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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19 각시탈: 소름끼치는 키쇼카이의 정체, 정한론은 현재진행형 (5)
2012.07.19 14:29




난데없이 친일논란에 휩싸였던 각시탈, 저는 개인적으로 참 통쾌했던 장면이었습니다. 기미가요는 드라마 전개상 필요한 부분이었기에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리랑을 부를 수도 없잖아요. 완창을 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죠.
그것보다는 욱일승천기를 찢지 않은 각시탈에게 불만이 나오기도 했는데, 저는 다른 시각으로 봤습니다. 일한합방 축하 현수막을 칼로 베어버린 장면은, 욱일승천기를 벤 것 이상의 큰 의미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욱일승천기를 찢는 것보다 합방축하 현수막을 찢는 장면으로, 합방을 부정한다는 항일정신을 더 상징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베일에 싸여있던 키쇼카이의 목적이 드러나면서는 더더욱이나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와닿기도 했고요.
목단을 피신시키려는 강토에게 총을 겨누는 슌지, "역시 네놈이었어. 반갑다, 각시탈". 강토를 의심해 온 슌지가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만 강토였지요. 그러나 강토가 각시탈이라고 밝히지는 않겠지요. 그럴듯한 변명으로 이번에도 빠져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슌지 앞에서도 탈을 벗을 강토지만, 슌지는 실수를 했습니다. 각시탈은 탈을 벗고 나타난 적이 없었죠. 각시탈의 단벌의상인 백의를 입고 말입니다. 백의착용금지령을 내린 일제, 이시용을 보니 뼈를 오득오득 소리가 나게 씹어주고 싶더군요.
사실 백의금지를 내린 것이 일제강점기때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숙종때도 청의를 입으라는 명이 내려지기도 했고, 백의에 대한 분분한 의견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오행설에 입각해 청색옷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고, 흰색이 제례때 입는 소복의 색이다 보니 평상복은 색깔옷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기도 했고요.
어디선가 읽었는데, 백의민족은 단군의 자손을 뜻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더군요. 단군의 제사를 지내는 민족이라는 해석이었는데, 여튼 각시탈에서도 백의금지령이 내려지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내린 백의금지령은 그 이전에 내려졌던 것과는 의도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빨래하기가 힘들고 위생에 문제가 있다는 예시를 하기도 했지만, 사실 따지고 들어가보면 일제가 백의에 일종의 노이로제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한말 단발령이 내려지자 각지에서 의병들이 들고 일어났죠. 그때 의병들이 흰옷을 입고 집결을 했다고 합니다. 백의는 일제에 대한 저항, 항거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키쇼카이의 목적이 드디어 밝혀졌지요. 지난 글에 키쇼카이의 정체에 대한 유추를 했는데 너무나 똑같아서 소름돋더군요 (2012/06/23 '각시탈' 살아있는 비밀조직 키쇼카이의 정체와 그 무서운 음모). 메이지 유신이후 대두된 정한론자들이 키쇼카이였더군요. 명성황후를 시해한 극우세력이기도 합니다. 1870년대부터 제기되었던 정한론은 말그대로 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을 조선이라고도 하고, 한국이라고도 했습니다. 소름끼치게 무서운 야심은 그들의 경성천도 목적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글에서 일본 역사와 함께 언급을 하기는 했지만, 경성천도설은 실제로 제기되었던 주장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무서운 것은 이들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정한론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당시 두 개의 정치세력으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조슈 번 지역 출신들의 조슈파(드라마에서는 콘노국장과 총독이 이 세력에 해당되죠)와 지방 사무라이로 중앙에서 축출된 강경파입니다(우에노 키쇼카이 회장과 기무라 타로 같은 사무라이)였습니다.
강경파가 주장한 것이 정한론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이 이뤄진 당시에는 내실부터 다지자는 부국강병론자들인 조슈파와 대립해, 지방으로 내려간 정한론자들이 난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이게 유명한 서남의 난입니다. 이후 이들 강경파는 조슈파를 견제하기 정치세력으로 결집하고, 중앙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는데요, 조슈파와 강경파는 조금씩 타협을 해가기 시작했죠. 부국강병을 이루고 해외식민지를 무력으로 넓혀가야 한다는 군국주의로 합일점을 찾은 것이죠. 이때부터 정한론은 일본의 정치이념이 됩니다. 

지난 글에서 키쇼카이의 정체에 대해 추측을 해봤을 뿐인데 너무 비슷해서, 경성천도설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시 옮겨보겠습니다. 키쇼카이 회장 우에노(전국환)은 1870년대부터 주장된 사무라이 강경파들의 정한론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입니다. 무서우 것은 그의 입에서 경성천도 계획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섬나라 일분인들에게는 대륙진출은 꿈이었습니다. 조선은 그들의 제국주의 꿈을 향한, 대륙으로 들어서는 첫관문이었죠. 1930년대는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기치 아래 일제가 군국주의를 확장하는 절정기였습니다. 일제의 제국주의 야욕은 경성천도 계획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요.
일본의 경성천도설은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자 도요카와 젠요란 자가 주장했던 것입니다. 도요카와 젠요는 일본 수도 도쿄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도를 조선의 경성(서울)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경성천도와 관련, 구체적으로 800만명의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하게 하고, 조선인 800만명을 일본으로 이주시켜 조선을 영구적으로 종속시키려는 계획을 짰던 인물입니다. 대동아 공영권에 대한 야심이면서, 지진, 해일 등으로 불안한 일본의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기 까지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900 여회에 걸쳐 한반도를 침략해 온 일본, 끈질기고 지속적으로 침략해 온 이유는 내륙진출에 대한 침략근성때문이었습니다. 키쇼카이의 음모처럼 말이죠. 이들의 목표는 조선을 완전하게 일본화시켜 조선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조선말, 글, 민족성, 의복, 성씨와 이름에 이르기까지 모두 없애버리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것이죠.
800만명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시키고자 했던 경성천도 계획은 도요카와 젠요라는 미친놈의 망상, 키쇼카이로 상징되는 군국주의의 정체였던 것입니다. 키쇼카이는 여전히 살아있는 망령조직이며,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일본군국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그 속에 조선을 정벌하자고 했던 정한론이 뿌리깊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뿌리깊은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은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잖습니까? 애국가나 아리랑을 부르면 가슴 밑바닥에서 차오르는 감정, 그것을 우리는 우리민족의 정서라고도 합니다. 한민족, 백의민족으로 면면히 내려온, 역사를 살면서, 배우면서, 거치면서, 몸으로 마음으로 정신으로 습득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군국주의도 뿌리에서 뿌리로 이어지고 있는 그네들의 정서입니다. 그 무서운 정서의 바탕에 정한론이 깔려있다는 것, 결코 좌시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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