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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26 '뿌리깊은 나무' 세종 이도, 광화문에 왜 나갔나? (12)
2011.11.26 09:42




뿌리깊은 나무 16회는 사실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봐야 하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글자창제에 반대하는 유림들과 조정대신, 학사들을 설득하는 세종의 토론장면이 백미였지요. 사실 지난 글은 굉장히 흥분하고 화가 나있었던 상태여서, 드라마가 끝날 즈음에 정리편으로 생각하고 있던 생각들까지 두서없이 장황스럽게 풀어 버렸습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하도 답답하고 서글프기까지 해서, 주절주절 떠들기는 했지만,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보다보니 한 소리를 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시사블로거나 정치블로거는 아니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하는 마음이야 다르지 않겠지요. 드라마 속에서의 세종과 오늘의 대통령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영화 부당거래가 최우수작품상, 감독상(류승완), 각본상을 받았는데요, 류승완 감독을 대신해 나온 부인 강혜정대표가 류승완 감독이 수상소감으로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는데, 민감하기는 한데 말씀드리겠다며, "세상의 모든 부당거래에 반대하고, 그런 의미에서 11월22일에 있었던 FTA에 반대한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다고...앞으로 더 열심히 정직하게 부당하지 않게 만들겠습니다" 라는 류감독의 수상소감을 대신 전했습니다.
수상소감이 어찌나 슬프게 들리던지 말입니다. 통쾌함? 저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영예스런 상을 수상하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시국에 대해 걱정을 전해야 하는 류승완 감독, 그의 소감이 가슴을 아프게 하더군요. 한미FTA비준안 날치기 처리에 분노해 규탄대회를 하기 위해 시청광장 앞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국민과의 소통은 하지 않으려는 정부는 FTA비준안의 내용을 떠나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정말 알고는 있을까요? 
 답은 세종이 광화문에 나간 이유에 있습니다. 유림의 거두 혜강선생이 유생들과 함께 광화문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이적(오랑캐)의 글은 안된다며 목청을 높였지요. 칼이 아닌 말로 베어낼 것이라며 세종은 친히 광화문 앞에 나가 유생들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지요. 꺼져, 물대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나요? 혜강의 말을 우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정할 부분은 확실하게 인정을 합니다. 한자에는 유학의 도와 개념이 들어있는데, 전하의 글자 그것을 담을 수 있겠느냐는 말에 3천년 역사를 가진 한자의 장점에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그리고 세종은 반박했습니다. 물론 혜강선생에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자가 백성의 소리를 담을 수 있느냐고, 일자무지랭이 백성들이 글자를 모르는데,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나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었죠. 부민고소방지법을 다시 부활시켜야 하는 이유에서 설명했던 장면이 그것입니다. '부(否)-반대'라는 글자의 뜻도 모르는 고을민들이 수령과 아관들이 시키는대로 그려넣었을 뿐이었다는 구체적 사례까지 조목조목 조사를 한 후 반박했던 장면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의 필요성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죠.
나아가 세종은 언로에 대한 화두를 던집니다. 글자가 유학의 도에 어긋난 것이라는 혜강선생의 논리에 논리로서 대답을 했지요. 혜강선생이나 유림을 설득하는 논리는 다른 것 필요없습니다. 그들의 논리로 대응했을 뿐이었죠. 삼봉 정도전의 이념을 들어 반박했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자 그 소리를 전해주는 관료를 뽑았으나, 오히려 언로는 막혀버렸다고 말이지요. 왜냐? "한자가 어렵기에 백성들은 그들의 말을 임금께 올리려면 관료를 거칠 수 밖에 없었는데, 관료들은 백성들의 소리를 왜곡하고 편집했기 때문이다. 해서 삼봉은 언로가 더욱 막히었다 이리썼다".
재미있는 것은 말입니다. 이것이 조선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 한나라의 일이라는 것이죠.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이 모양인데, 글자 없는 조선이야 두말하면 입 아픈 소리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세종은 왕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음에도 밀어부치기나 날치기 수법으로 한글을 반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 물론 밀본이 세종이 비밀리에 글자를 만들고 있었음을 알고, 방을 붙여 방방곡곡에 알리기 전까지는 기습적으로 반포를 하려고는 했었죠.
그러나 일이 알려지자 세종은 어찌했습니까? 오히려 이 문제를 토론의 장으로 확대해 경연을 준비하라고 까지 합니다. 유생들의 연좌농성장에는 친히 납시어 왜 글자가 필요한지를 설득시키기도 했고 말이지요.

한미FTA, 조목조목 공부를 해가면 반대의견과 천성의견 거의 모든 자료들을 읽어봤습니다. 모든 거래가 그러하듯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도 있었고, 불리한 것도 있는 듯합니다. 저는 무조건 반대도, 무조건 찬성의 입장도 아닙니다. 일단은 제대로 알아보자의 입장입니다. 저를 돌아보니 FTA비준안의 내용에 대해 너무나 알고 있는 것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자료들을 하도 찾아서 이 의견 저 의견을 취합하다보니 화가 나 죽겠는 겁니다. 아니 왜 이런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찾고 다니나 싶어서 말이죠. 뉴스기사는 너무 짤막해서 무슨 내용인지 설명도 되어있지 않고, 이해를 돕기 위한 추가자료도 없고, 그러다 보니 막연히 반대를 위한 반대의 입장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이 되더란 말이죠.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저에게도 문제가 많았지만,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정부에도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덮어놓고 옳은 일이니 나중에 어찌 되는지 그냥 입닥치고 지켜봐다오? 이건 아니지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불합리한 조항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를 해야 할 것이고, 충분히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에도 늦지 않을 일을 굳이 날치기로 강행했어야 했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모든 거래가 동전의 양면처럼 이익과 손해가 있는 것이겠지요. 어느 한쪽만이 이익이라면 이는 거래라고 할 수 없는 강요, 강매가 될 것입니다. 국민들이 우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이런 부분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반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종이 광화문으로 나간 이유는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와 소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민주주의가 왜 민주주의겠습니까?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결론을 이끌어 내기에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설득이든 이해든 대화가 먼저이지, 날치기에 물대포라뇨? 세종대왕이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싶군요. "겨우 폭력이라니, 지랄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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