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웅'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0.03.19 '추노' 가장 무서운 인물, 업복이의 분노 (31)
  2. 2010.03.13 '추노' 대길과의 인터뷰 7문7답, 속마음을 물었다 (21)
  3. 2010.03.12 '추노' 무거운 사랑에 가벼워진 혁명 (27)
  4. 2010.03.11 '추노' 송태하, 언년이와 의리 지킬 수 있을까? (15)
  5. 2010.03.06 '추노' 대길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작가가 말하는 희망? (42)
2010.03.19 12:44




추노 22회의 큰 사건은 노비당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궁궐로 들어가는 곡식창고인 선혜청을 습격한 사건이 그것이지요. 선혜청을 습격했다는 것은 그들의 총구가 궁궐을 향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아직까지 노비당이 누구의 조종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추측만 난무하고 있기에, 좌의정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또 다른 반전이 숨어있을 수도 있기에 섣불리 규정하기도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이제 2회분량을 남기고 그동안 터지지 않았던 업복이의 분노를 마지막으로 터뜨렸습니다. 업복이를 추노 속 등장인물들 중 마지막 뇌관으로 남긴 것은 그 혁명관의 위험성때문이었을 겁니다. 양반세상을 뒤업고 노비들이 주인인 세상을 만든다는 노비당의 혁명론은 입 밖에 내는 순간 능지처참형에 처해질 수 있는 체제전복성을 가진 것입니다. 이는 왕을 바꾸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겠다는 반정 혹은, 다른 왕조를 세우는 역성혁명보다 훨씬 무섭고, 위험한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이라는 봉건사회에서는 말이지요. 물론 고려시대 만적의 난도 있었고, 천민인 망이 망소이의 난도 있었지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며 노비들의 세상을 꿈꿨던 만적의 난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했지만, 노비들의 난은 말 그대로 세상을 뒤집는 논리이기에 조선 지배계층으로서는 가장 무서운 난일 것입니다. 등골이 서늘하다 못해 오줌을 지릴만한 일이지요. 만약 성공한다면 말이지요. 
업복이로 대변되는 노비당은 신분계급상 가장 낮은 계급입니다. 계급의 취급조차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요. 노비와 소 한마리로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시대였으니, 보리쌀 닷되에 팔려 간 사당패나 다름없었던 사유재산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업복이의 등장은 첫회부터 있었습니다. 국경에서 대길이 패거리가 도망도비 모녀를 잡았을 당시부터 나왔던 인물이 업복이 공형진입니다.
관동포수로 이름을 날리다가 빚때문에 노비로 팔려가 도망가다 붙잡혀 와서, 얼굴에 노비 낙인이 찍히고, 자신을 붙잡아 온 추노꾼 이대길의 대갈통에 구멍을 날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지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르쳐 준 것은 노비들의 모임이었어요. 업복이는 아마도 노비당 그 분의 포섭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 분이 좌의정이나 권력의 배후라는 가정이 맞다면 말이지요. 업복이의 방포술을 노비들에게 익히게 하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선혜청을 습격하기 전에 업복이는 노비당 그 분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지요. 동지 중 누군가가 잡혔을 때는 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노비당의 선혜청 습격은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업복이는 포로로 잡힌 강아지라는 노비동지를 자기 손으로 쏴야 했습니다. 업복이는 지금까지 노비당 그 분의 임무를 받고 양반을 죽이면서도 늘 고민했던 인물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막 죽여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초복이에게 심정을 터 놓기도 했지요. 업복이가 자의적으로 죽인 경우는 반짝이를 밤마다 괴롭힌 양반뿐이었어요.
강아지라는 동지를 자신의 손으로 쏘고 주저앉아 우는 업복이는 처음으로 살인의 슬픔을 느끼는 듯했어요. 그동안 노비당 그분의 지시로 죽였던 양반들은 막연한 죄책감으로 괴로워 했지만, 직접 동지의 가슴에 충구를 겨눠야 했기에 업복이가 느꼈을 인간적인 고뇌는 컸을 겁니다. 큰소리도 내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울음을 밀어넣는 모습은 업복이를 연기하는 공형진의 내공을 압축해서 보여주었던 장면이었어요. 
선혜청을 공격하고 강아지를 쏘고 돌아와 동지를 죽인 죄책감에 업복이가 울고 있던 시각, 초복이는 내일이면 다른 집 씨종에게 팔려간다는 말을 하기 위해 업복이를 기다립니다. 노비당 모임이 끝나고 밤이면 수줍게 밤길을 함께 걷고, 아저씨 등에 업혀 여자로서 두근거림도 느껴봤던 초복이, 얼굴에 노비 낙인이 찍혀 사람구실도, 여자로서 사랑도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햇던 그녀에게 찾아 온 사랑은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어요. 노비들에게는 사랑도 금지되어 있었지요. 주인양반이 좋아하는 남녀 종을 맺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주인이 짝을 정해주면 부부연을 맺는게 당시의 노비들 혼인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업복이와 대길이의 사랑은 그 신분이 하늘과 땅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네요. 대길이는 양반이었기에 노비를 마음대로 사랑하지 못했고, 업복이는 종이기에 사랑도 주인의 허락없이는 사랑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금지된 사랑과 허락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초복이가 다른 집 씨종에게 시집갔다는 말을 들은 업복이가 낫을 들고 주인양반을 향하는 것은 업복이의 신분적인 분노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업복이는 그 동안 양반사냥을 하면서도 그 당위성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고 옳은 일인지 의문을 가져왔지요. 그런데 고백 한 번 제대로 못한 초복이가 다른 집에 팔려갔다는 것을 알고, 업복이는 비로소 낫을 들고, 총을 들 명분을 스스로 찾아 버렸습니다. 비로소 양반이라는 가진 자들의 대갈통에 총구를 겨냥해야 할 이유를 찾은 것이에요.
업복이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가장 낮은 계급에서의 각성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대길이 송태하에게 했던 말이 있었어요. "너는 방법이 틀려먹었다. 싸움은 말이지, 도망을 가다가다 갈데가 없을 때 싸우는 거다" 라고 했었지요. 업복이가 지금 그런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떨어질래도 떨어질 수 없는 가장 낮은 신분, 사랑마저도 주인이 마음대로 정해주는 세상, 대길이의 말대로 그 지랄같은 세상을 향해 총을 들어야 한다는 각성을 이룬 것이에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요? 업복이가 고양이를 물기 위해 이빨을 세운 것이지요.
잠깐 옆길로 이야기가 새는데 언문도 깨치지 못한 업복이나 설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설화가 언년이에게 대길의 이름자를 알려 달라고 해서 대길이를 위해 지은 옷에 이름을 수놓는 장면이 있었지요. 그리고 언년이 원손 석견에게 송태하가 적어 둔 소현세자 회고록을 읽어 주는 장면에서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가면 "백성들에게 새로운 것을 알리는 책을 많이 편찬 할 것이다" 라는 대목이 있었어요.
업복이와 설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조선의 사대부들이 하층계급에게 글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업복이나 설화같은 하층민의 지적자각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피지배계급의 지적자각과 각성은 지배계급을 위협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 있기에,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보호막을 쳤을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드라마에서 언급되었던 부분처럼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고 보위에 올랐다면, 더 많은 백성들이 지식에 눈을 뜨고, 조선도 더 일찍 개화에 눈을 떳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치더군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역사이고, 만약이라는 가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현세자가 역사적으로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추노에 흐르는 주 테마는 결국 사랑이었어요. 대길이는 언년이를 사랑해서 양반 상놈 없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대로 사랑하는 세상을 꿈꿨지요. 업복이는 종이기에 사랑이라는 지극히 감정적인 것마저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봉건사회의 계급모순에 눈을 뜨게 되었고요. 사랑때문에 신분의 각성을 한 것은 대길이와 업복이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년이가 종이었음을 알게 된 송태하의 신분적인 한계 역시 같은 선상에서의 눈뜸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요.  
두 사람은 금지된 사랑과 허락받지 못한 사랑을 했다는 닮은 점이 있어요. 그 사랑때문에 대길이는 인생이 바뀌었고, 업복이는 분노의 총을 들게 되었지요. 송태하의 한계는 개인적인 극복인지, 사상의 벽까지 깬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아마 깨기 힘든 벽일 것이지만 그렇다고 송태하가 잘못되었다고는 규정지을 수만은 없겠지만요.
칼든 자보다 붓든 자가 무서운 법이라고 최장군이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대길이 "무섭기로 치면 총든 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지" 했던 대사가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업복이의 분노를 마지막에 터뜨린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총든 자 업복이가 추노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업복이의 분노가 물론 성공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총든자, 즉 업복이가 무서운 것은 그 총구가 양반이라는 지배계급을 구체적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업복이의 분노는 대길이와도 송태하와도 다른 의미입니다. 바로 최하층 계급의 신분해방으로 연결되는 분노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초복이를 잃고 낫을 든 업복이가 찾아갈 곳은 언젠가 노비들 모임에서 들었던 도망노비들이 모여사는 곳일 겁니다. 대길이가 은실이 모녀를 안돈하라 보냈던 월악산 짝귀산채가 그 곳이겠지요. 가장 비천한 계급 업복이가 월악산 산채에 합류하게 될 날도 머지 않은 것이지요.
이렇게 월악산 산채는 세상을 바꾸려 했던 자, 사랑을 쫓았던 자, 세상을 등진 자, 세상에 쫓기는 자 등 쫓고 쫓기는 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될 것 같습니다. 버림받은 사람들,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지막 요새 월악산 산채가 처참하게 짓밟힐지, 좌절의 역사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이어가는 둥지가 될지 다음주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확인되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1 Comment 31
2010.03.13 07:42




추노 속 인물들 중 속내를 좀처럼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인물을 들라면 대길이를 꼽고 싶습니다. 대길이는 말보다는 눈빛으로, 몸으로, 그리고 굵은 눈물로 그 감정 모두를 보여주는 조선 최고 추노꾼이자 일편단심 순정파지요. 송태하가 긴 설명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면 대길이는 속과는 다르게 거친 말투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차단해 버리는, 상처투성이의 인물이에요. 언년이를 잃고 사람과 대화하는 법마저 대길이는 저잣거리 거친 남자로 변해갔지요. 월악산 산채에서 일을 도모하기 위해 송태하가 잠시 혼자 떠나겠다며 대길이에게 언년이와 원손마마를 부탁한다고 했었는데요, 대길이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생각에 잠겨있었어요. 혼자 있는 대길이를 만나 속마음도 알 겸 몇가지 질문을 했어요.

질문 1. 언년이를 구하기 위해 관아로 갔을때 사또를 인질로 잡았었던 장면이 있었는데요, 뒤따라온 송태하가 관졸들과 싸우고 있을 때, 공중제비돌기로 멋지게 언년이 앞으로 빙글 돌아 다가섰었지요. 그때 언년이의 턱을 들어 언년이와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싸우러 갔었지요. 그 때 언년이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셨나요?
대길: 그게 심정이 좀 복잡해. 서원에서 막상 딴놈 부인이 돼 버린 언년이를 마주하고, 네깟 종년을 왜 찾았겠느냐고 모진 말을 해버렸어. 근데 언년이가 송태하의 칼을 가로 막더라고. 날 죽이지 말라고 말이야. 송태하 그놈을 향한 내 칼도 언년이가 막았지. 지 남편 죽이지 말라고 말이지. 그런 언년이를 보며 생각했지. 언년이 네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송태하의 칼에 죽어도 여한은 없다. 내가 죽으면 언년이 네가 편안해질 거다.
송태하랑 한 판 붙었는데, 죽더라도 죽을 힘을 다해 싸워보고 죽겠다고 생각했소. 그냥 칼 맞고 죽어버리면 내가 너무 쪽팔리잖소. 헌데 송태하가 한수씩 접어 주더라고. 그 놈 소문대로 조선팔도에서 칼로는 당할 자가 없다고 하던데 칼 제법 쓰더구만. 그런데 그 송태하라는 놈이 언년이가 우리집 종이었다는 말을 듣더니 무너지더라고. 이성보다는 감정의 주먹을 날리니 나도 주먹으로는 송태하를 이겨볼 수도 있겠더라고. 솔직히 칼로 끝까지 갔으면 내가 베였을게요. 송태하 속은 잘 모르겠지만 순순히 붙잡혀 주더라고.
그런데 알다시피 4살배기 애새끼를 봤느냐며 나까지 감옥에 쑤셔넣어 버렸어. 모른다고 발뺌하니 뭐 천지호 패거리를 죽였다느니 해가면서 교수형에 처해 버린다고 하더구만.
그리고 진짜 죽을 뻔 했어. 밧줄이 목에 걸려 숨통을 조여 오는데 이게 끝이구나 싶었지. 언년이랑 평생 살겠다고 했는데, 언년이 찾기 위해서 추노질해 가면서 개차반 소리까지 들으며 짐승처럼 살아왔는데, 이대길의 삶도 그렇게 한방에 가는구나 싶었소. 억울해서 소리도 고래고래 질러보고 양반놈들 욕지거리도 해줬지만, 밧줄이 목에 감기는 순간 끝이구나 싶었소. 그런데 그 때도 언년이 생각밖에 안나더라고. 눈이 사락사락 내리던 날 언년이와 입맞춤했던 그 날, 물동이 이고 방문앞을 지나면서 곱게 웃던 언년이 그 고운 얼굴밖에는 생각이 안나더라 말이지. 내 인생을 이꼬라지로 만든 년인데 말이오. 
아, 왜 언년이 얼굴을 들여다 봤느냐고? 당연히 언년이가 아무 탈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지. 관아에 붙들려 와서 그 고운 얼굴에 생채기라도 났으면 어떡하나, 정말 살아있는 언년이가 맞는지 내 눈으로 내 손으로 확인하고 싶었거든. 아마 언놈이 언년이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흠나게 했으면 관졸놈이건 사또건 아작을 내버렸을 게요. 언년아, 똑똑히 봐라, 도련님이다. 내가 널 꼭 살릴거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언년이 눈을 보니 다 알아 들은 것도 같더이다.

질문 2. 언년이와 송태하, 그리고 원손마마랑 빈집에 숨어있을 때, 언년이가 송태하에게 한때는 언년이라는 종이었고, 그 언년이는 죽었고 김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고백을 할때 자리를 피해버렸지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김혜원이라는 이름자만 쓰며 멍하니 앉아 있었지요. 그때 심정은 어땠나요?
대길: 한마디로 지랄 같았지. 언년이는 죽었고 김혜원이라 하니, 그게 나 들으라고 한 말이잖아. 땅바닥에 김혜원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언년이는 없다, 죽었다 이렇게 내 머리에도 팍팍 새기고 싶었는데, 그때 언년이가 나오더라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송태하한테 원손인지 임금손자인지 맡기고 혼자 가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가슴은 언년이를 붙잡는데 차마 말이 안떨어졌어. 언년이라고 불러야 하나 혜원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 때 송태하 그 노비양반이 나와서 기다려 달라고 붙잡아 버렸어. 에이, 김샜지. 닭 쫓던 개새끼마냥 뻘쭘해져서 들어가고 말았는데, 화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자 울었어. 이게 운명인가,  나는 왜 이 염병할 미련을 놓지 못해 이 지랄을 떨고 있나 싶기도 했고 말이오. 

질문 3. 월악산 산채 짝귀를 찾아가 짝귀한테 막무가내로 얻어 터졌는데, 왜 뒷짐지고 맞기만 했나요?
대길: 그게 우리들 인사법이우. 뭐 남자들 인사라고 쳐도 되고. 짝귀 언니랑은 한양에서 한솥밥을 잠시 먹기도 했고, 내 무술 스승이기도 하오. 곡절이 있어 짝귀언니 귀 한쪽을 댕강 잘라먹기는 했는데, 두고 두고 미안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맞아줬어. 도둑놈이니 화적떼니 손가락질 받고 숨어지내는데, 내가 어려운 살림에 군입들을 여럿 보냈거든. 사정 딱한 도망노비 몇은 안돈하라며 짝귀언니한테 보냈는데, 그 정도 인사는 받아 줘야지. 몇 달 전에 국경에서 잡아 온 도망노비 모녀도 보냈는데, 이번에는 원손이니 뭐시니 하는 애새끼에 언년이... 아 그 노비양반네 부부까지 신세를 져야 하니...
그리고 짝귀언니와 나랑 한양에 퍼진 소문은 앙숙처럼 나있지만, 짝귀언니와는 비밀리에 주고 받은 약속도 있고 사실 친한 사이야. 짝귀언니 겉은 개차반이지만 속은 여리고 착하거든. 시대를 잘못 만나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무관벼슬이라도 했을 게요. 우리 최장군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들처럼 칼 쓰고 주먹쓰는 놈들은 상대 기술이 녹슬었는지도 그런 식으로 서로 확인하기도 해.

질문 4. 최장군과 왕손이 만났을 때 심정은 어땠나요?
대길: 말도 마.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라 그래.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리고, 아들까지 턱하니 낳고 사는 모습을 보고 추노질도 다 그만 두고 한양으로 올라 가려고 했어. 이천에 사둔 땅에 정착해서 최장군이랑 왕손이랑 같이 부대끼고 살아야겠다고. 그 때는 그 애새끼가 언년이 아들인줄만 알았어. 그 때 물어보기라도 할 걸...지금 와서 후회되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도 없고 말이야.
최장군과 왕손이는 내 피붙이 같은 형제들이야. 내 살점을 떼줘도 아깝지 않을 내 가족들이라고. 최장군이랑 왕손이가 죽은 줄 알았는데, 귀신인가 싶었지. 송태하가 최장군과 왕손이를 죽인 줄 알고 덤벼들어 어찌어찌 송태하를 압구정 높으신 양반한테 넘겨 버렸는데, 그게 최장군과 왕손이에 대한 복수였어. 차마 언년이 남편이라 죽이지는 못하겠더라구. 언년이 남편을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는 않더라고. 그놈을 죽이든 살리든 내 알 바 아니잖아?
이천에 땅이 몇천평이 있으면 뭐해? 함께 살고 싶었던 언년이도, 최장군도, 왕손이도 없는데... 내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돼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왕손이랑 최장군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더라고. 최장군 어께를 만져보고 얼굴을 꼬집어 보고서야 진짜 살아 있다는게 실감이 나더라고. 내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흘린 눈물 중에 가장 기뻐서 흘린 눈물어었소. 어제도 자면서 이놈들 진짜 살았나 싶어서 왕손이 볼도 비벼보고, 최장군 손도 슬쩍 잡아봤어. 둘다 세상 모르고 골아 떨어져서 몰랐겠지만...

질문 5. 대길이 오라버니를 찾아 설화가 월악산까지 왔는데, 설화에 대한 감정은 어떤 건가요?
대길: 그게 말이지. 아, 머리 아파.. 됐고! 그 년 때문에 사실 마음이 많이 아파. 설화 그 꼬맹이년 정말 불쌍한 애잖아. 사당패질에 어린 나이에 이놈 저놈한테 몸 굴리며 살다 처음으로 좋아진 남자가 나였다니 슬픈 일이지. 꼬맹이 마음 알지만, 언년이.....에 대한 내 맘이 움직이질 않고, 모질게 볼따구까지 때리며 떠나라고 했는데 말도 안들어 처먹고... 내가 남자는 때려도 여자는 안때려. (한숨) 참 답답해. 불쌍하기도 하고.
아까는 언년이 보는데서 설화를 안아주기까지 했어. 나 이렇게 다른 여자한테 마음 있다. 그러니  더이상 나 신경쓰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언년이 마음 잡으라고 애써 연기도 했는데, 설화 꼬맹이한테 미안하고 내가 못된 놈이지.
언년이 종년 웃는 게 뭬 그리 우아하다고 그것까지 따라하고, 그 년 그거 정신줄 나갔어. 따라한다고 언년이가 되냐 말이야. 그 꼬맹이 거둬줄 남자가 있을까 싶어서 인생이 가여운데, 솔직히 나는 더 이상 여자한테는 내 줄 가슴이 없어. 다 언년... 암튼 다 줘버리고 남은 것마저도 타서 재가 돼버렸거든. 왕손이 녀석이 제격인데 그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고... 꼬맹이년 생각하면 머리가 우지끈 아파. 버릴 수도 없고 데리고 살 수도 없고. 그냥 여기 월악산 일 정리되면 이천으로 데리고 올라가 왕손이랑 여곽이나 같이 했으면 좋겠구만, 그 년이 나만 바라 보고 살까봐 그것도 마땅치 않고... 아, 골치아프니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고.

질문 6. 송태하가 돌아와서 언년이와 원손마마를 데리고 가면 그 다음에 뭘 하고 살건가요?
대길: 그게 말이지. 처음에는 짝귀언니한테 그 사람들 잠시 돌봐 달라고 하고 바로 떠날라고 했어. 최장군이랑 왕손이 데리고 말이우. 꼬맹이 설화는 월악산에 남아서 살라고 하고. 근데 최장군이랑 왕손이 부상이 심해서 바로는 떠날 수 없겠더라고. 그래도 언년이 보면서 괴로운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달구지에 태워서라도 떠나려고 했어. 근데 그 노비양반이 내 속을 오락가락 헛갈리게 하네.
그 자식 아무래도 죽을 자리 보고 덤비는 것 같은데, 나야 도망치고 쫓고 숨고 사는 데는 추노질 몇년에 도가 텄지만, 송태하라는 놈은 그런 재주도 없어 보이고... 숨어 살라고 하는데도 굳이 끝장을 보겠다니, 느낌이 쎄해. 송태하랑 원손마마인가를 찾겠다고 팔도 검둥개들이 쫙 깔렸는데 앞 뒤 분간없이 나대니 큰일이야. 지놈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언년이가 걱정이 돼서 말이오.
언년이는 말이오, 절대 죽으면 안되거든. 10년이나 못보고 살았는데, 이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자락이 편해졌는데, 어딘가에서 같은 하늘 아래서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것도 뜻대로 안되면 세상 정말 지랄같잖아?
송태하가 올 때까지는 지켜 줘야지. 이대길 내 인생도 참 드럽다. 언년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텐데... 보고 또 보고 내 눈 속에 박히도록 봐 둘 게요. 이제는 언년이 몽타쥬를 그려다닐 수도 없고, 지나가는 놈들한테 "이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라고 물을 필요도 없어졌으니 내 눈 속에다 심어둘라고. 그렇게 할 시간을 주니 송태하 그놈한테 고맙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송태하가 돌아오면 미련없이 다 두고 앗쌀하게 떠날거야. 가는 길에 돌로 가매장했던 불쌍한 우리 천지호 언니, 배산임수에다 햇볕 잘 드는 양지바른 명당자리 잡아서 다시 묻어 줘야지. 발꼬락 긁어달라던 그 개차반 천지호 말이오.
사형장에서 탈출한 몸이라 이젠 뭐 한양에 가서 추노질도 못하겠고, 이름 바꿔서 어찌어찌 이천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최장군이랑 왕손이랑 데리고 가서 농사나 짓고 살거야. 가을이면 추수해서 월악산 짝귀언니한테 쌀 몇섬 날라다 주고, 왕손이 여곽해서 돈 벌면 쬐금(?) 달라고 해서 돈도 갖다주고. 짝귀언니 식솔들이 많아서 눈먼 행인들 푼돈 도둑질만으로는 살기가 팍팍스럽거든. 또 보낼 노비들도 생겨날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이 혁명이니, 새 세상이니, 새 임금이니 떠드는데 솔직히 난 관심없어. 혁명이 별거야? 새 세상이 뭐 금은보화 주렁주렁 매달리는 나무가 있는 별천지냐고? 살기 힘들다고 도망치는 놈 없고, 그런 놈 잡으러 다니는 나같은 놈 없고, 양반 상놈 구분없이 그냥 사람답게, 사랑하는 사람과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면 그게 제일 좋은 세상인거야. 궁궐안 나랏님이나 양반들이야 지네들 밥그릇 싸움하느라 우리한테 신경쓸 겨를이 있어? 그런데 이 지랄맞은 세상은 그것도 허락이 안돼. 난 그렇게 생각해. 나 같은 생각하는 놈 열명이 생기고, 백명, 만명 수백만명이 생기면 그게 바로 새 세상이라고.

그리고. 이것은 일급비밀인데, 이천에 가게 되면 나라를 세울 거야. 이천 이 아무개 땅은 양반도 상놈도 노비도 없는 곳이라더라. 이런 말이 나오는 나라를 세울 거라고. 세경도 많이 주고, 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겉으로야 내 땅 부쳐먹는 일꾼들이지만, 나는 다 같은 사람으로 대할 거야. 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배 곯지 않고, 살기 힘들다고 도망하는 놈도 한나도 없고, 신분이 다르다고 사랑도 못하는 그런 지랄맞은 세상은 안되게 할 거야. 소문은 내지 마. 잘못하면 포청에 끌려 가서 사상불온자로 찍혀서 진짜로 죽을 수도 있어. 어디가서 말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거야. 그러니 어디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쉿!

질문 7. 이건 좀 어려운 질문인데요, 언년이를 아직도 사랑하나요?
대길: 언년이는 말이야, 내가 살아가는 이유야. 나는 평생 언년이랑 살거야. 여기 내 가슴에 담고 말이우. 몸뚱아리가 곁에 없다고 언년이가 없는 것은 아냐. 여기... 이 가슴에 나랑 평생 살거야. 언년이 품에서 원손마마를 빼앗아 오면서 언년이에게 "너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고 했었지.
나 이대길이야. 난 안 죽어. 그러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언년이도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해. 언년이의 죽음은 곧 대길이의 죽음이니까. 아직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되었나?

*대길이를 만나 가상인터뷰를 했는데, 몇 개 질문하고 싶은 것이 더 있었는데 참았어요. 대길이 또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더라고요. 사실 제가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인물이 황철웅인데, 이분은 시간도 안내줄 뿐더러 입 잘못 놀렸다가는 칼맞을 것 같아서 무서워서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다음에 황철웅 인터뷰도 꼭 성공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21
2010.03.12 07:43




애초부터 길바닥 사극 추노에 혁명이라는 거창한 구호는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제목 그대로 조선의 피폐한 역사 속에 도망노비가 속출하고, 그 노비를 쫓는 인간사냥꾼 추노꾼이라는 재미있는 소재가 드라마 줄기였고, 부수적인 양념으로 소현세자와 그 아들 원손 석견을 끼어넣어 혁명이라는 곁가지를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줄기는 대길이와 언년이의 쫓고 쫓기는 안타까운 사랑이겠지요. 대길이와 언년이의 사랑, 그 사연 하나만으로도 추노라는 소재는 성공적인 사극멜로드라마지요. 그러나 혁명을 얘기하기에는 의미가 퇴색해 버렸습니다. 혁명보다는 사랑에 그 무게중심이 쏠렸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혁명과 사랑 중 어느 것에 비중을 두었다하여 드라마가 수작이다 혹은 졸작이라고 평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드마라 추노는 사랑에 무게중심이 쏠려도 긴장감과 추노 특유의 코믹 부분까지 신경쓰고 있으니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추노에서 그리고자 했던 혁명이라는 부분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에요.

드라마 추노에서 말하고자 하는 혁명은 실패입니다. 원손 석견을 왕위에 세우고자 하는 것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고, 혁명의 중심인물로 세운 송태하를 영웅적인 인물로 그리지 못했다는 점이 두번째 실패 요인입니다. 
우선 원손을 혁명의 당위성으로 잡았다는 것이 혁명이 실패한 첫째 이유라고 했는데요, 원손을 왕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것은 정통성이라는 명분싸움에서는 합당한 혁명의 논리가 되겠지만, 드라마 추노에서는 그 외의 것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린아기가 세자가 되고 다음 보위에 내정된 것은 조선 왕조사에서 수없이 있었던 일이기에 새로울 것은 없는 일입니다. 원손 석견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인조의 적장자인 소현세자의 아들이라는 점이겠지요. 소현세자가 청의 볼모로 잡혀가서 8년만에 조선에 돌아와 두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기에, 그리고 독살이라 의심되는 부분때문에 석견을 왕위에 옹립한다는 것은 타도의 대상이 그 의문의 중심에 있는 패륜적인 왕 인조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조선비와 송태하의 혁명론에 대한 탁상공론으로 그친 혁명만이 있었을 뿐 그들이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조선비와 송태하를 대변하는 사대부들의 한계만을 노출시킨 채 방법론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그들의 혁명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반정을 위한 거사는 황철웅이라는 희대의 슈퍼맨으로부터 봉쇄당했고, 임영호나 20회 말미에 예고로 보여준 곽한섬이 만난 이재준 대감 역시 임영호의 역할정도 밖에는 그려주지 못할 것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송태하가 스승이라 따르는 임영호는 이름만 드높았을 뿐 어떤 사고를 가진 인물인지 드라마에서 드러내 준 것이 없기에 그를 따르는 유생들과 송태하와 부하들은 임영호 팬클럽 회원쯤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드라마 추노의 혁명관의 실패는 임영호라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기에 오는 혼란일 것입니다. 앞으로 등장하게 될 이재준 대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그럼 임영호가 준비했다는 시대적인 소임을 누구를 통해서 보여줬어야 했느냐? 바로 송태하였어요. 그런데 송태하는 드라마 20회가 진행되는 동안 구체적으로 세상에 대한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한 인물에 불과했습니다. 원손을 지키고 소현세자의 유지를 받드는 충절심있는 한때의 장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이제는 신분에 대한 각성까지 해야 하니 숙제가 많은 인물이지요.
가장 영웅적으로 그려졌어야 할 송태하가 가장 답답한 캐릭터로 나오고 있으니, 도망노비나 쫓는 추노꾼 이대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요. 언년이에게 약속한 앙반 상놈 없는 평등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사 하나로도 이대길은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 돼버렸고, 정작 새로운 세상을 세우겠다, 역사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았던 송태하는 원손과 언년이를 데리고 조선팔도를 도망치는 신세만 되고 말았어요. 
언제부터인가 저는 송태하에 대한 기대는 많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을 이루기에는 그의 힘이 너무 미약했고, 그가 세우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드라마에서 계속 미적거리며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끝까지 송태하가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은 완성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그 이유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린 송태하의 상황때문이겠지요. 부하장수들을 다 잃었고, 조선비는 변절해서 동지들 이름을 팔아버렸고, 송태하 혼자서 칼을 들고 궁궐로 쳐들어 갈 수도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지금 잠시 몸을 의탁한 월악산 산채의 녹림거사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일테고요. 저라도 안싸우지요. 이유없이 죽을 자리를 찾아 가겠냐고요. 차라리 숨어서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백번 나아보이니까요.
송태하는 드라마에서 가늘고 길게 살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혁명을 꿈꿀 때 부터 그는 굵고 짧게 사는 운명을 택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대길이나 천지호, 짝귀같은 인물은 늘 칼부림이 난무한 저잣거리에서 살고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가늘고 길게 살자가 인생 모토인 것도 같습니다.
20회에서 호기심 많은 언년이는 송태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지요. 대길이랑은 왜 같이 다니게 된 거냐? 여기에 얼마나 머무실 요량이냐? 청에서 무엇을 배우셨는냐? 승하하신 저하는 어떤 생각을 하셨느냐? 등등... 언년이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차게 물어봤지만 송태하는 이번회에도 답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멋드러지게 칼을 꺼내 뭔가 결심한 듯 폼만 잡다 말았어요. 이러니 시청자가 한 번 예상해보라는 질문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제작진이 송태하의 갈 길을 송태하의 입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 근 10여회를 뜸을 들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제가 송태하라면, 아니 작가라면 어떤 방향으로 송태하의 앞길을 그릴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저는 송태하의 생각이 그 테두리가 작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처음 원손을 왕위에 세우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큰 테두리의 혁명이 아니라, 그가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송태하 나름의 각성이고 혁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 중심에는 원손과 부인 언년이가 있겠지만요.
송태하가 중요한 단서를 흘렸는데요, 대길이에게 혼자 떠날 것이라며 부인과 원손을 부탁한다는 말을 했지요. 대길이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느냐는 말에 "난 한번도 우리 백성을 죽인 일이 없다" 라며 조선 최고의 무사, 애민정신이 투철한 장군의 모습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평생 도망칠 수도 숨어살 수도 없으니 끝을 봐야겠다며 월악산 산채를 나가겠다는 말을 대길이에게도 언년이에게도 했어요. 송태하가 가는 곳은 아마 현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타협점을 찾거나 수원에서 거사를 위해 만나기로 한 다른 동지를 만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송태하의 말이 크게 달라진 곳이 두군데가 있었어요. 하나는 대길이 앞에서 내 부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감옥에서나 그 이전에는 항상 "내 부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그냥 부인이라는 호칭을 썼다는 점이에요. 대길이와 언년이와의 관계를 알게 된 연유이기도 하겠고, 대길이에 대한 감정적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거리감도 느껴지더군요. 자신이 지금 하려는 일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을 때를 대비한 말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내 부인이라는 말로 언년이는 자신의 여인이라고 굳이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대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같기도 하고요. 물론 억지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두번째는 원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송태하가 주장해 왔던 것은 처음에는 원손의 왕위 옹립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원손의 복귀, 그리고 원손의 사면이라는 식으로 송태하의 입장이 계속 바뀌고 있었지요. 동굴에서 언년이에게는 원손을 왕위에 올릴 것이라고 했고, 조선비와의 대립에서는 왕위가 아닌 복권을, 그리고 대길과 함께 교수대에서 처형될 위기에 처한 이후에 용골대와 만나서는 봉림대군에게 원손의 사면을 주청하겠다는 의중을 폈습니다. 그런데 이번회에서 송태하는 언년에게 "마마님이 숨어사는 왕족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씩씩하고 굳건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다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송태하의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송태하는 더이상 원손을 내세운 혁명이라는 기치를 걸지 않겠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니까요. 이는 송태하가 언년이 노비였음을 알고 난 이후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각성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태하는 왕을 새로 세우겠다는 혁명가에서 백성을 지키는 혁명가로 거듭나고, 그 현장에서 죽고자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송태하가 언년이에게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했던 말이 있었어요. 백성의 고충을 깨닫고자 했으나, 반상의 경계가 없고 노비가 없는 세상은 그려보지 않았으며, 노비가 되어서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옳은 생각을 세울 때까지 기다려 주겠느냐고 말이지요. 
송태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은 듯 보입니다. 원손을 왕위에 세운다느니 썩은 정치를 갈아엎겠다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이 노비로 떨어져 살아본 그 민초들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월악산에 모여든 막바지 인생들, 그 민초들 역시 자신이 보듬고 가야 할 백성이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의 범주에 넣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송태하가 마지막에 칼을 빼든 장면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 칼을 사람 그림자 없는 월악산 속 요새까지 숨어들어야 했던 바닥인생들을 지켜주기 위해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림대군을 만나기 위해서든지 곽한섬이나 다른 누구를 만나러 산채를 나가든, 황철웅으로 부터 월악산이 공격을 받게 되면, 송태하는 아마 미친 듯이 칼춤을 출 것입니다. 원손도, 언년이도 아닌 자신이 한번도 백성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월악산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송태하의 혁명관이 완성되는 것이 바로 월악산 산채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송태하를 중심으로 한 혁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드마마의 무게 중심도 언년이와 대길이, 그리고 송태하, 설화의 사랑으로 초이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애초에 추노에 혁명이 곁가지로 끼어들어간 셈이니 뭐라고 할 수 는 없겠지만, 왠지 그 사랑이 더 무겁게만 느껴지네요. 남의 여자가 된 언년이를 여전히 놓지 못하는 대길이, 10년을 자신을 찾기 위해 개차반 추노꾼이 되어 팔도를 뒤지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언년이 고민도 커지겠지요. 두 사람의 모든 사연을 알게 된 송태하, 그리고 대길에게 용감무쌍하게 들이대는 설화까지 사랑은 점점 무거워지고, 그 사랑의 무게에 짓눌린 탓인지 혁명의 이야기는 가벼워져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재미없어진 것도 아니고, 월악산 산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울고 웃게 하니, 그렇게 숨어서라도 오손도손 평화롭게 살았으면 싶어요. 힘들겠지만요. 허풍쟁이 월악산 짝귀와 급코믹해진 최장군때문에라도, 추노는 끝까지 놓치고 싶지않은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세상을 뒤집는 것도 혁명이지만 자기로부터의 혁명도 혁명이랄 수 있겠지요. 대길이의 혁명의 시작과 끝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에 있지만, 송태하의 혁명의 시작과 끝은 백성에 있을 것 같습니다. 노비라는 밑바닥 삶을 경험한 그가 가장 밑바닥 민초들을 위해 칼을 든다는 각성이야말로 송태하다운 혁명의 완성이 아닐까요? 혁명에 대한 그림이 큰지 작은지, 성공이냐 좌절이냐 하는 것들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를 위해 칼을 들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작은 혁명에 대한 모습이라도 드라마 추노에서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2 Comment 27
2010.03.11 10:05




추노의 무대가 호기심 만빵 월악산 짝귀의 산채로 옮겨가면서 결말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시작된 쫓고 쫓기는 관계가 결국은 이곳 월악산에 집결시키기 위한 과정들이었다고 봐야겠지요. 꿈과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원손 석견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들면서 모두가 쫓기는 자, 혹은 쫓는 자의 입장이 돼 버렸습니다. 대길이 쫓던 언년이와 도망노비 송태하는 더 이상 쫓고 쫓기는 관계가 아닌 서로 지켜줘야 할 사람들이 돼버렸고, 좌의정과 황철웅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돼 버렸지요. 
언년이는 송태하에게 정인 대길이의 세상을 이야기 해줍니다.
"그 남자는 높은 벼슬을 해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 여자를 위해 세상을 바꿀 용기를 가졌던 분입니다. 죽은 줄 알고도 그 분을 잊지 못했고, 나리를 만나고 혼례를 올렸지요. 나리와 혼례를 올린 것은 양반이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나리가 양반이기 때문에 이제는 제가 물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든다 하셨지요. 그 세상은 신분이 다르다 하여 사람의 정마저 비참하게 잘라내는 세상은 아니겠지요. 다시는 저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해 주세요"
언년이의 입에서 언년이라는 여자는 예전에 죽었고, 김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대길이는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어요. 그토록 찾아 해매였던 언년이가 자신 앞에서 스스로 죽었다고 말하는 순간 대길이의 마음이 무너집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눈앞에 있는 언년이가 자신이 사랑하는 언년이가 아니라고 하는 말을 결국 참아내지 못하고 나와버리지요.
마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써보는 낯선 이름 김혜원... 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스스로 부질없음을 새겨보려 하지만 허사가 돼 버립니다. 송태하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온 언년이를 보는 순간 말이지요. 언년이라 부르며 붙잡아야 하는지 혜원이라 부르며 붙들어야 하는지 대길이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송태하가 뛰어나와 언년이를 붙들었지요. "백성의 고충을 깨닫고자 했지만, 반상의 경계가 없고 노비가 없는 세상은 그려보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올은 생각을 세울 때까지 기다려 달라" 며 언년이를 붙잡았어요. 의리를 지키자고요. 
원손을 데리고 길을 떠난 세 사람은 기찰에 걸리고 맙니다. 송태하가 포졸들과 싸우는 동안 대길이 언년에게서 원손을 빼앗아 들고 가버렸지요. 대길이 원손을 빼앗아 든 것은 봉림대군을 만나려고 하는 송태하를 막기 위함이었어요. 송태하와의 의리때문에 혜원이 송태하 곁에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원손과 동행한다는 것은 시한폭탄을 안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대길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언년이를 위험하게 할 것이라는 것도요.
언년에게 월악산 영봉에서 짝귀를 찾으라며 신신당부를 하는데 언년이 입에서 10년동안 듣고 싶었던 말이 나옵니다. "도련님..." 돌아서서 언년을 향해 "넌 반드시 살아야 된다" 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핑글 돌았어요. 드라마지만 대길이라는 남자, 사랑하는 여자에게 꼭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는 모습, 반하지 않을 수 없네요. 
송태하는 대길에게 무술에서 이길 수는 있다하더라도, 세상을 바꾸고 하는 대의명분과 힘이 있다하더라도, 사랑에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송태하도 언년이가 대길이 사람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손을 데리고 간 대길을 따라 월악산 영봉을 향해 달려가면서 언년이 걱정하지 말라며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했지요. 송태하는 대길이 딴 마음(관아에 원손을 데리고 간다는 것이겠죠)을 품지 않을 것을 안다며, 부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송태하는 대길이 언년이를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지키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굳이 사랑의 승자와 패자라는 말로 송태하와 대길이의 사랑을 논할 필요는 없어 보여요. 송태하의 언년에 대한 사랑 역시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릴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지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상과 사랑의 양자택일이라는 순간에 두 사람이 선택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송태하는 세상을, 대길이는 사랑을 택할 것이라는 것을 송태하도 대길이도 알고 있어요. 대길이 송태하 곁에 있는 언년이를 지키고자 하는 이유가 송태하가 세상을 택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고, 원손을 데리고 있는 대길을 송태하가 믿는 것 역시 언년을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에요.    
추노 19회를 보면서 과연 송태하가 새로운 생각을 세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언년이가 바라는 그런 세상과 부합되는 것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글 제목으로 송태하가 의리를 지킬수 있을까?라고 화두를 던졌는데요, 이는 부인으로 인정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닌 언년이가 바라는 세상을 꿈꿀 것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저는 의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인으로 인정하더라도 언년이가 바라는 세상까지는 꿈꿀 수 없다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비천한 노비로 떨어졌으면서도, 한번도 노비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던 송태하는 언년의 말에 크게 깨우친 것이 있었어요. 언년에게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 자신의 말의 뜻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은 그 구체성이 없었어요, 소현세자의 혈육인 석견을 보위에 올린다는 명분, 그리하여 썩은 정치를 쇄신하겠다는 것이 송태하가 이루려는 세상이었어요. 그러나 송태하의 세상은 자신도 한때 노비로 살았던 노비계층, 자신의 부인이 된 언년이로 대변되는 피지배계층을 위한 세상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지배계층을 위한 개혁이었고, 임금을 바꾸려는 혁명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송태하의 각성이 송태하를 지지하는 사대부들의 각성까지 끌어낼지는 의문이에요. 송태하의 지지기반의 한계이자 현실이며, 송태하의 딜레마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송태하가 항상 대길이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그대와 나는 갈길이 다르다.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라".
저는 송태하의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송태하와 대길이는 같은 길을 갈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송태하의 길은 세상을 바꾸는 길이고, 대길이는 사랑을 찾는 길이라는 묘한 경계선이 있음을 느끼거든요. 송태하는 결코 세상을 포기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대길이는 사랑, 즉 언년이를 포기할 수 없음을 서로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길이가 송태하에게 감옥에서, 나같이 사랑도 마음대로 못하는 지랄 같은 세상이나 한번 바꿔 보라" 고 하면서 "그것도 아니면 꽁꽁 숨어 살던가..." 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송태하는 꽁꽁 숨어살 수 없는 인물이에요. 그가 목숨을 걸고 가고자 하는 길이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역사이기 때문이에요. 원손을 보위에 올리고, 부패한 조선의 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송태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자 목숨을 걸 대의입니다. 마방관노로 떨어져 절름발이 행세를 하면서 때를 기다리며 녹슨 칼을 꺼내 들었을 때, 송태하는 역사를 바꾸기 위한 장부의 길을 달렸습니다. 언년이를 만나면서 송태하는 세상에 눈을 떴다고 볼 수 있어요.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있던 송태하의 혁명에 대한 당위성,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누구를 위한 혁명이냐, 어떤 세상이냐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요.

따라서 송태하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를 향해서 달려가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지요. 언년이와의 첫만남에서 송태하는 쫓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찾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는 그 대상이 원손이었지만, 이제는 사람을 위해 달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비라는 말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고 했던 언년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무섭다고 했던 언년이를 위해서 말이지요. 송태하와 대길이의 같고도 다른 길인 셈이지요. 송태하는 언년이를 위한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대길이는 언년이를 지키기 위해 달려가니 언년이가 대단한 인물일 수 밖에 없네요. 두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걸게 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송태하가 결국 언년이를 대길이에게 보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는 역사를 포기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언년이가 바라는 세상은 이상적이지만, 송태하와 함께하는 세력들이 추구하는 세상과는 아직은 한참 멀리 있는 세상이지요. 송태하도 가슴으로는 언년이가 바라는 세상을 깨닫지만, 머리는 현실에 발을 딛어야 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조선이라는 봉건사회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수많은 송태하는 신분해방을 기치로 내걸 수는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기 때문이에요. 비록 송태하가 혁명가 개인으로서 각성을 했다하더라도, 송태하로 대변되는 사대부들의 각성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한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송태하가 마지막 결전에서 이런 이유로 대길이와 언년이를 살리려 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록 자신은 앙반 상놈없는 평등세상, 종도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혁명의 기치로 내세우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대길, 그대는 조선의 미래를 위한 희망으로 살아 남아라. 그리하여 그대와 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 노비라는 말을 무서워 하는 언년이라는 여인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라 " 이런 당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요.
결국 언년이와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되겠지만, 송태하라는 인물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는 지금 추노 속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는 조선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혁명가이기 때문이에요. 노비당이 꿈꾸는 세상, 대길이가 꿈꾸는 세상은 그로부터 몇백년이 더 필요하지요. "자신이 변화해야 세상이 바뀐다"는 지식인 송태하의 각성은 비단 조선이라는 봉건사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2010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이기도 합니다.
대길이와 송태하가 감옥에서 나눴던 대화 중에 송태하가 그랬지요. "누구나 죽으니 죽는 것이 억울할 것은 없다. 다만 죽을 때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송태하의 각성은 그 때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고, 멈출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태하는 실패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언년이를 대길에게 보낼 것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비록 신분적인, 세계관에서의 한계를 다 깨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송태하의 각성이 중요한 이유이자, 그가 언년이와의 의리를 지키지 못할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찌보면 송태하가 언년이에게 의리를 지키는 송태하식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0 Comment 15
2010.03.06 07:17




대길이와 송태하의 옥중대화가 드라마 추노의 결말이 암시된 중요한 부분이라 따로 정리를 했습니다. 송태하의 한계일 수 밖에 없는 계급의식을 결국 송태하는 극복하지 못했고, 대길이는 살아가는 이유였던 언년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함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송태하에게 확인시켜 주었지요. 송태하가 신분의식을 버리지 못한 것이 한계이지만, 양반사상이 골수에 박힌 송태하가 한계를 가졌다고 평가를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관점이고,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한계라고 규정할 수만은 없겠지요.
송태하는 대길과의 옥중 대화에서 "노비로 떨어져서 살아봤더니 어떠했느냐?"는 질문에도 한 번도 자신이 노비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며, 정신까지 굴복한 적은 없다고 대답함으로써 신분에 대한 견고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대길이 자신의 부인을 노비시절의 이름 언년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그 이름을 모른다고 혼란을 피해 가려고 합니다. 자신의 부인은 양반 김혜원일뿐이고, 김혜원이어야 하니까요. 자신의 부인이 언년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부인이 노비였음을 스스로가 인정해야 하기때문에 결코 언년이라는 이름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계집 하나 지키지 못하는 놈이 세상을 논할 자격이 있나?"

대길이 혁명이니 새 세상이니 뭐가 중요하냐며 "계집 하나 지키지 못하는 놈이 세상을 논할 자격이 있나?" 라고 물었지요. 그리고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느냐고 따졌던 장면이 있었어요. 아마 이 때 송태하의 마음은 이미 결코 혜원(언년)이 자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언년이를 지킬 사람은 대길이라는 것을 송태하 스스로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다만 사랑에 대한 패배감과 노비였던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혼란스러움에 그 꼿꼿한 자존심이 상처를 입고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짐승같이 울부짖는 대길의 뇌리에는 온통 언년이 하나임을 읽었을 테니까요.
송태하는 부인 혜원의 사랑보다는 시대적인 사명, 즉 원손을 지키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우선일 수 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대길이와 자기 스스로에게는 그것이 같은 길이며, 결코 양분될 수 없는 일이라 강조하지만, 이미 송태하는 알고 있습니다. 
대길이 송태하에게 네놈이 구하려는 사람이 임금손자인지 언년인지 물었을 때도 송태하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네 일이 아니니 상관말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지요. 또한 언년이라는 이름을 모른다고 혜원이 노비였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양반계급의식은 송태하에게서는 깨지지 못할 금강석과 같은 뿌리입니다. 송태하같은 양반들의 사고로는 세상이 열두 번 뒤집어진다 해도 양반의 피와 상놈의 피가 다르다는 것이 세상을 받치고 있는 근본입니다. 송태하의 한계이자 그가 대길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사랑에서도 혁명관에서도 말이지요. 
현 시대 우리 눈에 비춰보면 한계일 수 밖에 없지만 당시 조선 사대부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일 겁니다. 결국 평등사상은 농민과 노비 등 피지배계층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지요. 신분적 자각은 그 신분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계층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동학농민전쟁이 그러했고, 장길산이 그러했지요. 대길이 개인적인 이유이지만 혁명적인 인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 죽음 앞에 두 사람이 누구를 혹은 무엇을 떠올렸을까 궁금하더군요. 대길은 죽음 직전 언년이를 떠올리고, 언년이를 부르며 혼절했었는데, 송태하가 목매달렸다면 그가 마지막에 한 생각이 무엇이었을까? 송태하는 언년이도 떠올렸겠지만,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는 원손과 소현세자, 혹은 먼저 간 전부인과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송태하의 가슴에 맺힌 한(恨)이기 때문이에요. 송태하가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대길이가 마지막에 언년이를 부른 것도 10년간을 가슴에 품었던 언년이에 대한 한이었지요.
대길이와 송태하의 대화를 보면 두 사람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름을 엿볼 수 있었어요. 대길이는 자신의 죽음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교수대에서 밧줄에 매달리는 순간에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지요.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언년이 때문었어요. 집안이 몰락하고 칼부림이 난무한 저잣거리 난잡꾼들 사이에서 추노꾼이 되었던 것도 언년이를 찾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송태하는 죽음에 항상 담담합니다. 죽는 자리가 명예롭다면 죽는 것이 억울할 게 없다는 인물입니다. 죽을 때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을 하는데요, 군인이었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늘 죽음을 준비했던 인물이었지요.

다행으로 대길이와 송태하는 구출되었고, 대길이는 언년이를 향해, 송태하는 언년이가 데리고 있는 원손을 향해 언년이의 사가 여주로 향했습니다. 결국 대길이와 언년이, 송태하는 원손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돼버렸지요. 
사랑과 신분의 괴리를 송태하가 극복할지는 모르겠지만, 송태하는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송태하로 대변되는 양반들의 한계 역시 드라마 추노에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지요. 모든 주인공들이 각성해 버리면 그것도 재미는 없잖아요. 어떤 이는 한계속에 혁명을 노래하다 좌절하고, 어떤 이는 세상을 뒤집어 버리려 총을 들고, 또 어떤 이는 하루 세끼 밥먹는 것으로도 행복한 삶이고, 또 어떤 이는 사랑에 인생을 걸기도 했던 다양한 인생들이 우리네 삶이고, 그런 모든 것이 축적되어 온 것이 혁명의 역사, 좌절의 역사, 사랑의 역사이니까요.
대길이는 희망의 밀알
막바지에 접어든 추노를 보면서 요즘 한 가지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추노가 시작할 때만 해도 대길이는 반드시 죽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 대길이는 반드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네요. 대길이라는 캐릭터의 매력때문만은 아니에요.
제가 보는 조선의 희망은 대길이라는 인물이기 때문이에요. 한계를 가진 송태하보다는 가장 혁명적이면서도, 거창하게 혁명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대길이라는 불씨 하나 쯤은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대길이와 송태하가 옥중에서 나눈 대화 중에 드라마 결말을 암시하는 듯한 중요한 대사가 있었어요.

대길이가 송태하에게 '반드시 살아서 지킬 사람 있으면 지키고 구할 사람 있으면 구하라'고 했었지요. 그리고 "네놈이 만약 세상을 바꾸게 되면 그런 거나 한 번 해 봐라. 살기 힘들어서 도망가는 놈 없고, 그런 놈 잡으러 다니는 나같은 놈 없는 그런 세상... 이 빌어먹을 사랑 하나 마음대로 못해보고 세상 참 지랄같잖아?"
그 때 송태하의 대답은 패배주의적인 대답이었어요. "내일이면 우린 죽을 것이다"라고요. 대길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살아서 이루라고 말을 하고 있었는데, 송태하는 죽음을 얘기해 버렸거든요. 송태하의 말에 대길이는 "난 안 죽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이유 하나 쯤은 누구나 있게 마련이거든" 이라고 대답했지요.
이 대목에서 대길이는 반드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송태하와 부정하는 대길이가 너무 대조적이었거든요. 대길이의 말에서 순간 스피노자의 명언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떠올랐어요.
대길이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제 바람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희망 하나 남겨두는 것과 동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혁명은 조선비나 송태하같은 거창한 명분을 건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네 삶 속에 대길이가 남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으면 싶어요. 양반 상놈 없는 평등한 세상은 대길이 같은 작은 각성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신분을 깰 수 없는 송태하는 혹이라도 언년이를 인정한다해도 개인적이라는 한계를 가집니다. 하지만 대길이는 다르지요. 대길이가 총을 들고 칼을 들고 양반집, 혹은 궁궐을 쳐들어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에요. 살아남아서 평등한 세상을 염원하는 의식의 흐름, 그 작은 한 축이라도 대대손손 남겼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많은 세월이 필요할 지 모르지만, 대길이 같은 인물이 하나 둘 늘어나 민초들의 삶 속에 노래가락처럼 뿌리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언년이 역시 죽이면 안되겠지요. 대길이가 살아가는 이유니까요.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가장 높은 담장은 궁궐일 것입니다. 그런데 궁궐의 담보다 높은 벽이 있습니다. 바로 송태하로 대변되는 사대부들의 뿌리깊은 신분의식입니다. 송태하가 아닌 대길이가 살았으면 하는 이유는 이것때문이에요. 대길이가 조선의 사과나무이기를 바라는 것 말이지요.
결국은 혁명도 세상도 다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했던 대길이와 언년이, 그 사랑 하나만은 지켜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이천에 사뒀다는 땅에서 옆에는 최장군, 길목에는 왕손이가 여곽하면서 오손도손 사는 것도 바라고 싶네요. 자식들 낳아서 그 자식들, 또 그 다음 세대에게 사과나무의 희망이 이어져 신분해방의 밑거름이 되고, 그리하여 미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혁명의 이름 아래 모이게 되는 작은 밀알 하나쯤은 남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추천도 꾹 눌러주세요 ^^ 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다음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구독추가하기 을 누르시면 제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한RSS에 추가하고 싶으시다면 클릭▶▶▶▶



Trackback 4 Comment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