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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03 '뿌리깊은 나무' 세종-정기준의 끝장토론, 어떻게 설득할까? (16)
2011.12.03 09:07




"어이! 정기준, 오랜만이야. 무작스럽게 반가워", 이런 말이야 하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정기준과의 해후이기에 세종의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아무 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한 것이 아닌가, 이도"라며, 계급장 미리 떼고 선수치는 정기준의 발칙함을 대인배 세종이 일단 '빌어먹을 놈'이라고, 눈감아주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 한마디는 해줘야 할 듯싶군요. "그래도 내가 왕인데 말 뽄새하고는...".
사실 정륜암에서의 팽팽한 긴장감때문에 토론을 하게 될지 다음으로 미뤄질지는 아직은 모릅니다. 무휼과 개파이가 2차 격돌을 세종과 정기준의 토론에 앞서 치뤄 버린다면 말이죠.

"너의 조선은 이방원의 조선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세종은 하루도 고민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지옥에서 살아왔노라고 고백했지요.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이 지옥이기에 그나마 세상은 평온한 것이다". 세종이 인내하고 기다리며 내놓은 답은 '우리 글자'였습니다. 허나 정기준은 정면으로 틀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현전 학사를 살인하고 유생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까지 말입니다.
정기준과의 토론을 이어가려는 세종, 뜻밖에 정륜암에서 그토록 기다려왔던 정기준을 만났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관심사가 세종이 어떤 논리로 정기준을 설득할 것이며, 또한 정기준은 어떤 논리로 세종을 반박할 것인가가 되겠지요. 세종과 정기준이 중단했던 경국대전의 다음 말이 토론의 핵심이 될 듯합니다. 지난 글에서 이부분을 정리했었는데요, 시간많이 들여서 정리한 것인데 안타깝게도 블라인드처리되었네요. 글은 다시 복구시키지 못할 것같아 중요한 부분만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읽으신 내용도 나올 겁니다. 그래도 글 끝에 보너스도 있으니 읽어주시길^^  

어린 이도와 정기준이 주고 받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정보위(正寶位)에 대한 대화는,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흐름이기도 합니다. 세종이 백성이 어떠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문제 의식이 정기준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고, 어린 똘복이와 소이와의 만남을 통해 백성의 실체를 발견하고, 백성이란 무엇인가를 자각하면서, 그 결과물 한글을 내놓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대립은 결국 국가를 지탱하는 뿌리가 누구인가를 놓고 싸우는 이념적 사상적인 통치관의 대립입니다. 신권이냐 왕권이냐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나라의 주체가 누구이냐에 대한 가치관의 대립인 셈이지요. 물론 정기준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도전의 사상을 신봉해 온 조카이자 밀본의 수장이라는 자가,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도전을 잘못 이해한 반성리학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세종이나 정기준이나 조선을 아꼈다는 겁니다. 또한 조선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기준이 왕의 독재를 견제하는 재상정치, 선비의 나라를 부르짖는 것도, 세종이 힘이 있는 백성을 만들겠다는 것도 모두 조선의 강건함에 대한 희망입니다. 정기준의 밀본이 드라마상에서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소인배 무리집단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정기준의 촌철살인적인 한마디, "이도는 훌륭한 왕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요? 또 그 다음은요?"에는, 조선의 앞날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말입니다. 정기준의 우려와 예언은 적중했고, 이후 조선왕조에서 세종을 넘는 성군은 나오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개혁군주 정조가 있었지만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요.

세종이 하는 일이 글자를 만들고 있었음을 알고,  "고작 글자라니..."라며 했던 정기준의 파안대소는 한자 이외의 자국의 글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사대부유림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조차 개 풀뜯어먹는 일이었음을 하나로 정리해 준 장면이었죠. 그런데 정기준과 똑같은 반응을 한 인물이 있었죠. 대놓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하게 지랄을 떨어가며 만드냐'고 왕의 안전에서 코웃음쳤던 강채윤입니다. 
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세종이 보았다던 백성을 봤습니다. 그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이 사체해부를 한 것에 격분한 성삼문과 박팽년을 설득하던 장면입니다. "뱃사람들이 거대한 자연을 만나기 때문에 미신을 잘 믿는다는 것이, 세종이 만난 백성에 대한 믿음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가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사랑했다는 애민사상에서 틀어, 백성을 가장 두려워했다로 생각해 봤습니다. 강채윤을 그렇게 표현했었지요. 가장 두려우면서 가장 멀리있는 자, 그래서 믿음이 가는 자라고 말이지요.

영원한 것은 임금, 사대부, 사상, 나라도 아닌 백성
정기준과의 사당에서의 첫만남에서의 토론내용 경국대전 정보위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왕은 허군이고, 실군은 관에 총괄하는 재상총재의 것이다. 이것이 조선을 건국하신 삼봉선생의 치국의 기본사상이다. 주역에 이르기를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이다. 무엇으로 그 위를 지킬까보냐? 이에 말하기를 인(仁)이다. 현능한 자들은 지혜를 바치고 호걸들은 힘을 바치며, 백성들은 맡은 바에 분주히 복무하되 오로지 임금의 명령에만 따를 뿐이다". 정기준은 조선경국전 정보위 구절이라며 다음 구절을 알고 있느냐고 이도에게 물었지요.
다음구절은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마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되리라.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입니다. 정기준은 "지금의 주상(태종 이방원)은 그러한가?" 라며, 네 아비는 삼봉의 조선을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라며, 이도에게 충격을 주었지요.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알았든지 몰랐든지, 세종은 정도전을 추모하는 정륜암에서 정도전을 다시 거론합니다. "그의 책을 읽고 또 읽고 내린 결론이다", 삼봉만은 내 뜻과 함께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말이지요. 
해서 경국대전 정보위 다음 구절을 살펴보니 이런 말이 이어지더군요.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하게 얻는 것이 아니요, 도를 어겨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방법 역시 인(仁)일 뿐이다. 인군(人君)은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는  그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아서 불인인지정(不忍人之政)을 행하여, 천하만민이 모두 기뻐해서 인군을 마치 자기 부모처럼 우러러 볼 수 있게 한다면,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위망 복추의 우환을 끝내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인(仁)으로서 위(位)를 지킴이 어찌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불인인지정은 쉽게 말해 측은지심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곰곰이 되짚어 본 문구가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되리라.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의 구절입니다. 

20여년이 지나 세종과 정기준은 어떠한 의미로든 성장해 왔고, 나름대로의 명분과 대의를 향해 그들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정기준은 그가 그토록 금과옥조로 여긴 정도전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힘으로 위협할 수 없다는 부분입니다. 겨우 폭력이라니 라며 이도를 비웃었던 그가 폭력으로 맞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이도에게 공맹의 도가 어떠하며, 삼봉선생의 조선건국이념이 어떠하며를 설파하던, 그 정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뱃사람이 미신을 믿는 것은 바다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거친 파도가 그들을 삼켜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만조의 기쁨을 누리게도 합니다. 세종이 만난 백성은 아버지를 잃어 울부짖는 똘복이였죠. 임금을 지랄이라고 욕을 하는... 이도는 충격을 받았고, 큰 깨달음을 얻었지요. 물론 똘복이처럼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는 일이 없게 글자를 만들겠다는 동기가 되기도 했지만, 이도는 분노하는 백성을 만난 것에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군왕을 어찌 백성의 어버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왕이 자격이 있는가?를 물었던... 어린 날 정기준이 던졌던 물음과도 같았죠.  

이도가 깨달았던 것은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 엎기도 한다는 겁니다. 백성이라는 거대한 바다, 무서운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조선의 왕, 재상도 의미가 없는 것이며, 재상의 나라가 옳으냐 왕의 나라가 옳으냐도, 다 쓰잘데기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죽여버리겠다며, 임금배때지라고 칼이 안들어가겠느냐며 무섭게 광분하던 똘복이, 백성은 그런 존재였던 겁니다. 무섭죠. 멀죠. 가장 정직한 반응을 하니 가장 믿음직한 판관인 것이죠.  

그동안 세종에 대해서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치 위민정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큰 것 하나를 간과했는데, 공포, 두려움, 무서움입니다. 누구에 대해? 바로 백성이죠. 성나면 배를 집어 삼켜버릴 수 있는 거대한 바다, 백성말입니다.
세종의 백성을 두려워 하는 마음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뼈있는 가르침이고 통치철학입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국민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민이 두렵다고 말하는 분들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다, 백성을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여겼는지, 똘복이를 통해 보여지는 그의 백성에 대한 자세는, 정기준의 틀에 박힌 성리학적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정조전의 사상도 뛰어넘었던 것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가장 낮은 자 백성을 두려워하는 왕, 가히 혁명적 자각에 이르렀던 세종입니다. 

세종의 끝장토론, 정기준을 설득할 수 있을까?
정기준과의 토론, 백성과 인(仁)이 주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되리라.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은 인(仁)일 뿐이다'.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귀족들이 멸했지요. 왕조와 지배층은 무너졌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백성이었습니다. 조선 또한 언젠가는 망할 것이라고 세종은 단호하게 말할 것입니다. 그 지배층 사대부 양반들도 말입니다. 사상이라는 것은 계절의 변화처럼 새로운 사상이 생겨나면 밀려나는 것이고, 영원한 것 또한 없지요. 임금과 지배층은 바뀌어도 늘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것은 백성이라는 거대한 바다입니다. 배도 뱃사람도 바뀌어도 바다는 그대로듯이 말입니다.
삼봉이 만세대대 영원한 조선을 꿈꿨듯이, 이도 역시 조선이 만세를 누리기를 바라고, 정기준 또한 그러할 것이라는 것은 세종은 알고 있습니다. 정기준이 분노하고 세종에게 틀렸다고 하는 것은 조선이 흔들릴 것임에 대한 염려입니다. 그러나 정기준은 간과했습니다. 사상과 지배층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 나라의 뿌리 백성이었음을 말이지요. 
정륜암에서 세종에게 정기준이 설득당할 것일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나 정기준은 세종의 말에 그의 사상에 큰 혼란을 일으키기는 할 것입니다. 세종의 말은 "백성없는 나라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정기준에게 더 큰 혼란을 줄 인물은 아마도 우의정 이신적과 심종수가 되지 않을까 추측도 해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를 위해 배신때릴 인물들이죠. 재상이 되겠다는 욕망때문에 말입니다. 
밀본원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죠.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제대로된 사대부가 조선을 이끌 것인가? 이신적같은 박쥐형의 인물은 언제나 나올 것이고, 권력이 인품이나 수양의 정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밀본원들을 통해서도 확인했던 정기준이기에 말입니다. 그럼 누구를 믿을 것인가? 영원무구할 조선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결코 갈아치울 수 없는 나라의 뿌리 백성이지요. 여기까지 깨닫게 되기까지 정기준은 세종에게 계속해서 반기를 들겠지만, 마지막은 세종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까요? 
"지랄하지 말라고 해", 세종이 처음들은 백성의 말이었습니다. 세종은 당황했지요. 궁에서는 한번도 듣지못한 말이었고, 삼봉의 책에도 공자의 책에도 나오지 않은 말이었으니까요. 세종이 전국팔도의 욕을 수집하고, 노랫가락을 수집했던 이유는 그것이 한자로 쓰여지지 못하는 우리말, 백성의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한자로 쓰여지지 못하니 우리 말은 수백년이 지나면, 하나 둘 없어져 버렸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고 잘 쓰는 우리말이 '얼'과 '마음'이라는 단어입니다. 얼을 한자로 혼(魂), 혹은 정신(精神)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얼'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와는 뭔가 다르지요. 마음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고, 감정이라고 하기에도 충분치 않고 말입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은 이런 말들이 지구상에 없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가 말입니다. 

****다음은 세종과 정기준이 나눌 대화를 재미삼아 써 본 것입니다. 그저 웃고 가시옵소서.
세종
: 네가 정기준이냐? 근데 말뽄새가 그게 뭐냐? 임금한테 반말이나 지껄이고, 네가 아는 성리학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더냐? 내가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 아니냐?
정기준: 이도 너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 사대부의 나라 조선의 왕이 될 자격이 없다. 글자라니...백성에게 권력을 줘서 사대부를 무너뜨릴 것이 아니더냐? 너의 글자에 성리학의 도를 담을 수 있더냐? 소양없는 백성들이 너도나도 글자를 안다고 날뛰고,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결국 조선은 너의 글자로 인해 망할 것이다.
세종: 지랄하고 자빠졌네. 네가 조선인이냐, 중국인이냐? 한자가 어느 나라 글자더냐? 네가 나의 글자를 두려워 하는 이유는(목에 힘주어 강조), 글이 곧 무기이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말이다, 중국의 글자가 조선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 답할 것이냐? 결국에는 한자라는 무기에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 되거나 망할 것 아니겠느냐? 하여 나는 조선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을 지키는 그 방법이 글자다.

정기준: 중화는 삼봉이 세운 조선건국의 이념이고, 너의 글자는 중화를 거스르는 반역사적 글자이다. 그걸 정녕 모르는 것이더냐?
세종: 중화를 거슬러? 옘병할... 중화가 밥을 주더냐, 고기를 주더냐? 밥은 말이다, 한자라고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새벽부터 밤늦게 일하는 백성들이 주는 것이다. 하여 내 너무 고마운 백성들에게 쉬운 글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인데, 그게 그리 고까운 일이더냐? 사람을 죽여가면서 까지 반대할 정도로?.
백성을 위한 성리학이 고작 말뿐인 것이었더냐? 그러고도 네가 사대부 선비더냐? 백성없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있더냐? 조선을 지키는 것은 성리학을 지키는 것도, 사대부의 권익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백성을 지키는 것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 삼봉이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백성의 마음을 얻지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길 것이라고, 그리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이어야 한다고...하여 내 그리하기 위해 지옥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 나의 조선, 백성에게 가는 나의 길에 너의 대답이라는 것이 고작....
참 내 너에게 말을 전하라 했는데 들었느냐? "겨우 폭력이라니..."
정기준:.......(방백) 에잇, 자존심상해(쪽팔려!라고 싶은 것을 참았음^^).

* 다음 Life On Award 2011 커뮤니티 '티스토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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