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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02 '천일의 약속' 김래원, 두 여자 농락한 나쁜남자라고? (12)
2011.11.02 09:26




김수현 작가가 천일의 사랑을 시작하면서, "이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말이 생각나는데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번 6회를 보면서 이해가 되더군요. 그만큼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청자에게는 이해불가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골치아프게 꼬여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박지형과 이서연의 사랑은 불륜이었고, 이들의 사랑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힘든 설정들이 많지요. 
동정을 받아야 하는데 동정을 받을 수 없는 여자 이서연, 너무나 착한 여자 향기의 눈물을 쏟게 하는 것이기에 그 선택을 응원할 수 없게 만드는 박지형, 다른 여자에게 가겠다는 남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쁜 행각을 해서 시청자가 조금은 미워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게 만드는 착한 노향기. 이들의 삼각관계는 여타의 드라마에서 보던 삼각관계의 기본틀에서 빗겨나 있지요. 사랑의 방해꾼 악역이 있으면, 얼마나 드라마를 편히 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구도를 깨버린 김수현 작가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큰일났다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래원, 아니 극중 남자주인공 박지형은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싼 인물입니다.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고, 다른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현대판 열녀 노향기 뒤에서 딴 여자랑 연애를 한 녀석을 감싸줄 건덕지가 별로 없지요. 이서연을 사랑한다는 감정도, 서연을 버리고 노향기와 결혼을 감행하려 했던 것에서, 비겁한 놈으로 그 진정성이 퇴색되어 버렸고 말이지요. 결혼할 여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남의 남자 잠시 도둑질 좀해보자고, 맞불을 지핀 이서연 역시도, 동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지요.
게다가 낚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향기의 심상치않아 보이는 임신 가능성은 도저히 박지형을 곱게 봐줄 수 없게 합니다. 임신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튼 잠자리까지 같이 한 여자(그것도 두 사람 모두와)를 결혼 이틀 전에 버리는 남자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는 없지요. 노향기는 임신은 아닌 듯하지만, 만약 임신이라면 에고, 정말 머리에서 김이 폴폴 나오게 복잡해지겠네요.
박지형이라는 인물은 지형엄마와 향기의 말대로 정말 결혼생활을 한 자신이 없었고, 사랑이 아니었으면, 향기를 정리했어야 했습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우유부단하게 질질 끌고 오다, 결국은 이 사단을 만든 무책임한 남자가 맞아요. 지형을 위한 변명을 해줄 수 있다면, 양가 집안 사이에 얽혀있는 이해관계, 비슷한 집안끼리의 편한 결혼, 게다가 멸종 희귀종 같은 노향기의 지고지순한 사랑까지 겹쳐서, 지형이 사랑 하나만을 선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겠지요. 그래서 어찌 어찌 살다보면 잊혀지겠지, 그냥 저냥 아이낳고 살아지겠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밍기적거리다 결혼 문턱까지 이르렀고요.
그런데 서연에게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넋나간 사람처럼 서연의 문제에만 골똘하더니, 결국 향기에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털어놓고 결혼을 못하겠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지난 5회까지 서연을 중심으로 전개를 했다면, 이번 회는 지형의 파혼선언과 함께 박지형과 노향기를 둘러싼 인물들의 등장이 많았지요. 역시 내공의 중년배우들은 드라마를 꽉차게 했습니다. 이미숙, 박영규, 김해숙, 임채무 중년 4인방의 반란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드라마를 임팩트있게 끌고 나가더군요. 김수현 작가의 특징인 길고 강한 대사가 입에 착 달라붙어, 호흡마저 지문으로 소화시키는 중년배우들이었습니다.
특히 향기 엄마 오현아(이미숙)의 연기는 말이 필요없이 강렬했지요. 노향기의 엄마이자, 성깔 대단한 부자집 사모님의 캐릭터를 어쩌면 그렇게 실감나게 보여주는지, 그녀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와도, 나라도 저 상황에서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처럼 자연스럽더군요.
향기를 잘아는 엄마이기에 "내가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깨자고 했다"는 거짓말에 따귀를 올려붙이는 오현아, 정말 바보 등신같은 딸래미를 보는 엄마의 속터지는 심정을 그대로 보여줬지요. 씹어 물어뜰을 놈뿐이겠습니까? 빤스만 입혀서 광화문 네거리를 머리채를 잡고 열두바퀴를 돌고, 볼이 터지도록 귀싸대기를 맞아도 싼 놈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제부터 이 나쁜남자 박지형을 아껴주려고, 편을 들어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제 글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표현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바람둥이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남자 박지형의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해주려고 합니다.
박지형에게 노향기와의 결혼은 잘 포장된 고속도로를 근사한 럭셔리 중형세단을 타고 달리는 인생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이틀을 앞두고 고속도로와 중형세단을 버리고, 가시밭길 맨발을 선택했습니다. 부모님의 결사반대에도, 향기의 지고지순한 외사랑에도 나쁜 자식, 나쁜 남자가 되려는 박지형, 어쩌면 서연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냥 서연에게 나쁜 놈이 되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결혼을 했을 지도 모르지요. 살다가 도저히 서연을 잊을 수 없어서 이혼을 하고, 서연을 다시 찾았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고요.
결혼앨범 사진까지 찍고 청첩장까지 나왔는데, 정신 나간 미친놈 소리가 딱 어울리는 미친 짓을 하고야 마는 박지형을 보면서, 어쩌면 서연에게 이별통보를 했던 것보다, 향기의 사랑을 외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연은 지형의 사랑을 동정이라고, 극구 거부하리라는 것을 지형도 알고 있을 겁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서연이기에 지형의 미친 결정은 자신이 더 초라하고 비참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죠. 바보가 되어 가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약도 마다하는 서연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서연이, 바보가 되어 누군가의 짐이 된다는 것에 자존심 상하고, 아파하는 서연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지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형은 서연을 택하려고 합니다.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그의 생활을 얼마나 힘들고, 흔들리게 하고,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느끼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치매가 어떤 병이라는 것쯤은 지형도 알고 있겠지요. 자식도 힘겨워 치매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잖아요. 아, 물론 요양시설에 의탁하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도와 형편에 따라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그 가정의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서연을 택할 남자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까요? 제 자식이라도 솔직히 거품물고 뜯어 말리고 싶을 겁니다. 이 글을 읽는 분중에 미혼남성이 있다면, 지형의 입장에서 솔직히 서연의 곁을 지켜주겠다고, 결혼을 깰 수 있을까 자문해 보시면, 지형과 같은 선택을 하는 분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김수현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를 천일의 약속, 김수현 작가는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겠느냐고, 시청자들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제는 아주 먼 옛날의 동화가 돼버린, 공룡화석처럼 오래된 이야기가 돼버린 사랑, 그 주체하지 못할 미친 감정을 박지형과 이서연을 통해 끄집어 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여자에게만 착한 남자가 되려는 박지형의 사랑을, 그래서 응원해 주려고 합니다. 가장 힘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을 잃어가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박지형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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