나 우리나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 같습니다.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3. 굄돌 2012.07.20 07:39 address edit & del reply

    어제 왔다가 글도 못 읽고 추천도 못하고 그냥 나갔네요.
    목요일이 가장 수업이 많고 힘든 날인데
    요즘들어 잠도 부족하고 시간도 유난히 쫓겨
    죽을 둥 살 둥 살고 있어요.
    그래도 죽으면 안되겠죠?
    고마워요, 헬레나님!

  4. 회색도서관 2012.08.16 20:0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67주년 광복절인 어제 마치 특집과도 같은 각시탈을 보며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님의 다큐를 보며 막 감성에 젖어 들었지요. 근데 독도 관련한 일본의 반응에 후쿠시마 성금을 낸 우리가 바보 같더라구요.

  5. 독도관련 2012.10.03 20:58 address edit & del reply

    실제 다케시마는 일본 남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독도는 다케시마가 아니라 독도입니다. 아물론 또하나의 다케시마는 일본의 망상속에 있겠죠 현자의 돌처럼...

2012.06.23 10:03




박선영 SBS 아나운서가 8시 뉴스 클로징에서 개념멘트로 일본 우익단체에 일침을 날려 박수를 받고 있는데요, 당연한 말인데도 이런 멘트를 해아 하는 현실이 울분을 자아내게 합니다. 뉴스를 보지는 못했지만 기사에 의하면 박선영 아나운서는, "위안부 소녀상 옆에 막대를 꽂으면서까지 일본이 내세우려는 다케시마라는 섬은 지구 어디에도 없습니다. 독도가 있을 뿐이죠. 그런데 일본은 이 다케시마를 하루 아침에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겐 분노 못지 않게, 역사를 지키고 이어나갈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고 하는군요. 박선영 아나운서의 속시원한 일갈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박선영 아나운서의 개념멘트는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는 대조적이군요.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케시마를 표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라고 했던 발언의 진위가 뭔지 궁금해서 말이죠.

드라마 각시탈과 상관없는 박선영 아나운서의 멘트를 인용한 것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아직도 살아있는 일본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파시즘이, 드라마 각시탈에서 의문의 비밀단체 키쇼카이와도 관련이 있는 연장선상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찢어버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일장기나 욱일승천기가 아니에요. 황국신민(皇國臣民)과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글귀입니다. 일제의 군국주의 파시즘의 대명사가 그 4글자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도 내지인과 반도인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지요. 내(內)는 일본을 선(鮮)은 조선을 가르키죠.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는 뜻으로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가 중국 침략에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내세운 민족말살정책이었습니다.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일본은 조선에 대한 강압적인 정책대신, 회유정책으로 변환했죠. 일명 문화정책으로, 채찍 대신 당근을 쓴 것이죠. 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지원하고, 조선인을 요직에 등용하기도 하는 등 표면적으로 차별을 줄이는 것으로 말이죠. 조선과 일본은 하나이며, 천황의 신민이라는 황국신민화 정책이 그것입니다.
3.1운동으로 조선의 저항에 뜨거운 맛을 본 일제가 식민지 정책을 변환한 것도 이유이지만, 그보다는 더 무서운 이유가 숨어 있었습니다. 내선일체, 황국신민이라는 기치아래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간악한 음모가 그것입니다. 반도인과 내지인은 하나라는 말로 그들의 전쟁에 조선인을 총알받이로 징용하려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기치를 걸고,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에 조선인을 징병하고, 학도병으로 징집하고, 종군위안부로 처녀들을 전쟁터로 끌고 간, 민족 말살정책의 대명사가 바로 이 황국신민화, 내선일체였던 겁니다. 그래서 드라마인데도 내선일체라는 글귀만 보이면, 브라운관으로 들어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지구 역사상 가장 잔혹한 비극이 나찌의 유대인 학살과 일제의 만행입니다. 난징대학살과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부대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군국주의 파시즘 광기의 끔찍한 한 예일 뿐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주시해야 하는 것은, 일본의 현재에도 살아있는 군국주의 침략근성입니다. 독도는 그들의 침략근성이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광기입니다. 아, 열받네요. 오늘 글은 좀 과격하고 거칠어질 듯하군요.
중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고, 아시아 정복의 전초기지로 삼았죠. 여기에는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기 힘들었던 독립군들이 만주로 대거 이동해 독립운동을 했던 이유와도 상관이 있습니다. 만주국은 독립군을 잡는 활동으로 이어졌으니까 말입니다. 만주국하니 생각나는 인물이 있군요. 대구소학교 교사를 하던 박정희가 교사를 때려치고, 혈서로 천황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만주군 장교로 활동해 명백한 친일의 행적을 남겼으니 말입니다. 출신성분은 다르지만 각시탈 강토와 칼을 겨누게 될 기무라 슌지와 비슷한 부분이 많군요. 소학교 출신의 일본경찰이라...
아무튼 해방후 반민특위가 흐지부지되고 6.25가 발발하자, 만주군관학교 수석으로 졸업한 박정희의 경력이 우대받으며 인생 대역전(?)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으니, 박정희는 6.25를 일으킨 김일성이 살려준 셈이기도 하군요. 역사는 이렇게 아이러니한 부분이 많습니다. 쩝.

 

키쇼카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하는데요, 조선이 쇄국으로 문호를 닫고 있던 시기, 일본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분, 박정희가 일본을 얼마나 흠모했으면, 유신이라는 말을 그대로 가져다 썼는지...
일본이 미개한 조선을 개화문명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이 메이지 유신의 성공에 기인합니다. 1867년 15세의 나이로 천황에 즉위한 메이지를 중심으로 일본은 강력한 왕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죠. 이 과정에서 중앙권력에서 도태된 사무라이도 있었고, 반발세력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강경파였던 사무라이들은 정한론을 주장했다 중앙권력에서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각시탈이 응징을 하고 있는 비밀조직 키쇼카이에 대한 추리가 가능합니다. 키쇼카이 수장 우에노(전국환)는 정한론자로 사무라이들을 규합해 비밀조직을 결성했고, 사무라이 출신 기무라 타로(천호진)도 피의 맹세를 한 사무라이 출신 중의 한 사람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조선총독부 총독과 고향선후배 사이인 콘노 곤지(김응수)와 기무라 타로(천호진)가 앙숙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 내에서도 권력암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키쇼카이는 극우 성향의 군국주의 추앙자들인듯 합니다. 우에노 앞에서 할복을 했던 조직원의 모습도 나왔던 것처럼, 일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무라이 정신을 잇고 있는 극우단체지요. 군국주의가 위험한 것은 국민을 군인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황국신민화라는 말에는 조선인을 그들의 전쟁을 위한 군인으로 만들려는 군국주의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고요.
섬나라 일본에게 중국, 시베리아의 광활한 영토는 꿈이었습니다. 조선말 청일전쟁을 빌미로 조선에게 요구했던 것이 청국을 치려고 하니 길을 내달라는 것이었죠. 조선을 합방한 이후 식민지가 된 조선은 뻥뻥 뚫린 길이나 다름없었죠. 철도개설도 중국과의 전쟁을 위한 물자, 병력 수송용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각시탈의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 후반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시기는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기치 아래 일제가 군국주의를 확장하는 절정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내에서는 흥미로운 사건들도 꽤 있었습니다. 피의 형제단이라 불리는 조직에 의해 일본 수상 2명이 연거푸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는데, 만주침략에 비판을 했던 수상을 군부에서 암살한 사건입니다. 1936년에는 일본역사에서는 유명한 2.26 군사쿠테타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천황의 강력한 통치를 주장하는 쿠테타였음에도, 천황이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아 2일천하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군부의 힘은 더 막강해지고, 극우세력이 공고해지는 등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죠. 피의 형제단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사무라이 극우단체로, 각시탈에 등장하는 비밀조직 키쇼카이와 비슷해 보이더군요.
메이지 유신이후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일본의 국신이었습니다. 일본을 지탱하는 구심점으로 일본=천황이라는 종교적 맹신은 그들 특유의 민족주의를 만들고, 천황에 대한 충성이 곧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극우적 충성관을 공고히 했다는 점입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천황의 항복을 받았으면서도, 전범으로서 일본 천황 쇼와(昭和)는 재판도 받지 않았죠. 극우파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의 신사참배를 군국주의의 부활로 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피의 형제단이나 2.26사건을 주도한 청년 장교들은, 공통적으로 사무라이 무사정신으로 무장된 극우단체라는 점에서 키쇼카이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는 할복충성심을 보이는 인물들입니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보면 그 맹신적인 충성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고 말이죠.
단적인 예로 1945년 오키나와의 참극을 들 수 있습니다.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본군의 저항을 받아야 했죠. 일본군은 부족한 병력을 보총하기 위해 방위대를 소집했고, 오키나와 주인 들 중 노인과 아이들을 제외한 10만여명의 민간인들이 전쟁에 참여합니다. 두 달여가 계속된 오키나와 전투는 결국 일본의 패배로 끝났지만, 그들의 완강한 저항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미국이었습니다. 사령관을 비롯 전 부대원이 자결해 버린 그들의 정신세계, 군인정신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지요. 그들의 자결저항에 기겁한 미국이 원자폭탄이라는 지구상 최대 비극무기를 사용했던 것도 그때문이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천황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준 단적인 예가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오노다의 30년 전쟁입니다. 오노다는 22세였던 1944년에 필리핀에 있는 미군기지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났다가 30년 만인 1974년에서야 투항하고 일본으로 돌아감으로써, 30년동안 태평양 전쟁을 치룬 군인입니다. 

1974년 필리핀의 정글에 나타난 52세의 오노다, 아직도 TV를 통해 본 장면이 눈에 선하군요. 홀로 30년을 전쟁을 치르면서 그는 가족과 친구들이 전쟁이 끝났음을 알려도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출격명령을 내린 직속상관에게서 항복하라는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혀, 더 놀라게 했습니다. "죽지말고 데리러 올 때까지 버티라"는 상관의 명령만을 믿고, 가족과 친구의 모습도 멀리서 보면서도 만나지 않았던 그는, 상관이 작성한 투항명령서를 받고서야 패전을 인정하고 정글을 나왔습니다. 일본은 그를 영웅으로 환영했지만, 세계인들은 일본 군국주의 광신도에게 경악했지요. 주군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일본인 특유의 군부 파시즘의 한 예가 오노다입니다.
치떨리는 일제의 한민족말살 정책은 경성천도 계획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삐리리 잡종개자식들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 계속적으로 그들의 군국주의 망령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독도문제도 마찬가지고요. 혹시 일본의 경성천도설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책 리뷰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자 도요카와 젠요란 자가 ‘경성천도론’이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도요카와 젠요는 일본 수도 도쿄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도를 조선의 경성(서울)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경성천도와 관련, 구체적으로 800만명의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하게 하고, 조선인 800만명을 일본으로 이주시켜 조선을 영구적으로 종속시키려는 계획을 짰던 인물입니다. 대동아 공영권에 대한 야심이면서, 지진, 해일 등으로 불안한 일본의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기 까지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조선을 일본화시키려는 조선말살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치가 떨려서 이런 놈은 부관참시라도 하고 싶군요.

물론 계획대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일본의 수도가 경성(서울)으로 되고, 800명도 아닌, 800만명의 일본인이 조선으로 이주했다면, 아이고 머리가 아찔해 옵니다. 일본인들에게 조선은 마음의 고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미친 소리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남산소학교 선생이었던 기무라 슌지도 비슷한 말을 했었죠. 조선인에게 우호적인 기무라 슌지의 조선사랑은 위험하기 짝이없는 일본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대변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유모를 어머니처럼 여기고 첫사랑 목단에 대한 순애보로 슌지라는 인물을 착하게 그렸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선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와 일맥상통한 축적된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것이 900 여회입니다. 왜 그렇게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침략을 해왔겠습니까? 조선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고 싶은 땅, 뭍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지지 못하는 땅, 그림의 떡 조선은 오랜 침략의 역사를 통해 알게 모르게 희망봉이 되어왔던 것이죠.
각시탈에서 키쇼카이 조직이 상징하는 것도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키쇼카이는 동경 본부를 비롯 경성(서울)지부를 설치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단체로, 구체적으로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일본내에서는 정치적 패권싸움을 하는, 일본제국주의의 극우파 조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조선을 완전하게 일본화시켜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구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조선말, 조선의 민족혼, 조선의 글, 조선의 땅까지 빼앗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것이죠. 
경성천도, 800만명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시키고자 했던 계획은 도요카와 젠요라는 한 미친놈의 망상이 아니라, 키쇼카이로 상징되는 극우파 비밀조직이 그 배후였음도 짐작하게 합니다. 2대 각시탈을 쓰고 얼굴없는 영웅 각시탈의 길을 선택한 강토, 그의 복수를 형과 어머니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라고 보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키쇼카이는 5쳔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조선을 한 국가로서도, 민족으로서도 말살해 버리려는 조직이기 때문이죠.
비록 드라마속 비밀단체이지만 키쇼카이는 여전히 살아있는 망령조직이며, 오늘의 우리에게 역사는 반복될 수 있음을 환기시켜 줍니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일본의 신군국주의 망령에 감정적인 분노 못지않게, 역사를 지키고 이어나갈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박선영 아나운서의 멘트처럼, 오늘 우리들이 드라마속 강산과 강토처럼 각시탈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이 마음의 고향같다는 망발을 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가까운 이웃임에도 먼나라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세습화된 사무라이 정신이 신군국주의 침략의도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친구로 오는 일본인은 환영하지만, 여전히 버리지 못한 제국주의 침략근성은 사양합니다. 한마디로 '사요나라, 꺼져!'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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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5
  1. 2012.06.23 18:46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dd 2012.06.25 15:28 address edit & del reply

    시청자들은 이번주 7,8회에서 애매한 전개를 한 덕에 이 드라마 '친일드라마'인걸로 착각하더라구요...아쉽죠.

  3. 이진창 2012.07.22 23:15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는 다 아는 내용도 확인하고 또 다른 생각으로 이해하라고...누가! 어느자리에 있는이가 그리하는가! 지렁이도 밝으면 꿈틀한다는데 당신의 생각은!!!!!
    생각이 있으니간 발겠지 하는가^^
    (그리고 지 살다구는 맘대로 유린하는가
    박아~~~갑을 좀 하자 나이갑을 ^^

    • 님도 2012.08.22 14:15 address edit & del

      님도 나이값에 맞게 한글 공부 좀 더하고 오세요

  4. 오키나와는 2012.08.09 22:51 address edit & del reply

    오키나와 민간인이 스스로 할복한게 아니고 일본군에의해 죽은거에요 일본군국주의자에의해 왜곡된 것입니다 원래 그들도 독립국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