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에 해당되는 글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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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12.09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시나리오가 배출한 최고의 배우는? (19)
  3. 2011.12.08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 울음바다로 만든 한석규의 미소 (6)
  4. 2011.12.03 '뿌리깊은 나무' 세종-정기준의 끝장토론, 어떻게 설득할까? (16)
  5.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8회' 송중기에게 주눅든 한석규, 소름돋는 치밀연기 (2)
2011.12.16 10:41




소이, 덕금, 목야가 납치되었음을 알고 고심하는 세종, 글자로 인해 또다시 자신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것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세종을 잡아준 이는 채윤이었지요. 누구보다 소이의 안위에 애간장이 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채윤이지만 세종을 탓하지 않지요. 소이를 지키지 못한 자신때문이라며, 세종에게 전하의 길을 계속 가라는 채윤이었습니다. 혁명과도 같은 글자는 강채윤에게도 목숨을 걸고 지킬 그 무엇이었습니다. 소이가 원하는 길이라는 것, 또한 강채윤이 처음으로 가져 본 대의라는 것, 희망의 씨앗이었습니다.
거지들을 죽여버리고, 아이들에게 죽음을 부르는 노래라고 글자가 퍼져나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살인병기 윤평, 글자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수거하고 나인들을 납치해 밀본산채로 데려갔지요. 소이가 해례라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하는 정기준은, 글자의 유포를 막았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러나 밀본내에 불고 있는 배신의 그림자는 피바람을 예고하며 밀본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심종수와 이신적의 동상이몽은 정기준을 몰아내고 밀본의 수장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각각의 명분으로 등을 지고 맙니다. 삼봉 정도전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며 밀본의 차기 수장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심종수, 밀본이라는 붕당의 수장이 되어 재상총재제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라는 제안을 받은 이신적, 대의와 명분은 욕망이라는 덫에 걸린 채 서로를 향해 칼부리를 겨누고 있으니, 이 상황을 지켜보는 정기준이야말로 가장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밀본과 글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도담댁과 한가놈(조희봉)의 충정어린 호소는, 정기준으로 하여금 큰 결심을 하게 할 듯 보이더군요.
재상총재제의 구현이 조선 정치체제의 안정을 위한 삼봉 정도전의 이상이고, 한 사람의 왕에 의해 나라의 명운이 좌지우지되는 것보다는, 현명한 다수의 사대부들이 나라를 경영하는 것이 백성들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는 삼봉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지만, 정기준은 기필코 글자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글자는 말이다, 이도와 내가 서로의 생각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난 역사를 놓고 벌이는 이도의 이 위험천만한 장난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정치를 하는 자가 백성을 두고 어찌 될지도 모르고, 자신이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시험을 해보려 하다니, 기껏해야 50년도 다스리지 못하는 일개 왕따위가!!!".

정기준의 말은 현재의 우리가 듣기에는 한참이나 잘못된 생각이지만, 당시로서는 지식인의 고민이었고, 무게였을 겁니다. 정기준에게는 글자를 막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백성과 역사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글자로 인해 벌어질 혼돈을 방지하자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백성에 대한 걱정이었고, 역사에 대한 책임부분이었지요. 글자가 무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글자도 일종의 체제속에 있어야 한다는 사고관이지요. 글자에도 하늘과 땅, 상하 질서계급을 부여한 철저한 성리학적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었죠. 
정기준이 말은 다른 의미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이 국민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그 역사적, 정치적 책임부분에서 진지한 고민보다는, 특히 실적위주의 정치를 펴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말입니다.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려는 분들보다는 정기준의 고민이 오히려 진지하게 들리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정기준과 이도는 글자가 가질 역사적 가치와 백성의 희망이라는 부분에서 생각의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지만, 백성에게 이로운 것에 대해 같은 무게로 고민하는 지식인들이라는 점에서는 화해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심종수의 하극상의 칼 역시 정기준에게 충격이었겠지만, 심종수의 말은 정기준이 글자를 막는 것에 급급해 간과한 것을 곱씹어 볼 여지를 주기도 했지요. 
밀본은 말 그대로 하극상으로 칼부림이 나기 일보직전입니다. 예고편을 보며 심종수가 조선의 선비다 라는 말로 비장한 결심을 하는 장면이 보였는데요, 정기준을 치기 위해 칼을 드는 것 같더군요. 어제의 동지가 오늘 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게 하는 것이 바로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정기준은 세종에게 백성의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고 글자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정작 정기준은 권력의 욕망 앞에 부서지고 배신하는 밀본원들을 보게 되지요. 박쥐형 이신적의 욕망, 사대부의 대의라는 말로 명분을 세웠지만 심종수 역시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인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욕망이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겠지요. 대의와 명분이라는 이름으로 눈가림한 사대부 기득권층을 위한 욕망인지, 진심으로 백성을 향하는 욕망인지 말입니다.
정기준이 하극상의 칼을 받고 경악하는 시각, 세종은 이신적을 만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적 담판에 나섰지요. 노련한 정치 100단들의 허허실실 대화는 소름끼치게 흥미로웠던 장면이었습니다. 안석환이라는 중견배우의 내공과 한석규의 미친연기력이 추위도 녹여버릴만큼 숨막히게 하더군요. 본심들을 감춘 웃음이 서로 어떤 의미인지를 다 알면서도, 내숭으로 눙을 치는 두 사람의 독대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겪은 고수들의 한판이었죠.
전하의 길을 가라는 채윤의 응원에 탄력받은 세종, 이신적을 쥐도새로 모르게 가마에 태워 와 술상앞에 마주합니다. 세종에게도 이신적에게도 철저한 보완이 필요했기에, 007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으로 말이지요. 초반에는 쓸데없는 말로 분위기에 흥을 돋구지요. "내 치세를 어떻게 보시오?", 이런 것을 질문이라고, "태평성대지요...". 다 신료들 덕분이오, 우상도 고생많으셨소. 술한잔 기꺼이 하사하는 세종, 우상이 술을 마시기도 전에 간이 콩알만해지는 질문을 던지지요.
 "밀본이시오?". 세종 정말 화끈하십니다! 우상 이신적 속에서는 간이 철렁 소리를 냈지만, "소신이 어찌..", 애매모호한 답을 하지요. "아이고, 농이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능청스럽게 이신적을 가지고 노는 세종, 밀당의 고수였죠. 얼랬다 달랬다 사탕물리고 옆구리 차고, 아무튼 세종대왕 짖궂기도 하셔라~

그리고는 강도높은 질문에 들어가지요. "밀본의 가장 큰 대의가 재상총재제인데 어찌 그걸 거부하셨소?". 집현전과 글자를 두고 거래를 했다가 협상당일 결렬되고 말았던 일을 끄집어내는 세종이었지요. 영리하게 세종은 우상이 빠져나갈 쥐구멍 하나는 만들어 줍니다. "아, 우상이 밀본이라는 가정하에 말이오". 일종의 오프 더 레코드에 해당되는 세종의 영리한 수였지요.
이신적도 세종이 자신이 밀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듯 보였지만 능란하게 받아 치지요. 밀본이라고 가정하고 답을 올리겠다고 말이지요. "그것은 내부에 의견을 달리한 자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는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끙끙 앓던 속풀이까지 하지요. "소신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엇이 재상총재제보다 우선할 수 있겠습니까? 어쩔 줄 몰라 미치겠습니다". 이신적의 말에는 글자반포를 양보해 주고 재상총재제를 관철시켜, 재상의 자리에 앉겠다는 야무진 꿈을 깨버린 정기준에 대한 원망이 들어있었지요. 밀본에 분열이 생긴 거냐고 묻는 세종, 이신적 아차 걸렸구나 싶어 또 안절부절 눈이 팽글팽글 튀어나올 지경입니다. 요럴 때는 웃어주는 것이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특효약이죠. 우상에게 이런 재능이 있을 줄 몰랐다고 세종 껄껄껄 웃어보이지요.
세종의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지요. 밀본에게 자복하고 나와서 토론하자고 했는데, 왜 우상은 자수를 안했냐며, 아~주 부드럽게 물어 주시지요. "믿음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전하를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까? 무인정사때 삼봉선생이 참혹하게 죽은 후 역당으로 낙인 찍힌 세월이 수십년입니다. 그 긴 세월의 기억을 하루 아침에 잊고, '소신이 밀본입니다' 라고 나서기에는 불안한 것이겠지요".
"경연장에서 광평을 죽인 것에 대한 죄를 묻지 않겠다, 또 밀본을 붕당으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보다 더 믿음을 줄 수는 없소이다", 요지는 이렇게 많이 양보하고 참아줬는데 뭘 더 내놓으라는 것이냐고 돌려말하는 세종이었습니다. 이신적의 대답도 만만치 않았지요. 전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인간의 뿌리깊은 불안을 달래주지는 못하셨다고 받아치지요. 그 불안감을 달래줄 수는 없으니, 그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떠보는 세종이었지요.
세종도 영리하지만 이신적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또 쥐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이신적이었지요. "소신 멍청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못알아 듣겠습니다". "이런 답답한..." 세종의 너털웃음 웃음 뒤에는 이런 마음을 숨겨버리더군요(허, 요놈 봐라, 목숨줄 길게 붙들고 살고 싶다 이거지?). 짧은 순간 일그러지는 입모양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더군요. 한석규의 세심한 연기는 입술이라고 예외가 없더라고요. 입속의 혀까지도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는 듯 보였고 말이지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싹하게 무섭기까지 한 입모양에서는, 이신적을 한 대 치고 싶어하는 세종의 심정마저도 느껴졌으니 말입니다. 
의미없는 헛웃음으로 대화를 정리하는 세종, 그러면서 한말씀 콕 찔러 오줌 잘금거리게 만들어 버리지요. "우상께서 이리 그럴 듯하게 얘기하시니, 내 우상대감이 밀본인 줄 알겠소". 하하하. 이신적 술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몰랐을 겁니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냐', 뭐 이런 심정이었겠죠.
밀담은 끝났고 먼저 나가는 우상, 그냥 돌려보낼 세종이 아니었지요. 진짜 본론이 남았는데 말입니다. 이신적에게 빼도박도 못하게 세종이 쐐기를 박아버리지요. "정기준을 넘기시오". 크헉...심장이 쪼그라지게 하는 세종의 말에 이신적의 눈이 튀어 나오더라죠. 세종의 말인즉슨 정기준을 넘기고, 스스로 밀본임을 자복해서 밀본의 수장이 되어 조정에서 재상총재제를 주장하라는 폭탄제안이었습니다. 불안해서 믿지 못하겠다면, 스스로 그 믿음을 만들어 보라는 말이 이것이었죠. 붕당의 수장이 되어 과연 세종이 어떻게 나오는지 직접 경험하고 믿어보라고 말입니다.
다른 의견이라 하여 대역으로 몰지 않겠다, 자신과는 다른 정치관을 가진 붕당이라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세종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밀본입니다. 개미새끼 한마리도 조정 앞마당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세종이 대역조직인 밀본마저 품겠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죠. 이신적에게 붕당의 깃발을 들고 나오라고 제안한 것은 두가지의 노림수가 있었죠. 하나는 정기준의 소재를 알아 정기준과 담판을 하고, 소이를 구하기 위해서 였지요. 또 하나는 밀본이 스스로 와해되든지, 명분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커가는 기회를 갖든지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와해되는 밀본, 배신에 배신이 겹치는 상황에서 정기준의 생각은 어떻게 변할까가 가장 궁금한 대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상상해 왔던 시나리오를 내일 올릴 예정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

오늘의 보너스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정인지가 최만리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마구마구 웃었답니다. 정인지와 최만리가 동갑이라죠. 일찍 곰삭아 버린 최만리가 놀림받을 때마다 자네 편들어줬다고 생색내는 정인지가 웃음 하나 터뜨려 주지요. 자기가 동안인 것이지 최만리가 노안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말이죠. 최강의 동안 정인지, 최강의 노안 최만리 두 동기동창생의 대화가 은근 웃겼습니다.
워낙 근엄한 최만리대감, 생전에 웃어는 봤을까 싶은 표정인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웃음을 터뜨리시기는 하더라죠. 그것도 근엄한 웃음이기는 했습니다만.ㅎㅎ 물론 역사에도 나와있듯이 최만리는 끝까지 한글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만리의 생각을 고집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당시 사대부들의 사고방식이 하루아침에 깨지기는 쉽지 않았겠죠. 생각의 틀을 깬다는 것, 그게 항아리 깨듯 쉬운 것이라면, 역사는 수백번도 하루아침에 바뀌고 새로 쓰이고 했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딘 걸음일지라도 역사는 바뀌어 왔고, 새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가 새로 쓰이는 그 순간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소이와 강채윤, 그리고 세종이라는 위대한 인물처럼 말입니다. 국가적으로 큰 일들을 앞두고 있는 지금, 어쩌면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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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9 08:46




감독 및 시나리오까지 맡은 세종의 한글반포를 위한 연극이 성공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정기준의 뒷통수를 야무지게 후려치고, 지금 각 지방의 인쇄소와 주자소에서는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책이 대량으로 찍혀 나오고 있지요. 책뿐이 아니지요. 발없는 글자가 노래가 되어 역병처럼 퍼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윤평이 소이와 나인들이 충청감영에 가지 않았음을 보고해, 정기준이 세종의 연극을 눈치채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지요. 아무래도 소이와 강채윤에게 위험이 닥칠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표정이 초지일관 가면같은 반쪼가리 윤평이 소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 쬐끔 귀엽기도 하더군요ㅎ.

세종과 정기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는데요, 밀본에서 움직임이 없어서 오히려 폭풍전야같이 느껴집니다. 정기준이 "글자를 막기 위해 벌어지는 모든 살인마저 용인한다"고 했던 말이 섬찟해서 말입니다.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이신적과 심종수가 배신을 때릴 것같은 생각이 들어 정기준의 신변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아들 광평대군(서준영)을 잃은 참담함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광분하는 세종을 일으켜 세운 이는 강채윤이었지요. 그날이었습니다. 강채윤은 죽음 앞에서도 버리지 않았던 광평대군의 세종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았고, 글자를 보았고, 글자를 처음 익혔지요. 아버지 석삼의 이름자를 써서 그 이름을 잊지 말아달라고 내밀었던 날, 채윤은 처음으로 복수가 아닌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소이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 일, 소이와 글자를 지키는 것은 채윤의 하고 싶어진 일이었지요.
세종은 그날 채윤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지요. "넌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지금처럼 똘복이어야 한다. 윗것들 싸움보다는 그냥 백성으로, 한 사람의 백성이 윗것들 싸움을 어찌 보고 판단하는지, 그것을 알아야 겠다"라고 말이지요. 채윤은 그날 세종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윗분들의 일이 우리를 죽이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광평대군의 죽음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세종을 보고, 채윤은 소이를 끌고 나가려고 하며, 전하에게 속은 것이 분하고 참담하다고 독설을 내뱉지요. "짐승새끼한테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랬습니다. 세종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맞서면서 까지 천민 똘복이를 구했고, 말문까지 닫아버렸던 소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줬습니다.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아도 될 천한 똘복이와 담이를 구하고 거둔 것은, 그들도 사람이었고,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한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없었다면, 글자를 만들 생각도 애시당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들게 된 이유를 돼새겨 준 채윤이었지요.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똘복이가 세종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백성의 책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뭉클했지요.
"백성은 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루 왠종일 뼈빠지게 일해서 자기들 먹을 것 못먹어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책임지지 않았을 때도 우린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책임 좀 떠안고 하고 싶은 것 좀 갖겠다는데, 우리도 욕망하는 것 좀 갖겠다는데, 그게 그리 지옥이십니까? 전하는 위선자십니다. 전하는 아주 소심한 겁쟁이십니다". 윗것들 싸움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다고 했던 똘복이 강채윤은, 그렇게 세종의 흐트러진 심기를 세워줬던 것이지요.
세종에게 말은 그렇게 독하게 했지만, 채윤이라고 어찌 광평대군의 죽음이 슬프지 않겠어요. 남겨진 광평대군의 신발 한짝을 보며 우는 강채윤, 몰래 광평대군을 추모하는 채윤의 눈물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임금에게 울지말라고 했지만, 채윤은 광평대군이 마치 자신이 지켜주지 못해 그리 비명횡사한 것같아, 세종만큼 아프고 또 아팠던 것이지요.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광평대군이 궁을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만감이 교차했을 듯한 강채윤이었습니다. 상처를 입고도 아프다는 말한마디 하지않고, 고통을 이겨내던 광평대군를 업고 도망쳤던 일이 엊그제같은데, 허망하게 가버린 광평대군을 생각하니 채윤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비로소 세종은 정신이 들었고, 결심을 굳히지요. 그리하여 글자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작가에게 놀라웠던 점은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글자의 이름을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백성(民)을 쓰게 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제목 뿌리깊은 나무의 '백성'을 의미하는 뿌리이기도 한 백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으로, 세종의 혼란이 정리되었음도 암시했던 장면이었지요.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글자를 더 사랑했는지 모르겠다는 세종의 고뇌와 혼란을 소리(音), 글자가 아닌, 백성을 먼저 쓰는 모습으로 정리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장면도 세종의 심경정리까지 연결해서 세밀하게 연출하는 작가들과 감독입니다.
세종은 어떤 반대를 무릅쓰고도 글자를 반포할 것이라며, 멋진 시나리오를 내놓았지요. 정기준이 너무나 좋은 힌트를 던져줬습니다. "너의 글자는 역병과도 같은 무서운 글자다". 그렇지요. 역병처럼 빠르고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퍼뜨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방법은 기습과 정면공격, 정면공격은 주자소와 지방의 모든 인쇄소에서 훈민정음으로 된 책을 찍어 배포를 하겠다는 것이었죠. 주자소를 급습한 최만리가,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라며 목에 핏발을 세우지만, 하옥하라는 한마디로 일축해 버린 세종이었고요. 
기습공격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했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지요. 문제는 해례를 알고 있는 훈민정음 프로젝트팀원들이 궁밖에 나가서 광평대군이 하던 일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밀본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었지요. 궁궐 담장까지 밀본이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니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소이를 비롯해 궁녀들을 내보내기로 한 세종, 궁밖으로 내보낼 구실은 광평의 소재를 누설했다는 죄목을 씌워 충청감영으로 이첩을 시킨다는 속임수를 썼지요. 궁궐을 쥐새끼처럼 들락거리는 밀본원들은 이를 잽싸게 정기준에게 알려 밀본의 감시망을 피하게 했던 것이고요. 광평을 살해해 세종을 자극하고자 했던 정기준의 고도의 심리전에 넘어가주는 척했던 것이지요. 멋지게 정기준을 한 방 먹여버린 세종의 역공이었습니다. 
글자반포를 반대하는 집현전 학사들을 싸그리 잡아 옥에 하옥시키고, 광평대군의 죽음에 실마리를 제공한 나인들은 궁밖으로 내쳐버리면서, 궁의 분위기는 살벌함이 감돌고, 마치 이방원의 공포정치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의정 이신적이 좌불안석하는 모습을 보니, 혹시 바지에 실례를 하지 않았나 궁금해지기 까지 하더랍니다.
정기준이 세종의 급격한 변화를 보고받으면서, 자신이 의도하던 대로 되고 있다고 믿게 된 데에는 핵심역할을 해 준 조선 최고의 배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말생 대감(이재용)이었지요. 조말생이 세종의 시나리오에 동참했다는 것은 일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까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세종은 정기준에 이어 시청자에게도 뒷통수를 제대로 쳐주시더군요. 
사실 세종, 무휼, 채윤, 정인지, 성삼문과 박팽년, 그리고 소이 모두가 배우가 되어 세종의 시나리오에 맞춰 연극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요. 세종이 소이와 채윤을 그리 내칠 것이라고 믿은 시청자는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훤히 드려다 보이는 싱거운 연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종의 시나리오를 명작으로 빛내 준 배우가 바로 마지막 반전의 주인공 조말생이었습니다. 
'이도가 드디어 돌았구나!' 라고, 정기준이 쾌재를 부르며 자신의 생각대로 세종이 움직이고 있다고 오판했던 것은, 조말생이 밀본수사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보고때문이었지요. 조말생은 태종 이방원의 사람으로 칼의 정치에 앞장섰던 인물이었기에, 세종이 밀본을 쓸어버리겠다는 광기어린 분노에 적임자였지요. 세종의 사람이 아닌 뼈속까지 이방원의 사람 조말생이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에, 정기준은 광평을 잃은 세종이 이성을 잃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조말생이 황희대감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조말생이 세종이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어느 쪽에 서야하는지 고민했던 장면입니다. "상왕께서 돌아가시며, 전하(세종)께서 하시는 일은 반대치 말라 하셨다. 오로지 밀본만 막아내라 하셨다"며 고민중이라고 했었지요.
밀본의 발본색원은 조말생의 과업이며, 그에게 있어 대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밀본수사를 강채윤에게 빼앗기고 강채윤에 대해 앙금도 클 수밖에 없었고요. 밀본수사를 맡겨달라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궁에서 내쫒기고 파면을 당해도, 사재를 털어서라도 반드시 밀본을 잡겠다는 조말생이었기에, 소이와 나인들을 고신하고 채윤을 옥에 하옥시켜 버린 것도, 밀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생각하게 했고, 글자와는 관계없이 단지 밀본을 색출하겠다는 집념으로 보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옥에서 강채윤을 데리고 세종에게 간 순간, 헉! 이런 기막힌 반전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네요. 사실 세종과 채윤, 소이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여졌는데, 조말생은 밀본색출 업무에 너무나 충실하는 모습이어서 깜빡 속았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채윤을 집으로 불러 이방지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게도 했던 조말생이었지요. 이방지 역시 정도전의 사람으로 대역죄인인데도 그를 치료하고 숨겨주었다는 사실에, 조말생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었지요. 여자를 이용해 이방지의 발을 묶었던 비겁한 무사라며, 이방지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남았던 조말생은 그렇게 조선제일검 이방지의 마지막을 명예롭게 보내 주었습니다.
잘 짜여진 세종의 시나리오, 정기준의 뒷통수를 제대로 치고, 감독 극본 연출 제작을 총괄한 세종의 이번 연극작품에서 최고의 연기자는, 조말생대감 이재용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반전의 주인공이었고요. 조말생 대감역의 이재용은 냉정한 모습도 있지만, 귀여운 구석도 많은 분이죠. 경연장에서 세종이 코 앞까지 다가와 말을 걸 때, 허걱!하는 표정으로 깨알 웃음을 주기도 하는 분이죠. 나인들을 고신할 때 차라리 자신이 고신받는 것이 낫겠더라며, "하는 척만 하려니 소신 정말 힘들었사옵니다" 라는데, 진짜 미안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는데도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암튼 이번 연극의 최고 반전 배우 조말생이었습니다. 

세종이 만든 잘 짜여진 연극 한판으로 한글은 역병처럼 조선팔도 골목골목에서 번지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를 만들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소이, 거지들의 각설이타령까지 지금 조선은 글자역병의 씨앗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훗날 역사에, 백성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워주는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세종의 말이 송곳처럼 찌릅니다. "어차피 그것은 그들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지 않느냐, 지금은 그냥 내 백성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한번도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며, 채윤이 양손을 모아 처음으로 예를 취하더군요. "그렇게 결정내려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수많은 번민과 회의, 좌절, 그리고 그의 백성에 대한 믿음 속에 나온 희망의 씨앗 한글,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지, 또한 그 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되새겨 보고 있는 중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예견과 우려대로 백성(국민)이 권력의 주체가 된 지금, 우리는 그 책임을 잘 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글을 주신 세종대왕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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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8 11:12




광평대군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는 세종의 버선발을 보는 순간부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를 시청하는 집에서는 저희집처럼 곡소리가 퍼졌을 뜻합니다. 말 그대로 울음바다였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손이 떨리고, 가슴 한복판이 통째로 도려진 듯한 슬픔에, 정기준에 대한 분노조차 잊어버리고 깊은 슬픔 속에 세종과 함께 광평대군을 보내야 했습니다. 
집현전 학사들에 이어 글자때문에 아들마저 잃은 세종은 급기야 정신을 놓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정말 정신을 놓아버린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광기를 누르지 못하는 세종을 보면서, 한석규의 연기력에 감탄하고, 한글에 자부심을 느끼고,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세종대왕에 감사했습니다.
정륜암에서의 세종과 정기준의 토론은 한 치의 양보없는 팽팽한 접전이었습니다. 조선의 앞날에 대한 서로의 신념과 이상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상대를 베기도 하고, 베이기도 했습니다. 토론의 쟁점은 크게 세가지였습니다. 글자란 무엇인가? 글자가 체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새로은 질서 혹은 혼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에 관한 것이었지요.

1. 글자의 기능, 글자란 무엇인가? 
"우리 글자를 통해 백성들이 쉽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글자의 길(字路)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고, 이는 백성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보기 위함이다. 백성과 소통하려 하는 것이 삼봉의 뜻이기도 하고, 성리학의 이상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터인데 어찌 반대를 하는가. 반대하는 이유가 중화에 위배된다거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냐?"
"중화나 기득권때문이 아니다. 사대부는 신분의 이름이 아니다. 자질과 수양과 능력의 이름이다".
"내 장담하건데 훗날 사대부는 기득권으로 굳어지고 결국 썩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대부가 썩지 않도록 그 욕망을 누가 견제할 수 있겠느냐? 나는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하게 하려한다. 백성이 힘을 가지고 그 권력을 나눠가지게 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새로운 균형, 세로운 질서, 세로운 조화다. 나의 글자는 그런 새로운 세상의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토론의 핵심: 하늘과 땅이 있고, 음양이 있으며, 물이 위에서 흐르듯이 우주만물은 제자리에 있어야 질서가 이뤄지고 조화로운 것이다. 그것이 성리학의 이상이다. 그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글자이다라는 것이 정기준이 생각하는 글자입니다. 이에 세종은 글자를 독점한 사대부가 권력이 되고, 권력을 가지면 지키고자 하고, 지키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면, 부패하기 시작한다. 사대부는 부패할 것이다. 하여 모든 사람들이 글자를 아는 세상, 힘있는 백성들을 만들어 그 부패를 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반박했지요. 

2. 글자의 역할, 글자가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가?
사대분의 욕망에 대한 세종의 반론과 비판에 정기준은 중요환 화두를 던집니다.
"백성의 욕망은 어찌 다스릴 것인가? 백성의 들끓는 거대한 욕망을 만나면 공포에 질리게 되지, 왜? 그 욕망들이 모두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그 욕망들이 한꺼번에 풀어지면 세상은 지옥이 될거니까. 그래서 공자와 맹자가 필요한 것이고 주자가 나온 것이다. 모든 종교와 체제이념이 그 욕망을 다스리기 위함이 아니더나? 헌데 너의 글자는그 욕망통제체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지옥문을 열고 있는 것이야".
"백성이 글을 배워 삼강오륜을 안다면, 사람의 도리를 알고 성리학적 이상에 더 가까이 갈수있다. 근데 어찌 그것이 지옥이냐?".
"백성이 글을 알면 읽고 쓰게 될 것이며 그 즐거움을 알면 그들은 지혜를 가지게 된다. 사람이 지혜를 가지면 쓰고 싶어한다. 무엇에? 욕망이다. 욕망이란 결국 정치를 향하게 돼 있어. 국가의 정책에 관혀하려 들테고, 나아가 그들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려 들 것이다". (음,,,,정기준 허벌나게 똑똑하구만...)

토론의 핵심-사람들 모두가 글자를 알고 지혜를 가지게 되면 권력을 가지고 싶어한다. 사회는 혼란이 오고 결국  조선은 권력싸움으로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3. 역사적 책임, 새로운 질서(혼란)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세종의 백성이 지도자를 스스로 뽑으려고 할 것이다라는 정기준의 청천벽력같은 궤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맞받아 치지요.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세종은 생각했을 겁니다. 백성이 임금 혹은 재상을 뽑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을테니까요. 그럼에도 세종은 정기준 못지않게 미래를 내다보는 투시안이 있었죠. "백성이 지도자를 뽑는 세상이 왜 지옥이냐?".
정기준 눈 뒤집혀 버리죠.
"동서고금에 그런 무책임한 제도가 어찌 있을 수 있다는 말이냐? 정치는 책임이다. 유사이래 정치의 본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 정치는 오직 책임이야(정기준 참 옳은 말했다, 암 책임이지. 오늘날 정치인들도 좀 들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뽑았을 때 그 지도자가 실정을 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그 지도자를 뽑은 백성을 모두 죽여야 하나?".
정기준의 독설이 상당히 무섭게 들렸지요. 지도자를 잘못 뽑은 결과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우리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체 너는 백성에 대한 신뢰가 어찌 그리도 없단 말이냐? 도대체 어찌 그리된 것이야 정기준!!".
"내가 백성으로 살았으니까..저들에겐 희망이 없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건 저 무지몽매하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군중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있는 몇몇이다".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정말 측은한 일이구나". 세종은 정기준이 너무 한심하고 딱하다는 듯이 고개를 설래설레 젓기까지 하죠.

이 대목에서는 저는 정기준이 측은하기보다는 패배주의적인 사고에 젖어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의 논리에 오류도 보였고 말입니다. 정기준의 오류란 해보지도 않고 불신부터 했다는 겁니다. 백성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어떻게 그들이 변하는지 보지도 않고, 체념과 비관부터 했다는 겁니다.
무지하기에 백성들에게는 논리가 부족했고, 무지하기에 힘 역시 가지지 못할 것이라 체념했던 것이고, 굴복과 복종을 했던 것이었죠. 그것이 백성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요. 이방지의 말처럼 백성은 자기의 기쁨을 위해 자존심을 버려야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힘없는 존재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정기준에게 백성은 그런 노예근성에 찌든 사람일 뿐이었죠.
백성이 지혜를 가지면, 그리고 힘을 가지면 혼돈만이 올까요? 그건 아니지요. 물론 권력을 탐하는 백성들도 있겠지만, 지혜로운 백성은 부패를 감시하는 눈이 될 것이며, 부정을 고발하는 입이 될 것이며, 정책을 바로 들을 줄 아는 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세종과 정기준, 그러나 화해의 가능성은 깨지고..
그런데 세종의 측은하다는 말에 정기준이 더 강하게 세종을 흔들어 버리죠. "글자를 몰라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었다면, 이제는 글자로 인해 이유를 알고도 억울하게 죽게 될 것이다. 글을 만들어 나눠주고 글을 아니까 이제부터 스스로 구원하라는 것이 임금의 태도인가? 백성은 오직 보살피고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주상의 본심은 이제 백성이 귀찮은 것이다. 넌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귀찮아 하는 것이다. 이제 글을 알았으니 스스로 해결해라, 이러고도 불행하다면 그건 다 니놈들 책임이야. 이게 너의 본심이다".
한마디로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기 위해 글자를 만들었고, 그것은 백성을 보살피는 일이 귀찮아져서, '옛다, 글자를 줄테니 니들끼리 해결하고 살아라', 였다는 겁니다.

백성을 사랑하느냐 미워했느냐에 대한 질문에 세종은 평정심을 잃고 흔들려 버리고 말았지요. 세종 스스로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보다 사랑해 버린 글자, 조선보다, 임금이란 자리보다, 세상 모든 것의 가장 위에 둔 것이 글자였기 때문입니다. 세종의 대의가 곧 글자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때 반쪼가리가 날아오더니 세종의 목에 칼을 겨누지요. 토론중독증에 걸린 세종, 계속 토론을 더 하자고 정기준을 향해 발을 움직이고, 이 글자를 아는 모든 이들을 죽일 것이라며 세종을 죽이라고 명하는 정기준, 이런 불한당놈 같으니라고... 세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 역시 강채윤이 광속으로 날아와 정기준의 목에 칼을 겨누는 대치상황에 놓이게 되지요. 도무지 상황이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홀로 서있던 소이가 교통정리를 해줬습니다. 소이 말에 칼을 버리는 네명의 남자들, 결국 소이가 대장인겨?ㅎ

정륜암에서의 토론은 세종에게도 정기준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주었고, 서로를 인정하기도 하고 되돌아 보기도 했습니다. 정기준은 세종의 말대로 글자가 백성들에게 삼강오륜을 쉽게 가르쳐서 백성들을 더 효율적으로 교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성리학적인 이상과 가까운 것아닐까 생각하고, 세종은 자신의 글자가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군주의 도리에 의한 강박관념에서 만들었고, 스스로 만든 것이라 글자 자체가 자신의 사랑이 돼버렸다는 것을 고백하기에 이르지요.
무엇보다 세종은 정기준이 경고했던 글자의 책임론에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만든 이 글자들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크기의 것이 아니다. 헌데 왕이...정치를 하는 자가 백성을 놓고 책임지지도 못할 시험을 해도 되는 것인가?". 글자반포를 앞두고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은체 혼란에 빠져버린 세종이었지요. 흔들리는 세종을 보는 소이와 정인지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고요.
정기준은 세종의 글자와 새로운 세상에 대해 어쩌면 이도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바뀌려고 했지요. 그런데 일이 꼬이고 맙니다. 석보상절이 그만 정기준의 손에 들어가고 만 것입니다. 유학이 아닌 불씨(부처)의 일대기였다는 것에 정기준은 경악을 금치못하고, 마음을 돌려버리지요. 이도에 대한 배신감에 극도로 분노하는 정기준, 성리학의 이상 위에 글자를 두고 있는 세종과 글자를 아는 모든 사람은 죽여야 할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인질로 잡은 광평대군(서준영)을 죽여 궁으로 보낸 정기준, 광평대군과 정기준이 나눈 마지막 대화는 정기준의 자살과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글자의 씨앗이 되는 해례본 찾기가 주가 될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울음바다 만든 한석규의 미소와 아들잃은 아버지의 오열
광평대군의 죽음과 아들잃은 아비의 오열을 써내려 가야하는데 자신이 없네요. 눈물부터 줄줄 흘러내려서..ㅠㅠ
버선발로 땅인지 허공을 밟는지 조차 모르고 나간 세종, 세종의 버선발을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꽉 매여오는데 이후 장면은 무슨 정신으로 봤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가, 내아들아. 실없는 정인지 놈이 농담을 했던 거겠지, 어디 보자. 그렇지. 잠든 게로구나. 피곤했을 터이니. 봐라, 광평이 살아있지 않느냐'. 소이를 돌아보고 웃는 세종, 믿고 싶지 않았겠지요. 아니 믿을 수가 없었겠지요. 한석규의 미소는 광평이 살아있다고 믿고 싶은 아비의 마음, 그저 곤해서 잠든 것뿐이라고, 그런 것이라고 간절하게 믿고 싶은 마음었지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이것이 꿈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애원의 웃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광평을 무릎에 눕히고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대보지요. '아들아, 애비다. 그만 일어나거라', 툭 떨어지는 손, 다시 손을 들어 목에 감아봅니다. '곤한 내 아들, 애비 목에 손을 두르거라, 일어나 가자꾸나'. 또 툭하고 떨어지는 손. 정말인 게냐, 죽었다는 것이 정말인 게냐?
'아니다 아니야'.
임금도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임금이 하늘을 보고 원망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아들을 살려달라고, 왜 내 아들이냐고....
나때문이다, 내가 죽였다, 내 글자가 내 아들마저 죽였다. 광평을 죽인 건 나야. 저 빌어먹을 글자야. 소이 너까지 날 비난하는 것이지. 나 때문에, 글자때문에 광평을 죽인 것이라고?
"그래, 처음부터 모든 게 잘못됐다. 난 처음부터 불순한 의로로 시작했어.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미워했다. 난 백성을 사랑한게 아니라, 글자를 사랑한 것이야" 오열하는 세종, 아무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들을 수 없는 세종이었지요. 오직 자식을 죽인 자신을 원망하며, 자식보다 글자를 사랑한 자신을 원망하며 자책하는 세종이었지요. 아니 아버지였습니다.
세종을 정신차리게 한 이는 강채윤이었지요. "누가 전하냐? 저기서 지랄하고 있는 분이 전하냐? 아들 얼굴에 먹칠을 하고 계시는 저분이 전하냐? 담아, 광평대군 마마는 전하의 아들인 걸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는지 알지. 근데 대군마마도 담이 너도 전하한테 속았어.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 미움인지도 모르는 분이 저 전하야?".
채윤의 지랄하고 있다는 말에 광기로 눈이 뒤집히는 세종, 무휼의 칼을 빼서 채윤을 당장 쳐버릴 기세였지요. '너 때문이다. 네 놈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 그날 지랄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난 똘복이 네 놈을 몰랐을테고, 글자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을테고, 광평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네 놈때문이야'.
"전하 가슴이 아프십니까? 전하는 그럴 자격이 없으십니다. 광평대군 마마는 그런 전하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기에, 신명나게 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게...아마도 전하께서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으시겠지만, 대군마마는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전하는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실 자격이 없으십니다!".

그때도 흔들리는 세종을 잡아준 이는 똘복이 강채윤이었습니다. 집현전 학사들이 죽어나가고, 이도 네가 가는 길이 틀렸다고 말했을 때, 망령들이 세종을 괴롭혔습니다. 아버지 이방원과 아버지에게 맞섰던 젊은 이도, "권력의 독은 안으로 감추고 오직 문으로 치세를 하겠다고? 잘난 네 놈의 그 한심하고 잘란 결심이 네 사람들을 죽였다. 이방원이 왜 이방원인가,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안되니까 이도인 게지".
그날 저녁 소이의 처소에서 마주한 똘복이도 그렇게 말했지요. "결심이 왜 결심이겠습니까? 결심이 없는 소인은 더이상 소인이 아니옵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그 절박과 분노, 외로운 결심을 세종의 글자로 인해 꺾어버렸던 똘복이, 그렇게 그의 첫백성이 울부짖습니다. 정신차리라고 말입니다. 결심이 왜 결심이겠느냐고 말입니다.
칼을 떨구고 비틀비틀 주저앉아 목놓아 오열하는 세종, '그랬더냐 광평아, 그리 말했더냐 광평아'. 그래도 오늘만은 울고 싶구나. 통곡하고 싶구나. 오늘만은 내 아들 광평에게 부끄러운 애비이고 싶구나. 자식을 잃고도 울지도 못하는 아비가 아비더냐. 내 오늘만은 임금이고 싶지 않구나. 오늘이 지나면 내 다시는 울지 않으리'.. 
세종의 첫백성이자 판관, 가장 멀리있는자 가장 두려운자, 그러나 가장 믿을만한 자, 백성. 백성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그를 믿고 있습니다, 광평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세종의 글자가 백성을 믿고 사랑하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종은, 광평을 통해, 똘복이 채윤을 통해 그의 글자가 어떤 의미였음을 확인했습니다. 백성이 귀찮아진 것이다? 아니다.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다. 백성은 믿을 수 없는 무지몽매한 군중일 뿐이다, 아니다. 정기준에게 돌려 줄 두번째 토론의 답을 세종은 찾았습니다. 백성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는 자는 군주가 될 자격이 없으며, 사대부 또한 될 수 없다. 하여 나는 나의 글자를, 아니 조선의 글자를 내놓을 것이다! 조선의 글자는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긴글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여러분의 인내심에 감사합니다. 

* 다음 Life On Award 2011 커뮤니티 '티스토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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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3 09:07




"어이! 정기준, 오랜만이야. 무작스럽게 반가워", 이런 말이야 하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정기준과의 해후이기에 세종의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아무 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한 것이 아닌가, 이도"라며, 계급장 미리 떼고 선수치는 정기준의 발칙함을 대인배 세종이 일단 '빌어먹을 놈'이라고, 눈감아주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 한마디는 해줘야 할 듯싶군요. "그래도 내가 왕인데 말 뽄새하고는...".
사실 정륜암에서의 팽팽한 긴장감때문에 토론을 하게 될지 다음으로 미뤄질지는 아직은 모릅니다. 무휼과 개파이가 2차 격돌을 세종과 정기준의 토론에 앞서 치뤄 버린다면 말이죠.

"너의 조선은 이방원의 조선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세종은 하루도 고민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지옥에서 살아왔노라고 고백했지요.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이 지옥이기에 그나마 세상은 평온한 것이다". 세종이 인내하고 기다리며 내놓은 답은 '우리 글자'였습니다. 허나 정기준은 정면으로 틀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현전 학사를 살인하고 유생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까지 말입니다.
정기준과의 토론을 이어가려는 세종, 뜻밖에 정륜암에서 그토록 기다려왔던 정기준을 만났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관심사가 세종이 어떤 논리로 정기준을 설득할 것이며, 또한 정기준은 어떤 논리로 세종을 반박할 것인가가 되겠지요. 세종과 정기준이 중단했던 경국대전의 다음 말이 토론의 핵심이 될 듯합니다. 지난 글에서 이부분을 정리했었는데요, 시간많이 들여서 정리한 것인데 안타깝게도 블라인드처리되었네요. 글은 다시 복구시키지 못할 것같아 중요한 부분만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읽으신 내용도 나올 겁니다. 그래도 글 끝에 보너스도 있으니 읽어주시길^^  

어린 이도와 정기준이 주고 받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정보위(正寶位)에 대한 대화는,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흐름이기도 합니다. 세종이 백성이 어떠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문제 의식이 정기준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고, 어린 똘복이와 소이와의 만남을 통해 백성의 실체를 발견하고, 백성이란 무엇인가를 자각하면서, 그 결과물 한글을 내놓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대립은 결국 국가를 지탱하는 뿌리가 누구인가를 놓고 싸우는 이념적 사상적인 통치관의 대립입니다. 신권이냐 왕권이냐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나라의 주체가 누구이냐에 대한 가치관의 대립인 셈이지요. 물론 정기준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도전의 사상을 신봉해 온 조카이자 밀본의 수장이라는 자가,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도전을 잘못 이해한 반성리학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세종이나 정기준이나 조선을 아꼈다는 겁니다. 또한 조선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기준이 왕의 독재를 견제하는 재상정치, 선비의 나라를 부르짖는 것도, 세종이 힘이 있는 백성을 만들겠다는 것도 모두 조선의 강건함에 대한 희망입니다. 정기준의 밀본이 드라마상에서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소인배 무리집단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정기준의 촌철살인적인 한마디, "이도는 훌륭한 왕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요? 또 그 다음은요?"에는, 조선의 앞날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말입니다. 정기준의 우려와 예언은 적중했고, 이후 조선왕조에서 세종을 넘는 성군은 나오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개혁군주 정조가 있었지만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요.

세종이 하는 일이 글자를 만들고 있었음을 알고,  "고작 글자라니..."라며 했던 정기준의 파안대소는 한자 이외의 자국의 글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사대부유림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조차 개 풀뜯어먹는 일이었음을 하나로 정리해 준 장면이었죠. 그런데 정기준과 똑같은 반응을 한 인물이 있었죠. 대놓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하게 지랄을 떨어가며 만드냐'고 왕의 안전에서 코웃음쳤던 강채윤입니다. 
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세종이 보았다던 백성을 봤습니다. 그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이 사체해부를 한 것에 격분한 성삼문과 박팽년을 설득하던 장면입니다. "뱃사람들이 거대한 자연을 만나기 때문에 미신을 잘 믿는다는 것이, 세종이 만난 백성에 대한 믿음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가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사랑했다는 애민사상에서 틀어, 백성을 가장 두려워했다로 생각해 봤습니다. 강채윤을 그렇게 표현했었지요. 가장 두려우면서 가장 멀리있는 자, 그래서 믿음이 가는 자라고 말이지요.

영원한 것은 임금, 사대부, 사상, 나라도 아닌 백성
정기준과의 사당에서의 첫만남에서의 토론내용 경국대전 정보위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왕은 허군이고, 실군은 관에 총괄하는 재상총재의 것이다. 이것이 조선을 건국하신 삼봉선생의 치국의 기본사상이다. 주역에 이르기를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이다. 무엇으로 그 위를 지킬까보냐? 이에 말하기를 인(仁)이다. 현능한 자들은 지혜를 바치고 호걸들은 힘을 바치며, 백성들은 맡은 바에 분주히 복무하되 오로지 임금의 명령에만 따를 뿐이다". 정기준은 조선경국전 정보위 구절이라며 다음 구절을 알고 있느냐고 이도에게 물었지요.
다음구절은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마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되리라.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입니다. 정기준은 "지금의 주상(태종 이방원)은 그러한가?" 라며, 네 아비는 삼봉의 조선을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라며, 이도에게 충격을 주었지요. 

가리온이 정기준임을 알았든지 몰랐든지, 세종은 정도전을 추모하는 정륜암에서 정도전을 다시 거론합니다. "그의 책을 읽고 또 읽고 내린 결론이다", 삼봉만은 내 뜻과 함께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말이지요. 
해서 경국대전 정보위 다음 구절을 살펴보니 이런 말이 이어지더군요.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하게 얻는 것이 아니요, 도를 어겨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방법 역시 인(仁)일 뿐이다. 인군(人君)은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는  그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아서 불인인지정(不忍人之政)을 행하여, 천하만민이 모두 기뻐해서 인군을 마치 자기 부모처럼 우러러 볼 수 있게 한다면,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위망 복추의 우환을 끝내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인(仁)으로서 위(位)를 지킴이 어찌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불인인지정은 쉽게 말해 측은지심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곰곰이 되짚어 본 문구가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되리라.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의 구절입니다. 

20여년이 지나 세종과 정기준은 어떠한 의미로든 성장해 왔고, 나름대로의 명분과 대의를 향해 그들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정기준은 그가 그토록 금과옥조로 여긴 정도전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힘으로 위협할 수 없다는 부분입니다. 겨우 폭력이라니 라며 이도를 비웃었던 그가 폭력으로 맞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이도에게 공맹의 도가 어떠하며, 삼봉선생의 조선건국이념이 어떠하며를 설파하던, 그 정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뱃사람이 미신을 믿는 것은 바다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거친 파도가 그들을 삼켜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만조의 기쁨을 누리게도 합니다. 세종이 만난 백성은 아버지를 잃어 울부짖는 똘복이였죠. 임금을 지랄이라고 욕을 하는... 이도는 충격을 받았고, 큰 깨달음을 얻었지요. 물론 똘복이처럼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는 일이 없게 글자를 만들겠다는 동기가 되기도 했지만, 이도는 분노하는 백성을 만난 것에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군왕을 어찌 백성의 어버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왕이 자격이 있는가?를 물었던... 어린 날 정기준이 던졌던 물음과도 같았죠.  

이도가 깨달았던 것은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 엎기도 한다는 겁니다. 백성이라는 거대한 바다, 무서운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조선의 왕, 재상도 의미가 없는 것이며, 재상의 나라가 옳으냐 왕의 나라가 옳으냐도, 다 쓰잘데기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죽여버리겠다며, 임금배때지라고 칼이 안들어가겠느냐며 무섭게 광분하던 똘복이, 백성은 그런 존재였던 겁니다. 무섭죠. 멀죠. 가장 정직한 반응을 하니 가장 믿음직한 판관인 것이죠.  

그동안 세종에 대해서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치 위민정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큰 것 하나를 간과했는데, 공포, 두려움, 무서움입니다. 누구에 대해? 바로 백성이죠. 성나면 배를 집어 삼켜버릴 수 있는 거대한 바다, 백성말입니다.
세종의 백성을 두려워 하는 마음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뼈있는 가르침이고 통치철학입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국민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민이 두렵다고 말하는 분들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다, 백성을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여겼는지, 똘복이를 통해 보여지는 그의 백성에 대한 자세는, 정기준의 틀에 박힌 성리학적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정조전의 사상도 뛰어넘었던 것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가장 낮은 자 백성을 두려워하는 왕, 가히 혁명적 자각에 이르렀던 세종입니다. 

세종의 끝장토론, 정기준을 설득할 수 있을까?
정기준과의 토론, 백성과 인(仁)이 주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되리라.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서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은 인(仁)일 뿐이다'.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귀족들이 멸했지요. 왕조와 지배층은 무너졌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백성이었습니다. 조선 또한 언젠가는 망할 것이라고 세종은 단호하게 말할 것입니다. 그 지배층 사대부 양반들도 말입니다. 사상이라는 것은 계절의 변화처럼 새로운 사상이 생겨나면 밀려나는 것이고, 영원한 것 또한 없지요. 임금과 지배층은 바뀌어도 늘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것은 백성이라는 거대한 바다입니다. 배도 뱃사람도 바뀌어도 바다는 그대로듯이 말입니다.
삼봉이 만세대대 영원한 조선을 꿈꿨듯이, 이도 역시 조선이 만세를 누리기를 바라고, 정기준 또한 그러할 것이라는 것은 세종은 알고 있습니다. 정기준이 분노하고 세종에게 틀렸다고 하는 것은 조선이 흔들릴 것임에 대한 염려입니다. 그러나 정기준은 간과했습니다. 사상과 지배층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 나라의 뿌리 백성이었음을 말이지요. 
정륜암에서 세종에게 정기준이 설득당할 것일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나 정기준은 세종의 말에 그의 사상에 큰 혼란을 일으키기는 할 것입니다. 세종의 말은 "백성없는 나라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정기준에게 더 큰 혼란을 줄 인물은 아마도 우의정 이신적과 심종수가 되지 않을까 추측도 해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를 위해 배신때릴 인물들이죠. 재상이 되겠다는 욕망때문에 말입니다. 
밀본원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죠.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제대로된 사대부가 조선을 이끌 것인가? 이신적같은 박쥐형의 인물은 언제나 나올 것이고, 권력이 인품이나 수양의 정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밀본원들을 통해서도 확인했던 정기준이기에 말입니다. 그럼 누구를 믿을 것인가? 영원무구할 조선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결코 갈아치울 수 없는 나라의 뿌리 백성이지요. 여기까지 깨닫게 되기까지 정기준은 세종에게 계속해서 반기를 들겠지만, 마지막은 세종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까요? 
"지랄하지 말라고 해", 세종이 처음들은 백성의 말이었습니다. 세종은 당황했지요. 궁에서는 한번도 듣지못한 말이었고, 삼봉의 책에도 공자의 책에도 나오지 않은 말이었으니까요. 세종이 전국팔도의 욕을 수집하고, 노랫가락을 수집했던 이유는 그것이 한자로 쓰여지지 못하는 우리말, 백성의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한자로 쓰여지지 못하니 우리 말은 수백년이 지나면, 하나 둘 없어져 버렸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고 잘 쓰는 우리말이 '얼'과 '마음'이라는 단어입니다. 얼을 한자로 혼(魂), 혹은 정신(精神)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얼'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와는 뭔가 다르지요. 마음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고, 감정이라고 하기에도 충분치 않고 말입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은 이런 말들이 지구상에 없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가 말입니다. 

****다음은 세종과 정기준이 나눌 대화를 재미삼아 써 본 것입니다. 그저 웃고 가시옵소서.
세종
: 네가 정기준이냐? 근데 말뽄새가 그게 뭐냐? 임금한테 반말이나 지껄이고, 네가 아는 성리학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더냐? 내가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 아니냐?
정기준: 이도 너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 사대부의 나라 조선의 왕이 될 자격이 없다. 글자라니...백성에게 권력을 줘서 사대부를 무너뜨릴 것이 아니더냐? 너의 글자에 성리학의 도를 담을 수 있더냐? 소양없는 백성들이 너도나도 글자를 안다고 날뛰고,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결국 조선은 너의 글자로 인해 망할 것이다.
세종: 지랄하고 자빠졌네. 네가 조선인이냐, 중국인이냐? 한자가 어느 나라 글자더냐? 네가 나의 글자를 두려워 하는 이유는(목에 힘주어 강조), 글이 곧 무기이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말이다, 중국의 글자가 조선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 답할 것이냐? 결국에는 한자라는 무기에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 되거나 망할 것 아니겠느냐? 하여 나는 조선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을 지키는 그 방법이 글자다.

정기준: 중화는 삼봉이 세운 조선건국의 이념이고, 너의 글자는 중화를 거스르는 반역사적 글자이다. 그걸 정녕 모르는 것이더냐?
세종: 중화를 거슬러? 옘병할... 중화가 밥을 주더냐, 고기를 주더냐? 밥은 말이다, 한자라고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새벽부터 밤늦게 일하는 백성들이 주는 것이다. 하여 내 너무 고마운 백성들에게 쉬운 글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인데, 그게 그리 고까운 일이더냐? 사람을 죽여가면서 까지 반대할 정도로?.
백성을 위한 성리학이 고작 말뿐인 것이었더냐? 그러고도 네가 사대부 선비더냐? 백성없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있더냐? 조선을 지키는 것은 성리학을 지키는 것도, 사대부의 권익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백성을 지키는 것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 삼봉이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백성의 마음을 얻지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길 것이라고, 그리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이어야 한다고...하여 내 그리하기 위해 지옥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 나의 조선, 백성에게 가는 나의 길에 너의 대답이라는 것이 고작....
참 내 너에게 말을 전하라 했는데 들었느냐? "겨우 폭력이라니..."
정기준:.......(방백) 에잇, 자존심상해(쪽팔려!라고 싶은 것을 참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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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4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장성수의 죽음과 함께 공개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밀본, 세종을 흔들고 있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의입니다. 무휼에게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심하게 흔들리는 세종 이도였지요. 그리고 이도를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똘복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궁녀 소이가 자신을 잡아줬었지요. "전하의 탓이 아니옵니다"라며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 8회에서는 잠을 잘 수 없는 세 사람을 대조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이도를 향한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강채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소이, 그리고 아버지와는 다른 조선, 이도가 꿈꾸는 조선을 세우기 위해 잠 못 드는 세종을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모습으로 그렸지요.
가히 미친 연기력이라 할 수 있을 한석규의 연기는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군요. 핏발을 세우지 않고 목소리의 강약만으로도 분노와 불안, 그 내면심리까지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배우 한석규는 걸음걸이마저 세종에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군요. 빙의되었다는 표현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지만, 한석규는 용포 속 고뇌하는 고독한 군주 인간 세종 자체였습니다.

경회루에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는 글귀와 함께 실려온 장성수의 시신에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크게 동요합니다. 누구보다 세종 이도의 충격이 큽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오수를 청하고, 주위를 물리는 세종이었지요. 이방원의 망령과 싸우는 세종. "군왕이란 그런 것입니까?" 이방원은 세종을 또다시 비웃습니다. "권력의 독은 안으로 감추고, 오직 인내하고 참겠다고? 그게 사람의 길일 줄 아느냐? 내가 걸었던 길보다 훨씬 더 참혹할 거라고, 내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며 다시 비웃는 듯하지요. "예, 참혹합니다. 허나 소자는 아버지와 다르옵니다. 의심하고 낚고 베고 죽이지 않겠습니다. 결코."

경연을 준비하라고 이르고는 경연장으로 간 세종은, 엉뚱한 주제로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회의안건은 "세법이요". 어안이 벙벙해진 대신들에게 세법 가부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13년 고을민의 반대로 부결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침착하게 응수하는 세종입니다. 세법혁파야말로 대신들과 유림의 기득권 문제가 걸린 사안이었기에, 광평대군마저도 세종의 저의를 의심하고 걱정하지요. 반발세력을 걸러내 밀본을 추리겠다는 숙청의 의도로 받아들이는 광평대군이었지요. 광평대군에게 "나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마라"라고 일축하는 장면에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상소문을 다시 읽는 세종. 무휼 역시 흔들리는 세종을 걱정합니다. "심기를 굳건히 하라"는 말에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는 세종.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인데. 그런데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할 때도, 대명(大明)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다, 국고가 낭비된다, 신분질서가 어지럽혀진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 자기네들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야."

한석규의 연기에 입을 쩍 벌리고 들으면서도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요. 세종이 세우고자 하는 조선은 자주 조선이었으며 실용의 조선이었고,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인재가 등용되는 조선이었으며 백성의 애환을 살피는 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선을 세우겠다는 세종을 왜 반대하고, 밀본이라는 개떡같은 조직이 조선을 흔들려고 하는지 세종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장성수의 시신과 함께 보낸 밀본의 글귀를 읽은 세종이 혼잣말로 "염병"이라고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정말 염병할 사대주의자들이죠. 한석규가 염병이라고 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그 세심한 연기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지문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동요하고 흔들리고 자신 없는 세종. 그가 발길을 향한 곳은 집현전이었지요. 문(文)의 통치를 하겠다며 아버지의 조선과 다른 조선을 보이겠다고, 경연하고 쟁의하고 합일점을 찾는 조선을 만들겠다고 만든 집현전. 그곳에서 세종은 젊은 자신과 만나지요. 젊은 세종(송중기)의 환시와 싸우는 세종의 모습은 주눅이 들어 있었고, 자신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한편의 모노심리극 같았던 젊은 이도와 중년 이도의 만남은 세종의 내면적인 갈등이 얼마나 극에 달해있는지와 함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세종을 보여준 장면이었지요. "네놈의 그 한심하고 잘난 결심이 이렇게 만든 거야. 네놈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네 사람을 죽인 것이다. 이방원의 무덤에 가서 눈물 흘리며 사죄해라. 이방원이 왜 이방원인가?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깜짝 등장한 송중기, 조소하고 조롱하는 연기를 소름 끼치게 잘하더군요. 송중기의 조소하는 눈빛에 공포와 죄책감에 질려 가늘게 떠는 한석규의 연기는 수천 개의 바늘로 몸을 찔러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왜 한석규인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기도 했고요.

젊은 이도와의 싸움은 자기 사람을 잃게 한 자책감으로 분노하고, 젊은 이도에게 책망받는 유약한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갈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세종의 내면을 말했던 것이지요. 후배와의 연기에서 자칫하면 한석규의 카리스마 혹은 압도감에 송중기가 묻힐 수도 있었을 장면이었지만, 한석규는 송중기를 이기려고 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파르르 떨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흔들리고 갈등하는 세종의 심리였고, 또한 강채윤과의 만남에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는 극기의 과정과 연결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저 카리스마 풀풀 넘치는 모습으로 송중기와 독대를 했다면, 가장 중요했던 장혁과의 장면에서 우직하게 그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극적 절정감을 주지는 못했을 겁니다. 완벽하게 세종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나오기 힘든 심리싸움을 그린 명장면이었습니다.

소이의 뒤를 밟던 강채윤은 장성수가 남긴 서책을 일부러 흘리고는 소이의 행동을 지켜보지요. 놀랍게도 소이는 서책을 읽더니만 책을 갈기갈기 찢어 불살라 버리죠. 그리고는 반촌의 가리온을 찾아가 불면증 약재를 구해 궁으로 들어갑니다. 소이의 이상한 행동에 처소까지 따라 간 강채윤은 소이에게 산조인을 먹지 말라며 나직히 말하지요. 강채윤은 소이가 산조인을 왜 먹는지를 알았지요.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지요.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잠을 잘 수 없는, 아니 스스로 잠을 자면 안 되도록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사연이 있음을 짐작합니다.

약으로 고통을 이기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는 채윤에게 "어찌 그것을 알았느냐?"고 묻는 이는 뜻밖에도 이도였지요. "아무 죄 없는 아비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일 수 있는 이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혹여 잠이라도 들면 아비가 무서운 모습으로 이유라도 말해달라며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나타날까봐." 어찌 고쳤느냐는 세종의 물음에 강채윤은 아비를 죽게 한 사람에게 복수할 결심으로 고쳤다고 대답하지요. 복수를 결심해야 하니 몸은 더 지치고, 모든 인생을 그것에 걸어야 하는 마음은 참혹하다는 강채윤에게 이도는 또 묻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길을 가느냐고 말이지요.
"결심이 왜 결심이겠습니까? 결심 없는 소인은 더이상 소인이 아니옵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강채윤의 말을 되뇌는 세종은 흔들렸던 자신과 똘복이를 비교해 보지요. '그만큼이었구나, 노비 똘복의 결심은.'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그 참혹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똘복이 앞으로도 그 길을 가겠다는 채윤에게 "넌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난 나의 길을 갈 것이다"라며 발걸음을 돌리지요. 강채윤이 가겠다는 길이 이도 자신을 죽이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라는 말에 보좌하고 있던 무휼이 크게 놀라지만, 세종은 모든 갈등을 털어냈다는 듯이 그의 길을 향했습니다. 휘청였던 세종의 발걸음은 어느새 곧추 서 있었고, 허허롭게 웃음 짓던 세종의 얼굴은 단호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이방원의 칼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마방진으로 숨어버렸던 이도.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는지 회의가 들어서, 또다시 마방진으로 숨으려 했던 이도였습니다. 그리고 강채윤을 보며 아버지와는 다르리라 결심했던 그 결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이방원에게 목숨을 내놓고 구했던 첫 백성 똘복이. 이도를 처음으로 임금이게 했던 똘복이가 그를 일깨웁니다. 외롭고 더 참혹해진다 해도 이도이기에 가야 한다고, 임금이기에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똘복이 아버지 석삼이. 글을 몰라 아버지와 친구를 잃었던 소이.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보낸 서찰 한 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을 때, 이도는 나의 나라에서 글을 몰라 죽는 백성은 없게 할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아전이 그리라는 대로, 글자 아닌 그림을 그리는 백성들. 그것이 누구를 위함인지도 모르는 백성들은 석삼이, 똘복이, 소이입니다.
세종은 똘복이를 첫 백성으로 얻고, 수많은 똘복이들을 만나려 했습니다. 한글은 똘복이를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똘복이 너는 나를 만나러 왔느냐, 나는 너(백성)를 만나러 가겠다', 이방원 없는 천하, 그날 그 굳은 결심 앞에 다시 선 세종 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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